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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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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탁의 삐大Hi] 노무현의 꿈 세종의 완성 부산경남이 앞장서야...

노무현의 꿈을 또 접을 것인가… 세종 완성, 부산·경남이 앞장서자! 최근 정부가 세종 제2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히자, 익숙한 반응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또 선거용 아니냐”, “행정 비효율만 키운다”, “개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서울 중심주의에 익숙한 일부 정치권과 서울 지역 신문들은 이를 선거철을 앞두고 ‘반복되는 공약’으로 정리하며 냉소를 보탠다. 그러나 이 논쟁은 선거용 이벤트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졌던 국가 구조 대개혁의 질문, 곧 행정수도 완성의 문제다. 지금의 비효율은 이전 때문이 아니라, 이전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행정부 대부분은 세종에 있고, 국회와 대통령 기능은 서울에 남아 있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적 출장 행정과 정책 지연을 낳았다. 이를 두고 “역시 이전은 무리였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반쪽짜리 이전이 문제라면, 답은 원상복귀가 아니라 완성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만 봐도 그렇다. 정책을 입안하는 부처가 현장과 가까워질수록 북항 재개발, 해양금융, 글로벌 물류 전략과의 연계 효과는 커진다. 정책과 현장이 가까워질수록 실행력은 높아진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수부 이전 효과가 가시화되자 농림축산식품부 등 다른 부처 이전 요구가 제기됐고, 충청권에서는 강한 반발이 나왔다. 세종의 행정 집적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갈등이 ‘기관 쟁탈전’으로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법은 분명하다. 세종을 진짜 행정수도로 완성하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 기능과 국회가 세종으로 옮겨가고, 세종이 명실상부한 국가 행정 중심축이 되면 일부 부처가 부산이든 다른 지역이든 전략적으로 분산 배치되더라도 체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세종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기능 분산은 약화가 아니라 다핵 체제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지금처럼 세종이 ‘미완성 행정도시’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부처 이전도 불안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충청권의 불안과 타 지역의 요구가 반복적으로 충돌한다. 이 소모적 갈등을 끊는 길은 세종의 위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더 큰 이유도 있다. 서울 일극 체제가 유지되는 한, 지역 간 경쟁은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권력과 정책 결정의 중심이 서울에 묶여 있으면 부산·경남은 늘 ‘차순위’로 밀린다. 산업 전략도, 공공기관 배치도, 국가 프로젝트도 수도권을 먼저 고려한다. 인재와 자본은 서울로 집중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지역 발전을 말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세종 완성은 충청 표심을 위한 카드가 아니다. 오히려 부산·경남이 더 절박하게 요구해야 할 구조 개혁이다. 행정 중심이 세종으로 이동해야 서울 집중이 완화되고, 그 위에서 부산의 해양 전략과 울산·경남의 산업 전환도 힘을 얻는다. 세종이 행정 중심축! 부산이 해양·물류 전략축! 대구와 광주가 각자의 산업 축을 세우는 다핵 구조가 형성될 때 비로소 전국이 함께 숨을 쉴 수 있다. 그렇다면 부산·울산·경남 정치권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해수부 이전을 요구하면서 세종 완성에는 소극적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역의 미래를 말한다면 국가 구조 개편의 큰 틀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 당적과 계파를 넘어 세종 행정중심도시 완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초당적 공조에 나서야 한다. 노무현의 꿈은 감성이 아니라 구조 개혁이었다. 그 구조를 완성하지 못하면 지역은 다시 주변부로 남는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서울 눈치를 보며 머뭇거릴 것인가, 아니면 세종 완성과 다핵 국가 체제를 위해 부산·경남이 앞장설 것인가. 행정수도 완성은 충청만의 과제가 아니다.부산의 미래요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다.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서 필요하다면 개헌이라도 앞장서야 한다. 부산과 경남의 국회의원들은 우리 지역의 이해와 주민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실제 거주하는 서울 강남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원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다.
2026.02.11

