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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 팬데믹이 만든 새로운 길 (김민주 / 동영상 크리에이터)
등록일 : 2024-12-04 14:43:52.0
조회수 : 510
-보물이 되는 지식을 찾아 떠납니다. 펼쳐라.
-(함께) 보물지도.
-두 분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 있으신가요?
-여행 간 적은 있는데 살아본 적은 아직 없어요.
-살아본 거라면 얼마나 있어야 산 거예요?
-이사를 했다. 짐을 부쳤다.
-없죠. 짐은 부쳤죠.
-그래요?
-캐리어를.
-그런 거 가지고.
-캐리어 가지고는 안 되죠.
만약에 내가 다른 나라에 살 수 있다면 두 분은 어느 나라에서 정착해 보고 싶어요?
-저는 음식이 맛있는 곳.
-어디인데요?
-모르죠. 안 가봤으니까.
-전라도인가요?
-안 가봤으니까.
-정말 획기적인 답이다. 모르죠, 안 가봤으니까.
-안 가봤는데 어떻게 알아요.
-정답.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좋지.
-권 쌤은요?
-저는 사실 버스킹하면서 몇몇 나라들을 가봤는데 그중에 저는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너무 즐거운 추억들이 많아서
거기 살기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호주가 또 한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알겠습니다.
우리 또 권 쌤이 호주로 멀리 날아가면 보물지도 호주 편도 한번 해야죠.
-너무 재미있겠는데 제작진들이 힘들겠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물음에 저마다 떠오르는 나라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오늘 모실 선장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에서 사는 걸 꿈꿨고
그 꿈을 이루셨다고 합니다.
오늘 그 이야기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도록 할 텐데요. 모셔볼게요. 선장님.
-(함께) 나와주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장님 그러면 이탈리아에서 날아오신 건가요?
-네.
-보물지도를 위해서요?
-보물지도를 위해서.
-이렇게 싹 날아오셨네요.
-그런데 저는 궁금합니다.
정말 많은 나라가 있는데 왜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를 꿈꾸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 진짜 좋아했던 게 만화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만화책.
-그러다가 중학교 때쯤에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었는데 여기 아실지 모르겠는데
90년대에는 일본에 있는 콘텐츠가 한국으로 정식으로 수입이 안 돼 있었어요.
그래서 지하상가에 가면 이렇게 비디오테이프에 하얀색 견출지로
불법 복제판 같은 걸 팔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용돈만 모으면 그거를 사러 다녔어요.
그러면서 보기 시작한 게 토토로, 라퓨타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지금 상대적으로 토토로에 비해서 안 알려져 있는 만화 중에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만화가 있어요.
그런데 그 만화의 주인공이 크레모나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
바이올린을 만드는 걸 배우러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만화에는 그 도시 풍경이 안 나와요.
그런데 제가 너무 이 애니메이션에 심취해서 서점부터
도서관을 다 다니면서 그 도시를 찾아 나선 거예요.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이 따로 없으니까.
-인터넷이 없고 검색이 안 되니까.
그런데 그 도시가 어디냐 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그 영화에 나오는
크레마 바로 옆에 있는 도시라서 그 영화 풍경을 상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거기에 빨간 벽돌에 오래된 골목길 있는 그런 도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거를 보자마자 반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 때부터 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서 살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저는 신기한 게 사실 어릴 때야 그런 꿈을 꿀 수 있거든요.
여기 너무 좋다.
그런데 많은 분이 그거를 어른이 됐을 때 현실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렇지.
-그 추진력도 너무 대단하시고.
그런데 단순히 딱 그 계기 하나만으로 이탈리아까지 정착을 하신 거예요?
-조금 전에 이야기하실 때 어느 도시 가고 싶으세요,
어느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했을 때 맛있는 거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사실 맛있는 곳 많은 곳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못 가요.
-왜요?
그냥 막연하게 되어 있는데 저의 꿈은 그냥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라고 하는
그냥 막연한 꿈이었는데 어느 날 거기에 딱 점을 찍는 계기가 생겨요.
빠르게 멀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건
아름답게 나는 것이다라는 걸로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에요.
그리고 19년은 정확하게 올해까지 제가 이탈리아에서 지금 살아온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이탈리아 도착해서 두 아이와 함께 이탈리아에 살아가고 있는 이 19년 동안
제가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들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탈리아에 가게 된 계기부터 해서
거기서 펼쳐지는 우리 선장님의 이야기들 저희가 쭉 들어볼 수 있나요?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좋습니다. 그러면 박수로 시작해 볼까요?
-대학교 초창기 때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사장님이 저희 어머니랑 동갑이라서 54년생이었는데
그 나이에 마흔에 파리에 패션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셨던 분이거든요.
그분이 하는 대구의 한 카페에서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민주야, 이탈리아에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도 직업이야.
그 사람을 우리는 바리스타라고 부르는데 네가 그렇게 이탈리아를 가고 싶으면
에스프레소 좋아하니까 가서 바리스타 공부를 한번 해보면 어때라고
저한테 2000년도에 이야기를 하셨어요.
여기서 질문.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벅스가 몇 년도에 생긴지 아세요?
-1992년.
-95년. 1999년도에 1호점이 생겨요.
-아깝다.
-내가 제일 가까운데. 아무도 바리스타라는 말을 모르던 때예요.
-모를 때네.
-낯선 단어니까.
-그런데 제가 점을 찍었잖아요. 이탈리아를 가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이탈리아 가서 바리스타를 하겠다고 점을 탁 찍었는데 문제는 갈 수 있는 방향은 정해졌는데
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는 법이 없는 거예요.
대구에서 제 주변에 이탈리아 가 본 사람도 없고 바리스타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아버지한테 선언했어요.
나는 이탈리아에 바리스타 하러 가겠다. 아버지가 바리스타가 뭐냐.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랬더니 저희 아버지가 커피는 엄마가 잘 타지 않니라고 물었거든요.
네가 그렇게 가이드를 하러 가서 돈을 벌고 바리스타 공부를 하면 어때라고
조언을 해 줘서 제가 가이드를 목적으로 간 게 아니라.
-수단으로.
-가이드를 수단으로써 이탈리아를 선택해서 2006년도 6월에 이탈리아로 제가 갑니다.
그렇게 해서 가이드를 시작해요.
제가 2006년도부터 가이드를 시작했는데 세상의 모든 직업을 알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바리스타를 아니까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가이드를 해보니까
제가 몰랐던 것뿐이지 제가 되게 잘하는 일이었던 거예요.
-가이드라는 업 자체가.
-가이드라는 직업이 되게 잘 맞아서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그래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짜 신나게 가이드를 했거든요.
-수난으로 생각한 걸 꽤 오래 하셨네요.
-정말 이거 하다가 바티칸 박물관에서 까무러쳐도 좋겠다 싶을 만큼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여기서 만났던 저의 사수 선배님과 결혼까지 하게 되고
처음에는 한 5년 돈 벌고 바리스타 해야지 한 게 7년이 되고 아이까지 생긴 상황에서
2013년도가 돼서 제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7년간의 가이드 일을 멈추게 됐는데요.
여기 지금 직장 몇 년 차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일하시는 게 보통...
-저는 딱 3년 차입니다.
-3년 차, 7년 차 때 위기가 오거든요.
뭔가 한번 그만두고 싶다든가 뭔가 다른 거를 해보고 싶다든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 생기는.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데 이때 제가 임신했을 때가 좀 그만하고 싶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도 재밌는 것도 사그라들고 했던 상황에 임신해서
되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저는 다시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가이드에.
-가이드 일에. 그런데 지금이랑 조금 다른데요.
현재 여행 시장의 트렌드는 긴 투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반나절 정도만 투어 해주고 오후에는 본인이 가고 싶은 맛집을 가고
쇼핑을 하는 걸 하는 식이지만 제가 임신했던 2013년도는 민박집에서
민박집 주는 밥 먹으면서 돈 아끼면서 하루 종일 빡세게 여행을 하던 시절이라서
저희가 투어가 한 아침 7시에 시작하면 저녁 10시까지 야경 투어를 해줘야 하는.
-종일 투어.
-정말 좀 타이트한 투어였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제가 일하기 위해서 남편이 그날 일을 안 해야 하는 거예요.
-아이들을 봐야 하니까.
-아이를 맡길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게 경력이 딱 단절이 되는 순간에
이걸 현실을 자각했는데 경력 단절이 문제가 아니라 좀 슬펐던 게
내가 7년간 이렇게 신나게 가이드를 하고 내가 엄청 고생을 했는데 그냥 끝나면 끝인 거예요.
그리고 7년 동안 회사가 성장하면서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지니까
저는 정말 어렵게 배운 이 투어가 와서 한 달 견습하면 바로 투입이 되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속성이 가능한.
-회사에서 굳이 저를 부를 이유도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러면 내가 이 회사 안에서 내가 아직까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지라고 계속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발견한 게 있습니다. 뭐였을 것 같아요?
-댄스.
-신생 회사를 세운다.
-그건 배신 아니에요?
-배신한다, 배신한다.
-회사.
-회사를 배신한다.
-등지고.
-등지고.
-노하우를 쏙 빼온다.
-노래를 하거나.
-가이드 중에 아무도 임신과 육아를 경험해 본 사람이 없어요, 이탈리아 안에서.
그래서 가이드를 하면서 가이드들이 항상 힘들었던 게 뭐냐 하면
손님들이 가족 단위로 온다든가 아이가 뭔가 아프다든가 아니면
한국에 있는 누구한테 아이 선물한테 어떤 거 사줘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거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2013년도 이때는 블로그가 그렇게 막 다양하게 있을 때도 아니고
유튜브가 활성화돼 있지도 않으니까 정보가 너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고 애가 아플 때 병원을 가고
애한테 필요한 걸 사다 보니까 이런 정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이때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성 글들을 올리기 시작하고 회사 게시판에다가 같이 올렸어요.
그래서 이 회사 안에서 쟤 김민준은 찐 정보를 아는 애야라고
인식이 되기 시작하면서 가족 단위로 저한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가기 좋은 곳. 아이들과 같이 가면 좋을 식당.
이런 정보들을 제가 모아서 이거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블로그 생활을 하다가 아이가 3살이 됐어요.
지금 저 중간에 있는 애가 이안이거든요.
이안이가 지금 등을 지고 하늘을 보고 있는데 이유가 아토피가 너무 심했어요.
-이탈리아에서요?
-이탈리아 내에서.
-그래서 지금 목에 너무 긁어서 거즈를 목에 묶어 놓은 거예요. 긁지 말라고.
너무 심한데 이탈리아 내에서 아토피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블로그에 이 시점에 글이 변해요.
정보성 글이 아니라 힘들어 못살겠다 수준의 내 힘듦을 토로하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하고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한 개 더 발생해요.
제가 아무리 한국말을 해도 아이가 대답을 이탈리아말로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그렇겠다, 주어진 환경이.
-환경이. 그래서 너무 무서운 게 나는 여기에서 자란 사람도 아니고 원어민도 아닌데
그러면 일정 어떤 나이가 탁 되면 나랑 이 아이의 대화는 어떻게 되지?
