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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조선통신사 1부] 조선통신사 행렬도

노경민 입력 : 2026.02.26 07:53
조회수 : 92
<앵커>
임진왜란 이후, 전쟁의 상처를 딛고 두 나라를 다시 잇는 외교 사절단이 있었습니다. 국서를 전하는 공식 외교단이자, 문화를 나누는 평화의 사절이었던 조선통신사입니다.

부산을 출발해 에도까지 1년 가까운 여정을 이어갔던 그들의 발걸음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요. 행렬도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조선통신사의 외교와 문화 교류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왕이 일본의 요청으로 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막부의 쇼군에게 파견했던 외교 사절입니다.
임금을 대신해서 국서를 전달하는 외교 사절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다양한 문화 교류를 포함하고 있는 문화사절단이기도 했습니다.

묘정은 대량 남짓 1년이라는 시간을 부산을 출발해서 에도까지 갔다 오는데 시간이 걸렸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의 세 차례는 회래염 세환사라고 해서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뒤에 도로 송환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또 국정을 파악을 하고 또 우리나라의 문화를 일본에 전달하는 이런 목적을 가진 것이 조선통신사 행렬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조선통신사의 행렬은 청도기 혁명기 깃발을 든 사람과 그다음 악대와 마상제 별파진 전학 군관, 그다음 국서가마 사자 간 고동 사령 그다음 정사 감마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부사가마도 숫자만 좀 다르지 구성은 비슷하게 그다음 종사관 가마 그다음에 뭐 재술간 양이 쓰기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통신사 행렬도로는 인조 2년 1624년 것이 가장 오래된 행렬도를 알고 있습니다.
통신사는 한 삼백 명 정도 파견되었다고 해요. 정사 같은 경우에 정립 부산은 강홍중이고 경사는 신계영인데 예 세 번째까지는 일본 새로운 쇼군이 등장을 했을 때 그 화답하라 가는 그런 입장도 있었고 그다음에 축하를 하면서도 우리 포로로 갔던 조선인들을 어떻게 하면 세환 다시 돌아올 것인가 그런 것들을 협상을 하는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인조 14년 1636년 통신사 행렬 또는 478명이 파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행렬의 구성원 위에 그가 맡은 직책이 그 상당에 그려져 있고 이름이 다 적혀 있기 때문에 외교 의례의 현장에 대해서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특종 37년 1711년은 에도막부의 정권이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좀 안정기에 들어간 시기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행렬도 중에서는 정말 화룡정점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에도성 길가에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이 구경을 하는 그 행렬 자체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매우 장관이었다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1811년 정도 될 것 같으면 전례의 통신사와 많이 달랐습니다.
정사, 부사, 종사 그중에 종사관이 빠져버립니다.
달리 말하면 통신사를 통한 교류 자체에 대한 의의가 좀 약화된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안정적인 관계가 유지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통신사를 통한 외교는 종지부를 찍었다라고 그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두 나라가 평화관계를 유지하고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진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뭅니다.
국익을 우선으로 하고 상대국으로 인정해 주려고 노력을 하는 그런 자세가 오늘날 조선통신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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