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기억 生命

등록일 : 2019-07-29 14:43:12.0
조회수 : 398
-(해설) 큰 달이 뜨는 대보름날 불을
내는 것은 배고프지 않게 농사에 알맞은
물을 내려달라는 기도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곧 눈을 녹여서
땅속으로 흘려보낼 것입니다.
호기심 많은 새끼 오리들을 논으로
     
데려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거기 서!
-(해설) 고향을 다시 찾은 듯 오리들은
역시 물이 좋습니다.
얕은 물 속에 뭐가 그리 맛난 것이
많을까요?
들녘마다, 논마다 물이 가득 찼습니다.
벼가 심어지는 이맘때부터 농부의
손길은 바빠집니다.
발목 높이의 얕은 논 물속은 보이지
않는 물의 세상입니다.
품고 있는 알에 신선한 산소를 주려면
쉼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벼를 심기 위해 논에서 잠시 멈춰선
물은 이처럼 다양하고 수많은 생명들을
길러냅니다.
잔인해 보이나요?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먹어야
삽니다.
흐르는 물을 논두렁으로 가두면 땅은
논이 됩니다.
이때부터 물은 논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을 펼쳐냅니다.
뿌리가 생각을 하는 것 같죠?
죽은 듯 메말라 있던 볍씨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은, 물방울의 모양은 볍씨를 깨우고 또
키웁니다.
어른이 되면 독립을 하듯이 싹을 틔운
모는 포기 단위로 심어집니다.
모심기는 모가 물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물방울은 벼의 몸속을 통해 나온 정화된
물입니다.
-물고기 잡아.
-뭐야?
-(해설) 아이들에게 뜨거운 한여름은
짧습니다.
땅속에서 잠자던 생명들이 물을 만나고
일찍이 깨어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논에 낯선 손님들이 방문했습니다.
느리지만 쉬지 않고 물속에 있는 풀을
찾아서 갉아먹습니다.
우주에 있는 블랙홀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줄기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대신해서 이제
우렁이가 뿌려집니다.
농부들은 물과 흙을 살리고 벼를 더
건강하게 하는 농법을 다시 알아가고
있습니다.
물은 아래로만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물은 흐르고
싶어 합니다.
잡초를 향한 우렁이와 오리들의 왕성한
식성으로 논은 벼들의 천국이 됩니다.
속이 빈 볍씨들이 조용하면서 쉼없이
올라옵니다.
물의 힘입니다.
벼는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랍니다.
발자국도 조심스레 내디뎌야 하는
이유가 마침내 시작됐습니다.
볍씨가 열리면서 꽃이 핍니다.
벼꽃입니다.
밥이 되는 밥꽃입니다.
흐르고 싶어 하던 물이 논에서 잠시
멈춰 서 있었던 이유입니다.
물이 가장 즐거워하는 순간이지만 단
한 시간여 만에 꽃은 집니다.
그래서 벼꽃은 부지런한 농부들만 볼 수
있습니다.
짧은 순간 수정이 되면.
볍씨의 방은 닫힙니다.
이제부터 그 속에서 쌀을 길러냅니다.
그래서 이맘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알갱이는 벼꽃가루와 안개입니다.
서로 사랑을 하는 걸까요?
지금 두 줄기 모두 감고 올라갈
무언가를 온몸으로 찾는 중입니다.
작은 줄기가 마침내 큰 줄기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큰 줄기는 격하게 싫은 반응인
것 같죠?
아직 기댈 큰 풀들이 없는 논두렁에서
벌어지는 사랑 아닌 사랑 전쟁입니다.
벼가 낮에 은밀히 꽃을 피우지만
우렁이는 밤에 은밀합니다.
많게는 한꺼번에 1000여 개가 넘는 알을
낳습니다.
물은 논에서 멈춰있는 듯하지만
우렁이의 알 속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농약이 뿌려지지 않은 논과 하천에서
자라나 초저녁별만큼 빛을 뿌립니다.
반딧불이에 빛이 뿌려지면서 별이
됩니다.
물이 시작된 곳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낸다는 것.
아주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순한 반딧불이가 되기 전 유충의 입은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입니다.
살기 위한 달팽이의 몸부림은
반딧불이의 집요한 공격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보는 달은 늘 한 방향, 같은
모습입니다.
이 달이 지구의 물을
자유롭게 흐르게 합니다.
이처럼 그믐에서 보름달로 향할 때
식물에 물이 올라 생명 활동은
활발해집니다.
옛사람들은 이때 씨앗을 심었습니다.
