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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젊은 날의 꿈을 다 이루었습니다. - 사진작가 라상호

표중규 입력 : 2026.07.02 17:12
조회수 : 1118
젊은 날의 꿈을 다 이루었습니다.  - 사진작가 라상호

저 글귀는 55년 동안 사진만 찍어온 일흔아홉, 라상호 작가의 사진집 첫 문장이다. 삶의 어떤 변곡점에서 수많은 선택과 흔들림, 고민과 후회를 안으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나날들 속에서 나는 과연 저런 광오한 말을 한번쯤은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과연 어떤 길을 걸어온 어떤 작가이길래 저렇게 글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던 게 사실이다. 창원 송원갤러리에서 열리는 초대전이 그 막을 올리는 날, 분주한 라작가와 잠시 따로 차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기자
전시회 안내 보니까 일흔 일곱 되셨을떄 남미 일대를 쭉 돌면서 촬영한 걸로 돼 있더라고요. 특별히 그해에 그렇게 그곳에 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라상호 작가(이하 라상호)
일정은 기록이 안 돼 있는데 그해에 경남신문이 창건 77주년이었어요 2023년도에. 그해에 제 나이가 일흔 일곱이었고 그래서 그때 창간 기념으로 특별 기고를 부탁해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77일 동안 남미에 가서 전역을 다 돌았어요. 사실 사진을 막 시작을 하면서 ‘내가 사진가가 된다고 그러면 세계 문화유적 사진집을 5권 만드는 거 참 좋겠다’는 정말 막연한 꿈을 꿨죠.
그러다가 이제 정말 사진가가 되어서 1971년도에 마산을 오게 됐어요. 이곳에 있으면서 사진가의 길로 가게 되니까 이제 내 꿈을 한번 실현해 보자. 그래가지고 1996년도로 기억되는데 캄보디아가 그해 우리나라하고 수교가 됐어요.(실제로는 1975년 크메르 루즈 정권으로 인해 공산화면서 단교되었다가 1997년 외교관계가 재개되었다) 수교가 되는 그때 정말 빠르게 제가 캄보디아를 가봤죠. 가서 보니까 내 힘으로는 찍기에 나라가 너무 방대한 거에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체류 기간도 엄청나게 있어야 되겠고..현실적인 한계때문에 그냥 접고 돌아왔는데 우리 지역 로터리 클럽에서 뉴욕의 로터리 문화재단에 편지를 써서 문화 사절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지원을 요청한거죠. 그게 성사되면서 3개월 머물 수 있는 경비를 지원받았고 거기에 제 돈을 보태서 6개월 동안 캄보디아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게 발단이 되어 가지고 7년 동안 캄보디아를 다니면서 다양하게 사진을 찍어서 2006년도에 책을 만들어 출판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는 또 미얀마 를 다니면서 사진 작업을 모아놨다가 2008년도에 또 책을 냈고 그다음에 청도 운문사에서 자기네들 승가대학교 50주년 기념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의뢰가 와서 정말 다행스럽게 청도 운문사의 책을 만들게 되죠. 그렇게 세 권을 만들었고 네 번째는 우연치 않게 히말라야를 가기 시작하면서 네팔 유적을 찍게 되었는데 그건 또 너무 돈과 시간이 많이 걸려서 계속 길어지고 미뤄지게 되는 상황에서 2023년에 경남신문 의뢰가 들어온거죠.
이제 나이도 들고 또 필요한 돈을 모아야 책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지금까지 좀 걸렸는데 이제 제 나이 여든에 이 책을 만들어서 출판기념회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2023년도에 찍어가지고 3년 동안 돈을 모으고 편집을 하고 출판을 하게 됐는데 다행스럽게 송원 갤러리에서 최충경 회장님이 초대전을 열어줘서 이렇게 전시까지 현실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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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지난한 과정을 거치셨군요. 그런데 이번 전시회가 ‘돌_시간을 기억하다’ 던데 특별히 돌을 선택하신 어떤 이유가 있나요?

