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앤썰 - 음악인생 50년 가수 윤수일
등록일 : 2026-04-20 16:2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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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용으로 머물렀던 우리 가요가 이제 케이팝으로 인정받으면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죠.
그중에서 시티팝이라는 장르도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재조명받는 시티팝의 원조 그리고 록 트로트의 창시자 국민 응원가를 넘어서 갑작스러운 소환으로 MZ세대까지 인지도 아주 인기가 폭발입니다.
아파트의 주인공 올해로 데뷔 50년을 맞는 레전드 윤수일 가수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네, 스튜디오에서 뵈니까 분위기도 색다르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네, 이제 방금 50주년이라고 소개를 드렸는데요. 50주년 50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죠.
-참 세월은 빠릅니다.
-우리 어르신들 꼭 그 얘기하시던데 5월 1일이죠.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거?
이제 뭐 며칠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들 메모도 좀 해 두시고요.
혹시 시간 나시면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베테랑이래도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 있죠?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 50년을 제가 음악의 길을 걸어오면서 25개의 음반을 발표를 하고요.
-2년에 한 장씩
-네, 그래서 그러한 음악들을 좀 이제 50주년을 맞이해서 정리한다고 그럴까요?
집대성 해서 부분 부분 챕터를 정해서 여러분들에게 잘 좋은 환경에서 좋은 무대에서 그러니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니까 환경이 좋습니다.
거기에서 좋은 그런 무대로 여러분들을 찾아뵈올 생각입니다.
-네, 사실 요즘에 윤수일 가수가 또 이렇게 소환이 계속되고 있는 거는 물론 이 아파트 불후의 명곡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24년도죠. 블랙핑크의 로제 그리고 브루노 마스가 조금은 다른 신축 아파트를 불렀어요.
그래서 그 구축 아파트 윤수일의 아파트도 소환이 됐는데 그 지금까지의 아파트 열풍에서 좀 오랜만이시죠?
-새로운 충격이죠 새로운 충격입니다. 로제 양이 일곱 살 될 때부터 한국에 살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마 로제 양이 제 노래를 들었고 제 노래 아파트라는 걸 항상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브루노 마스를 만나고 한국 사람들이
또 좋아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노래가 뭔가 이렇게 해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이 apt라는 표기는 저의 독창적인 표기였습니다.
-아 그래요?
-음반에 음반에 그것도 40년 전이죠.
-그전에는 apt라는 표기가 없었다는 거네요.
-없었다고 봐야죠. 원래 영어에는 아파트먼트입니다.
-예, 의미도 좀 다르지만요.
-그리고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미국에서 음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파트먼트를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건 나의 어떤 독창적인 그 표현을 기법을 썼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충격이고 또 그걸로 인해서 더 세계적으로
심플하게 제목이 세계적인 음악 팬들한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거 그건 정말 축하할 일이고 저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아파트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부동산인 그 아파트도 좋아하고요.
노래 아파트도 참 좋아합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고유 명사가 됐죠.
그런데 이 아파트 얘기 조금 더 하겠습니다.
장범준, 가수 장범준 벚꽃 엔딩 부르는 가수도 한참 후배입니다만 그 가수도 리메이크를 했고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좀 전에 제가 구축 아파트, 신축 아파트 얘기했는데 장범준의 리모델링 아파트도 나왔어요.
이러다 보면 이제 조금 있으면 아파트 단지 또 이렇게 나올 것 같은데 어디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파트가 리메이크 될 때 다시 소환될 때마다 드는 느낌 옛날 젊은 시절 생각 안 나세요?
-그거 참 최근에 가장 가깝게는 김다연 양이라고 어린 트로트 가수가 또 리메이크를 했고요.
전으로 돌아가면 아파트, 김건모 군이 제일 먼저 디스코 풍으로 해가지고 그것도 굉장히 디스코를 또 좋아하는 분들한테 사랑을 받았고 그다음에 싸이가 공연 때 부릅니다.
그다음에 요즘 또 대세인 임영웅 가수가 후배가 또 자기가 서울에서도 전국에서 할 때
아파트를 꼭 그 자기 노래로 부르고 이렇게 제 노래가 이제 주인이 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나눠줬다라는 생각을 하니까 제가 마음이 참 편합니다.
그래서 참 제가 외람되지만 체력이 닿는 한까지 또 제2의 아파트 제2의 터미널, 제3의 아름다워 이런 곡들을 지금 또 만들려고 그러는데 체력이 지금 왔다 갔다 합니다.
-체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체력은 상당하십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이제 옛날 얘기 좀 잠깐 해볼게요.
저는 뭐 그 어린 시절부터 윤수일 님의 가수를 노래를 많이 듣고 또 거기에 맞춰서 율동도 하고 그런 세대인데 가수 인순이 씨가 나이로는 좀 동생이죠.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지금은 이제 뭐 다문화 가정 혹은 1세대 가수 이렇게 부르지만 그 당시는 혼혈 가수라는 말을 썼잖아요.
-맞습니다.
