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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제23권 - 왕, 백성을 버리다 (최한나 / 에*윌 한국사 교수)
등록일 : 2023-12-06 10:42:12.0
조회수 : 778
-오늘 여러분의 조선시대 총정리를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나랏말씀이 듕귁에 달아 어린 백성이 사맛디 아니할세.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그렇죠. 수양대군에게 결국 단종이 폐위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드디어 선조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조.
-선조.
-선조 하면 할 말이 많죠.
선조는 일단 임진왜란 때문에 빠르게 피난 가서 욕먹은 왕이잖아요.
-맞아요. 어떻게 백성을 버리나이까.
-그렇죠.
-바로 도망감.
-선조는 임진왜란만 없었어도 욕을 그렇게 먹진 않았을 거예요.
선조는 똑똑한 인물로 공부를 좋아했던 왕으로 문치주의, 학문에 능했던.
나는 그냥 공부를 좋아했을 뿐인데 나는 전쟁이 무서웠을 뿐 그런 인물이에요.
-그러니까요.
-선조 때 성리학이 아주 많이 발달하고 율곡 이이, 이황이 활동했던 주 시기가 선조 때입니다.
그래서 선조는 나 공부 너무 좋아. 그래서 결국 사림들을 대거 등용시켜요.
훈구는 이제 망했어요. 왜일까요?
-외척이 강해져서.
-그거보다 훈구는 후학 양성을 못 했어요.
과거 시험에 계속 급제해야 관료가 막 생기잖아요.
훈구는 재력만 믿고 후진 양성을 못 했다.
사림들은 쫓겨나서 지방에서 뭐 했냐 하면 본인은 공부 잘하니까 학원을 만들었어요.
-향교.
-그렇죠. 서원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하면서 후학 양성을 했고 마을 사람들이 이분 똑똑하니까 이분 말을 따르자 이래서 향촌 자치 규약이라는 향약을 시행했어요.
-향약.
-그래서 서원과 향약으로 사림들이 버티고 버티고 잡초처럼 버텨서 결국 선조 때 사림들이 모두 장악.
그러고 나서는 들어보셨겠지만 사림들이 동인, 서인, 북인, 남인 이런 식으로 붕당이 만들어집니다.
-붕당 정치.
-나눠지는 거죠.
-붕당 정치.
-그래서 붕당 정치가 선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선조 때 결국 임진왜란이일어났으니까 임진왜란 이야기를 해야겠죠?
일본이 무슨 무기를 가지고 왔을까요?
-조총, 조총.
-그렇죠, 조총.
-총을...
-우리는 활로 쏘는데 조총이 꽤 조준력이 좋았어요.
조총으로 막 우리 활 손을 쏘고 그리고 말의 다리를 맞히고 이래서 못 이기는 거죠, 초반에.
-얄미워.
-그래서 동래성, 부산이 함락되고 충주까지 막 올라갑니다.
신립 장군이 당연히 막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립 장군은 항상 이겼었거든요, 기마병이에요.
그러다 신립 장군은 조령, 문경새재라고 하는 그런 조령을 선택하지 않고 탄금대, 허허벌판을 선택했어요, 나는 말로 잘 싸우니까.
그런데 하필 비가 내렸어요. 그래서 그 탄금대 질척질척한 진흙에 비도 내렸지 말들이 넘어지고 그러면서 도미노처럼 넘어지면서 그래서 패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조가 그 이야기를 듣고 빠르게 도망가죠. 빠르게 피난을 가요. 광해군한테 맡겨놓고.
어려운 말로 분조라고 하거든요. 조선을 나눴다. 나는 명의 지원군을 받아올 테니 네가 조선을 맡아, 이래서 후다닥 도망가요, 후다닥.
그래서 광해군이 나중에 의병을 일으키고 싸우고 그렇게 된 거죠.
하지만 임진왜란은 우리가 졌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초반에만 밀렸지 우리가 반격합니다.
임진왜란이 1592, 1592년 4월 16일에 시작됐거든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첫 승리 옥포해전이 5월이에요.
-5월이요?
-네. 그러니까 4월에 쳐들어왔지만, 5월에 첫 승리를 했다는 건 이미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과 군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예요.
-대비가 좀 돼 있었네.
-왜냐하면 이 남해 지방에 왜구들이 하도 들끓고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군에서는 우리가 엄청나게 승리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지는 전쟁은 하지 않았죠.
-멋있다.
-항상 이기는 전투만 했죠.
그래서 뭐 옥포해전, 한산도의 학익진, 이것도 사실 배의 차이긴 해요.
일본 배는 뾰족한 세키부네예요. 그러니까 깊은 바다에서는 잘 가요. 그런데 우리나라 배는 판옥선으로 밑이 납작해요.
그런데 일본 배가 우리나라 남해 왔는데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바닥에 돌도 많고.
-그리고 갯벌.
-갯벌이 또...
-물이 빠져버리면 푹 박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배에서는 훨씬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학익진 같은 경우는 우리가 도망간 것처럼 막 동그랗게 가다가 둥그런 바닥이 밋밋하니까 샥 돌아서 파바박 군함을 쏜 거예요, 이렇게 딱 동그랗게 감싸서.
-감싸서.
-맞아요. 이런 식으로 해서 수군의 이런 반전, 수군의 항쟁.
그리고 뭐가 있을까요? 스스로 일어난 각 지역의 의병들 맞습니다.
-의병들.
-그러니까 의병들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게 우리나라는 우리 가족 건드리는 건 못 참아.
-맞아요.
-내 친구 건드리는 건 못 참아. 나만 욕할 수 있어.
-민족 특성입니다, 민족 특성.
-맞아요, 우리나라의 특성이에요.
-우리 홈그라운드인데.
-우리 오빠 놈은 나만 욕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그래서 결국 홈그라운드에서 의병들이 일어나는데 향토 지리에 익숙하니까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적은 인원으로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고경명.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수군과 의병의 항쟁으로 전세가 뒤집어지게 돼요. 일본은 놀랐어요.
왜냐하면 서울에서 제대로 싸워보자 이렇게 해서 한양에 갔더니 다 비어있어.
뭐야 왕도 도망가고 뭐야?
-뭐야?
-얘네 뭐야? 그러니까 일본의 전투는 그냥 수도를 점령하면 끝나는 게 일본 전투 스타일이고 우리나라는 끝날 때까지.
-(함께) 끝난 게 아니다.
-얘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끝까지. 그러면서 일본이 이제 위기에 봉착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7년의 전쟁을 이어갔고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으로 결국 이긴 전투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이 많이 고생하고 갔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도 좀 피해를 입었죠.
-졌잘싸.
-국토가 황폐화되고.
-그러면 이...
-졌지만 잘 싸웠다.
-그렇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정부가 바뀌게 되고, 에도 막부로 바뀌게 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도자기 문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활자 문화 그런 부분에서 일본은 오히려 문화가 발전했다고 해요.
그런데 선조가 이제 임진왜란 일으키고 그거를 전후 복구하는 건 광해군이죠.
-광해군.
-광해군이 초반에 잘한 일이 정말 많아요.
-광해군은 그런데 되게 불쌍한 왕인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열심히도 했는데.
-이병헌 씨 생각나죠?
-이병헌.
-따라 해 보거라.
그래서 이 광해군이 한 업적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전후 복구를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허준으로 하여금.
-(함께) 동의보감.
-그렇죠, 동의보감 만들게 했고 전후 복구 사업, 성곽도 다시 짓고.
이런 식으로 여러 전후 복구 사업에 힘썼고 그렇지만 광해군이 쫓겨난 이유가 있어요.
이때 후금은 점점점 힘이 세져요. 그러니까 여진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워서 점점 힘이 세지고 명은 힘이 약해지는 거예요.
-지는 해.
-그렇죠, 지는 해예요.
그런데 명나라는 우리나라에 임진왜란 때 지원군을 보내기도 했고 그래서 명나라가 야, 후금 치게 너네 군대 보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광해군이 여기서 마냥 후금과 적을 지면 후금이 우리를 먼저 칠 거야. 그러니까 중립을 지키자. 최고의 좋은 외교는 양다리를 걸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중립 외교를 합니다. 후금한테 가서 강홍립이라는 장군이 우리 원하지 않은 출병이야. 우리는 명과의 의리 때문에 온 거지, 너네랑 싸우기 싫어.
그래서 결국 싸우지 않고 투항해요. 그랬는데 그때 당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불편해해.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장수가 투항을 한단 말인가. 나는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지만. 화가 나네.
-그런 느낌.
-그래서 서인들이 결국 중립 외교에 열 받았고.
-그렇죠.
-여기에 반대를 했고 명나라의 재조지은이라고 그래서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준 명의 은혜를 저버리다니.
-맞아.
-이러면서 서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광해군이 자신의 왕위에 약간 위협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영창대군 혹시 들어보셨나요? 어린 영창대군.
-영창대군.
-그리고 인목대비.
그래서 영창대군이 있다는 건, 이제 영창대군을 데리고 신하들이 올라올 수 있는 그런 부분이기 때문에 영창대군을 증살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뭐냐 하면 뜨겁게 불을 막 해서 말려 죽였다고 하는데요.
-증기로 죽였다는 뜻인가요?
-네, 그런데 그렇게 증살하기는 솔직히 힘들고 아무리 찜질방에서 이렇게 해도.
-그렇죠.
-그래서 아마 물을 주지 않고 아이가 탈수로 아마 죽지 않았을까.
-탈수.
-그렇게 보고 있고요. 인목대비는 서거당이라고 덕수궁에 있는 서거당에 유폐를 했어요. 형제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했다. 폐모살제.
이래서 패륜아다, 이래서 광해군을 쫓아내요.
그게 바로 인조반정입니다. 광해군 쫓겨났죠? 인조가 올라가죠?
-인조.
-인조를 올린 사람이 서인이죠?
그러니까 서인들이 어떻게 정책하냐 하면 친명 배금.
명과 친하고 금을 배척을 한거예요.
-여전히 금을 이제 우리...
-그렇죠.
-오랑캐다.
-(함께) 오랑캐다.
-맞아, 맞아요.
-그렇게 배척을 하는구나.
-그래서 오랑캐랑은 절대 말도 섞을 수 없다.
그러면서 그러니까 당연히 후금이 쳐들어오겠죠.
-그렇죠.
-그런데 이 인조반정을 일으켰던 그런 공신들 중에서 왜 내가 1등 공신이 안 된 거야, 라고 이괄이라는 인물이 이괄의 난을 일으켜요.
-이괄의 난.
-그렇죠. 그런데 이괄의 난을 일으켰을 때 막 처형당한 그런 사람들 중에서 그의 아들이 후금으로 가서 복수하는 거예요.
차라리 조선을 쳐줘라. 조선 지금 군사력 바닥이다.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가 올라갔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복수를 해줘라.
오히려 후금에 가서 조선을 치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후금이 그래, 군사력 바닥이야? 바로 쳐들어와요.
그게 정묘호란이에요.
-정묘호란.
-정묘호란. 그래서 후금일 때는 정묘호란인데 얘네들이 와서 그럼 너네 너 내 아우 해.
우리 형제 관계로 하도록 해. 그래서 그러고서 금방 가요, 그때는. 그렇게 크게 피해가 없었어요.
그런데 후금이 청을 세우게 됩니다. 이제 중국이 된 거예요. 청을 세웠어요.
-그래서 후금명청 명나라 다음에 청나라...
-그렇죠. 명나라 이제 망하고 청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랬더니 너네 명나라에 군신 관계였잖아. 우리한테도 신하의 예를.
-갖춰라.
-다 바쳐라. 그랬을 때 조정에서 서로 싸우게 되죠. 화해하자, 싸우자.
-척화파.
-이것은 남한산성 영화에 잘 나오는데요. 최명길은 주화파. 그리고 김상헌은 주전파.
-주전파.
-이런 식으로. 척화! 싸우자!
그러니까 이제 주전파는 하나를 내어주면 열을 달라고 할 것이다. 싸우자.
오랑캐랑 어찌 겸상하냐. 그렇지만 최명길은 나중을 도모하자. 군사력도 없으면서 큰소리쳐봤자.
-맞아요.
-또 백성들만 고생이다.
-일단 살아야 한다.
-그렇죠. 그 최명길이 바로 전주 최씨예요. 제가 전...
-저 전주...
-저 전주 최씨인데.
-저 전주 이씨인데요. 그렇죠.
-위 아 더 원.
-현실적이야. 현실적인.
그렇지만 주학파를 따르지 않고 주전파가 대세였기 때문에 결국 싸우게 됩니다.
-주전파의 전이 전쟁하자는 뜻이군요.
-그렇죠. 병자호란의 결과 어땠죠?
-아주 치욕스러웠습니다.
-그렇죠. 병자호란 11월에 쳐들어왔는데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했지만 먹을 것은 없고 고립되고 막 눈 오고.
그래서 그때 말이 죽으면 말로 이제 먹고.
사람들이 진짜 계속 죽어 나가고 동상에 걸리고 그래서 결국에는 항복을 하죠. 그게 이제 정말 진정한 굴욕.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삼전도의 굴욕.
-삼전도.
