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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클래스 - 구두에 진심인 남자 김원길, 신발의 편안함을 완성하다
등록일 : 2026-05-20 14:40:50.0
조회수 : 97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이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가연 아나운서는 신발 좋아하시죠?
-신발 그렇죠. 우리 빠질 수 없잖아요,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그렇죠, 여성분들도 구두 모으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러잖아요.
신발 고르실 때에는 가장 먼저 뭐부터 보세요?
-물론 디자인이나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편한 게 최고다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아무리 예쁜 신발이어도 편하지 않으면 바로 무용지물이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무려 50년 동안 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고 합니다.
-신발 고민을 50년 동안 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신발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시죠.
어떻게 하면 더 예쁜 신발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모든 인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내 컴포트화 1위 기업 바이네르의 김원길 대표님 모셔보고 오늘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시죠.
대표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먼저 탑클래스 시청자 여러분들께 인사 한번 부탁드릴까요?
-안녕하세요. 구두 만들기 구두장이 김원길이고요. 세상을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남자 김원길입니다.
오늘 잘 살펴봐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벌금도 내겠습니다.
부족한 거 있을 때는 제가 구두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즐겁게 사신다고 하는데 벌써 말씀하시는 것부터 즐거움이 굉장히 묻어난다고 생각이 되네요.
-뿜뿜.
-그렇습니다. 대표님이 이제 신발을 만드시잖아요. 근데 신발과의 인연이 무려 50년 전이라고 저희가 들었습니다.
그럼 10대 때부터 이제 신발을 만드신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첫 시작에 대해서 좀 이야기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구두 만들기 시작을 언제서부터 했냐 하면은 저는 이제 중학교까지는 다녔어요.
제가 7남매 중에 셋째. 셋째인데 우리 형하고 누나는 중학교 못 다녔어요.
-그때는 그랬죠.
-나는 이제 그래도 중학교 다녔어요. 중학교 다니면서 내 동생들이 또 4명이 있어.
4명 있는데 걔네들은 공부를 해야 될 거고 그래서 중학교 다니면서 고등학교 못 가는 거 알고 있었어요, 나는 내가.
알고 있었으면서 그러면서 중학교 졸업하고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고민을 많이, 이 고민 저 고민하다가 그때 이제 작은 아버지가 서산에서 양화점을 했었어요.
양화점을 하시는데 작은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예요.
야, 기술을 배워라. 기술을 배우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구두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요. 어린 나이부터 일을 그럼 시작하신 거잖아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드셨던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힘든 거는 이제 기술 배울 때. 이제 기술 배울 때 이제 좀 열심히 좀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고
기술을 배워야 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그때 이제 서산에서 이제 구두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누가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한마디를 해 주시는 거예요.
야, 너는 나이도 어린데 이 시골에서 시골 기술 배워서 되겠어? 그래도 서울 가서 서울 기술은 배워야지.
그 얘기를 누가 딱 해 주는 거예요.
그 소리 듣는 순간 맞아, 나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워야지 그 마음을 먹고 작은아버지한테 얘기했습니다.
나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울래요 그랬더니 너 서울에 아는 사람 있어?
서울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서울에 가면 양화점, 신발가게 양화점 많이 있잖아요.
거기 가서 취직하면 됩니다. 너 진짜 네가 갈 수 있어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홍성 가서 기차 타고 영등포역에 18살 때 내렸습니다, 제가.
-무작정 그냥 어떻게 보면 서울로 상경하신 거네요.
-맨땅에 진짜 헤딩을 하셨네요.
-영등포역에 18살 때 내려가지고 영등포 여기 양화점, 구둣가게 많이 다니면서 나 좀 구두 조금 만들어 봤는데 일자리 달라고.
그때 영등포 일대 구둣가게 다 뒤졌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자리가 마음같이 잘 안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좀 외지 쪽으로 지금은 옛날에는 목동이 논이었어요.
목동 가는 길 쪽으로 쭉 가다 보니까 그쪽에 양화점 한 군데에서 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영등포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두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서 기술을 익히셨을 텐데 또 그 익힌 기술로 기능대회에서 메달도 따셨다고 들었어요.
-욕심이 한 계단 또 올라가고 싶은 거야.
-그렇죠, 아무래도.
-내가 납품 여기 공장에 있는 거보다. 저기 케리부룩 가서 일하고 싶은 거예요, 이제.
그래서 사장님한테 나 케리부룩에서 일하고 싶은데 좀 잘 만들어 달라고.
거기 가서 얘기했더니 한번 기다려 보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기다려 보라고 그래서 기다렸는데 연락이 안 와.
몇 달 지나서 이제 끝났구나, 틀렸구나 그러고 있는데 그다음에 와가지고
아직도 케리부룩에 오고 싶냐고 누가 얘기하는 거예요.
-아직도 생각이 있니?
-그렇게 번쩍 들어서 아이고, 고맙습니다 인사했지.
그랬더니 거기 가서 일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는 거야.
내가 하천 공장에서 어떻게 기술자를 빼올 수 있냐.
내가 그래서 너 사장하고 내가 합의를 했다. 얘 뽑아가는 대신에 일거리를 많이 주겠다.
그래서 제가 거기 케리부룩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님, 죄송한데 메달은 언제 따실 겁니까?
-그래가지고 거기 가서 일을 하면서.
-케리부룩에서 이제 일하기 시작하셨군요.
-케리부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 친구 한 친구가 기능대회 나가서 메달 딴다고 훈련하는 거야.
-거기에서 만나셨구나.
-거기에서 만난 거야. 케리부룩에서 그 친구가 훈련해 가지고 메달 따겠다고 훈련을 하는 거예요.
부러운 거야, 그래서. 자극을 받으면서 또 슬펐어. 슬펐는데 그 친구가 힘들다고 도망가 버렸어.
-이제 대표님 차례.
-그러니까 사장님이 딱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하나 만들라고 시켜보면 되지요. 딱 그러는 거야.
아차. 하나 만들라고 시켜보는구나. 그래서 그때서부터 이제 시작이 훈련이 된 겁니다.
-그때부터 남성 신발도 같이 하신 거였구나.
-그거는 이제 기능대회 훈련을 시작한 거예요, 이제.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시작이 훈련할 때였군요.
-그때는 이제 공장에서 만드는 기술자였었고 이제 기능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해.
그때 72일간을 남겨놓은 거, 72일을 남겨놓고.
-칠십 며칠밖에 안 됐는데 그게 준비가 됐군요.
-72일 동안 진짜 열심히 해서 잘 만드니까 이거 잘 만드네. 마지막까지 금메달이다,
금메달 했는데 금메달이 안 된 거야, 이제. 한 가지 실수를 했어.
-상심이 크셨겠네요.
-한 가지 실수를 해가지고 금메달 아니라 동메달했어요.
-그래도 메달을 따셨네요.
-얼마 준비를 안 하신 거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시죠.
-동메달 따가지고 회사에 들어오니까 회사에서 광고하려고 딱 준비해 놨는데,
금메달 딴 거 기획사 준비해서 해놨는데 회사 들어왔더니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동메달은 필요 없다 이거지. 그래 가지고 진짜 너무 슬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그러면 금메달 못 땄으니까 포기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하셨습니까?
-그때 이제 하도 그래서 이제 하루도 못 쉬었으니까, 그때.
끝나고 나서 나 좀 쉬겠습니다. 휴가 좀 내가지고 그때 이제 용산에서 완행 열차 타고 부산에 간 거지, 이제.
-이게 전국을 다 돌아다니셨구나.
-부산. 부산에 가서 부산 내려오면 태종대.
태종대 딱 한 바퀴 돌면서 거기 촛대바위 밑에 내려가 가지고 거기서 이제 신세 한탄하는 거지.
왜 나는 진짜 왜 이렇게 맨날 안 되는 게 많을까.
내 친구 애들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나와서 폼나게들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맨날 힘들까.
거기서 이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이제 신세 한탄하는데 한 세 잔 정도 마셨어요.
마셨는데 술에 탁 취하더라고.
술에 취해가지고 신세 한탄하는 걸 잠시 까먹고 그 아름다운 그 경치에 촛대바위서부터
저쪽에 오륙도서부터 그 멋있는 경관을 이거 누가 이렇게 멋있게 만들었지 그 경관을 구경하는 거야, 이제.
그러면서 누가 만들었나 그랬더니 바람과 파도가 그 순간에도 그 갯바위를 깎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거기서 욕심이 생겨요. 나도 바람과 파도처럼 살고 싶어.
그랬더니 그런 마음을 먹으니까 속으로 바람과 파도가 저걸 만들었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렇게 보니까 반만년 우리나라 그때 한 몇천 년 걸린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72일간 훈련하고서 내가 바람과 파도. 그래서 속으로 그래.
바람과 파도, 속으로 나 속에서 그러더라고요.
택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또 확 주저앉는 거야.
나 또 안되네. 그러면서 거기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뭐냐?
그래, 바람과 파도처럼 살 수는 없어도 바람과 파도의 저 끈기를 흉내 내고 살면 어떨까.
바람과 파도의 저 끈기를 흉내 내고 살아보자. 거기서 그 마음을.
-깨우침을.
-그러면서 딱 흉내 내고 살다 보면.
-언젠간.
-내가 지금은 동메달이지만.
-나중에는.
-저 미래에는 금메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태종대 갯바위 바람과 파도가 제 친구가 됐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셔야 되는 게 되게 좋은 말씀해 주신 게 원래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하잖아요.
안 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칠십 며칠 만에 뭔가가 된다? 그건 세상 사람들 다 잘되죠.
그런데 그 지점을 얘기를 해 주신 것 같아요.
계속 시간과 내 노력과 내 마음과 이런 모든 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라는 걸
그때 이제 처음 느끼신 거라고 생각이 되어지네요.
-그럼 그러시다가 대표님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거예요?
-브랜드를 만들게 된 동기가 이제 회사에 다니다 회사에서 그만뒀어요.