[추종탁의 삐大Hi] ‘합리’를 말하며 ‘폭탄’을 부르는 정치권과 서울 지역 신문들

합리를 말하는 정치권과 폭탄을 부르는 서울 지역신문들의 용인 반도체 산단을 둘러싸고 한차례 거센 논란이 있었다. 호남 국회의원들이 용인 반도체 산단을 새만금으로 이전하자고 제기하면서 촉발된 논쟁이다. 이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이번 논란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이 여전히 얼마나 강고한 수도권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호남 이전론이 제기되자 수도권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비현실성’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전기가 없다, 물이 없다, 인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모두 단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엄격한 잣대는 오직 지방을 향할 때만 적용됐다. 새만금은 발전 용량이 0.3GW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용인은 어떤가? 용인 반도체 산단 역시 추가 원전 없이는 15GW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수도권에 반도체 산단을 조성하려면 결국 또 다른 지역에 원전을 짓고, 또 수많은 송전탑을 만들어 다른 지역의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은 기사에서 빠졌다. 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새만금은 하루 2만t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용인이 하루 76만t의 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과거 용인의 물 공급 계획이 강원도와 팔당을 오가며 표류했던 사실도 삭제됐다. 수도권 언론의 기사에는 지방의 부족함은 있어도, 수도권의 한계는 없다. 인력 논리는 더 노골적이다. 석·박사급 인재가 수도권을 선호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수도권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일자리와 산업을 수도권에만 집중시켜 온 결과에 가깝다. 포항, 울산, 대전, 부산,대구에는 세계적 연구기관과 대학이 이미 존재한다. 이 현실을 외면한 채 인재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압박에 가깝다. 이런 보도 행태의 본질은 분명하다. 수도권 언론은 ‘국가 전체의 효율’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도권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만 효율로 인정한다. 지방 이전은 언제나 비용이고, 수도권 집중은 늘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은 호남만의 문제일까? 수도권 언론이 내세운 기준인 전기와 물, 인력을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부산과 울산이 있는 동남권이 압도적으로 합리적인 입지다. 원전 밀집지로 전력 여건이 안정적이고, 공업용수도 비교적 충분하다. 부산대, 경북대, 포항공대, UNIST 등 주변에 수 많은 대학과 인재 기반도 탄탄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 이르면 수도권 언론은 다시 “그래도 수도권이 경쟁력 있다”며 논점을 흐린다. 애초에 기준은 전기와 물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논란이 호남에서 일어나든 부산에서 일어나든 대구에서 벌어지든 이들은 어차피 지방은 안된다는 생각에 이미 사로잡혀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태도도 눈에 띈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이 문제를 시장과 효율의 문제로 규정하며 지방 이전론을 비합리적 주장으로 치부해 왔다. 숫자를 앞세운 논리는 깔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치인들이 말하는 효율의 기준은 왜 항상 수도권을 전제로 설정되는가? 이미 수도권에 모든 인프라를 몰아놓고, 그 결과를 다시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구조에 대한 성찰은 없다. “이미 수도권에 있으니 수도권이 낫다”는 말은 개혁이 아니라 순환논리다. 이 논리가 서울 중심 언론의 프레임과 맞물릴 때 문제는 더 커진다. 정치가 합리를 말하면, 언론은 곧바로 상식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상식은 언제나 서울의 삶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중성은 전기요금 차등제 논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기요금 차등제가 거론되자 서울 지역신문들은 일제히 ‘수도권 폭탄’‘서울 시민만 봉인가’라는 제목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동안 원전은 지방에, 송전탑도 지방에, 환경 부담과 안전 리스크도 지방에 떠넘겨 온 구조는 문제 삼지 않는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의 부담은 국가 발전을 위한 당연한 일이고 그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자는 순간 폭탄이 된다. 전기요금 차등제는 특혜가 아니다. 최소한의 비용 정산이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다른 현실에서 그 차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서울이 손해 본다”는 반응부터 나오는 사회라면, 이미 균형이 아니라 편중을 정상으로 받아들인 사회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정치권과 언론에 묻고 싶다. 왜 모든 첨단 산업은 수도권에 있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하나 더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울산·경남의 국회의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들은 서울 강남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인가, 아니면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인가. 호남의 일이 호남만의 일이 아니며 부산의 일도 부산만의 일이 아니다. 지역의 일은 모든 지역민들의 일이다.
2026.02.09

