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사회

[부산경남 DNA] 예술이 머무른 자리에서 사람의 향기를 되짚다 2

표중규 입력 : 2025.11.10 10:11
조회수 : 729
[오피니언] 예술이 머무른 자리에서  사람의 향기를 되짚다 2

욕망과 투쟁에서 피워내는 잎 혹은 꽃
- 작가 최은희

매력 있는 예술 관련 콘텐츠를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지역에서 열리는 전시나 공연을 일일이 발굴하고 이메일과 자료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그중에 몇 개를 골라 또 큐레이터나 작가, 갤러리 대표와 통화해서 촬영가능여부, 인터뷰 시간을 맞추고 그래도 실제 현장에 가면 또 상황이 바뀌고....그런 번거롭고 지루한 과정들이 매주 수차례씩 반복되면, 어느 순간 아무리 거장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모두 그저 무덤덤한 업무의 한 꼭지로 스쳐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굉장히 독특한 피드백을 받았다.
여느 날처럼 뉴스 제작을 위해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카메라 기자 후배가 며칠전 촬영한 그림이 정말 예뻣다고, 뜬금없이 얘기를 꺼냈다. 누구 전시? 어떤 작품? 이냐고 언뜻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되묻는 내게 물감튜브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품이었는데 그 분위기가, 그저 예쁜 그림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밝아지고 기분 좋아지면서도 계속 기억에 남는 그림이라며, 인터뷰를 마친 작가에게 자기가 하나 구입하고 싶다고 하니, 벌써 이번 전시작품은 다 팔렸다고 미안해하더라면서 주말에 아내와 함께 다시 가서 봤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듣자 언뜻 바로 그 주에 해운대 프랑스문화원에 의뢰했던 전시회가 떠올랐고 아 그런 이미지의 작품이었지 라는 기억이 언뜻 살아났다. 최은희 작가의 개인전인 <나를 피워내고, 너를 물들이고>에 대한 이례적인 찬사에 나 역시 호기심이 생겨 곧바로 주말, 작가가 없을만한 시간대를 틈 타 천천히, 조용히 전시장을 찾았다. 정확히 그 촬영기자가 말한 감상이 뭔지 와 닿았지만, 그보다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팽팽한 긴장감, 아슬아슬한 불안감은 좀 낯설고도 익숙한, 어떤 날것의 생동감으로 더 깊게 와 닿았다. 그런 기억과 함께 만난 작업실의 최은희 작가는 기대했던 이야기들과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들을 당연한 삶의 양면성인 것처럼 망설임없이 풀어냈다.

기자 : 전시회 작품을 보면 물감튜브에서 피어나는 꽃이나 풀이 많은데 어떤 인터뷰들을 보면 최작가님은 그걸 물감주머니라고 굳이 표현하셨더라고요. 혹시 어떤 다른 의미가 있나요?

최은희 작가 (이하 작가) : 제 작업 안의 물감 튜브는 원래 물감 주머니에서 시작하는데 이 물감 주머니는 온전히 제 상상에서 출발해요. 식물의 뿌리에는 숨겨진 물감 주머니가 있어서 어떤 씨앗을 뿌리면 그 빨간색 물감주머니에서 빨간색 꽃이 피어나나 봐 라는거죠. 어릴 때 제가 하던 상상인데 뿌리가 있으면 뿌리의 마지막에 물감 주머니가 있고 이 물감을 빨아들여서 빨간 꽃이 피는 거겠지. 뿌리에 물감 주머니가 달려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 왔던거죠. 그런데 알고 보면 시금치는 사실 빨간색 씨앗이고 갓김치를 만드는 갓은 파란색 씨앗이에요. 그런데 여러 색깔의 씨를 뿌렸는데도 다 똑같이 초록색에 입이 나는 게 참 신기하지 않나요? 특히 꽃은 대부분의 씨앗이 다 갈색류, 어두운 색류가 많아요. 요즘은 모종 자체를 심는 게 더 많은데 씨앗부터 피워내기가 힘들어서 사실 모종을 심는 거거든요. 농사를 하면서 많이들 하는 게 씨앗부터 해서 좋은 결과물을 얻기 힘들다 하지만 씨앗부터 키우는 게 사실 진짜예요. 저는 그 씨앗부터 키우는 그런 꽃들이나 작물들을 보면서 씨앗이 처음에는 어두운 색깔이다가 뿌리를 내리고나면 초록색 잎을 피우고 노란색 꽃을 피우는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 사실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어느 지점에서 생겨난 물감 주머니 때문이 아닐까 그냥 그렇게 상상을 하면서 물감주머니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 거죠.

