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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조국 위해 싸운 박차정 의사…독립운동의 길을 되짚다

이아영 입력 : 2026.08.19 13:56
조회수 : 366
[오래된 미래] 조국 위해 싸운 박차정 의사…독립운동의 길을 되짚다

여성도 함께 조국 광복 위해 투쟁…학생운동 뒤 중국 망명
부녀복무단장으로 선무공작…직접 전투에도 참여
독립운동가 업적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박차정 의사의 독립운동 활동과 그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들이 조명됐습니다.

박 의사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자 했던 인물로 소개됐습니다.

박 의사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는 배고픔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억압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이 담겼습니다.

박 의사의 활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을 넘어 반외세·반제국·반봉건을 지향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설명됐습니다.

박 의사는 서울 여학교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고, 풀려난 뒤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이후 오빠 박문호의 권유로 국내보다 국외에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망명했습니다.

국외 활동 과정에서는 약산 김원봉과의 인연이 소개됐으며, 조선혁명간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또 조선혁명간부학교 교가를 박 의사가 작사·작곡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이후 민족혁명당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남경 부녀복무단이 조직됐고, 박 의사는 부녀복무단장을 맡아 선무공작에 나섰습니다.

일본 측을 향해 투항을 권유하거나 팸플릿과 포스터를 활용하는 선무공작을 벌였으며, 나아가 직접 총칼을 들고 전투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 의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김원봉이 직접 유해를 수습해 돌아왔으며, 박 의사가 총상을 입었을 당시 입고 있던 피 묻은 적삼을 장모에게 건넸다는 기록도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성격을 띤 연구가 터부시됐고, 김원봉의 이름 역시 지역에서 금기시됐다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박 의사는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하고, 국민 대중 전체가 민족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로 설명됐습니다.

박 의사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도 소개됐습니다.

학생들은 허물어지고 풀 한 포기 없던 박 의사의 묘소를 찾은 뒤 직접 나무판과 못을 구해 표지판 2개를 만들었습니다.

또 묘소까지의 거리를 평균 86걸음으로 계산해 ‘그녀에게 가는 길 86걸음’이라는 메시지를 표지석에 남겼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남성 독립운동가와 여성 독립운동가를 구분하려는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모든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활동을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또 국가로부터 독립장을 받은 박 의사의 묘가 현재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로 표현돼 있다며, 앞으로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의 묘’라고 새겨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뜻도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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