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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 요하 문명 (우실하 /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등록일 : 2025-05-15 14:05:45.0
조회수 : 160
-보물이 되는 지식을 찾아 떠납니다. 펼쳐라.
-(함께) 보물지도.
-지난 시간 우리가 우실하 선장님과 함께 요하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80년대 이후에 새롭게 발견되기 시작하는 제5의 문명, 요하 문명에 대해서 얘기를 할 겁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문명이 발견됐는데 도대체 누가 만든 걸까.
-누가 만든 거야.
-외계인도 아니고 중국에서는 요하 문명을 건설한 세력이 바로 황제족이다.
-뭐예요?
-중국으로 끌어와야 하잖아.
-진짜.
-이게 요하 문명을 이루는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고고학 문화예요.
소하서 문화 기원전 7000년까지 올라가죠?
그다음에 흥륭와 문화 그다음에 부하 그다음에 홍산 문화, 하가정하층 문화, 상층 문화 이건 청동기.
-이때부터 청동기군요.
-그 하가점 상층 시기부터 비파형 동검이라고 합니다.
-비파형.
-비파형 동검이요?
-이렇게 멋있게 생긴 칼.
-그거는. 잠시 선장님 여기서부터 뭔가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연결되죠?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 거니까.
-우리 건데 한다니까요.
-한국어를 포함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지가 어디냐.
바로 요하 문명 지역이고 한국 역사의 기원지가 요하 문명 지역이라는 거죠.
-오늘 요하 문명의 눈부신 유적들, 그리고 혹은 우리와 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이야기해 주실 예정인데 지난 시간부터 궁금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 선장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망부석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요하 문명이 어떻게 발굴됐고 발견되면서 중국 학계에서는
어떻게 자기의 역사로 끌고 가는지에 대해서 개괄적인 이야기를 했고요. 이번 시간에는요.
요하 문명의 소하서 문화, 흥륭와 문화, 부하 문화 이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까지
이어지는 고고학 문화에서 도대체 뭐가 발견됐길래 얼마나 놀라운 게 발견됐길래
4대 문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저는 그걸 제5의 문명이라는 표현도 썼는데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를 여러분한테 제가 답사한 자료들 이런 걸 다 총동원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또 그런 것들이 한반도 고대사나 한반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주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에 소하서 문화인데요.
소하서 문화는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기원전 700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9000년 전이에요.
지난 시간을 기억하시는 분은 네이처지에서 얘기한 한국어의 기원
트랜스유라시아의 기원이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이 기장 농업 지역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죠.
왜 네이처에서 9000년 전이라는 표현을 썼냐 하면 바로 소하서 문화의 출발이 9000는 전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지도에 보이는 거는 소하서 문화 유적이 40개가 넘는다고 그랬잖아요.
그 유적이 분포하는 지역을 점선으로 표시한 곳.
-딱 요하 지역이네요.
-그러면 요하 문명의 시작이 소하서 문화부터이다라고 생각하면 되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현재까지.
저거보다 이른 시기에 또 다른 문화가 발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어요.
그런데 현재까지 발굴된 거로는 저 소하서 문화가 가장 이르다는 거죠.
여러분, 소하서 문화 시기에 동북아 최초의 마을이 발견됩니다.
-동북아 최초의 마을.
-마을. 240명에서 300명 정도가 거주한 60개 정도의 방이 나열돼 있는 마을 유적이 발견됩니다.
-저거 딱 마을 크기.
-지금도 시골 리에 가면 100가구 넘는 리가 별로 없어요.
-그렇죠.
-보통 50가구, 60가구, 그렇죠? 자연적으로 생성된 마을은 100가구 넘으면 농사짓기가 힘들어요.
멀리 걸어가야 하니까. 그러니까 9000년 전에 60가구가 모였다.
이건 놀라운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거는 마을이 형성됐다는 건 완벽한 신석기를 말하는 거예요.
돌아다닐 수 없죠, 집을 지으면. 유목 문화와 정착 문화의 차이는 그런 거예요.
농경을 하면 땅에서 계속 수확을 하고 머물러서 집을 지어요.
그런데 신석기 이전에는 그래서 집이 없잖아요, 동굴이잖아요.
신석기 문화와 전혀 다르다, 이거예요.
소하서에서 우리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게 뭐냐 하면 이 동북 아시아 최초의 빗살무늬가 나와요.
-빗살무늬.
-빗살무늬.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하냐. 중원 지역에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있어요.
-그렇죠. 여러분, 빗살무늬 토기 학교 때 한국사 배울 때 다 배웠잖아요.
-맞아, 맞아, 익숙하죠.
-저도 배웠어요.
-그럼.
-기억나죠, 기억나죠.
-한국 사람 다 배웁니다.
-그러면 다 아는 거예요.
-그런데 하여간 최초의 빗살무늬가 소하서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보시는 이게 소하서 문화에서 나오는 각종 빗살무늬. 여러분, 익숙하죠, 본 거?
억새처럼 이렇게 해서 있고 물결무늬처럼.
-쭉쭉쭉.
-소하서 뒤에 나오는 게 흥륭와 문화죠. 흥륭와에도 계속 빗살무늬 나오는 겁니다.
최초로 소하서부터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흥륭와 문화 거와 소하서를 비교한 거예요.
여러분, 사진에 보이는 내 손이 아니고 적봉박물관 관장의 손이에요.
적봉대학에서 안식년을 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 적봉대학박물관으로 온 소국전 선생이라는 분이 토기 복원도 같이하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흥륭와 문화 토기랑 너무 닮아서 선생님 이거 흥륭와 것 아니에요?
그랬더니 우 선생 이리 와봐. 그러면서 비교를 해 주는 거예요.
여러분, 왼쪽 거는 소하서 거고 오른쪽 거는 흥륭와 거예요.
소하서의 빗살무늬를 보면 우리한테 익숙한.
-사선만 이렇게.
-물결무늬 같은 사선만 있잖아요.
-타이어처럼. 그런데 흥륭와 거는 저렇게 격자무늬 사선이 나요.
-격자가 있네요.
-간격도 좁아지고.
-그렇지. 그리고 손에 보면 가운데 쥐고 있죠.
-왼쪽이 소하서.
-왼쪽 게 소하서 거. 오른쪽 거는 흥륭와 거예요.
-흥륭와.
-그런데 뭐가 달라요?
-두께가 다릅니다.
-두께.
-그렇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흙을 얇게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는 거예요.
이거는 세계 어디나 동일해요. 그러니까 고대로 갈수록 기술이 없으니까 점점 투박해지고 두꺼워져요.
흙이 점점 고와지면서 얇게 가는 거죠.
-얇은 입자로 하는.
-그만큼 흙을 다루는 기술이 높아졌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고 무늬도 빗살은 빗살이죠.
그런데 새로운 형태의 무늬들이 나와요.
-업그레이드.
-형태는 거의 비슷해요.
-그렇네요.
-이거는 기원전 5000년, 6000년 우리나라 초기 신석기에 해당하는 문암리에서 발견된 토기예요. 소하서 문화랑 한번 비교해 보세요.
-비슷한데요.
-거의 비슷하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흥륭와 문화와 유사한 시기에 이런 게 나오잖아요, 수두룩하게.
그런데 그런 기원전 5000년, 6000년, 4000년 이런 시기에 황하 문명 지역은.
-없어요.
-없어요.
-그건 무슨 이야기예요. 요하 문명 지역은 한반도와 아주 일찍 초기 단계부터 연결돼 있었다는 거예요.
중원으로 연결된 게 아니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빗살무늬는 세계 아무 데나 나오지 않아요.
지금 이 지도는 뭐냐 하면 세계적으로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의 문화권이에요.
초록색으로 되어 있는 게 빗살무늬가 출토되는 지역이에요.
보시면 한반도와 만주 일대와 유라시아 초원을 쭉 해서 북유럽까지 이어지죠.
그런데 황하 문명 중심 지역에 없죠.
-없죠, 없죠.
-저 빗살무늬 띠가 흘러가는 걸 보면 우리가 전 시간에 이야기했 네이처지가 트랜스유라시아의 기원지가 확산되는 것 청동기 쭉 밖으로 확산되죠.
우리 학교 때는 빗살무늬가 들어오는 걸로 배웠어요.
유라시아 초원을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배웠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북유럽 쪽이 기원전 4000년, 3000년 이때까지
올라갔고 한반도나 이런 쪽에는 기원전 1000년, 2000년 때 그러니까 들어온 걸로 배웠어요.
-그래서 역사가 더 짧다고 여겼으니까.
-이제는 여기서 나가는 거예요. 그 나가는 게 언어에서도 똑같잖아요. 그렇죠.
언어에서도 기원지가 여기고 여기서 나가잖아요, 그렇죠. 한반도로 내려오고.
그런 것들이 다 연결돼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흥륭와입니다.
-드디어 흥륭와.
-흥륭와.
-흥륭와는 긴장해야 합니다. 세계 최초가 너무나 많이 나와요.
-세계 최초.
-새로운 거 나온다.
-흥륭와 문화에서는 어떤 게 발견되냐.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
-귀걸이.
-세계 최초의.
-그걸 고고학에서 옥결이라고 부릅니다.
-옥결.
-링 귀걸이었네요, 링 귀걸이.
-그런데 이 요하 문명 지역은 재미있게도 저 밑에 시신 보이죠. 뼈가 그대로 있잖아요.
-어떻게 그대로 있지?
-거기가 석회암 지대가 많아서 화석화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유적 중에 인골이 발견되면 우리는 산성 토양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다.
-없어지죠.
-없어지고 일부 충청도나 이쪽에 왜 석회암 지역 있잖아요.
그런 데만 뼈가 남아 있지 산성 지역에서는 다 부식되고 어쩌다가 이
썩다 만 이런 거만 나오지 저기는 석회암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대로 발견돼요.
-그대로 나오네, 그대로.
-저거를 어떻게 끼웠는지 알아요? 귀를 뚫어서 이렇게.
-그렇게.
-귀를 뚫어야 해, 저거를 끼려면.
-어떻게 귀를 뚫었지.
-그래서 가운데 잘라진 부분 있잖아요. 거기에 끼워서 돌리는 거예요.
-뚫린 부분이 밑으로 오는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이 보는 게 세계 최초의 옥결이에요.
옥결은 세계 여러 군데 나오는 게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 중국의 동해안 쪽 있죠.
우리가 흔히 동이 강역권 그 지역에서 나와요.
그리고 거기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중원 쪽으로 들어가요.
그런데 중요한 건 기원전 6000년까지 올라갔는데 문암리가.
거기서도 나온다는 거예요.
-옥결이다.
-아까 빗살무늬 할 때 문암리 거랑 비교해줬죠.
그런데 거기에서 빗살무늬도 소하석 거랑 거의 비슷하죠.
물론 흥륭와에도 빗살무늬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흥륭와, 소하서에 나오는 빗살무늬와 더불어 흥륭와 시기가 되면 옥결이 나오잖아요.
