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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제15권 - 가톨릭과 개신교 (윤영휘 /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등록일 : 2023-10-11 09:50:32.0
조회수 : 1127
-보물이 되는 지식을 찾아 떠납니다. 펼쳐라.
-(함께) 보물지도.
-두 분은 해외여행 자주 가시나요? 어때요?
-전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전지훈련으로 많이 갔죠.
-훈련한다고?
-그래서 보지도 못했어요.
-가서 풍경이 어떤지, 이 나라는 어떤지 구경도 못 하고. 공만 던지다 오셨군요?
-그나마 신혼여행 간 거. 미국으로 갔어요, LA로 갔던 거? 그게 제일 기억에 남죠.
-우리 경환 씨는 어때요?
-저는 버스킹한다고 태국, 호주, 베트남 이렇게 가봤는데 베트남에서 버스킹 했던 게 제일 재밌었어요.
-베트남에서 제일 재밌었고 또 LA 갔던 게 제일 좋았고.
-제일 좋았죠.
-맞습니다. 사실 저는 늘 여행 하면 뭔가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거든요.
그런데 때마침 오늘 모실 선장님이 유럽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모셔보도록 할게요. 선장님.
-(함께) 나와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대학교 사학과에 윤영휘 교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선장님 소개를 유럽과 관련이 있는 유럽을 잘 아시는 선장님이 나오신다고 했는데 제가 잘 소개를 한 걸까요?
-그렇죠, 저는 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역사, 문화, 또 여러 가지 풍물,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오늘 저희가 들을 수 있는 수업도 유럽과 관련이 있는 수업인가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데요.
역사를 가르치다 보니까 근대라는 개념, 현대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런 게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것이 시작된 유럽에서의 사건을 오늘 한번 다뤄보고자 합니다.
-좋습니다. 오늘 우리 선장님과 함께 유럽으로 떠나는 지식 항해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살면서 기독교, 개신교, 가톨릭, 천주교, 이런 용어들 많이 되게 들어보셨잖아요.
그런데 정확한 뜻을 아세요?
-그냥 가톨릭과 기독교의 차이 정도만 아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혼동되거든요. 기독교.
-왜냐하면 다 십자가 들고 있으니까.
-다 십자가 들고 있고. 그래서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 또 정확하게 이런 용어들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그런 궁금증이 있잖아요. 개념 정리를 먼저 하고 넘어갈까 해요. 우리가 가톨릭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렇죠?
그런데 가톨릭이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라고도 하죠.
사전적 의미는 보편적인 교회라는 뜻인데요.
옛날부터 서방, 서유럽에서 오랫동안 존재했던 그런 교회를 우리가 가톨릭교회라고 하죠.
천주교라는 용어도 많이 씁니다. 조금 이따 설명할 개신교에 비해서 좀 오래된 종교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구교라고도 이렇게 이야기하죠.
또 이제 개신교라는 게 있습니다.
16세기에 오늘 소개할 사건이 종교 개혁을 통해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돼서 형성된 교회들을 두루 일컫는 말이죠.
가톨릭에 비해서 늦었기 때문에 신교라고도 하고요.
가톨릭교회에 항의해서 만들어진 교회라고 해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를 기독교라고 하는데요.
사실 기독교는 더 넓은 개념입니다. 개신교, 가톨릭 모든 걸 합쳐서 사실은 기독교, 크리스차니티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면 가톨릭도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죠, 기독교, 그리스도교 안에 사실은 가톨릭도 있고 개신교도 있고 모두 포괄되는 그런 개념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가 종교 개혁이라는 건데요.
워낙 서양에서 유명한 사건이니까 더 리포메이션 하면 종교 개혁이구나. 사실 그렇게 이해하는 거죠.
-옷 리폼할 때 그 리폼?
-맞습니다. 원래 있던 거를 약간 옷 리폼하듯이 다시 리폼하는 거죠.
또 하나 강조해야 하는 게 종교 개혁하면 사실 많이 들어보셨을 게 루터라는 사람일 것 같아요.
우리가 떠오르는 게 루터의 종교 개혁일 텐데 사실은 종교 개혁은 루터가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요.
루터 말고도 되게 많은 사람들이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은 복수다. 여러 사람들이 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중에 가장 크게.
-맞습니다.
-성공한.
-성공은 맞아요. 제일 성공했고요, 어떻게 보면.
-루터가 제일 성공했어요?
-제일 성공했고 그리고 또 처음 시작한 사람 중에서 어떻게 보면 살아남은 사람.
왜냐하면 그때는 교황의 권위가 워낙 셌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어요.
루터의 가장 큰 공헌은 살아남은 겁니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개혁 교회가 살아남았고 사실 개신교라는 게 지금까지 올 수 있는 기반이 닦인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왜 종교 개혁하면 루터고 종교 개혁은 중요한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종교 개혁이라는 게 왜 일어났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잘 돌아가는데 개혁이 일어나진 않겠죠.
-맞아요.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문제가 있으니까.
-부패하고.
-부패하고, 맞습니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부패했다. 그런 건 옛날에 세계사 시간이나 그럴 때 배우지 않으셨나요?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배우지 않았어요.
-배우지 않으셨어요?
-공 던지시느라 바쁘셨습니다.
-공 던지느라 바쁘셨지만 우리는 다 배웠답니다.
-부럽습니다.
-지금부터 같이 배워요.
