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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PD
 이아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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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김철홍 교감 “행복은 삶의 목적 아닌 생존을 위한 감정”

거제용소초등학교 김철홍 교감이 KNN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행복의 기원’을 소개했습니다. 김 교감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저자가 행복을 철학이 아닌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점이 흥미로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행복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돕기 위해 진화한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김 교감은 행복을 가치 있는 삶으로 바라보는 인식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컸다고 소개했습니다. 반면 저자는 인간을 진화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며 행복을 새롭게 해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은 행복을 즐거움과 불쾌함처럼 인간의 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경험으로 바라봅니다. 또 행복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아야 다시 새로운 행복을 찾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김 교감은 강한 행복 한 번보다 작은 행복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즐거움과 불쾌함이 각각 푸른 신호와 빨간 신호처럼 작용하듯 행복도 인간의 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신호로 바라봅니다. 김 교감은 책에서 소개한 ‘피카소 효과’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과 행동 역시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금전적 보상을 받은 집단보다 아름다운 여성과 해변을 걷는 장면을 상상한 집단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는 실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행동 역시 생존과 진화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감은 로또 당첨이나 승진 같은 큰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책 읽기와 여행, 친구와의 대화처럼 작은 행복을 일상 속에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작은 행복을 일상에서 느끼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그램은 행복을 찾는 방법보다 행복이 왜 존재하는지를 돌아보며 주변 사람들과 작은 행복을 함께 나누는 삶을 제안했습니다.
2026.07.20

[오래된 미래] 용두산공원, 일제강점기부터 피란수도까지…부산 역사를 품은 언덕

용두산공원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쳐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시민공원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일제는 용두산에 신사를 세우고 국폐소사로 승격해 관공서와 전차 이용객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일본인들이 신사에 모였고, 이를 본 한 시민이 신사를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원 소장은 당시 시민들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울분을 품고 있었으며, 신사가 불탔다는 소식에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용두산 일대에 판자촌을 이루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1953~1954년 부산에 근무했던 미군 클리포드 씨는 당시 용두산 주변 판자촌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사진에는 미화당 뒤편까지 빼곡히 들어선 판자촌의 모습이 담겨 당시 부산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두산 곳곳에는 대화재 당시 뜨거운 열과 물로 인해 표면이 갈라진 돌도 남아 전쟁과 화재의 흔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용두산은 시민들의 생활과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됐습니다. 당시 학교는 한 학급에 약 60명이 공부할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고, 중부 지역 인구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후 용두산공원은 부산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부산타워는 남포동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시민들이 찾는 명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20m 높이 전망대로 오르는 경험은 당시 시민들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여름이면 가족들이 도시락을 들고 공원을 찾아 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공간들이 여행객들의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관광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용두산공원은 일제강점기와 피란수도 부산의 기억,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이 함께 쌓인 공간으로 부산의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2026.07.08

[오래된 미래] 부평깡통시장, 외제골목에서 부산 대표 먹거리 명소로

부산 부평깡통시장이 한국전쟁 이후 외제품 시장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 명소로 변화해 온 역사를 소개했습니다. 부평깡통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 1호 상설시장으로, 과거에는 잡화와 곡물, 채소 등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제시장과 미군 부대를 통해 유입된 통조림과 각종 외제품이 거래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원 소장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가져온 미군 개인 전투식량(C-ration) 등이 판매되면서 부평시장 일대가 '깡통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통조림을 비롯한 외제품을 구입하고, 빈 깡통은 지붕과 생활용품 등으로 활용했습니다. 밀수품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물건을 창고에 숨겨두었다가 손님이 찾으면 꺼내 판매해 '도깨비시장'이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이후 시장은 외제품 중심에서 먹거리 중심으로 변화를 이어갔습니다. 피란 시절 허기를 달래던 비빔당면을 비롯해 어묵과 돼지국밥 등 부산의 역사를 담은 음식들이 시장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부평깡통시장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비빔당면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역사 있는 음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시장에는 떡의 식감을 살린 빵 등 새로운 먹거리를 선보이는 청년 상인들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야시장인 부평깡통야시장이 문을 열며 세계 각국의 음식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시장은 음식 중복을 최소화하고 위생 관리 원칙을 지키며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부평깡통시장이 손님들과 함께 성장한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시장과 함께 발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외국인 방문객이 크게 늘어난 만큼 세계적인 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부평깡통시장은 외제골목의 역사를 간직한 채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 명소로 새로운 도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6.07.02