기자 : 그런데 굳이 물감주머니가 아니라 물감튜브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실제로 나중에는 물감주머니가 아니라 진짜 물감튜브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걸로 옮겨갔잖아요?

작가 : 그때 그 물감 주머니 자체는 저한테 ‘제가 가지지 못했지만 제 속에 갖추고 있는, 그런 재능’을 뜻하는 개념이에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저는 저 자신이 ‘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저는 지금도 제가 재능이 없는데 결국 버티고, 미술이 하고 싶기 때문에 남아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 아...작가가 스스로를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니까 제가 뭐라고 대화를 이어가야할지 당황스럽네요. 그럼 혹시 꽃이 없는, 무화과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인가요?

작가 : 음...정확히 저는 제가 초록색 물감에 초록색 이파리만 피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초록색 물감을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작품 활동 초반에 그린건 대부분 다 초록색 물감으로 그린 이파리들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약간 좀, 그 지점을 뛰어넘었나 봐요 요즘은 그림에서 특별히 초록색 물감이 나오지를 않는데 제 그림을 처음부터 쭉 보신 분들은 ‘요즘은 왜 초록색 물감이 없어요?’ 이 얘기를 많이 하시거든요. 왜냐하면 초록색 물감이 바로 ‘나’니까, 초록색 물감에서 초록색 잎만 피워낼 수 있는 게 나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은 초록색 물감이니까 정작 꽃은 못 피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제가 그런 지점에 부딪칠 때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좋겠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나도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재능이 있었으면... 그런데 그 재능이 계속 저한테는 빨간 꽃을 피우고 노란 꽃을 피우는, 어떤 뿌리들이 어느 곳엔가 분명히 숨겨두고 있는, 그런 물감 주머니들 같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작가들을 보면 쟤는 나처럼 까만 씨앗 심었는데도 빨간 꽃을 피우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한테도 그런 물감 주머니가 있었으면, 내가 그렇게 꽃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작품들을 그리게 된 거에요.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붓이랑 물감 튜브가 연결된 거였어요. 그래서 예전 작업들 보면 붓에서 이렇게 나온다든지, 식물의 붓에서 물감이 이렇게 쭉쭉쭉 떨어지는 작업들이 있었고 이제 그게 물감 튜브로 바뀌게 된 거죠.




기자 : 왜 본인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그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작가 : 그냥 쉽게 말하면 만약 누군가 ‘내가 여기에 이 꽃을 그려야지’ 하면 감수성 넘치는, 무언가에 영감을 가진 작가들은 그리면서 무언가를 해 나가다보면 그 안에서 꽃을 피워내거든요. 저는 그게 아니라 내가 여기에 물감 튜브를 그려야지 고 스케치를 해 두고 여기도 뭔가를 띄우고 여기도 간격이 같아야 되고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꽃이어야 되는, 그런 형태의 강박이 너무 심한 거예요. 근데 이 강박은 사실 막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언제든지 그릴 수 없어서 오는 강박이에요. 저는 제가 원래의 루틴대로 앉아서 내가 원래 사용하던 물감과 내가 원래 그리던 그런 재료들 그다음에 나의 환경 안에 있어야 내의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더라고요. 근데 젊은 작가들, 제 제자뻘 되는 작가들 가운데서는 정말 캠핑하듯이 스케치북, 야외에 나가서 할 수 있는 도구를 들고 가서 그날 하루, 모네처럼 앉아서 그날 하루에 시간별 하늘을 그리고 오고 산을 그리면서 작품을 내놓는 거에요. 예를 들어 장건율 작가라고 있는데 걔를 보면서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저렇게 재능이 많은 애들이 많았지’ 라는 생각을 또 그때 한 번 했거든요. 제가 작년에 그 작가의 개인전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까지 재능이 없으니 늘 내가 뭔가 이렇게 상황을 만들고 또 그 상황 안에서 노력을 해야 겨우 이 결과물을 뽑아내는데, 저 작가들은 땅바닥에 앉아서 어느 공간이든 자유롭게 막 분출해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저는 그렇게 못하는 작가더라고요.

