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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클래스 - 대한민국 중식의 축 진생용, 시련 속에서도 지켜낸 나의 주방
등록일 : 2026-09-09 10:02:06.0
조회수 : 70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신아림입니다.
-신아림 아나운서.
-우리 중식을 소개할 때 4대 문파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잖아요.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들었는데 중식의 4대 문파 과연 어떤 연유에서 4대 문파가 생겨난 건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 궁금증이 좀 풀릴 수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맞습니다.
오늘 모셔볼 분은 이연복, 여경래, 유방녕 셰프와 함께 우리 중식 4대 문파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진생용 대표 모시고 오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먼저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담백하게 하는 셰프 진생용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셰프님 저희가 앞서 4대 문파라는 이야기로 문을 열어봤는데 정말 중식에 이 4대 문파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요?
-4대 문파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는 않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7~80년대에 신라호텔 팔선, 홍보각, 아서원, 호화대반점 이 네 개의 셰프들,
대표하는 셰프들이 흔히 방송 매체에서 그걸 아무래도 좀 업되게 하기 위해서 그 이름을 지어준
겁니다.
-그렇군요.
서울 3대 떡볶이, 5대 김밥 이런 식으로 만든 게 4대 문파라는 거군요.
-방송 시청률도 올리고 그런 것도 좀 가미가 돼 있죠.
-그런 네이밍이 사실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4대 문파라는 의미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고.이 4대 문파라는 게 존재하는
만큼 이런 표현이 요리사분들의 진심이고 열정적인 중식 요리사분들이다라고 생각이 되어져요.
대표님께는 언제 처음으로 요리를 하셨는지가 처음부터 궁금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뜻한 바 있어서 한의대를 가기 직전에 고등학교 졸업 후에 시작을
했습니다.
-그럼 한의학을 원래 전공을 하고 싶으셨다가 요리사로 바꾸신 겁니까?
-실질적으로 합격을 했어요.
했는데 태어날 적에는 집안이 좀 부유한 편이고 그 시점에서 아버지 사업이 좀 안 되셔서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대학 진학을 포기를 했죠.
-그럼 아까 셰프님이 또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셨다고 했잖아요.
아버님께서 영월군에서 되게 유명한 중식당을 운영하셨다고?
-맞습니다.
-그게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님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군 출신이었습니다, 원래.
-중국에서 군인을 하셨고.
-근데 중국에 양대 군이 있는데 그중에 어느 편은 얘기 안 하고 군 출신, 장교 출신인데 전쟁이
막 끝날 무렵에 한국으로 이주를 해 오신 거죠.
한국으로 이주를 해서 나중에 전쟁을 겪으면서 50년대 후반 강원도 영월로 정착을 하셨습니다.
근데 정착을 한 후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최고로 큰 중식당과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설립한 이유가 화교분들은, 자녀분들은 따로 특별한 학교가 없잖아요.
중고등학교는 서울에 있지만. 그래서 학교를 설립한 후에 그 지역에 있는 학생들은 다 저희
집에서 공부를 했죠.
형편상 한의학과를 포기하시더라도 다른 인생의 갈림길들이 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중식
요리사의 길을 가시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셨다고 봐야 되나요?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죠.
근데 한의학을 포기하고 인생에서 막 절망감이 있을 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공부한 바 또
한의학을 다시 하고 싶어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계기는 뭐냐 하면 1년만 내가 돈을 벌어서 월급 타면 돈을 벌어서 학교를 가야겠다.
근데 그 1년이 사실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그 1년이라는 시간만 돈을 열심히 벌어서 학비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다른 선택을
하셔서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오신 거군요.
-맞습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그 직장이 식당이었던 거고.
-그 직장이 사실 지금은 명동의 소재지에 있는. 유명한 식당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일반 레스토랑인데 직원 수도 많고 그래서 소개를 받아서 취업을 했죠.
-그럼 거기서 일하셨을 당시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사실 주방에 처음 들어가면 무거운 것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처음에 가면 허드렛일을 많이
하잖아요.
바닥 청소나 처음 들어가면 큰 솥에 면을 삶는다거나 식자재를 옮긴다든가 이런 일을 많이
했는데. 거기서 두 달 정도를 근무할 당시에 사실 예전에는 그랬어요.
주방장과 주방장 사이에 그러니까 아는 지인이 와서 저 친구가 괜찮다 그러면 나한테, 내가
일하는데 좀 스카우트할게. 그러면 이제 가는 거예요.
자기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저 역시 두 달 만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죠.
받았는데 그 당시에 제가 월급을 8만 원을 받았는데 16만 원을 주고 스카우트를 갔습니다.
-2배로 주고요?
-네, 2배로.
그 당시에 80년도니까 8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16만 원을 주고 이직을 한 거죠.
-아무래도 좀 고된 일이고 도제 방식이잖아요.
결국 사람에게 사람이 전수해 주는 일이다 보니까 그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도 굉장히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요.
그리고 또 사람에게 배우는 거다 보니 잘 못 배우면 많이 혼도 나고.
-네, 그건 맞습니다.
-그런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전에는 저 처음 직장 들어갔을 때 생각나는 게 만두를 직접 빚어요, 군만두 같은 거. 지금은
냉동만두 들어가서 다 이렇게 하는데.
-손으로 다 빚어요?
-네, 만두를 빚는데.
-이런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되게 맛있었겠네요.
-만두를 빚으려면 처음에 반죽을 하고 그 반죽을 동그랗게 하나씩 잘라서 만두피를 하는데 저는
어렸을 적에 집에서 아버님이나 어머님 했을 적에 그걸 많이 해 봤기 때문에 만두피를 하는 데
보통 피를 하는 데 4명이 해서 이렇게 싸는데도 피가 남아돌아요, 그 정도로.
속도를 해 봤기 때문에 저는. 그래서 선배들의 눈에 많이 좀 띄었죠.
-근데 말씀을 종합해서 들어보면 나는 잘했기 때문에 안 혼났다라고 들리거든요.
-그 말 아닌가요?
-좀 덜 혼났죠.
-덜 혼났다.
-아무래도.
혼나지는 않아요. 선배들이 좀 엄격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당시에는 집안에도 그렇고
가부장적이잖아요.
집안에서도. 옛날에는 나 아니면 안 돼. 너는 꼭 이거 해야 돼.
내가 최고야 이런 식으로 되는데. 아까 얘기했던 거 다 수직적이잖아요.
-맞아요.
-그런 게 많이 있죠.
-알겠습니다.
결국 당시 최고의 중식당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P호텔로 입사를 하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곳에 입사를 한 뒤에 평생 요리를 해야겠다라고 결심하시게 됐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제가 1982년도 21살의 나이에 그 어려운 P호텔에 입사를 하게 됐는데.
-재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감각이 다르셨던 거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까. 입사를 한 후에 본격적으로 내가 이 음식을 해야 되겠다는 건 뭐냐 하면
체계적으로 다 갖춰져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음식 하나라도 레시피가 다 있고. 그다음에 그 좋은 식재료, 접해 보면 좋은
식재료로. 그러니까 일반 식당이 짜장, 짬뽕, 탕수육이지만 여기는 코스로 다 이렇게 뭐든지.
체계적인 식자재. 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해서 뭘 해야 되겠다, 이게 다 매뉴얼이죠.
-매뉴얼화돼 있고.
-다 갖춰져 있는 게 그게 저한테는 너무나 와닿고 또 어떻게 보면 이걸 내 걸로 만들어야 되겠다,
뭐든지. 내 걸로 만들어야지만 나중에 내가 활용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많이 접해져 있죠.
-알겠습니다.
호텔 중식당에서 접한 정통중식은 또 매력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일반 식당에서 만나는 중식과 호텔 중식과는 완벽하게 차이가 있잖아요?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코스요리가 나온다거나 이런 걸 사실 일반 중식점에선 접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자장면, 짬뽕 이렇게만.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자연산 해삼이나 전복, 동충하초, 제비집. 이런 고급 식재료를 가지고
변화무쌍하게 요리를 한다든가 그런 게 저한테는 되게 많이 그 당시에는 와닿고 그랬습니다.
-중화요리 하면 사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잖아요.
옛날에 졸업식 날 무슨 입학식 날, 이사하는 날 그때는 항상 자장면을 먹었던 기억도 있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서 알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준비한 게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 밸런스 게임인데요. 이 게임에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습니다.
그냥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바로 선택해 주시면 돼요.
그럼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둘 중 더 잔인하다고 느끼는 것은?
15년간 군만두만 주기 대 15년간 자장면만 주기.
-저는 더 잔인하다는 걸 1번으로 하겠습니다.
-(같이) 군만두만 주기.
-잠시 후에 이유를 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두 번째 질문드리겠습니다. 요리하기에 더 어려운 것은?
휴대용 버너로 요리하기 대 한 손으로만 요리하기.
-저는 이걸 지금 질문을 듣고 나서 옛 생각이 나는데 두 개 다 경험해 봤어요.
한번은 일회용 버너로 하기는 저기 진가에서 하다가 갑자기 가스가 안 나와요.
-맞아요.
옛날엔 그런 일이 많았어요. LPG통 교환해서 썼잖아요.
- LPG를 쓰고 있는데요.
가스가 안 나와서 확인해 보니까 전화를 했는데 오는 데 한 3~40분 걸린대요.
근데 손님은 밀려오고 음식을 내야 되고. 그래서 급히 일회용으로 버너를 했는데 아무래도 화력이나
이런 건 좀 덜하지만 그래도 음식은 나옵니다.
나와요. 튀기는 데 좀 열도 가해야 되고 부탄가스 두 개를 넣고 마음은 다급하지만 그래도 나갔어요.
근데 한 손으로 하기는 못 합니다.
-한 손으로는 안 되나요?
-한 손은 얘가 예전에 칼질을 하다가 지금도 상처가 있는데 손을 벴어요.
손을 벴는데 붕대를 감았잖아요. 한 손으로 하면 웍도 못 하고 칼질도 못 하고. 그러니까 옛날에
유명한 외팔이 무술영화도 있지만 그건 되지만 음식은 안 돼.