-젊은 시절이 진짜 꽃미남이셨는데 이국적인 외모도 상당히 어필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의 분위기가 그 당시에 그 혼혈 가수 요즘에 이제 다문화 가수라고 부르는데 그 꽤 많았었죠. 그 당시에는
-그 외모를 떠나서 그 다문화 국제 결혼을 통해서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똑바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 그건 뭐 제가 뭐를 이렇게 나쁘다고 제가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때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호적 올리기도 어렵고 그렇지 않습니까?
또 사회적으로 저런 상황에서 태어난 친구를 큰 기업에서 데려다 쓸 수도 없고 공무원으로 쓸 수도 없고 저는 학교 다니면서 막막했어요.
제가 너무 좀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아니 인터뷰를 하고 뭐 어디 가서 엄마가 어떠냐 아버지가 어떠냐 이렇게 하면 야, 저 집안 우리가 집안을 따지잖아요.
-또 경상도 출신이라
-그래서 이런 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공부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되는데 이것부터가 고민인 거예요.
-제가 한 구절 또 읽어드리겠습니다. 이거 윤수일 가수의 에세이 중에 한 대목입니다.
유난히 긴 팔다리가 더 길어질까 봐 엉거주춤 자세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피노키오처럼 솟은 콧대를 꼭꼭 눌렀다라고 글을 쓰셨어요.
어릴 때 그 상처가 참 많았다는 얘기죠.
-그러니까요.
그거와 제가 말씀드리는 게 또 반복됩니다마는 그 자신과의 싸움 저를 둘러싼 환경과의 싸움에 그 성장기를 참 어떻게 보면 눈물로 보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음악을 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요즘도 오디션에 나오는
친구들을 가만히 보면 집안이 풍요롭고 금수저 애들은 그렇게 노래 감정이 안 나옵니다.
-필이 안 산다
-다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친구들을 보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것부터 나오잖아요.
그것처럼 저도 돌이켜 보면 고생스러웠고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저의 밑거름이 음악적 밑거름이 됐다는 걸로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그렇게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 당대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동경하셨던 가수 윤수일은 그 장르를 하는가 했더니 트로트,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참 이런 변신이 또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제가 이 부울경 출신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래요? 그것도 지역하고 관계가 있나요?
-있습니다. 여기는 트로트가 강세입니다. 우리 울산, 부산, 마산, 경주 이쪽은 말이죠. 예, 남쪽은 특히 그렇습니다.
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설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그 어머니가 그 머리맡에 놔놓고 주무시는 트랜지스터에서 나오는 돌아가신 배호 선생
-섬각지?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잔 공연 이런 노래들을 어릴 때 들었는데 그게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심취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비틀스 음악도 듣고 이게 섞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서울 가서 다운타운에 아주 유명한 그룹에 제일 말단으로 들어가서 그때부터
음악 공부를 시작하는데 제가 가는 방향을 제 스스로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릴 때 가지고 있는
이 재산 그러니까 우리나라 가요의 재산 이거 하고 해외에서 받아들인 이 팝에서 받아들인 거 하고 믹스을 하는 것이 제 스스로 이 길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짜짝 쿵짝 쿵짜짝 쿵짝 이거를 예, 고고 리듬에 맞춰서 이 리듬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건 상상할 수 그 당시로서는 편곡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건데 저는 그걸 시도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많은 음악 팬들이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오늘날의 전설 윤수일의 출발점 사랑만은 않겠어요인데 제가 사석에서 들은 얘기 하나 더 있는데요.
이 저 사랑만은 않겠어요 그 오케이 받기 전날 사모님과 부부 싸움을 엄청 하셨답니다.
-사실, 그거는 사실입니다. 그런 20살짜리가 20살에 제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이런 구구절절 눈물 나는 가사를 어떻게 내가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하고 사귀던 그 나중에는 아기 엄마가 됐습니다마는 그분과 제가 아주 심한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뭐 그거는 너무 길기 때문에 그 내용도 다 말씀을 못 드리지만 그런 막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은 상태에서 녹음실에 와서
몇 번을 실패를 그동안에 한 며칠간을 실패를 하다가 그날 딱 들어가서 처음에 노래를 딱 부르는데 디렉터가 오케이 하는 거예요.
야, 그거 참 묘하죠.
-네, 히트곡이 참 많습니다.
제가 들은 것만 해도 참 세기가 어려운데 그 많은 히트곡 중에 지금 늘 나를 기쁘게 해주고 효자 노릇하는 곡이 있다 그러면 어떤 곡일까요?
-와 그러면 딱 하나 짚으라면 참 뭐 좀 답답합니다. 저를 무명에서 유명으로 이렇게 바꿔준 아까 사랑만은 않겠어요
-우선 후보고
-예, 또 이렇게 아파트라는 주거 문화가 우리나라가 확 바뀌면서 그때 제가 타이밍적으로 잘 맞아서 아파트를 40년 전에 히트 쳤던 그 아파트라는 겁니다.
-2번 후보곡입니다.
-그다음에 최근에 한 10여 년 전에 제가 터미널에 비가 오네 이런 노래 하나 했잖아요.
