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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김철홍 교감 “행복은 삶의 목적 아닌 생존을 위한 감정”

거제용소초등학교 김철홍 교감이 KNN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행복의 기원’을 소개했습니다. 김 교감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저자가 행복을 철학이 아닌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점이 흥미로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행복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돕기 위해 진화한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김 교감은 행복을 가치 있는 삶으로 바라보는 인식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컸다고 소개했습니다. 반면 저자는 인간을 진화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며 행복을 새롭게 해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은 행복을 즐거움과 불쾌함처럼 인간의 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경험으로 바라봅니다. 또 행복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아야 다시 새로운 행복을 찾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김 교감은 강한 행복 한 번보다 작은 행복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즐거움과 불쾌함이 각각 푸른 신호와 빨간 신호처럼 작용하듯 행복도 인간의 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신호로 바라봅니다. 김 교감은 책에서 소개한 ‘피카소 효과’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과 행동 역시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금전적 보상을 받은 집단보다 아름다운 여성과 해변을 걷는 장면을 상상한 집단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는 실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행동 역시 생존과 진화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감은 로또 당첨이나 승진 같은 큰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책 읽기와 여행, 친구와의 대화처럼 작은 행복을 일상 속에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작은 행복을 일상에서 느끼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그램은 행복을 찾는 방법보다 행복이 왜 존재하는지를 돌아보며 주변 사람들과 작은 행복을 함께 나누는 삶을 제안했습니다.
이아영
2026.07.20 14:40

BTS, 월드컵 첫 하프타임쇼 장식…“꿈을 꾼 기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월드컵 역사상 처음 열린 결승전 하프타임쇼 무대에 올랐습니다. BTS는 현지시간 19일 미국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쇼에 출연했습니다. 멤버들은 소속사 빅히트뮤직을 통해 어려서부터 즐겨보던 월드컵의 첫 결승전 하프타임쇼에 서게 돼 영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여러 아티스트와 아이들과 함께 사랑을 외치며 좋은 취지의 공연을 펼쳐 기쁘고, 마치 꿈을 꾼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BTS는 마돈나와 샤키라,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과 함께 공동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멤버들은 붉은악마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대표곡 ‘다이너마이트’를 열창했습니다. 이 곡은 지난 2020년 K팝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했습니다. BTS는 노랫말 일부를 축구 경기와 관련된 표현으로 바꿔 부르며 공연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경기장 중앙에는 지구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펼쳐져 국가와 문화, 세대를 넘어 하나가 되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멤버 슈가는 붉은악마 패치가 부착된 의상을 입었고, 지민은 손흥민의 등번호이자 BTS를 상징하는 숫자 ‘7’이 새겨진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하프타임쇼 말미에는 콜드플레이와 샤키라, 저스틴 비버, 세서미 스트리트와 머펫, 뉴욕 PS 22 합창단 등과 함께 ‘위 댄스’를 공연했습니다. ‘위 댄스’는 콜드플레이가 이번 월드컵을 위해 만든 곡입니다. 이번 하프타임쇼는 소외 지역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FIFA 글로벌 시티즌 교육 기금’의 취지를 알리기 위해 국제 시민운동 단체 글로벌 시티즌이 제작했습니다. BTS는 전 세계 팬들의 영향력 덕분에 이 무대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공연을 지켜본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박동현
2026.07.20 13:28

[오래된 미래] 좌천동 방공호, 일제의 전쟁 흔적에서 역사의 교훈으로

좌천동 방공호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부산항 방어를 위해 조성된 전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원 소장은 군산에서 부산까지 해안 지역에는 포진지가, 부산 내륙에는 방공호가 많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좌천동 방공호는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한 인명 피해 방지와 부산항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소장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1941년 이후 부산요새사령부 산하에서 방공호를 조성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방공호는 산을 깎아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든 뒤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하늘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위장한 형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일본은 가덕도를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보고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공사에는 강원도 탄광에서 일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징용됐으며, 폭파 뒤 암석을 치우는 작업 등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덕도에서는 일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하면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요구에 따라 주민들의 출입이 제한됐다는 내용이 당시 공문에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란민들이 방공호 안에 칸막이를 설치해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당시 방공호 곳곳에서 여러 가구가 함께 생활하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다고 회상했습니다. 현재 방공호에는 ‘역사는 사실대로 기록하되 나라의 부끄러움은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안내 문구가 사라져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주민들은 좌천동 방공호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러한 공간을 통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좌천동 방공호는 전쟁과 피란의 흔적을 간직한 채 부산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전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노경민
2026.07.16 14:41

