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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PD
 노경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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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통신사]수행화원 김유성과 이의양

<앵커> 조선통신사 수행 화가들이 일본에 남긴 작품들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 당시 한일 문화 교류의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금강산도와 사군자, 화조도와 응도까지, 그 속에 담긴 조선 회화의 특징과 교류의 흔적을 살펴봅니다. <리포트> 1763년 계미통신사 수행원 김유성 같은 경우에는 김해 사람이고 또 보통 홀은 서암이라고 불렀습니다. 김유성의 가장 대표적인 그림은 지금 내폭으로 알려져 있는 금강산도 화조도 매조도 낙산사도라 불리는 병풍 일정입니다. 김유성이 그린 그림에서 금강산도라고 하는 것이 일본에 남아 졌다는 건데요. 금강산은 보통 진경 한수화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지명을 달고 지도식 회화로 보통 그림을 그립니다. 이거를 처음 선보인 개념이기 때문에 의미가 무척 크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일본은 거의 배경에서 꼭 저 멀리 항상 후지산이 뒤에 등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반대로 그것이 아니고 금강산에 올라서 금강산 자체가 주제가 될 수 있도록 화면에 꽉 차게 보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다른 풍경에 또 다른 뒷배경인 풍경이 아닌 그냥 주제 의식으로서 금강산을 표현했기 때문에 이거는 조선 화가들과 일본 화가들이 좀 달랐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성남도는 하원으로서 파견된 김유성이라는 분께서 1764년에 일본에서 제작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그림 왼편에 난초가 그려져 있고요. 그 난초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는 나비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결국 이제 사군자화로 분류가 될 수 있습니다. 사군자 화는 매랑 국죽을 우리가 말하는 거죠. 매랑 국죽을 그린 사군자 화는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의 어떤 품성을 드러내는 식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많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본도 16세기 이후로 이제 에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랜 전쟁의 시기를 마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위 말하면 글을 읽는 식자층이 이제 증가를 하게 되죠. 그러면서 어떤 사대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이런 사군자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일본은 아주 세밀하고 장식적이고 또 색채도 화려하고 이제 그런 특징들을 서로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성글고 또 뭔가 마무리가 덜 된 것 같은 이제 그런 조선 그림들이 일본에서 나름 인기를 얻었던 거죠. 이안 같은 경우에는 조선통신사의 가장 마지막 신미 통신 사양의 수행원으로 선발되었던 화가입니다. 이양의 화조도는 활짝 핀 복숭아 꽃과 두 마리의 새를 그린 일명 꽃과 새 그림입니다. 화면 구성은 화폭 중단에서 자리한 새를 중심으로 양분됩니다. 새가 중심이 되어서 우리를 관람자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마치 나무 가지가 축축 처져 보이는 그런 역할이 좀 있어요. 그런데 이제 축축 처진 것이 아니고 그것이 바로 새가 앉아 있는 그 나무 가지에서 관람객을 내려다보는 그런 방법을 취하고 있고 우리가 새가 되어서 한번 그 화면 속에 들어가서 오히려 작품이 된 그런 느낌들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산수도의 가장 높은 가치는 이 그림이 다니 분초라고 하는 당대 일본에서 매우 유명했던 화가의 그림을 모방해서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한국과 조선의 회화 교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그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매는 이제 일본 무사들이 좋아했던 대표적인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많은 무사들이 매 그림을 많이 요구를 했고 그래서 19세기에 이르면 조선의 많은 화가들이 매 그림을 그려서 일본에 판매를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이의양이었습니다. 이의양을 통해서 아마 응도란 그림이 일본에 널리 알려졌을 수 있는 거예요. 통신사행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인의 요청으로 이런 응도를 그렸고 매를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라고 하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조선에 계속해서 이제 응도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제 특히 부산 출신 화가들이 이런 응도를 많이 제작하게 된 결과를 이제 낳게 되는데요. 그래서 응도 역시도 조선과 일본의 해와 교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주제의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6.04.09