이런 생각 하니까 좀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썼던 이유는 힘들어서가 아니고요.
제가 검색을 해봤는데 아무도 여기에 대한 글을 적어 놓은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앞으로는 국제 커플이 아니라 한국 부부가 외국에 나가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아질 텐데.
-그렇죠.
-그 사람들이 나 같은 일을 겪게 됐을 때 내 글을 통해서 조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댓글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겠네.
-필요했다, 이런 글 써줘서 고맙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다가 4년 정도 탁 지나니까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에는 걸려요, 제가.
-책을 내고 싶으셨구나.
-맞아요. 책 내고 싶다는 병에 제가 걸린 거예요.
그리고 댓글이 막 달리니까 내 글 좀 이제는 팔리면 베스트셀러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200군데인가 300군데 투고를 시작합니다. 계획을 적었어요.
왜냐하면 이 당시에 육아서가 뭐가 있었냐 하면 프랑스식 육아, 덴마크식 육아,
그래서 한국 사람이 쓴 게 아니라 외국에서 쓴 책을 마치 선진 교육법인 것처럼 쓰는
육아서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해외에서 앞으로 다문화나 아니면 국제 커플들도 많아지고
해외 사는 사람들도 많아지면 경쟁력이 있겠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래서 기획안을 써서 막 뿌렸는데 정말 단 한 군 데도 답이 안 오는 거예요.
-수요를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러면 가장 정확한 방법은 업계 사람한테 물어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인 중에 출판 쪽 관련한 사람을 찾아내서 물어봤어요.
책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그랬더니 그분이 저한테 딱 한마디를 해줘요.
너 안 유명하잖아. 너가 생각하기에는 블로그에 사람들이 많이 읽는 것 같지만
그 숫자가 시장에서는 많은 숫자가 아니야. 그래서 너를 절대로 사람들이 책을 내주지 않아.
그런데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딱 하나 있어. 책을 한 권을 다 써서 투고해야 해.
그래서 이게 전체 원고가 다 있으면 읽어 보고 이게 내기까지 기간이 짧기 때문에
무조건 이게 된다 싶으면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이미 완성작을 보고.
-완성작을 만들어 놓으면.
그리고 2017년도에 다음에서 플랫폼을 하나 만들어요. 브런치라고 하는 작가들을 위한.
-브런치.
-글 쓰는 플랫폼이 나온 거예요.
-브런치는 지금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제가 완전 초창기 때 여기다 작가 신청을 하고 넣어서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저는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합니다라고 선언을 합니다.
아무도 저한테 의뢰하지 않았고 아무도 저에게 마감을 걸지 않았지만
제가 의뢰하고 제가 글을 쓰고 제가 탈고하고 제가 마감을,
독촉하는 역할을 다하면서 매주 수요일 글을 쓰기 시작을 했고
2019년 저한테 메일이 하나 옵니다. 계약합시다.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요.
이미 저한테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는 목차부터 기획까지 다 끝내고 저한테 왔었어요.
왜냐하면 브런치에 이미 글이 다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틀을 갖춰놨다는 거죠.
-사인을 하고 몇 달 뒤에 저는 책이 나옵니다. 저 책에 모든 곳에 맥이 통하는 게 하나 있어요.
제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하면 첫째 아이 이안의 말 때문인데요.
남편은 가이드로 바빴고 저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겪는 이 모든 육아의 상황들이 다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을 제가 아이를 데리고 다녔어야 하거든요.
맡길 데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너무 힘드니까 애 앞에서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왜 이건 안 되는 거지? 한국은 안 이러는데 이런 얘기를 툭툭 던졌거든요.
이거는 사실은 애가 있으니까, 애한테 한 말이지 한 서너 살 된 애한테
제가 뭔가를 원하고 했던 말은 아닌데 아이가 저의 말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토피가 너무 심한데 어떤 약을 써도 안 되고 그래서 제가 애 앞에서 울었어요.
나는 도저히 못 하겠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그런데 제가 이탈리아 오기 직전에 저희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제가 마음을 되게 굳게 먹는 일이 되기도 했는데 너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니까
아이가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이때가 4살이에요.
그래서 내가 왔어.
엄마가 슬퍼하지 말라고 엄마의 엄마를 대신해서 내가 온 거야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제가 이 얘기를 듣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이 얘기를 적고 이 얘기를 글로 썼어요.
-작가님의 아들이라서 그런가, 말을 어떻게 저렇게.
-확실해요?
-시적으로 하죠?
-되게 이탈리아적인 표현인 건가.
-맞아요. 제가 처음에는 이 아이가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이 말을 그대로 이탈리아 말로 옮기면 사실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에요.
-이탈리아식 표현 방법 같아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하는 표현이 한국말로 옮겨졌는데 이 표현을
우리가 쓰지 않는 표현이다 보니 우리한테는.
-생소하죠.
-어떻게 보면 생소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는 되게 낭만적으로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되게 시적이야.
-예를 들어서 이안이 친구들이 크리스티안이라는 애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안이 스펠링으로 Ian이라고 써요.
크리스티안이라고 적으면 맨 마지막에 ian으로 끝나거든요. 그런데 자기 이름을 탁 쓰고는.
-이 안에 너 있다.
-내 이름 안에 네가 있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안이가.
-소름이 돋아.
-한국말과 이탈리아 말을 두 개를 쓰면서 한국 정서와 이탈리아 정서가 두 가지를
다 가면서 이 말이 서로 교차가 되면서 이 안에 되게 신비한 표현들이 들어가는데
제가 아이한테 힘들어 죽겠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이 아이가 저한테 던지는 말이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의 리액션이 아니라 뭔가 이탈리아 필터를 가지고 저한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작년에 이안이랑 저랑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둘이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이안이가 저한테 해 준 말입니다.
성공과 실패 차이가 뭐야라고 제가 물었더니 솔직하게 둘은 차이가 별로 안 날 것 같은데?
가위바위보를 했어. 얘는 이겼어. 얘는 졌어. 그냥 뭘 하는 거잖아.
실패한 사람은 잘했다, 노력했다. 성공한 사람은 잘했다, 이겼다.
그냥 둘 다 잘한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둘 다 잘한 거야.
-그리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난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말을 안 들었어.
이 정도까지 화낼 일은 아닌데 겪어 보시겠지만 화난 일을 이 아이한테.
-풀어야지.
-푸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그런데 풀고 나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이 정도까지 할 일은 아닌데.
그래서 제가 아이한테 사실 엄마가 너 때문에 화난 게 아니라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좀 그랬어.
엄마가 심했던 것 같아, 미안해라고 했더니 아이가 저한테
엄마 화를 나한테 넘겨주려고 한 거야?
그런데 엄마, 넘겨줘도 엄마한테 반이 남아.
그런데 나한테 넘겨준 걸 내가 또 다른 사람한테 넘겨줘.
그 사람한테 또 넘겨줘. 그러면 다 화나.
-그래서 내가 그러면 엄마 화난 거 어떻게 해야 해라고 했더니 들어달라고 해.
그러면 그 사람이 자신의 기쁨을 엄마한테 넘겨줄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제가 뭔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끔 아이가 계속해 주는 걸 느끼면서
글로 이걸 계속 기록해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안이가 상담 자격증을 가지고 있나요?
-그건 작가님이 선장님이 아니고 이안이가 선장님을.
-쟤가 선장이에요. 사실은 쟤가 선장이에요.
-그러면 죄송한데 여기 이안 선생님 모실게요. 우리 이안 선생님 모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말이 이안이가 가지고 있는 이 말을 내가 기록해 나가는 일이
되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면서.
-진짜.
-이안이 말 때문에 저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었고 브런치를 계속 연재를 했고
그리고 이렇게 해서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게 됩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이안이의 말이 워낙 아름다워서 이걸 남기기 시작하신 거잖아요.
그러면 저 책을 만들려면 마감을 하고 해야 하니까 나중에는 이안이에게 압박을 가하셨나요?
말해, 말해 봐, 막 이러면서 압박을 가하시진 않으셨나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고 찌른다고 나와?
-몇 장이 모자라, 이러면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는 아닌데 저희 집 앞에 바가 하나 있어요.
진짜 칵테일 팔고 하는 데인데 그냥 아이들 데리고 광장처럼 돼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저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이안이랑 둘이 거기 가서 한잔해요.
그리고 세네 시간씩 둘이 앉아서 계속 이야기를 해요.
때로는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고 많은 것이 저의 경력을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조금 전에 저보고 이안이가 선장 아닙니까 했는데 엄마라는 이유로
저에게 새로운 경력이 생길 수 있고 이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이때 깨닫고 제가 다음으로는 출판을 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이안이의 말을 3년 동안 모아놨거든요.
다 노트를 해 놨는데 모두 다 글로 쓸 수는 없으니까 이 아이의 말을 담아놓은 책을 내고 싶다.
아마 지금 이것을 제가 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숏 폼이 유행이니까.
그런데 2020년만 해도 이렇게 짧은 글귀의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어서
아예 제가 그냥 책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안이와 이도 저 두 명을 다 작가로 올리고 책을 해서 이 책을 파는데
책을 팔아보고 알았습니다.
여기 이렇게 많은 책이 있지만 책은 정말 돈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이것을 한 번에 한 권씩 파는 것은 돈이 안 되니
이걸 책방에 한 번 입고를 시켜보자 해서 입고를 시키는데
아무리 입고를 시켜도 답이 안 오는 거예요.
그때 한 인스타 지인분이 저한테 DM를 보내요.
여기, 여기, 여기 책방에 입고 문의를 해 봐라.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책방들인 거예요. 들어가 봤더니 구독자가 300명.
왜 나한테 이런 곳에 책을 입고하라고 했지? 그분이 저한테 그랬어요.
여기 있는 이 리스트에 있는 책방 주인들이 다 엄마입니다.
그리고 제가 문의를 하니까 입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았어요.
내가 믿고 이 책을 만든 것에 대한 가치는 맞다.
그런데 팔리지 않았던 건 안 팔리는 데에서 내가 팔고 있어서 그렇구나.
상품은 팔리는 데서 팔아야지 이거는 팔리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사실 이걸 그냥 아이랑 저랑 추억 때문에 만든 책이지만 이 당시에 이게 저한테는
조금 콘텐츠나 마케팅을 보는 시야를 조금 바꿨던 계기 중의 하나예요.
-나중에 돼서는 남는 게 책이라기보다는 어쨌든 대화했던
시간이이 엄청 많이 남으실 것 같아요.
몇 시간씩 이안이랑 같이 얼굴 마주 보면서 대화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책은 사실 나중 문제고 기억 자체가 너무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서
많은 방송 보시는 부모님들이 부럽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정확하신 게 요즘에는 제가 엄마가 된 이유가 저 아이의 말을
문자로 옮기기 위해서 나는 엄마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아이의 말은 가장 곁에 있는 게 엄마니까
엄마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실 다 흩어지는 말이잖아요.