-그러니까 이제 청나라는 그때 오랑캐 시기에 항복의 예가 있어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세 번 조아리는, 세 번 절하는 것도 굴욕이지만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릴 때 제대로 안 조아렸다고 머리를 치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그런데 궁금한 게 인조의 이마에서 피나 났다는 것은 실제인가요?
-네, 실제 기록이 있어요.
이마가 피가 나도록 조아리고 엄청난 굴욕을 당함.
그리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조의 두 아들이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인질로 끌려가요.
-볼모로.
-그리고 끝까지 청하고 싸웠던 삼학사라고 있거든요, 신하들.
신하들 삼학사도 끌려가서 죽어요. 그 뒤로는 소현세자가 원래 왕이 되어야 하는데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가는 그 중간에 심양이라는 지방이 있어요.
지금은 중국의 선양 지방으로 남아 있거든요.
그 심양관에 머물면서 외교관 역할을 합니다.
청에서 기분 나쁘게 요구하면 그걸 예쁘게 말을 다듬어서 조선에 전달하고.
조선이 절대 안 된다 그러면 다듬어서 지금은 좀 힘들어요, 이런 식으로 이렇게 다듬는 외교관 역할도 했고요.
그리고 소현세자가 거기서 장사를 해서.
-맞아.
-그 돈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간 우리 노예로 끌려간 우리 조선인들을 다시 사 오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인조가 좀 싫어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이 소현세자는 좀 급진적인 그런 개혁 마인드로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북경, 베이징에서 아담 샬이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서양 선교사인데요. 아담 샬은 서양 선교사면서 망원경도 개발하고 그리고 이제 그런 역법서, 그런 시헌력이라는 역법서도 개발한 과학자 같은 인물이에요.
그 사람한테 망원경도 배우고 세계가 이렇게 크고 새로운 신문물을 배워온 거예요.
내가 조선을 개혁해야지. 소현세자 들어와요. 천리경을 갖고 왔어요.
인조가 내 방을 훔쳐보려고 갖고 온 것이냐.
막 집어 던지고. 인조가 소현세자를 미워한 거예요.
-싫어했군요.
-아니, 그런데 사실 자기 아들이 대신 볼모로 잡혀가서.
-그렇죠.
-정말 열심히 하고 청과의 사이도 그나마 조금 개선하면서 들어온 건데.
-그러니까요.
-왜 그렇게 아들을 싫어했을까요?
-그런데 조선의 왕들은 아들을 싫어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부자 관계가 아니라 다음 왕위를 이으려고 하는 라이벌.
나를 왕에서 빨리 쫓아내고 왕이 되려고 하는구나. 그런 식으로.
신하들이 나보다 쟤의 말을 듣는구나. 이런 식으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조의 미움을 받던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맞아요. 독살당했다.
-얼굴의 아홉 구멍에 검은 피가 흘렀다라고 해요.
그리고 얼굴이 잿빛이었다. 그래서 이제 역대 실록의 기록 중에서 가장 독살의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소현세자입니다.
-원래 그런데 학질로 죽었다고 되어 있기는 하죠?
-학질 때문에 침을 맞았다고 하는데 이형익이라는 인물이 침을 놓은 뒤 그 뒤로 이틀 뒤에 죽거든요.
-무서워.
-그래서 아마 그 침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보기도 하고.
-독 발랐네.
-그럴 수도 있지.
-가장 독살의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소현세자입니다.
소현세자가 죽고 둘째인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겠죠.
그 왕이 효종입니다.
-(함께) 효종.
-그런데 서인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정신 승리를 시전하는데. 북벌.
명의 복수를 우리가 대신해 주겠다.
-진짜 정신 못 차렸네.
-우리가 작은 중화다, 소중화다.
공자가 다시 살아나면 우리나라로 올 거다, 이런 식으로 정신 승리를 계속 시전해요.
그러니까 이제 서인들의 정권 유지 목적인 거죠.
그래서 이제 효종 하면 북벌이 꼭 생각이 나셔야 하고요.
북벌을 하기 위해서 그때 당시에 어영청이라는 군대에서 조총 부대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때 억울한 사람이 한 명 우리나라에 표류를 해와요. 제주도로.
마침 이 북벌을 추진할 때. 혹시 OO 표류기 들어보셨나요?
-김씨 표류기.
-김씨.
-김씨 아니고요.
-헤, 헤말. 하, 하멜.
-하멜, 맞습니다.
-하멜.
-하멜 표류기.
-하멜 표류기.
-김씨.
-하멜, 불쌍한 사람이에요.
하멜은 원래 저기 일본에 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항상 일본에 가려다가 태풍을 만나면 항상 제주도로 표류를 해요.
제주도로 표류를 했던 하멜이 잡혀 와서 원래 그전에 한 번 표류했던 벨테브레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었어.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어.
-포기했군요.
-그래서 통역을 하다가 이렇게 말해줘요.
너는 날아가는 새가 되지 않은 이상 이 나라에서 나갈 수 없어. 포기해.
그러면서 하멜이 그 어영청에서 또 신무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네덜란드는 홍이포라고 해서 또 무기가 유명했거든요.
그래서 하멜도 북벌에 가담해요. 하지만 나중에 하멜은 탈출에 성공하죠.
-가지 마.
-그래서 하멜 표류기를 쓴 거죠.
-그래서 표류기를 쓸 수가 있었던.
-하지만 박연은 탈출하지 못했어요. 박연은 그냥 우리나라의 박씨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예 개명을 해서 살았네요.
-박연은 거기서 우리나라 조선 부인 만나서, 그래서 어딘가에 되게 서구적인 박씨가 있으면 조금.
-혼혈일 수도 있는.
-박연의 후손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찌 됐든 이 조총부대, 어떻게 이용이 되냐 하면. 나름의 북벌을 추진해요.
그런데 이게 액션만 취할 뿐 정말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키운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조총부대는 실제로 어디에 쓰였느냐.
효종 때 청나라가 러시아와 싸워요. 그래서 너희 군대 보내.
오히려 그때 우리 조총부대를 보내요.
-그래서 약간 쓸모가 없었겠다.
-그래서 러시아랑 싸울 때.
-도와줄 때.
-도와주게 돼요. 그게 바로 나선정벌입니다.
-(함께) 나선정벌.
-나선이라는 게 러시아라는 뜻이거든요.
-나선이.
-나선정벌 1차, 2차에 크게 승리해요.
그래서 좋게 말해서 북벌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렇게 효종은 마무리 지으시면 됩니다. 효종, 북벌.
-그런데 북벌이라고 했을 때 북쪽을 정벌한다는 거잖아요.
-북벌을 정벌.
-딱 중국만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전체적인...
-청나라에게 복수하겠다는 소리예요.
-청나라를.
-북벌이 그런 거구나.
-북벌, 북쪽을 벌하겠다.
그래서 오히려 북벌은 점점 가시게 되고 오히려 청나라에 우수한 문물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사람들, 실학자들.
-실학자.
-그래서 나중에는 북학 운동으로 바뀌게 되죠.
-북쪽에서 배우자.
-그렇죠. 이제 효종 다음으로는 현종이 있어요. 현종 때는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돼요. 예송.
상복 입는 문제 싸움. 효종은 솔직히 둘째잖아요.
그런데 서인들은 둘째를 둘째라고 하지 뭘 첫째라고 하냐, 이런 식인 거고. 남인들은 그래도 둘째지만 왕이니까 첫째 대우 해주자.
그래서 남인은 상복을 길게 입자. 그러니까 효종이 죽었을 때. 그런데 효종의 아들 현종이 상복을 입는 대상은 자의대비인데요.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 입냐, 3년 입냐.
-그걸로.
-아니면 1년 입냐, 9개월 입냐로 싸운 예송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이 현종 때는 예송이라는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걸 알고 넘어가고.
이제 현종 다음에 드디어 숙종이죠. 숙종하면 생각하시는 여자.
-없어요.
-숙종하면 여자.
-숙종하면 장희빈.
-여자?
-그렇죠.
-장희빈.
-장희빈 혹시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들어봤어요.
-장희빈은 실록에서 유일하게 예뻤다고 기록된 인물이 장희빈이에요.
-장녹수 이런 사람도 예쁘다는 소리는 없었어요?
-장녹수는 오히려 못생겼다고 기록을 했어요.
얼굴은 못생겼지만 목소리가 아름답고 노래를 잘했다.
-장씨들이 끼가 많았나 보네요.
-장희빈은 자못 아름다웠다고 기록한 유일하게 실록에서 예뻤다고 외모 칭찬을 한 인물이에요.
-궁금하다.
-그래서 장희빈은 정말 예뻤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숙종은 여자관계 때문에 환국이라는 게 일어나요, 환국. 그러니까 정치의 정국을 주도하는 사람이 자꾸자꾸 바뀌었다.
그런데 누구랑 누구랑 싸운거냐면 서인과 남인이 싸우게 되는데 먼저 첫 번째가 경신환국입니다.
경신환국은 아까 제가 예송을 왜 말씀드렸냐면 마지막 갑인예송 때 남인이 이겨요.
그래서 이 남인이 갑인예송에서 이겼기 때문에 남인 계열이 장희빈이거든요. 장희빈을 궁궐로 보낼 수 있었던 거예요, 남인이.
그때 장희빈이 궁궐에 투입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서 남인들 중에서 허적이랑 윤휴라는 인물이 남인으로서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숙종 말을 점점 안 듣고 점점점 자기 마음대로 막 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허적이 선 넘는 사건이 일어나요.
-선을 넘어버렸구나.
-선을 넘은 사건. 그게 뭐냐면 왕이 행차를 할 때 비가 오면 어떨까요?
비를 맞으면 안 되잖아요. 지금으로 치면 우산 같은 거.
유악이라는 기름 천막을 이렇게 크게 펼칩니다.
-그래서 들고 이렇게 가셨나요?
-보셨나요?
-네, 행차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사극에서 보셨죠, 이렇게.
-저거 파라솔 들고 다니는 거.
-맞아요. 내시들이 이렇게 파라솔 같은 걸. 그게 바로 유악이에요, 기름 천막.
그러는데 이제 허적이 아버지께서 잔치를 여는 그런 사건이 있었어요.
국가에서 무슨 공을 받고 이제 공신이다. 이러면서 잔치를 여는데 숙종이 비가 오네.
내가 유악을 빌려줘야겠다. 그래서 유악을 빌리러 그때 유악 빌리는 곳에 갔더니 이미 허적이 빌려 갔는데요. 이러는 거야.
-이미 자기가 빌려 갔구나.
-내가 빌려주려고 했는데 내가 하사하려고 했는데.
왕이 쓰는 기름 천막을 네 마음대로 써? 너 왕이야? 삐졌어.
-이건 조금.
-숙종이 화가 났어.
-그럴 수 있겠다.
-그럴 수 있을 만 하겠다.
-숙종이 이제 화가 난 상황에서 마침 허적의 아들인데 서자였던 허견이 연모 사건에 휘말려요.
그러면서 허적도 거기서 같이 정리가 되어 버립니다.
허적과 윤휴가 사약을 먹고 죽은 게 경신환국이에요.
그러면 남인이 이제 폭락했죠. 서인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다음으로는. 다음은 기사환국입니다.
기사년에 일어나는 기사환국이지만 장희빈의 기사가 될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기사환국 때는 장희빈에 푹 빠져있는 시기.
그러니까 장희빈이 처음에는 장옥정이었다가 희빈이 되고 나중에는 원자를 낳잖아요. 아들을 낳아서 왕비까지 올라가요.
그런데 장희빈이 아들을 윤을 원자로 아이를 낳았을 때 원래 원자 책봉, 원자 책봉은 2살이나 3살 정도에 책봉이 되고세자 훈련을 받거든요.
태어난 지 2달 만에 숙종이 원자로 책봉을 합니다.
-정말 좋아 죽었네요, 좋아 죽었어.
-장희빈이 계속 꼬셨겠죠. 그러니까 그때를 당시 서인이었던 송시열이 아니 되옵니다. 인현왕후가 이렇게 젊은데.
-맞아.
-정실부인한테 나와야지 어딜 장희빈의 아들을 왕으로.
너 사약 먹어. 이래서 송시열이 사약을 먹게 되는데 송시열의 사약 스토리가 있어요.
송시열은 사약을 한 사발로 죽지 못했다. 사약이 의외로 몸에 잘 받았다.
-한약이 되어 버렸네, 한약이.
-이 사약이라는 것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요.
장희빈이 나중에 사약 먹을 때 먹고 바로 죽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약은 왕이 하사한 약으로 약간 쌍화탕 맛도 나면서 부자와 아니면 감꼭지를 쓰게 이렇게 만든다고 하는데요.
사약을 마시고 사약이 약발을 잘 받기 위해서 이렇게 아랫목에 누워있어야 한대요.
나 빨리 약발 받아서 빨리 죽어야 하는데.
-따뜻하게.
-사약을 가져온 신하들이 막 이렇게 아궁이를 떼준대요.
-빨리 좀 죽어요. 나도 빨리 지금 퇴근하게.
-퇴근하게.
-그런데 송시열은 한 사발을 먹고 두 사발을 먹어도 죽지 않는 거예요. 신하들 좀 어떻게 해보세요.