처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 회사 관두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될까.
그래서 신발 처음에 부품 공장을 하다가 이게 장사가 안 되는 거야.
안 돼 가지고 다시 내가 다니던 회사 그 회사 제품을 내가 갖다 팔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서울지사 만들어 가지고 그 제품을 이제 백화점 안에서 영업을 많이 했어요.
그거 하는데 많이 팔았어요. 잘 가고 있었어. 그런데 회사가 부도가 났어.
-그 K사가 부도가 난 거죠?
-K사가 부도가 난 거야, 이제. 부도가 나가지고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 되겠다.
-거기서 느껴지셨군요.
-그래서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 되겠다.
-딱 그게 계기가 되었네요.
-그래서 이제 옆에서들 이제 백화점에 이제 잘 나가는 바이어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요즘엔 그 회사는 이제 버리고 편한 신발을 고객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진짜 스쳐 지나가는 말이 편한 신발.
고객들이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하니까 좋아하니까 그쪽으로 한번 개발하면서 브랜드를 한번 찾아봐.
그러면서 이제 일본 가서 일본 시장 조사하고 미국 가서 미국 시장 조사하고.
-미국도 다녀오셨어요?
-미국도 다 조사했죠. 그러면서 그것도 다양하게 하다가 다시 또 이태리 가 가지고.
-이태리까지.
-이태리 가서.
-수제화의 또 메카.
-엄청나게 시장 조사했지. 하다가 그래서 이태리 가서 이제 결국에는 그때 한 3000개 정도 중에서 찾고 찾다가.
마지막 날 딱 찾은 거예요. 이걸 찾은 거예요, 지금.
-근데 대표님 지금 생각해 보면 신발을 만드시는 일과 사업을 시작하는 일은 굉장히 좀 달라 보이거든요.
어떻게 시작을 하신 건지는 알겠는데 단순히 사업을 시작했다라는 개념보다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자금도 부족하실 거고 지금 이태리까지 다녀오시고 미국 다녀오시고 막 이러셨으니까.
그때 좀 많이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참 힘든 거 사업 시작하면서 참 눈물 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잠을 못 자가지고 누워서 딱 잠자려면 1시 되면 깨는 거야, 이제.
-새벽 1시요.
-새벽 1시 되면 깨 가지고.
-걱정이 많으니까.
-1년, 2년, 3년 한 5년 정도 버티니까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더라고.
-너무 정신없이 살아오셔서.
-너무 힘들어 가지고. 왜 그러냐면 자금이 부족해서.
-자금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때 96년도에 너무 힘들어서 그냥 내 인생 한 번 그냥 끝내버리고 싶었어요.
-안 좋은 생각까지.
-그래서 그냥 내 몸을 그냥 확 그냥.
-그 정도까지.
-던져버리려고 마음을 먹다가 내가 남의 것 떼어먹고 죽으면 어떡하나.
그래서 그때 남의 거 떼어먹고 죽으면 안 되지, 욕먹으면 안 되지. 내 자식들이 욕먹겠다
이 생각을 해서 그래, 일하다 죽자. 일하다 죽으면 남들이 욕은 안 하겠지.
그러면서 일하다 죽는. 일하다가 무얼 봤느냐.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어요.
-어떤 제품이에요?
-모델 번호가 3074라는 모델 번호야.
-3074 여성화예요, 남성화예요?
-여성화요.
-여성화인데.
-그러니까 편한 신발인 거죠? 기능성 신발.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나중에 이제 매장 직원들한테 그 신발이 왜 잘 팔리나, 왜 잘 팔리는지 이유 좀 찾아와 봐.
그게 왜 잘 팔리는지 그거 좀 알아봐 그랬더니 우선 편안함.
편안하고 신으면 예쁘다고 한다. 편안하고 예쁜 걸 두 개를 다 가지고 있었던 제품을.
-두 개를 다 갖추기 힘들잖아요, 사실.
근데 또 당시 세계의 구두 트렌드가 컴포트화로 바뀔 거라는 걸 알고 계셨어요, 대표님?
-그러니까 보면.
-또 이탈리아로 또 바로 향하셨다고.
-그때 한마디 누가 해줬던 게 참 고마운 거지. 요즘엔 편한 신발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쪽으로 한번 방향을 잡아봐.
-알아차리시고 이탈리아로 가신 거군요.
-그 말이 결국에는 내가 세계 시장을 돌면서 편하고 좋은 신발을 찾기 시작했던 거죠, 그때부터.
-그래서 이제 미국도 다녀오시고 이탈리아도 다녀오시고 그런 거구나.
-일본, 미국, 이탈리아, 중국. 그때 시장 조사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 그런 신발을 딱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좀 궁금해요.
-이탈리아 가서 이제 전시회에 가서 이제 볼로니아였었어요.
볼로니아전시회 때 진짜 찾고 찾고 찾았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근데 마지막 날 이렇게 딱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거 하면 되겠다. 찾았어.
-저렇게 만들면 되겠다.
-저 신발이면 되겠다. 그래서 내가 그 회사에다가 이 신발 내가 한국에 좀 가져가겠다, 팔 수 있냐.
그랬더니 한국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 안 판다는 거야, 이제.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그래 가지고 3일 동안 매달려 가지고 다 한국에다 내가 팔아보겠다고 그랬더니
한번 그럼 주문이나 넣고 가봐, 답변 줄게. 그래서 안 판다고 그랬으니까 주문을 왕창 넣었어요. 굉장히 넣었어.
컨테이너로 한 컨테이너 정도 될 정도로 양을 넣고 그러고 왔더니 한국에 왔더니 연락이 왔어.
신용장 개설하면 물건 만들어 줄게 딱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거래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이제 물건을 들여와서 한국에 판매를 하기 시작하신 거군요.
잘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게 그러니까 힘드셨고 사실 자금도 이런 것도 부족하셨을 것 같고
그러니까 물건을 가져오는 것도 엄청나게 돈을 많이 주고 이제 가져와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포기하시면 끝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거를 덮고 떠나면 끝나는 거지만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서 돌아다니시면서 새로운 걸 찾아내겠다라는
대표님의 의지가 그때 당시에 굉장히 좀 높았을 거라고 생각이 되기도 하네요.
-근데 그냥 왜 그러면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그때 어떻게 그렇게 그냥 나도 지금 와서 이렇게 봐도 내가 봐도 기특해 보여, 내가.
-위기 때마다 대표님이 넘기시는 대표님만의 굉장히 큰 장점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 이탈리아 브랜드 그냥 다 인수하셨잖아요.
-이제 그 브랜드 가지고 한국에서 이제 시작해 가지고 굉장히 잘 팔았어요.
잘 파니까 한국 사람들이 거기 가서 나한테 물건 팔아, 한국 사람들 거기 줄 서 버렸어.
-우리한테도 팔아라.
-나한테도 팔아라, 나한테도 팔아. 한국 사람들이.
그래가지고 이게 한국에서 내가 잘 팔리니까 그게 너무 힘든 일이 또 벌어지는 거야.
-남한테 뺏길 위기.
-그런 위기가 많이 있었어.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늘에서 도와줬어요.
하늘에서 어떻게 도와줬냐. 우리나라는 IMF가 있었죠. 유럽발 금융 위기가 이태리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어.
-그때 당시에.
-IMF 때 우리나라 회사가 150개씩 부도났다고 그랬는데 유럽발 금융위기 때 이태리도 회사가 150개씩 부도가 났었어요.
-그 회사도 위기가 찾아왔군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 브랜드 내가 인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왔던 거예요.
유럽발 금융위기가 나한테는 하늘이 준 선물이다. 하늘이 준 축복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준비한 자에게 어떤 큰 위기가 오면 그걸 또 좋은 기회로 바꾸는 일들이 종종 있죠.
코로나 때도 많은 위기들을 겪었던 회사들이 많지만 그걸 잘 이겨낸 회사도 그때 당시에 또 많이 나왔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이라고 연결 지어서 생각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좋다고 신어주는 손님도 있는가 하면 어떤 손님은 이거, 이거 불편해, 불편해.
이거 고쳐줘. 나를 내가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손님들이 한마디씩, 한마디씩 조언해 주는 거.
이거 고쳐야 돼, 고쳐야 돼. 그걸 고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까지 더 좋아하는 거예요.
-어느 날 딸이 선물을 했어요, 이 신발을.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신발을 다 이거 신발만 신는데 한 100켤레도 넘어요.
-100켤레가 넘어요?
-네. 그래 갖고 그런 것도 신고.
-둘레가 깨끗하게 딱 돌아가 있는데 조금 이렇게 좀 세게 당기면 쏙 들어가고 좀 세게 당기는 데가 들어가는 거야.
힘을 똑같이 줘서 당겨야 되는데 힘을 좀 많이 준 데가 있는 걸 내가 그걸 봤던 거예요.
품질 이게 100점짜린데 100점이 맞아야 되는데 이건 뭐 95점밖에 안 된다.
100점 맞게 만들어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대표님 브랜드가 한국 구두 명장과 또 이탈리아 구두 명장이 함께 만드는 브랜드로 또 굉장히 좀 유명하잖아요.
어떤 내용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이태리 처음 그분 만났을 때 거기서 이제 신발 이태리에서 내가 수입해 오면서 신발이 항상 신다 보면 신발에 계속 문제가 생겨요.
문제가 생기면 내가 거기 가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그런 거 가지고 그러는데 그 양반은 그래, 알았어.
그건 쟤가 그러니까 쟤를 내가 알았어, 혼내줄게. 하나씩 하나씩 계속 그쪽에.
그래서 그분이 나도 기능대회에 메달 땄다 얘기하면서 그랬더니 알았어, 알았어, 고마워.
그분이 그러면서 내가 이제 한국에서 수입해 온 신발 여기서 다 팔고 나면 주문하면 보통 3개월씩 걸리니까.
그래서 한국에서도 나도 만들어서 OO로고를 붙여서 팔면 어떠냐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는 거예요.