[행복한 책읽기] 류해숙 관장 “걷기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시작”

김해도서관 류해숙 관장이 KNN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이케다 미쓰후미의 ‘걷는다’를 소개했습니다. 류 관장은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하며 몸과 마음이 무겁고 지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큰 결심 없이 오늘 조금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리듬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책은 운동을 강요하기보다 걷는 즐거움과 의미를 다시 발견하도록 돕는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걷는 행위가 몸과 뇌, 감정, 일하는 방식, 인간관계, 도시와도 깊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인간은 원래 걷는 존재지만 현대인은 지나치게 앉아서 살아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합니다. 또 걷기는 단순히 칼로리를 소모하는 운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회복시키는 기본적인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책은 걷는 동안 몸의 균형이 잡히고 뇌가 자극을 받으며 생각이 정리되고 감각이 살아난다고 설명합니다. 또 걷기를 개인의 건강을 넘어 현대인의 삶과 행동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로 바라봅니다. 류 관장은 걷기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인간다운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까운 거리도 차량을 이용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내는 일상 속에서 걷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안정되며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평소 고민이 많을 때 산책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던 경험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책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보다 천천히 걷고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몸에 귀 기울이라고 권한다고 전했습니다. 특별한 장비나 비용 없이 한 걸음씩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이 큰 교훈으로 남았다고 밝혔습니다. 류 관장은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스마트폰과 컴퓨터 앞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밖으로 나가 걸어보기를 권했습니다. 아울러 짧은 산책만으로도 고민이 정리되고 마음의 여유와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자신만의 힐링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했습니다.
박종준
2026.07.14 14:14

청소년부터 장관까지 부산 집결…국제행사 9개 동시 개최

국제 청소년 캠프와 장관포럼 등을 아우르는 국제 컨벤션 ‘2026 IYF 월드캠프’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지난 12일 개막해 오는 19일까지 이어지며, 100여 개국에서 청소년과 대학생을 포함한 2만여 명이 참가합니다. 행사 기간에는 20개국 장·차관과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는 세계장관포럼, 16개국 대학 총장단과 교육 관계자가 함께하는 세계교육포럼을 비롯해 비즈니스리더스포럼(BLF), 국가공무원포럼(PSF), CLF 월드 컨퍼런스 코리아 등 모두 9개 국제행사가 동시에 열립니다. 올해 월드캠프는 ‘연결된 세계(The World Connected)’를 주제로, SNS와 AI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참가자들이 마음을 터놓고 교류하며 ‘마음의 연결’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됐습니다. 개막식에서는 미얀마와 인도, 독일, 미국 공연팀의 문화공연을 비롯해 그라시아스합창단과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다가딘 등의 축하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짐바브웨 부통령 영부인과 남수단 국회의장은 이번 행사가 청소년들의 시야를 넓히고 미래를 이끌어 갈 리더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IYF 설립자인 박옥수 목사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마음의 성장과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며, 참가자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부산 일정을 마친 뒤 전국 각지에서 한국 문화 체험과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는 19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폐막식을 끝으로 7박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박동현
2026.07.14 10:30