최초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동해안 문암리에서 나온단 말이에요.
-이거는 우리나라 거네요.
-전남 여수에도 시기가 늦지만 기원전 4000년, 6000년 정도 되면 남해안까지 나와요.
-여수에.
-이게 남한에서 출토되는 옥결들이에요. 제주도까지 쭉 이어져요, 신석기 시대에.
옥은 특별해서 아무 데나 안 나요. 그래서 옥이 성분이 있잖아요.
성분 분석을 하면 이게 어느 지역에서 난 건지까지 알 수 있어요.
성분 분석을 하면. 흥륭와에서 나온 옥을 성분 분석을 해봤더니 수암에서 가져다가 만든 거예요.
거의 직선거리로 400km가 넘는 거리를.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수암 지역도 문화적으로 같은.
-다 같은.
-문화권이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한반도 북부 지역은 초기부터 흥륭와에 이미 연결돼 있는 문화권이라는 거예요.
-들어가 있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동북아시아 전체에서 처음으로 환호를 두른 집단 촌락이 나와요.
-집단 촌락.
-환호가 뭡니까?
-환호가 뭐냐 하면 집들을 여러 채 짓잖아요. 그 주변을 파는 거예요.
-못 들어오게?
-동물들이 뛰어넘지 못하게. 그러니까 주거지가 있으니까 옛날에는 호랑이.
사나운 짐승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뛰어넘어서 밤에 사람들을 해할 수 있으니까 동그랗게 호를 파는 거예요.
최소한 동물이 뛰어넘지 못할 폭으로.
-깊고.
-건너 나오지 못할 깊이로 파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여러분 사진에 보이는 저기가 마을 터예요. 그거를 발굴하는 모습이에요.
여기 지금 앞에 보면 사람이 보이죠?
-네. 저 환호 부분인 거죠? 저쪽이.
-그렇죠, 그렇죠. 이게 환호예요, 새까맣게 띠처럼 보이는 게.
방 유적이 놀라게도 120개가 넘는 방이 배열돼 있었어요.
-엄청난 마을이네요.
-아까 소하서에서 한 60가구 정도 된다고 했죠?
-60가구.
-여기는 100가구가 넘어요.
-규모가 훨씬 커졌네요.
-이거는 현대의 리 마을 단위보다도 더 큰 거예요.
여기가 이제 발굴할 때 방이 배열된 걸 보세요.
일렬로 쫙 맞춰져 있죠?
-잘 지었네.
-마치 아파트처럼.
-완전 계획도시 아니야, 계획도시. 이거 하나만 나온 게 아니에요.
여러 군데 있어요, 흥륭와 시기에는 마을이.
이 고고학에서는 방이 발견되면 도대체 몇 명이 살았을까 궁금하잖아요.
-너무 궁금해요. 1인 가구 있었습니까?
-옛날에는 없었죠.
그런데 방 면적을 몇 사람이 살았을까를 추론하는 고고학적인 거의 공인된
방식이 있는데 4제곱미터에서 5제곱미터의 방 면적당 1명이 거주한 것으로 추론해요.
-그러면 어느 정도야.
-이게 브로단스끼라는 러시아 학자가 제시한 건데 그거를 아까 흥륭와
문화에서 발견된 환호취락의 방 유적지를 다 합산해서 나눠봤더니
최소한 500명에서 720명이 거주한 마을이에요.
어마어마하죠?
-그러면 전체적인 터는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 됐어요?
-마을의 면적은 발굴 면적이 한 3만 5000평방미터.
그다음에 환호취락으로 둘러져 있는 것은 동북과 서남쪽 길이가 183m에 166m.
그러니까 183이나 166 정도의.
-큰 운동장 느낌이네요.
-어마어마하게 큰 거죠. 거기에 다닥다닥 일렬로 쫙 배열돼 있었죠.
그런 마을이 8000년 전에 있었던 거.
그다음에 세계 최초의 재배 기장과 조가 발견돼요.
-기장을 재배로 했다는 거예요?
-기장과 조.
-조를. 세계 최초로 재배를 했다.
-그렇죠. 기장과 조는 소하서부터 기장과 조를 재배했을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갈판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오니까.
농사의 흔적도 다 나오니까.
-간접 증거들이 있네요.
-그런데 실물은 안 나왔어, 소화서에서. 그런데 여기는 실물이 거의 1500알이나. 빗살무늬토기.
-토기 안에서.
-토기 안에서 한꺼번에 1500알이나 발견되는데 90%가 기장이고 10%가 조예요.
지난 시간에 내가 네이처지에서 이야기한 거 한국을 포함한
트랜스유라시어 기원지를 이야기할 때 네이처지에서 뭐라고 썼다고 그랬어요?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의 기장 농업 지역.
-기장 농업 지역.
-이 사람들은 기장이 주식이었어.
-아직 쌀 먹을 때가 아닌가 봐요.
-쌀은 없어요.
-그때는 쌀 모를 때였고.
-쌀은 없어요. 여러분 고조선, 부여 사람들이 뭘 먹고 살았어요?
-쌀은 안 먹었어요.
-그들도 혹시 기장?
-기장이에요. 공자는 쌀밥을 먹어봤을까?
-아니요.
-춘추시대까지도 주식은 기장이었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낸 게 사직이잖아요.
사와 직이 다른데 사는 토지신이고 직이 곡식신인데 그 직 자가 뭐냐 하면 기장 직 자예요.
여러분 보는 이게 기장과 조예요. 이게 야생종이 아니고 재배종이에요.
그리고 이거는 2012년에 이미 세계 주요 농업 유산으로 인증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다 공인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내가 하는 말들이.
그다음에 흥륭와 문화에서 동북아 최초의 적석총이 나옵니다. 보십시오.
저기 지도에 보면 이게 백음장한 유적지인데 저기 산꼭대기 같은 데 있죠?
거기에서 발견된 거예요. 어떤 것들이 발견되나.
밑에 저렇게 사람을 묶고 땅 파서 위에 돌을 쌓는 거예요.
적석묘 중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오는 토광 적성묘라고 해요.
그런데 이것도 흥륭와에서 최초로 나온 거예요.
그다음에 이거는 석관 적석묘를 이야기하는.
이게 지금 이렇게 발견. 이게 지금 한 7, 8m 돼요.
-그런데 이거는 사실 지나가다가 보면 돌.
-모르죠.
-돌이 모여 있네 하고 그냥 지나갈 것 같은.
-그렇죠.
-아는 사람한테 보이는 거예요, 이거는.
-그거를 위에 덜어내고 저 가운데 묘실이 있죠? 시신도 남아 있죠?
여기는 많이 썩어서 뼈가 몇 개 없지만 그러니까 석관을 만들고 시신을 넣고
동그랗게 돌을 왕창 저게 지름이 한 7, 8m 된다고 했죠?
적석 석관묘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도 흥륭와입니다.
-오만 최초가 다 있네요.
-최초.
-이거는 또 다른 거예요. 여기는 잘 남아 있죠?
-이쯤 되면 무덤인 줄 알겠어요.
-그런데 저거를 안을 파면 이렇게 돼 있어요. 돌로 밑까지 다 깔았죠?
그다음에 적석 석관묘가 나오면 그다음에 발달된 단계가 피라미드, 계단식 피라미드.
-이게 저 상태에서.
-피라미드.
-쌓는군요, 점점점.
-홍산 문화 후기 단계가 되면 피라미드로 쌓는. 3층 피라미드.
심호흡 한 번 하고 이제 홍산 문화입니다.
-그 홍산.
-여러분 저 화면에 보이는 산이 홍산입니다.
-저게 홍산인가요?
-시뻘겋죠? 여기는 나무가 안 자라요.
밑에 부분만 한 1m 정도의 관목만 몇 개 자라고 바위산이나.
-돌산이구나.
-돌산.
-돌산.
-바위산.
-여기 그 산의 뒤쪽에 가면 이렇게 홍산 문화 명명지가 비석이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홍산문화명명지, 왼쪽에는.
-홍산 문화.
-그다음에 오른쪽에는 홍산유지군.
-홍산유지군.
-여기가 최초로 발견된 홍산 문화 유적지예요.
그래서 홍산 문화라는 말이 만들어져요. 홍산 뒤쪽에서 만들어져서.
그래서 요하 문명의 꽃이라고 부르는 제가 홍산 문화를.
-꽃.
-꽃.
-홍산 문화의 가장 빛나는 신석기 문화. 홍산 문화예요.
홍산 문화 유적지가 지금은 2000개가 넘는데 홍산 문화가 요하 문명의 꽃이라 그랬잖아.
또 그중에 홍산 문화의 꽃이 우하량 유적이에요.
맨 밑에 오른쪽 박스에 보면 여신 묘가 있죠?
여신 사당이에요.
-그 여신이요? 여자 신.
-여신, 그렇죠. 신을 모시는 신전을 따로 건설했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 적석총 쓰여 있죠?
-네.
-다 3층으로 되어 있죠, 계단식으로. 군데군데 널려 있죠.
-그러네요.
-여기가 피라미드 적석층의 최대 밀집 지역이에요. 16지점까지 있어. 우하량에.
여기가 제2지점이에요. 2지점인데 밑에 글씨가 보이죠?
저기에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5500년 전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유적 이렇게 쓰여 있어요.
영어로도 쓰여 있고 중국어로도 쓰여 있고.
한가운데 원형 3단이 보이죠?
-네.
-저게 동북아시아 최초의 천단입니다. 천단, 천제를 지내는 천단.
-하늘에 제사 지내는.
-지금도 천단은 전부 다 저런 모양이에요, 3단 원형. 그리고 왼쪽에 네모난 피라미드 보이죠?
-네.
-그거 피라미드예요?
-무덤. 무덤이랑 제사 지내는 데 같이 이렇게 해놓은 거예요?
-네. 이 우하량 일대에는 주거지가 없어요.
그래서 학자들이 홍산인들의 성소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무덤과 신전만 있지 주거지가 발견되지 않아요.
-종교적 공간이다.
-그렇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거는 보시면 알아요.
여기가 우하량 2지점의 전시관을 기둥 하나 없이 거의 100m가 넘는 공간을 철골 구조해서 덮어놨어요.
어마어마하죠? 여러분, 저 맨 밑에 적석총을 만든 기단석을 보세요.
-네모난 거.
-내가 뭘 보여주려는 걸까요? 이게 돌인데 다 다듬은 돌이란 말이에요, 네모나게.
-규격화된 벽돌이네요.
-자연석이 아니라.
-그냥 돌 가지고 와서 한 게 아니고.
-여러분, 이거는 지금 기원전 3500년이라 그랬죠? 5500년 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다듬은 돌을 거의 크기도 비슷하죠.
저기 크기가 한 60cm에 25cm 정도 돼요. 네모나게 다 다듬었잖아요.
여러분은 이거를 보면 별로 안 놀라요.
-하나도 안 놀라요, 지금.
-우리나라 백제 초기에 한성 백제 시절에 적석총들도 다 3층이거든요.