아이는 뱉은 말을 기억을 못 합니다.
그래서 그게 진짜 너무 귀한 순간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기까지가 낭만적인 이야기고요. 이제 되게 급변합니다.
여기가 딱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건데.
-딱 좋은데, 지금.
-여기서 딱 끝내야 하는데.
-코로나가 터져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와요.
처음에는 비행기가 끊겼어요. 나가는 비행기, 들어오는 비행기.
두 번째로는 지역 간 이동이 막혔어요.
그런데 세 번째는 어떤 상황까지 있냐면 집 밖을 못 나가는 상황까지 돼요.
저희는 집 안에서 락다운이라서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어요.
-완전 고립이네요.
-완전 고립이에요.
그래서 창문 밖에서 박수를 쳐서 서로 생존을 느껴야 할 만큼
집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생필품을 사러 나가든가, 실려 나가든가.
마지막이 뭘까요?
-멀리 나가든가.
-개 산책시키러 나가는 것.
-개 산책, 개 산책.
-사람은 못 나가도 개는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빼고는 할 수가 없어서 안에 있게 됐는데
사실 집 안에서 되게 행복했어요.
아이들과 되게 신나게 지냈어요, 너무너무. 남편은 맨날 바빴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니까 남편이 가이드를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죠. 책 파는 건 돈이 안 된다고. 이것은 돈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남편이랑 저랑 아무도 오지 않고 아마도 나갈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는 다른 거 생각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는 가이드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러면 할 수 있는 곳으로 사람을 옮겨보자라고 해서 저희가 시작한 게 유튜브입니다.
-난 또 개 키우기 시작했다는 줄 알고...
-나도, 나가려고.
-이미 아이 2개로 과포화가 됐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유튜브를 시작을 했고
저희는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는 유튜브를 생각한 게 아니라 이걸로 투어를 하고 싶었어요.
가이드 투어를.
그래서 우선은 구독자가 돼야지 어느 정도 여기를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라이브를 했어요.
오늘 이탈리아 상황은 어떻고 그러다 옛날 가이드했던 이야기도 하고
여행한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저희가 유튜브를 시작을 하고.
-사실 코로나가 너무 힘든데 이거 덕분에 저희 시야가 진짜 이렇게에서 이렇게 열린 것 같아요.
제가 키워보면서 느끼는 게 한국에서 교육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으니까
왜 우리는 여기 사는가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남편이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로마를 랜선 투어를 하기 시작을 한 거예요.
콜로세움은 여기고 여기는 여기고 이렇게 해서 저희가 그걸로 수익을 얻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쭉 이어지기 시작을 했어요.
저희가 구독자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게 많았을 것 같지만
한 3000명 정도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유튜브를 하다가
남편이랑 저랑 딱 같이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어요.
남편의 꿈이 하나 있었어요.
캠핑카를 타고 이탈리아를 여행해 보는 거였거든요.
-그렇지.
-그런데 상황이 안 돼서 그냥 잊고 살았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딱 돼서 아무도 못 와,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가.
이탈리아 내에는 로마 제국 이래 가장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됐어.
그리고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해진 첫날 남편이랑 저랑 유튜브로 번 돈 모아서
캠핑카 떠나자, 그렇게 해서 제가 떠나면서 아이들한테 해준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뭐든 해도 된다는 거야.
우리는 이제 뭐든 할 거야, 캠핑카 타자.
그래서 이탈리아 최남단을 15박 16일로 저희가 캠핑카 여행을 했고.
-재밌겠다.
-그렇게 끝나고 돌아온 캠핑카 영상을 제가 편집해서 시리즈로 올렸어요, 유튜브에.
그런데 조회수가 한 300, 400회? 그랬는데 저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방송국에서.
직업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저희한테 랜선 투어 가이드 직업을
소개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저희가 방송에 출연을 합니다.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2회분도 나갔어요.
그런데 1회분에 저희가 나왔던 방송이 한 15분 정도였나?
그런데 15분 방송이 시작하고 딱 끝났더니 3000명이었던 유튜브가
15분 만에 1만 3000명이 돼 있는 거예요.
그 15분 동안 구독이 된 거예요. 그리고 이 방송을 한 출판사에서 봅니다.
아버지라면 아실 텐데 학습 만화계의 전설 같은 만화가 하나 있어요.
마법천자문이라고.
-마법천자문.
-마법천자문.
-그 마법천자문을 만들었던 출판사에서 저에게 연락이 와서 로마 가족을 주제로
이탈리아의 현실적인 일상을 소개하는 학습 만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해서
저희가 만화책 주인공이 돼서 시리즈 만화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 현실적으로 너무 안 알려진 유튜브인데
그래서 출판사랑 방송국에다 물었어요.
왜 우리를 선택했냐. 그랬더니 다른 유튜브도 많았는데 저희만 유일했대요.
이걸 왜 시작했는지 영상을 올린 사람이 저희가 유일했대요.
이걸 왜 했고 이걸 어떻게 했고 그리고 4명 다 가족들 캐릭터가 나와 있어서
이거를 콘텐츠로 뽑기에는 너무 좋은 거가 있었고 저희가 몇 년 동안
쌓여있는 게 있다 보니까 만들기가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캐릭터 거리면 엄마, 아빠, 이안, 이도 이렇게 넷...
-맞아요. 성격도 나오고. 그때 제가 크게 깨닫습니다.
이전까지는 막 어그로도 끌고 싶고 섬네일도 자극적으로 뽑고 내용도 막 뽑고 싶었는데
중요한 건 구독자 수, 조회수가 아니다.
30명이 봐도 그 안에 방송국 PD가 있으면 다른 문제인 거고 구독자가 3명이라도
그 3명 중의 한 명이 출판사 관계자면 이거는 다른 이야기다.
그러면 결국은 내가 해야 하는 거는 많은 거에 노출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뚜렷하게 보여주는 게 훨씬 더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로마 가족이라는 콘텐츠에
조금 더 모습들을 완성해 나가요.
그리고 저에게 또 하나의 변곡점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저희가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이탈리아 음식 얘기를 좀 했었는데 저희가 여름이 되면
이탈리아 최남단 저희가 캠핑카 여행했던 곳에 있는 올리브나무 농장에 가요.
그런데 전 세계에 3000살이 넘은 올리브나무가 세 군데 있습니다.
그리스, 튀르키예, 이탈리아.
-3000년 이상 된.
-된 올리브나무.
-나무.
-그런데 그 3000년 이상 된 올리브 나무가 저희가 항상 놀러 가는 그 농장에 있어요.
여기 보시면 여러분이 아시는 올리브나무랑 좀 다르게 생겼죠?
그런데 이 올리브나무는 저 안에 저희 가족이 다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홈이 있을 만큼 아주 두꺼워요.
지금 두 나무 다 2000살이 넘었거든요.
그런데 이 나무들 사이사이가 엄청 넓어요.
세싼따삐에드라고 하는데 성인 남자 여섯 발자국만큼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여섯 발자국 옛날 로마 시대 마찻길 규격이에요.
지금 현재 도로 규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이거를 떨어뜨려 놓은 이유는 올리브나무 하나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완벽한 거리 조절이에요.
-적당한 거리 유지.
-영양분...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다 붙여 키워요. 그래야지 더 많이.
-수확할 수.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이거를 아직도 유지를 하고 그런데 제가 이 농장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여기서 나온 올리브유가 좀 맛이 특이해요.
목 안에서 너무 따끔거려서 뭔가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되게 써요.
그리고 보통은 올리브나무를, 올리브를 수확할 때 기계로 올리브나무를 잡아요.
그리고 흔들거든요.
-잡고 털죠, 다라라라 하면서.
-다라라, 그런데 그렇게 되면 수확을 빨리할 수 있고 많이 할 수 있기는 맞는데 나무가 다 상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아직도 사람들이 손으로.
-손으로.
-방망이로 쳐서 올리브유를 수확해요. 그런데 이게 너무 효율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코라도라는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여기 농장 주인인데, 왜 그렇게 해라고 했더니 현대적인 방법도 있고 쉬운 방법도 있는데
그걸 우리 표현으로는 세련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없잖아라고 이야기했어요.
-역시 낭만의 나라.
-다들 표현들이.
-낭만의 나라야.
-느림의 미학을 확실히 보여주네.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가 보기에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그 코라도가 생각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맞는 방법대로 하는 거예요.
이때 제가 떠올랐던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들한테 해준 얘기인데요.
빠르게 멀리 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아름답게 나는 거야라는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 옆에 제가 있었다면 빠르고 멀리 나는 게 아름답게 나는 거야.
-나도 그 생각했어.
-그럴 수도 있네.
-이렇게 했었을 텐데.
-그런데 그게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면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이때쯤에 저는 빠르고 멀리 날고 싶어 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저한테 하는 말이 있었어요.
민주야, 꼭 그렇게 살아야 해?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때는 그 말이 되게 서운했는데
지금에서 생각하면 제가 그렇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았던 거예요.
그게 옳고 그름의 얘기가 아니라, 그래서 그러면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방법으로 가야겠다,
이게 성과가 되든 안 되든.
그래서 저 스스로 저 로마가족에서 하는 모든 일에 콘텐츠 규칙을 만듭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1번, 자극적이지 않을 것.
종종 이런 해외에 있는 콘텐츠 만드는 분들이 인종차별 이런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 때가 있거든요.
-섬네일만 딱 봐도 어, 하면서 들어갈 수 있게.
-맞아요.
-바로.
-소매치기당하는 얘기, 그런데 첫 번째는 자극적이지 않을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계속할 수 있을 것.
-평생, 또.
-그리고 세 번째는 질문을 만들었는데 이 질문 모두에 예스라는 답이 나와야 해요.
그 질문입니다.
첫 번째, 시대상 어쩔 수 없이 내가 쇼트 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쇼트 폼을 만들면 1분 분량이라도 이 사람이 하루에 10분 이상을
생각에 잠기게 할 수 있는가?
두 번째, 글과 영상 모두 한 번에 소비되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 이상
한 번 더 떠올리게 만들 수 있겠는가?
세 번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을 만큼의 울림이 있는 이야기인가?
네 번째, 이탈리아가 궁금해질 것인가?
다섯 번째, 이탈리아의 정서. 느림, 여유, 시간을 담고 있는가?
여섯 번째,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나는 것이라는 본질과 이어져 있는가?
일곱 번째, 평생 해도 재미있겠는가?
저는 제가 만드는 모든 글과 콘텐츠는 이 7개 질문에 예스가 나온 것만 저는 만듭니다.
그리고 이거는 제가 항상 되새기는 문장인데요.
작가 최민석 씨의 베를린 일기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다.
저는 이때부터 성과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제가 필요한 돌들을
하나하나 쌓아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아요.
최근에 이거 보신 분 있을까요?
이탈리아의 여름 방학 숙제라고 하는 릴스를 제가 하나 만들었는데
2015년에 이탈리아 해변 마을 페르모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숙제를 하나 내줍니다,
여름 방학 숙제를.
그런데 이 여름 방학 숙제를 제가 2015년에 한 기사로 접하고 너무 좋아서 글로 썼어요.