-알겠습니다.
-그럼 휴대용 버너로 요리하기를 택하신 거고요.
또 다음 질문 뭐가 있습니까?
-다음 질문.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기술 대 좋은 식재료. 하나 둘 셋!
-둘 중에 저는 어느 하나의 것을 꼭 집어서 선택할 수 없는 게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만 좋은 음식이
나온다. 이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럼 기술보다는 식재료다?
-네.
왜냐하면 물론 기술도 겸비를 해야 되지만 혹자는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유명한 셰프들이 설문조사를 했는데 좋은 식재료가 8:2, 좋은 기술이.
-그렇군요.
-그걸 얘기하는데 저도 거기에 공감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좋은 식재료가 9:1이든 8:1이든
7:3이든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지 좋은 음식이 나온다는 걸 터득을 했죠.
-알겠습니다.
기술보다 식재료가 더 위에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한번 가보겠습니다.
15년 동안 군만두 주기 대 15년간 자장면만 주기 중에 어떤 게 더 잔인하다고 느끼냐라고 했는데
15년간 군만두 주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왜 그럴까요? 영화 때문에 그런가요, 혹시?
올드보이 보면 나오잖아요. 최민식 씨가 10년 넘게 군만두만 먹잖아요.
-10년보다도 15년이 더 잔인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사실 반대로 얘기하면 자장면을 덜 한다고 선택을 했잖아요.
자장면은 우리가 딱 먹으면 골고루 영양소가 다 풍부하게 있는 것 같아요.
-양파 이런 것도 많이 들어가고?
-네, 양파는 우리가 일부러 찾아서라도 먹는 재료고.
그다음에 거기 최고 중요한 게 물론 밀가루는 글루텐 성분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면을
조금 먹고 그 장에 들어가는 게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식당 자장면에 들어가는 장이 춘장이잖아요.
일본에는 미소가 있고요. 한국에는 된장 그리고 중식에는 춘장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공통점이 혹시 뭔지 아세요?
-발효식품!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발효식품. 발효식품은 우리가 일부러 찾아서도 먹는데 음식에 그게 들어간다.
이게 금상첨화죠.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꼭 셰프님들, 중식 셰프님들 오시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군만두 서비스는 도대체
얼마부터 주는 겁니까?
이게 너무 가게마다 달라서 줄 때 있고 안 줄 때 있고.
-그냥 기분인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먼저 군만두를 얼마부터 준다
그 얘기부터 하기 전에 예전에 군만두 서비스를 언제부터 줬냐?
-언제부터 주셨어요?
궁금하더라고요.
-유래가 뭐죠?
-근데 옛날에 6~70년대 보면 중식 메뉴판을 보면 자장면이 60원 할 때.
-60원이요?
-네.
-600원도 아니고요.
-아니 60원 할 때 군만두가 120원이었어요.
-군만두가 더 비쌌군요.
-2배로 비쌌었어요.
-2배나 비싸네.
-그때는 왜 비싸냐 하면 다 수제로 집에서 가게에서 식당에서 만두피도 일일이 빚고 만두 속도 하고.
사실 요새는 딲 번호 하나만 누르면 온라인에서 냉동만두가 그 이튿날 오면 되는데 옛날에는 다
수제로 했죠.
그때는 군만두는 서비스로 안 줬어요.
근데 그 후에 냉동만두가 나오면서 가게와 가게 서로 사이에 경쟁이 붙어서.
-역사가 있군요.
-그래서 양장피를 하나 시키면 군만두가 서비스 오고. 어차피 냉동으로 들어오면 단가가 좀 저렴하잖아요.
탕수육 시켜도 군만두 오고. 거기다가 또 식사를 여러 개 시키면 군만두도 오고.
-(같이) 맞아요, 맞아요.
-근데 가격은 얼마인지는
모르겠어요.
-맞아요.
주방장님 마음대로였어요. 근데 오늘 대표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과 지금 계속 반복해
주시는 말이 뭔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많이 해라?
-많이 해라, 아닙니다.
오늘 대표님의 말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은 자기화입니다.
-매뉴얼,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떤 메뉴가 있거나
어떤 방법이 있든 간에 이게 과연 자기화를 어떻게 시키는지에 따라서 이 앞날이 달라진다라는 걸 계속
지속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잘 새겨들으면 좋을 것 같다라는 말씀이어서 한번 좀 짚어서 말씀드렸습니다.
호텔에 입사하시고 나서 중식파트의 총책임자까지 하셨잖아요.
근데 거기까지 되시는 데 시간을 많이 그만큼 투자를 하셨을 것 같은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1982년도 제가 21살 무렵에 P호텔에 입사를 하고 만기 근속 10년을 넘게 하고 차후에 S호텔에
입사를 했습니다, 93년도에. 몇 년 근무 후에 책임자가 됐죠,
주방장이 됐습니다.
-총 걸린 시간은 어느 정도로?
-15년 정도로.
-15년 정도 걸렸군요.
빨리하신 거 아니에요, 진짜?
-그러게요.
-내 거화를 많이 했습니다.
-자기화시켜서.
-역시 또 그게 무기였다.
그렇게 호텔에 근무하실 당시에 또 셰프님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찾는 분들이 많으셨다고 들었거든요.
-어느 노부부가 매 주말마다 호텔을 찾아왔어요.
그것도 한 5~6년 정도.
-매 주말마다 5~6년 정도요.
-그러니까 제 음식을 먹기 위해서 불도장이나 여러 가지 음식, 해삼요리 이렇게.
나중에 그분이 오셔서 가족들도 모시고 파티도 연회도 하고. 그리고 저한테 또 소중한 선물도. 그 당시에
선물을 줬는데 가격이 좀 비싼 건데 그때는 김영란법이 적용이 안 됐죠.
-김영란법 자체가 적용이 안 되지 않나요?
-적용이 안 되죠.
나한테 이득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이득을 위해서 하겠죠. 서비스를 줬으니까.
-공적인 뭔가가 있지는 않아서.
-군만두 정도?
-그런 분도 계셨고 부지기수죠.
참 감사하고 고맙죠.
-기억이 나시는군요.
-네, 노부부가 특히 기억이 납니다.
-그러시군요.
특히 대표님께서 이 플레이팅에 있어서는 중식의 1인자라고 저희가 소문을 좀 들었습니다.
플레이팅에서 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 있습니까?
-사실 음식의 플레이팅은 음식 본연의 가치와 상품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플레이팅을 하는 겁니다.
플레이팅 자체가 예뻐서가 아니라 플레이팅을 함으로써 음식의 가치관, 음식의 품격 이런 걸 높이기 위해서
저는 그거에 대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고.
그걸 하면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금상첨화라 하죠, 음식의 가치. 플레이팅을 중요시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옛말에도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 이런 말도 있듯이 플레이팅은 한 단계 음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화려했던 호텔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창업을 하셨습니다.
창업을 결심하신 이유는 아무래도 자기화시킨 것을 내 걸로 만들어보겠다라는 마음이 생기신 겁니까?.
-맞습니다.
호텔에 오래 근무를 하고 창업을 한 계기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보통 호텔에 가면 돈을
많이 주고 지불을 하고 음식을 먹잖아요.
-그럼요.
-그럼 저는 그 고급진 음식을 좀 대중화된 가격으로 공급을 하고 싶어서.
-그렇군요.
-그게 그중의 하나인데 예를 들어서 호텔에서 쓰는 똑같은 재료, 저도 똑같은 재료를 쓰고 또 호텔에서
근무를 했으니까 적어도 호텔의 음식 맛을 낼 수 있잖아요.
그걸 대중화를 위해서 저렴하게.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들, 고객들이 다 오셔서 먹을 수 있게끔. 그리고
손님과의 소통. 소통도 되게 중요하죠.
그러니까 호텔에 근무하면 아무래도 일하면 매니저가 따로 있고 소통은 좀 어느 정도 덜 하게 되잖아요.
고객과의 직접 소통, 예를 들어서 컴플레인이 났다, 그럼 제가 가서 설명도 해 줄 수 있고. 음식이 좋다
하면 이 음식은 어떻게 어떻게 나왔는지 간단하게 유래도 얘기해 줄 수 있고. 이런 소통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음식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있고.
-맞습니다.
-음식에 대해 서로 피드백해 줄 수도 있고.
-좋습니다.
-또 이런 점도 더 보완해 드릴 수도 있다는 것도 현장에서 느낀다는 거죠.
그게 살아있다라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것도 셰프로서의 그런 건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생각이 들고.
일부의 사람만 즐길 수 있던 음식을 대중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게 널리 퍼트리는 것, 그런 것도 굉장히
좀 중요하게 여기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살이 두툼하고.
-이게 요즘 7미짜리고 이게 조림하는 것보다는 거의 삶아 먹거나 구워서 먹는 편입니다.
이 정도 사이즈는.
-오늘 전복 상태가 너무 좋은데요.
색깔도 진하고 살도 두툼하고 너무 좋습니다.
식재료는 어쩌면 나의 운명? 이거 너무 거창한가요?
그 정도로 최고로 칩니다.
-소통의 측면 이외에도 어쨌든 소속되어 계셨었잖아요.
약간 직장인 셰프로서 계시다가 이제 오너 셰프가 되셨을 때 뭐가 가장 좀 달라졌다 이렇게 느끼셨을까요?
-그건 예를 들어 호텔에 근무할 적에는 일사천리하게 뭐가 하나 오더가 떨어졌다 그러면 다 분야별로 해서
여럿이 했잖아요.
여럿이 동시에 움직이죠. 근데 내가 오너 셰프가 됨으로써 흔히 얘기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야 돼요.
그 강박관념. 누가 도와주는 사람 없어요. 그러니까 흔히 얘기해서 내가 안 움직이면 안 된다, 움직여야
된다 반대로. 그걸 하나하나 일일이 다 해야 되죠.
그런 것도 힘들지만 그걸 내가 타파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고.
-그렇죠.