-억울해서 눈을 못 감겠는가 보다.
-나 너무 잘 받는데 나 컨디션이 좋아졌어.
그래서 세 사발을 먹고 그래도 안 죽어서 입안에 생채기를 내고.
그래서 결국 송시열이 죽을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
-잘 받아서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 차라리.
-이 송시열이 왜 사약을 잘 받았느냐는 그런 부분은 추측하는데, 송시열이 장수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소변을 계속 먹었대요.
그때는 그게 약이었다고 하면서, 사실 여러분 몸에서 나오는 소변은 생각보다 깨끗하다고 합니다. 다 소독이 돼서 나와요.
-우리 할머니가 나 옛날에 오줌 받아 드셨는데.
-그러네.
-정말?
-그러니까 어린아이의...
-장수 중이세요?
-아니, 돌아가셨어요. 구십 넘으셔서 돌아가셨어요.
-장수하셨네요.
-장수하셨네, 장수하셨네.
-옛날 사람들이 어린 아이의, 남자아이의 소변을 마시는 게 몸에 좋다는 그런 게 있었어요.
-그래서 자꾸 이렇게 손으로 받으시더라고.
-진짜, 진심?
-몇 살 때?
-완전 아기 때.
-그 기억이 남아 있어요? 나의 소변을 받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네. 진짜 완전 아기 때는 아닌데.
-진짜 이렇게 실제는 처음 들어봐요.
-조금 컸을, 조금 커서.
-실제로 그렇구나. 송시열의 예가 맞는구나.
그래서 송시열이 그렇게 소변을 받아먹고 그런 부분에서 독소나 이런 부분에 강해지다 보니까 사약을 마셔도 끄떡없지 않았나.
그게 바로 기사환국. 그러면 봐 봐요.
서인이었던 송시열이 죽었고 남인이었던 장희빈이 막 득세하죠.
그러면 기사환국은 남인이 정권을 잡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장희빈의 기사. 마지막이 갑술환국이에요.
숙종이 또 새로운 여자에게 빠집니다. 장희빈이 나에게 너무 집착한다. 예쁜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너무 나한테 집착하고 표독스러워.
약간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인현왕후를, 인현왕후를 쫓아냈어요. 기사환국에서 인현왕후가 폐위,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인현왕후한테 좀 미안해.
그런데 인현왕후의 생일날 인현왕후의 거처, 처소에 누가 생일상을 차려놓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너는 누구냐. 그 여자가 바로 숙빈 최씨, 영조의 어머니입니다.
너 너무 착하다, 그랬더니 저는 매년 인현왕후의 생일 때마다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착한 여자가 좋은 거 같아.
그래서 결국 숙빈 최씨한테 꽂히게 되고, 그러면서 서인들이 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하는데, 이때도 남인들이 서인들 다 쫓아낼 줄 알았는데 편을 들어주는 거예요.
-숙종은 바보입니다, 바보.
-복위하게 돼요.
-바보다, 바보.
-그래서 결국 갑술환국 때는 또 서인이 득세하게 되죠.
그러면서 장희빈은 어떻게 죽게 됩니까?
-사약.
-인현왕후가 조금 있다가 죽잖아요.
인현왕후를 무고했다, 저주했다. 그런데 사실 그거는 증거물이 있었어요.
신당을 차리고, 유명한, 장희빈 장면 아시죠? 인현왕후 그림 그려놓고 활 쏘고.
-활 쏘고.
-저주 인형에 막.
-저주 인형.
-바늘 찌르고.
-그런 식으로 이제 신당을 차리고 무고했다, 저주했다 해서 무고의 옥으로 장희빈이 사약을 먹고 죽습니다.
실제로 장희빈과 시어머니가 이제 경종, 경종 어릴 때 윤의 다리를 양쪽 잡고 서로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영 좋지 못한 곳이 다쳐서 경종이 후사가 없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러면 고자가 된 건가요?
-내가 고자라니.
-그렇죠. 아무튼 그것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성기능은 없었다.
실제로 후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경종이 죽고 후사가 없으니까 영조가 올라간 거예요.
그런데 영조는 왕위에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루머가 돕니다. 아시죠?
경종에게 이것과 이것을 줘서 경종이 이거 먹고 죽었다. 상극인 두 가지 음식을 줬다.
-곶감, 아닌가?
-비슷해요.
-뭐였는데...
-생감하고.
-생감.
-간장게장.
-맛있겠다.
-저도 한번 실험해 볼까 해서 먹을까 했는데 죽을까 봐 아직 못 먹었는데요.
이 간장게장은 경종이 평상시에 좋아했던 음식이었고 또 이 생감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게 사실 실제로는 영조가 준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수라간에서 준 건데 영조는 인삼차만 올렸다고 해요. 그런데 간장게장과 생감을 먹고 그 뒤로 계속해서 장염 증상이 나타나다가 죽었다.
그러한 루머가 계속되면서 이인좌의 난이라는 게 일어나요. 이인좌가
-이인좌.
-벽보에다가 간장게장과 생감으로 죽였다, 경종을 시해했다.
영조가 왜 신하들이 좀 무시했냐 하면 어머니가 무수리라서.
-무수리 출신이구나.
-이 무수리 출신은 궁녀의 세숫물을 갖다주고 청소하는 궁녀의 노비 같은 역할이에요.
그러니까 궁녀보다 더 낮은 거예요. 그러니까 천한 신분이다 이러면서 영조가 신하들한테 무시를 당해서 영조는 되게 좀 완벽주의자.
공부를 되게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까 사도세자도 너무 공부를 시킨 거죠.
그래서 영조가 이인좌의 난을 진압을 했고 난 극단적인 인물 너무 싫어.온건한 인물을 등용할 거야.
당파들을 고루고루 등용할 거다, 이런 식으로 탕평책을 실시합니다. 탕평책.
-탕평책.
-그런데 이 탕평책이 얼마나 영조가 탕평책에 진심이냐 하면 성균관의 탕평비를 세우고 음식도 탕평채라는 음식을 만들어요.
-탕평채.
-혹시 아시나요?
-여러 가지 해서.
-청포묵.
-그게 그거에서 유래된 거예요?
-영조가 만든 음식이에요.
그런데 급식으로 나오면 학생들이 싫어해요.
-싫어해요.
-별로 안 좋아하는 음식인데 청포묵 흰색, 검은색 김 가루 그리고 노란색 계란지단 그리고 실고추 그 빨간색.
사색당파를 버무려서 좀 친하게 지내라고 탕평채를 만든 거예요. 그래서 탕평채는 의외로 궁중 음식이다.
-궁중 음식이구나.
-탕평채. 궁중 음식이지, 학교에 나오는.
-그렇지만 학생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맞아요.
-학생들은 제육 좋아하죠.
-그렇죠.
-돈가스 좋아하고요.
-그렇죠. 그래서 영조는 이런 식으로 계속 탕평책을 실시하고 사실 영조도 업적은 많아요.
영조가 너무 장수했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영조 시기에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서 죽인, 그 임오화변이 가장 유명하죠.
그러니까 본인이 본인 출신이 너무 미약하고 막 무시당했으니까 너는 완벽한 군주가 되라고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너무 공부를 시킨거예요.
사실 사도세자랑 영조 사이는 좋지가 않았어요.
사도세자를 끊임없이 막 갈궜다고 해야 하나, 괴롭혔다?
그러니까 수령청점식으로 사도세자 네가 한번 정치를 해봐라 그러면 이렇게 해도 뭐라고 하고.
-맞아.
-물어보면 나한테 왜 물어보냐고 하고. 능 행차를 갈 때 비 오면 이게 너 때문에 비가 왔다, 그러고.
-스트레스받아.
-그래서 결국 사도세자가 정신이 이상해지죠.
그래서 결국 뒤주에서 죽게 되고 이 뒤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번 창경궁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드리면 창경궁에 문정전 앞에서 뒤주에 갇혔다고 하거든요.
사도세자가 뚱뚱하니까 처음에는 뒤주를 대령을 했는데 뒤주가 작았대요.
그래서 어영청에 그런 군대형 쌀가마, 큰 뒤주를 갖고 와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그 공포 분위기에서 좁아서 못 들어간 것도 웃픈 이야기죠.
-웃기다.
-어영청 뒤주 들어가서 있는데 그 문정전 앞에서 죽은 게 아니라 너는 이제 왕자로도 쫓겨났으니까 선인문이라고 해서 내시들이 왔다 갔다 하고 궁녀들이 들어가는 쪽문이 있어요.
문정전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선인문이 있고 그 선인문 앞에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회화나무가 뒤틀려서 자라고 있거든요. 그 회화나무가 바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나무예요.
지금도 있어요. 거기 보면 그 나무 가운데가 조금 텅 비어있거든요.
거기에 써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뒤 가운데가, 나무가 텅 비어서 자랐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창경궁에 가면 회화나무를 꼭 보고 거기가 진짜 땡볕이 엄청 심한 그냥 그런 공간이에요.
그늘 하나 없는 공간. 그곳에서 뒤주에서 7일 동안 거의 먹지도 못하고 탈수 증상으로 죽게 되죠.
그러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정조는 사실 원래 사도세자의 아들로 올라간 게 아니라 영조의 첫 번째 아들이 빨리 죽거든요.
영조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로 해서 정조가 올라가게 됩니다.
정조는 딱 즉위하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때 당시는 노론이라고 해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지거든요.
-소론, 소론.
-노론은 늙은이들, 소론은 젊은이들이에요.
송시열 계열이 노론, 윤증 계열이 소론,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노론, 소론.
-노론들이 특히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서거든요.
나는 노론 너희가 우리 아버지 죽인 걸 알고 있어.
그런 식으로 어필하면서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깁니다.
그러면서 뭐를 만들었죠, 수원의?
-(함께) 수원화성.
-그렇죠, 화성을 만들죠.
아버지 능을 보러 간다는 거는 조선시대 효도의 상징이잖아요.
뭐라고 못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정치적 퍼포먼스죠. 계속해서 보러 가면서 나는 기억하고 있다, 네가 지난여름에 무엇을 한지, 이런 식으로 너희가 우리 아버지 죽인 거 알고 있어.
그러면서 갈 때 바로 정조의 남자, 정약용이 만든 뭐를 이용해서 한강을 건넜다?
-거중기?
-거중기가 아니다.
-아닙니다. 거중기 아닙니다.
-그건 화성 만들 때 했던 거.
-그렇죠. 무슨 다리죠?
-내 다리?
-배다리 맞습니다.
-배다리?
-내 다리라고 했는데.
-내 다리라고 했는데.
-내 다리, 내 다리.
-배다리?
-배다리?
-그때는 다리가 없었어요.
-배로 만든 다리라는 거예요?
-네, 배를 연결해서 거기다 널빤지를 쫙 깔아서 배다리를 만들고 그 배다리를 타고 갑니다, 정조가.
그런 식으로 수원화성 능차 때 배다리를 이용했고 아까 말씀하신 거중기.
-거중기.
-거중기를 이용해서 수원화성을 빠르게 지을 수 있었다.
정조의 애민 정신을 알 수 있는 부분이요.
원래는 그렇게 성을 지을 때는 공짜로.
-맞아.
-요역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냥 공짜로 해요.
-백성들이 와서 그냥 짓고는 했잖아요.
-맞아요. 남자분들 군대에서 많이 하는 삽질.
-삽질, 그렇죠.
-그렇죠, 눈 쓸기. 그런 식으로 무료로 그렇게 했었는데.
물론 지금은 군대에서 월급을 조금 주시지만.
그때 당시는 원래 무료로 요역을 바치는 거였는데 수원화성은 일당을 줬다고 해요.
그래서 능률이 높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일당도 수원화성성역의궤에 이 사람이 몇 시까지 일했고 얼마를 줬고 기록을 꼼꼼하게 했대요.
그래서 꼼꼼하게 기록해서 건축 현장에서 많이 돈을 떼어먹는 부정부패를 예방했다.
수원화성의궤에 너무 기록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수원화성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겁니다.
-수원화성 놀러 갔다가 그 설명을 봤었는데 그 의궤 덕분에 지금이라도 또 똑같이 만들 수 있다.
-맞아요.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수원화성은 가보시면 되게 유럽의 성 같기도 하고 특이한 부분이 많아요.
소라각이라고 해서 소라 모양도 있고요. 그리고 수원화성 그 입구에 문 있잖아요. 원래 우리나라는 그냥 들어가는 문인데 이중문이에요.
그러니까 겹성, 이렇게 반원으로 되어 있어서 한 번 들어가고 또 거기서 막 이렇게 활을 쏠 수 있게 해놓고 또 들어가는.
-단계가 이렇게.
-그런데 그러한 구조들을 어떻게 이렇게 알게 됐냐 하면 김홍도가 청나라에 몰래 갔다 왔어요.
-우리가 아는 그 김홍도요?
-그림 그리는 김홍도가.
-정조 때 김홍도가 도화서 화원이었는데 연행사로 가는 누군가의 양아들처럼 그렇게 몰래.
-따라가서.
-스파이로 가서 그때 사진이 없잖아요. 김홍도가 몰래 가서 딱 그려온 거예요.
그 중국의 그런 건축 기술을 청나라 거를 괜찮은데?