라상호
학창시절부터 풍경을 찍는 것보다는 경주, 우리 고궁에 있는 돌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좋아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돌이, 우리가 생각할 때는 죽어 있는 돌같지만 실제 살아있는 돌의 가치를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근데 사진하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게 있어요. 어떤 빛을 만나고 어떤 계절에 사진을 찍게 되면 그 바위 색깔이, 돌의 색깔이 살아있는 색깔로 변하면서 그곳에서 운동을 느끼게 되는 거죠. 분명히 까만 돌이었는데 아침 이른 새벽에 빛을 받게 되면 붉은색이 물들게 되고 그러면 그쪽에 있는 표정이 나타나게 되는거죠. 또 저녁 때 노래지게 되면 노란색이 되고 추운 겨울에 찍게 되면 또 까만 색이 아니고 보라색이 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돌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드러나게 되는거죠. 어떤 것보다 오래 견디는 것 중에 하나가 저는 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철도 오랫동안 놔두면 부식이 되지만 돌은 오랜동안 천년이고 만년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돌, 그대로 남아있거든요. 우리나라의 모든 건축물들을 보면 석가탑, 다보탑, 경주 불국사 본존불 같은 걸 보게 되면 천 몇백 년이 됐지만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거든요. 9세기 11세기 때 만들어진 이 앙코르 유적도, 모아이도, 마추픽추도 똑같은 거죠. 돌을 어떻게 보느냐 어느 시간대 어떤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걸 느끼면서 돌이 그 시간을 기억하네 라고 저는 생각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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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런데 사실 지역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사진 작업을 하기가 사실은 쉽지는 않지 않습니까?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이렇게 작품활동을 이어오신건지도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라상호
저도 그게 참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버려야 할 것은 있었어요. 젊었을 때부터 친구와 비교하지 말자, 친구를 그렇게 많이 사귀지 말자, 남의 것을 탐하지 말자 이런 생각들을 가졌죠. 왜냐하면 비교하게 되면 돈을 벌어야 되는데 남들이 돈을 벌어서 무엇인가를 할 때 저는 필름을 사야 되고 또 카메라를 사야 되고 여행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싶었던 거에요. 예를 들어서 사진관을 한다든지 또 한때 유행했던 웨딩 사진을 찍으면 훨씬 더 돈도 돼요. 근데 그런 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왜냐 순수한 사진을 한번 해볼 것이라고 각오했거든요.
1970년대에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 마산을 내려왔는데 그 때가 스물 넷, 다섯일때쯤에에요. 제가 월남에 가서 한 20개월 근무를 하고 돌아와서는 이제 사진을 그만둬야 되겠다 라고 마음먹고 실은 이곳에 왔는데 그때 마산 자유수출이 처음 생길 때였어요. 여기에 또 창원 공단도 들어서게 되니까 회사들이 저희들 같은 사진가들 그러니까 회사 전경을 찍고 회사 홍보를 하고 회사 제품을 찍어야 되는 전문 커머셜 포토그라퍼가 필요했던 거죠. 저는 그걸 공부했었고 그걸 했었던 사람인데다 이전에 대우백화점에 사진 작업을 했었고 또 서울에 있을 때는 롯데 일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경력을 살리니까 조금 빈곤은 하지만 견딜 수가 있었던 거죠. 한때는 제 손수 제 손으로 이거 카달로그 사진을 찍어보지 않은 회사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지방에는 사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한국 중국 심지어는 LG 같은 경우 옛날 금성사 였을때 때 서울에서 사진가가 못 내려오니까 뭐 필요하면 지금 들어와서 바로 찍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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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런데 좀 속물적인 질문을 드리면, 이런 작품사진은 그렇게 판매가 쉽지는 않을것 같은데....

