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괭이의 꿈

등록일 : 2021-03-29 15:59:03.0
조회수 : 399
-(해설) 배들이 하나둘 새벽 조업에
나섭니다.
그물을 끌어올리자 회색빛의 고래 한
마리가 걸려 올라옵니다.
국제멸종위기종이자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입니다.
     
-빨리 살려줘.
-잘 가라.
-가라.
-(해설) 예로부터 상괭이와 사람은
바다에서 함께 살아왔습니다.
물고기가 있는 곳에는 어민도 상괭이도
있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 상괭이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매년 1000마리가 넘는 상괭이가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바다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예부터 바다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
뿌리를 내리고 각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비단 사람뿐만은 아니었죠.
노량항에서 뱃길로 15분 남짓.
바다 한가운데 숭어 양식장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드론을 띄워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저 앞에.
-(해설) 잠시 후 상괭이 10여 마리가
양식장 주변을 맴돕니다.
바다에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상괭이를
보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상괭이는 조선 시대 어류학서인
자산어보에 상광어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는데요.
물빛에 반사돼 몸에서 광택이 난다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상괭이 무리가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가릅니다.
먹이를 물고 있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상괭이는 먼 바다가 아닌 연안 바다에
삽니다.
오래전부터 어민들에게 친숙한
동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탓에
사람이 가까이 가면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떼를 지어다니는 돌고래와 달리 상괭이는
보통 한두 마리나 두세 마리씩 가족
단위로 다니는데요.
이렇게 무리를 지어 발견되는 것은
주변에 먹이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설) 상괭이는 11개월 정도의 임신
기간을 거쳐 새끼를 낳고 젖을 먹여
키웁니다.
다 크면 몸길이는 1.5m에서 2m 남짓.
흔히들 토종 돌고래라고도 하는데
돌고래와 생김새는 사뭇 다릅니다.
돌고래는 주둥이가 길고 등 지느러미가
있는 반면.
상괭이는 동그란 얼굴에 주둥이가 짧고
등 지느러미가 없습니다.
웃는 표정을 하고 있어 웃는 돌고래,
한국의 인어라고도 불리죠.
상괭이는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
연안에서만 살고.
특히 우리나라 서남해 해역에 가장 많이
서식합니다.
상괭이는 인간의 무분별한 포경에도
어느 정도 개체 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해설) 숭어 출하 시기가 다가온
양식장입니다.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키운 숭어를 배로
실어나르는데요.
숭어가 거친 물살을 일으키자 상괭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살아있는 숭어를 던져주자 상괭이들이
강아지처럼 쏜살같이 달려듭니다.
-(해설)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한바탕
쟁탈전이 벌어지는데요.
죽은 고기를 던져주면 어떨까요?
아예 먹지를 않습니다.
살아있는 싱싱한 고기에만 입을 댈
뿐입니다.
-여기 던져봐요, 여기.
-(해설) 바로 코앞에서 들을 수 있는
상괭이의 숨소리입니다.
물속 생명의 신비로움이 느껴지십니까?
KNN 취재팀은 수중 촬영을
시도해봤습니다.
하지만 다이버가 들어가자 상괭이가
도망가버립니다.
지능이 높은 상괭이와 머리싸움을 해야
할 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괭이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숭어 한 마리를
낚아채 갑니다.
물방울을 일으키며 카메라를 치고
가기도 하고.
한 녀석은 호기심이 많은지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기도 합니다.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숭어 한 마리가 몸을 비틀어 도망가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주둥이에 긁힌 상처도 선명합니다.
상괭이는 우리 바다의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는 상위 포식자입니다.
냉동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비닐에 싸인
상괭이 사체들이 쌓여 있습니다.
최근 제주 연안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어린
개체들도 있습니다.
-(해설) 상괭이는 살아있을 때는
회백색을 띠다 죽으면 색이 검게
변합니다.
지난해 제주에서 발견된 상괭이 사체만
60구.
3년 전에 비해 4배나 늘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상괭이 개체 수는 지난
2004년 3만 6000마리인 것이 지난
2011년에는 1만 3000마리로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이 통계는 10년 전 자료이고
서해에서만 이루어진 조사입니다.