월급날이 되면 어디에 소속돼 있으면 월급날이 기다려지지만 내가 밖에 나가서 창업을 하면 월급날이 되면
슬슬 불안해지잖아요. 월급을 줘야 되는 입장이니까.
-저는 지금 어떻게 하냐면요.
매월 15일, 말일 기준으로 해서 두 번 월급을 줘요.
미국은 주급을 주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아들 둘한테 월급을 주는데 그 친구들도 돈이 급할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죠.
-예를 들어서 한 달 기다리면 당장 중간 정도에 급한데 어떡해?
그걸 생각해서 미국식 주급은 아니더라도 15일 간격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월급이 아니라 보름급을 주시는군요?
-보름급이죠.
-보름급 2번.
-그럼 자식들도, 자기들이 급히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나중에 쓸 때가 있잖아요, 돈이라는 게.
-그래서 요즘에 창업이나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맞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회사에 있으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있지만 내가 자유롭게 뭔가를, 아까 말씀하셨던
자기화를 시킬 수가 없잖아요.
근데 과감하게 그만두시고 나오셨길래 어떤 노하우가 있으셨는지도 좀 궁금해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저는 사실 처음에 창업할 적에 자신감이 되게 있었어요.
-자신감은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된다.
-그게 없으면 창업을 못 했겠죠.
-시작점이죠, 그게.
-그 이유가 나만의 기술을 갖고 나만의 좋은 식재료를 갖고 이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렇지만 뭐든지 중국말에 뭐냐 하면 내가 계산한 것부터 자기 인생에 안 풀릴 때가 있어요, 내 생각보다.
다 자신감 있으면 다 투자하고 다 돈 벌고 다 가게해서 돈 벌고 이런 건 없잖아요, 사실. 근데 저는
자신감은 충족해서 가게를 창업했는데 창업은 초반에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중간에 무슨 질병이 있고 코로나가 있고 이런 시련을 많이 겪었죠.
누구나 공통적으로 다 겪었지만 저도 많이 겪었지만. 처음에는 자신감 있게.
-그렇군요.
시련은 있지만 시작은 자신감 있게 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낸다면 누구든지 창업은 가능하고.
-시련은 있지만 극복은 할 수 있다.
-극복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딘가에 소속돼 있어서 자기화시켜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사건건 부딪혀야 되는 거잖아요.
내가 이 안에서 뭔가를 새롭게 하려고 하면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과 항상 부딪혀야 되지만.
-지금 말씀하신 게 생각나는 게 호텔에 있을 적에 계절적으로 프로모션을 한다든가 이런 거 하면 내가
메뉴를 이렇게 짜면 서로 매니저가 홍보팀이나 판촉팀이 이렇게 회의를 해요.
그쪽에서 뭐가 이래서 안 된다, 뭐가 이래서 안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디로 간다는, 산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듯이 그게 참 쉽지는 않았어요.
근데 내가 창업을 함으로써 물론 자유롭고 독단적이지만 고객이 좋아하는 거 이것도 많이 생각을 하고
메뉴를 짜지 무조건 내가 메뉴 짠다고 다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죠.
-그걸 많이 감안해서 저도 했죠.
-그렇군요.
창업 후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그런 부분들이라고 봐야 하나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힘드신 적은 없으셨나요?
-저는 약간 포차식으로 운영을 했잖아요.
낮에는 영업을 안 하고 저녁만. 근데 한때는 이런 적이 있었어요.
2인 이상 못 가고 칸막이 하고 9시 이후부터 영업을 못 한다. 근데 저는 4시인가 5시에 오픈을
해서 예를 들어서 잠깐이지만 하루에 두세 테이블 오고 그날은 마무리. 이런 적도 있었죠.
좀 힘들었죠, 경제적으로. 근데 힘들었지만 그 버팀목이 아무래도 가족인 것 같아요.
-가족이 어떻게 힘이 좀 되던가요?
-사랑스러운 와이프하고 두 아들이 듬직하게 많이 좀 도와주고 힘을 많이 북돋아줬죠.
-아드님 두 분이 아버지의 일을 또?
지금 이렇게 되면 3대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라고 봐야 되는 겁니까?
가업을 이어받으신 거네요.
-그러니까 작은아들이 호텔경영조리과를 나왔어요.
-거기 점수 엄청 높은 덴데요?
-그러니까요.
경희대가 또 유명하잖아요.
-작은 놈이 생긴 것도 저랑 많이 판박이인데.
그래서 가게를 오픈 동시에 10년이 넘었죠. 지금까지도 같이 해 오고 있습니다.
-같이 계속 하고 계신 거군요.
-아까 보름급 받으신다는?
-그 친구가 많이 조언도 해 주고 아무래도 전문 지식이 많잖아요.
-또 경영 쪽으로 공부하니까.
-이게 음식이라는 건 문과 무를 겸비해야 해요.
문무를 겸비한다 이거죠.
그러니까 무는 뭐냐 하면 음식 기술 하는 거고 문은 뭐냐 하면 예를 들어서 내가 레시피를 작성한다든가
관리를 한다든가 다 볼펜으로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옛날에 왕이 있으면 양쪽에 신하가 있잖아요. 이쪽은 문관하고 무관이 있어요.
이 두 쪽은 문관, 무관은 양반이라고 그러잖아요.
거기서 내려온 자식들이 다 양반 자식이라고.
-그러니까 제갈량이 있으면 관우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문과 무를 겸비한.
-저는 그래서 문무를 많이 겸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작은아들은 그거에 대해서 많이 조언을 해 줘요, 저한테. 옛날에 그런 말이 있어요.
저는 항상 기억하는 게 불치하문이라고. 불치하문은 뭐냐 하면 아랫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치욕은 아니다,
그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다시 서로 공조를 하고 좋은 것 있으면 도출해 나가고.
-원래는 한의사를 또 꿈꾸셨었는데 등록금 때문에 못 가셨잖아요.
아드님이. 저는 그렇거든요. 제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얘가 방송한다고 그러면 저 못 하게 할 것
같아요. 야, 왜 그런 힘든 길을 가려고 그래?
-내가 아니까.
-이쪽 바닥을 너무 잘 알고 또 이쪽 한다라는 게 쉬운 도전은 아니니까 공부 딴거 해서 다른 것 또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할 텐데. 마찬가지셨을 것 같아요.
아들이 아버지 따라서 요리사, 셰프 된다고 하면 야,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해?
라고 얘기하셨을 텐데 지금 결과적으로 같이 가신단 말이죠.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마음을 좀 졸일 때도 많아요.
제가 많이 겪어왔고 솔직히 말해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해야 되고. 옛날에 설거지하던 시절 밑바닥
청소하던 시절 많이 기억이 있어서 굳이 아들까지 저의 전철을 밟아야 되나. 그렇지만, 그렇지만 고객을
상대로 내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고객에게 기쁨을 주고 그 고객이 먹어서 건강해진다면 이 길도 무한대고
좋은 길이다. 이런 걸 아들한테 심어 주죠.
-철학을 또 심어 주셨군요.
-왜, 너의 음식 하나로 인해서 이 가족이 음식을 먹으면 기쁨을 주고 건강을 주고.
사실 우리는 조리사잖아요. 이런 얘기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저는 요리조리 잘해요. 그래서 요리사하고 조리사.
-안 되겠어요
-그게 뭐냐 하면 아들한테 이런 얘기는 잘 안 하는데.
-좋습니다, 좋습니다.
-근데 음식을 하면 의사들은 아파서 병원 가서.
아플 때 병원 가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근데 저는 요리사잖아요.
똑같이 사 자 들어가는데 아프기 전에 음식을, 영양소를 사실 육해공 영양소를 골고루 고객한테 몸속에,
음식을 식사를 하게 되면 건강하게 아프지도 않고 이렇게 역할을 해 주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죠.
의사는 아픈 분을 만나지만 요리사는 건강한 분에게 더 건강한 음식을 또 제공하고.
-맞습니다.
골고루 영양소를.
-그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좀 셰프로서의 철학이 느껴지는 말씀인 것 같긴 합니다.
아까 잠깐 이야기를 해 봤는데 자식에게도 내가 일하는 이 직업을 같이 일한다라는 것.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같은 생각을 해서 같은 철학으로 나아간다면 좋은 직업일 수 있다라고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요리경연프로그램이 너무 핫하다 보니까 셰프들의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정말 핫하신 셰프님들이
많으시거든요.
확실히 좀 손님들이 이렇게 중식 셰프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든가 모습이 좀 달라졌다는 걸 체감하시나요?
-네, 많이 체감을 하죠.
예를 들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든가 그럴 때도 알아보는 분도 계시고. 또한 업장 내에서 근무할 적에
방송 매체에서 많은 셰프들이 나오고 그 요리사에 대한 그 가치관 그거하고 또 요리사가 단순히 옛날에는
노동과 힘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한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고. 사실 일반 고객분들은
되게 궁금해하세요.
저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요리를 시작을 했나.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연출할 수 있나, 맛있게
해 주나. 우리가 딱 먹어서 똑같은 탕수육인데 어떤 데 가면 탕수육이 나왔어. 딱 첫 번째 먹었는데
벌써 흐물흐물해. 어, 이거 뭐지?
근데 저는 탕수육을 하나 하더라도 딱 해 주면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걸 유지를 해요, 지금도.
-바삭함이요?
-눅눅해지지 않고?
-그러니까 얼마 전에 국영방송 거기 아시는 분이 몇 분이 오셨는데. 물론 한 분은 자주 오시고 나머지 세
분은 초행이세요. 나가면서 튀김옷이 남다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제가 되게 자부심을 좀 느끼고 있어요.
-이분은 뭔지 아시는구나.
-튀김옷이 남다르다, 이런 말을 하시고 감사합니다 하고 가셨는데. 그거 딱 듣고 이 짧은 말이지만 저한테
되게 와닿는 게 있더라고요.
-이게 참, 똑같은 음식인데도 각자의 셰프님이나 각자의 그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고.