-일단 방금 말씀드린 대로 잘 돌아가면 개혁이 일어나지 않죠.
이때 되게 많이 타락했습니다. 기성 종교가 되고 완전히 중세 때 교황의 권위는 정말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런 위치가 되자 타락하게 되죠. 되게 많은 타락의 예가 있는데 한 가지만 말씀드릴까요?
스테파노 6세라는 교황이 있습니다. 이 사람 자체가 레오 5세라는 사람을 쫓아내고 교황이 돼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가톨릭 성직자는 결혼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마로치아라는 여성과 내연 관계였고 그리고 거기에서 아이도 태어납니다.
-할 거 다 했네.
-할 거 다 했죠?
그리고 그 아이가 나중에 요환 12세라는 교황이 또 됩니다.
-그 자식도.
-자식들도 교황이 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죠.
또 마로치아라는 사람은 이 사람만 사귄 게 아니라 또 레오 6세라는 교황이랑 사귑니다.
그래서 이때를 창부 정치라고 이렇게 나쁘게 평가하는데요.
이런 일이 있었을 정도로 지금 우리가 교황님 하면 참 존경할 만하고 정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인 지주지만 이때는 이 정도로 많이 교회가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회가 타락하면요. 따라오는 현상이 분열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그래요, 그렇죠? 조직이 타락하면 분열이 되잖아요.
1378년부터 1417년 사이에 서방 교회가 둘로 짝 갈라집니다. 그래서 프랑스 국왕이 교황을 압력을 넣어서 자기편 교황을 세워요.
심지어 우리가 로마 가톨릭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성당을 프랑스로 옮겨버립니다. 아비뇽으로.
-왜요?
-왜냐하면 자기가 힘이 세고 자기가 교황을 임명했으니까 프랑스 영역하에 두려고 옮겨버립니다.
이렇게 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아비뇽 교황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고 또 로마에서는 어떻게 로마 교황청인데 교황을 비워둘 수 있는가 해서 또 교황을 세워요.
그래서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유럽 정말 반으로 쭉 갈라져서 한쪽은 아비뇽파, 한쪽은 로마파 해서 엄청나게 싸웁니다.
-로마파, 프랑스파 약간 이런 느낌이에요?
-이런 식인 거죠.
-뭔지는 모르겠는데 싸우니까 재밌네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교황님 하면 되게 정신적인 지주 존경을 많이 받지만
이게 정말 권위가 땅에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입니다. 피사라는 곳에 모여서 회의해요. 이게 말이 되는가.
둘 다 물러나고 새로운 교황을 뽑자. 우리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 어떻게 됐을까요?
-다 동의 안 할 것 같은데요.
-결과적으로 교황이 세 명이 됩니다.
-그럴 줄 알았어.
-교황의 권위가 결정적으로 떨어지는 계기, 그리고 교회의 권위가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겠죠.
그러니까 어느 날 루터가 짠 나타난 게 아니라 이런 배경 속에서 교회 개혁 필요했던 것이죠.
특히 이때 혼란했어요. 혼란이 되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뭐냐 하면 바로 팬데믹이었습니다.
-역병이 돌았어요?
-코로나.
-코로나는 그때는 없었을 것 같아요.
-코로나이고 싶지만 코로나 아니고요.
-흑사병?
-맞습니다, 흑사병. 페스트라고 불리는 흑사병이죠.
전 유럽에 흑사병이 도는데 들어보셨겠지만, 이때 정말 많이 죽었습니다.
한 인구의, 지역별로 다르지만 3분의 1 정도밖에 안 남은 지역이 많았어요. 유럽의 흑사병은 정말 심각한 거였고 사실 우리가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도 되게 힘들었잖아요.
그러나 그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이 사람들이 죽었고 이때는 특히나 원인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민심이 말 그대로 흉흉해지고 미신이 되게 유행하고 사람들이 특히나 기존의 권위, 교황이라든가 교회라든가 이런 권위에 대해서 상당히 의구심을 갖게 되는 배경이 있었던 것이죠.
말 그대로 대공포의 시대였습니다. 또 이런 상황 속에서 르네상스라는 게 일어나죠.
르네상스는 이제 옛날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학문, 사상 그리고 철학 이런 게 부활한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예술, 문학이 엄청나게 부흥한.
-맞습니다. 유명한 모나리자라든가 그런 라파엘로 그림 같은 거 걸어놓겠죠.
잘 보시면 상당히 그 그림은 인간 중심적이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때는 상당히 모든 게 인간 중심적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신도 인간 중심적이었습니다. 제우스 생각해 보세요. 제우스 맨날 바람피워요.
사생아도 낳고. 헤라는 맨날 질투해요.
그 정도로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이 이때 변화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이 되게 많이 바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중세인의 삶과 생각을 지배했던 교회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었을까.
사실 말 그대로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지 몰라 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사건이 그거 같아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지구는 둥글다 그거.
-그렇죠.
-사실 그냥 새로운 지식이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무작정 여기에 대해서 반감을 느끼고 기존의 자기들이 가졌던 기득권이 흔들린다고 생각해서 과도한 리액션을 취한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마디로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어떤 방향을 상실한 그런 상황 속에서 사실은 루터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거죠.
뭔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중의 한 명이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루터라는 사람이죠.