그런데 2016년 여름에도 이거에 대한 글을 썼어요.
2017년에도 썼고요.
유튜브로도 몇 번이나 만들었는데 단 한 번도 바이럴이 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 6월에 저희가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에 1분짜리 영상으로
제가 짧게 이거를 올렸는데 지금 현재 이게 350만 뷰가 되면서 보통
제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은 애 부모나 아니면 이탈리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이거는 남녀, 나이 다 전 세계 어디 사는지 불문하고 무작위로 이 숙제가 퍼지기 시작을 한 거예요.
그래서 드디어 내 콘텐츠가.
-터졌다.
-시대에 맞았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건 좀 다른 생각이 접해지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몇 개 읽어드릴게요. 6번.
-6번.
-부끄러움 없이 춤을 추어라. 여름은 무조건 춤이다. 춤을 출 수 있을 때 추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7번, 최소한 한 번은 해가 뜨는 것을 보아라.
말 없이 숨을 쉬어라. 눈을 감고 감사함을 느껴라.
11번, 햇빛처럼 행복하고 바다처럼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라.
14번, 빛나는 햇빛 속이나 뜨거운 여름밤에 네 삶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꿈꾸어 보아라.
여름에는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꿈을 좇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라.
15번, 친절해라.
-그런데 이게 방학 숙제라면 방학 숙제 검사 어떻게 해요?
-그거는 본인이 알겠죠.
그리고 이 숙제를 해냈으면 제 생각에는 여름 전후로 아이는 달라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안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고 낭만적인 아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도 분명 작용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무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한 번은 제가 아이한테 물었거든요. 너의 재능이 뭐야?
여기 지금 친절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저희는 친절이라는 말에 대해서 가치를 되게 크게 두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안이가 엄마, 나의 재능은 친절이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 재능이 아니잖아.
누구나 다 친절하지 않잖아.
나는 친절하니까 내 재능은 친절이야 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이안이는 이탈리아 초등학교 5년입니다.
그래서 오기 전에 이안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왔는데 그 졸업식 날 선생님이 선물로 시를 주셨어요.
그 부분 중의 하나를 읽어드릴게요. 너희의 모든 최선을 응원해.
너희의 꿈을 따르고 실현해 나가길 응원해.
무엇보다 너희가 친절함을 잃지 않기를 응원해.
친절함은 너희를 멀리멀리 데려다 줄 거야.
이게 마지막 시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이다음은 이안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인데요.
아이들에게서 돌을 만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오늘의 돌들이 내일은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등반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어려움을 대면하고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답을 찾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움과 함께 머무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자갈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라고 선생님이 얘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이 얘기를 왜 쭉 하냐면요.
리스가 아까 전에 10년 만에 막 바이얼이 됐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저는 여름방학 숙제가 2015년도에도 좋은 이야기였고 16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모든 제가 지금 읽은 선생님 얘기는 다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처음 글을 쓰고 지금이 딱 10년 돼요.
이안이가 말을 시작해서 기록하고 제가 10년이란 시간 동안에 유튜브도 하고
브런치도 하고 강의도 하고 사업도 하는 이 10년이란 시간 동안 이제서야
좋은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스킬이 생긴 것 같아요.
그전까지 저는 좋은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사람들이 보게끔 하고 읽게끔 할
저의 노하우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쭉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누군가는 저한테 얘기를 해요.
글도 쓰고 영상도 쓰고 올리브유도 하고 이거 뭐 이렇게 너무 많은 걸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결국 글도 영상도 올리브도 전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에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날아가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모습만 다를 뿐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고 저는 저에게 있는 재능은 그거인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를 캐치하는 능력과 이걸 기록할 수 있는 꾸준함과 그리고
이거를 알리는 사람이 이게 저의 재능인 것 같고요.
그리고 이것이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친절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올리브 농장에서 농장 주인이 해줬던 얘기 중의 하나가 올리브는 따자마자 추출해야 해요.
올리브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산화가 시작돼요.
그러면 그때부터 맛이 변해요.
그래서 따자마자 얼마나 빠른 시간에 추출하느냐가 올리브유의 관건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올리브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발효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올리브오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는 사실 인간에게는 욕심하고
그 농장 주인이 했던 얘기가 좋은 올리브오일은 스스로 길을 걸어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예전에는 이 좋은 이야기를 담으면 막 어떻게든 알리려고 했지만
요즘에는 믿는 게 하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스스로 길을 걸어서 사람에게 닿게 될 것이다.
-언젠가 알아서 될 거다.
-알아서.
그리고 그것이 최근에 리스가 막 이렇게 퍼지기 시작한 게 어떻게 보면
콘텐츠가 막 이렇게 알고리즘을 탔네요.
이게 아니라 얘가 스스로 길을 걷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저 이런 방송되게 나와보고 싶었거든요,
강의하는 거.
그런데 이게 10년이라는 시간만에 이렇게 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거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닿은 걸 보면
결국 이 이야기들은 스스로 길을 걷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진짜 오늘 선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느껴지는 게 이게 뭔가를
나를 알리려고 목적 때문에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그 이야기 자체,
본질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때가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또 실행을 하다 보면
언젠가 또 이 세상의 때와 나의 때가 맞을 때 그게 짠하고 터지는 거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또 많이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
-저는 이제 아직 아이는 없지만 그리고 보물지도도 또 많은 부모님들이,
학부모님들이 많이 보시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아이와 대화하는 거에 대해서 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좀 더 아이와 진솔한 말을 많이 나누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하는 분들도 분명 많으실 것 같은데 아이의 대화로 책까지 내셨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한테 해 주시면 돼요. 제가 그 고민을 갖고 있거든요.
대화가 안 돼요, 대화가.
-대화가 안 돼요?
-해달라는 것만 말하면 끝이야.
-조금 전에 제가 친절 얘기를 한 번 했었는데 이게 방학 숙제에 있잖아요.
그 의미가 내가 친절하고 싶다고 친절하게 된다는 게 아니란 의미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게 방학 숙제로 있는 이유는 내가 교육을 받는 과정.
거의 한 십몇 년의 과정 동안 매년 해서 내가 노력해야지만 내가 성인이 됐을 때
친절한 사람이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하고 다져야 하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화도 비슷해요.
이 아이와 내가 깊게 대화를 하려면 오늘 시작되는 게 아니고
이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굉장히 많이 다져야 하는 작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인이 됐을 때 이 아이는 부모와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정말 많은 힘듦과 이런 고민들이 있을 때 부모랑 대화했던 기억이 있으면
무조건 어른이 돼도 부모를 찾게 돼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리고 그게 이탈리아에서는 정말 대화를 많이 해요, 부모와 아이들이.
-그렇구나.
-그래서 지금도 성인이 돼도 남자들이 부모님한테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은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되게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그 민족성이 아니라 제가 봤을 때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다듬은 그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누적된 습관인 거죠.
-그리고 가장 큰 건 이 아이가 아이라고 해서 주제를 정하시면 안 돼요.
대화할 땐 그냥 이 아이는 나랑 일대일의 인간 대 인간이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저는 죽음부터 돈부터 주제 아무 상관 없이 다 얘기해요.
-제한 없이?
-아예 제한 없이.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주제에서 죽음은 이런 거지만 이 아이는 이 나이에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거는 전 아무 주제를 가리지 않아요.
-저도 말했다시피 애를 둘을 키우고 있는데 어쨌든 교육에 대한 거는
항상 이런 얘기가 나오면 궁금한 게 많은데 이탈리아의 교육법과 한국의 교육법의
차이랑, 큰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큰 거는 좀 놀라실 것 같은데 초등학교 5년이라고 그랬잖아요.
5년간 반과 선생님이 같아요.
-한 반이 쭉?
-반이 바뀌지 않아요.
-한 반에서 한 선생님으로.
-한 반에서 5년을 가요. 그리고 중학교 가면 중학교도 역시나
한 반에서 3년을 같이 가고. 고등학교 가도 5년간 같이 가요.
-그러면 착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게 지금 2년째인지, 1년째인지.
-그렇게 가요.
-그럴 수도.
-그래서 제가 좀 전에 입학식 때 교장선생님이 했던 얘기를 올렸는데
그때 입학식 때 좀 생소하다고 느꼈던 게 보통은 이제 초등학교 입학식 하면
1학년 때 뭘 하고, 1학년 때 할 얘기를 해 주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1학년 때 뭐 하고, 2학년 때 뭐 하고, 3학년 때 뭐.
이 얘기를 안 하고 우리는 5년간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할 거고 5년 뒤에
이 아이들이 이렇게 원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이 아이들이 1년 호흡이 아니라 5년 호흡이에요.
-아예 덩어리를 이렇게.
-그리고 아이들과 계속 있으면 그 안에서 또 문제도 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지켜본 바로는 1학년 땐 맞는 애들끼리 놀다가 2학년 땐 쟤가 별로다가.
그리고 어떤 애는 좀 아플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이 있는데.
한 5년 정도 되면 이 안에서 이 아이들에 대한 동지애가 엄청 끈끈해 지고.
-그러게요. 같이 자라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여서 친한 애가 아니라 어쨌거나 이 한 반에 모든 애들이 굉장히 끈끈해요.
-알겠습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두 남매를 키우면서 또 일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겪었던.
우리가 알기 힘들었던 그런 이야기들 쭉 나눠 봤는데요.
그렇다면 오늘의 이야기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신다면요?
지금 제가 오늘 한 이야기가. 그런데 이걸 안 할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이것이 그때는 아니지만 20년 후가 되든 언제든 분명히 어느 곳의
저에게 결과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대학생 시절. 바리스타가 되겠다며 떠나셨는데, 이탈리아로.
지금은 전혀 다른 쪽으로 일을 하고 계시지만 또 하나 느낀 게.
이게 뭘 하든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인생은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오늘 두 분도 좀 재밌게 진짜 이야기 듣듯이 함께했잖아요.
-어찌 됐든 저도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교육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생각이 많아지기는 하는데.
듣다 보니 제일 좋은 교육은 뭐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부모와 아이의 대화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좀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가신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처음에 이탈리아 생각했다가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예측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 승률 100%인 이유는 그냥 다 막연하게 꾸준히 했다기보다 뭔가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거.
그런 걸, 나만의 분야를 잘 개척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서 또 나만의 필드를 만드는 것 이게 정말 좀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보다 내가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나라에서 살든 가장 중요한 건 인생의 목표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끝으로 오늘 지식항해 마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달려라 로보트야 이 안에 지금 누가 타고 있냐면 지금 훈이와 영희가 타고 있어요.
선생님 몸에 또 훈이가 있어요. 우리 이향원 아나운서 몸에도 영희.
-난 껍데기일 뿐이야.
-우리 몸에 있는 훈이와 영희는 목적이 있어요. 내 유전자로.
-(함께) 내 유전자로.
-전 세계를.
-(함께) 전 세계를.
-초토화시키겠다.
-초토화시키겠어.
-초토화시키겠다.