[행복한 책읽기] 이상훈 회장 “체호프 단편선, SNS 시대에도 유효한 삶의 메시지”

부산광역시 수의사회 이상훈 회장이 KNN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고전 문학인 ‘체호프 단편선’을 소개했습니다. 이 회장은 SNS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인 만큼 타인의 반응과 악성 댓글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체호프 단편선에 수록된 ‘관리의 죽음’을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같은 책에 실린 ‘내기’ 역시 색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며 함께 읽어보길 권했습니다. 책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으며, ‘관리의 죽음’은 하급 관리 체르바코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체르바코프는 오페라 극장에서 재채기를 하다 앞자리에 앉은 장군에게 침이 튀자 계속해서 사과를 이어갑니다. 장군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체르바코프는 스스로 불안을 키우며 끝내 극단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이 회장은 작품이 당시 러시아 사회의 권위주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키운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SNS 활동이 활발한 오늘날에도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흔들리면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여전히 의미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SNS 활동을 많이 하는 만큼 악성 댓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지키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체호프 단편선 속 인물들이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으며, 문학은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을 전했습니다.
2026.06.29

[오래된 미래] 영도 옛 도선터 물양장, 피란민의 삶과 부산항의 기억을 품다

한국전쟁 이후 영도 옛 도선터 물양장이 피란민들의 삶과 부산항 발전의 역사를 품은 공간으로 소개됐습니다. 영도 일대에는 전쟁을 피해 내려온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천막과 임시 거처를 마련해 생활했습니다. 피란민들은 영도 선창가와 수용소 등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고, 서로 의지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주민들은 원조 물자로 들어온 쌀을 주워 죽을 끓여 먹고 집집마다 음식을 구하며 힘겨운 시절을 버텼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영도 물양장은 보세창고가 밀집한 부산항의 주요 물류 거점이었습니다. 컨테이너가 없던 시절, 하역 작업은 대부분 인력에 의존해 이뤄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바지선에서 화물을 내려 보세창고까지 직접 운반하며 부산항 물류를 떠받쳤습니다. 영도다리와 영도경찰서 일대는 매립사업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주민들은 과거 대평동과 봉래동 일대 상당수가 바다였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영도에는 부산 최초의 슈퍼마켓으로 알려진 럭키슈퍼체인이 들어서며 당시 활기 있던 상권의 모습도 전해졌습니다. 물양장 주변은 선박과 항만 관련 물품이 오가던 공간으로 부산항 성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창고들은 당시 항만 물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창고를 활용한 문화공간 조성 작업에 참여한 관계자는 세월이 남긴 공간의 질감과 분위기가 특별한 매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과거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프로그램은 영도 옛 도선터 물양장이 피란민의 삶과 부산항 산업화의 기억을 간직한 지역유산이라고 조명했습니다.
2026.06.23

[오래된 미래] 낙동강 재첩국, 가난한 시절을 건너게 한 부산의 맛

부산 강서구 덕두마을과 낙동강 하구에서 이어져 온 재첩국의 역사와 의미가 소개됐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낙동강 하구 덕두마을에서는 재첩잡이가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주민들은 봄이면 재첩을 잡아 부산 전역에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홍분연 씨와 양순옥 씨는 당시 낙동강에 재첩이 풍부했고 재첩국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책임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재첩은 국과 찜, 전 등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되며 낙동강을 대표하는 향토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덕두마을에서 2대째 재첩잡이를 해온 김순철·김순도 형제는 전후 어려웠던 시절 재첩이 중요한 먹거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재첩국은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자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이었습니다. 과거 낙동강 하구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재첩이 풍부하게 서식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준공된 이후 물의 순환이 달라지면서 재첩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김순철 씨는 하굿둑 건설 이후 재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진원 낙동강하구에코센터장은 하굿둑 건설 전 연간 1만 톤 이상 생산되던 재첩이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낙동강에서는 재첩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삼락재첩거리 일대에서는 일부 음식점들이 재첩국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산 재첩이 거의 사라지면서 상당수 업소는 수입산 재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하굿둑 개방 등을 통해 언젠가 낙동강 재첩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낙동강이 남긴 재첩국의 추억과 부산 사람들의 삶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26.06.18