[신조선통신사 6화] 동래화가 변박

<앵커> 조선 후기 동래에는 무인이면서도 뛰어난 화가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변박인데요. 부산과 일본을 잇는 접점에서 활동하며 지역 화가를 넘어 18세기 후반 화단의 흐름까지 보여준 변박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변박은 1740년 경에 동네 부산 지금의 부산에서 태어나서 1760년대 70년대 80년대까지 활동했던 부산 지역 화가입니다. 조선시대 동네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과 접경하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특히 군인들이 많았어요. 변방 역시도 무인이었고요. 그런데 이분이 이제 화가로서도 활동을 하셨던 거죠. 그래서 이분의 대표적인 그림이 부산진 순절도와 동내부 순절도입니다. 특히 이분의 회화 활동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일본의 통신사행으로 파견이 된 사실입니다. 이분을 발탁한 것은 조엄이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조음은 1763년 통신사행 때 정사로 임명된 분이시죠 1764년 사행 때 하원으로 정식으로 파견된 분은 김유성이었습니다. 김유성은 중앙의 도와서 하원이었죠. 그런데 이제 일본 사람들이 조선 화가들의 그림들을 그림을 매우 좋아했어요. 그래서 아마도 조엄은 김유성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중앙에서 한 명밖에 파견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 좋은 아이디어를 낸 거죠. 변박이 그림을 잘 그리고 중앙화가 못지않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분을 데리고 갔는데 일본의 조사라든지 기록이라든지 이런 목적을 위해서 변박을 발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변박 작품이라고 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은 이제 일본에 남아 있는 묵죽도라든지 또 유마도라든지 외관도가 이제 대표작이라고 손꼽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초량 외관도는 그 수문으로 이제 일본의 사행 일행이 들어와서 이제 외관에 도착하고 연회를 베풀었던 건물이 있는 곳이 있고 조선의 이제 사람들이 그러니까 내려와서 들어올 수 있는 그 설문 아래에 또 객사가 남아 있어서 그런 공간들이 주요 건물들을 이제 확인을 할 수가 있고, 그 화면 안에는 또 일본인들이 돌아다니는 일상의 모습들도 확인을 할 수 있어서 그때 당시에 초량 외관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그렸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유마도 같은 경우는 통신사행을 다녀온 이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변박은 동래부 화가로서 교역을 위한 수출용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는데 사실은 버드나무 아래에 이렇게 말이 서 있는 그런 장면은 이전에 중국에서부터 유래했었던 그런 도상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그려졌지만 그때 당시에 아마 일본에서도 변박의 그림에 대한 수요가 있었을 것이고 변박의 화풍은 또 어땠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묵매도는 사군자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군자화라는 것은 매란국죽을 말하는 거죠. 이 그림의 특징은 색을 쓰지 않고 검은색의 먹으로만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변박이 그래서 뇌와 가지가 중앙 하단에서 상단으로 치솟아 오른 모습으로 이제 그려져 있고요. 그림 상단에는 유명한 성리학자였죠. 김종직이라는 분이 매화에 관해서 쓴 시가 적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이제 변박이 그림도 잘 그렸지만 글씨도 잘 썼던 분이라는 사실을 이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런 메란 국죽을 그린 그림들이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또 식자층을 드러내는 엘리트의 어떤 상징성을 드러내는 그림이기도 했기 때문에 매우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제 변박의 그림을 보면 동네라고 하는 변경 아주 서울에서 먼 지역 화가의 그림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중앙에서 유행했던 화풍을 바로바로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말하자면 지역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당시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그런 화가로서도 지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평가하고 싶습니다.
2026.04.02