크기가 거의 비슷해요, 홍산 거는. 20m, 30m대.
그런데 거기는 전부 자연석이에요. 4세기, 5세기에 지어진 건데도.
이거는 기원전 3500년이면 한 3000년 이상 차이가 나잖아요.
그런데도 얘는 돌을 다 다듬었어요, 저렇게.
아까 3단으로 된 저게 동북아시아 천단의 원형이라 그랬잖아요.
가장 이른 시기의 천단이에요.
그런데 밑에 1단과 2단의 간격이 다르죠?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이걸 발굴하고 나서 1층은 지름이 얼마, 2층은 지름 이것만 써 놨어.
그런데 이게 이런 거대 건축이 나오니까 건축학자 중의 한 사람이 이거를 발굴보고서를 보고 탁 무릎을 친 거예요.
-이건 제단이다.
-이거는 그냥 만든 게 아니다. 이렇게 설계한 거예요.
여러분이 아는 원의 내접원, 외접원 사각형에 아니면 거꾸로 원의 내접
사각형, 외접 사각형을 통해서 설계한 거라고.
-저렇게 다 계산을 해서 설계를 했다는 거죠?
-그렇죠. 왜냐하면 건축학자들은 비례에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를 보니까 이상하다. 1층과 2층이 왜 간격이 다를까?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그거를 눈치를 못 채는데 건축학자가 찾아낸 거죠.
건축학자가 논문을 쓴 거예요. 이거는 이렇게 해서 설계한 거다.
얼마든지 나는 그 가설이 확실히 맞는다고.
그리고 그거를 어떻게 해서 실제로 이 측정한 비율의 길이와 똑같아요.
그다음에는 홍산 문화의 옥기가 무지무지 많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이분은 부자다, 부자.
-부자예요.
-여러분, 이게 우하량의 유적이 많다고 그랬잖아요, 피라미드로 된 게.
그중에 옥기가 가장 많이 발견된 거예요. 한 무덤에 20개가 있어요.
-가장 럭셔리한 사람이었네요.
-귀걸이도 있죠?
-장식인 것 같아요.
-옥 귀걸이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머리도 쓰는 관도 있어요.
옥이 돌이잖아요. 금속기가 없는 상태에서 저거를 이만한 돌을 갖다가 저렇게 깎아서 만들려면.
-상류층이네.
-몇 달을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구멍 뚫고.
이거는 한 무덤에 세 사람을 화장해서 뼈만 모아서 옥기를 1, 2개 올려놨죠.
세 사람을 합장한 거예요, 화장해서 뼈만 추려서.
여러분이 고고학자야. 그래서 이런 다양한 무덤을 팠어.
옥기가 숫자가 달라. 그러면 여러분이 뭐라고 평가를 할 것 같아요?
-신분제 사회구먼.
-역시. 역시 총명하십니다.
이런 여러 발굴 결과를 통해서 학계에서의 정설은 뭐냐 하면 홍산 후기
단계가 되면 최소한 6등급에서 7등급의 신분이 나뉘어졌다.
옥으로 된 관을 쓴 놈과 세 사람 함께 묻은 놈하고 어떻게 신분이 같겠어요?
그래서 최소한 6, 7등급의 신분 등급이 이미 분화돼 있었다.
홍산 문화에는 지금 보는 것처럼 이런 다양한 옥기가 나와요.
수십 종류의 옥기가 나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옥웅룡과 옥저룡이에요.
위의 것은 옥웅룡, 아래 것 갈기가 이렇게 나오는 건 돼지 모양의 용이다 해서 옥저룡 이렇게.
대표적인 옥기 중의 하나예요.
-옥 귀걸이예요?
-아니요, 이거는 커요. 패용하는 거예요.
-목걸이.
-목걸이. 홍산 옥기의 특징은 전부 다 구멍이 뚫려 있어요.
-그렇네요.
-구멍이 뚫려 있어서 목걸이처럼 다 매달 수 있게 돼 있어요.
옥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지만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이 무지무지 걸린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홍산 시절에는 적석총 만들 때 설계도 하고 그 돌 다 다듬고 직업적으로 석장인 그룹이 직업적으로 분화돼 있을 거 아니야.
그게 내가 주장하는 거예요.
-장인을 썼다.
-옥 장인들도 분화돼 있을 거예요.
그거는 중국 학자들도 다 통용되는 거고 나는 석 장인도 분화되어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전문 직업 집단이 분화가 되어 있는 겁니다.
-뭔가 사회적 체계가 보입니다, 이제.
-그러니까 모양들이 다 똑같잖아, 옥기가 만들어져도.
저거는 아무 집에서나 하나 만들라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전문 직종이 있었다는 거죠.
-그렇죠. 전문 직업적인 분화, 신분의 6, 7등급 이게 초기 국가 단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옥결 얘기를 하니까 구멍을 뚫어서 했다고요?
우리 민족은 역사의 시발점부터 조선 중기까지 남녀가 모두 귀를 뚫고 귀걸이를 했어요.
당나라의 염립본이라는 사람이 왕회도라는 건데 삼국시대에 사신으로 간 사람을 그려놓은 거예요.
백제 사신 귀걸이 했죠?
-(함께) 네. 신라 사신 귀걸이 했죠?
-네. 고구려도 했죠?
-(함께) 네. 남자예요, 다. 다 했다고.
그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여러분은 사극을 많이 봤지만 조선시대 사극 하면서 왕이
귀걸이 하고 조선시대 남자 귀걸이 한 거 한 번도 본 적 없죠?
-(함께) 네.
-사실 그게 잘못된 거예요. 역사 왜곡이에요.
-사실은 다 했다?
-그럼요. 그거를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한 게 일지매였어요.
지금 보세요. 다 귀걸이 하고 있죠?
-네.
-양반이고 쟤가 일지매인데 일지매 얘는 깃털로 된 귀걸이 하고 있죠? 얘 귀걸이 하고 있죠?
이거 순수의 시대 15년에 나온 거예요. 15년에 나온 이게 태조 이성계예요. 이성계 귀걸이 했죠?
-네.
-근데 여러분은 낯설죠?
-낯설죠, 낯설죠.
-이게 잘못된 거라고.
-저희가 이미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언제부터 없어졌을까?
세종 1년에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금은은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귀하니까 사대부 자손의 귀고리 등을 제외하고는 일절 사용을 금지한다. 무슨 소리예요?
금과 은이 너무 귀하니까 또나깨나 하지 말고 사대부 이상의 귀걸이에만 쓰라, 이거야.
그 이하에서는 금은으로 귀걸이 하지 말라, 이거예요.
-갑자기 제한을 뒀네요.
-그렇죠.
-그러려면 동으로 만들었어야 하는 거지, 얘네들은. 일반인들은.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선조 5년에 1572년이니까 임진왜란, 20년 전이죠?
그때 유교적인 어떤 이데올로기가 조선 사회 전체를 지배할 때예요.
신체발부 수지부모, 여러분 아는 거 있잖아요?
-부모한테 물려받은 몸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고 작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어서 귀고리를 달아서 중국 사람에게 조소를 한다.
야, 신체발부 수지부모인데 왜 귀를 뚫어서 귀걸이를 하냐.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근데 이게 바로 사대주의라고. 우리는 신석기 때부터 했었어.
-원래 했었는데.
-근데 자기의 뿌리를 잊고 소중한. 야, 중국인들은 안 했거든.
그러니까 야, 너네 왜 야만인처럼 이걸 하고 있냐.
야, 우리는 옛날부터 해 왔다. 이게 우리의 전통이다.
이렇게 맞받아쳐야 하는데.
-그냥 중국 따랐네요.
-우리를 비판하는, 스스로를 비판하는 거예요.
왜, 왜 남자들이 귀를 뚫어서 하느냐. 그러면 그때만 한 거냐?
신석기부터 했는데. 그때부터 없애요.
그래서 여기에서는 따르지 않는 자는 엄하게 벌을 주도록. 이때부터 싹 사라져요.
이거는 밑에 보면 제가 2007년에, 지금은 이렇게 못 들어가.
근데 밑에 보면 돌들이 많이 있죠?
-(함께) 네.
-돌들이 쭉 있으니까 너무 크니까 사람들이 이게 적석총일까 생각을 못 했어.
근데 그래도 돌이 삥 둘러 있으니까 학자들이 시구를 한 거야.
진짜 돌인가? 안에 전부 다 돌이야.
그래서 시구를 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가 복원한 게 이런 식으로 생겼다.
이게 장군총이에요. 장군총 이게 31m밖에 안 돼요, 가장 긴 변이.
광개토대왕릉 복원도.
-복원도, 복원도.
-환도산성에는 이런 적석총이 수도 없이 수천 개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저기는 적석총.
-고구려 거예요.
-동네네요, 동네.
-저런 적석총이 고구려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백제.
-백제로 이어지잖아요.
-대릉원에 있는 거는 겉에 1, 2m만 흙이지, 안에는 전부 돌이에요.
-대릉원은요?
-적석목곽분이라고. 우리 고대 민족들은 전부 다 적석묘 계열이었대요.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고조선부터.
-근데 중원의 황하 문명 지역에는?
-(함께) 없다.
-이게 일본까지 이어진다. 이제 여신 얘기를 할 건데요.
홍산 문화 동산취라는 유적에서 우리 이런 거 비너스 상이라 그러잖아요.
비너스 상은 발견됐는데 임신한 여성의 모습이죠?
근데 얼굴이 없어. 얼굴이 어떻게 생긴지 몰라.
그리고 그 동산취에서 또 손과 발의 모습도 나왔는데 또 얼굴이 없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런데 아까 얘기한 우하량 유적에서 드디어 얼굴이 나와요, 여신의 얼굴이. 보세요.
거기서 나온 얼굴이에요, 이게.
-여신님이 너무 무서운데요?
-전형적인 몽골인이에요. 광대뼈 툭 튀어나오고 그다음에 눈동자는.
-옥이구나.
-청옥을 갈아서 단추처럼 이렇게 박아놓은 거예요. 그냥 흙으로만 만든 게 아니라.
-정교하다.
-그래서 학자들이 같은 홍산 문화에 아까 동산취에서는 얼굴만 없지, 손과 발의 모습이 나왔다 그랬잖아요.
그거를 합쳐서 여신의 모습을 복원한 거예요.
손발은 모습이 이미 나왔잖아요. 반가부좌예요.
아주 명상 자세죠, 완전히.
그다음에 이 여신묘 안에는 여신이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실물의 3배 여신, 인간 실물의 2배 여신, 1배 여신.
세 종류의 신들도 위계가 있는 거야. 세 종류 크기의 신들이 있었다는 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사람들이 발굴하다 보니까 이거는 손인데 오른쪽 게 실물 사람의 손 크기야.
저거는 약 2배 정도 되죠. 그다음에 유방 잔편이 발견되는데 크기가 다 달라.
우리 흔히 말하는 A, B, C컵이 다 나오는 거야.