보고 와서 그래서 수원화성을 신기술로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수원에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원화성.
그런데 수원화성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화성행궁이 있거든요.
화성행궁이 되게 커요. 정조는 아예 수도를 화성으로 옮기려고까지 시도했던 개혁 그런 도시로 수원화성을 만들었다.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성공을, 빨리 죽었죠. 그런데 정조가 마지막으로 그런 정조의 애민 정신이 담긴 정조의 문구로 정조를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정조는 만천명월 주인옹. 나는 여러 만천, 여러 강들을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다.
-달, 명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큰 강도 비추지만 시냇물도 비추는 그런 식의 군주다.
그러니까 높은 지위 사람, 낮은 지위 사람 모두 백성을 사랑하는 그런 정조의 사랑, 애민 정신을 알 수 있다는 거.
그런데 정조가 안타까운 게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죽었다.
-죽었다.
-정조는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다고 해요.
아무래도 좀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시고 그런 게 있었겠죠.
정조가 사실 죽은 이유는 엄청나게 큰 종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접만 한 종기가 등에 났다고 해요.
그런데 역대 왕들의 죽은 이유 사인 중에 가장 많은 게 종기예요.
-종기.
-이게 외과 수술이 안 됐기 때문에. 그때는.
-여러분, 이렇게 담배랑 술이 몸에 안 좋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노담.
-노담.
-이제 정조는 죽고 정조의 아들이었던 어린 순조가 12살에 즉위를 해요.
그때부터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라고 해서 장인어른, 외척들이 정권을 잡는 그러한 세도정치 시대예요.
순조 때 이제 정순왕후 있잖아요. 정조랑 약간 라이벌이었던 정순왕후가 정조가 죽으니까 정조의 남자들, 정조의 그런 인물들을 싹 다 제거하기 위해서 천주교 박해, 신유박해를 일으킵니다.
이때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가죠. 그리고 정약용의 동생이었던 정약전은 저기 흑산도로 유배를 가요.
흑산도에서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만들고 정약용은 강진에서 또 엄청난 책을 만들죠.
-목민심서.
-이건...
-혹시 정약용의 책들 혹시 아는 거 있으실까요?
-목민심서.
-목민심서 맞습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약용은 500여 종의 책을 냈다고 해요.
-거의 출판사네요.
-맞아요. 출판업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책을 내다 보니까 여기 복숭아뼈 있잖아요.
항상 양반다리 하고 책을 너무 쓰다 보니까 복숭아뼈가 드러날 정도였대요.
-그거는...
-아빠다리 너무 오래 했네.
-그렇죠.
-너무, 너무 미련하십니다.
-그렇죠. 아들이 와서 아버지, 유배에 와서 바둑 두고 좀 쉬시지 뭘 이렇게 책을 많이 내냐고.
-아버지 누워서 쓰십시오.
-그러니까, 책상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고.
-엎드려서.
-그랬더니 정약용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내가 만약에 책을 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유배를 간 정약용, 이렇게 기록을 하겠지만 앞으로 나는 내 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정약용은 그 책들로 인해서 정말 막 여러 분야에서 의학 분야, 과학 분야, 심지어는 그런 정약용의 지도도 있어요.
지리서,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대단하다. 제가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좋아하는 왕은 정조, 좋아하는 인물은 정약용.
-같은 시대에 있었네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순조 때 신유박해 이렇게 일어나고요. 그뿐만 아닙니다.
순조 때 평안도에 대한 차별 때문에 열받은 홍경래의 난도 일어나요.
-홍경래의 난.
-(함께) 홍경래의 난.
-그러니까 이게 평안도를 왜 차별했냐 하면 그쪽이 워낙 오랑케가 넘어온 지역이다.
이래서 평안도는 오랑케들이 살던 지역이야.
-오랑케들이다.
-이러면서 지역 차별이 심했던 곳이에요.
그래서 노비들도 평안도 놈이라고 부른다.
이러면서 평안도를 차별한다, 이래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순조 때는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아요.
-안동 김.
-헌종 때는 풍양 조. 철종 때는 또다시 안동 김.
철종 때 이거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임술 농민 봉기.
-임술 농민 봉기.
-농민 봉기.
-임술 농민 봉기 왜 이게 유명하냐 하면 철종 때 3정의 문란이라는 게 있어요.
-3정 문란.
-전세, 토지세를 더 걷고 군포의 문란.
군포에게는 성인 남자에게만 걷었던 건데 죽은 사람에게 걷고 백골징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걷고. 황구첨정.
-너무하다.
-그러니까 너무 세금이 너무 국가가 혹독한 거예요.
마지막은 환곡의 문란으로 봄에 꿔주고 가을에 갚는 건데 사채놀이가 된 거예요. 아시죠?
-고리대금으로 그냥.
-이자, 원금은 언제 갚아?
이자가 막 늘어나는, 그런 식으로.
막 곡식이 썩은 쌀 두 가마를 주고 나서 햅쌀로 다섯 가마 갚아라 이런 식인 거예요.
그래서 농민들이 3정의 문란으로 못 살겠다.
그래서 일어난 게 임술 농민 봉기였다. 그래서 3정의 문란 끝나고 임술 농민 봉기 끝나고 이제 철종 다음에 고종이죠.
흥선대원군이 좀 이제 고종이 어릴 때 되게 왕권을 많이 강화해요. 세도정치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까 있었던 변방을 방비했던 임시 기구였던 거.
-비변사.
-그렇죠. 비변사를 세도 가문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걸 없앱니다, 드디어.
흥선대원군 비변사 폐지.
-비변사 폐지.
-그리고 이제 이런 세도 가문들 모두 쫓아내고 왕실의 위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세워요.
-경복궁.
-경복궁 중건. 그런데 사실 흥선대원군은 외교를 기억하셔야 해요.
흥선대원군은 서양과 수교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쇄국 정책.
-안 했죠.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맞아요. 쇄국 정책. 척화비.
그래서 여기 부분은 스토리로 이야기를 말씀드릴게요.
흥선대원군이 병인박해라고 해서 프랑스 선교사 9명을 죽이고 거의 8000명의 목을 베었던 천주교 박해가 있었어요. 병인박해.
-병인박해.
-용산 쪽에 절두산 순교지 있거든요.
거기 보면 진짜 한강 물이 붉게 물들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처형됐다고 해요.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자가 죽었죠. 그러고 나서 병인양요가 일어나죠.
-병인양요.
-우리 프랑스 선교사를 죽이다니. 그래서 프랑스가 강화도로 쳐들어오죠. 병인양요.
그리고 또 미국도 쳐들어오죠.
-(함께) 신미양요.
-신미년이지만 미 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신미양요 미국.
프랑스 쳐들어와, 미국 쳐들어와.
서양 싫어.
서양과 말만 섞어도 나라를 파는 거야, 이런 식의 척화비를 세웁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척화비 꼭 기억해 주시고.
고종이 스무 살 넘고 고종이 올라가죠.
그러고 나서는 사실 조선시대는 끝난 거죠.
고종이 올라오면서부터는 개항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너무 스토리가 많아요.
강화도 조약도 맺고 점점 일본이 접근을 막 하겠죠.
-들어오는. 그러면 실질적으로 고, 순, 종, 순종까지 있지만 순종은 거의 한 게 없는?
-그렇죠. 사실 고종은 결국에 나라를 잃게 되잖아요. 국권이 침탈되잖아요.
사실 고종은 1907년에 이미 을사늑약 이후에 그거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헤이그 특사 파견했다가 고종 강제 폐위돼요.
그러고 나서 순종이 올라갔잖아요. 순종은 사실 정말 불쌍한 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죠.
-왜냐하면 고종이랑 순종이 순종이 어렸을 때 고종이 커피를 되게 즐겨마셨거든요.
그런데 커피 독살 사건이 있었어요. 고종은 조금 이상하다 해서 안 먹었는데 순종은 원샷 때린 거예요.
그래서 이가 다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 독이 들어가 있어서.
순종은 보시면 약간 치아가 좀 튀어나와 있는 그런 식의 사진이 남아 있고요.
이렇게 다 경단처럼 다져서 그런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순종이 제일 안타까운 부분은 순종은 창경궁에서만 거주하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때 순종을 위로해주겠다, 이러면서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은 창경궁을 뭐라고 부르죠? 창경원.
-창경원.
-옛날 데이트 장소로 제일 유명했어요, 창경원.
-창경원.
-우리 창경원 놀러 갈까?
창경원 벚꽃놀이, 창경원의 창경궁 가면 연못 있잖아요.
거기서 배 타고 이런 식으로. 유원지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순종은 하루에 1시간 거기를 둘러보는 게 그나마 유일한 순종의 움직임이고 창경궁 안에서만 살았던,
결국 일제강점기 비운의 왕으로 결국 1926년에 순종이 죽었을 때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렇게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순종은 비운의 왕이 됩니다.
-저는 약간 1시간 동안 500년 역사 여행을 제대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 그런데 인욱 씨는 사실 들으면서 어땠어요?
-저는 너무 재미있게 쉽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인가요?
-뭐가 제일 좀 궁금했어요?
-쏙쏙 들어오기는 했는데 여기, 여기가. 여기서 이제 기억을 잘해야 할 것 같아요.
-궁금한 건 더 없었나요?
-궁금한 거는 없어요.
-다 안 들으신 것 같은데, 퀴즈를 내고 싶은데, 막.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 이유가 일단은 조선이 왕들 위주로 지금 순서대로 쫙 설명을 해주셔서 왕 중심 이야기로 했지만
사실상 왕 이야기가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스토리가 있을 거잖아요.
-그렇죠.
-사실 오늘은 우리 왕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너무 재미있었는데 또 왕 주변에 다른 이야기들도 하면서 또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사실 제일 좋아하는 역사는 야사거든요.
사실 야사는 밤 야 자가 아니에요.
-아니구나. 실망한다.
-좋아하셨는데.
-실망한다, 실망한다. 아니에요.
-물론 밤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지만 야 자는 주변 야 자입니다. 주변 사.
그러니까 왕들이나 그런 정치사 외에도 주변 민초들의 삶. 주변인들의 삶.
사실 그들도 역사의 주역이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야사적인 부분을 아주 좋아해요.
사람들이 몰랐던 부분. 이런 역사도 있어? 이런 식으로. 그래서 주변 야.
주변 민중들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우리 선장님이 오셔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야사를 가지고 보물지도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요.
-저는 워낙 한국사 스타 강사님이시니까 마지막으로 이걸 여쭤보고 싶습니다.
한국사 공부 너무 어렵다는 친구들에게 한국사 공부 꿀팁이 있다면 알려주시죠.
-역사를 딱 공부할 때 하기 싫어, 지겨워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이나 역사 이야기를 먼저 공부하신 뒤 흥미를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일단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렇죠. 예를 들어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 팀이라든지 축구 선수 연봉 그런 거 다 외우는 건 관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죠.
-내가 덕질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외우듯이 연도를 기억할 수 있게끔 역사에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라 이런 것도 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아니면 그런 책이라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유튜브에 워낙 많은 내용이 있잖아요.
역사에 먼저 흥미를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요. 역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역사적인 그 인물들은 우리의 조상이고요.
우리 유전자에 남아 있어요, 여러분.
-그렇네요.
-그렇죠? 그런 부분에서 역사는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까지 내가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정체성의 이유가 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에는 밟으면 꿈틀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죠.
그건 우리가 그러한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접근을 하면 역사가 단순히 재미 없는 공부가 아니라 진짜 내 삶이고 우리 역사고 또 그런 역사들이 다 나한테 남아 있는 거다 보니까
접근하기도 편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무조건 암기하지 말고.
-그런데 저희 이번 화는 보물지도 이번 편은 역사 공부하시는 분들은 계속 반복재생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반복재생 하다 보면 중요한 포인트도 다 외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진짜 조선왕조실록을 쑥 훑은 그런 뜻깊은 시간이었는데 우리 강사님께서 우리 선장님께서 한마디로 오늘 강의 정리를 해주신다면요?
-오늘 강의를 정리하면 세상에 나쁜 왕은 없다.
세상에 못된 개는 없는 것처럼. 세상에 나쁜 왕은 없다.
왜냐하면 그 왕이 잘못한 것을 우리가 보면서 교훈을 얻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어디서든지 우리가 비교하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세상에 나쁜 왕은 없다.
-오늘 정말 선장님과 역사 여행 너무나도 재밌게 떠나봤는데요.
다음 주는 또 어떤 지식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 같이 한번 외쳐볼까요?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저때만 해도 안습.
OTL.
-안구에 습기 찬다.
-안구에 습기 찬다.
-인사할 때.
-(함께) 방가방가.
-이런 거.
-나 그거 지금도 하는데 그래서 요즘 애들이 나랑 말 잘 안 거는...
-저도 많이 모르고 그냥 갑툭튀.
-갑툭튀 진짜 옛날 말 아니에요?
-너무 옛날인가?
-보통 국어 선생님이라고 하면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대화를 들으면서 뭐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
-저것들 정신 못 차리고 오늘 남아서 청소해.
-그런... 그런 나쁜 선생님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죄송합니다.
-보통 맞습니다.