[추종탁의 삐大Hi] 몸만 내려온 공공기관, 이제 진짜 '식구'가 되자

몸만 내려온 공공기관, 우리는 정말 식구입니까? 최근 전주에서 일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불만을 들어보셨나요? "세계 3대 연기금이 우리 동네에 왔는데, 왜 우리 살림살이는 그대로냐"는 울분 섞인 내용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굴리는 돈만 1,000조 원이 넘는 거대 기관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외딴섬'이나 다름없습니다. 연봉이 높고 좋은 자리는 여전히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독차지합니다. 그 큰 자금을 굴리면서도 정작 전주 지역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돈입니다. 결국 "전주라는 땅만 빌려 쓰고, 알맹이는 서울에 다 있다"는 배신감이 터져 나온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공공기관의 '지역 밀착'을 강하게 주문한 것도 바로 이 지점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보기에도 지금의 지방 이전은 '가짜 이사'인 겁니다. 주소지는 지방인데, 직원들은 주말만 되면 서울행 기차를 타느라 역 앞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대통령은 "주소만 옮기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기업과 학교를 살리는 심장이 되라"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단순히 건물 하나 지어놓고 "지방 균형 발전 했다"고 생색내지 말라는 뜻이죠. 그런데 이런 일은 과연 전주만의 일일까요? 우리 부산과 경남은 전혀 문제가 없을까? 데이터를 보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최근 통계에서 부산의 소멸위험지수는 0.49를 기록했습니다. 0.5 미만이면 소멸 위험인데, 광역시 가운데 부산이 1등으로 이 선을 넘었습니다.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부산경남 인구의 상당수가 사라지고, 수도권과 몇몇 거점 도시만 남는다는 '지방 소멸 지도'가 현실이 됩니다. 부산 문현단지와 진주 혁신도시로 이전한 기관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많이 좋아졌고 다른 시도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해도 여전히 50%대에 불과합니다. 지역에서 번 돈을 서울 가서 쓰는 '빨대 효과'가 여전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인데도 서울 중심주의에 빠진 언론들은 뭐라고 합니까? 해수부 이전을 새정부가 추진하니 지방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공격을 하다, 정작 이전을 하고 나서 좋은 반응이 나오자 이런 주장은 싹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은행 부산 이전 얘기만 나오면 "금융 경쟁력이 떨어진다", "우수 인력이 도망간다"며 훼방을 놓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트의 지방이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화들짝 놀라 포퓰리즘이자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히고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수도권에 있으면 경쟁력을 고려한 선택이고 지방에 추진하면 지역이기주의인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은 서울 엘리트들이 강남 집값을 지키며 누리는 편의일 뿐입니다. 지역이 사라져 나라 전체가 무너지게 생겼는데, 직원들이 KTX 타는 불편함만 기사로 쏟아냅니다. 지역민의 생존보다 서울 사람들의 '서울 라이프'가 더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논리입니다. 2050년 소멸의 시계는 멈추지 않습니다. 공공기관은 서울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자산입니다. 부산과 경남에 내려온 기관들이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 아니라,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든든한 고향'이 되어주길 강력히 촉구합니다. 공공기관 지역 이전이 시작된 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이전 공공기관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우리 '식구'가 돼야 합니다. 함께 밥 먹고 함께 눈물짓고 함께 웃는 진짜 '식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2026.01.21

[추종탁의 삐大Hi] '창원 특별도청'이면 어떻고 '부산 특별도' 면 어때?