여러 신이 있는데 크기가 다르겠구나. 그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학자들이 이런 잔편들을 보고 여신묘에는 인간 실물의 3배, 2배,
1배에 해당하는 여신이 최소한 5, 6 위에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고 추론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이때는 흙이 모자라면 작게 만들고 흙이 많다 하면 크게 만들고 이러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홍산 시대를 그렇게 원시 시대로.
-전문 장인들이 있는데 그렇게.
-그럼요.
-한 번씩 내가 해야 하는데 오늘 많이 하네. 욕심이 많아.
-우하량박물관이 있는데 우하량박물관에서 플라스틱으로.
-복원하는.
-복원해서 여신이 이렇게 앉아 있었을 거다.
-이건 좀 잘 만들었네.
-주신은 인간의 3배 사이즈일 거고 그런데 그 양쪽에 실물 사이즈의 곰과 새가 있었어요. 보조신으로.
그리고 여신묘의 구덩이에서는 희생으로 바친 곰의 턱뼈들이 발견돼요.
그래서 중국에도 그렇고 많은 학자들이 저도 동의하지만 홍산 문화의 주 토템이 곰 족이에요.
-우리나라 웅녀.
-그렇죠.
-연결이 된다.
-가능성이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그거를 우리 식으로 그래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게 그 이야기예요.
그다음에 하가점 상층 문화입니다.
상층에서 드디어 비파형 동검이 나옵니다.
-더 발달된.
-우리나라 한국사 교과서에는 비파형 동검 분포 지역을 고조선의 광역 혹은 고조선의 영향권, 고조선의 문화권, 이렇게 다 설명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배웠어요,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이 지도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저기는 발견되는 위치만 표시한 거지 얼마나 많이 어느 지역에서 발견됐는지는 표시를 안 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한반도나 요동이나 요서나 비슷하게 발견된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게 착오라 이겁니다.
-비율이 다르다.
-이게 발견 지역인데 2000년을 기준으로 331개의 비파형 동검이 발견됐어요.
그런데 내몽고하고 요동, 요서 지역에서 230, 240개가 발견됐죠? 330개 중에.
-대단하네요.
-한반도에는 다 합쳐서 남북한 합쳐서 75개밖에 안 돼.
물론 2000년 기준입니다. 그 뒤로도 발굴돼요.
무슨 소리냐면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지표 유물이라면 비파형 동검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 요동, 요서 저 지역이에요.
거의 3분의 2가 저기서 발견되죠.
그래서 저는 요하 문명 지역 중심지를 초기 단군 고조선 시대의 초기 중심지로 봐요.
하가점 하층 문화 기원전 2300년이라고 했죠?
시작 단계가. 그러면 기원전 2300년 하면 여러분 생각나는 거 있지 해요?
-고조선 건국.
-그렇죠. 2333년 이렇게 알고 있잖아요, 그렇죠?
시기도 하가점 하층 시기, 청동기 시대 진입하는 시기와 거의 유사하고.
-유사하네요.
-초기에는 그래서 비파형 동검이 없었겠죠.
왜냐하면 비파형 동검 상층부터 나오니까.
요하 문명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 분포예요.
-저기 빨간 점들.
-저쪽이 빨갛네요.
-빨간 점 하나가 유적지예요. 제일 밀집되어 있는 저기가 요하 문명의 중심지.
-저기.
-저기가 네이처지가 이야기하는 한국어를 포함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지예요.
그러면 비파형 동검의 3분의 2가 발견되는 데도 저기예요.
그러면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최초의 우리 민족의 국가인데 어디서 발원해요.
-저기서 왔다.
-나는 그래서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저는 요서 지역의 저 지역이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라고 생각합니다.
더 놀라운 자료는 이거 조양시박물관이에요.
조양시박물관에는 2000년까지 331개가 발견됐다고 했잖아.
조양시에는 저 청동기 시대 박스가 하나 있는데 박스 안에 21개의 비파형 동검이 전시되어 있어.
여러분, 남북한 합쳐서 발견된 게 2000년 기준으로 몇 개라고 했어요?
칠십몇 개밖에 안 된다고 했죠?
-75개.
-그런데 조양시박물관 안에만 21개가 한 박스 안에 전시가 되어 있어요.
그다음에 거푸집도 있어, 저기.
거푸집은 비파형 동검 하나와 고고학적 무게가 달라요.
-그래서 거기서 수백 개를 찍어낼 수 있는데.
-그렇지. 거기는 생산지라는 거, 생산지. 그러니 연구를 해.
저렇게 비파형 동검을 들고 있는 저 장군이 누굴까. 저게 후대의 단군들이겠죠.
-그럴 수 있겠네요.
-우리는 비파형 동검을 하나만 달랑 이야기하는데 비파형 동검은 저렇게 청동
투구, 청동 단추가 박혀 있는 장화, 갑옷, 저런 거와 같이 동반 출토된다고.
그래서 중국 학자들이 저런 모습으로 복원해낸 거야.
저거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은 아니고 후대의 단군들.
기원전 1000년 이후의 단군들은 저런 모습이었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주요 유물들을 다 봤잖아요, 그렇죠?
비파형 동검도 중원에서 안 나와요, 중원에서.
산동까지만 나와요.
그러니까 요하 문명을 대표하는 각 고고학물의 주요 지표들이 중원 지역에 안 나오는 거야.
-그러면 황하 문명과 확실히 구별되는 문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확실히 구별되죠.
네이처지에서도 이 요서 지역이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지인 데 반해서
황하 문명 지역은 한어, 장어, 한장어의 기원지라고.
그러니까 언어가 처음부터 다른 거야. 언어가 다르면 사람이 다른 거죠.
그러니까 그들이 만드는 무덤, 토기 이런 게 다 다른 거예요.
요하 문명은 처음부터 황하 문명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런데 다 한반도로 연결돼요.
그러면 한국의 역사, 문화 이런 것들 다 거기서 기원했다고 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추리 아니에요.
이제는 시각을 전체로 바꿔야 합니다.
새롭게 발견된 이상 이미 중국은 시작했잖아요.
우리의 시각으로 요하 문명을 해석해야 합니다. 어때요?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까 소병기 선생이라는 위대한 고고학자가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중국에서는 고고학의 아버지 이렇게 불러요.
그런데 소병기 선생이 요하 문명이 발견되면서 중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거를 설명하기 위해서 초원 문화와 홍산 문화도 내려오고 황하 지역으로.
황하에서도 홍산 문화 쪽으로 올라가고 하는 그 Y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Y자형 문화 벨트라는 것을 이론으로 제시했어요.
나도 알죠.
그런데 저렇게 해 놓으면 한반도랑 요하 문명 하나도 상관없는 것처럼 착각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제시한 게 A자형 문화 벨트예요.
이건 중문으로 논문 써서 제가 홍산 문화 국제 학술대회에서 정식으로 발표하고
책으로도 엮여 있어요, 중국어로 되어 있는.
A자형 문화 벨트라는 건데 이건 뭐냐 하면 요하 문명에서 우리 옥 귀걸이 같은 거 아까 설명했죠?
적석총 이런 거 전부 한반도를 통해서 일본으로 연결되잖아요.
그러니까 요하 문명을 중심으로 해서 한반도와 한반도 동해와 남해와 또
일본으로 연결되는 루트 그다음에 중국의 해안가를 따라 쭉 베트남까지 내려가는 루트.
그다음에 장강 지역에서 뱃길로 한반도 남부와 그다음에 규슈 쪽으로 연결되는
그런 A자형 문화 벨트라는 큰 시각으로 동북아 역사를 재점검해야 한다.
문화 요하 문명이 발견되지 않을 때는 저건 무의미하죠.
저기 뭐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슨 기원이에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여기가 한국어의 기원지고 또 동북아에서 가장 이런
문명의 중심지고 거기서부터 적석총 무슨 옥 귀걸이 이런 게 쫙 퍼져 나가니까 저런 루트로.
그래서 제가 제시한 게 A자형 문화 벨트다.
저런 시각으로 봐야 그래서 저는 요하 문명을 동북아시아의 공통의 시원 문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요하 문명은 중국 거다, 한국 거다.
이렇게 싸우는 건 무의미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요하 문명이 꽃필 때 중국이라는 나라도 없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요하 문명의 어떤 요인들은 저 해안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갔겠죠, 당연히.
현재 기준으로 하면. 또 어떤 거는 A자형의 이쪽 날개를 타고 한반도로 연결되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반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연구하면 되는 거예요.
중국 사람들은 죽어라고 중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금 연구하고 있고 연구
정도가 아니라 황제가 아예 만들었다고까지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많은 것들이 한반도와 연결돼 있는데 아무런 목소리를 못 내고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전 세계 사람들은 그 요하 문명에 대해서 얘기하는 중국인들의 시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왜?
이론에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요하 문명은 우리 네이처지에도
얘기하듯이 한국어의 기원지일 뿐만이 아니라 한국 문화, 사상, 역사 모든 것의
출발점일 수도 있고 또 요하 문명은 중국이나 한국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동북아시아 모든 민족들의 공통의 시원 문명이다.
우리 시각으로 요하 문명을 해석해서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다시 짜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왜?
중국은 이미 하기 시작했으니까.
-황하 문명과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는 요하 문명.
그 흔적들을 오늘 선장님과 함께 살펴봤는데요.
그렇다면 오늘 강연 한마디로 정리해 주신다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국에서는 요하 문명이 발견되면서 상고사 전체를 재편하고 있어요.
그래서 강의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요하 문명에 대한 우리 시각의
해석을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도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롭게 써야 한다.
-오늘 요하 문명.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본 것 같은데 두 분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뭐 모르고 있던 걸 새로 알게 해 주셔서 또 듣다 보니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요하 문명 중에 어떤 거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많이 나왔잖아요. 옥귀도 나오고 적석총도 나오고.
-저거, 저거 칼.
-비파형 동검, 비파형 동검. 쟤 내 스타일이다.
-중원에는 없는 거.
-쟤 내 스타일.
-알겠습니다. 경환 씨는 어떻게 들으셨나요?
-저도 사실 지난 시간부터 요하 문명 굉장히 신기했는데 오늘 실제 사진도
보고 실제 물건들을 이렇게 보니까 우리랑 더 연결고리가 너무 많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따로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분야도 이렇게 새롭게 파줄 학자분들 그리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닐 수 있다라는 걸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우리가 꾸준히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더 늦기 전에 요하 문명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오늘의 지식 항해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실크로드의 길에는 한의학도 있었다. 재밌는 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OO를 갖고 가고 싶어 했어요.
중국인 어떤 누구도 이와 같은 책을 만들어낸 역사는 없지 않느냐.
-맞아.
-인삼은 뭐 고려시대 때부터 이슬람인들의 교역품으로도 되게 유명했고.
진생 그러면 다 알지만 인삼이라고 불러달라.
-외국 사람들 주목하라. 진생이 아니라 인삼이라고.
-한의학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좀 알려보자.