-100년을 살고 저는 쓰러지잖아요. 그러고 나서 우리 아이에게 뭐가 넘어갔죠.
-나는 간이역이었네요.
-(함께) 보물지도.
-두 분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 있으신가요?
-여행 간 적은 있는데 살아본 적은 아직 없어요.
-살아본 거라면 얼마나 있어야 산 거예요?
-이사를 했다. 짐을 부쳤다.
-없죠. 짐은 부쳤죠.
-그래요?
-캐리어를.
-그런 거 가지고.
-캐리어 가지고는 안 되죠.
만약에 내가 다른 나라에 살 수 있다면 두 분은 어느 나라에서 정착해 보고 싶어요?
-저는 음식이 맛있는 곳.
-어디인데요?
-모르죠. 안 가봤으니까.
-전라도인가요?
-안 가봤으니까.
-정말 획기적인 답이다. 모르죠, 안 가봤으니까.
-안 가봤는데 어떻게 알아요.
-정답.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좋지.
-권 쌤은요?
-저는 사실 버스킹하면서 몇몇 나라들을 가봤는데 그중에 저는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너무 즐거운 추억들이 많아서
거기 살기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호주가 또 한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알겠습니다.
우리 또 권 쌤이 호주로 멀리 날아가면 보물지도 호주 편도 한번 해야죠.
-너무 재미있겠는데 제작진들이 힘들겠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물음에 저마다 떠오르는 나라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오늘 모실 선장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에서 사는 걸 꿈꿨고
그 꿈을 이루셨다고 합니다.
오늘 그 이야기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도록 할 텐데요. 모셔볼게요. 선장님.
-(함께) 나와주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장님 그러면 이탈리아에서 날아오신 건가요?
-네.
-보물지도를 위해서요?
-보물지도를 위해서.
-이렇게 싹 날아오셨네요.
-그런데 저는 궁금합니다.
정말 많은 나라가 있는데 왜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를 꿈꾸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 진짜 좋아했던 게 만화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만화책.
-그러다가 중학교 때쯤에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었는데 여기 아실지 모르겠는데
90년대에는 일본에 있는 콘텐츠가 한국으로 정식으로 수입이 안 돼 있었어요.
그래서 지하상가에 가면 이렇게 비디오테이프에 하얀색 견출지로
불법 복제판 같은 걸 팔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용돈만 모으면 그거를 사러 다녔어요.
그러면서 보기 시작한 게 토토로, 라퓨타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지금 상대적으로 토토로에 비해서 안 알려져 있는 만화 중에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만화가 있어요.
그런데 그 만화의 주인공이 크레모나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
바이올린을 만드는 걸 배우러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만화에는 그 도시 풍경이 안 나와요.
그런데 제가 너무 이 애니메이션에 심취해서 서점부터
도서관을 다 다니면서 그 도시를 찾아 나선 거예요.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이 따로 없으니까.
-인터넷이 없고 검색이 안 되니까.
그런데 그 도시가 어디냐 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그 영화에 나오는
크레마 바로 옆에 있는 도시라서 그 영화 풍경을 상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거기에 빨간 벽돌에 오래된 골목길 있는 그런 도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거를 보자마자 반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 때부터 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서 살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저는 신기한 게 사실 어릴 때야 그런 꿈을 꿀 수 있거든요.
여기 너무 좋다.
그런데 많은 분이 그거를 어른이 됐을 때 현실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렇지.
-그 추진력도 너무 대단하시고.
그런데 단순히 딱 그 계기 하나만으로 이탈리아까지 정착을 하신 거예요?
-조금 전에 이야기하실 때 어느 도시 가고 싶으세요,
어느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했을 때 맛있는 거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사실 맛있는 곳 많은 곳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못 가요.
-왜요?
그냥 막연하게 되어 있는데 저의 꿈은 그냥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라고 하는
그냥 막연한 꿈이었는데 어느 날 거기에 딱 점을 찍는 계기가 생겨요.
빠르게 멀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건
아름답게 나는 것이다라는 걸로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에요.
그리고 19년은 정확하게 올해까지 제가 이탈리아에서 지금 살아온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이탈리아 도착해서 두 아이와 함께 이탈리아에 살아가고 있는 이 19년 동안
제가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들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탈리아에 가게 된 계기부터 해서
거기서 펼쳐지는 우리 선장님의 이야기들 저희가 쭉 들어볼 수 있나요?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좋습니다. 그러면 박수로 시작해 볼까요?
-대학교 초창기 때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사장님이 저희 어머니랑 동갑이라서 54년생이었는데
그 나이에 마흔에 파리에 패션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셨던 분이거든요.
그분이 하는 대구의 한 카페에서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민주야, 이탈리아에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도 직업이야.
그 사람을 우리는 바리스타라고 부르는데 네가 그렇게 이탈리아를 가고 싶으면
에스프레소 좋아하니까 가서 바리스타 공부를 한번 해보면 어때라고
저한테 2000년도에 이야기를 하셨어요.
여기서 질문.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벅스가 몇 년도에 생긴지 아세요?
-1992년.
-95년. 1999년도에 1호점이 생겨요.
-아깝다.
-내가 제일 가까운데. 아무도 바리스타라는 말을 모르던 때예요.
-모를 때네.
-낯선 단어니까.
-그런데 제가 점을 찍었잖아요. 이탈리아를 가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이탈리아 가서 바리스타를 하겠다고 점을 탁 찍었는데 문제는 갈 수 있는 방향은 정해졌는데
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는 법이 없는 거예요.
대구에서 제 주변에 이탈리아 가 본 사람도 없고 바리스타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아버지한테 선언했어요.
나는 이탈리아에 바리스타 하러 가겠다. 아버지가 바리스타가 뭐냐.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랬더니 저희 아버지가 커피는 엄마가 잘 타지 않니라고 물었거든요.
네가 그렇게 가이드를 하러 가서 돈을 벌고 바리스타 공부를 하면 어때라고
조언을 해 줘서 제가 가이드를 목적으로 간 게 아니라.
-수단으로.
-가이드를 수단으로써 이탈리아를 선택해서 2006년도 6월에 이탈리아로 제가 갑니다.
그렇게 해서 가이드를 시작해요.
제가 2006년도부터 가이드를 시작했는데 세상의 모든 직업을 알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바리스타를 아니까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가이드를 해보니까
제가 몰랐던 것뿐이지 제가 되게 잘하는 일이었던 거예요.
-가이드라는 업 자체가.
-가이드라는 직업이 되게 잘 맞아서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그래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짜 신나게 가이드를 했거든요.
-수난으로 생각한 걸 꽤 오래 하셨네요.
-정말 이거 하다가 바티칸 박물관에서 까무러쳐도 좋겠다 싶을 만큼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여기서 만났던 저의 사수 선배님과 결혼까지 하게 되고
처음에는 한 5년 돈 벌고 바리스타 해야지 한 게 7년이 되고 아이까지 생긴 상황에서
2013년도가 돼서 제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7년간의 가이드 일을 멈추게 됐는데요.
여기 지금 직장 몇 년 차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일하시는 게 보통...
-저는 딱 3년 차입니다.
-3년 차, 7년 차 때 위기가 오거든요.
뭔가 한번 그만두고 싶다든가 뭔가 다른 거를 해보고 싶다든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 생기는.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데 이때 제가 임신했을 때가 좀 그만하고 싶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도 재밌는 것도 사그라들고 했던 상황에 임신해서
되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저는 다시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가이드에.
-가이드 일에. 그런데 지금이랑 조금 다른데요.
현재 여행 시장의 트렌드는 긴 투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반나절 정도만 투어 해주고 오후에는 본인이 가고 싶은 맛집을 가고
쇼핑을 하는 걸 하는 식이지만 제가 임신했던 2013년도는 민박집에서
민박집 주는 밥 먹으면서 돈 아끼면서 하루 종일 빡세게 여행을 하던 시절이라서
저희가 투어가 한 아침 7시에 시작하면 저녁 10시까지 야경 투어를 해줘야 하는.
-종일 투어.
-정말 좀 타이트한 투어였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제가 일하기 위해서 남편이 그날 일을 안 해야 하는 거예요.
-아이들을 봐야 하니까.
-아이를 맡길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게 경력이 딱 단절이 되는 순간에
이걸 현실을 자각했는데 경력 단절이 문제가 아니라 좀 슬펐던 게
내가 7년간 이렇게 신나게 가이드를 하고 내가 엄청 고생을 했는데 그냥 끝나면 끝인 거예요.
그리고 7년 동안 회사가 성장하면서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지니까
저는 정말 어렵게 배운 이 투어가 와서 한 달 견습하면 바로 투입이 되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속성이 가능한.
-회사에서 굳이 저를 부를 이유도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러면 내가 이 회사 안에서 내가 아직까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지라고 계속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발견한 게 있습니다. 뭐였을 것 같아요?
-댄스.
-신생 회사를 세운다.
-그건 배신 아니에요?
-배신한다, 배신한다.
-회사.
-회사를 배신한다.
-등지고.
-등지고.
-노하우를 쏙 빼온다.
-노래를 하거나.
-가이드 중에 아무도 임신과 육아를 경험해 본 사람이 없어요, 이탈리아 안에서.
그래서 가이드를 하면서 가이드들이 항상 힘들었던 게 뭐냐 하면
손님들이 가족 단위로 온다든가 아이가 뭔가 아프다든가 아니면
한국에 있는 누구한테 아이 선물한테 어떤 거 사줘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거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2013년도 이때는 블로그가 그렇게 막 다양하게 있을 때도 아니고
유튜브가 활성화돼 있지도 않으니까 정보가 너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고 애가 아플 때 병원을 가고
애한테 필요한 걸 사다 보니까 이런 정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이때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성 글들을 올리기 시작하고 회사 게시판에다가 같이 올렸어요.
그래서 이 회사 안에서 쟤 김민준은 찐 정보를 아는 애야라고
인식이 되기 시작하면서 가족 단위로 저한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가기 좋은 곳. 아이들과 같이 가면 좋을 식당.
이런 정보들을 제가 모아서 이거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블로그 생활을 하다가 아이가 3살이 됐어요.
지금 저 중간에 있는 애가 이안이거든요.
이안이가 지금 등을 지고 하늘을 보고 있는데 이유가 아토피가 너무 심했어요.
-이탈리아에서요?
-이탈리아 내에서.
-그래서 지금 목에 너무 긁어서 거즈를 목에 묶어 놓은 거예요. 긁지 말라고.
너무 심한데 이탈리아 내에서 아토피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블로그에 이 시점에 글이 변해요.
정보성 글이 아니라 힘들어 못살겠다 수준의 내 힘듦을 토로하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하고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한 개 더 발생해요.
제가 아무리 한국말을 해도 아이가 대답을 이탈리아말로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그렇겠다, 주어진 환경이.
-환경이. 그래서 너무 무서운 게 나는 여기에서 자란 사람도 아니고 원어민도 아닌데
그러면 일정 어떤 나이가 탁 되면 나랑 이 아이의 대화는 어떻게 되지?