-3번입니다. 터미널
-이것도 좀 연세 드신 분들은 이 터미널에 대해서 그렇게 또 심취하시잖아요. 그래서 그 정도로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탑3를 이렇게 뽑아주셨네요.
저도 그 탑3 그리고 저는 뭐 개인적으로는 황홀한 고백도 참 좋아하는데 아주 신나고 저 어려서 황홀한 고백의 그 리듬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또 노래를 좀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부르곤 했는데
-그런데 MZ세대, MZ세대는 아름다워라는 곡에 또 굉장히 매료를 느끼는 모양이에요.
-그 얘기를 제가 지금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그렇습니까?
-아름다워라는 곡이 미스코리아에서 지금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이제 공중파에서는 중계를 안 합니다만 꽤 많이 출연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거기서 꽃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셨고 그때 들렸던 곡이란 말이죠.
-맞습니다. 그거는 약간 제가 의도적으로 만든 곡이기도 해요.
거기 자꾸 매년 초대를 받으니까 그 아름다운 미녀들에게 제가 퍼포먼스 겸 할 수 있는 노래가 뭘까 이거를 고민하다가 그래 아름다워야 그래서 만든 곡입니다.
-사실 그 미스코리아 대회의 단골 초대 손님이었는데 몇 번인지 기억은 하세요?
-여러 번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잘나서라기보다도
-키가 커서 갔다고 얘기하던데?
-그러니까요. 다 저하고 경쟁하시는 분들이 다 아담 사이즈라
-조용필 선생도 좀 작고 저하고 높이가 비슷한 분이고
-전영록 씨 그랬죠 뭐 김수철 씨 그랬죠
뭐 다 저하고 이렇게 서면은 제가 머리 하나는 위로 올라가니까 그 미인들이 키가 크잖아요.
키가 크고 또 높은 힐까지 신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맞는 거죠 서수남 형님은 저보다 더 크고
-그리고 시티팝이라는 거 제가 오프닝에서 잠깐 말씀드렸는데요.
그 시티팝이라는 장르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가 18살입니다. 7살의 아들
딱 18살에 가방을 둘러메고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니 그때부터는 이 도시가 주는 위압감, 외로움, 불안감, 불확실성, 불확실성 이런 것들이 짓누르잖아요.
그리고 음악을 하니까 가사가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밀려오는 자동차, 콘크리트 빌딩 숲 제2의 고향 같은 노래 고향을 떠나오던 날 그날이 언제였던가
어머니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날 이런 곡 그다음에 아파트, 아름다워 다 도시에 대한 어떤 그런 내용을 제가 쓸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느냐? 아니거든요.
이 부산도 그렇고 서울도 그렇고 많은 시골 시골에 있는 청소년들이 몰려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하고 똑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요.
이 살벌한 곳에서 이 냉정한 곳에서 이 경쟁이 많은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그 고독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제 가사에 그 많은 분들이 제 가사를 참 좋아해 주고 이래서 시티팝이라는 도시의 음악이라는 장르가 제 닉네임이 된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시티팝하고는 조금은 개념은 다른데 어쨌든 그 윤수일표 시티팝은 분명히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서 오늘은 세계적으로도 각광받는 그런 한국 케이팝 중에 한 장르가 됐습니다.
자, 이제 저희 톡앤썰의 고정 코너인데요. AI가 대신 물어봐 주는 코너입니다.
AI가 질문을 몇 개 뽑아줬는데 한번 간단히 대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1번 나에게 더 소중한 수식어는? 골라주시면 돼요.
1번 7080 소녀 팬들을 잠 못 들게 했던 원조 꽃미남
2번 한국적인 록의 세련미를 더한 시티록의 대부
어디가 좋으십니까? 1번, 2번. 선택 꼭 하셔야 돼요.
-예, 이제 제가 이제 연식도 좀 있고 하니까 꽃미남 소리가
-1번 꽃미남
-좋은데요?
-아 그렇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세월이잖아요.
-네, 저는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꽃미남 네, 좋습니다.
-별말씀 다 하십니다.
-부럽습니다. 자, 다음 질문입니다. 마지막 곡을 쓴다면 배경으로 삼고 싶은 도시는?
나의 고향 울산 아니면 지금 내가 다시 제2의 꽃을 피우고 있는 부산
-이거는 조금 곤란한
-꼭 선택하셔야 돼요.
-부산을 너무 많이 사랑했습니다, 제가
내가 서울을 떠나온 것도 이 부산에 이 아름다움 이 바다의 아름다움 이런 게 너무 좋기 때문에 제가 부산에 정착했거든요.
그리고 부산에 정착하면서 만든 곡들도 많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시간상 다 말씀 못 드리지만 앞으로도 여기에서 있으면서 뭔가 우리가
이 바다와 부산과 또 이 부울경이 어우러지는 이런 약간은 환상적이고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제 고향 울산은 너무 공업화가 됐어요.
조금 낭만적인 부분은 조금 부산보다 떨어지니까 아무래도 여기를 배경으로 한 저의 마지막 인생곡이 나오지 않을까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 무대 위에서 딱 한 곡을 선택해 이제 마지막 곡이에요.