-제 학창 시절을 떠올렸나 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말, 젊은 사람들의 말.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결국은 한국어를 이루는 거고요.
오늘 강의할 내용도 바로 이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나랏말씀이 듕귁에 달아 어린 백성이 사맛디 아니할세.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그렇죠. 수양대군에게 결국 단종이 폐위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드디어 선조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조.
-선조.
-선조 하면 할 말이 많죠.
선조는 일단 임진왜란 때문에 빠르게 피난 가서 욕먹은 왕이잖아요.
-맞아요. 어떻게 백성을 버리나이까.
-그렇죠.
-바로 도망감.
-선조는 임진왜란만 없었어도 욕을 그렇게 먹진 않았을 거예요.
선조는 똑똑한 인물로 공부를 좋아했던 왕으로 문치주의, 학문에 능했던.
나는 그냥 공부를 좋아했을 뿐인데 나는 전쟁이 무서웠을 뿐 그런 인물이에요.
-그러니까요.
-선조 때 성리학이 아주 많이 발달하고 율곡 이이, 이황이 활동했던 주 시기가 선조 때입니다.
그래서 선조는 나 공부 너무 좋아. 그래서 결국 사림들을 대거 등용시켜요.
훈구는 이제 망했어요. 왜일까요?
-외척이 강해져서.
-그거보다 훈구는 후학 양성을 못 했어요.
과거 시험에 계속 급제해야 관료가 막 생기잖아요.
훈구는 재력만 믿고 후진 양성을 못 했다.
사림들은 쫓겨나서 지방에서 뭐 했냐 하면 본인은 공부 잘하니까 학원을 만들었어요.
-향교.
-그렇죠. 서원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하면서 후학 양성을 했고 마을 사람들이 이분 똑똑하니까 이분 말을 따르자 이래서 향촌 자치 규약이라는 향약을 시행했어요.
-향약.
-그래서 서원과 향약으로 사림들이 버티고 버티고 잡초처럼 버텨서 결국 선조 때 사림들이 모두 장악.
그러고 나서는 들어보셨겠지만 사림들이 동인, 서인, 북인, 남인 이런 식으로 붕당이 만들어집니다.
-붕당 정치.
-나눠지는 거죠.
-붕당 정치.
-그래서 붕당 정치가 선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선조 때 결국 임진왜란이일어났으니까 임진왜란 이야기를 해야겠죠?
일본이 무슨 무기를 가지고 왔을까요?
-조총, 조총.
-그렇죠, 조총.
-총을...
-우리는 활로 쏘는데 조총이 꽤 조준력이 좋았어요.
조총으로 막 우리 활 손을 쏘고 그리고 말의 다리를 맞히고 이래서 못 이기는 거죠, 초반에.
-얄미워.
-그래서 동래성, 부산이 함락되고 충주까지 막 올라갑니다.
신립 장군이 당연히 막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립 장군은 항상 이겼었거든요, 기마병이에요.
그러다 신립 장군은 조령, 문경새재라고 하는 그런 조령을 선택하지 않고 탄금대, 허허벌판을 선택했어요, 나는 말로 잘 싸우니까.
그런데 하필 비가 내렸어요. 그래서 그 탄금대 질척질척한 진흙에 비도 내렸지 말들이 넘어지고 그러면서 도미노처럼 넘어지면서 그래서 패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조가 그 이야기를 듣고 빠르게 도망가죠. 빠르게 피난을 가요. 광해군한테 맡겨놓고.
어려운 말로 분조라고 하거든요. 조선을 나눴다. 나는 명의 지원군을 받아올 테니 네가 조선을 맡아, 이래서 후다닥 도망가요, 후다닥.
그래서 광해군이 나중에 의병을 일으키고 싸우고 그렇게 된 거죠.
하지만 임진왜란은 우리가 졌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초반에만 밀렸지 우리가 반격합니다.
임진왜란이 1592, 1592년 4월 16일에 시작됐거든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첫 승리 옥포해전이 5월이에요.
-5월이요?
-네. 그러니까 4월에 쳐들어왔지만, 5월에 첫 승리를 했다는 건 이미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과 군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예요.
-대비가 좀 돼 있었네.
-왜냐하면 이 남해 지방에 왜구들이 하도 들끓고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군에서는 우리가 엄청나게 승리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지는 전쟁은 하지 않았죠.
-멋있다.
-항상 이기는 전투만 했죠.
그래서 뭐 옥포해전, 한산도의 학익진, 이것도 사실 배의 차이긴 해요.
일본 배는 뾰족한 세키부네예요. 그러니까 깊은 바다에서는 잘 가요. 그런데 우리나라 배는 판옥선으로 밑이 납작해요.
그런데 일본 배가 우리나라 남해 왔는데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바닥에 돌도 많고.
-그리고 갯벌.
-갯벌이 또...
-물이 빠져버리면 푹 박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배에서는 훨씬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학익진 같은 경우는 우리가 도망간 것처럼 막 동그랗게 가다가 둥그런 바닥이 밋밋하니까 샥 돌아서 파바박 군함을 쏜 거예요, 이렇게 딱 동그랗게 감싸서.
-감싸서.
-맞아요. 이런 식으로 해서 수군의 이런 반전, 수군의 항쟁.
그리고 뭐가 있을까요? 스스로 일어난 각 지역의 의병들 맞습니다.
-의병들.
-그러니까 의병들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게 우리나라는 우리 가족 건드리는 건 못 참아.
-맞아요.
-내 친구 건드리는 건 못 참아. 나만 욕할 수 있어.
-민족 특성입니다, 민족 특성.
-맞아요, 우리나라의 특성이에요.
-우리 홈그라운드인데.
-우리 오빠 놈은 나만 욕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그래서 결국 홈그라운드에서 의병들이 일어나는데 향토 지리에 익숙하니까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적은 인원으로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고경명.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수군과 의병의 항쟁으로 전세가 뒤집어지게 돼요. 일본은 놀랐어요.
왜냐하면 서울에서 제대로 싸워보자 이렇게 해서 한양에 갔더니 다 비어있어.
뭐야 왕도 도망가고 뭐야?
-뭐야?
-얘네 뭐야? 그러니까 일본의 전투는 그냥 수도를 점령하면 끝나는 게 일본 전투 스타일이고 우리나라는 끝날 때까지.
-(함께) 끝난 게 아니다.
-얘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끝까지. 그러면서 일본이 이제 위기에 봉착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7년의 전쟁을 이어갔고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으로 결국 이긴 전투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이 많이 고생하고 갔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도 좀 피해를 입었죠.
-졌잘싸.
-국토가 황폐화되고.
-그러면 이...
-졌지만 잘 싸웠다.
-그렇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정부가 바뀌게 되고, 에도 막부로 바뀌게 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도자기 문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활자 문화 그런 부분에서 일본은 오히려 문화가 발전했다고 해요.
그런데 선조가 이제 임진왜란 일으키고 그거를 전후 복구하는 건 광해군이죠.
-광해군.
-광해군이 초반에 잘한 일이 정말 많아요.
-광해군은 그런데 되게 불쌍한 왕인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열심히도 했는데.
-이병헌 씨 생각나죠?
-이병헌.
-따라 해 보거라.
그래서 이 광해군이 한 업적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전후 복구를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허준으로 하여금.
-(함께) 동의보감.
-그렇죠, 동의보감 만들게 했고 전후 복구 사업, 성곽도 다시 짓고.
이런 식으로 여러 전후 복구 사업에 힘썼고 그렇지만 광해군이 쫓겨난 이유가 있어요.
이때 후금은 점점점 힘이 세져요. 그러니까 여진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워서 점점 힘이 세지고 명은 힘이 약해지는 거예요.
-지는 해.
-그렇죠, 지는 해예요.
그런데 명나라는 우리나라에 임진왜란 때 지원군을 보내기도 했고 그래서 명나라가 야, 후금 치게 너네 군대 보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광해군이 여기서 마냥 후금과 적을 지면 후금이 우리를 먼저 칠 거야. 그러니까 중립을 지키자. 최고의 좋은 외교는 양다리를 걸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중립 외교를 합니다. 후금한테 가서 강홍립이라는 장군이 우리 원하지 않은 출병이야. 우리는 명과의 의리 때문에 온 거지, 너네랑 싸우기 싫어.
그래서 결국 싸우지 않고 투항해요. 그랬는데 그때 당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불편해해.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장수가 투항을 한단 말인가. 나는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지만. 화가 나네.
-그런 느낌.
-그래서 서인들이 결국 중립 외교에 열 받았고.
-그렇죠.
-여기에 반대를 했고 명나라의 재조지은이라고 그래서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준 명의 은혜를 저버리다니.
-맞아.
-이러면서 서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광해군이 자신의 왕위에 약간 위협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영창대군 혹시 들어보셨나요? 어린 영창대군.
-영창대군.
-그리고 인목대비.
그래서 영창대군이 있다는 건, 이제 영창대군을 데리고 신하들이 올라올 수 있는 그런 부분이기 때문에 영창대군을 증살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뭐냐 하면 뜨겁게 불을 막 해서 말려 죽였다고 하는데요.
-증기로 죽였다는 뜻인가요?
-네, 그런데 그렇게 증살하기는 솔직히 힘들고 아무리 찜질방에서 이렇게 해도.
-그렇죠.
-그래서 아마 물을 주지 않고 아이가 탈수로 아마 죽지 않았을까.
-탈수.
-그렇게 보고 있고요. 인목대비는 서거당이라고 덕수궁에 있는 서거당에 유폐를 했어요. 형제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했다. 폐모살제.
이래서 패륜아다, 이래서 광해군을 쫓아내요.
그게 바로 인조반정입니다. 광해군 쫓겨났죠? 인조가 올라가죠?
-인조.
-인조를 올린 사람이 서인이죠?
그러니까 서인들이 어떻게 정책하냐 하면 친명 배금.
명과 친하고 금을 배척을 한거예요.
-여전히 금을 이제 우리...
-그렇죠.
-오랑캐다.
-(함께) 오랑캐다.
-맞아, 맞아요.
-그렇게 배척을 하는구나.
-그래서 오랑캐랑은 절대 말도 섞을 수 없다.
그러면서 그러니까 당연히 후금이 쳐들어오겠죠.
-그렇죠.
-그런데 이 인조반정을 일으켰던 그런 공신들 중에서 왜 내가 1등 공신이 안 된 거야, 라고 이괄이라는 인물이 이괄의 난을 일으켜요.
-이괄의 난.
-그렇죠. 그런데 이괄의 난을 일으켰을 때 막 처형당한 그런 사람들 중에서 그의 아들이 후금으로 가서 복수하는 거예요.
차라리 조선을 쳐줘라. 조선 지금 군사력 바닥이다.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가 올라갔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복수를 해줘라.
오히려 후금에 가서 조선을 치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후금이 그래, 군사력 바닥이야? 바로 쳐들어와요.
그게 정묘호란이에요.
-정묘호란.
-정묘호란. 그래서 후금일 때는 정묘호란인데 얘네들이 와서 그럼 너네 너 내 아우 해.
우리 형제 관계로 하도록 해. 그래서 그러고서 금방 가요, 그때는. 그렇게 크게 피해가 없었어요.
그런데 후금이 청을 세우게 됩니다. 이제 중국이 된 거예요. 청을 세웠어요.
-그래서 후금명청 명나라 다음에 청나라...
-그렇죠. 명나라 이제 망하고 청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랬더니 너네 명나라에 군신 관계였잖아. 우리한테도 신하의 예를.
-갖춰라.
-다 바쳐라. 그랬을 때 조정에서 서로 싸우게 되죠. 화해하자, 싸우자.
-척화파.
-이것은 남한산성 영화에 잘 나오는데요. 최명길은 주화파. 그리고 김상헌은 주전파.
-주전파.
-이런 식으로. 척화! 싸우자!
그러니까 이제 주전파는 하나를 내어주면 열을 달라고 할 것이다. 싸우자.
오랑캐랑 어찌 겸상하냐. 그렇지만 최명길은 나중을 도모하자. 군사력도 없으면서 큰소리쳐봤자.
-맞아요.
-또 백성들만 고생이다.
-일단 살아야 한다.
-그렇죠. 그 최명길이 바로 전주 최씨예요. 제가 전...
-저 전주...
-저 전주 최씨인데.
-저 전주 이씨인데요. 그렇죠.
-위 아 더 원.
-현실적이야. 현실적인.
그렇지만 주학파를 따르지 않고 주전파가 대세였기 때문에 결국 싸우게 됩니다.
-주전파의 전이 전쟁하자는 뜻이군요.
-그렇죠. 병자호란의 결과 어땠죠?
-아주 치욕스러웠습니다.
-그렇죠. 병자호란 11월에 쳐들어왔는데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했지만 먹을 것은 없고 고립되고 막 눈 오고.
그래서 그때 말이 죽으면 말로 이제 먹고.
사람들이 진짜 계속 죽어 나가고 동상에 걸리고 그래서 결국에는 항복을 하죠. 그게 이제 정말 진정한 굴욕.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삼전도의 굴욕.
-삼전도.
-그러니까 이제 청나라는 그때 오랑캐 시기에 항복의 예가 있어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세 번 조아리는, 세 번 절하는 것도 굴욕이지만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릴 때 제대로 안 조아렸다고 머리를 치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그런데 궁금한 게 인조의 이마에서 피나 났다는 것은 실제인가요?