야, 내가 너는 믿는다. 한국은 너 맘대로 해, 네 맘대로 해. 그래 가지고 참 이게 많이 그래서 참.
-좋은 관계를 유지하신 거네요.
-신뢰가 쌓인 거죠.
-거기 가서 이제 그분이 나한테 너는 내가 믿는다.
네가 신발을 만들어서 팔면 이 브랜드에 더 도움이 되지 손해 갈 거 없다는 걸 내가 안다.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참 그런 고마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 만들어서 판매가 되기 시작한 거고요.
-그렇게 해서 판매가 됐군요. 또 현재 국내 컴포트화 1위 기업이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
1년에 몇 켤레 정도가 판매가 될까요, 대표님.
-글쎄요, 1년에 뭐 한 35만 켤레 정도.
-35만 켤레요?
-정말요?
-35만 이게 가늠이 안 되네요. 35만 켤레면. 수제 컴포트화 말고 또 다른 장르의 신발에도 계속 도전 중이신가요?
-요즘에 이제 많이 시작한 게 이제 운동화도 많이 만들고.
-운동화도 만드시고.
-골프화도 만들고 테니스화, 배드민턴화 이제 다양하게 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실 때 이 좋은 신발의 기준이란 과연 뭘까요, 대표님.
-좋은 신발이란 나를 도와주는 신발이 진짜 좋은 신발이죠.
나를 도울 수 있는. 신발이 결국에는 나의 주춧돌입니다. 주춧돌이 무너지면 내가 삐그덕거립니다.
-중심 잡기가 힘들죠.
-그래서 결국에는 좋은 신발은 나를 잘 받들어 줄 수 있는 신발이 최고입니다.
-그렇죠. 신발이 불편하면 하루 종일 불편하잖아요.
-계속 집중도 안 되고 일에도 집중이 안 되고 걷지도 못하고 생활 전반에 조금 불편함을 끼치는 것 같아요.
신발이 불편하면. 그런데 신발 한 켤레를 완성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세요?
혹시 제일 예쁜 거? 아니면 균형? 이런 여러 가지가 있을 거 아니에요.
-우선은 이제 밸런스가 내 몸에 딱 나를 잘 받아주는지 균형을 잘 받아줄 수 있게.
-균형감이 중요한 건가요?
-그러고 나서 또 걸으면서 걸으면서 벗겨지지 않게 잘 그런 것도 해야 되고
그러고 나서 이제 그런 거에서 디자인도 거기에 맞춰가지고 이제 골고루 다.
사실 한 개가 잘못돼도 신발을 만들다가 어디 하나 기스가 나면 그게 불량이 됩니다.
-흠집이 나면 또 이게 불량이 되는 거죠.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이 돼야 좋은 신발이 될 수 있는 거군요.
-진짜 디테일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공장에 돌다가 이렇게 신발 만든 게 잘못된 신발이 있으면 저 신발이 그래, 누구한테 공짜로 줘도 될까?
팔기는 그렇기 때문에 공짜로 줄까. 공짜로 주고서도 욕먹을 것 같아. 이런 걸 줘.
욕먹을 것 같으면 그건 잘라 버리는 게 나은 거예요.
그러니까 공짜로 주더라도 얘들은 이게 좀 기스는 났지만 품질은 참 이거야.
그 소리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면 잘라버리는 게 낫다 이거죠.
-그렇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키높이 구두 많이 신거든요.
-그래요?
-이것도 약간 키높이 구두이긴 한데 이런 거는 좀 불편하고 좀 건강에 안 좋은 건가요? 장인이 보실 때는 어떠신가요.
-그런데 그거를 밸런스를 잘 잡아가지고 높아지는 만큼 그만큼 발바닥이 나를 그러니까.
편한 신발이란 이 발바닥이 그래도 좀 이렇게.
-아치가 있죠.
-이게 넓은데 나의 체중을 골고루 나눠 받을 때 그 발바닥이 힘을 몰아서 받으면 그게 발바닥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확실히 키 높이 구두 신으면 앞쪽에 좀 무게가 두긴 해요.
-발가락...
-그러니까 그거는.
-발가락.
-좀 뭐한 얘기인데 그건 내가 만들면 그것도 다 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정말요?
-제가 좀 몸을 이렇게 앞으로 돼 있어 가지고.
-그리고 더 거북목 되는 거예요.
-별명이 약간 피사의 현희었어요, 약간 이렇게.
-그 정도 가지고. 저 굽 높은 것도 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 구두도. 이렇게 높은 것도요?
-그럼.
-이거가 너무 아프잖아요.
이게 매일 또 신고 있어야 하고 또 저희는 힐이 없으면 안 되니까 많이 또 서 있어야 하고 평소에 많이 신는데 뭔가 아프더라고요.
-발이 좋아하는 신발이 최고의 신발이에요.
-발이 좋아하는 신발이요?
-눈이 좋아하는 신발이 좋은 게 아니라 발이 좋아하는 신발. 발이 나를 모시고 살잖아요. 발이.
-좋은 길로 인도하고.
-그럼. 그래서 우리 발이 좋아하는 신발을 내가 신어주면 발이 우리 주인은 참 멋있는 양반이야.
그런데 그냥 눈에만 좋은 거 발 아픈 거 싫으면 우리 주인은 눈밖에 몰라 딱 그러거든요.
발이 주인을 배신한다니까, 잘못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신발을 우리가 고를 때 신발을 사잖아요.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면 좋을까요.
-우선 신어 보고 걸어 보고. 걸어 보고 이 정도면 내가 세상 누빌 수 있다 그 정도는 돼야지 그게 아니면.
-착화감이 중요하군요.
-그럼요. 그게 아니면.
-이걸 신고 내가 전 세계 어디든 가도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딱 들어야 하는 신발이군요.
-신발이 편안해야 세상이 넓어집니다.
-장인.
-근데 그렇게 보면은 디자인을 좀 제일 마지막에 보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거든요.
-저는 디자인은 그래서 많은 걸 이렇게 보거든요.
그래서 내가 공장을 디자이너들 한 10명씩 데리고 일하고 그러는데 디자이너하고 기술사들하고 많이 싸워.
-그러겠네요.
-디자이너들하고 기술자들하고 많이 싸워.
싸우다 보면 디자이너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에서 디자이너들한테 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남의 거 카피하지 마라. 카피하다 걸리면은 벌금 100만 원 때린다. 한 디자인을 만들어 놓으면.
-무섭다.
-남의 거. 그래서 개발 정신을 나는 이렇게 만들었어요.
-근데 그만큼 장인 정신.
-새로운 경쟁사의 새로운 제품을 보면 저 제품을 만든 사람의 의도가 무엇일까.
어떤 것을 저 속에 담아서 저걸 만들었을까 그거를 한번 상상해보고 그걸 찾아내자.
그러고 나서 저 제품의 장점이 뭘까. 그러고 나서 저 제품의 단점은 무엇일까.
단점이 뭘까. 그러고 나서 저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 만들기에 도전하자. 그건 저의 개발 정신입니다, 저의.
-대표님의 구두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남의 거 따라 하지 말아라. 너만의 독창성을 찾아라.
그다음에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봐라.
새로운 제품 나왔으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라.
-그럼요. 분석하고 나서 그것보다 더 좋은 걸 만들기에 도전해야지 흉내 내는 사람은 1등에 갈 수 없어요.
-맞습니다.
-구두에 대한 애정이 진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대표님이 지금 말씀하신 걸 너무 공감해요.
남 따라 해서 어느 정도까지 갈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기는 쉽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남 따라가 가지고 1등을 할 수가 없어요.
-내 걸 만들고.
-그럼.
-또 최근에 엄청난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그게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대상. 이게 어떤 시상식인지 좀. 진짜.
-여긴 정말 유명한.
-보니까 뉴욕 페스티벌에서 주는 국가 브랜드 대상.
그거 제가 상 받았는데 거기서 그게 어디서 주는 건데 그거 준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거 받을 거냐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해서 그걸 주냐 그랬더니 제화 업계에서 신발 업계에서 남녀화 해 가지고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가지고 제품 인지도서부터 반응, 고객 관리서부터 다 조사해 가지고.
-종합적으로.
-종합적으로 해서 여기에 1등으로 뽑혔다. 받겠냐. 감사합니다 하고 받은 거지.
-지금 이거 받으신 거는 말만 들어도 대한민국 사람들 다 아는 상이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굉장히 그 제품군에 의해서 제일 훌륭한 분들에게만 주는 상으로 저도 알고 있거든요.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대표님의 노력과 그 구두에 대한 철학 이런 전체적인 게 다 스며들어서
그 상을 받으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명실상부 어떻게 보면 최고의 구두 명장으로 인정받으신 건데 대표님이 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최고로 인정받으신 분야가 또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혹시 예측 가세요?
-아니요.
-바로 나눔이라고 합니다.
-또 나눔천사시구나.
-그렇죠, 기부 천사로 소문이 자자하세요. 직접 소개 좀 해 주시죠.
-저는 이제 제가 봉사를 언제 시작했냐 하면은 제가 옛날에 배고파가지고 18살 때까지 언제 한번 배부르게 밥을 먹나 했어요.
근데 그때 어릴 적에 배부르게 먹었던 때가 동네 어르신들 잔치 때, 회갑 잔치 때 참 배부르게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그때 얻어먹은 그런 기운들이 그 기운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내가 그렇게 배고프게 살았는데 나를 이렇게 그래도 잘 살게 폼나게. 한강에 가면 요트도 있고.
-진짜요? 요트까지 또.
-멋있게 살 수 있게 누가 만들어줬어요, 나를. 세상이 만들어줬잖아요.
-그렇죠.
-세상 고객들이 나를 만들어줬단 말이에요.
-많은 구두를 사주신 분들.
-그럼. 그래서 내가 봉사를 어디 해야 돼. 세상에 해야 되지 않냐.