딱 한 곡을 선택을 한다면 1번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하는 황홀한 고백 2번 모든 관객과 하나 되어 부르는 사랑만은 않겠어요 선택해 주세요.
큰아들 작은 아들 누가 더 예쁘냐 같은데 이게 좀 죄송하긴 하네요.
-사실은 아파트도 많이 사랑을 받았지만 이 사랑만은 않겠어요 황홀한 고백도 너무 제가 다 아픈 내 손가락들인데요.
황홀한 고백이 좀 더 좀 더 지금 현 시대하고 맞습니다.
예, 그래서 무대에서는 좀 화려함도 있어야 되기 때문에 황홀한 고백을 제가 이번에도 50주년에 오프닝 곡으로 황홀한 고백을 하고 엔딩은 사랑만은 않겠어요
-순서를 한번 앞뒤를 바꿔 보시네요. 네, 그래서 참 이 전성기가 몇 번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이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
-감사합니다.
-이번 공연도 성공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더 보고 싶은 관객은?
1번 40년 전 오빠를 외치던 그 시절 소녀 팬들 2번 아파트 챌린지를 하며 찾아온 MZ세대 젊은 팬들 어떻게 고르시려나 큰일 났네.
-이번 공연 때는 솔직히 MZ세대에 대한 기대는 없습니다. MZ세대들이 저를 좋아해서 엄마 아버지에게 예, 표를
-아주 바람직한
-예, 선물하는 그런 거기 때문에 제가 MZ세대에게는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또 공연장에서는 우리 바로 40년 전 소녀 팬들 지금 거의 중하시지 않겠습니까?
-중년의 소녀죠. 뭐
-그렇죠. 그래도 소녀는 소녀입니다. 참 특이하죠. 똑같아요.
제가 20살 때 노래 부를 때 그 환호성이나 지금도 다 똑같습니다. 볼륨은 조금 떨어진다.
-아, 그렇구나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해서 둘 다 이렇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거는 뭐 AI 질문은 아니고 제가 살짝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또 한 번에 다시 오는 전성기를 맞게 도와준 로제 양에게 밥을 한번 산다면? 메뉴를 뭘로 하시겠습니까?
-로제 양이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7살 때부터 저 한국에서 자랐으니까 된장찌개를 맛있게 하고 거기다가 목살 삼겹살 목살을 아주 크게 해서
-큼직큼직하게
-그래, 그래, 이렇게 내가 대접을 해야 로제 양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래가 씩씩하게 나옵니다. 돼지고기 좋지 않습니까.
-예, 아주 건강식품입니다.
-그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항상 이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뭘로 할까하고 생각을 하는데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뭐 평범하지만 꼭 드려야 되는 질문입니다.
앞으로 가수 윤수일은 윤수일은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이제 우리의 한국의 대중 문화도 조금씩 변모해 갑니다.
지금 다 이렇게 보면 신인 가수들이 굉장히 많이 돌출되고 있습니다.
활동도 많이 하고 그 친구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제 소위 좀 연조가 있는 가수들은 사실 설 땅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시대거든요.
그래서 저는 더욱더 노력하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 가요 환경을 보면 레전드가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가 골동품이 점점 세월이 가면서 비싸지잖아요.
더 가치를 그림도 오래된 그림이 가치가 높듯이 그래서 제가 그러한 레전드가 레전드로서의 값진 레전드로서의 살아남아야 되겠다라는 이런 어떤, 과욕은 아니고
-현역 레전드
-레전드가 대우받는 가요계를 한번 제가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네, 지금 뭐 이렇게 뜨겁게 활동하고 계시니까 그 다짐은 아마도 현실화되지 않을까라고
-조금 더 첨언하면 이거는 편집해 주십시오.
-말씀하시죠. 편집 안 하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지금 80이 다 넘은 롤링 스톤스 믹 제거하고 그 쭈글쭈글한 영감들이 전 세계 공연에 수입 1위입니다.
-아, 그래요?
-네, 그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그분들이 올라가서 제대로 20, 30대처럼 연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무대에 올려놓으면 그런 추억을 우리가 반추할 수 있고 그 옛날 생각도 더불어서 그 옛날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거를 즐기시는 거예요.
음악 팬들이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좀 와서 윤수일이 공연을 하면은 참 그때 내 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 아 지금도 저래 나오네 이렇게 해서 참 그걸 좀 값지게 생각해 주시는 것 그런 분위기가 되어
주기를 지금 이번 공연을 50주년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그래서 제가 KNN에 초대를 받았을 때 이렇게 거절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자, 사실 50년사를 오늘 다 얘기할 수는 없죠. 그래도 조금 어느 한 단면 뭐 조금 조금씩 이렇게 얘기를 나눠봤는데 사실 그 긴 세월이죠.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눈 깜짝할 새가 아까 지나갔다고 얘기했잖아요. 아마도 앞으로 또 몇십 년 후에 그런 말씀하실 거예요.