튀김의 방식도 다르고 고기의 부위도 다르고. 아까 말씀하셨던 튀김의 어떤 내용도 다르고.
기름을 어떤 기름을 쓰는지도 다르고. 자장면 맛도 다 다르잖아요.
춘장을 뭘 쓰는지도 다르고 재료를 뭘 쓰는지도 다르고.
음식도 진짜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생각이 좀 되어집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음식하는 사람을 뭐라고 표현하나?
지금은 아티스트라고 많이 표현도 해요, 음식도. 왜냐하면 음식도 창의적이니까 내가 창의적이고. 그러니까
온고지신이라고 온고지신 아시잖아요.
옛날 걸 다시 공부해서 이렇게 하는 건데. 우리 같은 경우는 나 같은 경우는 복고풍 요리를 많이.
우리 패션도 의류나 뭐든지 다시 사이클이 있잖아요,
돌아가는 사이클이.
-뉴트로라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음식도 똑같아요. 저는 옛날 음식을 잘 승화시켜서 더 맛있게. 그러니까 춘장을 가미해서는 제가 요리하는
게 장폭팔보채라고 있는데 장은 춘장이고 폭은 순간적으로 볶아내는 솥에 하는 거. 우리가 음식을 볶아낼
적에요.
보통 화력 온도가 300~400도가 돼요, 온도가. 순간적으로 볶아낼 적에 음식 본연의 겉에는 바삭함을
유지하고 속은 육즙이나 채즙 있잖아요.
이걸 유지하게끔 만드는 거예요.
그걸 얼마나 빨리 숙련되게 빨리 볶아내느냐.
-겉에다 코팅을 이렇게 하는 거죠?
-그렇죠.
-지금 말씀을 너무 맛있게 잘해 주셔서 자꾸 머릿속으로 이렇게 상상을.
-탕수육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아까부터. 저도 중식 너무 좋아하고 사실 중화요리라고 하는 게 한국의
중식인 거잖아요.
-맞습니다.
-이게 또 세계적으로도 많이 유명해지고 있는데 중국 본토와 좀 다른 매력 뭐가 있다고 보세요?
-사실 한국에 있는 중식이 세계화가 된 건 너무 많이 퍼져 있어요, 지금요.
외국에 가서도 미국이나 호주나 캐나다 이렇게 보면.
-아메리칸 중식이 있잖아요.
오렌지치킨 이런 거.
-그렇죠, 그렇죠.
-거기에 보면 다 한국에서 널리 퍼져가는 그 가족들이 이주하거나 거기서 장사하는 보편화가 돼 있어요.
근데 반대로 중국의 본토 음식은 좀 달라요.
세계화가 된 건 한국 음식이 그쪽에 가서 먹으면 탕수육, 짜장, 짬뽕 한국식으로 다 하거든요, 다 입맛에.
LA 가거나 샌프란시스코 가거나 이렇게 가고. 호주도 시드니나 마찬가지로. 그게 한국의 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식 중화요리는 혹시 영어로
K-차이니스 푸드라고.
-그러나요?
-제가 만들었습니다.
-방금 만드신 거예요?
-아니 어저께 만들었어요.
-어제 만드셨구나?
오늘 또 녹화를 위해서.
-K-차이니스 푸드.
-앞으로 이걸 좀 대중화를 시켜야 될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자장면 먹었는데 호주 가서 먹었는데 그 맛이 나오는 거예요.
-신기하다.
-저도 대만 가서 먹었는데 대만에도 저 친구들이 중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대만에서 한국식 푸드를 갖다가 여기서 했는데 거기 현지에 맞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맛있대요.
그리고 거기 가서 짬뽕은 중국 초마면에서 유래가 됐는데 초마면은 뭐냐 하면 초는 볶는다. 마는 재료를
얘기하는 거예요.
면은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누들면이고. 근데 중국 가서 초마면을 먹으면 한국에서 만든 것처럼 전혀 안
나와요. 느끼하고 우리가 상상했던 그런 맛이 안 나와요.
-다르죠.
-그래서 국내에서 이렇게 사실 자장면이나 짬뽕이나 한국 사람 기호에 맞게끔 이렇게 만든 건 제가 봐도
우리 선대께서 잘했다고 대단한 발견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 나라의 식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가는 것도 그것도 하나의 문화인 것이고.
-그 시대의 흐름에 안 맞으면 도태가 되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일본의 짬뽕은 사실 하얀 국물이잖아요.
나가사키짬뽕.
-그러네요.
-거기 나가사키짬뽕인데 우리나라는 거기다 고춧가루를 넣어서 같이 볶는 거예요.
-그건 나가서 먹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죄송한데.
-갑자기 추워지네.
-그게 아니라 한 번 넘어갔으면 두 번째 안 해야 되거든요.
두 번째도 하시니까.
-욕심이 좀 있으시네, 개그 욕심이.
-좋습니다.
요리조리 참 좋았어요. 요즘 인기가 엄청나게 많이 상승 중에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나도 중식셰프가
되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을 거고 그 친구들 중에 일부가 또 방송을 많이 보고 계실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분들에게 중식셰프가 되기 위해서 좀 갖춰야 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라는 얘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사실 중식은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많이 배워야 합니다.
-기본이 중요하군요.
-기본부터 처음에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채소 다듬는 거 바닥 쓸기 이런 거.
저는 되게 권하는 게 그 나라의 음식을 알려면 그 나라의 문자를, 언어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요리를 하려면 중국 문자를 먼저 그 뜻을 배워야 됩니다.
-문화를 이해해야 되는 거군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탕수육.
탕수육 하면 원래 당초육이에요. 설탕 당 자에 식초 초 자. 그럼 메뉴만 딱 나오면, 중국 요리는 메뉴가
나오면 벌써 이 안에 음식이 뭐가 어떻게 나오냐 뭐가 재료가 들어가냐 나와 있습니다.
-한자니까요.
-그거 정말 몰랐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탕수육은 한문 발음 그대로 이렇게 탕수육은 바로 나오죠.
원래는 당초육입니다. 설탕하고 식초가 들어가서 고기랑 튀겨서 버무려져 나온 거다.
이런 식으로. 아까 얘기했듯이 장폭팔보채. 딱 보면 흔히 못 알아볼 수도 있지만 쉽게 이해하면 장은
춘장 장. 폭은 순간적으로 솥에 볶는다. 팔보채는 8가지의 진귀한 재료를 넣는다,
이런 뜻으로. 그러니까 그 나라의 문자를, 글을 알아야지만 그래서 젊은 친구들한테 그런 걸 먼저.
체계적으로 중식을 잘 이해를 하고 배워야 되고 또 문자를 알아야 된다.
거기에 대해서 또 온고지신이라고 옛날 걸 많이 배워가면서 자기 걸 또 새롭게 만드는. 그런 걸 되게
강조를 하고 싶죠.
-좋은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 나라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그 나라의 음식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문화를 이해하고 음식을 만들되
온고지신, 그 옛날의 음식을 자기화시켜서 요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내는 것.
그것이 요즘의 중식셰프들이 해야 될 일이다.
문화 말고 요리할 때는 어떤 지점들을 한번 우리 꿈꾸는 친구들에게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식을 할 때는 내가 이걸 진정성 있게.
진정성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내가 꼭 이걸 진짜 열심히 해서 배워서 내 걸로 만들겠다는 이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지만 음식이 제대로 나오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기화를 시켜야지만 또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할 때 단순히 나는 이걸로 돈을 벌어야지 이런 게 아니라 진정성 있게 음식에 문화를 담고
마음을 담아서.
-사실 돈이라는 건 알다시피 내가 쫓아가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쫓아오게끔 만들어야 하지.
그러니까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자기가 노력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다 자기한테 온다는 그 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많이들 간과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를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대표님께서 꿈꾸시는 최종목표, 계획 같은 게 좀 있을까요?
-최종목표는 중식을 예전에는 우리가 짜장, 짬뽕, 탕수육에 이렇게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중식을 갖다가
더 널리 퍼트려 줄 수 있는 그것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그러니까 음식을 진정성 있게 좋은 식재료를 갖다가 고객들한테 맛깔스럽게 제공하는 게 최고의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은 분들에게 먹여드리게 하는 것, 먹게 만드는 것.
-드시게.
-먹여드리게라고 했나요, 제가?
그 정도로 정성스럽게. 먹여드리게 하는 것.
-먹여주는 건가요?
-먹여주는 거였어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에게 있어서 굉장히 저는 대표님이 철학적이다라고 대표님의 철학이 묻어나는 대화였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철학이 이 말에도 나올 것 같은데. 중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식이라는 것은 희로애락.
-희로애락.
대표님에게 있어서 중식이란 희로애락이다.
-기쁠 때는 고객이 그 음식을 먹었을 적에 한없이 만족감을 느꼈을 때 기쁘죠.
화날 적에는 내가 진짜 이 음식을 정성스럽게 했는데 내가 생각한 게 안 나왔어.
진짜 화납니다. 그 화나는 건 진짜 내가 성질나서 화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좌절감 때문에 화난 거지 진짜
나빠서 화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슬플 때도 많은데 내가 음식을 참 많이 준비를 했는데 좋게 준비했는데 고객들이 많이 안 왔을
적에 진짜로 슬프죠.
기쁠 때도 있고 하여튼 슬플 때도 있지만 인생의 음식은 희로애락이라고 이렇게 정의를 표하겠습니다.
-대표님에게 있어서 중식은 희로애락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음식이라는 게 누구한테는 당장 입에 들어가는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대표님에게 있어서 음식은 하나의 문화고 하나의 철학이 녹아든 하나의 예술품이다라고 생각이 되는 게
대표님의 오늘 내공을 좀 느낀 시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수없이 반복한 연습과 실패를 견뎌낸 시간 그리고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세월이 쌓여서 오늘의 대표님을
만드신 게 아닐까. 한국 중식계의 한 장인으로 만드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귀한 얘기 들려주셔서 다시 한번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드리고요.
앞으로도 그 깊은 내공이 담긴 요리로 많은 분들의 식탁을 행복하게 채워주시길 기대해 보겠고.