중국에서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나라 한의학에서만 이야기하는
한의학 술기를 제 나름대로 21세기에 K-메디 실크로드를 또 만들어 보려고 노력을 해 왔었습니다.
-(함께) 보물지도.
-지난 시간 우리가 우실하 선장님과 함께 요하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80년대 이후에 새롭게 발견되기 시작하는 제5의 문명, 요하 문명에 대해서 얘기를 할 겁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문명이 발견됐는데 도대체 누가 만든 걸까.
-누가 만든 거야.
-외계인도 아니고 중국에서는 요하 문명을 건설한 세력이 바로 황제족이다.
-뭐예요?
-중국으로 끌어와야 하잖아.
-진짜.
-이게 요하 문명을 이루는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고고학 문화예요.
소하서 문화 기원전 7000년까지 올라가죠?
그다음에 흥륭와 문화 그다음에 부하 그다음에 홍산 문화, 하가정하층 문화, 상층 문화 이건 청동기.
-이때부터 청동기군요.
-그 하가점 상층 시기부터 비파형 동검이라고 합니다.
-비파형.
-비파형 동검이요?
-이렇게 멋있게 생긴 칼.
-그거는. 잠시 선장님 여기서부터 뭔가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연결되죠?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 거니까.
-우리 건데 한다니까요.
-한국어를 포함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지가 어디냐.
바로 요하 문명 지역이고 한국 역사의 기원지가 요하 문명 지역이라는 거죠.
-오늘 요하 문명의 눈부신 유적들, 그리고 혹은 우리와 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이야기해 주실 예정인데 지난 시간부터 궁금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 선장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망부석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요하 문명이 어떻게 발굴됐고 발견되면서 중국 학계에서는
어떻게 자기의 역사로 끌고 가는지에 대해서 개괄적인 이야기를 했고요. 이번 시간에는요.
요하 문명의 소하서 문화, 흥륭와 문화, 부하 문화 이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까지
이어지는 고고학 문화에서 도대체 뭐가 발견됐길래 얼마나 놀라운 게 발견됐길래
4대 문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저는 그걸 제5의 문명이라는 표현도 썼는데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를 여러분한테 제가 답사한 자료들 이런 걸 다 총동원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또 그런 것들이 한반도 고대사나 한반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주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에 소하서 문화인데요.
소하서 문화는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기원전 700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9000년 전이에요.
지난 시간을 기억하시는 분은 네이처지에서 얘기한 한국어의 기원
트랜스유라시아의 기원이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이 기장 농업 지역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죠.
왜 네이처에서 9000년 전이라는 표현을 썼냐 하면 바로 소하서 문화의 출발이 9000는 전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지도에 보이는 거는 소하서 문화 유적이 40개가 넘는다고 그랬잖아요.
그 유적이 분포하는 지역을 점선으로 표시한 곳.
-딱 요하 지역이네요.
-그러면 요하 문명의 시작이 소하서 문화부터이다라고 생각하면 되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현재까지.
저거보다 이른 시기에 또 다른 문화가 발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어요.
그런데 현재까지 발굴된 거로는 저 소하서 문화가 가장 이르다는 거죠.
여러분, 소하서 문화 시기에 동북아 최초의 마을이 발견됩니다.
-동북아 최초의 마을.
-마을. 240명에서 300명 정도가 거주한 60개 정도의 방이 나열돼 있는 마을 유적이 발견됩니다.
-저거 딱 마을 크기.
-지금도 시골 리에 가면 100가구 넘는 리가 별로 없어요.
-그렇죠.
-보통 50가구, 60가구, 그렇죠? 자연적으로 생성된 마을은 100가구 넘으면 농사짓기가 힘들어요.
멀리 걸어가야 하니까. 그러니까 9000년 전에 60가구가 모였다.
이건 놀라운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거는 마을이 형성됐다는 건 완벽한 신석기를 말하는 거예요.
돌아다닐 수 없죠, 집을 지으면. 유목 문화와 정착 문화의 차이는 그런 거예요.
농경을 하면 땅에서 계속 수확을 하고 머물러서 집을 지어요.
그런데 신석기 이전에는 그래서 집이 없잖아요, 동굴이잖아요.
신석기 문화와 전혀 다르다, 이거예요.
소하서에서 우리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게 뭐냐 하면 이 동북 아시아 최초의 빗살무늬가 나와요.
-빗살무늬.
-빗살무늬.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하냐. 중원 지역에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있어요.
-그렇죠. 여러분, 빗살무늬 토기 학교 때 한국사 배울 때 다 배웠잖아요.
-맞아, 맞아, 익숙하죠.
-저도 배웠어요.
-그럼.
-기억나죠, 기억나죠.
-한국 사람 다 배웁니다.
-그러면 다 아는 거예요.
-그런데 하여간 최초의 빗살무늬가 소하서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보시는 이게 소하서 문화에서 나오는 각종 빗살무늬. 여러분, 익숙하죠, 본 거?
억새처럼 이렇게 해서 있고 물결무늬처럼.
-쭉쭉쭉.
-소하서 뒤에 나오는 게 흥륭와 문화죠. 흥륭와에도 계속 빗살무늬 나오는 겁니다.
최초로 소하서부터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흥륭와 문화 거와 소하서를 비교한 거예요.
여러분, 사진에 보이는 내 손이 아니고 적봉박물관 관장의 손이에요.
적봉대학에서 안식년을 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 적봉대학박물관으로 온 소국전 선생이라는 분이 토기 복원도 같이하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흥륭와 문화 토기랑 너무 닮아서 선생님 이거 흥륭와 것 아니에요?
그랬더니 우 선생 이리 와봐. 그러면서 비교를 해 주는 거예요.
여러분, 왼쪽 거는 소하서 거고 오른쪽 거는 흥륭와 거예요.
소하서의 빗살무늬를 보면 우리한테 익숙한.
-사선만 이렇게.
-물결무늬 같은 사선만 있잖아요.
-타이어처럼. 그런데 흥륭와 거는 저렇게 격자무늬 사선이 나요.
-격자가 있네요.
-간격도 좁아지고.
-그렇지. 그리고 손에 보면 가운데 쥐고 있죠.
-왼쪽이 소하서.
-왼쪽 게 소하서 거. 오른쪽 거는 흥륭와 거예요.
-흥륭와.
-그런데 뭐가 달라요?
-두께가 다릅니다.
-두께.
-그렇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흙을 얇게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는 거예요.
이거는 세계 어디나 동일해요. 그러니까 고대로 갈수록 기술이 없으니까 점점 투박해지고 두꺼워져요.
흙이 점점 고와지면서 얇게 가는 거죠.
-얇은 입자로 하는.
-그만큼 흙을 다루는 기술이 높아졌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고 무늬도 빗살은 빗살이죠.
그런데 새로운 형태의 무늬들이 나와요.
-업그레이드.
-형태는 거의 비슷해요.
-그렇네요.
-이거는 기원전 5000년, 6000년 우리나라 초기 신석기에 해당하는 문암리에서 발견된 토기예요. 소하서 문화랑 한번 비교해 보세요.
-비슷한데요.
-거의 비슷하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흥륭와 문화와 유사한 시기에 이런 게 나오잖아요, 수두룩하게.
그런데 그런 기원전 5000년, 6000년, 4000년 이런 시기에 황하 문명 지역은.
-없어요.
-없어요.
-그건 무슨 이야기예요. 요하 문명 지역은 한반도와 아주 일찍 초기 단계부터 연결돼 있었다는 거예요.
중원으로 연결된 게 아니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빗살무늬는 세계 아무 데나 나오지 않아요.
지금 이 지도는 뭐냐 하면 세계적으로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의 문화권이에요.
초록색으로 되어 있는 게 빗살무늬가 출토되는 지역이에요.
보시면 한반도와 만주 일대와 유라시아 초원을 쭉 해서 북유럽까지 이어지죠.
그런데 황하 문명 중심 지역에 없죠.
-없죠, 없죠.
-저 빗살무늬 띠가 흘러가는 걸 보면 우리가 전 시간에 이야기했 네이처지가 트랜스유라시아의 기원지가 확산되는 것 청동기 쭉 밖으로 확산되죠.
우리 학교 때는 빗살무늬가 들어오는 걸로 배웠어요.
유라시아 초원을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배웠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북유럽 쪽이 기원전 4000년, 3000년 이때까지
올라갔고 한반도나 이런 쪽에는 기원전 1000년, 2000년 때 그러니까 들어온 걸로 배웠어요.
-그래서 역사가 더 짧다고 여겼으니까.
-이제는 여기서 나가는 거예요. 그 나가는 게 언어에서도 똑같잖아요. 그렇죠.
언어에서도 기원지가 여기고 여기서 나가잖아요, 그렇죠. 한반도로 내려오고.
그런 것들이 다 연결돼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흥륭와입니다.
-드디어 흥륭와.
-흥륭와.
-흥륭와는 긴장해야 합니다. 세계 최초가 너무나 많이 나와요.
-세계 최초.
-새로운 거 나온다.
-흥륭와 문화에서는 어떤 게 발견되냐.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
-귀걸이.
-세계 최초의.
-그걸 고고학에서 옥결이라고 부릅니다.
-옥결.
-링 귀걸이었네요, 링 귀걸이.
-그런데 이 요하 문명 지역은 재미있게도 저 밑에 시신 보이죠. 뼈가 그대로 있잖아요.
-어떻게 그대로 있지?
-거기가 석회암 지대가 많아서 화석화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유적 중에 인골이 발견되면 우리는 산성 토양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다.
-없어지죠.
-없어지고 일부 충청도나 이쪽에 왜 석회암 지역 있잖아요.
그런 데만 뼈가 남아 있지 산성 지역에서는 다 부식되고 어쩌다가 이
썩다 만 이런 거만 나오지 저기는 석회암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대로 발견돼요.
-그대로 나오네, 그대로.
-저거를 어떻게 끼웠는지 알아요? 귀를 뚫어서 이렇게.
-그렇게.
-귀를 뚫어야 해, 저거를 끼려면.
-어떻게 귀를 뚫었지.
-그래서 가운데 잘라진 부분 있잖아요. 거기에 끼워서 돌리는 거예요.
-뚫린 부분이 밑으로 오는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이 보는 게 세계 최초의 옥결이에요.
옥결은 세계 여러 군데 나오는 게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 중국의 동해안 쪽 있죠.
우리가 흔히 동이 강역권 그 지역에서 나와요.
그리고 거기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중원 쪽으로 들어가요.
그런데 중요한 건 기원전 6000년까지 올라갔는데 문암리가.
거기서도 나온다는 거예요.
-옥결이다.
-아까 빗살무늬 할 때 문암리 거랑 비교해줬죠.
그런데 거기에서 빗살무늬도 소하석 거랑 거의 비슷하죠.
물론 흥륭와에도 빗살무늬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흥륭와, 소하서에 나오는 빗살무늬와 더불어 흥륭와 시기가 되면 옥결이 나오잖아요.
최초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동해안 문암리에서 나온단 말이에요.
-이거는 우리나라 거네요.