그래서 봉사활동 다양한 여기저기 봉사활동 많이 했습니다.
군에 가서 군인들한테 봉사하면서 옛날에 우리 회사 옆에 백마부대. 백마 용사.
-백마. 9사단 아닙니까?
-그래? 여기도?
-죄송합니다. 공익 근무여서요.
-반전, 반전.
-훈련을 거기서 받았습니다. 4주 훈련을.
-신교대?
-신교대.
-내가 거기 가서.
-백마.
-그래서 백마 용사를 뽑아서 유럽으로 7박 8일 1년에 6명씩 연수시키고 그런 것도 했었어요.
-진짜요?
-좋은 일 많이 하셨네요.
-백마부대 명예사단장도 있고.
-그러시군요.
-그래서 1군단에서 1군단 장병들 뽑아가지고 1년에 호주로 연수 20명씩도 시키는 거 있고.
그리고 어르신들 모시고 효도잔치. 서울에서 부산에 다니면서 어르신들 모시고 많이 하면서.
해외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춘천에 얼마 전에 신문에 나왔더라고요.
요즘에 우리나라가 사실 문제가 많은 게 빨리 결혼해서 애를 좀 많이 낳아야 대한민국이 발전하는데
그래서 7남매 딱 이 신문에 딱 조선일보에 있더라고 그게.
-기사에 났죠.
-내가 보고서 그 신문사에 연락해서 전화번호 달라고 그래서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요.
어떻게 부잣집인가 알아봤지. 그랬더니 이것저것 해가지고 애들 가르치느라고 좀 어렵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거기에 1억 기부했습니다.
-박수 한번 주시죠.
-진짜 너무 멋있으세요.
-항상 좋은 에너지가 있으신 것 같고 그리고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또 군인 분들이라든가 다자녀집 많이 힘들 수도 있는 환경이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에게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을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연평도에서 천안함 폭발했을 때 신문에 나오더라고.
천안함 폭발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던 쌍둥이 형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거 말고
나라부터 지키겠다고 해병대에 입대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너무 멋있잖아요.
-너무 멋있죠.
-그래서 그 친구들 내가 또 옛날에 한 번 또 줬습니다. 쓰라고.
-잘하셨네요. 대표님 차라리 그러면 아예 그냥 군화를 한번 만들어 보시는 건 어때요? 편한 군화.
-군화 만들면 지금 군화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먹고살라고 그래야지 나만 먹고살면 안 되지.
-또 그 영역까지는. 가기가 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진짜 앞으로도 계속 이제 기부는 함께하실 예정이신 거죠?
-꿈이 그래도 1년에 그래도 100억은 봉사해봐야 되지 않느냐.
그런 꿈을 꾸고 사는데 1년에 그래도 100억은 좀 해 봐야 되지 않나.
1년에 10억 정도는 오래 하고 살았고.
-멋지시네요.
-1년에 그래도 100억 정도는 봉사하고 살아봐야 저 할아버지 멋있는 할아버지야.
-진짜 이웃 사랑이 뜨거운 게 진짜 너무 느껴지는데.
-대표님의 그 따뜻한 마음이 정말 대화 속에서 묻어 나옵니다.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이 들고 그리고 어렸을 때 또 힘들게 고생을 하셨기 때문에
그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힘든 분들을 도와주시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좀 들긴 하네요.
-밥을 사더라도 부자들한테는 안 사요, 부자들한테는. 좀 힘든 사람들한테.
어디 가서 내가 강의 같은 것도 많이 하는데. 강의 해외에서도 많이 합니다.
호주 가서도 하고 인도네시아, 중국 가서도 강의 많이 하면서
젊은이들한테는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월급을 받는 인생이 멋있습니까?
월급을 주는 인생이 멋있습니까? 부지런히 배워가지고 월급을 주는 인생, 정년 없는 월급을 주는 인생 한번 살아봅시다.
그런 친구들 내가 멘토합니다.
-그러시군요.
-혹시 직원 사랑도 뜨거우실지 궁금해요?
직원들을 위한 복지도 좀 남다를 것 같은데 맞을까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면서 명절 때 집에 못 간 적이 많이 있었어요.
-너무 바쁘셔서.
-바쁜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차비가 없어서 집에 못 간 적이 있어서.
그래서 뒤에서 많이 운 적도 있어. 그런데 조그만 차를 하나 사서 명절 때 가기 시작했어요.
시골 가면서 동네 들어서면 동네 어르신들 차 세워놓고 인사하면서
안녕하세요, 저 원길이에요 하면서 맛있는 거 사드세요 하고 1만 원짜리 하나씩 드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용돈도 드리고.
-그랬더니 얼마 지나서 동네 어른들이, 명절 때 갔는데 엄마가 그러는 거야.
원길아, 동네 사람들이 너한테 돈 받았다고 자랑하더라.
그 소리 들으면서 이러다 김원길이 너 성공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성공이 뭘까?
성공이 뭘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성공이란 그때 몇 년 묻다가 성공이란 정의를 내렸어요.
내가 행복하게 살면서 존경받는 인생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행복지수 1등인 회사 만들기. 어떻게 하면 존경받으면서 살까.
그게 결국에는 내가 돈 열심히 벌어서 사회 봉사하고 살아야 존경받고 행복지수 1등인 회사 만들려면
그래서 직원들한테 말도 사줘 보고 스포츠카 사주고 별장 사주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직원들한테 그런 얘기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나보다 더 멋있는 기업가가 되는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내가 옛날에 다니던 회사 회장님이 그랬어요.
내 회사는 망했지만 네가 우리 회사에서 배워서 여기 오지 않았나. 난 너 보는 재미로, 너 자랑하는 재미로 산다.
나도 이런 말 좀 할 수 있게 여러분 열심히 뛰어서 나보다 더 멋있는, 멋진 기업가 나왔으면 좋겠다.
나의 꿈이고 바람이다, 그런 얘기합니다.
-그런데 대표님한테 오늘 정말 많이 배우는 것 같은데 보통은 좋은 인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거를 꺼려하잖아요.
근데 대표님은 오히려 나가서 좋은 회사를 만들어서 더 키워라라고 말씀을 해 주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회사 가라는 게 아니고.
그리고 옛날에는 처음에 30년 전에 그랬죠, 직원들한테.
직원들 열심히 일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15년 이상 일하면 내가 창업을 도와준다.
그래서 사업 시작할 때 5000만 원씩 지원해 주고 그러면서 지금 같이 사업하는 친구들 한 30명 됩니다.
-동종업계로요?
-네.
-같이 또 대리점도 하고.
-그거 정말 쉬운 일 아니거든요. 대단하십니다.
근데 아까 직원분에게 말도 사주고 스포츠카도 사주셨다고 그런데 저 좀 취직시켜 주시면 안 됩니까?
-배워가지고 사업을 하겠다면 와서 일해도 돼요.
-그렇습니까?
-여기서 월급 받으러 오면 그건 소용 없고.
-그렇죠, 배워서 나가서 더 좋은 회사를 키우면 오케이.
-그렇지, 그건 오케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요즘 또 아까 잠깐 이야기를 하시긴 했는데 가수 활동도 하신다고요?
음악을 만드시고 작사도 하시고 작곡도 하신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노래를, 효도잔치를 오래하다 보니까 노래 가수들 많이 불러서 하다 보니까 어느 고객분이 그런 거야.
사장도 노래 한번 해 봐, 그래서 무대에 가서 노래를 했어요.
-대표님한테?
-노래를 했더니 노래 잘하네 한 곡 더 해 봐.
그러면서 무대에서 노래하다 보니까 많은 가수들 데리고 20년 넘게 했으니까.
우리나라 웬만한 가수들 내가 다 많이 올려봤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하려면 노래를 많이, 연습 많이 해야 돼요.
출근할 때 퇴근할 때 맨날 그 노래 들어야 돼. 무대에 올라가서 하려면.
이렇게 연습할 바에는 내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내 노래를 2014년도에 제 노래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2014년도예요? 12년 전이네요.
-12년 전인데 내 노래 제목이 내가 옛날에 힘들었던 거 너무 힘들어서 진짜 그런데
요즘에는 한강에 가면 배도 몇 개 있고 이탈리아 브랜드도 인수해서 이탈리아 가도 큰소리 빵빵 치고 힘들어도 괜찮아,
제목이 바로 나오는 거예요.
-대표님의 긍정적인 생각과.
-그리고 제가 느낀 게 힘든 걸 극복하시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되게 에너지 원동력으로 삼으시는 것 같고.
-취미생활이 그런 노래하면서 결국에는 사실 지친 나를 일으켜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노래를 틈만 있으면 노래 가사가 써지는 거예요.
-진짜요?
-그래서 노래 가사말 쓴 게 지금 내가 작사한 게 그래도 한 30곡은 됩니다.
-30곡이요? 그럼 직접 활동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냥 취미생활 같이 하시는 겁니까?
-오늘이 금요일이죠. 모레 저 태국 갑니다, 노래하러.
-진짜요?
-진짜요.
-그러니까 거기 초청을 받으셔서 무대 위에 서시는 거예요?
-태국 가서 지난겨울에 태국 치앙마이 시장님하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무대가 옆에 노래하는 데 가서 나 저기 좀 한번 올려줘요 했더니 올라가서 내가 노래를 했는데
다른 사람 할 때는 조용했는데 내가 올라갔는데 굉장히 난리가 난 거야 막 춤추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거기서 3일을 노래했어요.
근데 3일을 했는데 내가 노래할 때 그 분위기가 사람들이 반응이 너무 좋다고 송크란축제.
-송크란 물 뿌려주는 축제.
-치앙마이 송크란에 가신 거예요?
-그 축제에 내가 노래하러 가는 거예요.
-그래요?
-송크란도 알아요?
-송크란축제 유명하죠.
-전 세계에서 몇 개 유명한 축제가 있잖아요.
-나 거기 노래하러 가는 거예요.
-그래요?
-그럼 물도 맞으시고 노래를.