저도 곧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꼭 가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같이) 고맙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신아림입니다.
-신아림 아나운서.
-우리 중식을 소개할 때 4대 문파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잖아요.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들었는데 중식의 4대 문파 과연 어떤 연유에서 4대 문파가 생겨난 건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 궁금증이 좀 풀릴 수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맞습니다.
오늘 모셔볼 분은 이연복, 여경래, 유방녕 셰프와 함께 우리 중식 4대 문파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진생용 대표 모시고 오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먼저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담백하게 하는 셰프 진생용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셰프님 저희가 앞서 4대 문파라는 이야기로 문을 열어봤는데 정말 중식에 이 4대 문파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요?
-4대 문파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는 않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7~80년대에 신라호텔 팔선, 홍보각, 아서원, 호화대반점 이 네 개의 셰프들,
대표하는 셰프들이 흔히 방송 매체에서 그걸 아무래도 좀 업되게 하기 위해서 그 이름을 지어준
겁니다.
-그렇군요.
서울 3대 떡볶이, 5대 김밥 이런 식으로 만든 게 4대 문파라는 거군요.
-방송 시청률도 올리고 그런 것도 좀 가미가 돼 있죠.
-그런 네이밍이 사실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4대 문파라는 의미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고.이 4대 문파라는 게 존재하는
만큼 이런 표현이 요리사분들의 진심이고 열정적인 중식 요리사분들이다라고 생각이 되어져요.
대표님께는 언제 처음으로 요리를 하셨는지가 처음부터 궁금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뜻한 바 있어서 한의대를 가기 직전에 고등학교 졸업 후에 시작을
했습니다.
-그럼 한의학을 원래 전공을 하고 싶으셨다가 요리사로 바꾸신 겁니까?
-실질적으로 합격을 했어요.
했는데 태어날 적에는 집안이 좀 부유한 편이고 그 시점에서 아버지 사업이 좀 안 되셔서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대학 진학을 포기를 했죠.
-그럼 아까 셰프님이 또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셨다고 했잖아요.
아버님께서 영월군에서 되게 유명한 중식당을 운영하셨다고?
-맞습니다.
-그게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님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군 출신이었습니다, 원래.
-중국에서 군인을 하셨고.
-근데 중국에 양대 군이 있는데 그중에 어느 편은 얘기 안 하고 군 출신, 장교 출신인데 전쟁이
막 끝날 무렵에 한국으로 이주를 해 오신 거죠.
한국으로 이주를 해서 나중에 전쟁을 겪으면서 50년대 후반 강원도 영월로 정착을 하셨습니다.
근데 정착을 한 후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최고로 큰 중식당과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설립한 이유가 화교분들은, 자녀분들은 따로 특별한 학교가 없잖아요.
중고등학교는 서울에 있지만. 그래서 학교를 설립한 후에 그 지역에 있는 학생들은 다 저희
집에서 공부를 했죠.
형편상 한의학과를 포기하시더라도 다른 인생의 갈림길들이 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중식
요리사의 길을 가시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셨다고 봐야 되나요?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죠.
근데 한의학을 포기하고 인생에서 막 절망감이 있을 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공부한 바 또
한의학을 다시 하고 싶어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계기는 뭐냐 하면 1년만 내가 돈을 벌어서 월급 타면 돈을 벌어서 학교를 가야겠다.
근데 그 1년이 사실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그 1년이라는 시간만 돈을 열심히 벌어서 학비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다른 선택을
하셔서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오신 거군요.
-맞습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그 직장이 식당이었던 거고.
-그 직장이 사실 지금은 명동의 소재지에 있는. 유명한 식당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일반 레스토랑인데 직원 수도 많고 그래서 소개를 받아서 취업을 했죠.
-그럼 거기서 일하셨을 당시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사실 주방에 처음 들어가면 무거운 것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처음에 가면 허드렛일을 많이
하잖아요.
바닥 청소나 처음 들어가면 큰 솥에 면을 삶는다거나 식자재를 옮긴다든가 이런 일을 많이
했는데. 거기서 두 달 정도를 근무할 당시에 사실 예전에는 그랬어요.
주방장과 주방장 사이에 그러니까 아는 지인이 와서 저 친구가 괜찮다 그러면 나한테, 내가
일하는데 좀 스카우트할게. 그러면 이제 가는 거예요.
자기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저 역시 두 달 만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죠.
받았는데 그 당시에 제가 월급을 8만 원을 받았는데 16만 원을 주고 스카우트를 갔습니다.
-2배로 주고요?
-네, 2배로.
그 당시에 80년도니까 8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16만 원을 주고 이직을 한 거죠.
-아무래도 좀 고된 일이고 도제 방식이잖아요.
결국 사람에게 사람이 전수해 주는 일이다 보니까 그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도 굉장히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요.
그리고 또 사람에게 배우는 거다 보니 잘 못 배우면 많이 혼도 나고.
-네, 그건 맞습니다.
-그런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전에는 저 처음 직장 들어갔을 때 생각나는 게 만두를 직접 빚어요, 군만두 같은 거. 지금은
냉동만두 들어가서 다 이렇게 하는데.
-손으로 다 빚어요?
-네, 만두를 빚는데.
-이런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되게 맛있었겠네요.
-만두를 빚으려면 처음에 반죽을 하고 그 반죽을 동그랗게 하나씩 잘라서 만두피를 하는데 저는
어렸을 적에 집에서 아버님이나 어머님 했을 적에 그걸 많이 해 봤기 때문에 만두피를 하는 데
보통 피를 하는 데 4명이 해서 이렇게 싸는데도 피가 남아돌아요, 그 정도로.
속도를 해 봤기 때문에 저는. 그래서 선배들의 눈에 많이 좀 띄었죠.
-근데 말씀을 종합해서 들어보면 나는 잘했기 때문에 안 혼났다라고 들리거든요.
-그 말 아닌가요?
-좀 덜 혼났죠.
-덜 혼났다.
-아무래도.
혼나지는 않아요. 선배들이 좀 엄격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당시에는 집안에도 그렇고
가부장적이잖아요.
집안에서도. 옛날에는 나 아니면 안 돼. 너는 꼭 이거 해야 돼.
내가 최고야 이런 식으로 되는데. 아까 얘기했던 거 다 수직적이잖아요.
-맞아요.
-그런 게 많이 있죠.
-알겠습니다.
결국 당시 최고의 중식당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P호텔로 입사를 하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곳에 입사를 한 뒤에 평생 요리를 해야겠다라고 결심하시게 됐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제가 1982년도 21살의 나이에 그 어려운 P호텔에 입사를 하게 됐는데.
-재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감각이 다르셨던 거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까. 입사를 한 후에 본격적으로 내가 이 음식을 해야 되겠다는 건 뭐냐 하면
체계적으로 다 갖춰져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음식 하나라도 레시피가 다 있고. 그다음에 그 좋은 식재료, 접해 보면 좋은
식재료로. 그러니까 일반 식당이 짜장, 짬뽕, 탕수육이지만 여기는 코스로 다 이렇게 뭐든지.
체계적인 식자재. 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해서 뭘 해야 되겠다, 이게 다 매뉴얼이죠.
-매뉴얼화돼 있고.
-다 갖춰져 있는 게 그게 저한테는 너무나 와닿고 또 어떻게 보면 이걸 내 걸로 만들어야 되겠다,
뭐든지. 내 걸로 만들어야지만 나중에 내가 활용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많이 접해져 있죠.
-알겠습니다.
호텔 중식당에서 접한 정통중식은 또 매력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일반 식당에서 만나는 중식과 호텔 중식과는 완벽하게 차이가 있잖아요?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코스요리가 나온다거나 이런 걸 사실 일반 중식점에선 접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자장면, 짬뽕 이렇게만.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자연산 해삼이나 전복, 동충하초, 제비집. 이런 고급 식재료를 가지고
변화무쌍하게 요리를 한다든가 그런 게 저한테는 되게 많이 그 당시에는 와닿고 그랬습니다.
-중화요리 하면 사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잖아요.
옛날에 졸업식 날 무슨 입학식 날, 이사하는 날 그때는 항상 자장면을 먹었던 기억도 있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서 알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준비한 게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 밸런스 게임인데요. 이 게임에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습니다.
그냥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바로 선택해 주시면 돼요.
그럼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둘 중 더 잔인하다고 느끼는 것은?
15년간 군만두만 주기 대 15년간 자장면만 주기.
-저는 더 잔인하다는 걸 1번으로 하겠습니다.
-(같이) 군만두만 주기.
-잠시 후에 이유를 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두 번째 질문드리겠습니다. 요리하기에 더 어려운 것은?
휴대용 버너로 요리하기 대 한 손으로만 요리하기.
-저는 이걸 지금 질문을 듣고 나서 옛 생각이 나는데 두 개 다 경험해 봤어요.
한번은 일회용 버너로 하기는 저기 진가에서 하다가 갑자기 가스가 안 나와요.
-맞아요.
옛날엔 그런 일이 많았어요. LPG통 교환해서 썼잖아요.
- LPG를 쓰고 있는데요.
가스가 안 나와서 확인해 보니까 전화를 했는데 오는 데 한 3~40분 걸린대요.
근데 손님은 밀려오고 음식을 내야 되고. 그래서 급히 일회용으로 버너를 했는데 아무래도 화력이나
이런 건 좀 덜하지만 그래도 음식은 나옵니다.
나와요. 튀기는 데 좀 열도 가해야 되고 부탄가스 두 개를 넣고 마음은 다급하지만 그래도 나갔어요.
근데 한 손으로 하기는 못 합니다.
-한 손으로는 안 되나요?
-한 손은 얘가 예전에 칼질을 하다가 지금도 상처가 있는데 손을 벴어요.
손을 벴는데 붕대를 감았잖아요. 한 손으로 하면 웍도 못 하고 칼질도 못 하고. 그러니까 옛날에
유명한 외팔이 무술영화도 있지만 그건 되지만 음식은 안 돼.