눈 깜짝할 때 또 100살이 넘었네 이러면서 또 말씀하실 것 같은데 그때도 왕성히 활동하는 그런 현역 레전드로 남기를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중에서 시티팝이라는 장르도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재조명받는 시티팝의 원조 그리고 록 트로트의 창시자 국민 응원가를 넘어서 갑작스러운 소환으로 MZ세대까지 인지도 아주 인기가 폭발입니다.
아파트의 주인공 올해로 데뷔 50년을 맞는 레전드 윤수일 가수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네, 스튜디오에서 뵈니까 분위기도 색다르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네, 이제 방금 50주년이라고 소개를 드렸는데요. 50주년 50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죠.
-참 세월은 빠릅니다.
-우리 어르신들 꼭 그 얘기하시던데 5월 1일이죠.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거?
이제 뭐 며칠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들 메모도 좀 해 두시고요.
혹시 시간 나시면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베테랑이래도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 있죠?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 50년을 제가 음악의 길을 걸어오면서 25개의 음반을 발표를 하고요.
-2년에 한 장씩
-네, 그래서 그러한 음악들을 좀 이제 50주년을 맞이해서 정리한다고 그럴까요?
집대성 해서 부분 부분 챕터를 정해서 여러분들에게 잘 좋은 환경에서 좋은 무대에서 그러니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니까 환경이 좋습니다.
거기에서 좋은 그런 무대로 여러분들을 찾아뵈올 생각입니다.
-네, 사실 요즘에 윤수일 가수가 또 이렇게 소환이 계속되고 있는 거는 물론 이 아파트 불후의 명곡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24년도죠. 블랙핑크의 로제 그리고 브루노 마스가 조금은 다른 신축 아파트를 불렀어요.
그래서 그 구축 아파트 윤수일의 아파트도 소환이 됐는데 그 지금까지의 아파트 열풍에서 좀 오랜만이시죠?
-새로운 충격이죠 새로운 충격입니다. 로제 양이 일곱 살 될 때부터 한국에 살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마 로제 양이 제 노래를 들었고 제 노래 아파트라는 걸 항상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브루노 마스를 만나고 한국 사람들이
또 좋아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노래가 뭔가 이렇게 해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이 apt라는 표기는 저의 독창적인 표기였습니다.
-아 그래요?
-음반에 음반에 그것도 40년 전이죠.
-그전에는 apt라는 표기가 없었다는 거네요.
-없었다고 봐야죠. 원래 영어에는 아파트먼트입니다.
-예, 의미도 좀 다르지만요.
-그리고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미국에서 음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파트먼트를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건 나의 어떤 독창적인 그 표현을 기법을 썼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충격이고 또 그걸로 인해서 더 세계적으로
심플하게 제목이 세계적인 음악 팬들한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거 그건 정말 축하할 일이고 저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아파트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부동산인 그 아파트도 좋아하고요.
노래 아파트도 참 좋아합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고유 명사가 됐죠.
그런데 이 아파트 얘기 조금 더 하겠습니다.
장범준, 가수 장범준 벚꽃 엔딩 부르는 가수도 한참 후배입니다만 그 가수도 리메이크를 했고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좀 전에 제가 구축 아파트, 신축 아파트 얘기했는데 장범준의 리모델링 아파트도 나왔어요.
이러다 보면 이제 조금 있으면 아파트 단지 또 이렇게 나올 것 같은데 어디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파트가 리메이크 될 때 다시 소환될 때마다 드는 느낌 옛날 젊은 시절 생각 안 나세요?
-그거 참 최근에 가장 가깝게는 김다연 양이라고 어린 트로트 가수가 또 리메이크를 했고요.
전으로 돌아가면 아파트, 김건모 군이 제일 먼저 디스코 풍으로 해가지고 그것도 굉장히 디스코를 또 좋아하는 분들한테 사랑을 받았고 그다음에 싸이가 공연 때 부릅니다.
그다음에 요즘 또 대세인 임영웅 가수가 후배가 또 자기가 서울에서도 전국에서 할 때
아파트를 꼭 그 자기 노래로 부르고 이렇게 제 노래가 이제 주인이 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나눠줬다라는 생각을 하니까 제가 마음이 참 편합니다.
그래서 참 제가 외람되지만 체력이 닿는 한까지 또 제2의 아파트 제2의 터미널, 제3의 아름다워 이런 곡들을 지금 또 만들려고 그러는데 체력이 지금 왔다 갔다 합니다.
-체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체력은 상당하십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이제 옛날 얘기 좀 잠깐 해볼게요.
저는 뭐 그 어린 시절부터 윤수일 님의 가수를 노래를 많이 듣고 또 거기에 맞춰서 율동도 하고 그런 세대인데 가수 인순이 씨가 나이로는 좀 동생이죠.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지금은 이제 뭐 다문화 가정 혹은 1세대 가수 이렇게 부르지만 그 당시는 혼혈 가수라는 말을 썼잖아요.
-맞습니다.