-네, 실제 기록이 있어요.
이마가 피가 나도록 조아리고 엄청난 굴욕을 당함.
그리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조의 두 아들이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인질로 끌려가요.
-볼모로.
-그리고 끝까지 청하고 싸웠던 삼학사라고 있거든요, 신하들.
신하들 삼학사도 끌려가서 죽어요. 그 뒤로는 소현세자가 원래 왕이 되어야 하는데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가는 그 중간에 심양이라는 지방이 있어요.
지금은 중국의 선양 지방으로 남아 있거든요.
그 심양관에 머물면서 외교관 역할을 합니다.
청에서 기분 나쁘게 요구하면 그걸 예쁘게 말을 다듬어서 조선에 전달하고.
조선이 절대 안 된다 그러면 다듬어서 지금은 좀 힘들어요, 이런 식으로 이렇게 다듬는 외교관 역할도 했고요.
그리고 소현세자가 거기서 장사를 해서.
-맞아.
-그 돈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간 우리 노예로 끌려간 우리 조선인들을 다시 사 오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인조가 좀 싫어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이 소현세자는 좀 급진적인 그런 개혁 마인드로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북경, 베이징에서 아담 샬이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서양 선교사인데요. 아담 샬은 서양 선교사면서 망원경도 개발하고 그리고 이제 그런 역법서, 그런 시헌력이라는 역법서도 개발한 과학자 같은 인물이에요.
그 사람한테 망원경도 배우고 세계가 이렇게 크고 새로운 신문물을 배워온 거예요.
내가 조선을 개혁해야지. 소현세자 들어와요. 천리경을 갖고 왔어요.
인조가 내 방을 훔쳐보려고 갖고 온 것이냐.
막 집어 던지고. 인조가 소현세자를 미워한 거예요.
-싫어했군요.
-아니, 그런데 사실 자기 아들이 대신 볼모로 잡혀가서.
-그렇죠.
-정말 열심히 하고 청과의 사이도 그나마 조금 개선하면서 들어온 건데.
-그러니까요.
-왜 그렇게 아들을 싫어했을까요?
-그런데 조선의 왕들은 아들을 싫어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부자 관계가 아니라 다음 왕위를 이으려고 하는 라이벌.
나를 왕에서 빨리 쫓아내고 왕이 되려고 하는구나. 그런 식으로.
신하들이 나보다 쟤의 말을 듣는구나. 이런 식으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조의 미움을 받던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맞아요. 독살당했다.
-얼굴의 아홉 구멍에 검은 피가 흘렀다라고 해요.
그리고 얼굴이 잿빛이었다. 그래서 이제 역대 실록의 기록 중에서 가장 독살의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소현세자입니다.
-원래 그런데 학질로 죽었다고 되어 있기는 하죠?
-학질 때문에 침을 맞았다고 하는데 이형익이라는 인물이 침을 놓은 뒤 그 뒤로 이틀 뒤에 죽거든요.
-무서워.
-그래서 아마 그 침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보기도 하고.
-독 발랐네.
-그럴 수도 있지.
-가장 독살의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소현세자입니다.
소현세자가 죽고 둘째인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겠죠.
그 왕이 효종입니다.
-(함께) 효종.
-그런데 서인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정신 승리를 시전하는데. 북벌.
명의 복수를 우리가 대신해 주겠다.
-진짜 정신 못 차렸네.
-우리가 작은 중화다, 소중화다.
공자가 다시 살아나면 우리나라로 올 거다, 이런 식으로 정신 승리를 계속 시전해요.
그러니까 이제 서인들의 정권 유지 목적인 거죠.
그래서 이제 효종 하면 북벌이 꼭 생각이 나셔야 하고요.
북벌을 하기 위해서 그때 당시에 어영청이라는 군대에서 조총 부대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때 억울한 사람이 한 명 우리나라에 표류를 해와요. 제주도로.
마침 이 북벌을 추진할 때. 혹시 OO 표류기 들어보셨나요?
-김씨 표류기.
-김씨.
-김씨 아니고요.
-헤, 헤말. 하, 하멜.
-하멜, 맞습니다.
-하멜.
-하멜 표류기.
-하멜 표류기.
-김씨.
-하멜, 불쌍한 사람이에요.
하멜은 원래 저기 일본에 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항상 일본에 가려다가 태풍을 만나면 항상 제주도로 표류를 해요.
제주도로 표류를 했던 하멜이 잡혀 와서 원래 그전에 한 번 표류했던 벨테브레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었어.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어.
-포기했군요.
-그래서 통역을 하다가 이렇게 말해줘요.
너는 날아가는 새가 되지 않은 이상 이 나라에서 나갈 수 없어. 포기해.
그러면서 하멜이 그 어영청에서 또 신무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네덜란드는 홍이포라고 해서 또 무기가 유명했거든요.
그래서 하멜도 북벌에 가담해요. 하지만 나중에 하멜은 탈출에 성공하죠.
-가지 마.
-그래서 하멜 표류기를 쓴 거죠.
-그래서 표류기를 쓸 수가 있었던.
-하지만 박연은 탈출하지 못했어요. 박연은 그냥 우리나라의 박씨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예 개명을 해서 살았네요.
-박연은 거기서 우리나라 조선 부인 만나서, 그래서 어딘가에 되게 서구적인 박씨가 있으면 조금.
-혼혈일 수도 있는.
-박연의 후손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찌 됐든 이 조총부대, 어떻게 이용이 되냐 하면. 나름의 북벌을 추진해요.
그런데 이게 액션만 취할 뿐 정말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키운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조총부대는 실제로 어디에 쓰였느냐.
효종 때 청나라가 러시아와 싸워요. 그래서 너희 군대 보내.
오히려 그때 우리 조총부대를 보내요.
-그래서 약간 쓸모가 없었겠다.
-그래서 러시아랑 싸울 때.
-도와줄 때.
-도와주게 돼요. 그게 바로 나선정벌입니다.
-(함께) 나선정벌.
-나선이라는 게 러시아라는 뜻이거든요.
-나선이.
-나선정벌 1차, 2차에 크게 승리해요.
그래서 좋게 말해서 북벌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렇게 효종은 마무리 지으시면 됩니다. 효종, 북벌.
-그런데 북벌이라고 했을 때 북쪽을 정벌한다는 거잖아요.
-북벌을 정벌.
-딱 중국만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전체적인...
-청나라에게 복수하겠다는 소리예요.
-청나라를.
-북벌이 그런 거구나.
-북벌, 북쪽을 벌하겠다.
그래서 오히려 북벌은 점점 가시게 되고 오히려 청나라에 우수한 문물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사람들, 실학자들.
-실학자.
-그래서 나중에는 북학 운동으로 바뀌게 되죠.
-북쪽에서 배우자.
-그렇죠. 이제 효종 다음으로는 현종이 있어요. 현종 때는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돼요. 예송.
상복 입는 문제 싸움. 효종은 솔직히 둘째잖아요.
그런데 서인들은 둘째를 둘째라고 하지 뭘 첫째라고 하냐, 이런 식인 거고. 남인들은 그래도 둘째지만 왕이니까 첫째 대우 해주자.
그래서 남인은 상복을 길게 입자. 그러니까 효종이 죽었을 때. 그런데 효종의 아들 현종이 상복을 입는 대상은 자의대비인데요.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 입냐, 3년 입냐.
-그걸로.
-아니면 1년 입냐, 9개월 입냐로 싸운 예송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이 현종 때는 예송이라는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걸 알고 넘어가고.
이제 현종 다음에 드디어 숙종이죠. 숙종하면 생각하시는 여자.
-없어요.
-숙종하면 여자.
-숙종하면 장희빈.
-여자?
-그렇죠.
-장희빈.
-장희빈 혹시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들어봤어요.
-장희빈은 실록에서 유일하게 예뻤다고 기록된 인물이 장희빈이에요.
-장녹수 이런 사람도 예쁘다는 소리는 없었어요?
-장녹수는 오히려 못생겼다고 기록을 했어요.
얼굴은 못생겼지만 목소리가 아름답고 노래를 잘했다.
-장씨들이 끼가 많았나 보네요.
-장희빈은 자못 아름다웠다고 기록한 유일하게 실록에서 예뻤다고 외모 칭찬을 한 인물이에요.
-궁금하다.
-그래서 장희빈은 정말 예뻤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숙종은 여자관계 때문에 환국이라는 게 일어나요, 환국. 그러니까 정치의 정국을 주도하는 사람이 자꾸자꾸 바뀌었다.
그런데 누구랑 누구랑 싸운거냐면 서인과 남인이 싸우게 되는데 먼저 첫 번째가 경신환국입니다.
경신환국은 아까 제가 예송을 왜 말씀드렸냐면 마지막 갑인예송 때 남인이 이겨요.
그래서 이 남인이 갑인예송에서 이겼기 때문에 남인 계열이 장희빈이거든요. 장희빈을 궁궐로 보낼 수 있었던 거예요, 남인이.
그때 장희빈이 궁궐에 투입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서 남인들 중에서 허적이랑 윤휴라는 인물이 남인으로서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숙종 말을 점점 안 듣고 점점점 자기 마음대로 막 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허적이 선 넘는 사건이 일어나요.
-선을 넘어버렸구나.
-선을 넘은 사건. 그게 뭐냐면 왕이 행차를 할 때 비가 오면 어떨까요?
비를 맞으면 안 되잖아요. 지금으로 치면 우산 같은 거.
유악이라는 기름 천막을 이렇게 크게 펼칩니다.
-그래서 들고 이렇게 가셨나요?
-보셨나요?
-네, 행차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사극에서 보셨죠, 이렇게.
-저거 파라솔 들고 다니는 거.
-맞아요. 내시들이 이렇게 파라솔 같은 걸. 그게 바로 유악이에요, 기름 천막.
그러는데 이제 허적이 아버지께서 잔치를 여는 그런 사건이 있었어요.
국가에서 무슨 공을 받고 이제 공신이다. 이러면서 잔치를 여는데 숙종이 비가 오네.
내가 유악을 빌려줘야겠다. 그래서 유악을 빌리러 그때 유악 빌리는 곳에 갔더니 이미 허적이 빌려 갔는데요. 이러는 거야.
-이미 자기가 빌려 갔구나.
-내가 빌려주려고 했는데 내가 하사하려고 했는데.
왕이 쓰는 기름 천막을 네 마음대로 써? 너 왕이야? 삐졌어.
-이건 조금.
-숙종이 화가 났어.
-그럴 수 있겠다.
-그럴 수 있을 만 하겠다.
-숙종이 이제 화가 난 상황에서 마침 허적의 아들인데 서자였던 허견이 연모 사건에 휘말려요.
그러면서 허적도 거기서 같이 정리가 되어 버립니다.
허적과 윤휴가 사약을 먹고 죽은 게 경신환국이에요.
그러면 남인이 이제 폭락했죠. 서인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다음으로는. 다음은 기사환국입니다.
기사년에 일어나는 기사환국이지만 장희빈의 기사가 될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기사환국 때는 장희빈에 푹 빠져있는 시기.
그러니까 장희빈이 처음에는 장옥정이었다가 희빈이 되고 나중에는 원자를 낳잖아요. 아들을 낳아서 왕비까지 올라가요.
그런데 장희빈이 아들을 윤을 원자로 아이를 낳았을 때 원래 원자 책봉, 원자 책봉은 2살이나 3살 정도에 책봉이 되고세자 훈련을 받거든요.
태어난 지 2달 만에 숙종이 원자로 책봉을 합니다.
-정말 좋아 죽었네요, 좋아 죽었어.
-장희빈이 계속 꼬셨겠죠. 그러니까 그때를 당시 서인이었던 송시열이 아니 되옵니다. 인현왕후가 이렇게 젊은데.
-맞아.
-정실부인한테 나와야지 어딜 장희빈의 아들을 왕으로.
너 사약 먹어. 이래서 송시열이 사약을 먹게 되는데 송시열의 사약 스토리가 있어요.
송시열은 사약을 한 사발로 죽지 못했다. 사약이 의외로 몸에 잘 받았다.
-한약이 되어 버렸네, 한약이.
-이 사약이라는 것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요.
장희빈이 나중에 사약 먹을 때 먹고 바로 죽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약은 왕이 하사한 약으로 약간 쌍화탕 맛도 나면서 부자와 아니면 감꼭지를 쓰게 이렇게 만든다고 하는데요.
사약을 마시고 사약이 약발을 잘 받기 위해서 이렇게 아랫목에 누워있어야 한대요.
나 빨리 약발 받아서 빨리 죽어야 하는데.
-따뜻하게.
-사약을 가져온 신하들이 막 이렇게 아궁이를 떼준대요.
-빨리 좀 죽어요. 나도 빨리 지금 퇴근하게.
-퇴근하게.
-그런데 송시열은 한 사발을 먹고 두 사발을 먹어도 죽지 않는 거예요. 신하들 좀 어떻게 해보세요.
-억울해서 눈을 못 감겠는가 보다.
-나 너무 잘 받는데 나 컨디션이 좋아졌어.