이런 생각 하니까 좀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썼던 이유는 힘들어서가 아니고요.
제가 검색을 해봤는데 아무도 여기에 대한 글을 적어 놓은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앞으로는 국제 커플이 아니라 한국 부부가 외국에 나가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아질 텐데.
-그렇죠.
-그 사람들이 나 같은 일을 겪게 됐을 때 내 글을 통해서 조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댓글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겠네.
-필요했다, 이런 글 써줘서 고맙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다가 4년 정도 탁 지나니까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에는 걸려요, 제가.
-책을 내고 싶으셨구나.
-맞아요. 책 내고 싶다는 병에 제가 걸린 거예요.
그리고 댓글이 막 달리니까 내 글 좀 이제는 팔리면 베스트셀러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200군데인가 300군데 투고를 시작합니다. 계획을 적었어요.
왜냐하면 이 당시에 육아서가 뭐가 있었냐 하면 프랑스식 육아, 덴마크식 육아,
그래서 한국 사람이 쓴 게 아니라 외국에서 쓴 책을 마치 선진 교육법인 것처럼 쓰는
육아서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해외에서 앞으로 다문화나 아니면 국제 커플들도 많아지고
해외 사는 사람들도 많아지면 경쟁력이 있겠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래서 기획안을 써서 막 뿌렸는데 정말 단 한 군 데도 답이 안 오는 거예요.
-수요를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러면 가장 정확한 방법은 업계 사람한테 물어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인 중에 출판 쪽 관련한 사람을 찾아내서 물어봤어요.
책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그랬더니 그분이 저한테 딱 한마디를 해줘요.
너 안 유명하잖아. 너가 생각하기에는 블로그에 사람들이 많이 읽는 것 같지만
그 숫자가 시장에서는 많은 숫자가 아니야. 그래서 너를 절대로 사람들이 책을 내주지 않아.
그런데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딱 하나 있어. 책을 한 권을 다 써서 투고해야 해.
그래서 이게 전체 원고가 다 있으면 읽어 보고 이게 내기까지 기간이 짧기 때문에
무조건 이게 된다 싶으면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이미 완성작을 보고.
-완성작을 만들어 놓으면.
그리고 2017년도에 다음에서 플랫폼을 하나 만들어요. 브런치라고 하는 작가들을 위한.
-브런치.
-글 쓰는 플랫폼이 나온 거예요.
-브런치는 지금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제가 완전 초창기 때 여기다 작가 신청을 하고 넣어서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저는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합니다라고 선언을 합니다.
아무도 저한테 의뢰하지 않았고 아무도 저에게 마감을 걸지 않았지만
제가 의뢰하고 제가 글을 쓰고 제가 탈고하고 제가 마감을,
독촉하는 역할을 다하면서 매주 수요일 글을 쓰기 시작을 했고
2019년 저한테 메일이 하나 옵니다. 계약합시다.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요.
이미 저한테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는 목차부터 기획까지 다 끝내고 저한테 왔었어요.
왜냐하면 브런치에 이미 글이 다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틀을 갖춰놨다는 거죠.
-사인을 하고 몇 달 뒤에 저는 책이 나옵니다. 저 책에 모든 곳에 맥이 통하는 게 하나 있어요.
제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하면 첫째 아이 이안의 말 때문인데요.
남편은 가이드로 바빴고 저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겪는 이 모든 육아의 상황들이 다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을 제가 아이를 데리고 다녔어야 하거든요.
맡길 데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너무 힘드니까 애 앞에서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왜 이건 안 되는 거지? 한국은 안 이러는데 이런 얘기를 툭툭 던졌거든요.
이거는 사실은 애가 있으니까, 애한테 한 말이지 한 서너 살 된 애한테
제가 뭔가를 원하고 했던 말은 아닌데 아이가 저의 말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토피가 너무 심한데 어떤 약을 써도 안 되고 그래서 제가 애 앞에서 울었어요.
나는 도저히 못 하겠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그런데 제가 이탈리아 오기 직전에 저희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제가 마음을 되게 굳게 먹는 일이 되기도 했는데 너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니까
아이가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이때가 4살이에요.
그래서 내가 왔어.
엄마가 슬퍼하지 말라고 엄마의 엄마를 대신해서 내가 온 거야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제가 이 얘기를 듣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이 얘기를 적고 이 얘기를 글로 썼어요.
-작가님의 아들이라서 그런가, 말을 어떻게 저렇게.
-확실해요?
-시적으로 하죠?
-되게 이탈리아적인 표현인 건가.
-맞아요. 제가 처음에는 이 아이가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이 말을 그대로 이탈리아 말로 옮기면 사실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에요.
-이탈리아식 표현 방법 같아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하는 표현이 한국말로 옮겨졌는데 이 표현을
우리가 쓰지 않는 표현이다 보니 우리한테는.
-생소하죠.
-어떻게 보면 생소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는 되게 낭만적으로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되게 시적이야.
-예를 들어서 이안이 친구들이 크리스티안이라는 애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안이 스펠링으로 Ian이라고 써요.
크리스티안이라고 적으면 맨 마지막에 ian으로 끝나거든요. 그런데 자기 이름을 탁 쓰고는.
-이 안에 너 있다.
-내 이름 안에 네가 있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안이가.
-소름이 돋아.
-한국말과 이탈리아 말을 두 개를 쓰면서 한국 정서와 이탈리아 정서가 두 가지를
다 가면서 이 말이 서로 교차가 되면서 이 안에 되게 신비한 표현들이 들어가는데
제가 아이한테 힘들어 죽겠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이 아이가 저한테 던지는 말이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의 리액션이 아니라 뭔가 이탈리아 필터를 가지고 저한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작년에 이안이랑 저랑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둘이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이안이가 저한테 해 준 말입니다.
성공과 실패 차이가 뭐야라고 제가 물었더니 솔직하게 둘은 차이가 별로 안 날 것 같은데?
가위바위보를 했어. 얘는 이겼어. 얘는 졌어. 그냥 뭘 하는 거잖아.
실패한 사람은 잘했다, 노력했다. 성공한 사람은 잘했다, 이겼다.
그냥 둘 다 잘한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둘 다 잘한 거야.
-그리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난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말을 안 들었어.
이 정도까지 화낼 일은 아닌데 겪어 보시겠지만 화난 일을 이 아이한테.
-풀어야지.
-푸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그런데 풀고 나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이 정도까지 할 일은 아닌데.
그래서 제가 아이한테 사실 엄마가 너 때문에 화난 게 아니라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좀 그랬어.
엄마가 심했던 것 같아, 미안해라고 했더니 아이가 저한테
엄마 화를 나한테 넘겨주려고 한 거야?
그런데 엄마, 넘겨줘도 엄마한테 반이 남아.
그런데 나한테 넘겨준 걸 내가 또 다른 사람한테 넘겨줘.
그 사람한테 또 넘겨줘. 그러면 다 화나.
-그래서 내가 그러면 엄마 화난 거 어떻게 해야 해라고 했더니 들어달라고 해.
그러면 그 사람이 자신의 기쁨을 엄마한테 넘겨줄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제가 뭔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끔 아이가 계속해 주는 걸 느끼면서
글로 이걸 계속 기록해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안이가 상담 자격증을 가지고 있나요?
-그건 작가님이 선장님이 아니고 이안이가 선장님을.
-쟤가 선장이에요. 사실은 쟤가 선장이에요.
-그러면 죄송한데 여기 이안 선생님 모실게요. 우리 이안 선생님 모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말이 이안이가 가지고 있는 이 말을 내가 기록해 나가는 일이
되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면서.
-진짜.
-이안이 말 때문에 저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었고 브런치를 계속 연재를 했고
그리고 이렇게 해서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게 됩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이안이의 말이 워낙 아름다워서 이걸 남기기 시작하신 거잖아요.
그러면 저 책을 만들려면 마감을 하고 해야 하니까 나중에는 이안이에게 압박을 가하셨나요?
말해, 말해 봐, 막 이러면서 압박을 가하시진 않으셨나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고 찌른다고 나와?
-몇 장이 모자라, 이러면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는 아닌데 저희 집 앞에 바가 하나 있어요.
진짜 칵테일 팔고 하는 데인데 그냥 아이들 데리고 광장처럼 돼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저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이안이랑 둘이 거기 가서 한잔해요.
그리고 세네 시간씩 둘이 앉아서 계속 이야기를 해요.
때로는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고 많은 것이 저의 경력을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조금 전에 저보고 이안이가 선장 아닙니까 했는데 엄마라는 이유로
저에게 새로운 경력이 생길 수 있고 이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이때 깨닫고 제가 다음으로는 출판을 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이안이의 말을 3년 동안 모아놨거든요.
다 노트를 해 놨는데 모두 다 글로 쓸 수는 없으니까 이 아이의 말을 담아놓은 책을 내고 싶다.
아마 지금 이것을 제가 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숏 폼이 유행이니까.
그런데 2020년만 해도 이렇게 짧은 글귀의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어서
아예 제가 그냥 책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안이와 이도 저 두 명을 다 작가로 올리고 책을 해서 이 책을 파는데
책을 팔아보고 알았습니다.
여기 이렇게 많은 책이 있지만 책은 정말 돈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이것을 한 번에 한 권씩 파는 것은 돈이 안 되니
이걸 책방에 한 번 입고를 시켜보자 해서 입고를 시키는데
아무리 입고를 시켜도 답이 안 오는 거예요.
그때 한 인스타 지인분이 저한테 DM를 보내요.
여기, 여기, 여기 책방에 입고 문의를 해 봐라.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책방들인 거예요. 들어가 봤더니 구독자가 300명.
왜 나한테 이런 곳에 책을 입고하라고 했지? 그분이 저한테 그랬어요.
여기 있는 이 리스트에 있는 책방 주인들이 다 엄마입니다.
그리고 제가 문의를 하니까 입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았어요.
내가 믿고 이 책을 만든 것에 대한 가치는 맞다.
그런데 팔리지 않았던 건 안 팔리는 데에서 내가 팔고 있어서 그렇구나.
상품은 팔리는 데서 팔아야지 이거는 팔리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사실 이걸 그냥 아이랑 저랑 추억 때문에 만든 책이지만 이 당시에 이게 저한테는
조금 콘텐츠나 마케팅을 보는 시야를 조금 바꿨던 계기 중의 하나예요.
-나중에 돼서는 남는 게 책이라기보다는 어쨌든 대화했던
시간이이 엄청 많이 남으실 것 같아요.
몇 시간씩 이안이랑 같이 얼굴 마주 보면서 대화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책은 사실 나중 문제고 기억 자체가 너무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서
많은 방송 보시는 부모님들이 부럽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정확하신 게 요즘에는 제가 엄마가 된 이유가 저 아이의 말을
문자로 옮기기 위해서 나는 엄마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아이의 말은 가장 곁에 있는 게 엄마니까
엄마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실 다 흩어지는 말이잖아요.
아이는 뱉은 말을 기억을 못 합니다.
그래서 그게 진짜 너무 귀한 순간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기까지가 낭만적인 이야기고요. 이제 되게 급변합니다.