-젊은 시절이 진짜 꽃미남이셨는데 이국적인 외모도 상당히 어필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의 분위기가 그 당시에 그 혼혈 가수 요즘에 이제 다문화 가수라고 부르는데 그 꽤 많았었죠. 그 당시에는
-그 외모를 떠나서 그 다문화 국제 결혼을 통해서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똑바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 그건 뭐 제가 뭐를 이렇게 나쁘다고 제가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때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호적 올리기도 어렵고 그렇지 않습니까?
또 사회적으로 저런 상황에서 태어난 친구를 큰 기업에서 데려다 쓸 수도 없고 공무원으로 쓸 수도 없고 저는 학교 다니면서 막막했어요.
제가 너무 좀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아니 인터뷰를 하고 뭐 어디 가서 엄마가 어떠냐 아버지가 어떠냐 이렇게 하면 야, 저 집안 우리가 집안을 따지잖아요.
-또 경상도 출신이라
-그래서 이런 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공부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되는데 이것부터가 고민인 거예요.
-제가 한 구절 또 읽어드리겠습니다. 이거 윤수일 가수의 에세이 중에 한 대목입니다.
유난히 긴 팔다리가 더 길어질까 봐 엉거주춤 자세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피노키오처럼 솟은 콧대를 꼭꼭 눌렀다라고 글을 쓰셨어요.
어릴 때 그 상처가 참 많았다는 얘기죠.
-그러니까요.
그거와 제가 말씀드리는 게 또 반복됩니다마는 그 자신과의 싸움 저를 둘러싼 환경과의 싸움에 그 성장기를 참 어떻게 보면 눈물로 보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음악을 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요즘도 오디션에 나오는
친구들을 가만히 보면 집안이 풍요롭고 금수저 애들은 그렇게 노래 감정이 안 나옵니다.
-필이 안 산다
-다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친구들을 보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것부터 나오잖아요.
그것처럼 저도 돌이켜 보면 고생스러웠고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저의 밑거름이 음악적 밑거름이 됐다는 걸로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그렇게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 당대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동경하셨던 가수 윤수일은 그 장르를 하는가 했더니 트로트,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참 이런 변신이 또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제가 이 부울경 출신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래요? 그것도 지역하고 관계가 있나요?
-있습니다. 여기는 트로트가 강세입니다. 우리 울산, 부산, 마산, 경주 이쪽은 말이죠. 예, 남쪽은 특히 그렇습니다.
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설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그 어머니가 그 머리맡에 놔놓고 주무시는 트랜지스터에서 나오는 돌아가신 배호 선생
-섬각지?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잔 공연 이런 노래들을 어릴 때 들었는데 그게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심취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비틀스 음악도 듣고 이게 섞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서울 가서 다운타운에 아주 유명한 그룹에 제일 말단으로 들어가서 그때부터
음악 공부를 시작하는데 제가 가는 방향을 제 스스로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릴 때 가지고 있는
이 재산 그러니까 우리나라 가요의 재산 이거 하고 해외에서 받아들인 이 팝에서 받아들인 거 하고 믹스을 하는 것이 제 스스로 이 길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짜짝 쿵짝 쿵짜짝 쿵짝 이거를 예, 고고 리듬에 맞춰서 이 리듬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건 상상할 수 그 당시로서는 편곡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건데 저는 그걸 시도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많은 음악 팬들이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오늘날의 전설 윤수일의 출발점 사랑만은 않겠어요인데 제가 사석에서 들은 얘기 하나 더 있는데요.
이 저 사랑만은 않겠어요 그 오케이 받기 전날 사모님과 부부 싸움을 엄청 하셨답니다.
-사실, 그거는 사실입니다. 그런 20살짜리가 20살에 제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이런 구구절절 눈물 나는 가사를 어떻게 내가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하고 사귀던 그 나중에는 아기 엄마가 됐습니다마는 그분과 제가 아주 심한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뭐 그거는 너무 길기 때문에 그 내용도 다 말씀을 못 드리지만 그런 막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은 상태에서 녹음실에 와서
몇 번을 실패를 그동안에 한 며칠간을 실패를 하다가 그날 딱 들어가서 처음에 노래를 딱 부르는데 디렉터가 오케이 하는 거예요.
야, 그거 참 묘하죠.
-네, 히트곡이 참 많습니다.
제가 들은 것만 해도 참 세기가 어려운데 그 많은 히트곡 중에 지금 늘 나를 기쁘게 해주고 효자 노릇하는 곡이 있다 그러면 어떤 곡일까요?
-와 그러면 딱 하나 짚으라면 참 뭐 좀 답답합니다. 저를 무명에서 유명으로 이렇게 바꿔준 아까 사랑만은 않겠어요
-우선 후보고
-예, 또 이렇게 아파트라는 주거 문화가 우리나라가 확 바뀌면서 그때 제가 타이밍적으로 잘 맞아서 아파트를 40년 전에 히트 쳤던 그 아파트라는 겁니다.
-2번 후보곡입니다.
-그다음에 최근에 한 10여 년 전에 제가 터미널에 비가 오네 이런 노래 하나 했잖아요.
-3번입니다. 터미널
-이것도 좀 연세 드신 분들은 이 터미널에 대해서 그렇게 또 심취하시잖아요. 그래서 그 정도로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탑3를 이렇게 뽑아주셨네요.