지금 우리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상괭이가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상괭이가 죽는 원인의 80% 정도는
그물에 의한 혼획 때문입니다.
매년 1000마리 정도가 그물에 걸려 죽고
있습니다.
특히 안강망이라는 그물에서 혼획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안강망은 큰 주머니 모양으로 된 그물로
주로 조류가 빠른 서해안에
설치되는데요.
상괭이가 물고기를 따라 그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거센 조류로 인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질식사하는 것입니다.
뒤늦게 해양수산부는 안강망 어선에 대해
상괭이 탈출 그물망을 보급하겠다고
하는데요.
물고기는 그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상괭이는 그물 안 유도망을 따라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보급되는 그물 수가 턱없이
적습니다.
-(해설) 파도에 떠밀려 온 상괭이
사체가 해안가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상괭이 사체를
발견하면 해경에 신고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요.
번거롭다는 이유로 사체를 그냥 바다에
내다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설) 어민들이 상괭이 사체를 발견해
냉동고에 넣어놨습니다.
해경은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작살 사용
흔적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불법 포획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곧이어 지자체에서 나와 상괭이 사체를
인수해가는데요.
국제 멸종 위기종이라 유통 판매도
불가능하고 대부분 쓰레기장에서
매립됩니다.
바다에서 태어나 한평생 바다에 살다
땅에 묻혔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수구는 역류해 도심이 온통
물바다입니다.
영호남의 상징, 하동 화개장터도 수마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차량 한 대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갑니다.
불어난 물은 순식간에 사람 허리까지
차오릅니다.
마을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고 떠내려온
쓰레기가 마을을 떠다닙니다.
불어난 강물과 함께 쓰레기는 아래로,
아래로,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폭풍우가 몰아친 뒤.
해안가는 육지에서 떠밀려 온 생활
쓰레기로 가득합니다.
스티로폼 부표는 물론이고 스티로폼
알갱이도 수두룩합니다.
지난 2019년, 국내 연안에서 수거된
해양쓰레기의 개수는 3만여 개로 이
가운데 80%가 플라스틱 종류였습니다.
특히 스티로폼 부표가 가장 많았고 밧줄,
뚜껑류 순이었습니다.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 알갱이는 다시
부서지고 부서져서 바닷속을 떠다니게
되는데요.
나중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됩니다.
국내 해안가의 미세 플라스틱 농도는
제곱미터당 평균 2700개.
전북 무안이 1만 4000개로 가장 많았고
거제의 흥남이 7400개, 거제 덕포
해안에서는 5200개가 발견됐습니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내려가 봤습니다.
빨간 대야에서부터 장어통발.
그리고 플라스틱 통까지 발견됩니다.
정수기 물통과 폐타이어 등,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습니다.
조개도 전부 폐사했습니다.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가 모래를 헤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바다거북은 주로 해파리를 먹습니다.
해파리의 95% 정도는 수분이라 영양
섭취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합니다.
해파리 독에도 면역이 있는
바다거북에게는 부드러운 해파리가
최고의 음식입니다.
바다거북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이도 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물을 해파리로 알고 덤벼들었다가
되레 감겨버린 것입니다.
살려고 몸부림칠수록 그물은
거북의 몸을 더 억세게 조여갑니다.
국내 연안에서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습니다.
국립생태원 연구진들이 사체를 수거해
부검을 진행 중인데요.
바다거북 몸속에서 온갖 쓰레기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기다란 비닐도 발견됩니다.
모두 먹이인 줄 알고
잘못 먹은 것들입니다.
-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해설) 지난 2017년부터 국립생태원이
부검한 거북 사체만 모두 57마리.
이 가운데 42마리의 몸속에서
쓰레기가 검출됐습니다.
그동안 나온 쓰레기만 무려 1400여 개.
무게는 136g 정도였습니다.
42마리 가운데 10마리는
쓰레기를 먹어 염증이 생기거나
장기가 파열돼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상괭이의 몸속은 어떨까요?
KNN 취재팀은 세계자연기금 연구팀과
부검을 통해 상괭이의 사인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부검 대상은 모두 2마리.