-물 맞으면서 노래하시겠네요.
-그래서 지난번에 겨울에 거기 가서 노래했을 때 외국인들 무대에 뛰어올라가서 춤추고 해서 굉장히 아주...
나보고 꼭 와서 그 분위기 살려달라고. 그 시장이 한국에도 왔었어요.
시장하고 시장 아들이 또 국회의원인데 와가지고 나보고 와서 도와달라고.
대신에 태국에 도와주면 자기도 거기에 여러 가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
한번 서로 협업하자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또 갑니다.
거기다 이제 한국관 만들어 달래. 태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화장품 종류, 건강식품,
우리 신발, 의류 이런 것도 좀 파는 건물 줄 테니까 한국관 만들어서 거기다 좀 해달라고 또 요청이 왔어요.
-대표님 말씀 들어보니까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해 나가시는 탁월한 능력이 좀 보여지는 것 같아요.
많은 청년들에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거든요.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대표님 어떻게 지금 방송을 보고 있을 청년들에게
이거 하나만은 좀 해봐라 해 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이거는 좀 해 봤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전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지금은 오늘 내가 안 됐지만 내가 왜 안 됐냐. 내가 뭔가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부족함을 채워온 걸 세상에 알면 고객은 굉장히 똑똑해요. 고객들은 굉장히 똑똑합니다.
어떻게 똑똑하냐. 고객들은 더 새로운 거 더 좋은 걸 찾고 있어. 더 좋은 거 더 새로운 거.
저기 가면 좋은 거 나왔어 나왔어. 결국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결국엔 정상에 올라간다.
-지속적인 노력. 끊임없이 포기하지 말고.
-옛날에 신발 회사들, 어떤 회사들 내가 들어가는 꿈도 못 꿨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와서 다 이겼잖아요.
-그러니까요. 예전에 신발을 만들고 싶다라고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던 어렸을 때의 기억도 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신발이 많이 팔리는 하나의 회사의 대표로서 계시니까
그런 지점들이 참 되새겨 보면 많은 생각들이 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고마운 세상이라는 또 노래도 만들었어요.
가사 내용이 어떤 식으로 했냐. 이런 메시지의 노래도 또 만들었습니다.
-딱 가사만 들어도 따뜻해요.
-노래라기보다 시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좀 들긴 하네요.
-또 구두 명장에서 또 사업가로 그리고 가수로도 활동하고 계신 우리 대표님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앞으로. 제가 이제 나이가 66이거든요. 66인데 내가 언제까지 살아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먼훗날, 먼훗날 내가 진짜 이 세상에 저 세상으로 넘어갈 때, 넘어갈 때 후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결국엔 후회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안 했을 때 후회하는 거거든요.
열심히 노력했는데 후회할 게 없는, 후회하지 않으면서
내가 산 세상, 고마운 세상 감사했습니다, 빠이빠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러면서 나중에 후손들이 저 할아버지 멋있는 할아버지였어.
후손들한테 박수 받을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 되는 게 꿈입니다,
-멋있는 할아버지 되는 게 꿈이라는 말씀 기억에 많이 남네요.
-너무 멋있으세요.
-마지막으로 좀 질문드릴 텐데 대표님에게 있어 구두란 무엇인지 한번 말씀해 주시죠.
-구두란? 저한테 구두란 김원길의 인생이다.
-인생이다.
-김원길의 인생이다.
-구두로 시작하셨고 구두로 힘들었었고 구두로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이루셨고.
-그래서 인생이란. 옛날에 인생이란 뭘까를 고민도 해봤어요.
19살 때 내가 먹고살 거 없어서 해결하고 나니까 인생이 뭘까, 인생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1년 동안 많은 질문을 했었어요.
그런데 인생이란 스무 살 때 정의를 썼습니다.
인생이란 내 앞에 놓여 있는 끝없는 삶의 계단이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계단. 올라가기 싫으면 안 올라가든 그런 계단이 있다. 딱 맞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이 삶의 계단, 구두의 계단이 가도 가도 끝이 없어요.
그런 계단이 있는 거. 그래서 구두란 김원길의 인생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구두로 걸어가고 있는 계단 같은 것이다라고 저희가 정리를 좀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어떠셨어요?
저는 대표님의 그 성공 스토리를 들은 게 아니라 대표님의 한 편의 좋은 철학 책을 한 권 읽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방송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오늘 김원길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까 그 말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좀 느낀 시간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이 편안하길 바라면서 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성을 담아서 만들어내시는 우리 대표님.
그리고 가는 걸음걸음이 다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시간과 철학 그리고 도전이 만들어낸 김원길 대표님의 걸음도 탑클래스가 같이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탑클래스가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이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가연 아나운서는 신발 좋아하시죠?
-신발 그렇죠. 우리 빠질 수 없잖아요,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그렇죠, 여성분들도 구두 모으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러잖아요.
신발 고르실 때에는 가장 먼저 뭐부터 보세요?
-물론 디자인이나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편한 게 최고다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아무리 예쁜 신발이어도 편하지 않으면 바로 무용지물이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무려 50년 동안 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고 합니다.
-신발 고민을 50년 동안 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신발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시죠.
어떻게 하면 더 예쁜 신발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모든 인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내 컴포트화 1위 기업 바이네르의 김원길 대표님 모셔보고 오늘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시죠.
대표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먼저 탑클래스 시청자 여러분들께 인사 한번 부탁드릴까요?
-안녕하세요. 구두 만들기 구두장이 김원길이고요. 세상을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남자 김원길입니다.
오늘 잘 살펴봐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벌금도 내겠습니다.
부족한 거 있을 때는 제가 구두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즐겁게 사신다고 하는데 벌써 말씀하시는 것부터 즐거움이 굉장히 묻어난다고 생각이 되네요.
-뿜뿜.
-그렇습니다. 대표님이 이제 신발을 만드시잖아요. 근데 신발과의 인연이 무려 50년 전이라고 저희가 들었습니다.
그럼 10대 때부터 이제 신발을 만드신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첫 시작에 대해서 좀 이야기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구두 만들기 시작을 언제서부터 했냐 하면은 저는 이제 중학교까지는 다녔어요.
제가 7남매 중에 셋째. 셋째인데 우리 형하고 누나는 중학교 못 다녔어요.
-그때는 그랬죠.
-나는 이제 그래도 중학교 다녔어요. 중학교 다니면서 내 동생들이 또 4명이 있어.
4명 있는데 걔네들은 공부를 해야 될 거고 그래서 중학교 다니면서 고등학교 못 가는 거 알고 있었어요, 나는 내가.
알고 있었으면서 그러면서 중학교 졸업하고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고민을 많이, 이 고민 저 고민하다가 그때 이제 작은 아버지가 서산에서 양화점을 했었어요.
양화점을 하시는데 작은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예요.
야, 기술을 배워라. 기술을 배우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구두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요. 어린 나이부터 일을 그럼 시작하신 거잖아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드셨던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힘든 거는 이제 기술 배울 때. 이제 기술 배울 때 이제 좀 열심히 좀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고
기술을 배워야 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그때 이제 서산에서 이제 구두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누가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한마디를 해 주시는 거예요.
야, 너는 나이도 어린데 이 시골에서 시골 기술 배워서 되겠어? 그래도 서울 가서 서울 기술은 배워야지.
그 얘기를 누가 딱 해 주는 거예요.
그 소리 듣는 순간 맞아, 나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워야지 그 마음을 먹고 작은아버지한테 얘기했습니다.
나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울래요 그랬더니 너 서울에 아는 사람 있어?
서울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서울에 가면 양화점, 신발가게 양화점 많이 있잖아요.
거기 가서 취직하면 됩니다. 너 진짜 네가 갈 수 있어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홍성 가서 기차 타고 영등포역에 18살 때 내렸습니다, 제가.
-무작정 그냥 어떻게 보면 서울로 상경하신 거네요.
-맨땅에 진짜 헤딩을 하셨네요.
-영등포역에 18살 때 내려가지고 영등포 여기 양화점, 구둣가게 많이 다니면서 나 좀 구두 조금 만들어 봤는데 일자리 달라고.
그때 영등포 일대 구둣가게 다 뒤졌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자리가 마음같이 잘 안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좀 외지 쪽으로 지금은 옛날에는 목동이 논이었어요.
목동 가는 길 쪽으로 쭉 가다 보니까 그쪽에 양화점 한 군데에서 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영등포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두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서 기술을 익히셨을 텐데 또 그 익힌 기술로 기능대회에서 메달도 따셨다고 들었어요.
-욕심이 한 계단 또 올라가고 싶은 거야.
-그렇죠, 아무래도.
-내가 납품 여기 공장에 있는 거보다. 저기 케리부룩 가서 일하고 싶은 거예요, 이제.
그래서 사장님한테 나 케리부룩에서 일하고 싶은데 좀 잘 만들어 달라고.
거기 가서 얘기했더니 한번 기다려 보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기다려 보라고 그래서 기다렸는데 연락이 안 와.
몇 달 지나서 이제 끝났구나, 틀렸구나 그러고 있는데 그다음에 와가지고
아직도 케리부룩에 오고 싶냐고 누가 얘기하는 거예요.
-아직도 생각이 있니?
-그렇게 번쩍 들어서 아이고, 고맙습니다 인사했지.
그랬더니 거기 가서 일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는 거야.
내가 하천 공장에서 어떻게 기술자를 빼올 수 있냐.
내가 그래서 너 사장하고 내가 합의를 했다. 얘 뽑아가는 대신에 일거리를 많이 주겠다.
그래서 제가 거기 케리부룩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님, 죄송한데 메달은 언제 따실 겁니까?
-그래가지고 거기 가서 일을 하면서.
-케리부룩에서 이제 일하기 시작하셨군요.
-케리부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 친구 한 친구가 기능대회 나가서 메달 딴다고 훈련하는 거야.
-거기에서 만나셨구나.