-전남 여수에도 시기가 늦지만 기원전 4000년, 6000년 정도 되면 남해안까지 나와요.
-여수에.
-이게 남한에서 출토되는 옥결들이에요. 제주도까지 쭉 이어져요, 신석기 시대에.
옥은 특별해서 아무 데나 안 나요. 그래서 옥이 성분이 있잖아요.
성분 분석을 하면 이게 어느 지역에서 난 건지까지 알 수 있어요.
성분 분석을 하면. 흥륭와에서 나온 옥을 성분 분석을 해봤더니 수암에서 가져다가 만든 거예요.
거의 직선거리로 400km가 넘는 거리를.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수암 지역도 문화적으로 같은.
-다 같은.
-문화권이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한반도 북부 지역은 초기부터 흥륭와에 이미 연결돼 있는 문화권이라는 거예요.
-들어가 있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동북아시아 전체에서 처음으로 환호를 두른 집단 촌락이 나와요.
-집단 촌락.
-환호가 뭡니까?
-환호가 뭐냐 하면 집들을 여러 채 짓잖아요. 그 주변을 파는 거예요.
-못 들어오게?
-동물들이 뛰어넘지 못하게. 그러니까 주거지가 있으니까 옛날에는 호랑이.
사나운 짐승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뛰어넘어서 밤에 사람들을 해할 수 있으니까 동그랗게 호를 파는 거예요.
최소한 동물이 뛰어넘지 못할 폭으로.
-깊고.
-건너 나오지 못할 깊이로 파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여러분 사진에 보이는 저기가 마을 터예요. 그거를 발굴하는 모습이에요.
여기 지금 앞에 보면 사람이 보이죠?
-네. 저 환호 부분인 거죠? 저쪽이.
-그렇죠, 그렇죠. 이게 환호예요, 새까맣게 띠처럼 보이는 게.
방 유적이 놀라게도 120개가 넘는 방이 배열돼 있었어요.
-엄청난 마을이네요.
-아까 소하서에서 한 60가구 정도 된다고 했죠?
-60가구.
-여기는 100가구가 넘어요.
-규모가 훨씬 커졌네요.
-이거는 현대의 리 마을 단위보다도 더 큰 거예요.
여기가 이제 발굴할 때 방이 배열된 걸 보세요.
일렬로 쫙 맞춰져 있죠?
-잘 지었네.
-마치 아파트처럼.
-완전 계획도시 아니야, 계획도시. 이거 하나만 나온 게 아니에요.
여러 군데 있어요, 흥륭와 시기에는 마을이.
이 고고학에서는 방이 발견되면 도대체 몇 명이 살았을까 궁금하잖아요.
-너무 궁금해요. 1인 가구 있었습니까?
-옛날에는 없었죠.
그런데 방 면적을 몇 사람이 살았을까를 추론하는 고고학적인 거의 공인된
방식이 있는데 4제곱미터에서 5제곱미터의 방 면적당 1명이 거주한 것으로 추론해요.
-그러면 어느 정도야.
-이게 브로단스끼라는 러시아 학자가 제시한 건데 그거를 아까 흥륭와
문화에서 발견된 환호취락의 방 유적지를 다 합산해서 나눠봤더니
최소한 500명에서 720명이 거주한 마을이에요.
어마어마하죠?
-그러면 전체적인 터는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 됐어요?
-마을의 면적은 발굴 면적이 한 3만 5000평방미터.
그다음에 환호취락으로 둘러져 있는 것은 동북과 서남쪽 길이가 183m에 166m.
그러니까 183이나 166 정도의.
-큰 운동장 느낌이네요.
-어마어마하게 큰 거죠. 거기에 다닥다닥 일렬로 쫙 배열돼 있었죠.
그런 마을이 8000년 전에 있었던 거.
그다음에 세계 최초의 재배 기장과 조가 발견돼요.
-기장을 재배로 했다는 거예요?
-기장과 조.
-조를. 세계 최초로 재배를 했다.
-그렇죠. 기장과 조는 소하서부터 기장과 조를 재배했을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갈판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오니까.
농사의 흔적도 다 나오니까.
-간접 증거들이 있네요.
-그런데 실물은 안 나왔어, 소화서에서. 그런데 여기는 실물이 거의 1500알이나. 빗살무늬토기.
-토기 안에서.
-토기 안에서 한꺼번에 1500알이나 발견되는데 90%가 기장이고 10%가 조예요.
지난 시간에 내가 네이처지에서 이야기한 거 한국을 포함한
트랜스유라시어 기원지를 이야기할 때 네이처지에서 뭐라고 썼다고 그랬어요?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의 기장 농업 지역.
-기장 농업 지역.
-이 사람들은 기장이 주식이었어.
-아직 쌀 먹을 때가 아닌가 봐요.
-쌀은 없어요.
-그때는 쌀 모를 때였고.
-쌀은 없어요. 여러분 고조선, 부여 사람들이 뭘 먹고 살았어요?
-쌀은 안 먹었어요.
-그들도 혹시 기장?
-기장이에요. 공자는 쌀밥을 먹어봤을까?
-아니요.
-춘추시대까지도 주식은 기장이었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낸 게 사직이잖아요.
사와 직이 다른데 사는 토지신이고 직이 곡식신인데 그 직 자가 뭐냐 하면 기장 직 자예요.
여러분 보는 이게 기장과 조예요. 이게 야생종이 아니고 재배종이에요.
그리고 이거는 2012년에 이미 세계 주요 농업 유산으로 인증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다 공인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내가 하는 말들이.
그다음에 흥륭와 문화에서 동북아 최초의 적석총이 나옵니다. 보십시오.
저기 지도에 보면 이게 백음장한 유적지인데 저기 산꼭대기 같은 데 있죠?
거기에서 발견된 거예요. 어떤 것들이 발견되나.
밑에 저렇게 사람을 묶고 땅 파서 위에 돌을 쌓는 거예요.
적석묘 중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오는 토광 적성묘라고 해요.
그런데 이것도 흥륭와에서 최초로 나온 거예요.
그다음에 이거는 석관 적석묘를 이야기하는.
이게 지금 이렇게 발견. 이게 지금 한 7, 8m 돼요.
-그런데 이거는 사실 지나가다가 보면 돌.
-모르죠.
-돌이 모여 있네 하고 그냥 지나갈 것 같은.
-그렇죠.
-아는 사람한테 보이는 거예요, 이거는.
-그거를 위에 덜어내고 저 가운데 묘실이 있죠? 시신도 남아 있죠?
여기는 많이 썩어서 뼈가 몇 개 없지만 그러니까 석관을 만들고 시신을 넣고
동그랗게 돌을 왕창 저게 지름이 한 7, 8m 된다고 했죠?
적석 석관묘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도 흥륭와입니다.
-오만 최초가 다 있네요.
-최초.
-이거는 또 다른 거예요. 여기는 잘 남아 있죠?
-이쯤 되면 무덤인 줄 알겠어요.
-그런데 저거를 안을 파면 이렇게 돼 있어요. 돌로 밑까지 다 깔았죠?
그다음에 적석 석관묘가 나오면 그다음에 발달된 단계가 피라미드, 계단식 피라미드.
-이게 저 상태에서.
-피라미드.
-쌓는군요, 점점점.
-홍산 문화 후기 단계가 되면 피라미드로 쌓는. 3층 피라미드.
심호흡 한 번 하고 이제 홍산 문화입니다.
-그 홍산.
-여러분 저 화면에 보이는 산이 홍산입니다.
-저게 홍산인가요?
-시뻘겋죠? 여기는 나무가 안 자라요.
밑에 부분만 한 1m 정도의 관목만 몇 개 자라고 바위산이나.
-돌산이구나.
-돌산.
-돌산.
-바위산.
-여기 그 산의 뒤쪽에 가면 이렇게 홍산 문화 명명지가 비석이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홍산문화명명지, 왼쪽에는.
-홍산 문화.
-그다음에 오른쪽에는 홍산유지군.
-홍산유지군.
-여기가 최초로 발견된 홍산 문화 유적지예요.
그래서 홍산 문화라는 말이 만들어져요. 홍산 뒤쪽에서 만들어져서.
그래서 요하 문명의 꽃이라고 부르는 제가 홍산 문화를.
-꽃.
-꽃.
-홍산 문화의 가장 빛나는 신석기 문화. 홍산 문화예요.
홍산 문화 유적지가 지금은 2000개가 넘는데 홍산 문화가 요하 문명의 꽃이라 그랬잖아.
또 그중에 홍산 문화의 꽃이 우하량 유적이에요.
맨 밑에 오른쪽 박스에 보면 여신 묘가 있죠?
여신 사당이에요.
-그 여신이요? 여자 신.
-여신, 그렇죠. 신을 모시는 신전을 따로 건설했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 적석총 쓰여 있죠?
-네.
-다 3층으로 되어 있죠, 계단식으로. 군데군데 널려 있죠.
-그러네요.
-여기가 피라미드 적석층의 최대 밀집 지역이에요. 16지점까지 있어. 우하량에.
여기가 제2지점이에요. 2지점인데 밑에 글씨가 보이죠?
저기에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5500년 전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유적 이렇게 쓰여 있어요.
영어로도 쓰여 있고 중국어로도 쓰여 있고.
한가운데 원형 3단이 보이죠?
-네.
-저게 동북아시아 최초의 천단입니다. 천단, 천제를 지내는 천단.
-하늘에 제사 지내는.
-지금도 천단은 전부 다 저런 모양이에요, 3단 원형. 그리고 왼쪽에 네모난 피라미드 보이죠?
-네.
-그거 피라미드예요?
-무덤. 무덤이랑 제사 지내는 데 같이 이렇게 해놓은 거예요?
-네. 이 우하량 일대에는 주거지가 없어요.
그래서 학자들이 홍산인들의 성소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무덤과 신전만 있지 주거지가 발견되지 않아요.
-종교적 공간이다.
-그렇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거는 보시면 알아요.
여기가 우하량 2지점의 전시관을 기둥 하나 없이 거의 100m가 넘는 공간을 철골 구조해서 덮어놨어요.
어마어마하죠? 여러분, 저 맨 밑에 적석총을 만든 기단석을 보세요.
-네모난 거.
-내가 뭘 보여주려는 걸까요? 이게 돌인데 다 다듬은 돌이란 말이에요, 네모나게.
-규격화된 벽돌이네요.
-자연석이 아니라.
-그냥 돌 가지고 와서 한 게 아니고.
-여러분, 이거는 지금 기원전 3500년이라 그랬죠? 5500년 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다듬은 돌을 거의 크기도 비슷하죠.
저기 크기가 한 60cm에 25cm 정도 돼요. 네모나게 다 다듬었잖아요.
여러분은 이거를 보면 별로 안 놀라요.
-하나도 안 놀라요, 지금.
-우리나라 백제 초기에 한성 백제 시절에 적석총들도 다 3층이거든요.
크기가 거의 비슷해요, 홍산 거는. 20m, 30m대.