사실 되게 입지전적인 사람입니다. 옛날에 동독 지역, 독일 사람인데 그 지역의 조그마한 도시, 탄광 도시에서 태어났고 광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되게 똑똑했어요. 되게 똑똑해서 집안에서 열심히 공부를 시켜서 당시의 대학에 갔습니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아들이 공부 잘해요. 그러면 소 팔고 논 팔고 해서 걔를 서울 보내서 공부시키잖아요.
그럴 경우 그 아이가 주로 뭘 공부하죠?
-법.
-그렇죠, 이과면 의사 아니면 문과면 법을 공부하잖아요.
그래서 루터도 법을 공부합니다. 루터도 법을 공부했는데요. 한마디로 온 가족의 희망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22살 때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루터가 하루는 친구와 같이 들판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우르르 쾅 하면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어요.
더 놀랍게도 친구가 번개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자기 옆에서요?
-다행이다. 내가 안 맞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친구가 죽었는데?
-내가 죽을 뻔했잖아요.
-T예요?
-저는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요.
나는 친구 몫까지 살아야겠다는 이런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여러분은 상당히 근대적인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은 중세 말 사람이잖아요. 중세 때는 종교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하늘의 뜻이라고.
-하늘이 노했나 보다 그런 거 생각하지 않을까요?
번개 속에서 너무 무서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신께 약속을 합니다.
성 안나여, 나를 살려주소서. 그러면 내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 폭풍우가 지나가면 그때는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그럴 것 같잖아요.
-그렇죠. 이거 강제에 의거한 약속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맞아요, 까먹을 것 같아요.
-취소, 취소.
-취소, 취소할 텐데 루터는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이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제 수도사가 됩니다.
그래서 루터가 수도승 생활을 합니다. 그때 그림을 보면 삐쩍 말랐어요. 왜냐하면 루터는 너무 하나님이 무서웠어요.
너무 신이 무서웠어요.
-눈앞에서 약간 죽음을 경험해서.
-잘못하면 번개 맞아서 충분히 죽을 수 있는.
그리고 신은 되게 의롭고 정의롭고 그런 분이잖아요.
그게 생각보다 무서운 말입니다. 의롭고 정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죄인분들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어요.
그렇죠? 그래서 되게 루터는 정말 무서워 했어요.
-지금 약간 긴장하고 계십니다.
-천장이 있는 데만 다녀야겠다.
-위에서 뭐 떨어지고 이렇게.
-조명 위에 좀 치워주세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를 용서받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여러분의 상식선에서 아실 것 같은데
고해성사라는 걸 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고백과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거죠.
그래서 하루는 정말 내가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겁니다.
그래서 자기 멘토 스승이 있어요.
그분을 불러다 놓고 5시간인가
6시간인가 열심히 고백을 했대요.
-그 스승님한테 고문한 것 같은데요.
-그 정도면 귀에서 피나셨을 것 같은데. 그것도 죄 아닙니까?
-그런데 정말 다 끝났을 때 물어보죠. 모든 죄를 고백했는가, 그런 것 같다고. 마음이 편한가, 조금 편해진 것 같다고.
그럼 편안히 들어가시오 형제여 하면서 너의 죄를 사하노라 얘기를 해주죠.
그런데 돌아서는 순간 미처 얘기하지 한 또 다른 잘못이 떠올랐던 거죠.
-그만해. 5시간 들었잖아.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게 루터만의 고민이었을까요?
무슨 얘기냐면 중세 말이잖아요. 그 당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의 상상을 넘는 겁니다.
정말 삶이 교회에서 시작해서 교회에서 끝나요.
그 당시 사람들에게 루터가 했던 고민이 되게 생소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죠? 많은 사람이 고민했던 것일 거예요.
그래서 루터가 절망에 빠져있었던 그런 상황에서 한 가지 이제 전기가 찾아옵니다.
당시로서는 신생 대학, 지금은 500주년이 넘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로 가게 됩니다.
놀랍게도 교수가 돼서 가르쳐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때 성경을 제대로 처음 읽어봐요.
그게 약간 이해가 안 되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사실 루터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못 읽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보급이 많이 안 돼 있어서.
-너무 어려운 말이라서.
-정말 다 정답이 나왔는데요. 일단 되게 비싸요.
-비싸요?
-책이, 책 자체가 비싼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종이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고 그리고 성경 정도 되면 되게 중요한 책이잖아요.
보통 성경은 양피지. 양피지 뭔지 아시죠? 양가죽으로 만든 거.
-양피지에 이제...
-그러니까 완전히 고급 종이에 수작업으로 새기는 거죠.
그래서 양피지가 얼마인가. 지금 제가 한번 알아봤거든요, 어제. 지금도 양피지 A4 용지로 사면 1만 5000원이래요.
-지금 가격이.
-그런데 당시는 대략 5만 원이 넘었어요. 그리고 성경 정도 되려면 20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만들려면 양 200마리가
필요했답니다. 그러니까 엄청 비쌌겠죠?
-양고기 많이 먹었겠다.
-그러게요, 하여튼.
-그러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양고기의 소비와 분명 상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양 종이를 만들려면 양을 잡으니까.
-칭따오.
-그래서 1400년대 중반에 성경책 구텐베르크라는 사람이 만든 성경책이 50굴덴이었는데 이게 얼마인가?
대략 일반 노동자의 2년에서 3년 치의 연봉 정도였어요. 되게 비싼 책이에요.
그러니까 거기다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도 성경을 라틴어로 적었거든요, 라틴어로.
그러니까 모국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책이 한 1000만 원 하는데 한자로 적혀 있어.