이런 대화를 하면서 좀 아이러니했던건 강박을 이야기하는 최작가의 표정은 강박에 묶여있다기보다 아 내가 강박이 있어 라고 하면서 그 강박 자체를 하나의 객관적인 존재로 물화(物化)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강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미워하지도 않고 일부러 내보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부인하지도 않는, 그저 언제든 함께 내 곁에 있는 나의 수많은 페르소나 가운데 하나로, 담담하게 손잡고 함께 가는 동반자로 이야기하는 그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작가 : 저는 하나도 틀어지면 안 되는 그런 강박들도 좀 있어서 아시다시피 오와 열이 정확하게 맞아야 하고, 그 오와 열을 맞추는데 시간이 또 들어요. 그러니까 다른 작가들 시간 딱 두 배가 드는거죠. 간격 맞추고 있어야 되고 높이도 맞춰야 되고 뭐 이러다 보니까 저는 ‘아 내가 막 이렇게 막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나 재능이 없어서 이렇게 강박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고 그러니까 나 스스로는 꽃을 피우는 게 아닌, 초록색 흔한 잎만 피워내는 그런 식물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작업을 하게 된 거죠.

기자 : 하지만 요즘 그림 속에서는 초록색 잎이 아니라 다양한 꽃이나 식물, 혹은 채소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던데요? 이제 그런 강박을 벗어난건가요?

작가 : 아직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요. 지금 제가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이제 곧 아트페어에 보낼 작업들인데 아트페어에서 좋아하시는 꽃들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희 갤러리 대표님은 꽃 좀 그려라, 제발 이상한 식물 좀 그려오지 마라고 하시거든요. 실제로 제가 그리는 작품들 중에 진짜 제가 밭에서 농사짓거나 직점 보고 그린 작물들은 사실 잘 안 팔려요. 어머님들이랑 얘기하다 이거 갓인데요 이러면 아이고 그 갓김치 갓이네 하고 그냥 안 사시거든요. 그런데 시카고나 외국에서는 그런 작품들이 다 팔려요. 그래서 지금은 아트페어용이어서 조금 더 꽃이 많은데 이제는 제가 예전에 하던, 제가 갇히는 작업들이 좀 갑갑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깨내려는 작업을 많이 하는거죠. 예를 들어 강박에 갇힌 나의 모습을 직시하기 위해 만들었던 작품이 현재까지 많이 한, 물감 주머니에서 나오는 꽃 피는 식물들이었다면 이제 이걸 훼손시키는 시도 자체가 ‘지금까지의 나를 똑바로 봤으니까 기존의 나를 어떻게 깨보고 변화해 보자는 그런 시도라고 생각을 해주시면 될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깨려고 하고는 있는데 사실 그다음에 뭔가 자유롭게 움직여야 되는데 저는 사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까지도 이미 정해놨어요. 반드시 여기에 하나가 있고 그다음 물감이 들어와서 뒤집어지자 뭐 이런 식으로 배치를 사실 자유롭게 움직인 게 아니죠. 그래서 지금의 프레임을 깨면 그 새로워진 프레임 안에서 내가 자유로워져야한다, 그게 남아있는 저의 몫인 것 같거든요. 제가 이제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달렸는데 그건 이제 또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고요. 이런 고민 속에 물감 자체를 없애보자 라고 생각해서 물감튜브 자체를 없애고 꽃에서 물감들이 그냥 흘러내리는 작업들을 이번에 아트 부산, 시카고 이런 전시회 때 다 같이 선보였죠. 그게 올해 신작이에요.




기자 : 아 시카고 아트페어 다녀오신게 얼마 전이라고 하셨죠? 거기서는 반응이 어땟나요?

