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오래된 미래] 용두산공원, 일제강점기부터 피란수도까지…부산 역사를 품은 언덕
이아영
입력 : 2026.07.08 14:59
조회수 :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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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신사에서 시민공원으로…시대 따라 달라진 용두산
피란민 판자촌과 용두산 대화재…전쟁의 흔적 간직한 공간
부산타워와 추억의 명소…세대를 잇는 시민들의 쉼터
1930년대 일제는 용두산에 신사를 세우고 국폐소사로 승격해 관공서와 전차 이용객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일본인들이 신사에 모였고, 이를 본 한 시민이 신사를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원 소장은 당시 시민들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울분을 품고 있었으며, 신사가 불탔다는 소식에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용두산 일대에 판자촌을 이루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1953~1954년 부산에 근무했던 미군 클리포드 씨는 당시 용두산 주변 판자촌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사진에는 미화당 뒤편까지 빼곡히 들어선 판자촌의 모습이 담겨 당시 부산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두산 곳곳에는 대화재 당시 뜨거운 열과 물로 인해 표면이 갈라진 돌도 남아 전쟁과 화재의 흔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용두산은 시민들의 생활과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됐습니다.
당시 학교는 한 학급에 약 60명이 공부할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고, 중부 지역 인구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후 용두산공원은 부산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부산타워는 남포동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시민들이 찾는 명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20m 높이 전망대로 오르는 경험은 당시 시민들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여름이면 가족들이 도시락을 들고 공원을 찾아 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공간들이 여행객들의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관광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용두산공원은 일제강점기와 피란수도 부산의 기억,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이 함께 쌓인 공간으로 부산의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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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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