여기가 딱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건데.
-딱 좋은데, 지금.
-여기서 딱 끝내야 하는데.
-코로나가 터져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와요.
처음에는 비행기가 끊겼어요. 나가는 비행기, 들어오는 비행기.
두 번째로는 지역 간 이동이 막혔어요.
그런데 세 번째는 어떤 상황까지 있냐면 집 밖을 못 나가는 상황까지 돼요.
저희는 집 안에서 락다운이라서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어요.
-완전 고립이네요.
-완전 고립이에요.
그래서 창문 밖에서 박수를 쳐서 서로 생존을 느껴야 할 만큼
집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생필품을 사러 나가든가, 실려 나가든가.
마지막이 뭘까요?
-멀리 나가든가.
-개 산책시키러 나가는 것.
-개 산책, 개 산책.
-사람은 못 나가도 개는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빼고는 할 수가 없어서 안에 있게 됐는데
사실 집 안에서 되게 행복했어요.
아이들과 되게 신나게 지냈어요, 너무너무. 남편은 맨날 바빴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니까 남편이 가이드를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죠. 책 파는 건 돈이 안 된다고. 이것은 돈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남편이랑 저랑 아무도 오지 않고 아마도 나갈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는 다른 거 생각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는 가이드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러면 할 수 있는 곳으로 사람을 옮겨보자라고 해서 저희가 시작한 게 유튜브입니다.
-난 또 개 키우기 시작했다는 줄 알고...
-나도, 나가려고.
-이미 아이 2개로 과포화가 됐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유튜브를 시작을 했고
저희는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는 유튜브를 생각한 게 아니라 이걸로 투어를 하고 싶었어요.
가이드 투어를.
그래서 우선은 구독자가 돼야지 어느 정도 여기를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라이브를 했어요.
오늘 이탈리아 상황은 어떻고 그러다 옛날 가이드했던 이야기도 하고
여행한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저희가 유튜브를 시작을 하고.
-사실 코로나가 너무 힘든데 이거 덕분에 저희 시야가 진짜 이렇게에서 이렇게 열린 것 같아요.
제가 키워보면서 느끼는 게 한국에서 교육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으니까
왜 우리는 여기 사는가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남편이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로마를 랜선 투어를 하기 시작을 한 거예요.
콜로세움은 여기고 여기는 여기고 이렇게 해서 저희가 그걸로 수익을 얻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쭉 이어지기 시작을 했어요.
저희가 구독자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게 많았을 것 같지만
한 3000명 정도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유튜브를 하다가
남편이랑 저랑 딱 같이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어요.
남편의 꿈이 하나 있었어요.
캠핑카를 타고 이탈리아를 여행해 보는 거였거든요.
-그렇지.
-그런데 상황이 안 돼서 그냥 잊고 살았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딱 돼서 아무도 못 와,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가.
이탈리아 내에는 로마 제국 이래 가장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됐어.
그리고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해진 첫날 남편이랑 저랑 유튜브로 번 돈 모아서
캠핑카 떠나자, 그렇게 해서 제가 떠나면서 아이들한테 해준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뭐든 해도 된다는 거야.
우리는 이제 뭐든 할 거야, 캠핑카 타자.
그래서 이탈리아 최남단을 15박 16일로 저희가 캠핑카 여행을 했고.
-재밌겠다.
-그렇게 끝나고 돌아온 캠핑카 영상을 제가 편집해서 시리즈로 올렸어요, 유튜브에.
그런데 조회수가 한 300, 400회? 그랬는데 저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방송국에서.
직업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저희한테 랜선 투어 가이드 직업을
소개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저희가 방송에 출연을 합니다.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2회분도 나갔어요.
그런데 1회분에 저희가 나왔던 방송이 한 15분 정도였나?
그런데 15분 방송이 시작하고 딱 끝났더니 3000명이었던 유튜브가
15분 만에 1만 3000명이 돼 있는 거예요.
그 15분 동안 구독이 된 거예요. 그리고 이 방송을 한 출판사에서 봅니다.
아버지라면 아실 텐데 학습 만화계의 전설 같은 만화가 하나 있어요.
마법천자문이라고.
-마법천자문.
-마법천자문.
-그 마법천자문을 만들었던 출판사에서 저에게 연락이 와서 로마 가족을 주제로
이탈리아의 현실적인 일상을 소개하는 학습 만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해서
저희가 만화책 주인공이 돼서 시리즈 만화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 현실적으로 너무 안 알려진 유튜브인데
그래서 출판사랑 방송국에다 물었어요.
왜 우리를 선택했냐. 그랬더니 다른 유튜브도 많았는데 저희만 유일했대요.
이걸 왜 시작했는지 영상을 올린 사람이 저희가 유일했대요.
이걸 왜 했고 이걸 어떻게 했고 그리고 4명 다 가족들 캐릭터가 나와 있어서
이거를 콘텐츠로 뽑기에는 너무 좋은 거가 있었고 저희가 몇 년 동안
쌓여있는 게 있다 보니까 만들기가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캐릭터 거리면 엄마, 아빠, 이안, 이도 이렇게 넷...
-맞아요. 성격도 나오고. 그때 제가 크게 깨닫습니다.
이전까지는 막 어그로도 끌고 싶고 섬네일도 자극적으로 뽑고 내용도 막 뽑고 싶었는데
중요한 건 구독자 수, 조회수가 아니다.
30명이 봐도 그 안에 방송국 PD가 있으면 다른 문제인 거고 구독자가 3명이라도
그 3명 중의 한 명이 출판사 관계자면 이거는 다른 이야기다.
그러면 결국은 내가 해야 하는 거는 많은 거에 노출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뚜렷하게 보여주는 게 훨씬 더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로마 가족이라는 콘텐츠에
조금 더 모습들을 완성해 나가요.
그리고 저에게 또 하나의 변곡점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저희가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이탈리아 음식 얘기를 좀 했었는데 저희가 여름이 되면
이탈리아 최남단 저희가 캠핑카 여행했던 곳에 있는 올리브나무 농장에 가요.
그런데 전 세계에 3000살이 넘은 올리브나무가 세 군데 있습니다.
그리스, 튀르키예, 이탈리아.
-3000년 이상 된.
-된 올리브나무.
-나무.
-그런데 그 3000년 이상 된 올리브 나무가 저희가 항상 놀러 가는 그 농장에 있어요.
여기 보시면 여러분이 아시는 올리브나무랑 좀 다르게 생겼죠?
그런데 이 올리브나무는 저 안에 저희 가족이 다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홈이 있을 만큼 아주 두꺼워요.
지금 두 나무 다 2000살이 넘었거든요.
그런데 이 나무들 사이사이가 엄청 넓어요.
세싼따삐에드라고 하는데 성인 남자 여섯 발자국만큼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여섯 발자국 옛날 로마 시대 마찻길 규격이에요.
지금 현재 도로 규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이거를 떨어뜨려 놓은 이유는 올리브나무 하나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완벽한 거리 조절이에요.
-적당한 거리 유지.
-영양분...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다 붙여 키워요. 그래야지 더 많이.
-수확할 수.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이거를 아직도 유지를 하고 그런데 제가 이 농장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여기서 나온 올리브유가 좀 맛이 특이해요.
목 안에서 너무 따끔거려서 뭔가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되게 써요.
그리고 보통은 올리브나무를, 올리브를 수확할 때 기계로 올리브나무를 잡아요.
그리고 흔들거든요.
-잡고 털죠, 다라라라 하면서.
-다라라, 그런데 그렇게 되면 수확을 빨리할 수 있고 많이 할 수 있기는 맞는데 나무가 다 상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아직도 사람들이 손으로.
-손으로.
-방망이로 쳐서 올리브유를 수확해요. 그런데 이게 너무 효율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코라도라는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여기 농장 주인인데, 왜 그렇게 해라고 했더니 현대적인 방법도 있고 쉬운 방법도 있는데
그걸 우리 표현으로는 세련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없잖아라고 이야기했어요.
-역시 낭만의 나라.
-다들 표현들이.
-낭만의 나라야.
-느림의 미학을 확실히 보여주네.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가 보기에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그 코라도가 생각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맞는 방법대로 하는 거예요.
이때 제가 떠올랐던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들한테 해준 얘기인데요.
빠르게 멀리 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아름답게 나는 거야라는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 옆에 제가 있었다면 빠르고 멀리 나는 게 아름답게 나는 거야.
-나도 그 생각했어.
-그럴 수도 있네.
-이렇게 했었을 텐데.
-그런데 그게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면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이때쯤에 저는 빠르고 멀리 날고 싶어 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저한테 하는 말이 있었어요.
민주야, 꼭 그렇게 살아야 해?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때는 그 말이 되게 서운했는데
지금에서 생각하면 제가 그렇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았던 거예요.
그게 옳고 그름의 얘기가 아니라, 그래서 그러면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방법으로 가야겠다,
이게 성과가 되든 안 되든.
그래서 저 스스로 저 로마가족에서 하는 모든 일에 콘텐츠 규칙을 만듭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1번, 자극적이지 않을 것.
종종 이런 해외에 있는 콘텐츠 만드는 분들이 인종차별 이런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 때가 있거든요.
-섬네일만 딱 봐도 어, 하면서 들어갈 수 있게.
-맞아요.
-바로.
-소매치기당하는 얘기, 그런데 첫 번째는 자극적이지 않을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계속할 수 있을 것.
-평생, 또.
-그리고 세 번째는 질문을 만들었는데 이 질문 모두에 예스라는 답이 나와야 해요.
그 질문입니다.
첫 번째, 시대상 어쩔 수 없이 내가 쇼트 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쇼트 폼을 만들면 1분 분량이라도 이 사람이 하루에 10분 이상을
생각에 잠기게 할 수 있는가?
두 번째, 글과 영상 모두 한 번에 소비되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 이상
한 번 더 떠올리게 만들 수 있겠는가?
세 번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을 만큼의 울림이 있는 이야기인가?
네 번째, 이탈리아가 궁금해질 것인가?
다섯 번째, 이탈리아의 정서. 느림, 여유, 시간을 담고 있는가?
여섯 번째,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나는 것이라는 본질과 이어져 있는가?
일곱 번째, 평생 해도 재미있겠는가?
저는 제가 만드는 모든 글과 콘텐츠는 이 7개 질문에 예스가 나온 것만 저는 만듭니다.
그리고 이거는 제가 항상 되새기는 문장인데요.
작가 최민석 씨의 베를린 일기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다.
저는 이때부터 성과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제가 필요한 돌들을
하나하나 쌓아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아요.
최근에 이거 보신 분 있을까요?
이탈리아의 여름 방학 숙제라고 하는 릴스를 제가 하나 만들었는데
2015년에 이탈리아 해변 마을 페르모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숙제를 하나 내줍니다,
여름 방학 숙제를.
그런데 이 여름 방학 숙제를 제가 2015년에 한 기사로 접하고 너무 좋아서 글로 썼어요.
그런데 2016년 여름에도 이거에 대한 글을 썼어요.