[따라하이소] 쿠션을 이용한 코어 운동

<앵커> 허리 아프고 자세 무너지기 쉬운 중년층에겐 코어 운동이 중요하죠. 쿠션 하나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운동법, 지금 함께 보시죠. 여러분 안녕하세요. 필라테스 강사 황지민입니다. 코어의 중요성 너무나도 잘 아실 텐데요. 오늘은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중년을 위한 코어 운동, 척추를 예방하고 요통을 예방할 수 있는 운동 함께 해보겠습니다. 쿠션 준비해 주세요. 준비하신 쿠션 또는 베개를 이용해서 등에 대볼 건데요. 등에 견갑 아래쪽에 이렇게 받쳐주시면서 천천히 누워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다음 천천히 배꼽을 당겨서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편안하게 누워주세요.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가서 뒤통수를 받쳐주세요. 그대로 가슴을 활짝 열어 배꼽을 당겨 마시는 호흡에 크게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이때 배꼽을 빨아당기면서 그대로 느껴줍니다. 내쉬는 호흡에 살짝 띄워줍니다. 올라가려는 욕심에 척추를 많이 말거나 이렇게 반동을 치시는 건 잘못되신 거예요. 그대로 반동 없이 살짝만 띄워도 되니까 척추를 반듯하게 늘려주세요. 다음 동작은 하체를 이용한 하체 코 강화 동작입니다. 팔꿈치로 바닥을 밀어 정수리가 바닥에 닿도록 머리 위를 데워줍니다. 그런 다음 두 팔이 천장 위로 나란히 자 배꼽을 당긴 상태로 한 발, 천장 반대발 천장 두 다리를 나무 젓가락처럼 딱 붙여주세요. 준비가 완료되셨고요. 마셨다가 내쉬는 호흡에 배꼽을 납작하게 당겨주세요. 내쉬는 호흡에 팔 다리를 길게 뻗어주세요. 이때 배꼽을 당기지 않으면 허리가 과도하게 꺾이며 배가 볼록하게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배꼽을 끌어당겨 허리가 과하게 꺼지지 않도록 유의해 주세요. 그대로 제 자리 돌아가시면 됩니다. 다음 동작은 전신코어 강화 동작입니다. 다 같이 함께 진행해 볼게요. 네 쿠션을 대시고 그 위에 팔꿈치를 올려주세요. 그런 다음 한 발 한 발 편안하게 바닥에 대고 엎드려 주시면 됩니다. 발가락을 세운 후에 한 다리를 몸통 옆으로 가지고 오세요. 이때 엉덩이가 뜨거나 몸이 기울지 않도록 엉덩이를 들썩여서 골반을 바르고 나란하게 먼저 만들어 주세요. 그대로 뻗어 있는 발가락으로 바닥을 힘껏 밀어서 엉덩이를 번쩍 들어주실 건데요. 이때 쿠션에 대고 있는 두 팔꿈치로 바닥을 힘껏 밀어줍니다. 그대로 배가 처지지 않도록 허리가 꺾이지 않도록 배꼽을 등쪽으로 바짝 당겨주세요. 내 몸이 바들바들 흐르르르 떨리는 걸 느끼셨다면 잘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3초간 버티신 후에 천천히 내려주세요. 네 오늘은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중년을 위한 코어 운동 함께 해 보았습니다. 백세까지 따라오소.
2026.04.01

<조선통신사 5부> -문화교류의 장을 연 '김명국'

<앵커> 조선통신사 행렬 속에는 외교관 못지않은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화가 연담 김명국인데요. 한 장의 그림으로 일본을 열광시킨 그의 예술과 문화 교류의 의미를 만나봅니다. 연담 김명국, 김명국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 호인 연담이나 취옹에 대해서 많이 아실 만큼 기이한 행동을 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당시에 천인 출신이었는데 도화서 교수까지 올라갔던 화가입니다. 그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다는 거죠. 거칠고 신비한 선인도 달마도와 같은 그림을 많이 남긴 화가입니다. 1636년에 김명국의 직위는 도화서의 교수였습니다. 가장 전성기에 그러니까 일본에 간 거겠죠 1636년 이후 1643년 갔을 때 통신사 절목을 보면은 일본 측에서 꼭 김명국을 와달라고 요청하는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이제 2명의 화원이 간 경우가 1643년 통신사 행렬에서만 유일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그 시기에 선중화에 대한 관심과 애요가 높았습니다. 김명국이 그들의 취향에 딱 맞게 됩니다. 그러면서 김명국의 이런 필선은 정말 신명하다. 한 조각이라도 얻고 싶다 소문의 소문을 더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그의 그림을 얻고자 했습니다. 밤새도록 너무 서화 요청이 많아서 고통스러워서 김명국이 울었다라고 적혀 있거든요. 그만큼 김명국이 조선통신사로서 화원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즉 일본의 관료들이랑 중인 상인들이 원했던 그림들을 모두 그려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저는 통신사의 역할과 기능을 평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는데 하나는 외교적인 측면하고 하나는 문화적인 측면으로 나눠서 보고 있습니다. 좋은 통신사를 문화 교류로 칭하는 것은 1636년 병자 통신사 수행 화원 김명국부터입니다. 명국이 통신사를 따라서 일본에 갔더니 온 나라가 물결 일듯 떠들썩하여 명국의 그림이라면 한 조각의 종이도 큰 구슬을 얻은 것처럼 여겼다. 그 당시에 한류의 어떤 붐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명국이 일본에 그려 남긴 그림들은 거친 필치로 흑백 대비가 굉장히 심한 문법을 사용하고 감필이 특징입니다. 먹을 잠깐 묻혀가지고 일필에 단필에 그렸던 그게 바로 이 김명국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일본인들을 매료시킬 수밖에 없었다 볼 수가 있습니다. 붓을 이 자루 저 자루 들고 그린 것이 아니고 붓 한 자루를 들고 일본의 그 문사들 다 있는 앞에서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린 겁니다. 그걸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왔다고 생각해 보시 어 눈을 떼지 못한 공연도 아니고 굉장했을 것입니다. 이 퍼포먼스 자체는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병자 성신사양 때 그렸던 달마도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달마의 눈썹에서 첫 붓질이 시작되어서 얼굴 표현부터 흘러내리는 눈 코 입과 머리 두검부터 또 가사부터 그런 표현과 얼굴은 연한 담묵를 사용해서 그리고 또 수염을 제외하면 총 30획 정도의 붓질로 얼굴을 그려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간필하게 그림을 그려서 김명국의 실력이 그대로 화선지 한 장에 다 보여지는 그런 작품이 되겠습니다. 또 하나가 이제 구성 면에서는 이 비율이 되게 탁월하게 보여지는데 위에 상단 부분은 화제를 받을 것을 생각해서 비워두고 그리고 중단과 하단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고 일본의 문사가 여기다 화제를 쓸 것을 기대를 했겠죠. 그러면서 어쩌면 그림 한 장으로 인해서 이 조선인과 일본 문사들이 문화 교류를 펼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림 상단에 비어 있는 그의 작품을 단순하게 보이지만 이건 놀라운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실로 문화 교류의 장을 그로 인해 시작됐고 또 완성시킨 업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26.03.26