[오래된 미래] 용두산공원, 일제강점기부터 피란수도까지…부산 역사를 품은 언덕

용두산공원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쳐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시민공원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일제는 용두산에 신사를 세우고 국폐소사로 승격해 관공서와 전차 이용객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일본인들이 신사에 모였고, 이를 본 한 시민이 신사를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원 소장은 당시 시민들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울분을 품고 있었으며, 신사가 불탔다는 소식에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용두산 일대에 판자촌을 이루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1953~1954년 부산에 근무했던 미군 클리포드 씨는 당시 용두산 주변 판자촌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사진에는 미화당 뒤편까지 빼곡히 들어선 판자촌의 모습이 담겨 당시 부산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두산 곳곳에는 대화재 당시 뜨거운 열과 물로 인해 표면이 갈라진 돌도 남아 전쟁과 화재의 흔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용두산은 시민들의 생활과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됐습니다. 당시 학교는 한 학급에 약 60명이 공부할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고, 중부 지역 인구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후 용두산공원은 부산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부산타워는 남포동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시민들이 찾는 명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20m 높이 전망대로 오르는 경험은 당시 시민들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여름이면 가족들이 도시락을 들고 공원을 찾아 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공간들이 여행객들의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관광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용두산공원은 일제강점기와 피란수도 부산의 기억,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이 함께 쌓인 공간으로 부산의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이아영
2026.07.08 14:59

[테마스페셜] 제주개발공사, 물을 넘어 주거복지로…지속 가능한 제주를 그리다

제주개발공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먹는샘물 사업을 넘어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을 통한 지속 가능한 제주 만들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제주개발공사는 제주 지하수를 기반으로 성장해 지역을 대표하는 공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8년에는 먹는샘물 생산체제 70만 톤을 갖췄고, 올해 상반기에는 국내 생수시장 점유율 40%를 넘기며 시장 1위를 유지했습니다. 감귤 가공사업을 통해 농가를 지원하고, 판매 수익은 인재 육성과 환경보전, 사회공헌 등에 환원해 왔습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자체 브랜드(PB) 생수의 성장으로 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습니다. 개발공사는 순수익의 40% 이상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며, 곶자왈 보전 기금 등 공익사업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먹는샘물 사업을 넘어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복지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행복주택 ‘마음에온’에서는 저렴한 임대료와 함께 건강관리, 문화활동, 교육, 일자리 등을 연계한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스타트업 지원과 청년 주거, 고령층 돌봄 등 계층별 맞춤형 주거복지 모델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제주개발공사는 현재까지 2천100여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으며, 앞으로도 공급 방식을 다양화해 주택 공급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제주도는 내년까지 7천 호 규모의 공공주택 공급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소규모 주택정비사업과 원도심 재생, 농촌 마을 활성화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화북2지구에는 친환경 스마트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해 탄소중립형 주거환경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공공이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과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모델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주개발공사는 앞으로도 제주다운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을 통해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노경민
2026.07.07 15:19

'2026 넥센타이어배 전국 3쿠션 당구대회' 성황…광주 '보스'팀 우승, 944팀 참가

'2026 넥센타이어배 전국 3쿠션 당구대회';가 부산 KNN 공개홀을 뜨겁게 달구며 대망의 파이널 라운드를 화려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 대회로서는 이례적인 전국 5대 권역 예선 최종 944팀 참가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번 대회는,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최종 32강 정예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당구 최강자 타이틀을 두고 격돌했습니다. 4일(토) KNN 본사 5층 공개홀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8강 토너먼트에서는 프로 선수를 방불케 하는 하이런(연속 득점)과 빼어난 에버리지가 쏟아져 나와, 지상파 녹화 현장 방청객들과 유튜브 실시간 생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대회 파이널 라운드가 펼쳐진 5일(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최종 결승전에서는 전국의 당구 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대급 명승부가 연출됐습니다. 광주 권역 대표로 출전한 보스(박웅기·김영호)팀과 부산 홈그라운드의 자존심 로드(박수현·송현석)팀이 맞붙은 결승 무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팽팽한 흐름으로 전개됐습니다. 무려 42이닝까지 이어진 숨 막히는 장기전 속에서 보스팀은 에버리지 0.571, 하이런 4점을 기록하며 로드팀을 24:21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대한민국 아마추어 당구의 최정상 자리에 오른 우승팀에게는 영예의 우승 트로피와 함께 상금 1,000만 원, 넥센타이어 교환권, 미라클크루즈 부산-오사카 오션뷰 왕복권이 부상으로 수여됐습니다. 한편, 이번 '2026 넥센타이어배 3쿠션 당구대회' 본선 및 결승전의 생생한 경기 내용과 현장의 감동은 KNN TV 특집 녹화 방송을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임택동
2026.07.06 15:00