작가 : 제 그림이 시카고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첫날, 제일 처음으로 저희 부스에서 스타트를 끊었는데 그걸 사신 분이 VIP 오프닝 때 온 시카고 미술관 펀드 헤드 디렉터였어요. 세계 최고수준의 미술관들은 후원회에서 후원금을 받아서 모든 걸 운영하는데 그 후원회의 대장인 거예요. 거기 계신 분이 와서 제 걸 사면서 율무, 염주 얘기를 듣고 사 가셨는데 그 작품이 예쁘긴 예뻣거든요. 그건 사실 저도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저는 너무 기쁘긴한데 왜 제 작업이냐고 사실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그 디렉터가 오늘 들어와서 딱 한 작업 사 갔는데 네 걸 사 간다. 여기 와서 너를 처음 알았다고 하는데 왜 내 거였지 라고 물으니까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있대요. 그래 서양 사람이 나를 보고 계속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길래 뭐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날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제가 가는 날까지 들은 말이 그거예요. 어디서 동양의 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동양의 미, 뭐 제가 그리는 식물도 동양적이다. 라인도 동양적이다. 재료도 동양적이다 라고 계속 그래서 ‘아니다 이거 아크릴이다 이거 캔버스도 너네가 쓰는 린넨 똑같은 거야 너네 린넨이 더 좋아 나는 한국에 살아서 한국 린넨 쓰는 거야’ 라고 하는데도 아니래요. 자꾸 제 작품보고 동양적이래. 그 동양적인 미에 다 사람들이 반한거래요. 사실 그때 들고 간 작품들이 깻잎, 갓, 무 같은 건데 걔들은 무에 무청도 저희처럼 안 생겼대요. 그런 모든 것들, 그냥 모든 게 동양적이어서 너무 매력적인 거래요 그 분들한테는. 제가 그린 그런 식물들은 사실 제가 직접 농사를 짓고 직접 키우고 있거든요. 물론 그게 아주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우리가 우리 주변이나 우리 삶의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소재와 상상을 가지고 그렸는데, 그게 이제 더 발전이 되면서 해외 시장에 가니까 그런, 조금 다른 형태의 반응이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기자 : 최작가는 부산예고 다니면서부터 계속 그림 그려오셨잖아요. 그동안 지금의 이런 화풍의 작업을 계속 발전시켜 오신건가요?

작가 : 아 사실 정확히 그림 작업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2019년부터에요. 부산대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석사는 미술교육, 박사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작업보다는 사실 교단에서 강의에 전념해온 시간이 10년이 넘거든요. 교단에 서면서 박사과정을 계속해왔는데 미술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건 사실 박사 논문을 다 쓴 다음이었어요. 그즈음 박사를, 제가 6년 정도 하고 있었거든요. 박사를 6년 정도 하면서 박사 논문을 다 쓰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가 목표였어요. 그때 너무 제가 힘들어하니까 박사논문 쓰지 말라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할 정도였죠., 그런데 제가 솔직히 저 스스로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도 하고, 좀 원래 어릴 때부터 환경 자체가 저를 좀 많이 쪼으는 상황 아래에서 크다 보니까, 지도 교수님이나 부모님이 박사를 시작했는데 박사를 졸업 안 하면 안 된다 라고 엄청 많이 간섭하셨어요. 사실 박사를 수료만 하는 사람 많거든요. 그런데 제 지도 교수님은 내가 박사를 안 받으면 자신의 인생에 오점이 되니까, 꼭 받아야한다고 너무 압박을 주셨어요. 집에서도 그 비싼 박사학위 과정 학비를 다 대줬는데 꼭 받아야한다고 하셨죠. 그리고 사실 이건 비밀인데 당시에 동서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서는 제 앞에 방정아 선생님이 학위를 받으셨었거든요. 제가 들어갈 때 방정아 선생님이 끝났을 때 딱 그 시점이었는데 저는 약간, 작가로서 방정아 쌤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방정아 쌤이 그 박사학위를 받은 것 때문에 더 룰루랄라, 나도 꼭 받아야지 하면서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그정도 생각으로 들어가서 그랬을까요 딱히 박사에 대한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박사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고역인 거예요. 그래서 논문만 쓰는 2년 동안 내가 불행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이걸 끝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가 같이 붙는 거죠. 내가 지금 너무 불행하니까 이건 끝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그런데 끝내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게 그래서 뭐니, 뭐든 네 마음대로 해라 라고... 지도 교수님이나 부모님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입을 모아 그러셨어요. 그때 제게 든 생각이 아 나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의 하고 싶은 일인 것 같아 였어요. 사실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니까 이제 교수라는 직업, 커리어도 있고 작업에서 손을 뗀지도 좀 되고 그러니까 전부 가볍게 작업해라 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뭐 제가 작업을 전혀 안 하던 것도 아니고...시각 디자인으로 박사를 따면서 1년 한 학기에 두 번씩 전시를 해야 했어요. 단체전을 매번 하고 있는데, 미술작업도 그렇게 하면 되지 너무 다들 쉽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이렇게까지 전업적으로 미술작업을 할 줄은 몰랐던 거죠. 지금은 다들 그때 그러더니 진짜 이렇게 하는구나, 난 네가 진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 말을 진짜 많이 하시거든요 하하. 그게 사실 계기였어요.