<따라하이소> 요실금을 예방할 수 있는 스트레칭

<앵커> 나이가 들수록 걱정되는 요실금, 생활 속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황지민 강사와 함께 따라 해보시죠. <리포트> 여러분 안녕하세요. 필라테스 강사 황지민입니다. 오늘은 나이가 들수록 생기는 질병 중 하나 바로 요실금인데요. 요실금을 예방할 수 있는 스트레칭 함께 배워보겠습니다. 오늘의 준비물은 베개 또는 쿠션입니다. 네 첫 번째 동작은 뒤꿈치 조이기 동작입니다. 베개를 준비하신 후에 함께 누워서 진행하겠습니다. 준비하신 베개 또는 쿠션을 허벅지 사이에 끼워주시면 되는데요. 그 허벅지로 쿠션을 살볕이 지긋이 조여주시면 됩니다. 두 팔은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천장을 향해 열어주세요. 그런 다음 뒤꿈치를 서로 하듯 브이 모양으로 붙여서 준비 완료해 주시면 됩니다. 뒤꿈치로 바닥을 긁어내듯이 다리를 쭉 뻗어주시면 되고요. 이때 두 허벅지로 쿠션을 지긋이 조여주세요. 그런 다음 뒤꿈치를 뽀뽀한 상태 그대로 바닥을 긁어대듯이 뒤꿈치를 엉덩이 아래로 가져옵니다. 두 번째 동작은 내전근 조이기 동작입니다. 쿠션 준비하셔서 함께 누워서 진행할게요. 네 천장을 바라보고 누우신 후 두 다리를 접어주세요. 허벅지 사이에 쿠션을 넣어 두 다리로 쿠션을 잡아줍니다. 두 팔은 몸통 옆으로 가지런히 가져가세요. 배꼽을 당겨 마셨다가 내쉬는 호흡에 배꼽을 당기며 골반을 둥글게 말아 꼬리뼈, 천추, 요추 순으로 순차적으로 상체를 들어줍니다. 이때 무릎은 사선 천장을 향해 밀어주시고요. 체중이 목에 실리지 않도록 어깨까지만 체중이 옮겨갈 수 있도록 주의해 줍니다. 이때 잘못하셔서 배를 볼록하게 내비는 건 절대 좋지 않으세요. 배가 나오지 않도록 갈비뼈를 바닥으로 살며시 눌러주는 힘을 유지해 줍니다. 그런 다음 천천히 두 다리로 베개를 조여내며 천천히 제자리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들고 내리는 것을 일회로 여덟 번만 진행해 주셔도요. 골반 기저근을 강화하는 효과 얻으실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동작은 고양이 스트레칭 동작입니다. 다 함께 해보실게요. 쿠션을 다리 사이에 넣어줍니다. 손을 바닥에 붙여주시고요. 어깨 아래에 손목이 올 수 있도록 유지해 주세요. 그런 다음 발가락을 세워서 이렇게 안정된 위치를 잡아줍니다. 고양이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힘껏 손으로 바닥을 밀어내서 등을 둥글게 말아주세요. 바닥을 밀어내는 힘으로 등을 천장에 붙인다는 느낌입니다. 이때 두 다리로는 쿠션을 살며시 조여줍니다. 손목이 건강하시다면 이때 무릎을 들어보시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천천히 무릎이 아프지 않도록 제자리 돌아오시고 그런 다음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척추를 이자로 뻗어 제자리 돌아옵니다. 고양이이 스트레칭을 하듯이 말았다가 제자리 돌아오시는 것을 하나로 오해만 진행해 주시면 요식을 예방하는 효과 얻으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요시금을 예방하는 스트레칭 함께 해 보았습니다. 100세까지 따라 하이소!
2026.03.25