젊은 날의 꿈을 다 이루었습니다. - 사진작가 라상호

기자 전시회 안내 보니까 일흔 일곱 되셨을떄 남미 일대를 쭉 돌면서 촬영한 걸로 돼 있더라고요. 특별히 그해에 그렇게 그곳에 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라상호 작가(이하 라상호) 일정은 기록이 안 돼 있는데 그해에 경남신문이 창건 77주년이었어요 2023년도에. 그해에 제 나이가 일흔 일곱이었고 그래서 그때 창간 기념으로 특별 기고를 부탁해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77일 동안 남미에 가서 전역을 다 돌았어요. 사실 사진을 막 시작을 하면서 ‘내가 사진가가 된다고 그러면 세계 문화유적 사진집을 5권 만드는 거 참 좋겠다’는 정말 막연한 꿈을 꿨죠. 그러다가 이제 정말 사진가가 되어서 1971년도에 마산을 오게 됐어요. 이곳에 있으면서 사진가의 길로 가게 되니까 이제 내 꿈을 한번 실현해 보자. 그래가지고 1996년도로 기억되는데 캄보디아가 그해 우리나라하고 수교가 됐어요.(실제로는 1975년 크메르 루즈 정권으로 인해 공산화면서 단교되었다가 1997년 외교관계가 재개되었다) 수교가 되는 그때 정말 빠르게 제가 캄보디아를 가봤죠. 가서 보니까 내 힘으로는 찍기에 나라가 너무 방대한 거에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체류 기간도 엄청나게 있어야 되겠고..현실적인 한계때문에 그냥 접고 돌아왔는데 우리 지역 로터리 클럽에서 뉴욕의 로터리 문화재단에 편지를 써서 문화 사절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지원을 요청한거죠. 그게 성사되면서 3개월 머물 수 있는 경비를 지원받았고 거기에 제 돈을 보태서 6개월 동안 캄보디아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게 발단이 되어 가지고 7년 동안 캄보디아를 다니면서 다양하게 사진을 찍어서 2006년도에 책을 만들어 출판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는 또 미얀마 를 다니면서 사진 작업을 모아놨다가 2008년도에 또 책을 냈고 그다음에 청도 운문사에서 자기네들 승가대학교 50주년 기념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의뢰가 와서 정말 다행스럽게 청도 운문사의 책을 만들게 되죠. 그렇게 세 권을 만들었고 네 번째는 우연치 않게 히말라야를 가기 시작하면서 네팔 유적을 찍게 되었는데 그건 또 너무 돈과 시간이 많이 걸려서 계속 길어지고 미뤄지게 되는 상황에서 2023년에 경남신문 의뢰가 들어온거죠. 이제 나이도 들고 또 필요한 돈을 모아야 책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지금까지 좀 걸렸는데 이제 제 나이 여든에 이 책을 만들어서 출판기념회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2023년도에 찍어가지고 3년 동안 돈을 모으고 편집을 하고 출판을 하게 됐는데 다행스럽게 송원 갤러리에서 최충경 회장님이 초대전을 열어줘서 이렇게 전시까지 현실이 됐네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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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지난한 과정을 거치셨군요. 그런데 이번 전시회가 ‘돌_시간을 기억하다’ 던데 특별히 돌을 선택하신 어떤 이유가 있나요? 라상호 학창시절부터 풍경을 찍는 것보다는 경주, 우리 고궁에 있는 돌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좋아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돌이, 우리가 생각할 때는 죽어 있는 돌같지만 실제 살아있는 돌의 가치를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근데 사진하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게 있어요. 어떤 빛을 만나고 어떤 계절에 사진을 찍게 되면 그 바위 색깔이, 돌의 색깔이 살아있는 색깔로 변하면서 그곳에서 운동을 느끼게 되는 거죠. 분명히 까만 돌이었는데 아침 이른 새벽에 빛을 받게 되면 붉은색이 물들게 되고 그러면 그쪽에 있는 표정이 나타나게 되는거죠. 또 저녁 때 노래지게 되면 노란색이 되고 추운 겨울에 찍게 되면 또 까만 색이 아니고 보라색이 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돌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드러나게 되는거죠. 어떤 것보다 오래 견디는 것 중에 하나가 저는 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철도 오랫동안 놔두면 부식이 되지만 돌은 오랜동안 천년이고 만년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돌, 그대로 남아있거든요. 우리나라의 모든 건축물들을 보면 석가탑, 다보탑, 경주 불국사 본존불 같은 걸 보게 되면 천 몇백 년이 됐지만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거든요. 9세기 11세기 때 만들어진 이 앙코르 유적도, 모아이도, 마추픽추도 똑같은 거죠. 