그래서 세 사발을 먹고 그래도 안 죽어서 입안에 생채기를 내고.
그래서 결국 송시열이 죽을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
-잘 받아서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 차라리.
-이 송시열이 왜 사약을 잘 받았느냐는 그런 부분은 추측하는데, 송시열이 장수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소변을 계속 먹었대요.
그때는 그게 약이었다고 하면서, 사실 여러분 몸에서 나오는 소변은 생각보다 깨끗하다고 합니다. 다 소독이 돼서 나와요.
-우리 할머니가 나 옛날에 오줌 받아 드셨는데.
-그러네.
-정말?
-그러니까 어린아이의...
-장수 중이세요?
-아니, 돌아가셨어요. 구십 넘으셔서 돌아가셨어요.
-장수하셨네요.
-장수하셨네, 장수하셨네.
-옛날 사람들이 어린 아이의, 남자아이의 소변을 마시는 게 몸에 좋다는 그런 게 있었어요.
-그래서 자꾸 이렇게 손으로 받으시더라고.
-진짜, 진심?
-몇 살 때?
-완전 아기 때.
-그 기억이 남아 있어요? 나의 소변을 받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네. 진짜 완전 아기 때는 아닌데.
-진짜 이렇게 실제는 처음 들어봐요.
-조금 컸을, 조금 커서.
-실제로 그렇구나. 송시열의 예가 맞는구나.
그래서 송시열이 그렇게 소변을 받아먹고 그런 부분에서 독소나 이런 부분에 강해지다 보니까 사약을 마셔도 끄떡없지 않았나.
그게 바로 기사환국. 그러면 봐 봐요.
서인이었던 송시열이 죽었고 남인이었던 장희빈이 막 득세하죠.
그러면 기사환국은 남인이 정권을 잡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장희빈의 기사. 마지막이 갑술환국이에요.
숙종이 또 새로운 여자에게 빠집니다. 장희빈이 나에게 너무 집착한다. 예쁜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너무 나한테 집착하고 표독스러워.
약간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인현왕후를, 인현왕후를 쫓아냈어요. 기사환국에서 인현왕후가 폐위,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인현왕후한테 좀 미안해.
그런데 인현왕후의 생일날 인현왕후의 거처, 처소에 누가 생일상을 차려놓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너는 누구냐. 그 여자가 바로 숙빈 최씨, 영조의 어머니입니다.
너 너무 착하다, 그랬더니 저는 매년 인현왕후의 생일 때마다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착한 여자가 좋은 거 같아.
그래서 결국 숙빈 최씨한테 꽂히게 되고, 그러면서 서인들이 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하는데, 이때도 남인들이 서인들 다 쫓아낼 줄 알았는데 편을 들어주는 거예요.
-숙종은 바보입니다, 바보.
-복위하게 돼요.
-바보다, 바보.
-그래서 결국 갑술환국 때는 또 서인이 득세하게 되죠.
그러면서 장희빈은 어떻게 죽게 됩니까?
-사약.
-인현왕후가 조금 있다가 죽잖아요.
인현왕후를 무고했다, 저주했다. 그런데 사실 그거는 증거물이 있었어요.
신당을 차리고, 유명한, 장희빈 장면 아시죠? 인현왕후 그림 그려놓고 활 쏘고.
-활 쏘고.
-저주 인형에 막.
-저주 인형.
-바늘 찌르고.
-그런 식으로 이제 신당을 차리고 무고했다, 저주했다 해서 무고의 옥으로 장희빈이 사약을 먹고 죽습니다.
실제로 장희빈과 시어머니가 이제 경종, 경종 어릴 때 윤의 다리를 양쪽 잡고 서로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영 좋지 못한 곳이 다쳐서 경종이 후사가 없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러면 고자가 된 건가요?
-내가 고자라니.
-그렇죠. 아무튼 그것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성기능은 없었다.
실제로 후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경종이 죽고 후사가 없으니까 영조가 올라간 거예요.
그런데 영조는 왕위에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루머가 돕니다. 아시죠?
경종에게 이것과 이것을 줘서 경종이 이거 먹고 죽었다. 상극인 두 가지 음식을 줬다.
-곶감, 아닌가?
-비슷해요.
-뭐였는데...
-생감하고.
-생감.
-간장게장.
-맛있겠다.
-저도 한번 실험해 볼까 해서 먹을까 했는데 죽을까 봐 아직 못 먹었는데요.
이 간장게장은 경종이 평상시에 좋아했던 음식이었고 또 이 생감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게 사실 실제로는 영조가 준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수라간에서 준 건데 영조는 인삼차만 올렸다고 해요. 그런데 간장게장과 생감을 먹고 그 뒤로 계속해서 장염 증상이 나타나다가 죽었다.
그러한 루머가 계속되면서 이인좌의 난이라는 게 일어나요. 이인좌가
-이인좌.
-벽보에다가 간장게장과 생감으로 죽였다, 경종을 시해했다.
영조가 왜 신하들이 좀 무시했냐 하면 어머니가 무수리라서.
-무수리 출신이구나.
-이 무수리 출신은 궁녀의 세숫물을 갖다주고 청소하는 궁녀의 노비 같은 역할이에요.
그러니까 궁녀보다 더 낮은 거예요. 그러니까 천한 신분이다 이러면서 영조가 신하들한테 무시를 당해서 영조는 되게 좀 완벽주의자.
공부를 되게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까 사도세자도 너무 공부를 시킨 거죠.
그래서 영조가 이인좌의 난을 진압을 했고 난 극단적인 인물 너무 싫어.온건한 인물을 등용할 거야.
당파들을 고루고루 등용할 거다, 이런 식으로 탕평책을 실시합니다. 탕평책.
-탕평책.
-그런데 이 탕평책이 얼마나 영조가 탕평책에 진심이냐 하면 성균관의 탕평비를 세우고 음식도 탕평채라는 음식을 만들어요.
-탕평채.
-혹시 아시나요?
-여러 가지 해서.
-청포묵.
-그게 그거에서 유래된 거예요?
-영조가 만든 음식이에요.
그런데 급식으로 나오면 학생들이 싫어해요.
-싫어해요.
-별로 안 좋아하는 음식인데 청포묵 흰색, 검은색 김 가루 그리고 노란색 계란지단 그리고 실고추 그 빨간색.
사색당파를 버무려서 좀 친하게 지내라고 탕평채를 만든 거예요. 그래서 탕평채는 의외로 궁중 음식이다.
-궁중 음식이구나.
-탕평채. 궁중 음식이지, 학교에 나오는.
-그렇지만 학생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맞아요.
-학생들은 제육 좋아하죠.
-그렇죠.
-돈가스 좋아하고요.
-그렇죠. 그래서 영조는 이런 식으로 계속 탕평책을 실시하고 사실 영조도 업적은 많아요.
영조가 너무 장수했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영조 시기에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서 죽인, 그 임오화변이 가장 유명하죠.
그러니까 본인이 본인 출신이 너무 미약하고 막 무시당했으니까 너는 완벽한 군주가 되라고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너무 공부를 시킨거예요.
사실 사도세자랑 영조 사이는 좋지가 않았어요.
사도세자를 끊임없이 막 갈궜다고 해야 하나, 괴롭혔다?
그러니까 수령청점식으로 사도세자 네가 한번 정치를 해봐라 그러면 이렇게 해도 뭐라고 하고.
-맞아.
-물어보면 나한테 왜 물어보냐고 하고. 능 행차를 갈 때 비 오면 이게 너 때문에 비가 왔다, 그러고.
-스트레스받아.
-그래서 결국 사도세자가 정신이 이상해지죠.
그래서 결국 뒤주에서 죽게 되고 이 뒤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번 창경궁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드리면 창경궁에 문정전 앞에서 뒤주에 갇혔다고 하거든요.
사도세자가 뚱뚱하니까 처음에는 뒤주를 대령을 했는데 뒤주가 작았대요.
그래서 어영청에 그런 군대형 쌀가마, 큰 뒤주를 갖고 와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그 공포 분위기에서 좁아서 못 들어간 것도 웃픈 이야기죠.
-웃기다.
-어영청 뒤주 들어가서 있는데 그 문정전 앞에서 죽은 게 아니라 너는 이제 왕자로도 쫓겨났으니까 선인문이라고 해서 내시들이 왔다 갔다 하고 궁녀들이 들어가는 쪽문이 있어요.
문정전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선인문이 있고 그 선인문 앞에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회화나무가 뒤틀려서 자라고 있거든요. 그 회화나무가 바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나무예요.
지금도 있어요. 거기 보면 그 나무 가운데가 조금 텅 비어있거든요.
거기에 써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뒤 가운데가, 나무가 텅 비어서 자랐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창경궁에 가면 회화나무를 꼭 보고 거기가 진짜 땡볕이 엄청 심한 그냥 그런 공간이에요.
그늘 하나 없는 공간. 그곳에서 뒤주에서 7일 동안 거의 먹지도 못하고 탈수 증상으로 죽게 되죠.
그러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정조는 사실 원래 사도세자의 아들로 올라간 게 아니라 영조의 첫 번째 아들이 빨리 죽거든요.
영조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로 해서 정조가 올라가게 됩니다.
정조는 딱 즉위하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때 당시는 노론이라고 해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지거든요.
-소론, 소론.
-노론은 늙은이들, 소론은 젊은이들이에요.
송시열 계열이 노론, 윤증 계열이 소론,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노론, 소론.
-노론들이 특히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서거든요.
나는 노론 너희가 우리 아버지 죽인 걸 알고 있어.
그런 식으로 어필하면서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깁니다.
그러면서 뭐를 만들었죠, 수원의?
-(함께) 수원화성.
-그렇죠, 화성을 만들죠.
아버지 능을 보러 간다는 거는 조선시대 효도의 상징이잖아요.
뭐라고 못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정치적 퍼포먼스죠. 계속해서 보러 가면서 나는 기억하고 있다, 네가 지난여름에 무엇을 한지, 이런 식으로 너희가 우리 아버지 죽인 거 알고 있어.
그러면서 갈 때 바로 정조의 남자, 정약용이 만든 뭐를 이용해서 한강을 건넜다?
-거중기?
-거중기가 아니다.
-아닙니다. 거중기 아닙니다.
-그건 화성 만들 때 했던 거.
-그렇죠. 무슨 다리죠?
-내 다리?
-배다리 맞습니다.
-배다리?
-내 다리라고 했는데.
-내 다리라고 했는데.
-내 다리, 내 다리.
-배다리?
-배다리?
-그때는 다리가 없었어요.
-배로 만든 다리라는 거예요?
-네, 배를 연결해서 거기다 널빤지를 쫙 깔아서 배다리를 만들고 그 배다리를 타고 갑니다, 정조가.
그런 식으로 수원화성 능차 때 배다리를 이용했고 아까 말씀하신 거중기.
-거중기.
-거중기를 이용해서 수원화성을 빠르게 지을 수 있었다.
정조의 애민 정신을 알 수 있는 부분이요.
원래는 그렇게 성을 지을 때는 공짜로.
-맞아.
-요역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냥 공짜로 해요.
-백성들이 와서 그냥 짓고는 했잖아요.
-맞아요. 남자분들 군대에서 많이 하는 삽질.
-삽질, 그렇죠.
-그렇죠, 눈 쓸기. 그런 식으로 무료로 그렇게 했었는데.
물론 지금은 군대에서 월급을 조금 주시지만.
그때 당시는 원래 무료로 요역을 바치는 거였는데 수원화성은 일당을 줬다고 해요.
그래서 능률이 높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일당도 수원화성성역의궤에 이 사람이 몇 시까지 일했고 얼마를 줬고 기록을 꼼꼼하게 했대요.
그래서 꼼꼼하게 기록해서 건축 현장에서 많이 돈을 떼어먹는 부정부패를 예방했다.
수원화성의궤에 너무 기록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수원화성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겁니다.
-수원화성 놀러 갔다가 그 설명을 봤었는데 그 의궤 덕분에 지금이라도 또 똑같이 만들 수 있다.
-맞아요.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수원화성은 가보시면 되게 유럽의 성 같기도 하고 특이한 부분이 많아요.
소라각이라고 해서 소라 모양도 있고요. 그리고 수원화성 그 입구에 문 있잖아요. 원래 우리나라는 그냥 들어가는 문인데 이중문이에요.
그러니까 겹성, 이렇게 반원으로 되어 있어서 한 번 들어가고 또 거기서 막 이렇게 활을 쏠 수 있게 해놓고 또 들어가는.
-단계가 이렇게.
-그런데 그러한 구조들을 어떻게 이렇게 알게 됐냐 하면 김홍도가 청나라에 몰래 갔다 왔어요.
-우리가 아는 그 김홍도요?
-그림 그리는 김홍도가.
-정조 때 김홍도가 도화서 화원이었는데 연행사로 가는 누군가의 양아들처럼 그렇게 몰래.
-따라가서.
-스파이로 가서 그때 사진이 없잖아요. 김홍도가 몰래 가서 딱 그려온 거예요.
그 중국의 그런 건축 기술을 청나라 거를 괜찮은데?
보고 와서 그래서 수원화성을 신기술로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수원에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원화성.
그런데 수원화성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화성행궁이 있거든요.