행정통합의 찬성 여론 53.6%, 이제는 ‘대승적 결단’으로 응답할 때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가 중대한 변곡점에 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53.6%의 찬성률은 2년 전의 냉담했던 분위기를 뒤엎는 수치다. 이는 시도민들이 통합을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소멸의 위기 앞에 선 지역의 '마지막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메가시티는 가장 먼저 치고 나갔지만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부울경이 주춤하는 사이 충청권과 호남권은 이미 통합 특별법 발의와 단체장 선출을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했다. 남부권의 중심축인 부산·경남이 자칫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은 현실이 되었다. 중앙정부 역시 파격적인 특례와 재정 지원을 약속하며 행정통합을 핵심 국정 과제로 밀어주고 있다. 이제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동력까지 확보한 만큼, 논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디테일의 함정’과 정치적 셈법이다. 행정통합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곧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실행 단계로 들어가면 매우 까다로운 ‘디테일의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상향식(Bottom-up) 통합은 정당성을 주지만, 자칫 지지부진한 논의로 이어져 다른 메가시티와의 경쟁에서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이 있다. 당장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 자리가 축소되는 것에 대한 유력 후보들의 정치적 셈법, 그리고 교육행정체계의 전면적 개편 등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실질적 자치권의 확보, 껍데기만 합치는 것이 아니라 중앙으로부터 재정자립권과 조세 특례 등 ‘알맹이’를 얼마나 가져오느냐가 통합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대전충남이나 광주전남 또 대구경북과 달리 부산과 경남은 또다른 걸림돌이 있다. 대전은 충남의 중심이란 인식이 확고하고 광주와 대구는 지리적으로 전남과 경북의 정중앙에 있기 때문에 통합을 하더라도 그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과 경남은 다르다. 이미 분가를 한지 오래됐고 무엇보다도 부산의 위치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도 난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복잡한 난제들을 돌파할 유일한 열쇠는 결국 상호 양보와 결단에 있다. 특히 통합 지자체의 명칭과 청사 소재지는 지역 간 자존심이 걸린 가장 예민한 지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명칭’과 ‘소재지’의 전략적 교환을 제안한다. 예컨대,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진 ‘부산특별도'로 이름을 정해 글로벌 투자 유치의 발판을 마련하되, 행정의 실질적 거점인 ‘통합도청사’는 창원에 두는 방식이다. 명칭에서 양보를 얻었다면 실익은 상대에게 넘겨주는 상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름은 미래를 향한 브랜드로, 청사는 균형 발전을 위한 내실로 삼는 대승적 결단이야말로 통합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길이다. 반대도 가능하다 어느 한쪽이 반대를 한다면 이름은 '경남특별도'에 도청사는 부산으로 하는 것도 무방하다. 부산 경남은 타지역과는 달리 또 울산이라는 또다른 난관도 있다. 아니면 아예 새로운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신라특별도나 가야특별도는 어떨까? 통합청사는 새롭게 양산쯤은 또 어떨까? 지역별로 정치적 야심과 주도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지역이 산다. 행정통합은 목적지가 아니라, 지역 소멸을 막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부산시장과 경남도지사는 이제 ‘할 것인가’의 논의를 넘어, 시도민에게 구체적인 로드맵과 실익을 제시하는‘특단의 결단'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하나를 내주고 둘을 얻는 양보의 정치를 기대한다. 명칭이나 청사 위치 같은 상징적 문제로 대업을 그르친다면, 그것은 역사의 흐름을 막는 죄가 될 것이다. 부산과 경남이 보여줄 상생의 이정표가 대한민국 균형 발전의 새로운 표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01.06