돌을 어떻게 보느냐 어느 시간대 어떤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걸 느끼면서 돌이 그 시간을 기억하네 라고 저는 생각했던 거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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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런데 사실 지역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사진 작업을 하기가 사실은 쉽지는 않지 않습니까?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이렇게 작품활동을 이어오신건지도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라상호 저도 그게 참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버려야 할 것은 있었어요. 젊었을 때부터 친구와 비교하지 말자, 친구를 그렇게 많이 사귀지 말자, 남의 것을 탐하지 말자 이런 생각들을 가졌죠. 왜냐하면 비교하게 되면 돈을 벌어야 되는데 남들이 돈을 벌어서 무엇인가를 할 때 저는 필름을 사야 되고 또 카메라를 사야 되고 여행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싶었던 거에요. 예를 들어서 사진관을 한다든지 또 한때 유행했던 웨딩 사진을 찍으면 훨씬 더 돈도 돼요. 근데 그런 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왜냐 순수한 사진을 한번 해볼 것이라고 각오했거든요. 1970년대에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 마산을 내려왔는데 그 때가 스물 넷, 다섯일때쯤에에요. 제가 월남에 가서 한 20개월 근무를 하고 돌아와서는 이제 사진을 그만둬야 되겠다 라고 마음먹고 실은 이곳에 왔는데 그때 마산 자유수출이 처음 생길 때였어요. 여기에 또 창원 공단도 들어서게 되니까 회사들이 저희들 같은 사진가들 그러니까 회사 전경을 찍고 회사 홍보를 하고 회사 제품을 찍어야 되는 전문 커머셜 포토그라퍼가 필요했던 거죠. 저는 그걸 공부했었고 그걸 했었던 사람인데다 이전에 대우백화점에 사진 작업을 했었고 또 서울에 있을 때는 롯데 일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경력을 살리니까 조금 빈곤은 하지만 견딜 수가 있었던 거죠. 한때는 제 손수 제 손으로 이거 카달로그 사진을 찍어보지 않은 회사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지방에는 사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한국 중국 심지어는 LG 같은 경우 옛날 금성사 였을때 때 서울에서 사진가가 못 내려오니까 뭐 필요하면 지금 들어와서 바로 찍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거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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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런데 좀 속물적인 질문을 드리면, 이런 작품사진은 그렇게 판매가 쉽지는 않을것 같은데.... 라상호 작품 자체는 판매가 어렵지만 그 작품들을 모아 책을 만들면 교보문고에 유통을 해요. 피사체가 세계 문화 유적이기 때문에 제가 만든 책들이 대한민국의 도서관 박물관에는 소장이 다 돼 있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서 다른 사람들이 물질적인 뭘 누릴 때, 저는 여행을 하고 또 작품을 남기는 거죠. 이게 말이 맞는지는 잘 몰라도, 사람은 어차피 살다가 이렇게 한 생을 가잖아요. 근데 모르면 몰라도 이 책은 나보다 몇 곱절 오래,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는 거죠.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누군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문화를 배우게 되겠죠. 이 5권의 책을 만드는 돈이 만만치는 않지만, 한 번 만들면 돈이 몇천만 원씩 들어가는 작업인데, 저는 이걸 다양한 분들 도움을 받아 할 수가 있었다는게... 저는 너무나 복이 참 많구나 고맙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기자 그렇군요. 그런 의지를 갖고 꾸준히 길을 나아가신다는게 대단해보입니다. 약간 작품 외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실례인데 올해 연세가 정확히 어떻게 되시죠? 저도 깜짝 놀란 게 전화 통화할 때 목소리도 그렇고, 지금 말씀을 나눠봐도 그렇고, 너무 여든이라는 연세가 안 믿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굉장히 젊으신 것 같아요. 혹시 뭐 비결이 따로 있나요? 라상호 저는 술도 할 줄을 모르고 담배를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사진찍으러 다니기만 했잖아요. 친구 만나는 일도 못 해 봤고 실은 저는 남들 잘하는 당구도 한 번 쳐보지도 못했어요. 탁구도 한 번 못 쳐 봤어요. 하지만 지금도, 예를 들어 2023년도에 촬영갈 때도 짊어지는 배낭이 한 20kg이 넘어요. 