-알겠습니다.
-그럼 휴대용 버너로 요리하기를 택하신 거고요.
또 다음 질문 뭐가 있습니까?
-다음 질문.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기술 대 좋은 식재료. 하나 둘 셋!
-둘 중에 저는 어느 하나의 것을 꼭 집어서 선택할 수 없는 게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만 좋은 음식이
나온다. 이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럼 기술보다는 식재료다?
-네.
왜냐하면 물론 기술도 겸비를 해야 되지만 혹자는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유명한 셰프들이 설문조사를 했는데 좋은 식재료가 8:2, 좋은 기술이.
-그렇군요.
-그걸 얘기하는데 저도 거기에 공감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좋은 식재료가 9:1이든 8:1이든
7:3이든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지 좋은 음식이 나온다는 걸 터득을 했죠.
-알겠습니다.
기술보다 식재료가 더 위에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한번 가보겠습니다.
15년 동안 군만두 주기 대 15년간 자장면만 주기 중에 어떤 게 더 잔인하다고 느끼냐라고 했는데
15년간 군만두 주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왜 그럴까요? 영화 때문에 그런가요, 혹시?
올드보이 보면 나오잖아요. 최민식 씨가 10년 넘게 군만두만 먹잖아요.
-10년보다도 15년이 더 잔인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사실 반대로 얘기하면 자장면을 덜 한다고 선택을 했잖아요.
자장면은 우리가 딱 먹으면 골고루 영양소가 다 풍부하게 있는 것 같아요.
-양파 이런 것도 많이 들어가고?
-네, 양파는 우리가 일부러 찾아서라도 먹는 재료고.
그다음에 거기 최고 중요한 게 물론 밀가루는 글루텐 성분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면을
조금 먹고 그 장에 들어가는 게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식당 자장면에 들어가는 장이 춘장이잖아요.
일본에는 미소가 있고요. 한국에는 된장 그리고 중식에는 춘장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공통점이 혹시 뭔지 아세요?
-발효식품!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발효식품. 발효식품은 우리가 일부러 찾아서도 먹는데 음식에 그게 들어간다.
이게 금상첨화죠.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꼭 셰프님들, 중식 셰프님들 오시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군만두 서비스는 도대체
얼마부터 주는 겁니까?
이게 너무 가게마다 달라서 줄 때 있고 안 줄 때 있고.
-그냥 기분인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먼저 군만두를 얼마부터 준다
그 얘기부터 하기 전에 예전에 군만두 서비스를 언제부터 줬냐?
-언제부터 주셨어요?
궁금하더라고요.
-유래가 뭐죠?
-근데 옛날에 6~70년대 보면 중식 메뉴판을 보면 자장면이 60원 할 때.
-60원이요?
-네.
-600원도 아니고요.
-아니 60원 할 때 군만두가 120원이었어요.
-군만두가 더 비쌌군요.
-2배로 비쌌었어요.
-2배나 비싸네.
-그때는 왜 비싸냐 하면 다 수제로 집에서 가게에서 식당에서 만두피도 일일이 빚고 만두 속도 하고.
사실 요새는 딲 번호 하나만 누르면 온라인에서 냉동만두가 그 이튿날 오면 되는데 옛날에는 다
수제로 했죠.
그때는 군만두는 서비스로 안 줬어요.
근데 그 후에 냉동만두가 나오면서 가게와 가게 서로 사이에 경쟁이 붙어서.
-역사가 있군요.
-그래서 양장피를 하나 시키면 군만두가 서비스 오고. 어차피 냉동으로 들어오면 단가가 좀 저렴하잖아요.
탕수육 시켜도 군만두 오고. 거기다가 또 식사를 여러 개 시키면 군만두도 오고.
-(같이) 맞아요, 맞아요.
-근데 가격은 얼마인지는
모르겠어요.
-맞아요.
주방장님 마음대로였어요. 근데 오늘 대표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과 지금 계속 반복해
주시는 말이 뭔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많이 해라?
-많이 해라, 아닙니다.
오늘 대표님의 말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은 자기화입니다.
-매뉴얼,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떤 메뉴가 있거나
어떤 방법이 있든 간에 이게 과연 자기화를 어떻게 시키는지에 따라서 이 앞날이 달라진다라는 걸 계속
지속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잘 새겨들으면 좋을 것 같다라는 말씀이어서 한번 좀 짚어서 말씀드렸습니다.
호텔에 입사하시고 나서 중식파트의 총책임자까지 하셨잖아요.
근데 거기까지 되시는 데 시간을 많이 그만큼 투자를 하셨을 것 같은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1982년도 제가 21살 무렵에 P호텔에 입사를 하고 만기 근속 10년을 넘게 하고 차후에 S호텔에
입사를 했습니다, 93년도에. 몇 년 근무 후에 책임자가 됐죠,
주방장이 됐습니다.
-총 걸린 시간은 어느 정도로?
-15년 정도로.
-15년 정도 걸렸군요.
빨리하신 거 아니에요, 진짜?
-그러게요.
-내 거화를 많이 했습니다.
-자기화시켜서.
-역시 또 그게 무기였다.
그렇게 호텔에 근무하실 당시에 또 셰프님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찾는 분들이 많으셨다고 들었거든요.
-어느 노부부가 매 주말마다 호텔을 찾아왔어요.
그것도 한 5~6년 정도.
-매 주말마다 5~6년 정도요.
-그러니까 제 음식을 먹기 위해서 불도장이나 여러 가지 음식, 해삼요리 이렇게.
나중에 그분이 오셔서 가족들도 모시고 파티도 연회도 하고. 그리고 저한테 또 소중한 선물도. 그 당시에
선물을 줬는데 가격이 좀 비싼 건데 그때는 김영란법이 적용이 안 됐죠.
-김영란법 자체가 적용이 안 되지 않나요?
-적용이 안 되죠.
나한테 이득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이득을 위해서 하겠죠. 서비스를 줬으니까.
-공적인 뭔가가 있지는 않아서.
-군만두 정도?
-그런 분도 계셨고 부지기수죠.
참 감사하고 고맙죠.
-기억이 나시는군요.
-네, 노부부가 특히 기억이 납니다.
-그러시군요.
특히 대표님께서 이 플레이팅에 있어서는 중식의 1인자라고 저희가 소문을 좀 들었습니다.
플레이팅에서 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 있습니까?
-사실 음식의 플레이팅은 음식 본연의 가치와 상품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플레이팅을 하는 겁니다.
플레이팅 자체가 예뻐서가 아니라 플레이팅을 함으로써 음식의 가치관, 음식의 품격 이런 걸 높이기 위해서
저는 그거에 대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고.
그걸 하면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금상첨화라 하죠, 음식의 가치. 플레이팅을 중요시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옛말에도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 이런 말도 있듯이 플레이팅은 한 단계 음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화려했던 호텔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창업을 하셨습니다.
창업을 결심하신 이유는 아무래도 자기화시킨 것을 내 걸로 만들어보겠다라는 마음이 생기신 겁니까?.
-맞습니다.
호텔에 오래 근무를 하고 창업을 한 계기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보통 호텔에 가면 돈을
많이 주고 지불을 하고 음식을 먹잖아요.
-그럼요.
-그럼 저는 그 고급진 음식을 좀 대중화된 가격으로 공급을 하고 싶어서.
-그렇군요.
-그게 그중의 하나인데 예를 들어서 호텔에서 쓰는 똑같은 재료, 저도 똑같은 재료를 쓰고 또 호텔에서
근무를 했으니까 적어도 호텔의 음식 맛을 낼 수 있잖아요.
그걸 대중화를 위해서 저렴하게.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들, 고객들이 다 오셔서 먹을 수 있게끔. 그리고
손님과의 소통. 소통도 되게 중요하죠.
그러니까 호텔에 근무하면 아무래도 일하면 매니저가 따로 있고 소통은 좀 어느 정도 덜 하게 되잖아요.
고객과의 직접 소통, 예를 들어서 컴플레인이 났다, 그럼 제가 가서 설명도 해 줄 수 있고. 음식이 좋다
하면 이 음식은 어떻게 어떻게 나왔는지 간단하게 유래도 얘기해 줄 수 있고. 이런 소통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음식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있고.
-맞습니다.
-음식에 대해 서로 피드백해 줄 수도 있고.
-좋습니다.
-또 이런 점도 더 보완해 드릴 수도 있다는 것도 현장에서 느낀다는 거죠.
그게 살아있다라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것도 셰프로서의 그런 건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생각이 들고.
일부의 사람만 즐길 수 있던 음식을 대중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게 널리 퍼트리는 것, 그런 것도 굉장히
좀 중요하게 여기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살이 두툼하고.
-이게 요즘 7미짜리고 이게 조림하는 것보다는 거의 삶아 먹거나 구워서 먹는 편입니다.
이 정도 사이즈는.
-오늘 전복 상태가 너무 좋은데요.
색깔도 진하고 살도 두툼하고 너무 좋습니다.
식재료는 어쩌면 나의 운명? 이거 너무 거창한가요?
그 정도로 최고로 칩니다.
-소통의 측면 이외에도 어쨌든 소속되어 계셨었잖아요.
약간 직장인 셰프로서 계시다가 이제 오너 셰프가 되셨을 때 뭐가 가장 좀 달라졌다 이렇게 느끼셨을까요?
-그건 예를 들어 호텔에 근무할 적에는 일사천리하게 뭐가 하나 오더가 떨어졌다 그러면 다 분야별로 해서
여럿이 했잖아요.
여럿이 동시에 움직이죠. 근데 내가 오너 셰프가 됨으로써 흔히 얘기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야 돼요.
그 강박관념. 누가 도와주는 사람 없어요. 그러니까 흔히 얘기해서 내가 안 움직이면 안 된다, 움직여야
된다 반대로. 그걸 하나하나 일일이 다 해야 되죠.
그런 것도 힘들지만 그걸 내가 타파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고.
-그렇죠.