추종탁의 [삐大Hi] - 해수부 단 6개월만에 이전! 우리는 왜 30년을 돌아왔나

대한민국 해양 행정의 심장부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1996년 ‘바다의 날’ 선포와 함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탄생한 해양수산부가, 서른 살 청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향인 부산 바다 앞에 짐을 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던졌던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담론이 드디어 행정적 실체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귀결을 마주하는 감회는 개운함보다 씁쓸함이 앞선다. 해양수산부의 탄생은 ‘해양 강국’을 향한 국가적 의지의 집약체였다. 1996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여러 부처에 파편화되어 있던 해양·항만·수산 업무를 통합하며 해양수산부를 신설했다. 이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이를 한 단계 격상시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을 국가 비전으로 천명했다. 바다를 단순히 자원의 보고가 아닌, 대륙과 해양을 잇는 물류와 금융의 허브로 보았던 혜안이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비전은 서울 중심주의라는 견고한 성벽에 막혀 지난 30년간 ‘반쪽짜리 구호’에 머물러야 했다. 놀라운 것은 속도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단 6개월 만에 해양수산부 부처 전체의 이전이 전격적으로 단행된 사실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이토록 쉬운 일이었던가. 대통령의 의지와 집권층의 결단만 있다면 반년도 채 걸리지 않을 일이 왜 지난 30년 동안은 ‘검토’와 ‘용역’, 그리고 ‘시기상조’와 '포퓰리즘'이라는 변명과 비난 속에 갇혀 있었느냐는 말이다. 이 지독한 지체의 배후에는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거대한 기득권과 이를 비호하는 자칭 메이저 신문인 서울지방 신문들의 왜곡된 논조가 자리 잡고 있다. 소위 '중앙지'라 불리는 서울 지역 신문들은 가덕도 신공항을 향해 '고추 말리는 공항', '매표 공항'이라는 자극적인 딱지를 붙이며 지역의 절박함을 비하해왔다. 그들은 수도권의 철도 연장이나 신도시 건설에는 '국가 경쟁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지역의 생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에는 '포퓰리즘'과 '경제성 부족'이라는 가혹한 매질을 서슴지 않았다. 나아가 세종시로의 완전한 수도 이전은 '관습 헌법'이라는 논리에 갇혀 있고, 대법원의 대구 이전이나 헌법재판소의 광주 이전 같은 사법 기관의 분산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 뒤에는 "서울이 아니면 수준이 떨어진다"는 서울 중심주의 세력의 오만한 선동이 숨어 있다. 그러나 해수부라는 부처 하나가 부산에 들어섰다고 해서 ‘해양수도’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서울 중심주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행정 기능의 이동은 시작일 뿐이며, 진정한 해양수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결단이 이어져야 한다. 첫째, 해양 금융 기관의 완전한 이전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포함한 금융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돈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 행정 부처 이전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둘째, 가덕도 신공항의 차질 없는 조기 개항이다. 서울 언론의 방해 공작을 뚫고 해상-철도-항공이 결합된 '트라이포트' 물류 허브를 완성해야만 부산은 비로소 세계적인 해양 거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실질적인 해양 자치권의 확보다. 부산항만공사(BPA) 운영권을 포함한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여, 현장의 목소리가 곧 정책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해양수도 부산의 성공은 단지 한 부처의 지역이전의 성공모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공고했던 서울 중심주의 세력의 논리와 힘을 완전하게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해수부 부산 이전의 6개월은 ‘의지가 있으면 길은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제 더 이상 서울 중심주의 세력들이 쏟아내는 기득권적 논리에 휘둘려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집권층은 이번 결단이 반짝 이벤트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부산을 넘어 대구, 광주, 세종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국토 균형 발전의 물꼬를 터야 한다. 30년의 지체 보상금은 오직 ‘완전한 지방 시대’의 실현으로만 갚을 수 있다.
2025.12.23

[부산경남 DNA] 추종탁의 삐大Hi - 극우화 물결이 낳은 '혐오'... 핀란드에서 한국까지 인류 위협

'미스 핀란드' 인종차별 논란... 집권당까지 가세, '혐오 카르텔' 충격 소위 인권 선진국 핀란드에서 터져 나온 인종차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집권 연정의 주요 인사들까지 노골적인 혐오 행위를 옹호하고 동조하면서 전 세계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이는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가 낳은 비극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인종주의와 혐오의 물결이 다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음을 울린다. 미스 핀란드, '눈찢기' 사진으로 왕관 박탈 수모 지난 9월, 코소보 출신 아버지와 핀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라 자프체씨가 미스 핀란드에 선발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말, 자프체 씨가 중국인과 식사를 하다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상징적인 행동인 '눈찢기'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결국, 조직위원회는 아시아인 조롱 논란을 이유로 그의 미스 핀란드 자격과 왕관을 박탈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겉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이 행동에는 심각한 인종차별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본인은 '두통 때문에 관자놀이를 마사지한 것'이라고 궁색한 해명을 내놓았으나, 이는 오히려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지만, 나는 비즈니스석에 있다'는 오만한 태도가 담긴 영상까지 공개되면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했고, 뒤늦은 공개 사과는 이미 때를 놓친 뒤였다. '인권 선진국'의 민낯: 집권당의 혐오 동조 진정 놀라운 사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소위 '인권 선진국'으로 불리는 핀란드에서 집권 연정의 주축을 이루는 강경 우파 '핀인단(핀란드인들을 위한 당)' 소속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자프체 씨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내가 사라 자프체"라며 '눈찢기' 사진과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버젓이 게시하며 "왕관 박탈은 과도한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핀인단 원내대표까지 이들의 행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혐오 행위에 가담하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반이민, 반난민 구호를 내세우는 핀인단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제2당으로 급부상한 포퓰리즘 정당이다. 현재 1위인 중도 우파 국민연합당과 손잡고 연립 정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곧, 책임 있는 집권 세력의 정치인들이 공공연하게 전 세계인을 상대로 인종차별 행위를 선동하고 있다는 섬뜩한 현실을 의미한다. 정부 차원의 대응 역시 비판을 면치 못했다. 핀란드 인권 대사는 이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일본인의 엑스(X) 계정을 차단해버렸고, 현직 재무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태를 방관했다. 성찰 없는 사회에 드리운 '혐오의 그림자' 핀란드의 집권 정치인들이 노골적으로 아시아인 차별에 동조하는 행태는 전 세계적인 극우화 현상이 낳은 인종주의와 혐오주의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극심한 인종주의와 혐오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참사를 낳은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이 거대한 위협이 이제 다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과연 이 서양 백인들의 아시아인 차별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시점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일련의 혐오 시위와 발언이 과연 핀란드 집권당 정치인들의 행동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개인이 공개적으로 내뱉기에도 민망한 혐오와 차별의 언행에 주요 정당의 정치인들이 대거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 인종차별과 혐오주의에 핍박을 받아 온 대한민국이 이제는 그 극우화 물결에 동조하여 차별과 혐오의 행렬에 합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주변을 엄중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혐오와 차별은 결코 '별것 아닌' 개인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다. 이는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인류의 가치를 훼손하는 악성 종양이며, 이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단호한 배격만이 이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5.12.16