그걸 한 번 저는 짊어지면 하루 종일 걸어요.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빨리는 못 가지만 카메라 백을 짊어지고 그렇게 다니는 것을 평생을 해 왔죠. 그외에 유일하게 제가 할 줄 아는 것 중에 하나가 한 30년부터 자전거를 타왔어요 로드 자전거를. 산악 자전거는 아니고 그냥 로드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한 100km씩 타고 돌아오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런 게 다죠. 지금도 기억나는게, 2023년도에 와이너픽추라고, 마추픽추를 가면 저 뒤에 동물의 형태로 만들어진 곳이 있는데 그걸 보려면 다른 산을 1시간 반 정도 기어오르듯이 가야 돼요. 거기는 계단을 네 발을 기어오르듯이 1시간 반 정도? 그 이상 되는 거리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올라가게 돼요. 그걸 그때도 직접 했으니까... 아직은 지금도 제가 창동예술촌에 머물러 있는데 젊은 친구들, 저보다 젊은 50대, 60대하고 어디를 가면 지금도 걸음이 내가 더 빠르고 밥도 더 많이 잘 먹고 그래요 하하 내가 아직 더 젊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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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아 창동예술촌이면 마산 창동예술촌 말씀하시는거죠? 라작가님 지금 창동 갤러리 관장을 맡고 계시던데 지금 하고 계신 작업은 어떤 작업인가요? 라상호 지금 이제 이게 마지막 작업이고 정리를 다 했죠. 이제는 이게 마지막이어서 더 이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꿈이 있다고 그러면 원래 제가 올해에 남미의 히피로드를 한 100일을 갔다 오고 싶었었어요. 그때는 카메라나 짐을 아무것도 안 가져가고 조그만 카메라 하나 그냥 품속에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남미 히피 로드를 한 100일 정도 다녀오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것들을 한번 반추해 보려고 했어요. 남미 히피는 다른 쪽의 히피하고 다르거든요. 정말 낭만적이고 그 히피들이 머물렀던 곳을 보면 그렇게 노을이 아름다운데, 그렇게 숲속이 아름다운데, 어떤 사람은 조그맣게 텐트도 비닐로 집을 지어놓고 깨끗이 지어놓고 그런 곳이 있어요. 한 100일 동안 거기 머무르면서 히피들하고 같이 생활을 해보면 그동안에 못 배운 것, 내가 알지 못한 것, 내가 반성해야 될 것들을 그곳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이게 늦어져서 올해는 못 갔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다고 그러면 이제 뭐 2~3년 안에 한 번 남미를 나가서 카메라 한 대 가지고 조그만 가방만 짊어지고 가면 되니까. 그런데 중요한게 거기 가려면 뭔가 재주를 배워가야해요 거기서 사람들한테 적선을 받아가면서 살려면 하하. 그래서 악기를 하든 뭐 마술을 하든 뭐 하나 배워서 가가지고 한번 그런 생활을 싶어요. 그리고 그런 생활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그걸 갖고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제 보니 사진으로 다 못하는 게 있더라고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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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렇군요. 그것도 굉장히 독특해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 꿈들을 다 이루고 사시려면 가족들이나 친구들 만날 시간이 너무 없을것 같은데요? 라상호 저는 친구가 없어요. 거의 친구는 없죠. 얼마전 초등학교 친구가 전화왔는데 사실 예전에 저는 친구를 만날 생각도 안 하고 찾아가지도 않았었어요. 그 친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한다더라 이런 것만 전해듣는 정도인데 지금 그 친구들은 저한테 그래요. 너처럼 행복한 사람이 없다 라고 해요. 옛날 같으면 사실 제가 그 친구들을 부러워하죠.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고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명예도 갖고. 그 사람들이 부도 누리고 권력도 갖고 그럴 때 사진가들한테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비슷한 예로 제가 마산 처음 내려와서 합천에서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 성철 스님은 그냥 스님이었어요. 저는 그때 당시 사진을 찍으러 다녔으니까 그때 합천 행사를 가면 성철 스님은 그냥 스님이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큰 어른 스님이 되어서 한국을 움직이는 정신적인 지도자가 돼 있어요. 그런데 사진관은 예전 사진고나 그대로에요.그냥 사진사는 사진사일 뿐이에요. 