<신조선통신사> 4부 이성린 <사로승구도>

<앵커> 조선통신사의 여정 속에 담긴 18세기 동아시아 교류의 흔적을 따라가봅니다. 통신사 화원 이성린의 사로승구도에는 부산에서 에도까지 이어진 사행길과 그 시대의 풍경, 문물이 정교하게 담겨 있습니다. 한 폭의 기록화로 되살아난 교류와 문예의 현장, 함께 보시죠. <리포트> 이성린은 10차 무진 통신사행의 수행원으로 선발되어서 활동했던 화가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성일에 대한 부분을 얘기하자면 바로 사로승구도를 얘기 안 할 수가 없고요. 사로라고 하는 거는 바닷길을 의미하고 있고 승구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바다를 건너서 일본으로 사행하면서 본 아름다운 경치를 담은 그림이다 뭐 이런 뜻을 담고 있습니다. 긴 두루마리 형식으로 30 폭으로 나눠져 있는데 부산에서 출발해서 또 에도에 도착했던 전 과정을 전부 다 그림으로 그렸던 어떻게 보면 통신사 화원 12명 중에 유일하게 독보적인 그런 기록화를 남겼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사로승구도의 첫 장면은 이제 부산으로 시작을 하는데요. 바로 영가대라는 곳에서 이제 출발을 하게 돼서 그 영가대를 중심으로 한 부산 포구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린 장면이 바로 이제 첫 장면으로 등장을 합니다. 익숙한 풍경이 부산에 우리의 풍경을 그린 것을 알 수가 있고요. 곳곳에 이렇게 붉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으로 봤을 때 따뜻한 날 출발을 했었음을 그러니까 출발 시기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마도와 오사카 모두 이제 주요 통신사의 여정 중에 하나였고 또 대마도는 대마번주가 에도까지 같이 수행을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대마도는 굉장히 중요한 그런 정박지 중의 하나였고요. 그래서 이제 사로승구도 안에도 이 대마도에 들어가는 그 장면이 남아 있고 또 오사카 같은 경우는 이제 큰 도시로 들어가는 초입지가 바로 그 오사카였기 때문에 오사카 성을 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게 남아 있고 또 야입대판성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저녁에 물길을 따라서 등이 다 이렇게 켜져 있는 모습들도 그리고 있어서 어 오사카나 대마도가 이제 주요 정박지였다는 것은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건들 예를 들어서 이제 도착을 해가지고 얼마 안 있어서 배가 조난을 당하게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종사선을 기다리기 위해서 그 종사와 부사선이 임시 장소에 이제 도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런 공간도 있고요. 물길을 건너는 통신사 일행을 이제 일본인들이 업어서 길을 건너는 그런 장면들도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장면들은 그때 당시에 그 통신사의 풍경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서른 번째 장면이 국서를 전달하고 이제 그 향연을 베푸는 장면이 그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건물 안에서 일본의 관료와 감바코가 만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밖으로는 이제 수행하는 사람들의 자유롭게 이제 쉬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사로승구도에서 이제 주목하는 일본의 그런 문물을 참고했음을 보여주는 게 이제 수차하고 그리고 이제 그 배다리 주교인데요. 일본은 당시에 이 수로 시스템이 굉장히 일찍 발달을 했었기 때문에 농경에서 물을 댈 수 있는 그 수차라든지 또 배를 이용해서 다리를 만들어서 개천을 배다리를 놓고 건너는 장면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시설들인데 우리나라에도 적용을 하려고 애를 썼던 것을 알 수 있고요. 그런 이제 선진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18세기에는 동아시아에서 문예부흥기라고 해서 모든 나라들이 굉장히 안정화되고 교류에 아주 꽃을 피운 시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바로 이런 사로승구도라든지 또 변박의 외관도라든지 이런 곳에서 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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