[부산경남 DNA] 추종탁의 삐大Hi - 12.3 그후 1년... PK의 선택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 터졌다. 헌정 질서를 짓밟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 세계가 경악하며 주목했다. 전후(戰後) 빈곤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꽃피운,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2024년의 친위쿠데타'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계엄 정국, 뒤이은 대통령 구속과 탄핵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까지,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이 겪은 소용돌이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잘 만든 첩보 K-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잔혹한 현실 드라마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비극의 주범이자 내란 수괴(首魁) 혐의로 재판대에 오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정을 함께했던 국민의힘 지도부는 여전히 사과와 반성을 외면하며 '오기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보수 진영 내부에서 균열의 징후가 포착됐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25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이번 사과문 발표에 동참한 의원들 가운데는 부산 사하구의 이성권 의원, 수영구의 정연욱 의원, 울산 울주군의 서범수 의원, 그리고 마산의 최형두 의원도 포함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부산 사하의 조경태 의원과 부산진구의 정성국 의원 등도 따로 기자회견을 하거나 개인 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보수가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하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토대로 계엄 이후 무너졌던 보수의 가치에 대한 재건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계엄'이라는 거대한 얼룩을 먼저 씻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사과 대열에 합류한 박 시장과 PK 의원들은 대체로 '합리적 보수'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그들의 개인적 소신도 작용했겠지만, 더 근본적인 동인은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PK 민심의 급격한 이탈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분석된다. 부산·경남권은 계엄과 탄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아닌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물론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찍었다고 해서 모두가 계엄에 대해 찬성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민심의 잣대로 볼 때, 부산·경남 시도민들의 선택은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우호적 민심'에 빨간 불이 켜졌다.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는 기류가 통계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최근 발표된 세 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우선,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36% 대 36%로 동률을 이뤘다. 보수 표집이 과다하다는 비판도 있는 리서치뷰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부산·울산·경남의 정당 지지도가 민주당 43.9%, 국민의힘 35.4%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진보로 편향되었다는 시선을 받기도 하는 여론조사 꽃에서는 민주당이 42.3% 대 31.6%로 민주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에 비해 10% 이상 높았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 모든 지표가 가리키는 확실한 결론은 하나다. PK 민심은 이제 과거처럼 국민의힘에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이지 않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아무리 계엄은 정당했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억지 주장을 반복해도, 다수의 국민은 물론이고, 가장 든든한 기반이었던 부산·경남의 유권자들마저 더 이상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2·3 그 후 1년. 지방선거가 코 앞의 현실로 다가온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나침반이 다시 한번 부산·경남을 가리키고 있다.
2025.12.05

