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스페셜] 세계의 벽, 위대한 장벽…문명과 갈등을 가른 경계
인류의 역사는 벽을 세우며 시작됐고, 위대한 문명 뒤에는 늘 문명을 지키고 가르는 장벽이 존재해 왔습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세운 방벽은 길이 118km, 높이 5m가 넘는 석조 장벽으로 제국 최북단 국경이자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는 상징이었습니다.
지금은 1m 남짓만 남았지만, 이 방벽은 로마 제국의 영광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총길이 1만7,500km에 이르는 세계 최대 방어선으로, 진시황 이후 2천 년 넘게 북방 민족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 건축물로 축조·증축되며 중국 농업 문명을 지켜냈습니다.
산맥과 사막, 바다를 잇는 장성 곳곳에는 돈대와 ‘천하제일관’ 같은 요새가 배치돼 군사·정치·건축사가 집약돼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지킨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해자·외성·내성으로 이어진 삼중 방어 구조 덕분에 천 년 동안 난공불락의 방어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초대형 대포에 성벽이 무너지면서 비잔틴 문명은 몰락했고, 오늘날 아야소피아에는 가톨릭과 이슬람 문명이 겹겹이 새겨져 있습니다.
현대에도 벽은 계속 세워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높이 9m, 수천km에 이르는 강철 장벽이 들어서자, 불법 이민자들은 더 위험한 사막과 산악 지대를 택하게 됐고, 국경은 안전의 벽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장벽으로 변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8m 높이 분리 장벽은 테러를 막기 위한 ‘안전의 벽’이라 불렸지만,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후 가자지구 공습 속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 희생을 막지 못했습니다.
페루 리마의 이른바 ‘수치의 벽’은 부유층과 빈민촌을 가르며 40년 넘게 이동과 기회를 막아 왔고, 헌법재판소의 철거 명령 이후에도 사람들 마음속 계급의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벽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세웠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으며 물리적 장벽보다 더 단단한 마음의 벽을 경고합니다.
인류가 계속해서 벽을 쌓을 것인지, 함께 그 벽을 넘어설 것인지가 다음 문명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