2살 미만의 어린 개체의 장기에서는
작은 알 같은 것이 발견됩니다.
열어 보니 라면 면발 굵기의 기생충이
쏟아져나옵니다.
기생충은 염증을 일으키거나 독성 물질을
내뿜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생충은 오염이 심한 곳에
서식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질 경우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 상괭이는 다량의 기생충이 폐사의
주원인으로 추정됩니다.
한 마리에 대한 부검이 끝나고
곧바로 다른 개체의 부검이 이뤄지는데요.
장 속을 확인한 결과 위에서는
지름 2, 3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종양으로 인해 위벽이 상당히 부풀어
있었습니다.
먹이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미에서만 매년 1000마리가 넘는
상괭이 사체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에 부검을 하는 개체 수는
수십 마리에 불과합니다.
-(해설) 취재팀은 다양한 상괭이 관련
논문을 찾아 분석하던 중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국내 연구팀이 유명 환경 분야 저널에
게재한 논문입니다.
지난 2010년과 2015년 국내에서 죽은
상괭이 166마리에서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인 DDT와 폴리염화바이페닐 즉
PCB 등이 검출됐다는 내용입니다.
DDT는 살충제 성분으로 한때 농약으로
사용됐고 전기 절연체는 성분인 PCB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사된 상괭이의 10%에는 PCB가
27%에서는 DDT가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이는 암을 일으켜 죽게 하거나 번식 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한계치가 PCB는 2배 넘게 DDT는
무려 5배 넘게 나온 개체도
있었습니다.
이런 독극 물질은 1970년대 들어
우리나라는 물론 여러 국가에서 사용을
중지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 농축돼 전
세계 바다 곳곳을 떠다니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남해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상괭이입니다.
폐에서 거품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그물에 혼획돼 질식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과 달리 상괭이의 위는 모두 세
개입니다.
위에서는 장어 다섯 마리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상괭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킵니다.
불순물이 검출되는지는 않은지 채로
걸러내는 작업도 진행됩니다.
채취한 실효들은 여러 연구 기관으로
보내지는데요.
상괭이 7마리의 근육과 지방 등 실효를
채취해 중금속 조사를 의뢰해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취재진에게 통보된 조사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상괭이 7마리에서 수은이 나왔고.
이 중 4마리의 등 근육과, 배 근육, 간
등 내장에서는 수은이 기준치 이상을
웃돌았습니다.
수은은 생활 하수와 섞여 바다로
흘러갑니다.
이 과정에서 하천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데요.
미세먼지나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수은이
대기를 타고 바다로 떨어지면서 해저
깊은 곳까지 쌓이게 됩니다.
-(해설) 경남 고성군 하이면 앞바다.
국내 최초로 상괭이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그 면적만 축구장 260여 개 크기와
맞먹습니다.
현재 이 해역에는 상괭이 1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멸치와 장어 등 먹이도 풍부해 상괭이가
좋아하는 서식 환경을 갖췄습니다.
미국 FDA가 인정한 청정 해역 주변이라
해양 오염원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보호수역에서는 환경 정화 활동과 생태
지원 사업이 추진됩니다.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우려되는 스티로폼
부표 대신 모두 친환경 부표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해설) 해양 환경 인명 구조단을
비롯해 민간 주도로 상괭이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 뒤에도 나오고.
지금 파도치는 데.
저기도 나오고.
여기, 여기요.
앞에 나오죠?
지금 나오죠?
계속 나오죠?
-(해설) 상괭이 서식지와 사체가 어디서
어떻게 발견되는지 실태 조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설)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기가
인근 바다와 해변가를 뒤덮었습니다.
당시 유출된 기름만 1만 900톤.
역대 최악의 해양 오염 사고였습니다.
기름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만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바다 생태계는 완전히 망가졌고
상괭이를 비롯해 많은 해양 생물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과 각종
오염물질들로 상괭이는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아왔습니다.
-(해설) 우리의 바다는 쓰레기장도,
하수처리장도 아닙니다.
상괭이를 통해 바라본 우리 바다.
절대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바다가
아니라 상괭이가 마음 놓고 헤엄칠 수
있는 바다.
바로 상괭이의 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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