라상호
작품 자체는 판매가 어렵지만 그 작품들을 모아 책을 만들면 교보문고에 유통을 해요. 피사체가 세계 문화 유적이기 때문에 제가 만든 책들이 대한민국의 도서관 박물관에는 소장이 다 돼 있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서 다른 사람들이 물질적인 뭘 누릴 때, 저는 여행을 하고 또 작품을 남기는 거죠. 이게 말이 맞는지는 잘 몰라도, 사람은 어차피 살다가 이렇게 한 생을 가잖아요. 근데 모르면 몰라도 이 책은 나보다 몇 곱절 오래,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는 거죠.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누군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문화를 배우게 되겠죠.
이 5권의 책을 만드는 돈이 만만치는 않지만, 한 번 만들면 돈이 몇천만 원씩 들어가는 작업인데, 저는 이걸 다양한 분들 도움을 받아 할 수가 있었다는게... 저는 너무나 복이 참 많구나 고맙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기자
그렇군요. 그런 의지를 갖고 꾸준히 길을 나아가신다는게 대단해보입니다. 약간 작품 외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실례인데 올해 연세가 정확히 어떻게 되시죠? 저도 깜짝 놀란 게 전화 통화할 때 목소리도 그렇고, 지금 말씀을 나눠봐도 그렇고, 너무 여든이라는 연세가 안 믿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굉장히 젊으신 것 같아요. 혹시 뭐 비결이 따로 있나요?

라상호
저는 술도 할 줄을 모르고 담배를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사진찍으러 다니기만 했잖아요. 친구 만나는 일도 못 해 봤고 실은 저는 남들 잘하는 당구도 한 번 쳐보지도 못했어요. 탁구도 한 번 못 쳐 봤어요. 하지만 지금도, 예를 들어 2023년도에 촬영갈 때도 짊어지는 배낭이 한 20kg이 넘어요. 그걸 한 번 저는 짊어지면 하루 종일 걸어요.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빨리는 못 가지만 카메라 백을 짊어지고 그렇게 다니는 것을 평생을 해 왔죠.
그외에 유일하게 제가 할 줄 아는 것 중에 하나가 한 30년부터 자전거를 타왔어요 로드 자전거를. 산악 자전거는 아니고 그냥 로드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한 100km씩 타고 돌아오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런 게 다죠.
지금도 기억나는게, 2023년도에 와이너픽추라고, 마추픽추를 가면 저 뒤에 동물의 형태로 만들어진 곳이 있는데 그걸 보려면 다른 산을 1시간 반 정도 기어오르듯이 가야 돼요. 거기는 계단을 네 발을 기어오르듯이 1시간 반 정도? 그 이상 되는 거리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올라가게 돼요. 그걸 그때도 직접 했으니까... 아직은 지금도 제가 창동예술촌에 머물러 있는데 젊은 친구들, 저보다 젊은 50대, 60대하고 어디를 가면 지금도 걸음이 내가 더 빠르고 밥도 더 많이 잘 먹고 그래요 하하 내가 아직 더 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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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아 창동예술촌이면 마산 창동예술촌 말씀하시는거죠? 라작가님 지금 창동 갤러리 관장을 맡고 계시던데 지금 하고 계신 작업은 어떤 작업인가요?

라상호
지금 이제 이게 마지막 작업이고 정리를 다 했죠. 이제는 이게 마지막이어서 더 이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꿈이 있다고 그러면 원래 제가 올해에 남미의 히피로드를 한 100일을 갔다 오고 싶었었어요. 그때는 카메라나 짐을 아무것도 안 가져가고 조그만 카메라 하나 그냥 품속에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남미 히피 로드를 한 100일 정도 다녀오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것들을 한번 반추해 보려고 했어요.
남미 히피는 다른 쪽의 히피하고 다르거든요. 정말 낭만적이고 그 히피들이 머물렀던 곳을 보면 그렇게 노을이 아름다운데, 그렇게 숲속이 아름다운데, 어떤 사람은 조그맣게 텐트도 비닐로 집을 지어놓고 깨끗이 지어놓고 그런 곳이 있어요. 한 100일 동안 거기 머무르면서 히피들하고 같이 생활을 해보면 그동안에 못 배운 것, 내가 알지 못한 것, 내가 반성해야 될 것들을 그곳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이게 늦어져서 올해는 못 갔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다고 그러면 이제 뭐 2~3년 안에 한 번 남미를 나가서 카메라 한 대 가지고 조그만 가방만 짊어지고 가면 되니까. 그런데 중요한게 거기 가려면 뭔가 재주를 배워가야해요 거기서 사람들한테 적선을 받아가면서 살려면 하하. 그래서 악기를 하든 뭐 마술을 하든 뭐 하나 배워서 가가지고 한번 그런 생활을 싶어요. 그리고 그런 생활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그걸 갖고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제 보니 사진으로 다 못하는 게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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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렇군요. 그것도 굉장히 독특해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 꿈들을 다 이루고 사시려면 가족들이나 친구들 만날 시간이 너무 없을것 같은데요?