화성행궁이 되게 커요. 정조는 아예 수도를 화성으로 옮기려고까지 시도했던 개혁 그런 도시로 수원화성을 만들었다.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성공을, 빨리 죽었죠. 그런데 정조가 마지막으로 그런 정조의 애민 정신이 담긴 정조의 문구로 정조를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정조는 만천명월 주인옹. 나는 여러 만천, 여러 강들을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다.
-달, 명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큰 강도 비추지만 시냇물도 비추는 그런 식의 군주다.
그러니까 높은 지위 사람, 낮은 지위 사람 모두 백성을 사랑하는 그런 정조의 사랑, 애민 정신을 알 수 있다는 거.
그런데 정조가 안타까운 게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죽었다.
-죽었다.
-정조는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다고 해요.
아무래도 좀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시고 그런 게 있었겠죠.
정조가 사실 죽은 이유는 엄청나게 큰 종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접만 한 종기가 등에 났다고 해요.
그런데 역대 왕들의 죽은 이유 사인 중에 가장 많은 게 종기예요.
-종기.
-이게 외과 수술이 안 됐기 때문에. 그때는.
-여러분, 이렇게 담배랑 술이 몸에 안 좋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노담.
-노담.
-이제 정조는 죽고 정조의 아들이었던 어린 순조가 12살에 즉위를 해요.
그때부터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라고 해서 장인어른, 외척들이 정권을 잡는 그러한 세도정치 시대예요.
순조 때 이제 정순왕후 있잖아요. 정조랑 약간 라이벌이었던 정순왕후가 정조가 죽으니까 정조의 남자들, 정조의 그런 인물들을 싹 다 제거하기 위해서 천주교 박해, 신유박해를 일으킵니다.
이때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가죠. 그리고 정약용의 동생이었던 정약전은 저기 흑산도로 유배를 가요.
흑산도에서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만들고 정약용은 강진에서 또 엄청난 책을 만들죠.
-목민심서.
-이건...
-혹시 정약용의 책들 혹시 아는 거 있으실까요?
-목민심서.
-목민심서 맞습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약용은 500여 종의 책을 냈다고 해요.
-거의 출판사네요.
-맞아요. 출판업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책을 내다 보니까 여기 복숭아뼈 있잖아요.
항상 양반다리 하고 책을 너무 쓰다 보니까 복숭아뼈가 드러날 정도였대요.
-그거는...
-아빠다리 너무 오래 했네.
-그렇죠.
-너무, 너무 미련하십니다.
-그렇죠. 아들이 와서 아버지, 유배에 와서 바둑 두고 좀 쉬시지 뭘 이렇게 책을 많이 내냐고.
-아버지 누워서 쓰십시오.
-그러니까, 책상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고.
-엎드려서.
-그랬더니 정약용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내가 만약에 책을 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유배를 간 정약용, 이렇게 기록을 하겠지만 앞으로 나는 내 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정약용은 그 책들로 인해서 정말 막 여러 분야에서 의학 분야, 과학 분야, 심지어는 그런 정약용의 지도도 있어요.
지리서,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대단하다. 제가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좋아하는 왕은 정조, 좋아하는 인물은 정약용.
-같은 시대에 있었네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순조 때 신유박해 이렇게 일어나고요. 그뿐만 아닙니다.
순조 때 평안도에 대한 차별 때문에 열받은 홍경래의 난도 일어나요.
-홍경래의 난.
-(함께) 홍경래의 난.
-그러니까 이게 평안도를 왜 차별했냐 하면 그쪽이 워낙 오랑케가 넘어온 지역이다.
이래서 평안도는 오랑케들이 살던 지역이야.
-오랑케들이다.
-이러면서 지역 차별이 심했던 곳이에요.
그래서 노비들도 평안도 놈이라고 부른다.
이러면서 평안도를 차별한다, 이래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순조 때는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아요.
-안동 김.
-헌종 때는 풍양 조. 철종 때는 또다시 안동 김.
철종 때 이거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임술 농민 봉기.
-임술 농민 봉기.
-농민 봉기.
-임술 농민 봉기 왜 이게 유명하냐 하면 철종 때 3정의 문란이라는 게 있어요.
-3정 문란.
-전세, 토지세를 더 걷고 군포의 문란.
군포에게는 성인 남자에게만 걷었던 건데 죽은 사람에게 걷고 백골징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걷고. 황구첨정.
-너무하다.
-그러니까 너무 세금이 너무 국가가 혹독한 거예요.
마지막은 환곡의 문란으로 봄에 꿔주고 가을에 갚는 건데 사채놀이가 된 거예요. 아시죠?
-고리대금으로 그냥.
-이자, 원금은 언제 갚아?
이자가 막 늘어나는, 그런 식으로.
막 곡식이 썩은 쌀 두 가마를 주고 나서 햅쌀로 다섯 가마 갚아라 이런 식인 거예요.
그래서 농민들이 3정의 문란으로 못 살겠다.
그래서 일어난 게 임술 농민 봉기였다. 그래서 3정의 문란 끝나고 임술 농민 봉기 끝나고 이제 철종 다음에 고종이죠.
흥선대원군이 좀 이제 고종이 어릴 때 되게 왕권을 많이 강화해요. 세도정치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까 있었던 변방을 방비했던 임시 기구였던 거.
-비변사.
-그렇죠. 비변사를 세도 가문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걸 없앱니다, 드디어.
흥선대원군 비변사 폐지.
-비변사 폐지.
-그리고 이제 이런 세도 가문들 모두 쫓아내고 왕실의 위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세워요.
-경복궁.
-경복궁 중건. 그런데 사실 흥선대원군은 외교를 기억하셔야 해요.
흥선대원군은 서양과 수교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쇄국 정책.
-안 했죠.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맞아요. 쇄국 정책. 척화비.
그래서 여기 부분은 스토리로 이야기를 말씀드릴게요.
흥선대원군이 병인박해라고 해서 프랑스 선교사 9명을 죽이고 거의 8000명의 목을 베었던 천주교 박해가 있었어요. 병인박해.
-병인박해.
-용산 쪽에 절두산 순교지 있거든요.
거기 보면 진짜 한강 물이 붉게 물들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처형됐다고 해요.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자가 죽었죠. 그러고 나서 병인양요가 일어나죠.
-병인양요.
-우리 프랑스 선교사를 죽이다니. 그래서 프랑스가 강화도로 쳐들어오죠. 병인양요.
그리고 또 미국도 쳐들어오죠.
-(함께) 신미양요.
-신미년이지만 미 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신미양요 미국.
프랑스 쳐들어와, 미국 쳐들어와.
서양 싫어.
서양과 말만 섞어도 나라를 파는 거야, 이런 식의 척화비를 세웁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척화비 꼭 기억해 주시고.
고종이 스무 살 넘고 고종이 올라가죠.
그러고 나서는 사실 조선시대는 끝난 거죠.
고종이 올라오면서부터는 개항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너무 스토리가 많아요.
강화도 조약도 맺고 점점 일본이 접근을 막 하겠죠.
-들어오는. 그러면 실질적으로 고, 순, 종, 순종까지 있지만 순종은 거의 한 게 없는?
-그렇죠. 사실 고종은 결국에 나라를 잃게 되잖아요. 국권이 침탈되잖아요.
사실 고종은 1907년에 이미 을사늑약 이후에 그거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헤이그 특사 파견했다가 고종 강제 폐위돼요.
그러고 나서 순종이 올라갔잖아요. 순종은 사실 정말 불쌍한 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죠.
-왜냐하면 고종이랑 순종이 순종이 어렸을 때 고종이 커피를 되게 즐겨마셨거든요.
그런데 커피 독살 사건이 있었어요. 고종은 조금 이상하다 해서 안 먹었는데 순종은 원샷 때린 거예요.
그래서 이가 다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 독이 들어가 있어서.
순종은 보시면 약간 치아가 좀 튀어나와 있는 그런 식의 사진이 남아 있고요.
이렇게 다 경단처럼 다져서 그런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순종이 제일 안타까운 부분은 순종은 창경궁에서만 거주하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때 순종을 위로해주겠다, 이러면서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은 창경궁을 뭐라고 부르죠? 창경원.
-창경원.
-옛날 데이트 장소로 제일 유명했어요, 창경원.
-창경원.
-우리 창경원 놀러 갈까?
창경원 벚꽃놀이, 창경원의 창경궁 가면 연못 있잖아요.
거기서 배 타고 이런 식으로. 유원지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순종은 하루에 1시간 거기를 둘러보는 게 그나마 유일한 순종의 움직임이고 창경궁 안에서만 살았던,
결국 일제강점기 비운의 왕으로 결국 1926년에 순종이 죽었을 때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렇게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순종은 비운의 왕이 됩니다.
-저는 약간 1시간 동안 500년 역사 여행을 제대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 그런데 인욱 씨는 사실 들으면서 어땠어요?
-저는 너무 재미있게 쉽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인가요?
-뭐가 제일 좀 궁금했어요?
-쏙쏙 들어오기는 했는데 여기, 여기가. 여기서 이제 기억을 잘해야 할 것 같아요.
-궁금한 건 더 없었나요?
-궁금한 거는 없어요.
-다 안 들으신 것 같은데, 퀴즈를 내고 싶은데, 막.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 이유가 일단은 조선이 왕들 위주로 지금 순서대로 쫙 설명을 해주셔서 왕 중심 이야기로 했지만
사실상 왕 이야기가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스토리가 있을 거잖아요.
-그렇죠.
-사실 오늘은 우리 왕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너무 재미있었는데 또 왕 주변에 다른 이야기들도 하면서 또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사실 제일 좋아하는 역사는 야사거든요.
사실 야사는 밤 야 자가 아니에요.
-아니구나. 실망한다.
-좋아하셨는데.
-실망한다, 실망한다. 아니에요.
-물론 밤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지만 야 자는 주변 야 자입니다. 주변 사.
그러니까 왕들이나 그런 정치사 외에도 주변 민초들의 삶. 주변인들의 삶.
사실 그들도 역사의 주역이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야사적인 부분을 아주 좋아해요.
사람들이 몰랐던 부분. 이런 역사도 있어? 이런 식으로. 그래서 주변 야.
주변 민중들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우리 선장님이 오셔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야사를 가지고 보물지도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요.
-저는 워낙 한국사 스타 강사님이시니까 마지막으로 이걸 여쭤보고 싶습니다.
한국사 공부 너무 어렵다는 친구들에게 한국사 공부 꿀팁이 있다면 알려주시죠.
-역사를 딱 공부할 때 하기 싫어, 지겨워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이나 역사 이야기를 먼저 공부하신 뒤 흥미를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일단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렇죠. 예를 들어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 팀이라든지 축구 선수 연봉 그런 거 다 외우는 건 관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죠.
-내가 덕질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외우듯이 연도를 기억할 수 있게끔 역사에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라 이런 것도 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아니면 그런 책이라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유튜브에 워낙 많은 내용이 있잖아요.
역사에 먼저 흥미를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요. 역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역사적인 그 인물들은 우리의 조상이고요.
우리 유전자에 남아 있어요, 여러분.
-그렇네요.
-그렇죠? 그런 부분에서 역사는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까지 내가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정체성의 이유가 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에는 밟으면 꿈틀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죠.
그건 우리가 그러한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접근을 하면 역사가 단순히 재미 없는 공부가 아니라 진짜 내 삶이고 우리 역사고 또 그런 역사들이 다 나한테 남아 있는 거다 보니까
접근하기도 편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무조건 암기하지 말고.
-그런데 저희 이번 화는 보물지도 이번 편은 역사 공부하시는 분들은 계속 반복재생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반복재생 하다 보면 중요한 포인트도 다 외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진짜 조선왕조실록을 쑥 훑은 그런 뜻깊은 시간이었는데 우리 강사님께서 우리 선장님께서 한마디로 오늘 강의 정리를 해주신다면요?
-오늘 강의를 정리하면 세상에 나쁜 왕은 없다.
세상에 못된 개는 없는 것처럼. 세상에 나쁜 왕은 없다.
왜냐하면 그 왕이 잘못한 것을 우리가 보면서 교훈을 얻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어디서든지 우리가 비교하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세상에 나쁜 왕은 없다.
-오늘 정말 선장님과 역사 여행 너무나도 재밌게 떠나봤는데요.
다음 주는 또 어떤 지식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 같이 한번 외쳐볼까요?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저때만 해도 안습.
OTL.
-안구에 습기 찬다.
-안구에 습기 찬다.
-인사할 때.
-(함께) 방가방가.
-이런 거.
-나 그거 지금도 하는데 그래서 요즘 애들이 나랑 말 잘 안 거는...
-저도 많이 모르고 그냥 갑툭튀.
-갑툭튀 진짜 옛날 말 아니에요?
-너무 옛날인가?
-보통 국어 선생님이라고 하면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대화를 들으면서 뭐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
-저것들 정신 못 차리고 오늘 남아서 청소해.
-그런... 그런 나쁜 선생님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죄송합니다.
-보통 맞습니다.
-제 학창 시절을 떠올렸나 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말, 젊은 사람들의 말.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결국은 한국어를 이루는 거고요.
오늘 강의할 내용도 바로 이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