그러면 누가 읽겠습니까?
-못 사, 못 사요. 1000만 원이라서 못 사고.
-못 사고 또 산들 못 읽고.
-사도 못 읽어요.
-그러니까 약간 제가 쉽게 이야기했는데 그런 수준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제 신학 교수가 되면서 성경을 빌려 읽습니다.
제대로 읽어본 거예요. 그러면서 로마인에게 쓴 편지라는 성경이 있어요.
신약에, 사도 바울이 쓴 책인데. 거기 1장을 읽다가 이 사람에게 약간 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어떻게 의로워질까.
열심히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선행을 하고 자기 고행을 한다 해도 신은 너무나 의롭고 정말 무결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정도에 이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신을 믿을 때.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죠,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서 돌아가셨잖아요.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그걸 믿을 때 그분의 의가 나의 의가 된다.
그걸 읽고 루터가 크게 깨닫고 이게 아니구나.
나는 그동안 죄를 없애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내가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구나. 이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루터의 고민이 루터만의 고민이 아니었잖아요. 루터가 이 말을 쓸 때 정말 많은 사람이 와, 하면서 동감하는 게 있었겠죠.
1515년에 루터가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요. 97개 항목으로.
그리고 동료 교수들한테 읽어보라고 줍니다.
그런데 저도 가끔 미안한 이야기지만 동료 교수님들이 책 썼다고 이렇게 주세요, 한번 읽어보라고.
죄송한 이야기지만 잘 안 읽거든요.
-그 교수님들 보고 계실 수도 있는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1517년에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루터가 저기 보이는 대학 교회 문에 95개 조를 종이에 써서 꽝꽝 하고 붙이는 그런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실 이거를 우리가 종교 개혁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루터는 왜 대학 교회에 이렇게 붙이게 되었을까?
바로 면벌부라는 거 때문입니다. 내세의 벌을 그거를 이 증서를 샀을 때 덜어준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지금 되게 유명한 선전 문구를 말을 하거든요.
면벌부가 죄인들을 세례보다 더 깨끗하게 만들고 타락 이전의 아담보다 더 순결하게 만들뿐 아니라 면벌부를 판매하는 자의 십자가는 그리스의 십자가만큼 효력이 있다.
헌금함 바닥에 동전이 땡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던 영혼은 화살처럼 솟아오른다.
-그런데 이게 약간 종교가 이렇게 너무 대놓고.
-돈을.
-약간 돈을 요구하면서 상업적으로 이렇게 홍보 문구를 써도 됩니까?
-사실은 이래선 안 되죠. 정말 그 당시의 농민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겠습니까?
이런 문구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팔게 되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뻥을 치려면 크게 쳐야 해. 그렇죠?
얼마나 확 다가오지 않습니까?
-맞아요, 솔깃하긴 합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이 너무나 중요한데 그렇잖아요.
이걸 땡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자기 사랑하는 분의 영혼이 천국으로 솟아오른다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많이 팔려요. 그런데 이게 당시에도 말이 안 됐고요. 많은 지식인들이 되게 분노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저게 당시 풍자화인데요. 그림을 보시면 삼층관을 쓴 사람이 이탈리아 교황이에요. 당시 교황은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이 됐어요.
그리고 저 말이 독일입니다. 독일을 상징하는 말이고 뒤에 스페인 사람, 앞에 프랑스 사람 또 영국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저 말을 끌고 가죠.
그러니까 힘이 없는 독일의 약간 정말 강제적으로 외부인들이 와서 이걸 파는 거예요.
그런 거에 대한 지식인들의 분노,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맥락 속에서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에 후대가 기억하기 좋게 10월 마지막 날이에요, 그렇죠? 사실 이날이 핼러윈 데이잖아요.
그러면 이날이 종교 개혁일인 거죠. 이때 대학 교회에 95개 조를 정리해서 꽝꽝꽝 하고 박았다고 전해지죠.
그래서 이게 사실 루터는 그냥 대학교수고 자기 지역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죠?
그런데 이게 파란을 일으킵니다.
루터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핸드라이팅으로, 손으로 적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보름도 안 돼서 거의 모든 독일 지역에 루터의 95개 조가 퍼집니다.
-그런데 그만큼 열망을 했었나 봐요. 이렇게 누군가가 반박을 해서 썩어빠진 교황과 교회를 어떻게든 바꾸고싶었다는 열망이 그만큼 많았을 것 같아요.
-그랬겠죠, 분위기가 가득 차 있는데 누군가 나타났으면.
사실 루터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타났으면 어쩌면 이런 반응이 나타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시대적 배경이 있었겠죠.
그래서 이게 95개 조 내용이 뭐냐 하면 주로 면벌부를 공격하는 건데 더 나아가서 교황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죠.
왜냐하면 이게 말이 안 되는 건데 이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건가.
교황과 가톨릭교회가 이거를 승인했기 때문이잖아요.
그럴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교황보다 더 높은 권위가 신자에게는 있으니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거죠.
성경 어디에 면벌부에 대해 정당화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사실은 루터가 면벌부를 공격했지만, 그 안에 내포된 내용이 되게 포텐셜이 있었던 겁니다.
즉, 신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거는
사실은 성경이라는 거죠. 교황권에 대한 공격을 루터가 처음 한 건 아닙니다. 얀 후스라는 사람은요.
루터보다 100년 전에 비슷한 이야기 했다가 이 사람은 진짜 말 그대로 화형당해 죽어요. 끌려가서.