[테마스페셜] 청년농부들, 스마트팜으로 미래를 심다

아산과 논산, 홍성, 당진 등 충남 곳곳에서 청년농업인들이 스마트팜을 기반으로 새로운 농업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청년농업인 스마트팜 사관학교는 농업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실습과 창업 기회를 제공하며 스마트농업 전문인력 양성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간호사 출신 김선하 씨는 스마트팜 사관학교에서 유럽형 쌈채소 재배를 배우며 귀농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동제어 시스템을 활용한 수직형 스마트팜에서 쌈채소를 생산하며 로컬푸드 직매장 등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간호사 경험을 바탕으로 농업과 돌봄을 결합한 케어팜 운영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논산의 안경수 씨는 스마트팜 사관학교 수료 후 독자적인 스마트팜을 구축해 유러피안 샐러드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에어로포닉스 기술을 도입한 안 씨는 스마트팜 운영 이후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청년농업인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육묘와 유통, 판매를 함께하는 상생 모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성의 박종빈 씨는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농촌에 정착해 화훼 스마트팜에 도전했습니다. 스마트팜 온실에서 다양한 꽃을 재배하며 새로운 재배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당진의 장은하 씨는 스마트팜 딸기농장을 운영하며 체험농장과 온라인 판매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농업 교육과 마케팅 교육에 꾸준히 참여하며 농업 경쟁력 향상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청년농업인들은 스마트팜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농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들은 도전과 협력을 바탕으로 농업의 미래를 열어가며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2026.06.15

[테마스페셜] 웅치 전투, 전라도를 지켜낸 조선의 마지막 방어선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의병들이 웅치 전투에서 왜군의 전라도 진격을 막아낸 과정이 소개됐습니다. 왜군은 부산포와 동래성을 함락한 뒤 경상도 일대를 장악하며 전라도 방면으로 진격했습니다. 조선 조정에서는 왜의 침략 가능성을 두고 상반된 의견이 제기됐지만 결국 전쟁은 현실이 됐습니다. 전라도 진출을 노린 왜군은 금산과 진안 일대까지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조선군은 전주로 향하는 길목인 웅치와 이치를 핵심 방어선으로 판단했습니다. 지휘관들은 병력 열세 속에서도 두 길목을 모두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웅치는 좁고 경사진 지형으로 적은 병력으로도 방어에 유리한 곳으로 평가됐습니다. 조선군과 의병들은 웅치에 목책을 설치하고 방어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황박이 이끄는 의병들도 합류해 전력 보강에 힘을 보탰습니다. 왜군은 조총을 앞세워 공격에 나섰고, 조선군은 활과 지형을 활용해 맞섰습니다. 전투 초반 조총 위력으로 방어선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군과 의병들은 끝까지 항전하며 왜군의 진격을 지연시켰습니다. 전투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발생했지만, 병사들은 전주와 전라도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조선군은 기습 공격을 감행하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결국 왜군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웅치 전투는 수많은 희생 속에서도 전주와 전라도를 지켜낸 역사적 전투로 소개됐습니다.
2026.06.09

[행복한 책읽기] ‘제비야, 왜 사람이 좋아?’…20년 관찰로 풀어낸 공존의 이야기

제비를 20여 년간 관찰해 온 정다미 박사의 연구 여정을 담은 『제비야, 왜 사람이 좋아?』는 제비와 인간의 특별한 공존 관계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전하는 책입니다. KNN ‘행복한 책읽기’에 출연한 마산신월초등학교 정대수 교장은 과거 연수 특강에서 만난 ‘새 덕후’ 정다미 강사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소개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책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파고들면 결국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른바 ‘덕업일치’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또한 제비의 생활습성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도 전합니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문제 해결의 방식이 첨단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아울러 자연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더 나은 삶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끝으로 정 교장은 “자기 마음에 제비 둥지 하나씩 품으면, 비로소 제비가 보이기 시작한다”며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어른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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