[부산경남 DNA] 추종탁의 삐大Hi -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요.!"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요.” 10·26 사태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 등에 등장하는 이 외침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 김재규는 군사재판 과정에서 이 말을 했다고 주장했으며, 1994년 공개된 녹음 테이프에도 관련 진술이 확인된다. 하지만 현장 목격자의 진술이 없어 진위 여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1979년 10월에 일어났을 법한 이 말이 오늘날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최근 여야의 볼썽사나운 공방 때문이다. 바로 정부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판정 취소 신청 사건에서 최종 승소하면서다. 정부의 이번 완승으로 수천억 원의 배상 책임을 면하게 되자, 정부와 민주당은 이를 현 정부의 대외적 성과로 규정하며 치적으로 내세웠다. 이에 국민의힘은 즉각 여권을 겨냥해 "민주당이 승소의 공을 가로채려 뒤늦게 숟가락을 얹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소송 완승이라는 국익 성과를 두고 여야가 서로 자신들의 공이라며 공방을 벌인 것이다. 이 논쟁의 핵심 쟁점을 팩트만 놓고 살펴보면 이렇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2년 8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한국 정부에 론스타에 약 2억 1,65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하자, 2023년 9월 이 판정에 불복해 ICSID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민주당은 한 장관의 이 같은 소송 제기에 대해 "승산이 없다", "희망 고문"이라며 소송 비용과 이자만 늘릴 뿐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랬던 민주당이 최종 승소하자 마치 자신들이 이 일을 해낸 것처럼 자화자찬을 하면서 국민의힘이 발끈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공이 한동훈 개인에게만 있는 것일까? 물론 당시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취소 신청을 하고 결과를 이끌어낸 한동훈 전 장관의 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승소의 가장 큰 공은 오랜 기간 끈기 있게 이 소송에 임해온 대한민국 정부와 공무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국적인 정치"를 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부와 민주당이 이번 승소 판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면서 과거 정부의 노력이나 공로를 짧게라도 인정하고, 승소 가능성이 낮다며 반대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했다면 어땠을까? 정부는 논란이 일자 뒤늦게나마 "전 정부와 한동훈 전 장관의 결정이 잘한 일"이라며 공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결론이 이렇게 났기에, 맨 처음 성과를 발표할 때의 자세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이같은 '내로남불' 행태는 한두번이 아니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의힘도 결코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의 뻔뻔한 행태는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아예 사과나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조차 드문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야 사이에 정권 교체가 벌써 다섯 번째에 이른다. 정권을 빼앗긴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며, 또 조금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됐건만, 여야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생각은 없이 사생결단식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어느새 10·26 사태가 일어난 지 반세기가 다 되어 간다. 그때 그곳에서 김재규가 했을 법한 말,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요!"가 오늘날 더욱더 마음 깊이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2025.11.26

[부산경남 DNA] 추종탁의 삐大Hi - "망국적인 서울병엔 강력한 백신이...!"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비수도권 대학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종로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6학년도 일반대 수시모집에서 전국 192개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9.77대 1로 집계됐다. 특히 비수도권 110개 대학의 수시 지원자 수는 지난해보다 10만4,272명 증가하며 10.2%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지역별 증가율을 보면 대구·경북 12.4%, 강원 11.7%, 충청 10.6%, 호남 9.8%, 부산·울산·경남 8%로 나타났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지역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 증가와 ‘안정 지원’ 경향을 지목한다. 한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인해 지역 학생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유학할 경우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커졌다. 이로 인해 무리하게 수도권 대학에 지원하는 대신, 지역 대학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분석이 100%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자는 올해 수시에서 지역대 지원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오랜 기간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지배해온 이른바 ‘서울병’이 조금씩 약화되는 조짐을 보는 듯했다. ‘서울병’이란 무조건 서울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언론이 ‘인서울’을 마치 성공의 상징처럼 과대 포장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대입에 실패한 것처럼 보도하면서, 많은 학생들은 수준이 낮더라도 서울 지역 대학에 지원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필자 역시 아이를 키우며 ‘서울병’의 강력함을 경험했다. 분명히 지역에 있는 더 좋은 대학이 있지만 아이는 어떤식으로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우리의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 학부모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아, 가능하면 서울로 가려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서울병’이 서서히 약해지는 현상이 관찰된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을 휩쓸던 영어광풍이 어느 순간 조금씩 약화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한 세대 이상, 우리 사회의 많은 부모는 영어를 못하면 사회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강박에 엄청난 돈을 쓰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강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같은 영어광풍은 조금씩 사라졌다. 서울병도 결국 영어광풍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지역 기업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서울의 소위 명문대학 출신 인력은 지역 공장 근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틈을 지역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비수도권에 있는 대기업 현장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서울보다 임금이 낮거나 근무 환경이 열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대학, 특히 지역 국립대의 경쟁력은 높다. 입학 성적은 서울 대학보다 다소 낮더라도, 졸업 후 취업 성과는 오히려 우수한 경우가 많다. 또한 지역 이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지역 인재 할당제 역시 지역대학의 소위‘아웃풋’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처럼, 정부는 서울병이 약화되는 시점에 강력한 지역 인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 약대 등 선호도가 높은 학과에 대한 지역인재 할당제를 대폭 높히고, 졸업생이 일정 기간 자신이 졸업한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한 차례 추진됐던 공공기관 지역 이전도 반드시 재개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지역 인재 할당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살면서도 좋은 취업과 안정적 생활이 가능한 제도를 마련해야, 서울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망국적 서울병이 조금씩 약해질 조짐을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백신’을 마련할 최적의 시점이다.
2025.11.17