그런데 거기는 전부 자연석이에요. 4세기, 5세기에 지어진 건데도.
이거는 기원전 3500년이면 한 3000년 이상 차이가 나잖아요.
그런데도 얘는 돌을 다 다듬었어요, 저렇게.
아까 3단으로 된 저게 동북아시아 천단의 원형이라 그랬잖아요.
가장 이른 시기의 천단이에요.
그런데 밑에 1단과 2단의 간격이 다르죠?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이걸 발굴하고 나서 1층은 지름이 얼마, 2층은 지름 이것만 써 놨어.
그런데 이게 이런 거대 건축이 나오니까 건축학자 중의 한 사람이 이거를 발굴보고서를 보고 탁 무릎을 친 거예요.
-이건 제단이다.
-이거는 그냥 만든 게 아니다. 이렇게 설계한 거예요.
여러분이 아는 원의 내접원, 외접원 사각형에 아니면 거꾸로 원의 내접
사각형, 외접 사각형을 통해서 설계한 거라고.
-저렇게 다 계산을 해서 설계를 했다는 거죠?
-그렇죠. 왜냐하면 건축학자들은 비례에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를 보니까 이상하다. 1층과 2층이 왜 간격이 다를까?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그거를 눈치를 못 채는데 건축학자가 찾아낸 거죠.
건축학자가 논문을 쓴 거예요. 이거는 이렇게 해서 설계한 거다.
얼마든지 나는 그 가설이 확실히 맞는다고.
그리고 그거를 어떻게 해서 실제로 이 측정한 비율의 길이와 똑같아요.
그다음에는 홍산 문화의 옥기가 무지무지 많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이분은 부자다, 부자.
-부자예요.
-여러분, 이게 우하량의 유적이 많다고 그랬잖아요, 피라미드로 된 게.
그중에 옥기가 가장 많이 발견된 거예요. 한 무덤에 20개가 있어요.
-가장 럭셔리한 사람이었네요.
-귀걸이도 있죠?
-장식인 것 같아요.
-옥 귀걸이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머리도 쓰는 관도 있어요.
옥이 돌이잖아요. 금속기가 없는 상태에서 저거를 이만한 돌을 갖다가 저렇게 깎아서 만들려면.
-상류층이네.
-몇 달을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구멍 뚫고.
이거는 한 무덤에 세 사람을 화장해서 뼈만 모아서 옥기를 1, 2개 올려놨죠.
세 사람을 합장한 거예요, 화장해서 뼈만 추려서.
여러분이 고고학자야. 그래서 이런 다양한 무덤을 팠어.
옥기가 숫자가 달라. 그러면 여러분이 뭐라고 평가를 할 것 같아요?
-신분제 사회구먼.
-역시. 역시 총명하십니다.
이런 여러 발굴 결과를 통해서 학계에서의 정설은 뭐냐 하면 홍산 후기
단계가 되면 최소한 6등급에서 7등급의 신분이 나뉘어졌다.
옥으로 된 관을 쓴 놈과 세 사람 함께 묻은 놈하고 어떻게 신분이 같겠어요?
그래서 최소한 6, 7등급의 신분 등급이 이미 분화돼 있었다.
홍산 문화에는 지금 보는 것처럼 이런 다양한 옥기가 나와요.
수십 종류의 옥기가 나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옥웅룡과 옥저룡이에요.
위의 것은 옥웅룡, 아래 것 갈기가 이렇게 나오는 건 돼지 모양의 용이다 해서 옥저룡 이렇게.
대표적인 옥기 중의 하나예요.
-옥 귀걸이예요?
-아니요, 이거는 커요. 패용하는 거예요.
-목걸이.
-목걸이. 홍산 옥기의 특징은 전부 다 구멍이 뚫려 있어요.
-그렇네요.
-구멍이 뚫려 있어서 목걸이처럼 다 매달 수 있게 돼 있어요.
옥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지만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이 무지무지 걸린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홍산 시절에는 적석총 만들 때 설계도 하고 그 돌 다 다듬고 직업적으로 석장인 그룹이 직업적으로 분화돼 있을 거 아니야.
그게 내가 주장하는 거예요.
-장인을 썼다.
-옥 장인들도 분화돼 있을 거예요.
그거는 중국 학자들도 다 통용되는 거고 나는 석 장인도 분화되어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전문 직업 집단이 분화가 되어 있는 겁니다.
-뭔가 사회적 체계가 보입니다, 이제.
-그러니까 모양들이 다 똑같잖아, 옥기가 만들어져도.
저거는 아무 집에서나 하나 만들라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전문 직종이 있었다는 거죠.
-그렇죠. 전문 직업적인 분화, 신분의 6, 7등급 이게 초기 국가 단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옥결 얘기를 하니까 구멍을 뚫어서 했다고요?
우리 민족은 역사의 시발점부터 조선 중기까지 남녀가 모두 귀를 뚫고 귀걸이를 했어요.
당나라의 염립본이라는 사람이 왕회도라는 건데 삼국시대에 사신으로 간 사람을 그려놓은 거예요.
백제 사신 귀걸이 했죠?
-(함께) 네. 신라 사신 귀걸이 했죠?
-네. 고구려도 했죠?
-(함께) 네. 남자예요, 다. 다 했다고.
그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여러분은 사극을 많이 봤지만 조선시대 사극 하면서 왕이
귀걸이 하고 조선시대 남자 귀걸이 한 거 한 번도 본 적 없죠?
-(함께) 네.
-사실 그게 잘못된 거예요. 역사 왜곡이에요.
-사실은 다 했다?
-그럼요. 그거를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한 게 일지매였어요.
지금 보세요. 다 귀걸이 하고 있죠?
-네.
-양반이고 쟤가 일지매인데 일지매 얘는 깃털로 된 귀걸이 하고 있죠? 얘 귀걸이 하고 있죠?
이거 순수의 시대 15년에 나온 거예요. 15년에 나온 이게 태조 이성계예요. 이성계 귀걸이 했죠?
-네.
-근데 여러분은 낯설죠?
-낯설죠, 낯설죠.
-이게 잘못된 거라고.
-저희가 이미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언제부터 없어졌을까?
세종 1년에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금은은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귀하니까 사대부 자손의 귀고리 등을 제외하고는 일절 사용을 금지한다. 무슨 소리예요?
금과 은이 너무 귀하니까 또나깨나 하지 말고 사대부 이상의 귀걸이에만 쓰라, 이거야.
그 이하에서는 금은으로 귀걸이 하지 말라, 이거예요.
-갑자기 제한을 뒀네요.
-그렇죠.
-그러려면 동으로 만들었어야 하는 거지, 얘네들은. 일반인들은.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선조 5년에 1572년이니까 임진왜란, 20년 전이죠?
그때 유교적인 어떤 이데올로기가 조선 사회 전체를 지배할 때예요.
신체발부 수지부모, 여러분 아는 거 있잖아요?
-부모한테 물려받은 몸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고 작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어서 귀고리를 달아서 중국 사람에게 조소를 한다.
야, 신체발부 수지부모인데 왜 귀를 뚫어서 귀걸이를 하냐.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근데 이게 바로 사대주의라고. 우리는 신석기 때부터 했었어.
-원래 했었는데.
-근데 자기의 뿌리를 잊고 소중한. 야, 중국인들은 안 했거든.
그러니까 야, 너네 왜 야만인처럼 이걸 하고 있냐.
야, 우리는 옛날부터 해 왔다. 이게 우리의 전통이다.
이렇게 맞받아쳐야 하는데.
-그냥 중국 따랐네요.
-우리를 비판하는, 스스로를 비판하는 거예요.
왜, 왜 남자들이 귀를 뚫어서 하느냐. 그러면 그때만 한 거냐?
신석기부터 했는데. 그때부터 없애요.
그래서 여기에서는 따르지 않는 자는 엄하게 벌을 주도록. 이때부터 싹 사라져요.
이거는 밑에 보면 제가 2007년에, 지금은 이렇게 못 들어가.
근데 밑에 보면 돌들이 많이 있죠?
-(함께) 네.
-돌들이 쭉 있으니까 너무 크니까 사람들이 이게 적석총일까 생각을 못 했어.
근데 그래도 돌이 삥 둘러 있으니까 학자들이 시구를 한 거야.
진짜 돌인가? 안에 전부 다 돌이야.
그래서 시구를 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가 복원한 게 이런 식으로 생겼다.
이게 장군총이에요. 장군총 이게 31m밖에 안 돼요, 가장 긴 변이.
광개토대왕릉 복원도.
-복원도, 복원도.
-환도산성에는 이런 적석총이 수도 없이 수천 개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저기는 적석총.
-고구려 거예요.
-동네네요, 동네.
-저런 적석총이 고구려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백제.
-백제로 이어지잖아요.
-대릉원에 있는 거는 겉에 1, 2m만 흙이지, 안에는 전부 돌이에요.
-대릉원은요?
-적석목곽분이라고. 우리 고대 민족들은 전부 다 적석묘 계열이었대요.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고조선부터.
-근데 중원의 황하 문명 지역에는?
-(함께) 없다.
-이게 일본까지 이어진다. 이제 여신 얘기를 할 건데요.
홍산 문화 동산취라는 유적에서 우리 이런 거 비너스 상이라 그러잖아요.
비너스 상은 발견됐는데 임신한 여성의 모습이죠?
근데 얼굴이 없어. 얼굴이 어떻게 생긴지 몰라.
그리고 그 동산취에서 또 손과 발의 모습도 나왔는데 또 얼굴이 없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런데 아까 얘기한 우하량 유적에서 드디어 얼굴이 나와요, 여신의 얼굴이. 보세요.
거기서 나온 얼굴이에요, 이게.
-여신님이 너무 무서운데요?
-전형적인 몽골인이에요. 광대뼈 툭 튀어나오고 그다음에 눈동자는.
-옥이구나.
-청옥을 갈아서 단추처럼 이렇게 박아놓은 거예요. 그냥 흙으로만 만든 게 아니라.
-정교하다.
-그래서 학자들이 같은 홍산 문화에 아까 동산취에서는 얼굴만 없지, 손과 발의 모습이 나왔다 그랬잖아요.
그거를 합쳐서 여신의 모습을 복원한 거예요.
손발은 모습이 이미 나왔잖아요. 반가부좌예요.
아주 명상 자세죠, 완전히.
그다음에 이 여신묘 안에는 여신이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실물의 3배 여신, 인간 실물의 2배 여신, 1배 여신.
세 종류의 신들도 위계가 있는 거야. 세 종류 크기의 신들이 있었다는 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사람들이 발굴하다 보니까 이거는 손인데 오른쪽 게 실물 사람의 손 크기야.
저거는 약 2배 정도 되죠. 그다음에 유방 잔편이 발견되는데 크기가 다 달라.
우리 흔히 말하는 A, B, C컵이 다 나오는 거야.