기자 :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저도 석*박사 과정에만 11년이 걸려서...그 어려운 과정에 100% 공감합니다. 하하. 그럼 그 이후 7년 동안의 작품활동을 통해서 이제 린넨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리는 작품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작가 만의 스타일로 인정을 받은 것 같네요?

작가 : 음...그렇긴 한데, 그 부분에서 역설적으로 이제 고민을 시작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이 작업으로 인지도가 꽤 많이 쌓여서 아트페어에서 이제 팔리기 시작했고 꽤 많이 ‘린넨으로 물감 튜브 그리시는 작가님’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데, 제가 몇 년간 쌓아 올린 저만의 경력인데 이걸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시점이 왔나 라는 고민이 들어요. 뭐 아직은 못 버리겠더라고요. 이걸 버리는 순간이 오려면 좀 더 해야 될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제가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그러니까 교수를 맡은 지가 이제 12년 차거든요. 10년을 향해 달려갈 때, 8년 차쯤에 정말 미련도 없이 놓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한 5, 6년째까지는 미련이 많았어요. 내가 어떻게 해서 학교에 여기까지 이렇게 왔는데... 이런 생각도 많았고 학교라는 이 집단 안에서 가지는 명예도 좀 가져보고 싶었거든요.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겸임 초빙 ...너무 그 명예도 좀 쥐어보고 싶었고 그랬는데, 딱 어느 지점이 저한테 제 스스로가 할 만큼 다 한 어느 지점이 오니까 너무 가볍게 버릴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저는 자동 계약이라 컴퓨터에 들어가서 클릭만 하면 자동으로 교수로 재계약이 되는데 올해, 계약 안 하고 내년에는 시간 강사 한다고 학교에 말씀을 드렸거든요. 교수직에 더 이상 미련도 없는데 자꾸 그림을 그려야 할 내 시간을 뺏기는 거예요. 이제 학교일이나 다른 업무로 시간과 열정을 뺏기는 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거에요. 근데 예전에 한 몇 년 전 같으면 이렇게 결단을 못 내렸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작업, 린넨에 굉장히 공들여 하는 이 작업들도 마찬가지에요. 최근 3년 정도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데, 바꿔야한다는 고민과 갈등은 많은데 아직은 그걸 못 버리겠더라고요. 이걸로 그래도 뭔가 사람들한테 일단은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본질적인 방법을 바꾸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기자 : 그럼 지금은 기존의 물감튜브 작업과 동시에 그 기존의 스타일을 바꾸기 위한 변신을 함께 시도하고 계신건가요?