저도 그 탑3 그리고 저는 뭐 개인적으로는 황홀한 고백도 참 좋아하는데 아주 신나고 저 어려서 황홀한 고백의 그 리듬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또 노래를 좀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부르곤 했는데
-그런데 MZ세대, MZ세대는 아름다워라는 곡에 또 굉장히 매료를 느끼는 모양이에요.
-그 얘기를 제가 지금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그렇습니까?
-아름다워라는 곡이 미스코리아에서 지금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이제 공중파에서는 중계를 안 합니다만 꽤 많이 출연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거기서 꽃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셨고 그때 들렸던 곡이란 말이죠.
-맞습니다. 그거는 약간 제가 의도적으로 만든 곡이기도 해요.
거기 자꾸 매년 초대를 받으니까 그 아름다운 미녀들에게 제가 퍼포먼스 겸 할 수 있는 노래가 뭘까 이거를 고민하다가 그래 아름다워야 그래서 만든 곡입니다.
-사실 그 미스코리아 대회의 단골 초대 손님이었는데 몇 번인지 기억은 하세요?
-여러 번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잘나서라기보다도
-키가 커서 갔다고 얘기하던데?
-그러니까요. 다 저하고 경쟁하시는 분들이 다 아담 사이즈라
-조용필 선생도 좀 작고 저하고 높이가 비슷한 분이고
-전영록 씨 그랬죠 뭐 김수철 씨 그랬죠
뭐 다 저하고 이렇게 서면은 제가 머리 하나는 위로 올라가니까 그 미인들이 키가 크잖아요.
키가 크고 또 높은 힐까지 신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맞는 거죠 서수남 형님은 저보다 더 크고
-그리고 시티팝이라는 거 제가 오프닝에서 잠깐 말씀드렸는데요.
그 시티팝이라는 장르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가 18살입니다. 7살의 아들
딱 18살에 가방을 둘러메고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니 그때부터는 이 도시가 주는 위압감, 외로움, 불안감, 불확실성, 불확실성 이런 것들이 짓누르잖아요.
그리고 음악을 하니까 가사가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밀려오는 자동차, 콘크리트 빌딩 숲 제2의 고향 같은 노래 고향을 떠나오던 날 그날이 언제였던가
어머니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날 이런 곡 그다음에 아파트, 아름다워 다 도시에 대한 어떤 그런 내용을 제가 쓸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느냐? 아니거든요.
이 부산도 그렇고 서울도 그렇고 많은 시골 시골에 있는 청소년들이 몰려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하고 똑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요.
이 살벌한 곳에서 이 냉정한 곳에서 이 경쟁이 많은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그 고독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제 가사에 그 많은 분들이 제 가사를 참 좋아해 주고 이래서 시티팝이라는 도시의 음악이라는 장르가 제 닉네임이 된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시티팝하고는 조금은 개념은 다른데 어쨌든 그 윤수일표 시티팝은 분명히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서 오늘은 세계적으로도 각광받는 그런 한국 케이팝 중에 한 장르가 됐습니다.
자, 이제 저희 톡앤썰의 고정 코너인데요. AI가 대신 물어봐 주는 코너입니다.
AI가 질문을 몇 개 뽑아줬는데 한번 간단히 대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1번 나에게 더 소중한 수식어는? 골라주시면 돼요.
1번 7080 소녀 팬들을 잠 못 들게 했던 원조 꽃미남
2번 한국적인 록의 세련미를 더한 시티록의 대부
어디가 좋으십니까? 1번, 2번. 선택 꼭 하셔야 돼요.
-예, 이제 제가 이제 연식도 좀 있고 하니까 꽃미남 소리가
-1번 꽃미남
-좋은데요?
-아 그렇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세월이잖아요.
-네, 저는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꽃미남 네, 좋습니다.
-별말씀 다 하십니다.
-부럽습니다. 자, 다음 질문입니다. 마지막 곡을 쓴다면 배경으로 삼고 싶은 도시는?
나의 고향 울산 아니면 지금 내가 다시 제2의 꽃을 피우고 있는 부산
-이거는 조금 곤란한
-꼭 선택하셔야 돼요.
-부산을 너무 많이 사랑했습니다, 제가
내가 서울을 떠나온 것도 이 부산에 이 아름다움 이 바다의 아름다움 이런 게 너무 좋기 때문에 제가 부산에 정착했거든요.
그리고 부산에 정착하면서 만든 곡들도 많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시간상 다 말씀 못 드리지만 앞으로도 여기에서 있으면서 뭔가 우리가
이 바다와 부산과 또 이 부울경이 어우러지는 이런 약간은 환상적이고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제 고향 울산은 너무 공업화가 됐어요.
조금 낭만적인 부분은 조금 부산보다 떨어지니까 아무래도 여기를 배경으로 한 저의 마지막 인생곡이 나오지 않을까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 무대 위에서 딱 한 곡을 선택해 이제 마지막 곡이에요.