여러 신이 있는데 크기가 다르겠구나. 그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학자들이 이런 잔편들을 보고 여신묘에는 인간 실물의 3배, 2배,
1배에 해당하는 여신이 최소한 5, 6 위에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고 추론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이때는 흙이 모자라면 작게 만들고 흙이 많다 하면 크게 만들고 이러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홍산 시대를 그렇게 원시 시대로.
-전문 장인들이 있는데 그렇게.
-그럼요.
-한 번씩 내가 해야 하는데 오늘 많이 하네. 욕심이 많아.
-우하량박물관이 있는데 우하량박물관에서 플라스틱으로.
-복원하는.
-복원해서 여신이 이렇게 앉아 있었을 거다.
-이건 좀 잘 만들었네.
-주신은 인간의 3배 사이즈일 거고 그런데 그 양쪽에 실물 사이즈의 곰과 새가 있었어요. 보조신으로.
그리고 여신묘의 구덩이에서는 희생으로 바친 곰의 턱뼈들이 발견돼요.
그래서 중국에도 그렇고 많은 학자들이 저도 동의하지만 홍산 문화의 주 토템이 곰 족이에요.
-우리나라 웅녀.
-그렇죠.
-연결이 된다.
-가능성이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그거를 우리 식으로 그래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게 그 이야기예요.
그다음에 하가점 상층 문화입니다.
상층에서 드디어 비파형 동검이 나옵니다.
-더 발달된.
-우리나라 한국사 교과서에는 비파형 동검 분포 지역을 고조선의 광역 혹은 고조선의 영향권, 고조선의 문화권, 이렇게 다 설명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배웠어요,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이 지도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저기는 발견되는 위치만 표시한 거지 얼마나 많이 어느 지역에서 발견됐는지는 표시를 안 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한반도나 요동이나 요서나 비슷하게 발견된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게 착오라 이겁니다.
-비율이 다르다.
-이게 발견 지역인데 2000년을 기준으로 331개의 비파형 동검이 발견됐어요.
그런데 내몽고하고 요동, 요서 지역에서 230, 240개가 발견됐죠? 330개 중에.
-대단하네요.
-한반도에는 다 합쳐서 남북한 합쳐서 75개밖에 안 돼.
물론 2000년 기준입니다. 그 뒤로도 발굴돼요.
무슨 소리냐면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지표 유물이라면 비파형 동검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 요동, 요서 저 지역이에요.
거의 3분의 2가 저기서 발견되죠.
그래서 저는 요하 문명 지역 중심지를 초기 단군 고조선 시대의 초기 중심지로 봐요.
하가점 하층 문화 기원전 2300년이라고 했죠?
시작 단계가. 그러면 기원전 2300년 하면 여러분 생각나는 거 있지 해요?
-고조선 건국.
-그렇죠. 2333년 이렇게 알고 있잖아요, 그렇죠?
시기도 하가점 하층 시기, 청동기 시대 진입하는 시기와 거의 유사하고.
-유사하네요.
-초기에는 그래서 비파형 동검이 없었겠죠.
왜냐하면 비파형 동검 상층부터 나오니까.
요하 문명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 분포예요.
-저기 빨간 점들.
-저쪽이 빨갛네요.
-빨간 점 하나가 유적지예요. 제일 밀집되어 있는 저기가 요하 문명의 중심지.
-저기.
-저기가 네이처지가 이야기하는 한국어를 포함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지예요.
그러면 비파형 동검의 3분의 2가 발견되는 데도 저기예요.
그러면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최초의 우리 민족의 국가인데 어디서 발원해요.
-저기서 왔다.
-나는 그래서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저는 요서 지역의 저 지역이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라고 생각합니다.
더 놀라운 자료는 이거 조양시박물관이에요.
조양시박물관에는 2000년까지 331개가 발견됐다고 했잖아.
조양시에는 저 청동기 시대 박스가 하나 있는데 박스 안에 21개의 비파형 동검이 전시되어 있어.
여러분, 남북한 합쳐서 발견된 게 2000년 기준으로 몇 개라고 했어요?
칠십몇 개밖에 안 된다고 했죠?
-75개.
-그런데 조양시박물관 안에만 21개가 한 박스 안에 전시가 되어 있어요.
그다음에 거푸집도 있어, 저기.
거푸집은 비파형 동검 하나와 고고학적 무게가 달라요.
-그래서 거기서 수백 개를 찍어낼 수 있는데.
-그렇지. 거기는 생산지라는 거, 생산지. 그러니 연구를 해.
저렇게 비파형 동검을 들고 있는 저 장군이 누굴까. 저게 후대의 단군들이겠죠.
-그럴 수 있겠네요.
-우리는 비파형 동검을 하나만 달랑 이야기하는데 비파형 동검은 저렇게 청동
투구, 청동 단추가 박혀 있는 장화, 갑옷, 저런 거와 같이 동반 출토된다고.
그래서 중국 학자들이 저런 모습으로 복원해낸 거야.
저거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은 아니고 후대의 단군들.
기원전 1000년 이후의 단군들은 저런 모습이었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주요 유물들을 다 봤잖아요, 그렇죠?
비파형 동검도 중원에서 안 나와요, 중원에서.
산동까지만 나와요.
그러니까 요하 문명을 대표하는 각 고고학물의 주요 지표들이 중원 지역에 안 나오는 거야.
-그러면 황하 문명과 확실히 구별되는 문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확실히 구별되죠.
네이처지에서도 이 요서 지역이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지인 데 반해서
황하 문명 지역은 한어, 장어, 한장어의 기원지라고.
그러니까 언어가 처음부터 다른 거야. 언어가 다르면 사람이 다른 거죠.
그러니까 그들이 만드는 무덤, 토기 이런 게 다 다른 거예요.
요하 문명은 처음부터 황하 문명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런데 다 한반도로 연결돼요.
그러면 한국의 역사, 문화 이런 것들 다 거기서 기원했다고 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추리 아니에요.
이제는 시각을 전체로 바꿔야 합니다.
새롭게 발견된 이상 이미 중국은 시작했잖아요.
우리의 시각으로 요하 문명을 해석해야 합니다. 어때요?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까 소병기 선생이라는 위대한 고고학자가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중국에서는 고고학의 아버지 이렇게 불러요.
그런데 소병기 선생이 요하 문명이 발견되면서 중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거를 설명하기 위해서 초원 문화와 홍산 문화도 내려오고 황하 지역으로.
황하에서도 홍산 문화 쪽으로 올라가고 하는 그 Y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Y자형 문화 벨트라는 것을 이론으로 제시했어요.
나도 알죠.
그런데 저렇게 해 놓으면 한반도랑 요하 문명 하나도 상관없는 것처럼 착각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제시한 게 A자형 문화 벨트예요.
이건 중문으로 논문 써서 제가 홍산 문화 국제 학술대회에서 정식으로 발표하고
책으로도 엮여 있어요, 중국어로 되어 있는.
A자형 문화 벨트라는 건데 이건 뭐냐 하면 요하 문명에서 우리 옥 귀걸이 같은 거 아까 설명했죠?
적석총 이런 거 전부 한반도를 통해서 일본으로 연결되잖아요.
그러니까 요하 문명을 중심으로 해서 한반도와 한반도 동해와 남해와 또
일본으로 연결되는 루트 그다음에 중국의 해안가를 따라 쭉 베트남까지 내려가는 루트.
그다음에 장강 지역에서 뱃길로 한반도 남부와 그다음에 규슈 쪽으로 연결되는
그런 A자형 문화 벨트라는 큰 시각으로 동북아 역사를 재점검해야 한다.
문화 요하 문명이 발견되지 않을 때는 저건 무의미하죠.
저기 뭐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슨 기원이에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여기가 한국어의 기원지고 또 동북아에서 가장 이런
문명의 중심지고 거기서부터 적석총 무슨 옥 귀걸이 이런 게 쫙 퍼져 나가니까 저런 루트로.
그래서 제가 제시한 게 A자형 문화 벨트다.
저런 시각으로 봐야 그래서 저는 요하 문명을 동북아시아의 공통의 시원 문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요하 문명은 중국 거다, 한국 거다.
이렇게 싸우는 건 무의미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요하 문명이 꽃필 때 중국이라는 나라도 없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요하 문명의 어떤 요인들은 저 해안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갔겠죠, 당연히.
현재 기준으로 하면. 또 어떤 거는 A자형의 이쪽 날개를 타고 한반도로 연결되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반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연구하면 되는 거예요.
중국 사람들은 죽어라고 중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금 연구하고 있고 연구
정도가 아니라 황제가 아예 만들었다고까지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많은 것들이 한반도와 연결돼 있는데 아무런 목소리를 못 내고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전 세계 사람들은 그 요하 문명에 대해서 얘기하는 중국인들의 시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왜?
이론에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요하 문명은 우리 네이처지에도
얘기하듯이 한국어의 기원지일 뿐만이 아니라 한국 문화, 사상, 역사 모든 것의
출발점일 수도 있고 또 요하 문명은 중국이나 한국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동북아시아 모든 민족들의 공통의 시원 문명이다.
우리 시각으로 요하 문명을 해석해서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다시 짜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왜?
중국은 이미 하기 시작했으니까.
-황하 문명과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는 요하 문명.
그 흔적들을 오늘 선장님과 함께 살펴봤는데요.
그렇다면 오늘 강연 한마디로 정리해 주신다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국에서는 요하 문명이 발견되면서 상고사 전체를 재편하고 있어요.
그래서 강의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요하 문명에 대한 우리 시각의
해석을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도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롭게 써야 한다.
-오늘 요하 문명.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본 것 같은데 두 분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뭐 모르고 있던 걸 새로 알게 해 주셔서 또 듣다 보니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요하 문명 중에 어떤 거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많이 나왔잖아요. 옥귀도 나오고 적석총도 나오고.
-저거, 저거 칼.
-비파형 동검, 비파형 동검. 쟤 내 스타일이다.
-중원에는 없는 거.
-쟤 내 스타일.
-알겠습니다. 경환 씨는 어떻게 들으셨나요?
-저도 사실 지난 시간부터 요하 문명 굉장히 신기했는데 오늘 실제 사진도
보고 실제 물건들을 이렇게 보니까 우리랑 더 연결고리가 너무 많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따로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분야도 이렇게 새롭게 파줄 학자분들 그리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닐 수 있다라는 걸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우리가 꾸준히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더 늦기 전에 요하 문명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오늘의 지식 항해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실크로드의 길에는 한의학도 있었다. 재밌는 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OO를 갖고 가고 싶어 했어요.
중국인 어떤 누구도 이와 같은 책을 만들어낸 역사는 없지 않느냐.
-맞아.
-인삼은 뭐 고려시대 때부터 이슬람인들의 교역품으로도 되게 유명했고.
진생 그러면 다 알지만 인삼이라고 불러달라.
-외국 사람들 주목하라. 진생이 아니라 인삼이라고.
-한의학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좀 알려보자.
중국에서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나라 한의학에서만 이야기하는
한의학 술기를 제 나름대로 21세기에 K-메디 실크로드를 또 만들어 보려고 노력을 해 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