또 종교 회의가 열리는데 오라고 그래요. 갈까 말까 고민하니까 안전 보장을 해줍니다. 증서도 써줘요. 그런데 갔다가.
-가지 마.
-화형당해서 죽어요. 그런데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한 루터는 100년 후에 살아남습니다.
-회의 안 갔어요?
-이따가 보여드리는데 가요. 그런데 살아남는데 살아남을 뿐 아니라 정말 모든 유럽에서 열기가 일어나거든요.
-약간 영웅화되는 건가?
-선풍적인 그런 인기를 끌게 되거든요. 그 차이가 어디서 생겼을까요?
-그 95개 조 반박문이 불티나게 퍼져나가면서 약간 민중들의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면 95개 조 반박문이 어떻게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게요.
-손으로 써서?
-양가죽이 비쌌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이때 과학 기술의 발전이 중요했어요.
저 기계가 되게 중요했죠.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입니다. 이게 있었으니까 사실은 루터가 죽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도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없었으면 진짜 사장될 수도 있었던.
-투모로우라는 영화 아세요? 재난 영화.
-알아요, 알아요.
-그래서 그 영화 보시면 주인공들이 뉴욕에서 막 도망쳐요, 추위를 피해.
그래서 뉴욕 공공도서관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너무 추우니까 책을 불태워요. 사서가, 거기 사서가 어떤 책 하나를 꼭 껴안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구텐베르크의 성경이에요.
왜냐하면 이거는 인류 문명의 보고라는 거죠.
그 정도로 사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지적인 그리고 어떤 사상적인 그런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작점이 바로 인쇄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인쇄물 때문에 정말 순식간에 유럽에 퍼집니다.
손으로 써서 언제 퍼뜨려요, 그렇죠? 순식간에 이름이 퍼지고 루터를 무시할 수는 없게 된, 함부로 할 수 없게 된 그런 배경이었던 것이죠.
-인플루언서가 됐네요, 인플루언서.
-요즘 말로 인플루언서가 된 거죠, 그렇죠.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교황과 황제가 당연히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합니다.
가톨릭 측에서도 요한 에크 또 요한 테첼 같은 신학자들이 나와서 루터와 신학자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요.
이 과정 속에서 사실 루터는 자기의 생각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더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가 루터에게 루터를 파문합니다.
파문이라는 게 뭐냐 하면요. 성찬과 교회 예식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드는 건데요.
-잘린 거네요?
-당시에는 유럽인들 중에 파문을 당하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왜요?
-성찬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신자도 아니고 더 이상 공동체의 일원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거죠.
당시 심각한 벌입니다. 심각한 벌인데 자기 동료 교수와 자기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그 앞에서 파문장을 이렇게 찢고 불태웁니다.
-상남자.
-간지.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해도.
-그런데 저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안 당했다는 거잖아요.
-그 이야기를 이제 할게요. 그래서 루터는 어떻게 보면 이 정도로 자기가 이야기하고 또 주장하고 논쟁하는 과정 속에서 확신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있었던 거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당시 독일 지역에 있었던 제국을 신성로마제국이라고 그래요.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가 루터를 부릅니다.
사실은 무섭잖아요.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불러도 무서운데.
-그렇죠.
-그래서 보름스라는 도시에서 국회를 소집하고 이 국회에 루터를 소환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100년 전에 아까 말한 얀 후스도 비슷하게 갔다가 죽었거든요.
그런데 루터가 유명한 말을 하죠.보름스에 있는 모든 기왓장이 악마라 하더라도 나는 가겠다. 그래서 가요.
왜냐하면 자기의 주장을 황제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기회라고 생각했구나.
-황제가 소집한 법정에 소환이 되고요. 가톨릭 측 신학자가 물어봅니다.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루터가 쓴 책을 이만큼 쌓아놨어요. 이 책을 네가 썼는가? 루터가 예라고 답을 해요.
두 번째, 이 책의 내용을 지금도 인정하는가?
그리고 이거를 철회할 의사가 없는가. 루터가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질문이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여기에서 노라고 이야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찾아올지도 우리가 손쉽게 예상이 되죠?
하루가 지나자 다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루터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다시 한번 첫 번째 질문, 이거 내가 썼다고 인정하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합니다.
꽤 긴 연설을 해요. 꽤 긴 연설을 하는데 한마디로 나는 철회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해요. 저기 쓰여있는 마지막 최후의 진술을
이향원 아나운서가 한번 읽어주실까요?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 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심에 굴복하는 것은 옳은 것도, 안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되게 유명한 연설이고요. 그래서 여기에서 So help me God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래서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지금 이거를 영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공직자가 취임할 때 이걸 관용구처럼 지금도 생각합니다.
루터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쯤 되면 진짜 처형을 당하셔도 충분히 스토리상...
-그런데 이제 반전이 있으니까 또 역사 공부하는 맛이 있는 거잖아요.
너무 뻔한 결론이 안 나오니까. 그래서 루터는 결과적으로 보름스 국회에서 유죄가 되고요.
그리고 일종의 국민권 박탈이 됩니다. 루터는 이단이 됐고 아무도 그에게 처소나 식량이나 그런 걸 제공할 수 없고 그리고 그가 저술한 책은 인류의 기억 속에 지워져야 한다.