-거기에서 만난 거야. 케리부룩에서 그 친구가 훈련해 가지고 메달 따겠다고 훈련을 하는 거예요.
부러운 거야, 그래서. 자극을 받으면서 또 슬펐어. 슬펐는데 그 친구가 힘들다고 도망가 버렸어.
-이제 대표님 차례.
-그러니까 사장님이 딱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하나 만들라고 시켜보면 되지요. 딱 그러는 거야.
아차. 하나 만들라고 시켜보는구나. 그래서 그때서부터 이제 시작이 훈련이 된 겁니다.
-그때부터 남성 신발도 같이 하신 거였구나.
-그거는 이제 기능대회 훈련을 시작한 거예요, 이제.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시작이 훈련할 때였군요.
-그때는 이제 공장에서 만드는 기술자였었고 이제 기능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해.
그때 72일간을 남겨놓은 거, 72일을 남겨놓고.
-칠십 며칠밖에 안 됐는데 그게 준비가 됐군요.
-72일 동안 진짜 열심히 해서 잘 만드니까 이거 잘 만드네. 마지막까지 금메달이다,
금메달 했는데 금메달이 안 된 거야, 이제. 한 가지 실수를 했어.
-상심이 크셨겠네요.
-한 가지 실수를 해가지고 금메달 아니라 동메달했어요.
-그래도 메달을 따셨네요.
-얼마 준비를 안 하신 거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시죠.
-동메달 따가지고 회사에 들어오니까 회사에서 광고하려고 딱 준비해 놨는데,
금메달 딴 거 기획사 준비해서 해놨는데 회사 들어왔더니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동메달은 필요 없다 이거지. 그래 가지고 진짜 너무 슬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그러면 금메달 못 땄으니까 포기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하셨습니까?
-그때 이제 하도 그래서 이제 하루도 못 쉬었으니까, 그때.
끝나고 나서 나 좀 쉬겠습니다. 휴가 좀 내가지고 그때 이제 용산에서 완행 열차 타고 부산에 간 거지, 이제.
-이게 전국을 다 돌아다니셨구나.
-부산. 부산에 가서 부산 내려오면 태종대.
태종대 딱 한 바퀴 돌면서 거기 촛대바위 밑에 내려가 가지고 거기서 이제 신세 한탄하는 거지.
왜 나는 진짜 왜 이렇게 맨날 안 되는 게 많을까.
내 친구 애들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나와서 폼나게들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맨날 힘들까.
거기서 이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이제 신세 한탄하는데 한 세 잔 정도 마셨어요.
마셨는데 술에 탁 취하더라고.
술에 취해가지고 신세 한탄하는 걸 잠시 까먹고 그 아름다운 그 경치에 촛대바위서부터
저쪽에 오륙도서부터 그 멋있는 경관을 이거 누가 이렇게 멋있게 만들었지 그 경관을 구경하는 거야, 이제.
그러면서 누가 만들었나 그랬더니 바람과 파도가 그 순간에도 그 갯바위를 깎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거기서 욕심이 생겨요. 나도 바람과 파도처럼 살고 싶어.
그랬더니 그런 마음을 먹으니까 속으로 바람과 파도가 저걸 만들었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렇게 보니까 반만년 우리나라 그때 한 몇천 년 걸린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72일간 훈련하고서 내가 바람과 파도. 그래서 속으로 그래.
바람과 파도, 속으로 나 속에서 그러더라고요.
택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또 확 주저앉는 거야.
나 또 안되네. 그러면서 거기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뭐냐?
그래, 바람과 파도처럼 살 수는 없어도 바람과 파도의 저 끈기를 흉내 내고 살면 어떨까.
바람과 파도의 저 끈기를 흉내 내고 살아보자. 거기서 그 마음을.
-깨우침을.
-그러면서 딱 흉내 내고 살다 보면.
-언젠간.
-내가 지금은 동메달이지만.
-나중에는.
-저 미래에는 금메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태종대 갯바위 바람과 파도가 제 친구가 됐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셔야 되는 게 되게 좋은 말씀해 주신 게 원래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하잖아요.
안 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칠십 며칠 만에 뭔가가 된다? 그건 세상 사람들 다 잘되죠.
그런데 그 지점을 얘기를 해 주신 것 같아요.
계속 시간과 내 노력과 내 마음과 이런 모든 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라는 걸
그때 이제 처음 느끼신 거라고 생각이 되어지네요.
-그럼 그러시다가 대표님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거예요?
-브랜드를 만들게 된 동기가 이제 회사에 다니다 회사에서 그만뒀어요.
처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 회사 관두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될까.
그래서 신발 처음에 부품 공장을 하다가 이게 장사가 안 되는 거야.
안 돼 가지고 다시 내가 다니던 회사 그 회사 제품을 내가 갖다 팔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서울지사 만들어 가지고 그 제품을 이제 백화점 안에서 영업을 많이 했어요.
그거 하는데 많이 팔았어요. 잘 가고 있었어. 그런데 회사가 부도가 났어.
-그 K사가 부도가 난 거죠?
-K사가 부도가 난 거야, 이제. 부도가 나가지고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 되겠다.
-거기서 느껴지셨군요.
-그래서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 되겠다.
-딱 그게 계기가 되었네요.
-그래서 이제 옆에서들 이제 백화점에 이제 잘 나가는 바이어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요즘엔 그 회사는 이제 버리고 편한 신발을 고객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진짜 스쳐 지나가는 말이 편한 신발.
고객들이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하니까 좋아하니까 그쪽으로 한번 개발하면서 브랜드를 한번 찾아봐.
그러면서 이제 일본 가서 일본 시장 조사하고 미국 가서 미국 시장 조사하고.
-미국도 다녀오셨어요?
-미국도 다 조사했죠. 그러면서 그것도 다양하게 하다가 다시 또 이태리 가 가지고.
-이태리까지.
-이태리 가서.
-수제화의 또 메카.
-엄청나게 시장 조사했지. 하다가 그래서 이태리 가서 이제 결국에는 그때 한 3000개 정도 중에서 찾고 찾다가.
마지막 날 딱 찾은 거예요. 이걸 찾은 거예요, 지금.
-근데 대표님 지금 생각해 보면 신발을 만드시는 일과 사업을 시작하는 일은 굉장히 좀 달라 보이거든요.
어떻게 시작을 하신 건지는 알겠는데 단순히 사업을 시작했다라는 개념보다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자금도 부족하실 거고 지금 이태리까지 다녀오시고 미국 다녀오시고 막 이러셨으니까.
그때 좀 많이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참 힘든 거 사업 시작하면서 참 눈물 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잠을 못 자가지고 누워서 딱 잠자려면 1시 되면 깨는 거야, 이제.
-새벽 1시요.
-새벽 1시 되면 깨 가지고.
-걱정이 많으니까.
-1년, 2년, 3년 한 5년 정도 버티니까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더라고.
-너무 정신없이 살아오셔서.
-너무 힘들어 가지고. 왜 그러냐면 자금이 부족해서.
-자금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때 96년도에 너무 힘들어서 그냥 내 인생 한 번 그냥 끝내버리고 싶었어요.
-안 좋은 생각까지.
-그래서 그냥 내 몸을 그냥 확 그냥.
-그 정도까지.
-던져버리려고 마음을 먹다가 내가 남의 것 떼어먹고 죽으면 어떡하나.
그래서 그때 남의 거 떼어먹고 죽으면 안 되지, 욕먹으면 안 되지. 내 자식들이 욕먹겠다
이 생각을 해서 그래, 일하다 죽자. 일하다 죽으면 남들이 욕은 안 하겠지.
그러면서 일하다 죽는. 일하다가 무얼 봤느냐.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어요.
-어떤 제품이에요?
-모델 번호가 3074라는 모델 번호야.
-3074 여성화예요, 남성화예요?
-여성화요.
-여성화인데.
-그러니까 편한 신발인 거죠? 기능성 신발.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나중에 이제 매장 직원들한테 그 신발이 왜 잘 팔리나, 왜 잘 팔리는지 이유 좀 찾아와 봐.
그게 왜 잘 팔리는지 그거 좀 알아봐 그랬더니 우선 편안함.
편안하고 신으면 예쁘다고 한다. 편안하고 예쁜 걸 두 개를 다 가지고 있었던 제품을.
-두 개를 다 갖추기 힘들잖아요, 사실.
근데 또 당시 세계의 구두 트렌드가 컴포트화로 바뀔 거라는 걸 알고 계셨어요, 대표님?
-그러니까 보면.
-또 이탈리아로 또 바로 향하셨다고.
-그때 한마디 누가 해줬던 게 참 고마운 거지. 요즘엔 편한 신발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쪽으로 한번 방향을 잡아봐.
-알아차리시고 이탈리아로 가신 거군요.
-그 말이 결국에는 내가 세계 시장을 돌면서 편하고 좋은 신발을 찾기 시작했던 거죠, 그때부터.
-그래서 이제 미국도 다녀오시고 이탈리아도 다녀오시고 그런 거구나.
-일본, 미국, 이탈리아, 중국. 그때 시장 조사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 그런 신발을 딱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좀 궁금해요.
-이탈리아 가서 이제 전시회에 가서 이제 볼로니아였었어요.
볼로니아전시회 때 진짜 찾고 찾고 찾았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근데 마지막 날 이렇게 딱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거 하면 되겠다. 찾았어.
-저렇게 만들면 되겠다.
-저 신발이면 되겠다. 그래서 내가 그 회사에다가 이 신발 내가 한국에 좀 가져가겠다, 팔 수 있냐.
그랬더니 한국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 안 판다는 거야, 이제.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그래 가지고 3일 동안 매달려 가지고 다 한국에다 내가 팔아보겠다고 그랬더니
한번 그럼 주문이나 넣고 가봐, 답변 줄게. 그래서 안 판다고 그랬으니까 주문을 왕창 넣었어요. 굉장히 넣었어.
컨테이너로 한 컨테이너 정도 될 정도로 양을 넣고 그러고 왔더니 한국에 왔더니 연락이 왔어.