[부산경남 DNA] 추종탁의 삐大Hi- 혐오의 부메랑,대한민국을 향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혐오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을 위협할 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거대한 축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나라는 아니다. 민주주의 대신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주변국을 압박하는 전랑(戰狼) 외교,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조장한 국수주의에 물든 일부 국민들의 오만한 행태는 세계 각지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혐중(嫌中)’ 정서가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혐중 감정은 뚜렷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개인의 감정 차원에서 불만을 품는 것은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혐오가 정치에 스며들고, 더 나아가 국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수준에 이른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20세기 초 혐오 정치가 초래한 비극을 목도했다. 유대인 대학살은 인류사 최악의 범죄였고, 그 이후에도 곳곳에서 소수민족 학살이 반복되었다. 모두가 혐오와 배제의 정치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한민족 또한 혐오의 피해자였다. 생존을 위해 일본을 비롯해 해외로 떠난 조선인들은 ‘조센징은 더럽다’, ‘게으르다’, ‘맞아야 한다’는 차별 속에서 살았다. 그 편견은 결국 “조센징은 죽여도 된다”는 광기로 번졌고, 관동대지진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는 경제 침체와 반(反)이민 정서에 혐중 감정이 결합하면서 다시 혐오 정치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지만, 실상은 아시아인 전체를 향한 인종차별이다. 미국 보수 세력이 중국을 비판한다고 해서 우리가 기뻐할 일은 아니다. 백인의 눈에 한국인과 중국인은 똑같다. 백인은 아시아를 때리고 일본은 중국과 한국을 때린다. 중국은 일본과 한국을 때리고 한국은 또 중국과 일본을 때린다. 웃기지 아니한가? 미국 백인들의 눈에는 똑같은 아시아인들이 미국에서는 인종주의 차별을 다같이 당하면서도 자국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혐오한다. 잊지마라 우리는 지난 수십년동안 혐중 시위보다 훨씬 더 격렬한 일본의 혐한 시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해 온 나라다. 그런 우리나라에서도 혐오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였던 우리가, 이제는 누군가를 향해 차별과 혐오를 외친다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것이 중국이 됐든 일본이 됐든 그 누가 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 세계가 혐오 정치에 물들더라도, 대한민국만큼은 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사는 차별과 배제를 딛고 일어선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민족의 생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혐오하는 불법 이민자들은 과거 미국과 일본, 유럽, 남미 등지에서 차별받으며 살았던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다. 지금 우리가 외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때 일본과 중동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우리의 가족이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 정책을 둘러싸고 온라인에서는 각종 음모론과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책을 최초 추진한 주체가 윤석열 정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 정치권이 혐중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식 당론이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이 혐오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다면 그 결과는 파괴적일 수 있다. 혐오 정치가 낳는 피해는 처음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겨냥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우리가 혐중 시위를 벌이면서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일본의 혐한 시위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의 조상들은 전 세계를 떠돌며 차별받고, 때로는 학살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그런 나라가 이제 혐오 정치의 선두에 선다면, 그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돌아보는 지혜,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다.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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