월급날이 되면 어디에 소속돼 있으면 월급날이 기다려지지만 내가 밖에 나가서 창업을 하면 월급날이 되면
슬슬 불안해지잖아요. 월급을 줘야 되는 입장이니까.
-저는 지금 어떻게 하냐면요.
매월 15일, 말일 기준으로 해서 두 번 월급을 줘요.
미국은 주급을 주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아들 둘한테 월급을 주는데 그 친구들도 돈이 급할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죠.
-예를 들어서 한 달 기다리면 당장 중간 정도에 급한데 어떡해?
그걸 생각해서 미국식 주급은 아니더라도 15일 간격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월급이 아니라 보름급을 주시는군요?
-보름급이죠.
-보름급 2번.
-그럼 자식들도, 자기들이 급히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나중에 쓸 때가 있잖아요, 돈이라는 게.
-그래서 요즘에 창업이나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맞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회사에 있으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있지만 내가 자유롭게 뭔가를, 아까 말씀하셨던
자기화를 시킬 수가 없잖아요.
근데 과감하게 그만두시고 나오셨길래 어떤 노하우가 있으셨는지도 좀 궁금해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저는 사실 처음에 창업할 적에 자신감이 되게 있었어요.
-자신감은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된다.
-그게 없으면 창업을 못 했겠죠.
-시작점이죠, 그게.
-그 이유가 나만의 기술을 갖고 나만의 좋은 식재료를 갖고 이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렇지만 뭐든지 중국말에 뭐냐 하면 내가 계산한 것부터 자기 인생에 안 풀릴 때가 있어요, 내 생각보다.
다 자신감 있으면 다 투자하고 다 돈 벌고 다 가게해서 돈 벌고 이런 건 없잖아요, 사실. 근데 저는
자신감은 충족해서 가게를 창업했는데 창업은 초반에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중간에 무슨 질병이 있고 코로나가 있고 이런 시련을 많이 겪었죠.
누구나 공통적으로 다 겪었지만 저도 많이 겪었지만. 처음에는 자신감 있게.
-그렇군요.
시련은 있지만 시작은 자신감 있게 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낸다면 누구든지 창업은 가능하고.
-시련은 있지만 극복은 할 수 있다.
-극복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딘가에 소속돼 있어서 자기화시켜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사건건 부딪혀야 되는 거잖아요.
내가 이 안에서 뭔가를 새롭게 하려고 하면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과 항상 부딪혀야 되지만.
-지금 말씀하신 게 생각나는 게 호텔에 있을 적에 계절적으로 프로모션을 한다든가 이런 거 하면 내가
메뉴를 이렇게 짜면 서로 매니저가 홍보팀이나 판촉팀이 이렇게 회의를 해요.
그쪽에서 뭐가 이래서 안 된다, 뭐가 이래서 안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디로 간다는, 산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듯이 그게 참 쉽지는 않았어요.
근데 내가 창업을 함으로써 물론 자유롭고 독단적이지만 고객이 좋아하는 거 이것도 많이 생각을 하고
메뉴를 짜지 무조건 내가 메뉴 짠다고 다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죠.
-그걸 많이 감안해서 저도 했죠.
-그렇군요.
창업 후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그런 부분들이라고 봐야 하나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힘드신 적은 없으셨나요?
-저는 약간 포차식으로 운영을 했잖아요.
낮에는 영업을 안 하고 저녁만. 근데 한때는 이런 적이 있었어요.
2인 이상 못 가고 칸막이 하고 9시 이후부터 영업을 못 한다. 근데 저는 4시인가 5시에 오픈을
해서 예를 들어서 잠깐이지만 하루에 두세 테이블 오고 그날은 마무리. 이런 적도 있었죠.
좀 힘들었죠, 경제적으로. 근데 힘들었지만 그 버팀목이 아무래도 가족인 것 같아요.
-가족이 어떻게 힘이 좀 되던가요?
-사랑스러운 와이프하고 두 아들이 듬직하게 많이 좀 도와주고 힘을 많이 북돋아줬죠.
-아드님 두 분이 아버지의 일을 또?
지금 이렇게 되면 3대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라고 봐야 되는 겁니까?
가업을 이어받으신 거네요.
-그러니까 작은아들이 호텔경영조리과를 나왔어요.
-거기 점수 엄청 높은 덴데요?
-그러니까요.
경희대가 또 유명하잖아요.
-작은 놈이 생긴 것도 저랑 많이 판박이인데.
그래서 가게를 오픈 동시에 10년이 넘었죠. 지금까지도 같이 해 오고 있습니다.
-같이 계속 하고 계신 거군요.
-아까 보름급 받으신다는?
-그 친구가 많이 조언도 해 주고 아무래도 전문 지식이 많잖아요.
-또 경영 쪽으로 공부하니까.
-이게 음식이라는 건 문과 무를 겸비해야 해요.
문무를 겸비한다 이거죠.
그러니까 무는 뭐냐 하면 음식 기술 하는 거고 문은 뭐냐 하면 예를 들어서 내가 레시피를 작성한다든가
관리를 한다든가 다 볼펜으로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옛날에 왕이 있으면 양쪽에 신하가 있잖아요. 이쪽은 문관하고 무관이 있어요.
이 두 쪽은 문관, 무관은 양반이라고 그러잖아요.
거기서 내려온 자식들이 다 양반 자식이라고.
-그러니까 제갈량이 있으면 관우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문과 무를 겸비한.
-저는 그래서 문무를 많이 겸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작은아들은 그거에 대해서 많이 조언을 해 줘요, 저한테. 옛날에 그런 말이 있어요.
저는 항상 기억하는 게 불치하문이라고. 불치하문은 뭐냐 하면 아랫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치욕은 아니다,
그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다시 서로 공조를 하고 좋은 것 있으면 도출해 나가고.
-원래는 한의사를 또 꿈꾸셨었는데 등록금 때문에 못 가셨잖아요.
아드님이. 저는 그렇거든요. 제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얘가 방송한다고 그러면 저 못 하게 할 것
같아요. 야, 왜 그런 힘든 길을 가려고 그래?
-내가 아니까.
-이쪽 바닥을 너무 잘 알고 또 이쪽 한다라는 게 쉬운 도전은 아니니까 공부 딴거 해서 다른 것 또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할 텐데. 마찬가지셨을 것 같아요.
아들이 아버지 따라서 요리사, 셰프 된다고 하면 야,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해?
라고 얘기하셨을 텐데 지금 결과적으로 같이 가신단 말이죠.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마음을 좀 졸일 때도 많아요.
제가 많이 겪어왔고 솔직히 말해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해야 되고. 옛날에 설거지하던 시절 밑바닥
청소하던 시절 많이 기억이 있어서 굳이 아들까지 저의 전철을 밟아야 되나. 그렇지만, 그렇지만 고객을
상대로 내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고객에게 기쁨을 주고 그 고객이 먹어서 건강해진다면 이 길도 무한대고
좋은 길이다. 이런 걸 아들한테 심어 주죠.
-철학을 또 심어 주셨군요.
-왜, 너의 음식 하나로 인해서 이 가족이 음식을 먹으면 기쁨을 주고 건강을 주고.
사실 우리는 조리사잖아요. 이런 얘기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저는 요리조리 잘해요. 그래서 요리사하고 조리사.
-안 되겠어요
-그게 뭐냐 하면 아들한테 이런 얘기는 잘 안 하는데.
-좋습니다, 좋습니다.
-근데 음식을 하면 의사들은 아파서 병원 가서.
아플 때 병원 가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근데 저는 요리사잖아요.
똑같이 사 자 들어가는데 아프기 전에 음식을, 영양소를 사실 육해공 영양소를 골고루 고객한테 몸속에,
음식을 식사를 하게 되면 건강하게 아프지도 않고 이렇게 역할을 해 주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죠.
의사는 아픈 분을 만나지만 요리사는 건강한 분에게 더 건강한 음식을 또 제공하고.
-맞습니다.
골고루 영양소를.
-그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좀 셰프로서의 철학이 느껴지는 말씀인 것 같긴 합니다.
아까 잠깐 이야기를 해 봤는데 자식에게도 내가 일하는 이 직업을 같이 일한다라는 것.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같은 생각을 해서 같은 철학으로 나아간다면 좋은 직업일 수 있다라고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요리경연프로그램이 너무 핫하다 보니까 셰프들의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정말 핫하신 셰프님들이
많으시거든요.
확실히 좀 손님들이 이렇게 중식 셰프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든가 모습이 좀 달라졌다는 걸 체감하시나요?
-네, 많이 체감을 하죠.
예를 들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든가 그럴 때도 알아보는 분도 계시고. 또한 업장 내에서 근무할 적에
방송 매체에서 많은 셰프들이 나오고 그 요리사에 대한 그 가치관 그거하고 또 요리사가 단순히 옛날에는
노동과 힘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한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고. 사실 일반 고객분들은
되게 궁금해하세요.
저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요리를 시작을 했나.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연출할 수 있나, 맛있게
해 주나. 우리가 딱 먹어서 똑같은 탕수육인데 어떤 데 가면 탕수육이 나왔어. 딱 첫 번째 먹었는데
벌써 흐물흐물해. 어, 이거 뭐지?
근데 저는 탕수육을 하나 하더라도 딱 해 주면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걸 유지를 해요, 지금도.
-바삭함이요?
-눅눅해지지 않고?
-그러니까 얼마 전에 국영방송 거기 아시는 분이 몇 분이 오셨는데. 물론 한 분은 자주 오시고 나머지 세
분은 초행이세요. 나가면서 튀김옷이 남다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제가 되게 자부심을 좀 느끼고 있어요.
-이분은 뭔지 아시는구나.
-튀김옷이 남다르다, 이런 말을 하시고 감사합니다 하고 가셨는데. 그거 딱 듣고 이 짧은 말이지만 저한테
되게 와닿는 게 있더라고요.
-이게 참, 똑같은 음식인데도 각자의 셰프님이나 각자의 그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고.
튀김의 방식도 다르고 고기의 부위도 다르고. 아까 말씀하셨던 튀김의 어떤 내용도 다르고.