이런 판결을 받게 됩니다. 사실 이때 루터를 대부분 사람들이 루터는 누군가 죽일 거로 생각했고루터는 난 곧 죽을 거로 생각했어요.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뭐냐 하면 루터가 갑자기 사라져요. 갑자기 사라집니다.
-납치됐나요?
-납치됐어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걸까요?
-누가 납치했죠?
-그게 되게 궁금하겠죠, 사람들이.
실제로도 궁금해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납치시킵니다. 자기 부하들에게 루터를 납치해서 어딘가 숨기라 그래요.
나한테도 보고하지 말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황제가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루터를 저기 보이는 바르트부르크라는 성에 숨깁니다.
-지켜주려고 했던 거죠?
-그렇죠.
-제가 저 성을 가봤는데요. 직접 가봤는데 진짜 딱 성안에 올라가잖아요.
사방이 숲밖에 없어요. 되게 외진 곳에 있는 그러한 성입니다. 저기 그래서 루터가 납치당해서 어떻게 보면 살아남은 거죠. 루터는 저기서 뭐 했을까요?
-신학 공부요.
-유서?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은데요? 죽는데.
-죽는데 뭘 하겠어. 보통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자포자기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술 먹거나.
-그냥 죽는구나 하면서 타락의 길을 가거나, 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중요한 거 하잖아요. 루터는 여기서 성경을 번역합니다.
-라틴어로 어렵게 되어 있는 성경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정말 자기 인생에서 꼭 이건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일이었던 성경 번역을 합니다.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경, 그거를 독일어로 번역해요.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놀랍게도 신약 성경 번역하는 데 11주밖에 안 걸립니다.
당시 여러분 사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렇죠?
그리고 루터가 지금 급하게 도망 왔잖아요.
여러 가지 정말 되게 최소한의 자료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루터가 상당히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죠.
-똑똑하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할 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속어. 즉 일반 민중이, 대중이 쓰는 말로 번역했어요.
-읽기 쉽게?
-읽기 쉽게.
-하였느니라 그게 아니라 했어염 이런 식으로 이렇게.
-읽고 싶다, 읽고 싶다.
-그런 식으로, 그렇죠? 믿는가, 동의? 이런 식으로 인정?
-킹받쥬?
-그러니까. 하여튼 그 정도까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이 충분히 읽을 수 있게, 그렇죠?
왜냐하면 일반 신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돌려주고 싶었어요.
그동안은 오랜 시간 동안 소수의 성직자가 독점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비성경적인 이야기도 막 하고 면벌부도 팔고 그랬던 거 아닙니까?
프로테스탄트의 대의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두 번째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독일인들 사이에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돼요.
사실 당시는 독일이라는 게 애매모호했어요.
어디까지가 독일인지도 몰랐고 누가 독일인지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언어도 큰 차이가 있었겠죠.
독일은 지금도 북독일어와 남부 독일어가 상당히 큰 차이가 있거든요. 당시는 더 심했겠죠.
그러니까 루터의 성경이 일종의 표준어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기서 언어적인 통일도 이루어지고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네?
그런 감정도 생기겠죠. 그래서 물론 민족주의가 발현하게 되는 건 이것보다 2, 300년 후지만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큰 공적으로 이런
성경책, 독일어로 된 성경책을 제공한 것을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이렇게 떠나서 있었잖아요.
성에 숨어있었는데 보니까 안 되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가 떠나서 있는 동안 남겨져 있는 비텐베르크 마을에 제자 그리고 동료 교수들이 이상하게 자기의 뜻을 오해해서 과격한 그런 개혁을 하는 겁니다.
루터가 더 이상 안 되겠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영주에게 청원을 해서 1년 조금 못 되는 기간을 거기서 보내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그런 교회 개혁을 시작하죠. 루터가 보기에 모든 가톨릭의 요소들을 없앤 건 아니고요.
예를 들어서 예배 의식이라든가 아니면 예배 순서라든가 비본질적인 건 얼마든지 계승하고 따라 했지만 성물 숭배, 성상 숭배 이런 것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거는 폐지합니다.
그리고 미사를 단순화하고 당시에는 라틴어로 미사를 했었는데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현지어로 예배를드리게 하고 그리고 교회 구조도 변화를 일으키죠.
이제 유럽에서는 1000년 가까이 교회는 하나였는데 개혁된 교회, 가톨릭교회와 다른 또 다른 형태의 교회가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개신교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원래 가톨릭교회가 있고 여기서 리폼된 개혁된 교회라고 해서 개신교회라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거죠.
루터는 교회의 개혁을 사회의 개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한 거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에 교회가 개혁되면 당연히 일반인들의 삶도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죠?
-같이 묶여있으니까.
-그렇죠, 묶여있으니까요. 루터는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돌보는 구빈원을 설립하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 역병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 8명 정도를 키웠어요.
-입양해서요?
-그러니까 당시 입양이라는 개념은 없었죠.
지금 법적으로 데려오고 그런 건 없었지만 거의 자식처럼.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신자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그런 모습을 보였고요. 그리고 1523년에 작센의 영주에게 청원해서 라이프치히 공동기금이라는 걸 만듭니다.
구제 기금을 만든 거예요. 세금의 일정 부분을 구제 기금으로, 복지 기금으로 할당하는 그런 제도를 루터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선 사업처럼 이렇게.
-그걸 그냥 자기가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사회 제도로 그거를 만든 사람도 루터였습니다.
-진짜 현대의 복지 제도 같이 그렇게 했네요?