라상호
저는 친구가 없어요. 거의 친구는 없죠. 얼마전 초등학교 친구가 전화왔는데 사실 예전에 저는 친구를 만날 생각도 안 하고 찾아가지도 않았었어요. 그 친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한다더라 이런 것만 전해듣는 정도인데 지금 그 친구들은 저한테 그래요. 너처럼 행복한 사람이 없다 라고 해요. 옛날 같으면 사실 제가 그 친구들을 부러워하죠.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고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명예도 갖고. 그 사람들이 부도 누리고 권력도 갖고 그럴 때 사진가들한테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비슷한 예로 제가 마산 처음 내려와서 합천에서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 성철 스님은 그냥 스님이었어요. 저는 그때 당시 사진을 찍으러 다녔으니까 그때 합천 행사를 가면 성철 스님은 그냥 스님이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큰 어른 스님이 되어서 한국을 움직이는 정신적인 지도자가 돼 있어요. 그런데 사진관은 예전 사진고나 그대로에요.그냥 사진사는 사진사일 뿐이에요. 도시에 살아서 알려지게 되면 대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경남 같은 지방에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하거나 해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죠. 그냥 그렇게 자기가 해야 하는 것에 행복해하는 것 말고는 없는 거죠.

기자
그렇게 세상의 가치도 멀리하고 작품만 매진하는 삶, 어쩌면 하나의 구도자 같은 삶이네요. 이쯤에서 궁금한게...어쩌면 이 칼럼을 보시는 분들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기도 할텐데...카메라는 어떤걸 쓰세요?

라상호
독일 콘탁스CONTAX 카레라인데 필름 카메라고요. 이게 파노라마 카메라라서 180도가 찍히는 카메라예요. 모델명이 645라고 120필름 6cm 들어가는 거예요. 얘는 6cm 4.5cm가 들어가는 필름을 써서 필름을 좀 여유가 있게 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카메라를 저는 많이 써요.
저 같은 경우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해요. 사진이 갖는 특성, 즉 원판 보존 원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디지털로 찍어서 막 여러 개 찍어서 생산된 것이 아니고 필름은 오로지 하나가 있으면 그 필름의 가치가 더 뛰어나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필름으로 찍는데 물론 디지털도 많이 써요. 왜냐면 필름이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너무나 어두울 때 장노출을 주게 되면 필름은 전부 노이즈가 생겨가지고 거칠어지고 무너지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필요한 것들은 디지털도 쓰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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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지만 말그대로 독자분들을 위해 한번 여쭤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오래 한 가지 일을 해 오신 분을 만나면 제가 꼭 물어보는게, 본인의 작품 세계, 작품활동을 해온 기간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표현한다면 ‘나의 작품 철학은 뭐다’ 라고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라상호
음...저는 사진 미학을 처음 저 스스로 습득을 할 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없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 중에서 나의 시각으로 내가 무엇을 봐야 하지, 어떤 색깔을 봐야 하지 어떤 빛을 봐야 하지 그 빛은 어떤 거리를 가지고 있지 이런 것들을 보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기다림의 미학이 사진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 기다리는 걸 누구보다 더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게 대답이 될까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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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물어봐도 미리 준비한듯 툭툭 자신의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온 라상호 작가는 마지막, 자신의 작품철학을 설명할 때만 잠시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뭔가 80년의 세월을 살면서 하나만을 해온 이에게 당신이 무엇을 한건가요? 라고 물었을때 나는 잘 기다렸어요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기다림이었을까. 다른 누군가, 혹은 세상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굳굳하게 걸어가는 걸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 기다림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시회에서 어쩌면 내가 본 것은 남미의 돌도, 그 긴 세월의 흔적도, 그리고 그것들을 담기위한 노고도 아닌, 그저 그 순수한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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