반대로 보름에서 그믐으로 가면 물이
뿌리로 내려가 수확을 했습니다.
강한 햇볕이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반면에 은은한 달빛은 땅속까지
스며듭니다.
땅속 씨앗은 이런 달빛에 반응합니다.
달빛에 젖었습니다.
빛이 물을 만나 생명이 됩니다.
달빛과 대화를 하는 걸까요?
달의 힘으로 물이 흐르면서 식물들은
끊임없이 춤을 춥니다.
또 수다쟁이가 됩니다.
스스로를 표현하는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농사에 큰 힘을 보태는 소는 가족입니다.
-(해설) 여름 한낮 폭염에 사람들은
쉬지만, 식물들은 가장 왕성해집니다.
하지만 태양이 너무 뜨거우면 고난이
시작됩니다.
역사적으로도 가장 무서운 재난은
가뭄이었습니다.
이때 벼는 땅속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한 방울의 물을 더 찾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천부적인 비행술이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은밀한 사마귀를 너무 늦게 발견하면
큰일 납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물의 순환을 돕습니다.
논두렁의 풀들은 태양을 경배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을 펼쳐냅니다.
달님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태양입니다.
인간에게는 매일 아침 다시 살아나는
불멸의 신이었습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지구에 생명 에너지를 무한정
보냅니다.
그래서 지구의 생명은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펼치고 두 팔을 벌려서 그
빛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이 뜨거운 별이 지구에 있는 물을
춤추게 합니다.
물이 춤을 추면 생명이 춤을 춥니다.
햇볕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벼와 잡초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논두렁은 논에서 쫓겨난
잡초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됩니다.
벼와 잡초들의 경쟁은 사람의 눈으로는
느리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릅니다.
벼꽃의 수정이 끝나면 중요한 일이
시작됩니다.
사원의 기둥처럼 벼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고개를 숙일 공간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우렁이와 오리에게 쫓겨 다녔던
논두렁 잡초들도 살아야 합니다.
태양이 절정인 이맘때.
단 며칠만 방치해도 벼들은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벼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땀을 요구합니다.
농부들에게 벼 재배는 곧 잡초와의
전쟁입니다.
태양과 달의 힘으로 물이 순환하는
논두렁에 뭔가가 뿌려집니다.
곤충들의 반응이 다릅니다.
풀들을 죽이기 위한 농약입니다.
논두렁 풀숲에 깃들어 살던 손님들은
어떻게 될까요?
비틀거립니다.
떨어집니다.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 즉각
나타납니다.
농약은 흐름이 아니라 멈춤이 됩니다.
고통이 됩니다.
농약은 생명을 멈추게 합니다.
농약이 뿌려진 뒤의 논두렁은 참혹한
고통의 색깔이 남습니다.
들녘의 색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일수록 벼는 더 잘 익은
것입니다.
농약으로 사라졌던 메뚜기들이
돌아왔습니다.
바쁜 가을걷이에는 부지깽이도 거듭니다.
논의 얼굴이 변합니다.
하지만 원래 단 한 순간도 같은 얼굴인
적은 없었습니다.
벼가 사라진 논과 하천이 삭막해
보이는가요?
눈높이를 낮추어보면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여전히 생명과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벼가 베어진 그루터기가 꿈틀거립니다.
새순이 올라옵니다.
봄이 다시 시작된 듯 그침이 없습니다.
손가락 한 뼘 높이의 공간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세상이 순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이제 물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도토리나무는 터를 보고 난다고
했습니다.
농사가 흉년이 될 듯하면 도토리를 많이
맺어서 굶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에게도 먹을 것이 귀했던
농부들에게도 귀한 식량이 됩니다.
물이 얼면 육각형이 됩니다.
물이 이야기합니다.
물은 읽을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물이 가장 날카로울 때는
아무런 기척 없이 내리는 서리입니다.
창끝처럼 생명의 몸을 파고들어 물기를
빼냅니다.
생명은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리와 함께 모습을 바꿉니다.
물이 DNA에 그 기억을 남깁니다.
그 기억이 생명입니다.
얼음장 밑.
차가운 계절에도 우글거립니다.
심장이 뜁니다.
그래서 물을 품은 논은 사계절
생명의 터전이 됩니다.
주변에 강과 산과 모든 것이 하나의
생태계로 어우러집니다.
물은 생명을 표현하며 보여주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모든 생명은 거미줄처럼 얽혀있습니다.
우리는 물이며 서로 얽혀있는
생명입니다.
물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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