2017년에도 썼고요.
유튜브로도 몇 번이나 만들었는데 단 한 번도 바이럴이 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 6월에 저희가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에 1분짜리 영상으로
제가 짧게 이거를 올렸는데 지금 현재 이게 350만 뷰가 되면서 보통
제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은 애 부모나 아니면 이탈리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이거는 남녀, 나이 다 전 세계 어디 사는지 불문하고 무작위로 이 숙제가 퍼지기 시작을 한 거예요.
그래서 드디어 내 콘텐츠가.
-터졌다.
-시대에 맞았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건 좀 다른 생각이 접해지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몇 개 읽어드릴게요. 6번.
-6번.
-부끄러움 없이 춤을 추어라. 여름은 무조건 춤이다. 춤을 출 수 있을 때 추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7번, 최소한 한 번은 해가 뜨는 것을 보아라.
말 없이 숨을 쉬어라. 눈을 감고 감사함을 느껴라.
11번, 햇빛처럼 행복하고 바다처럼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라.
14번, 빛나는 햇빛 속이나 뜨거운 여름밤에 네 삶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꿈꾸어 보아라.
여름에는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꿈을 좇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라.
15번, 친절해라.
-그런데 이게 방학 숙제라면 방학 숙제 검사 어떻게 해요?
-그거는 본인이 알겠죠.
그리고 이 숙제를 해냈으면 제 생각에는 여름 전후로 아이는 달라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안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고 낭만적인 아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도 분명 작용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무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한 번은 제가 아이한테 물었거든요. 너의 재능이 뭐야?
여기 지금 친절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저희는 친절이라는 말에 대해서 가치를 되게 크게 두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안이가 엄마, 나의 재능은 친절이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 재능이 아니잖아.
누구나 다 친절하지 않잖아.
나는 친절하니까 내 재능은 친절이야 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이안이는 이탈리아 초등학교 5년입니다.
그래서 오기 전에 이안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왔는데 그 졸업식 날 선생님이 선물로 시를 주셨어요.
그 부분 중의 하나를 읽어드릴게요. 너희의 모든 최선을 응원해.
너희의 꿈을 따르고 실현해 나가길 응원해.
무엇보다 너희가 친절함을 잃지 않기를 응원해.
친절함은 너희를 멀리멀리 데려다 줄 거야.
이게 마지막 시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이다음은 이안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인데요.
아이들에게서 돌을 만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오늘의 돌들이 내일은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등반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어려움을 대면하고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답을 찾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움과 함께 머무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자갈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라고 선생님이 얘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이 얘기를 왜 쭉 하냐면요.
리스가 아까 전에 10년 만에 막 바이얼이 됐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저는 여름방학 숙제가 2015년도에도 좋은 이야기였고 16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모든 제가 지금 읽은 선생님 얘기는 다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처음 글을 쓰고 지금이 딱 10년 돼요.
이안이가 말을 시작해서 기록하고 제가 10년이란 시간 동안에 유튜브도 하고
브런치도 하고 강의도 하고 사업도 하는 이 10년이란 시간 동안 이제서야
좋은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스킬이 생긴 것 같아요.
그전까지 저는 좋은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사람들이 보게끔 하고 읽게끔 할
저의 노하우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쭉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누군가는 저한테 얘기를 해요.
글도 쓰고 영상도 쓰고 올리브유도 하고 이거 뭐 이렇게 너무 많은 걸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결국 글도 영상도 올리브도 전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에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날아가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모습만 다를 뿐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고 저는 저에게 있는 재능은 그거인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를 캐치하는 능력과 이걸 기록할 수 있는 꾸준함과 그리고
이거를 알리는 사람이 이게 저의 재능인 것 같고요.
그리고 이것이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친절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올리브 농장에서 농장 주인이 해줬던 얘기 중의 하나가 올리브는 따자마자 추출해야 해요.
올리브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산화가 시작돼요.
그러면 그때부터 맛이 변해요.
그래서 따자마자 얼마나 빠른 시간에 추출하느냐가 올리브유의 관건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올리브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발효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올리브오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는 사실 인간에게는 욕심하고
그 농장 주인이 했던 얘기가 좋은 올리브오일은 스스로 길을 걸어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예전에는 이 좋은 이야기를 담으면 막 어떻게든 알리려고 했지만
요즘에는 믿는 게 하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스스로 길을 걸어서 사람에게 닿게 될 것이다.
-언젠가 알아서 될 거다.
-알아서.
그리고 그것이 최근에 리스가 막 이렇게 퍼지기 시작한 게 어떻게 보면
콘텐츠가 막 이렇게 알고리즘을 탔네요.
이게 아니라 얘가 스스로 길을 걷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저 이런 방송되게 나와보고 싶었거든요,
강의하는 거.
그런데 이게 10년이라는 시간만에 이렇게 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거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닿은 걸 보면
결국 이 이야기들은 스스로 길을 걷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진짜 오늘 선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느껴지는 게 이게 뭔가를
나를 알리려고 목적 때문에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그 이야기 자체,
본질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때가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또 실행을 하다 보면
언젠가 또 이 세상의 때와 나의 때가 맞을 때 그게 짠하고 터지는 거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또 많이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
-저는 이제 아직 아이는 없지만 그리고 보물지도도 또 많은 부모님들이,
학부모님들이 많이 보시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아이와 대화하는 거에 대해서 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좀 더 아이와 진솔한 말을 많이 나누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하는 분들도 분명 많으실 것 같은데 아이의 대화로 책까지 내셨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한테 해 주시면 돼요. 제가 그 고민을 갖고 있거든요.
대화가 안 돼요, 대화가.
-대화가 안 돼요?
-해달라는 것만 말하면 끝이야.
-조금 전에 제가 친절 얘기를 한 번 했었는데 이게 방학 숙제에 있잖아요.
그 의미가 내가 친절하고 싶다고 친절하게 된다는 게 아니란 의미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게 방학 숙제로 있는 이유는 내가 교육을 받는 과정.
거의 한 십몇 년의 과정 동안 매년 해서 내가 노력해야지만 내가 성인이 됐을 때
친절한 사람이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하고 다져야 하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화도 비슷해요.
이 아이와 내가 깊게 대화를 하려면 오늘 시작되는 게 아니고
이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굉장히 많이 다져야 하는 작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인이 됐을 때 이 아이는 부모와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정말 많은 힘듦과 이런 고민들이 있을 때 부모랑 대화했던 기억이 있으면
무조건 어른이 돼도 부모를 찾게 돼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리고 그게 이탈리아에서는 정말 대화를 많이 해요, 부모와 아이들이.
-그렇구나.
-그래서 지금도 성인이 돼도 남자들이 부모님한테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은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되게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그 민족성이 아니라 제가 봤을 때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다듬은 그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누적된 습관인 거죠.
-그리고 가장 큰 건 이 아이가 아이라고 해서 주제를 정하시면 안 돼요.
대화할 땐 그냥 이 아이는 나랑 일대일의 인간 대 인간이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저는 죽음부터 돈부터 주제 아무 상관 없이 다 얘기해요.
-제한 없이?
-아예 제한 없이.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주제에서 죽음은 이런 거지만 이 아이는 이 나이에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거는 전 아무 주제를 가리지 않아요.
-저도 말했다시피 애를 둘을 키우고 있는데 어쨌든 교육에 대한 거는
항상 이런 얘기가 나오면 궁금한 게 많은데 이탈리아의 교육법과 한국의 교육법의
차이랑, 큰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큰 거는 좀 놀라실 것 같은데 초등학교 5년이라고 그랬잖아요.
5년간 반과 선생님이 같아요.
-한 반이 쭉?
-반이 바뀌지 않아요.
-한 반에서 한 선생님으로.
-한 반에서 5년을 가요. 그리고 중학교 가면 중학교도 역시나
한 반에서 3년을 같이 가고. 고등학교 가도 5년간 같이 가요.
-그러면 착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게 지금 2년째인지, 1년째인지.
-그렇게 가요.
-그럴 수도.
-그래서 제가 좀 전에 입학식 때 교장선생님이 했던 얘기를 올렸는데
그때 입학식 때 좀 생소하다고 느꼈던 게 보통은 이제 초등학교 입학식 하면
1학년 때 뭘 하고, 1학년 때 할 얘기를 해 주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1학년 때 뭐 하고, 2학년 때 뭐 하고, 3학년 때 뭐.
이 얘기를 안 하고 우리는 5년간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할 거고 5년 뒤에
이 아이들이 이렇게 원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이 아이들이 1년 호흡이 아니라 5년 호흡이에요.
-아예 덩어리를 이렇게.
-그리고 아이들과 계속 있으면 그 안에서 또 문제도 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지켜본 바로는 1학년 땐 맞는 애들끼리 놀다가 2학년 땐 쟤가 별로다가.
그리고 어떤 애는 좀 아플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이 있는데.
한 5년 정도 되면 이 안에서 이 아이들에 대한 동지애가 엄청 끈끈해 지고.
-그러게요. 같이 자라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여서 친한 애가 아니라 어쨌거나 이 한 반에 모든 애들이 굉장히 끈끈해요.
-알겠습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두 남매를 키우면서 또 일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겪었던.
우리가 알기 힘들었던 그런 이야기들 쭉 나눠 봤는데요.
그렇다면 오늘의 이야기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신다면요?
지금 제가 오늘 한 이야기가. 그런데 이걸 안 할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이것이 그때는 아니지만 20년 후가 되든 언제든 분명히 어느 곳의
저에게 결과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대학생 시절. 바리스타가 되겠다며 떠나셨는데, 이탈리아로.
지금은 전혀 다른 쪽으로 일을 하고 계시지만 또 하나 느낀 게.
이게 뭘 하든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인생은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오늘 두 분도 좀 재밌게 진짜 이야기 듣듯이 함께했잖아요.
-어찌 됐든 저도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교육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생각이 많아지기는 하는데.
듣다 보니 제일 좋은 교육은 뭐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부모와 아이의 대화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좀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가신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처음에 이탈리아 생각했다가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예측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 승률 100%인 이유는 그냥 다 막연하게 꾸준히 했다기보다 뭔가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거.
그런 걸, 나만의 분야를 잘 개척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서 또 나만의 필드를 만드는 것 이게 정말 좀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보다 내가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나라에서 살든 가장 중요한 건 인생의 목표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끝으로 오늘 지식항해 마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달려라 로보트야 이 안에 지금 누가 타고 있냐면 지금 훈이와 영희가 타고 있어요.
선생님 몸에 또 훈이가 있어요. 우리 이향원 아나운서 몸에도 영희.
-난 껍데기일 뿐이야.
-우리 몸에 있는 훈이와 영희는 목적이 있어요. 내 유전자로.
-(함께) 내 유전자로.
-전 세계를.
-(함께) 전 세계를.
-초토화시키겠다.
-초토화시키겠어.
-초토화시키겠다.
-100년을 살고 저는 쓰러지잖아요. 그러고 나서 우리 아이에게 뭐가 넘어갔죠.
-나는 간이역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