신용장 개설하면 물건 만들어 줄게 딱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거래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이제 물건을 들여와서 한국에 판매를 하기 시작하신 거군요.
잘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게 그러니까 힘드셨고 사실 자금도 이런 것도 부족하셨을 것 같고
그러니까 물건을 가져오는 것도 엄청나게 돈을 많이 주고 이제 가져와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포기하시면 끝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거를 덮고 떠나면 끝나는 거지만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서 돌아다니시면서 새로운 걸 찾아내겠다라는
대표님의 의지가 그때 당시에 굉장히 좀 높았을 거라고 생각이 되기도 하네요.
-근데 그냥 왜 그러면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그때 어떻게 그렇게 그냥 나도 지금 와서 이렇게 봐도 내가 봐도 기특해 보여, 내가.
-위기 때마다 대표님이 넘기시는 대표님만의 굉장히 큰 장점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 이탈리아 브랜드 그냥 다 인수하셨잖아요.
-이제 그 브랜드 가지고 한국에서 이제 시작해 가지고 굉장히 잘 팔았어요.
잘 파니까 한국 사람들이 거기 가서 나한테 물건 팔아, 한국 사람들 거기 줄 서 버렸어.
-우리한테도 팔아라.
-나한테도 팔아라, 나한테도 팔아. 한국 사람들이.
그래가지고 이게 한국에서 내가 잘 팔리니까 그게 너무 힘든 일이 또 벌어지는 거야.
-남한테 뺏길 위기.
-그런 위기가 많이 있었어.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늘에서 도와줬어요.
하늘에서 어떻게 도와줬냐. 우리나라는 IMF가 있었죠. 유럽발 금융 위기가 이태리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어.
-그때 당시에.
-IMF 때 우리나라 회사가 150개씩 부도났다고 그랬는데 유럽발 금융위기 때 이태리도 회사가 150개씩 부도가 났었어요.
-그 회사도 위기가 찾아왔군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 브랜드 내가 인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왔던 거예요.
유럽발 금융위기가 나한테는 하늘이 준 선물이다. 하늘이 준 축복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준비한 자에게 어떤 큰 위기가 오면 그걸 또 좋은 기회로 바꾸는 일들이 종종 있죠.
코로나 때도 많은 위기들을 겪었던 회사들이 많지만 그걸 잘 이겨낸 회사도 그때 당시에 또 많이 나왔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이라고 연결 지어서 생각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좋다고 신어주는 손님도 있는가 하면 어떤 손님은 이거, 이거 불편해, 불편해.
이거 고쳐줘. 나를 내가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손님들이 한마디씩, 한마디씩 조언해 주는 거.
이거 고쳐야 돼, 고쳐야 돼. 그걸 고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까지 더 좋아하는 거예요.
-어느 날 딸이 선물을 했어요, 이 신발을.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신발을 다 이거 신발만 신는데 한 100켤레도 넘어요.
-100켤레가 넘어요?
-네. 그래 갖고 그런 것도 신고.
-둘레가 깨끗하게 딱 돌아가 있는데 조금 이렇게 좀 세게 당기면 쏙 들어가고 좀 세게 당기는 데가 들어가는 거야.
힘을 똑같이 줘서 당겨야 되는데 힘을 좀 많이 준 데가 있는 걸 내가 그걸 봤던 거예요.
품질 이게 100점짜린데 100점이 맞아야 되는데 이건 뭐 95점밖에 안 된다.
100점 맞게 만들어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대표님 브랜드가 한국 구두 명장과 또 이탈리아 구두 명장이 함께 만드는 브랜드로 또 굉장히 좀 유명하잖아요.
어떤 내용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이태리 처음 그분 만났을 때 거기서 이제 신발 이태리에서 내가 수입해 오면서 신발이 항상 신다 보면 신발에 계속 문제가 생겨요.
문제가 생기면 내가 거기 가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그런 거 가지고 그러는데 그 양반은 그래, 알았어.
그건 쟤가 그러니까 쟤를 내가 알았어, 혼내줄게. 하나씩 하나씩 계속 그쪽에.
그래서 그분이 나도 기능대회에 메달 땄다 얘기하면서 그랬더니 알았어, 알았어, 고마워.
그분이 그러면서 내가 이제 한국에서 수입해 온 신발 여기서 다 팔고 나면 주문하면 보통 3개월씩 걸리니까.
그래서 한국에서도 나도 만들어서 OO로고를 붙여서 팔면 어떠냐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는 거예요.
야, 내가 너는 믿는다. 한국은 너 맘대로 해, 네 맘대로 해. 그래 가지고 참 이게 많이 그래서 참.
-좋은 관계를 유지하신 거네요.
-신뢰가 쌓인 거죠.
-거기 가서 이제 그분이 나한테 너는 내가 믿는다.
네가 신발을 만들어서 팔면 이 브랜드에 더 도움이 되지 손해 갈 거 없다는 걸 내가 안다.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참 그런 고마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 만들어서 판매가 되기 시작한 거고요.
-그렇게 해서 판매가 됐군요. 또 현재 국내 컴포트화 1위 기업이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
1년에 몇 켤레 정도가 판매가 될까요, 대표님.
-글쎄요, 1년에 뭐 한 35만 켤레 정도.
-35만 켤레요?
-정말요?
-35만 이게 가늠이 안 되네요. 35만 켤레면. 수제 컴포트화 말고 또 다른 장르의 신발에도 계속 도전 중이신가요?
-요즘에 이제 많이 시작한 게 이제 운동화도 많이 만들고.
-운동화도 만드시고.
-골프화도 만들고 테니스화, 배드민턴화 이제 다양하게 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실 때 이 좋은 신발의 기준이란 과연 뭘까요, 대표님.
-좋은 신발이란 나를 도와주는 신발이 진짜 좋은 신발이죠.
나를 도울 수 있는. 신발이 결국에는 나의 주춧돌입니다. 주춧돌이 무너지면 내가 삐그덕거립니다.
-중심 잡기가 힘들죠.
-그래서 결국에는 좋은 신발은 나를 잘 받들어 줄 수 있는 신발이 최고입니다.
-그렇죠. 신발이 불편하면 하루 종일 불편하잖아요.
-계속 집중도 안 되고 일에도 집중이 안 되고 걷지도 못하고 생활 전반에 조금 불편함을 끼치는 것 같아요.
신발이 불편하면. 그런데 신발 한 켤레를 완성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세요?
혹시 제일 예쁜 거? 아니면 균형? 이런 여러 가지가 있을 거 아니에요.
-우선은 이제 밸런스가 내 몸에 딱 나를 잘 받아주는지 균형을 잘 받아줄 수 있게.
-균형감이 중요한 건가요?
-그러고 나서 또 걸으면서 걸으면서 벗겨지지 않게 잘 그런 것도 해야 되고
그러고 나서 이제 그런 거에서 디자인도 거기에 맞춰가지고 이제 골고루 다.
사실 한 개가 잘못돼도 신발을 만들다가 어디 하나 기스가 나면 그게 불량이 됩니다.
-흠집이 나면 또 이게 불량이 되는 거죠.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이 돼야 좋은 신발이 될 수 있는 거군요.
-진짜 디테일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공장에 돌다가 이렇게 신발 만든 게 잘못된 신발이 있으면 저 신발이 그래, 누구한테 공짜로 줘도 될까?
팔기는 그렇기 때문에 공짜로 줄까. 공짜로 주고서도 욕먹을 것 같아. 이런 걸 줘.
욕먹을 것 같으면 그건 잘라 버리는 게 나은 거예요.
그러니까 공짜로 주더라도 얘들은 이게 좀 기스는 났지만 품질은 참 이거야.
그 소리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면 잘라버리는 게 낫다 이거죠.
-그렇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키높이 구두 많이 신거든요.
-그래요?
-이것도 약간 키높이 구두이긴 한데 이런 거는 좀 불편하고 좀 건강에 안 좋은 건가요? 장인이 보실 때는 어떠신가요.
-그런데 그거를 밸런스를 잘 잡아가지고 높아지는 만큼 그만큼 발바닥이 나를 그러니까.
편한 신발이란 이 발바닥이 그래도 좀 이렇게.
-아치가 있죠.
-이게 넓은데 나의 체중을 골고루 나눠 받을 때 그 발바닥이 힘을 몰아서 받으면 그게 발바닥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확실히 키 높이 구두 신으면 앞쪽에 좀 무게가 두긴 해요.
-발가락...
-그러니까 그거는.
-발가락.
-좀 뭐한 얘기인데 그건 내가 만들면 그것도 다 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정말요?
-제가 좀 몸을 이렇게 앞으로 돼 있어 가지고.
-그리고 더 거북목 되는 거예요.
-별명이 약간 피사의 현희었어요, 약간 이렇게.
-그 정도 가지고. 저 굽 높은 것도 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 구두도. 이렇게 높은 것도요?
-그럼.
-이거가 너무 아프잖아요.
이게 매일 또 신고 있어야 하고 또 저희는 힐이 없으면 안 되니까 많이 또 서 있어야 하고 평소에 많이 신는데 뭔가 아프더라고요.
-발이 좋아하는 신발이 최고의 신발이에요.
-발이 좋아하는 신발이요?
-눈이 좋아하는 신발이 좋은 게 아니라 발이 좋아하는 신발. 발이 나를 모시고 살잖아요. 발이.
-좋은 길로 인도하고.
-그럼. 그래서 우리 발이 좋아하는 신발을 내가 신어주면 발이 우리 주인은 참 멋있는 양반이야.
그런데 그냥 눈에만 좋은 거 발 아픈 거 싫으면 우리 주인은 눈밖에 몰라 딱 그러거든요.
발이 주인을 배신한다니까, 잘못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신발을 우리가 고를 때 신발을 사잖아요.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면 좋을까요.