도시에 살아서 알려지게 되면 대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경남 같은 지방에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하거나 해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죠. 그냥 그렇게 자기가 해야 하는 것에 행복해하는 것 말고는 없는 거죠. 기자 그렇게 세상의 가치도 멀리하고 작품만 매진하는 삶, 어쩌면 하나의 구도자 같은 삶이네요. 이쯤에서 궁금한게...어쩌면 이 칼럼을 보시는 분들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기도 할텐데...카메라는 어떤걸 쓰세요? 라상호 독일 콘탁스CONTAX 카레라인데 필름 카메라고요. 이게 파노라마 카메라라서 180도가 찍히는 카메라예요. 모델명이 645라고 120필름 6cm 들어가는 거예요. 얘는 6cm 4.5cm가 들어가는 필름을 써서 필름을 좀 여유가 있게 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카메라를 저는 많이 써요. 저 같은 경우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해요. 사진이 갖는 특성, 즉 원판 보존 원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디지털로 찍어서 막 여러 개 찍어서 생산된 것이 아니고 필름은 오로지 하나가 있으면 그 필름의 가치가 더 뛰어나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필름으로 찍는데 물론 디지털도 많이 써요. 왜냐면 필름이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너무나 어두울 때 장노출을 주게 되면 필름은 전부 노이즈가 생겨가지고 거칠어지고 무너지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필요한 것들은 디지털도 쓰기도 하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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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지만 말그대로 독자분들을 위해 한번 여쭤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오래 한 가지 일을 해 오신 분을 만나면 제가 꼭 물어보는게, 본인의 작품 세계, 작품활동을 해온 기간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표현한다면 ‘나의 작품 철학은 뭐다’ 라고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라상호 음...저는 사진 미학을 처음 저 스스로 습득을 할 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없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 중에서 나의 시각으로 내가 무엇을 봐야 하지, 어떤 색깔을 봐야 하지 어떤 빛을 봐야 하지 그 빛은 어떤 거리를 가지고 있지 이런 것들을 보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기다림의 미학이 사진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 기다리는 걸 누구보다 더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게 대답이 될까요? 허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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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물어봐도 미리 준비한듯 툭툭 자신의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온 라상호 작가는 마지막, 자신의 작품철학을 설명할 때만 잠시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뭔가 80년의 세월을 살면서 하나만을 해온 이에게 당신이 무엇을 한건가요? 라고 물었을때 나는 잘 기다렸어요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기다림이었을까. 다른 누군가, 혹은 세상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굳굳하게 걸어가는 걸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 기다림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시회에서 어쩌면 내가 본 것은 남미의 돌도, 그 긴 세월의 흔적도, 그리고 그것들을 담기위한 노고도 아닌, 그저 그 순수한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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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
표중규
2026.07.0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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