딱 한 곡을 선택을 한다면 1번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하는 황홀한 고백 2번 모든 관객과 하나 되어 부르는 사랑만은 않겠어요 선택해 주세요.
큰아들 작은 아들 누가 더 예쁘냐 같은데 이게 좀 죄송하긴 하네요.
-사실은 아파트도 많이 사랑을 받았지만 이 사랑만은 않겠어요 황홀한 고백도 너무 제가 다 아픈 내 손가락들인데요.
황홀한 고백이 좀 더 좀 더 지금 현 시대하고 맞습니다.
예, 그래서 무대에서는 좀 화려함도 있어야 되기 때문에 황홀한 고백을 제가 이번에도 50주년에 오프닝 곡으로 황홀한 고백을 하고 엔딩은 사랑만은 않겠어요
-순서를 한번 앞뒤를 바꿔 보시네요. 네, 그래서 참 이 전성기가 몇 번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이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
-감사합니다.
-이번 공연도 성공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더 보고 싶은 관객은?
1번 40년 전 오빠를 외치던 그 시절 소녀 팬들 2번 아파트 챌린지를 하며 찾아온 MZ세대 젊은 팬들 어떻게 고르시려나 큰일 났네.
-이번 공연 때는 솔직히 MZ세대에 대한 기대는 없습니다. MZ세대들이 저를 좋아해서 엄마 아버지에게 예, 표를
-아주 바람직한
-예, 선물하는 그런 거기 때문에 제가 MZ세대에게는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또 공연장에서는 우리 바로 40년 전 소녀 팬들 지금 거의 중하시지 않겠습니까?
-중년의 소녀죠. 뭐
-그렇죠. 그래도 소녀는 소녀입니다. 참 특이하죠. 똑같아요.
제가 20살 때 노래 부를 때 그 환호성이나 지금도 다 똑같습니다. 볼륨은 조금 떨어진다.
-아, 그렇구나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해서 둘 다 이렇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거는 뭐 AI 질문은 아니고 제가 살짝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또 한 번에 다시 오는 전성기를 맞게 도와준 로제 양에게 밥을 한번 산다면? 메뉴를 뭘로 하시겠습니까?
-로제 양이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7살 때부터 저 한국에서 자랐으니까 된장찌개를 맛있게 하고 거기다가 목살 삼겹살 목살을 아주 크게 해서
-큼직큼직하게
-그래, 그래, 이렇게 내가 대접을 해야 로제 양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래가 씩씩하게 나옵니다. 돼지고기 좋지 않습니까.
-예, 아주 건강식품입니다.
-그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항상 이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뭘로 할까하고 생각을 하는데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뭐 평범하지만 꼭 드려야 되는 질문입니다.
앞으로 가수 윤수일은 윤수일은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이제 우리의 한국의 대중 문화도 조금씩 변모해 갑니다.
지금 다 이렇게 보면 신인 가수들이 굉장히 많이 돌출되고 있습니다.
활동도 많이 하고 그 친구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제 소위 좀 연조가 있는 가수들은 사실 설 땅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시대거든요.
그래서 저는 더욱더 노력하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 가요 환경을 보면 레전드가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가 골동품이 점점 세월이 가면서 비싸지잖아요.
더 가치를 그림도 오래된 그림이 가치가 높듯이 그래서 제가 그러한 레전드가 레전드로서의 값진 레전드로서의 살아남아야 되겠다라는 이런 어떤, 과욕은 아니고
-현역 레전드
-레전드가 대우받는 가요계를 한번 제가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네, 지금 뭐 이렇게 뜨겁게 활동하고 계시니까 그 다짐은 아마도 현실화되지 않을까라고
-조금 더 첨언하면 이거는 편집해 주십시오.
-말씀하시죠. 편집 안 하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지금 80이 다 넘은 롤링 스톤스 믹 제거하고 그 쭈글쭈글한 영감들이 전 세계 공연에 수입 1위입니다.
-아, 그래요?
-네, 그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그분들이 올라가서 제대로 20, 30대처럼 연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무대에 올려놓으면 그런 추억을 우리가 반추할 수 있고 그 옛날 생각도 더불어서 그 옛날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거를 즐기시는 거예요.
음악 팬들이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좀 와서 윤수일이 공연을 하면은 참 그때 내 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 아 지금도 저래 나오네 이렇게 해서 참 그걸 좀 값지게 생각해 주시는 것 그런 분위기가 되어
주기를 지금 이번 공연을 50주년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그래서 제가 KNN에 초대를 받았을 때 이렇게 거절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자, 사실 50년사를 오늘 다 얘기할 수는 없죠. 그래도 조금 어느 한 단면 뭐 조금 조금씩 이렇게 얘기를 나눠봤는데 사실 그 긴 세월이죠.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눈 깜짝할 새가 아까 지나갔다고 얘기했잖아요. 아마도 앞으로 또 몇십 년 후에 그런 말씀하실 거예요.
눈 깜짝할 때 또 100살이 넘었네 이러면서 또 말씀하실 것 같은데 그때도 왕성히 활동하는 그런 현역 레전드로 남기를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