작가 : 네 지금은 일단 두 가지 방향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우선은 제가 기장군의 한 밭, 야외에 제 작품을 설치하는 전시회를 지금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작가들이랑 같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 반 정도, 직접 밭에서 작물을 키워왔거든요. 지난해는 좀 규모가 작았는데 올해는 아예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하반기에는 배추를 심어서 김장까지 할 계획이에요. 작가들끼리 서로 물 당번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물을 주고 비닐멀칭도 절대 하지 않고 약도 쓰지 않고 모든 걸 친환경으로 키우는 프로젝트에요. 그런데 올해는 그 옆에 제 작품을 직접 전시하고 있어요. 이번 기획은 부산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가능해진 건데, 전제 조건이 밭에다가 그림을 심겠다. 내가 심는 행위를 했는데 내 작업이 다 자연물이라 밭에 심어야겠다. 밭에 그림을 심고 이 프레임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물감들이 그 땅 밑으로 쏟아지는지 확인하고 싶다 라는게 기획의도에요. 그게 신선하게 다가갔는지 선정이 된 거죠. 대부분의 작가들이 어쨌든 캔버스든 뭐든 어떤 프레임에서 작업을 하잖아요. 그거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데, 프레임을 벗어나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어느 순간, 제 그림이 미술의 정통성 안에, 너무 틀에 박힌 전형적인 회화, 고지식한 그림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아 이거 작정하고 한번 훼손시켜봐야겠다. 이걸 의도적으로 훼손시켜서, 그 훼손시킨 작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밭에서 나온 작물을 대상으로 그리고 그 그림을 다시 밭에, 야외 설치를 하는 회귀(回歸)를 기획한거죠. 실제로 작품을 밭에 설치하고 그 설치가 다 된 걸 공유한다고 사진을 보내니까 모두의 질문이 그거였어요. “회화 작품을 저렇게 두면 되나요?” 하하. 모두가 다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이 제일 많았는데 “제가 훼손시키는 게 목표입니다”라고 설명했죠. 그래서 한달 동안 전시가 끝날 때까지 밭에 놔둔 다음에 수거를 하면, 그 안에 분명히 제가 생각하는 자연의 무언가, 그 자연의 내용들이 묻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거 자체를 제 작품세계랑 같이 융화시켜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그 결과물이 나오면 이번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거죠.
또 동시에 작품의 크기에서도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요. 사실 8호짜리 작업을 제가 올해 2월부터 시작해서 5월까지 정확하게 35점을 그렸어요. 거의 뭐 저한테는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수거든요.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에 거의 학교를 갔다가 매일 작업실로 와서 그림만 그려야 나올 수 있는 개수였거든요. 근데 8호짜리 30점이면 300호가 넘어갑니다. 붙이면 400호 정도의 크기예요. 그러니까 그동안 쉬지 않고 8호짜리부터 30호짜리, 50호짜리 작업을 계속해 왔는데 이제 그게 아니라 통으로 큰 작업, 100호, 200호, 300호짜리 대형작업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발전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맨날 똑같은 걸 그리고 있는 작가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게 제 목표에요. 그래서 다들 이제 물감 튜브 잘 팔리니까 물감 튜브만 그리면 되지 않아? 라고 하는데 그런 작가는 되지 않겠다는 게 제 변하지 않는 다짐이에요. 내가 갤러리 작업만 하고 상업 작가가 되어도, 결국에 미술관에 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단한 미술관 작가가 하지 못해도 ‘무조건 똑같은 것만 그리고 있는 작가는 절대 되지 말자‘가 제 작업 시작할 때 목표였어요. 매년 새로운 작업을, 조금 더 다른 세계관으로 뻗어나가서 무조건 다른 작업 하나는 해야 한다. 매년 다른 또 물감 주머니에서 다른 게 태어나서 다른 작업을 꼭 해야 한다가 흔들리지 않는 제 유일한 신념입니다.

최은희 작가가 그리는 튤립은 작가가 직접 구근을 심고 물을 주고 겨울을 날 때까지 애정을 쏟아 부어도, 때때로 말라죽고 병들어죽고 어렵게 피어난 뒤에도 고작 한철을 지나지 못하고 시들어 죽는, 그런 가냘픈 식물이다. 하지만 따스한 질감의 린넨 위로 붓에서, 물감주머니에서, 물감튜브에서, 그리고 이제는 물감 그 자체에서 피어나는 튤립은 작가가 숨기지 않는 ‘재능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에 뿌리를 둔 투쟁’을 통해 좀처럼 바래지않는 단단한 행위자로 거듭난다. 그런 지난한 노력 끝에 자연에서 화폭으로 옮겨낸 튤립을 이제 다시 화폭 채로 자연 속에 돌려놓는 실험, 그 의도적인 훼손을 통해 작가는 또 어떤 새로운 튤립을 꿈꾸는 것일까?


KNN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부산 051-850-9000
경남 055-283-0505
▷ 이메일 jebo@knn.co.kr
▷ knn 홈페이지/앱 접속, 시청자 제보 누르기
▷ 카카오톡 친구찾기 @knn
저작권자 © 부산경남대표방송 KN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