-그런 씨앗이 그때 보이는 거죠. 교육도 되게 강조했어요.
왜냐하면 신자들을 가르쳐야 해요. 가르치다 보니까 성경도 가르쳐야 하지만 그들이 성경을 이해하려면 읽고 쓰기 이런 걸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루터파가 퍼지는 곳에서는 사실은 학교가 많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루터는 여성의 지위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단 수녀들이 믿음을 바꿀 경우, 결혼하는 것을 권장했고요.
독일의 여러 제후들에게 모든 마을에서 여아들이, 어린 여자아이들이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지어달라고 청원한 사람이 또한 루터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일종의 정말 중요한 지도자 역할을 하는 비텐베르크에서는 1533년에 소녀들을 위해 학교를 건립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루터파가 퍼지는 지역에서는 여성과 빈민에 대한 교육이 되게 중요한 그런 공동체의 사업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모든 사회 개혁 운동이 한계가 있듯이 이러한 운동도 한계가 있는데요.
저 그림이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저 그림을 보시면 저분이, 저 떡대 좋은 분이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거든요.
그 뒤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이 약간 숨어있죠.
저게 딱 보여지는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저게 상징하는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루터가 살아남는 데 되게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사실은.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로 대표되는 세속 영주들이었어요.
사실 세속 영주들이 루터를 보호해 주고 어떻게 보면 지지해 줬으니까 교황의 그 정말 막강한 파워로부터 루터가 숨을 곳이 있었던 것이죠.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착 관계처럼 약간.
-유착 관계가 성립되겠죠. 이거는 많이 비판받는 점입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군주권과 유착했는데 이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화되고 또 루터교는
국가 통치 이념화되는 그런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비판받는 지점이요. 루터가 자기를 지지하는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거를 모른 척합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들을 비판하고 상대를 공격까지 하게 됩니다.
루터는 상당히 이게 사회 질서를 흔든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루터는 신자가 자유를 갖고 있지만 그것이 영혼의 자유이지 어떤 육신적인 자유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실 여기에도 프리드리히도 있었겠죠.
자기를 지지해 주는 영주가 있는데. 그에 대한 반란을 루터가 지지해 주기 쉽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일반 민중들 그리고 농민들은 사실 이때부터 루터에게 실망하고 돌아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옛날에 생각해 보면 결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루터도 약간 기득권에 도전하는 입장이었잖아요.
그런데 농민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또 좋아했는데.
-맞습니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생각을 해 보면 루터의 신학을 이해하려면 뭘 많이 배운 사람이어야 해요, 그렇죠?
오랜 기간 동안 사실 프로테스탄티즘, 종교 개혁은 식자층, 좀 배운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인기를 끄는 그런 종교인 측면도 있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시 종교 개혁자들은 루터는 직접적으로 그러지 않았는데 자기의 신념을 보존하고 확산하기 위해서 사실 전쟁이나 폭력을 쓰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종교인들이요?
-그것도 사실은 아까 말한 그 연장선이 있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종교가 삶에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높아요.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그렇게 크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서 사실 누가 어떤 종교를 믿는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당시 사람들은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 무기를 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종교 전쟁이 있는데요. 딱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무리할까 해요.
첫 번째가 슈말칼덴 전쟁이라는 겁니다. 슈말칼덴 전쟁으로 아우크스부르크 조약이라는 게 맺어집니다.
가톨릭과 루터파 사이에 합의가 맺어져요. 그래서 뭘 어떤 합의가 맺어지는가.
우리 너무 종교 문제 복잡하잖아요. 그러니까 영주의 종교가 그 지역의 종교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작센의 영주가 루터파예요.
그러면 그 지역 사람들은 루터파를 믿는 거야.
-약간 종교의 자유는 없네요?
-그런데 이게 약간은 발전입니다.
-영주들한테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있는 거고 그전에는 아예 선택지가 하나였는데 적어도 선택지가 또 하나 늘어난 거잖아요.
-기존의 가톨릭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니까요.
-이거 믿고 싶으면 이사를 가야겠네요.
-그렇죠?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으로 이어지겠죠. 이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톨릭 아니면 루터파 이렇게 선택지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런데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죠?
그래서 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게 바로 30년 전쟁이라는 거예요. 이름도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100년에 비하면 짧은데요?
-그렇네요. 30년간 저렇게 싸웠고요. 그 결과 독일은 저렇게 산산조각이 납니다.
-눈이 아플 지경입니다.
-눈이 아플 지경이죠?
그래서 30년 전쟁의 결과물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라는 건데요.
일단 루터파 말고 칼뱅파도 선택지에 들어갑니다.
선택지가 조금 더 많아졌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우크스부르크 조약처럼 영주의 종교가 그 지역의 종교인 건 맞아요.
그런데 아까 말한 것처럼 그 지역에 살면 다른 종교인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정 기간 유예 기간을 뒀습니다.
-유예 기간이요? 어떤 유예 기간이요?
-한 2, 3년간은 그 지역에서 영주의 종교와 상관없이 종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거죠.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조금 늘어난 거죠. 왜냐하면 일정 기간 유예 기간을 두고 믿을 수 있게 해줬으니까.
-그러면 3년 지나면 다시 여기로 해야 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인구 이동도 많았고 또 사실 탄압도 계속 지속이 돼요.