기름을 어떤 기름을 쓰는지도 다르고. 자장면 맛도 다 다르잖아요.
춘장을 뭘 쓰는지도 다르고 재료를 뭘 쓰는지도 다르고.
음식도 진짜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생각이 좀 되어집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음식하는 사람을 뭐라고 표현하나?
지금은 아티스트라고 많이 표현도 해요, 음식도. 왜냐하면 음식도 창의적이니까 내가 창의적이고. 그러니까
온고지신이라고 온고지신 아시잖아요.
옛날 걸 다시 공부해서 이렇게 하는 건데. 우리 같은 경우는 나 같은 경우는 복고풍 요리를 많이.
우리 패션도 의류나 뭐든지 다시 사이클이 있잖아요,
돌아가는 사이클이.
-뉴트로라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음식도 똑같아요. 저는 옛날 음식을 잘 승화시켜서 더 맛있게. 그러니까 춘장을 가미해서는 제가 요리하는
게 장폭팔보채라고 있는데 장은 춘장이고 폭은 순간적으로 볶아내는 솥에 하는 거. 우리가 음식을 볶아낼
적에요.
보통 화력 온도가 300~400도가 돼요, 온도가. 순간적으로 볶아낼 적에 음식 본연의 겉에는 바삭함을
유지하고 속은 육즙이나 채즙 있잖아요.
이걸 유지하게끔 만드는 거예요.
그걸 얼마나 빨리 숙련되게 빨리 볶아내느냐.
-겉에다 코팅을 이렇게 하는 거죠?
-그렇죠.
-지금 말씀을 너무 맛있게 잘해 주셔서 자꾸 머릿속으로 이렇게 상상을.
-탕수육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아까부터. 저도 중식 너무 좋아하고 사실 중화요리라고 하는 게 한국의
중식인 거잖아요.
-맞습니다.
-이게 또 세계적으로도 많이 유명해지고 있는데 중국 본토와 좀 다른 매력 뭐가 있다고 보세요?
-사실 한국에 있는 중식이 세계화가 된 건 너무 많이 퍼져 있어요, 지금요.
외국에 가서도 미국이나 호주나 캐나다 이렇게 보면.
-아메리칸 중식이 있잖아요.
오렌지치킨 이런 거.
-그렇죠, 그렇죠.
-거기에 보면 다 한국에서 널리 퍼져가는 그 가족들이 이주하거나 거기서 장사하는 보편화가 돼 있어요.
근데 반대로 중국의 본토 음식은 좀 달라요.
세계화가 된 건 한국 음식이 그쪽에 가서 먹으면 탕수육, 짜장, 짬뽕 한국식으로 다 하거든요, 다 입맛에.
LA 가거나 샌프란시스코 가거나 이렇게 가고. 호주도 시드니나 마찬가지로. 그게 한국의 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식 중화요리는 혹시 영어로
K-차이니스 푸드라고.
-그러나요?
-제가 만들었습니다.
-방금 만드신 거예요?
-아니 어저께 만들었어요.
-어제 만드셨구나?
오늘 또 녹화를 위해서.
-K-차이니스 푸드.
-앞으로 이걸 좀 대중화를 시켜야 될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자장면 먹었는데 호주 가서 먹었는데 그 맛이 나오는 거예요.
-신기하다.
-저도 대만 가서 먹었는데 대만에도 저 친구들이 중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대만에서 한국식 푸드를 갖다가 여기서 했는데 거기 현지에 맞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맛있대요.
그리고 거기 가서 짬뽕은 중국 초마면에서 유래가 됐는데 초마면은 뭐냐 하면 초는 볶는다. 마는 재료를
얘기하는 거예요.
면은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누들면이고. 근데 중국 가서 초마면을 먹으면 한국에서 만든 것처럼 전혀 안
나와요. 느끼하고 우리가 상상했던 그런 맛이 안 나와요.
-다르죠.
-그래서 국내에서 이렇게 사실 자장면이나 짬뽕이나 한국 사람 기호에 맞게끔 이렇게 만든 건 제가 봐도
우리 선대께서 잘했다고 대단한 발견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 나라의 식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가는 것도 그것도 하나의 문화인 것이고.
-그 시대의 흐름에 안 맞으면 도태가 되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일본의 짬뽕은 사실 하얀 국물이잖아요.
나가사키짬뽕.
-그러네요.
-거기 나가사키짬뽕인데 우리나라는 거기다 고춧가루를 넣어서 같이 볶는 거예요.
-그건 나가서 먹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죄송한데.
-갑자기 추워지네.
-그게 아니라 한 번 넘어갔으면 두 번째 안 해야 되거든요.
두 번째도 하시니까.
-욕심이 좀 있으시네, 개그 욕심이.
-좋습니다.
요리조리 참 좋았어요. 요즘 인기가 엄청나게 많이 상승 중에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나도 중식셰프가
되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을 거고 그 친구들 중에 일부가 또 방송을 많이 보고 계실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분들에게 중식셰프가 되기 위해서 좀 갖춰야 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라는 얘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사실 중식은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많이 배워야 합니다.
-기본이 중요하군요.
-기본부터 처음에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채소 다듬는 거 바닥 쓸기 이런 거.
저는 되게 권하는 게 그 나라의 음식을 알려면 그 나라의 문자를, 언어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요리를 하려면 중국 문자를 먼저 그 뜻을 배워야 됩니다.
-문화를 이해해야 되는 거군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탕수육.
탕수육 하면 원래 당초육이에요. 설탕 당 자에 식초 초 자. 그럼 메뉴만 딱 나오면, 중국 요리는 메뉴가
나오면 벌써 이 안에 음식이 뭐가 어떻게 나오냐 뭐가 재료가 들어가냐 나와 있습니다.
-한자니까요.
-그거 정말 몰랐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탕수육은 한문 발음 그대로 이렇게 탕수육은 바로 나오죠.
원래는 당초육입니다. 설탕하고 식초가 들어가서 고기랑 튀겨서 버무려져 나온 거다.
이런 식으로. 아까 얘기했듯이 장폭팔보채. 딱 보면 흔히 못 알아볼 수도 있지만 쉽게 이해하면 장은
춘장 장. 폭은 순간적으로 솥에 볶는다. 팔보채는 8가지의 진귀한 재료를 넣는다,
이런 뜻으로. 그러니까 그 나라의 문자를, 글을 알아야지만 그래서 젊은 친구들한테 그런 걸 먼저.
체계적으로 중식을 잘 이해를 하고 배워야 되고 또 문자를 알아야 된다.
거기에 대해서 또 온고지신이라고 옛날 걸 많이 배워가면서 자기 걸 또 새롭게 만드는. 그런 걸 되게
강조를 하고 싶죠.
-좋은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 나라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그 나라의 음식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문화를 이해하고 음식을 만들되
온고지신, 그 옛날의 음식을 자기화시켜서 요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내는 것.
그것이 요즘의 중식셰프들이 해야 될 일이다.
문화 말고 요리할 때는 어떤 지점들을 한번 우리 꿈꾸는 친구들에게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식을 할 때는 내가 이걸 진정성 있게.
진정성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내가 꼭 이걸 진짜 열심히 해서 배워서 내 걸로 만들겠다는 이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지만 음식이 제대로 나오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기화를 시켜야지만 또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할 때 단순히 나는 이걸로 돈을 벌어야지 이런 게 아니라 진정성 있게 음식에 문화를 담고
마음을 담아서.
-사실 돈이라는 건 알다시피 내가 쫓아가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쫓아오게끔 만들어야 하지.
그러니까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자기가 노력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다 자기한테 온다는 그 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많이들 간과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를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대표님께서 꿈꾸시는 최종목표, 계획 같은 게 좀 있을까요?
-최종목표는 중식을 예전에는 우리가 짜장, 짬뽕, 탕수육에 이렇게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중식을 갖다가
더 널리 퍼트려 줄 수 있는 그것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그러니까 음식을 진정성 있게 좋은 식재료를 갖다가 고객들한테 맛깔스럽게 제공하는 게 최고의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은 분들에게 먹여드리게 하는 것, 먹게 만드는 것.
-드시게.
-먹여드리게라고 했나요, 제가?
그 정도로 정성스럽게. 먹여드리게 하는 것.
-먹여주는 건가요?
-먹여주는 거였어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에게 있어서 굉장히 저는 대표님이 철학적이다라고 대표님의 철학이 묻어나는 대화였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철학이 이 말에도 나올 것 같은데. 중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식이라는 것은 희로애락.
-희로애락.
대표님에게 있어서 중식이란 희로애락이다.
-기쁠 때는 고객이 그 음식을 먹었을 적에 한없이 만족감을 느꼈을 때 기쁘죠.
화날 적에는 내가 진짜 이 음식을 정성스럽게 했는데 내가 생각한 게 안 나왔어.
진짜 화납니다. 그 화나는 건 진짜 내가 성질나서 화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좌절감 때문에 화난 거지 진짜
나빠서 화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슬플 때도 많은데 내가 음식을 참 많이 준비를 했는데 좋게 준비했는데 고객들이 많이 안 왔을
적에 진짜로 슬프죠.
기쁠 때도 있고 하여튼 슬플 때도 있지만 인생의 음식은 희로애락이라고 이렇게 정의를 표하겠습니다.
-대표님에게 있어서 중식은 희로애락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음식이라는 게 누구한테는 당장 입에 들어가는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대표님에게 있어서 음식은 하나의 문화고 하나의 철학이 녹아든 하나의 예술품이다라고 생각이 되는 게
대표님의 오늘 내공을 좀 느낀 시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수없이 반복한 연습과 실패를 견뎌낸 시간 그리고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세월이 쌓여서 오늘의 대표님을
만드신 게 아닐까. 한국 중식계의 한 장인으로 만드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귀한 얘기 들려주셔서 다시 한번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드리고요.
앞으로도 그 깊은 내공이 담긴 요리로 많은 분들의 식탁을 행복하게 채워주시길 기대해 보겠고.
저도 곧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꼭 가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같이)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