그래서 독일은 계속된 종교 전쟁이 있게 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이 형식적으로 있지만 각 지역 영주들이 완벽한 주권과 외교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종교 때문에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는 거예요, 다른 지역이랑. 그래서 독일은 이때 일종의 3등 국가로 전락하죠.
많을 때는 300여 개 나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유럽에서 사실 독일의 힘이 약해지고 프랑스의 힘이 강해지는.
사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결국 언제까지, 1872년에 비스마르크가 통일할 때까지 독일은 상당히 어려운 그러한 시기를 겪었던 것이죠.
-그게 다 종교 때문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이때 스위스와 네덜란드가 독립합니다,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루터의 종교 개혁이 여러 가지 의의가 있지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 한계 또한 있었고 그중의 하나가 종교 때문에
사람을 죽고 죽이는 종교 전쟁이 여러 번에 걸쳐서 일어났다는 거죠.
-종교가 뭐라고 이렇게.
-그렇죠, 그런데 이게 사실 유럽 역사에 남긴 흔적 또한 꽤 큽니다.
종교 개혁의 의의는 뭘까. 그게 역사에 남긴 의미는 뭘까.
첫 번째로는 국민 국가라는 게 이때부터 생겨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유럽은 특히 독일 지역은 종교 때문에 생긴 각 지역이 사실상 독립된 나라로써 주권을 가지고 그리고
외교권을 행사하는 그러한 나라가 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 사이에 어떤 생각이 생기냐 하면 국제 관계는 주권을 가진 국가들 사이의 관계라는 생각이 퍼집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은 민족주의를 발달시킨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어떤 동인 중 하나였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두 번째로는 유럽의 종교 지형이 형성됩니다.
지금도 여러분 유럽을 가보시면요.
북쪽은 웬만하면 개신교고요. 남쪽으로 가면 가톨릭이에요.
종교적 지형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점에서 유럽 사회의 유럽의 지도를 분명히 바꾼 그런 사건이 종교 개혁이었죠.
마지막으로 루터의 종교 개혁은 교회의 개혁이 사회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갖게 만듭니다.
지금도 우리가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간에 불교가 됐건 기독교가 됐건 천주교가 됐던 간에 우리가 바라는 거는 종교가 일반인들의 삶을 돌봐주고
영적인 위로를 주고 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지금도 우리가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완전한 그런 모습이 회복된 건 아니지만 루터는 적어도 그거를 위해 노력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배우셨던 것처럼 지리상의 발견이 유럽인들의 지리적인 인식 범위를 확 넓혀줬잖아요.
교회가 다른 형태의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종교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관용해야 한다는 생각.
상당히 근대적인 개념인데 이러한 생각이 퍼지게 된 것도 사실 종교 개혁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루터가 남긴 명언이 되게 많은데요. 그런 말을 했어요.
학교가 번창하는 곳에서 모든 것이 번창한다.
그는 아주 독실한 신앙인이었고 신 앞에 어떻게 보면 정직하게 살려고 했고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해방의 메시지를 전파해 줬죠.
일반 대중들 그리고 정말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삶의 개선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루터가 했던 종교 개혁과 여러 가지 정치적인 여러 가지 움직임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했던 노력까지도 우리가 같이 고려하면
종교 개혁의 진정한 의미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좋습니다. 오늘의 항해는 선장님과 함께 특히 500년 전 종교 개혁과 관련해서 유럽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렇다면 우리 선장님께서 오늘의 강의 한마디로 딱 멋있게 정리를 해 주시죠.
-오늘 우리는 같이 종교 개혁을 배웠잖아요.
종교 개혁이라는 사건을 단순히 교회사의 사건, 종교사의 사건으로 보기보다 세상이 만들어질 때 되게 중요한 부분을 역할을 수행했던 사건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알아가면서 우리가 좀 더 세상을 균형 잡히게, 넓게 같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은 오늘 이렇게 정말 의미 있는 시간 가져봤는데 어떠셨어요?
-저도 사실 종교가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전혀 딴 이야기는 아니구나.
결국은 역사들끼리도 상호작용하듯이 종교도 사회랑 계속 상호작용을 했고 아는 게 힘이구나라는 생각을 좀 더 했습니다.
-맞습니다. 진짜 여기에 덧붙이자면 종교는 없어도 종교 개혁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기 와서 모든 게 다 공부잖아요.
세계사까지 배울 줄은 몰랐고 이렇게 촬영을 계속하면서 지식이 자꾸 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씩.
-인욱 씨 말도 들어보고 하니까 우리 다 같이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데 이럴 때 공부의 흐름을 끊으면 안 돼요.
장작을 더 넣어주겠습니다. 저희가 다음 주에도 유럽의 근대사 2탄을 준비했으니까요.
기대 많이 해 주시고요. 다 같이 인사하면서 끝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영국은 유명한 작가들이 되게 많죠.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고 같이 좀 나눠보고 싶은 사람은 토머스 모어라는사람입니다.
-(함께)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한국 작가도 모르는데 제가 영국 작가를 어떻게.
-이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하나가 벌어지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국왕의 이혼 문제였습니다.
-국왕의 이혼 문제요?
-자기 이혼도 아니라 남의 이혼 문제가.
-그러니까.
-왜 그렇게 자기한테 중요했을까요?
아버지였던 국왕 헨리 7세가...
결혼을 시킵니다.
-형수님이잖아요.
-사랑과 전쟁에 나올 만한 그런
이야기잖아요.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은 사랑과 전쟁을
뺨칠 만한 그런 이야기들을.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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