-우선 신어 보고 걸어 보고. 걸어 보고 이 정도면 내가 세상 누빌 수 있다 그 정도는 돼야지 그게 아니면.
-착화감이 중요하군요.
-그럼요. 그게 아니면.
-이걸 신고 내가 전 세계 어디든 가도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딱 들어야 하는 신발이군요.
-신발이 편안해야 세상이 넓어집니다.
-장인.
-근데 그렇게 보면은 디자인을 좀 제일 마지막에 보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거든요.
-저는 디자인은 그래서 많은 걸 이렇게 보거든요.
그래서 내가 공장을 디자이너들 한 10명씩 데리고 일하고 그러는데 디자이너하고 기술사들하고 많이 싸워.
-그러겠네요.
-디자이너들하고 기술자들하고 많이 싸워.
싸우다 보면 디자이너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에서 디자이너들한테 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남의 거 카피하지 마라. 카피하다 걸리면은 벌금 100만 원 때린다. 한 디자인을 만들어 놓으면.
-무섭다.
-남의 거. 그래서 개발 정신을 나는 이렇게 만들었어요.
-근데 그만큼 장인 정신.
-새로운 경쟁사의 새로운 제품을 보면 저 제품을 만든 사람의 의도가 무엇일까.
어떤 것을 저 속에 담아서 저걸 만들었을까 그거를 한번 상상해보고 그걸 찾아내자.
그러고 나서 저 제품의 장점이 뭘까. 그러고 나서 저 제품의 단점은 무엇일까.
단점이 뭘까. 그러고 나서 저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 만들기에 도전하자. 그건 저의 개발 정신입니다, 저의.
-대표님의 구두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남의 거 따라 하지 말아라. 너만의 독창성을 찾아라.
그다음에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봐라.
새로운 제품 나왔으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라.
-그럼요. 분석하고 나서 그것보다 더 좋은 걸 만들기에 도전해야지 흉내 내는 사람은 1등에 갈 수 없어요.
-맞습니다.
-구두에 대한 애정이 진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대표님이 지금 말씀하신 걸 너무 공감해요.
남 따라 해서 어느 정도까지 갈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기는 쉽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남 따라가 가지고 1등을 할 수가 없어요.
-내 걸 만들고.
-그럼.
-또 최근에 엄청난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그게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대상. 이게 어떤 시상식인지 좀. 진짜.
-여긴 정말 유명한.
-보니까 뉴욕 페스티벌에서 주는 국가 브랜드 대상.
그거 제가 상 받았는데 거기서 그게 어디서 주는 건데 그거 준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거 받을 거냐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해서 그걸 주냐 그랬더니 제화 업계에서 신발 업계에서 남녀화 해 가지고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가지고 제품 인지도서부터 반응, 고객 관리서부터 다 조사해 가지고.
-종합적으로.
-종합적으로 해서 여기에 1등으로 뽑혔다. 받겠냐. 감사합니다 하고 받은 거지.
-지금 이거 받으신 거는 말만 들어도 대한민국 사람들 다 아는 상이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굉장히 그 제품군에 의해서 제일 훌륭한 분들에게만 주는 상으로 저도 알고 있거든요.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대표님의 노력과 그 구두에 대한 철학 이런 전체적인 게 다 스며들어서
그 상을 받으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명실상부 어떻게 보면 최고의 구두 명장으로 인정받으신 건데 대표님이 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최고로 인정받으신 분야가 또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혹시 예측 가세요?
-아니요.
-바로 나눔이라고 합니다.
-또 나눔천사시구나.
-그렇죠, 기부 천사로 소문이 자자하세요. 직접 소개 좀 해 주시죠.
-저는 이제 제가 봉사를 언제 시작했냐 하면은 제가 옛날에 배고파가지고 18살 때까지 언제 한번 배부르게 밥을 먹나 했어요.
근데 그때 어릴 적에 배부르게 먹었던 때가 동네 어르신들 잔치 때, 회갑 잔치 때 참 배부르게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그때 얻어먹은 그런 기운들이 그 기운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내가 그렇게 배고프게 살았는데 나를 이렇게 그래도 잘 살게 폼나게. 한강에 가면 요트도 있고.
-진짜요? 요트까지 또.
-멋있게 살 수 있게 누가 만들어줬어요, 나를. 세상이 만들어줬잖아요.
-그렇죠.
-세상 고객들이 나를 만들어줬단 말이에요.
-많은 구두를 사주신 분들.
-그럼. 그래서 내가 봉사를 어디 해야 돼. 세상에 해야 되지 않냐.
그래서 봉사활동 다양한 여기저기 봉사활동 많이 했습니다.
군에 가서 군인들한테 봉사하면서 옛날에 우리 회사 옆에 백마부대. 백마 용사.
-백마. 9사단 아닙니까?
-그래? 여기도?
-죄송합니다. 공익 근무여서요.
-반전, 반전.
-훈련을 거기서 받았습니다. 4주 훈련을.
-신교대?
-신교대.
-내가 거기 가서.
-백마.
-그래서 백마 용사를 뽑아서 유럽으로 7박 8일 1년에 6명씩 연수시키고 그런 것도 했었어요.
-진짜요?
-좋은 일 많이 하셨네요.
-백마부대 명예사단장도 있고.
-그러시군요.
-그래서 1군단에서 1군단 장병들 뽑아가지고 1년에 호주로 연수 20명씩도 시키는 거 있고.
그리고 어르신들 모시고 효도잔치. 서울에서 부산에 다니면서 어르신들 모시고 많이 하면서.
해외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춘천에 얼마 전에 신문에 나왔더라고요.
요즘에 우리나라가 사실 문제가 많은 게 빨리 결혼해서 애를 좀 많이 낳아야 대한민국이 발전하는데
그래서 7남매 딱 이 신문에 딱 조선일보에 있더라고 그게.
-기사에 났죠.
-내가 보고서 그 신문사에 연락해서 전화번호 달라고 그래서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요.
어떻게 부잣집인가 알아봤지. 그랬더니 이것저것 해가지고 애들 가르치느라고 좀 어렵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거기에 1억 기부했습니다.
-박수 한번 주시죠.
-진짜 너무 멋있으세요.
-항상 좋은 에너지가 있으신 것 같고 그리고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또 군인 분들이라든가 다자녀집 많이 힘들 수도 있는 환경이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에게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을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연평도에서 천안함 폭발했을 때 신문에 나오더라고.
천안함 폭발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던 쌍둥이 형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거 말고
나라부터 지키겠다고 해병대에 입대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너무 멋있잖아요.
-너무 멋있죠.
-그래서 그 친구들 내가 또 옛날에 한 번 또 줬습니다. 쓰라고.
-잘하셨네요. 대표님 차라리 그러면 아예 그냥 군화를 한번 만들어 보시는 건 어때요? 편한 군화.
-군화 만들면 지금 군화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먹고살라고 그래야지 나만 먹고살면 안 되지.
-또 그 영역까지는. 가기가 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진짜 앞으로도 계속 이제 기부는 함께하실 예정이신 거죠?
-꿈이 그래도 1년에 그래도 100억은 봉사해봐야 되지 않느냐.
그런 꿈을 꾸고 사는데 1년에 그래도 100억은 좀 해 봐야 되지 않나.
1년에 10억 정도는 오래 하고 살았고.
-멋지시네요.
-1년에 그래도 100억 정도는 봉사하고 살아봐야 저 할아버지 멋있는 할아버지야.
-진짜 이웃 사랑이 뜨거운 게 진짜 너무 느껴지는데.
-대표님의 그 따뜻한 마음이 정말 대화 속에서 묻어 나옵니다.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이 들고 그리고 어렸을 때 또 힘들게 고생을 하셨기 때문에
그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힘든 분들을 도와주시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좀 들긴 하네요.
-밥을 사더라도 부자들한테는 안 사요, 부자들한테는. 좀 힘든 사람들한테.
어디 가서 내가 강의 같은 것도 많이 하는데. 강의 해외에서도 많이 합니다.
호주 가서도 하고 인도네시아, 중국 가서도 강의 많이 하면서
젊은이들한테는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월급을 받는 인생이 멋있습니까?
월급을 주는 인생이 멋있습니까? 부지런히 배워가지고 월급을 주는 인생, 정년 없는 월급을 주는 인생 한번 살아봅시다.
그런 친구들 내가 멘토합니다.
-그러시군요.
-혹시 직원 사랑도 뜨거우실지 궁금해요?
직원들을 위한 복지도 좀 남다를 것 같은데 맞을까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면서 명절 때 집에 못 간 적이 많이 있었어요.
-너무 바쁘셔서.
-바쁜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차비가 없어서 집에 못 간 적이 있어서.
그래서 뒤에서 많이 운 적도 있어. 그런데 조그만 차를 하나 사서 명절 때 가기 시작했어요.
시골 가면서 동네 들어서면 동네 어르신들 차 세워놓고 인사하면서
안녕하세요, 저 원길이에요 하면서 맛있는 거 사드세요 하고 1만 원짜리 하나씩 드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용돈도 드리고.
-그랬더니 얼마 지나서 동네 어른들이, 명절 때 갔는데 엄마가 그러는 거야.
원길아, 동네 사람들이 너한테 돈 받았다고 자랑하더라.
그 소리 들으면서 이러다 김원길이 너 성공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성공이 뭘까?
성공이 뭘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성공이란 그때 몇 년 묻다가 성공이란 정의를 내렸어요.
내가 행복하게 살면서 존경받는 인생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행복지수 1등인 회사 만들기. 어떻게 하면 존경받으면서 살까.
그게 결국에는 내가 돈 열심히 벌어서 사회 봉사하고 살아야 존경받고 행복지수 1등인 회사 만들려면
그래서 직원들한테 말도 사줘 보고 스포츠카 사주고 별장 사주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직원들한테 그런 얘기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나보다 더 멋있는 기업가가 되는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내가 옛날에 다니던 회사 회장님이 그랬어요.
내 회사는 망했지만 네가 우리 회사에서 배워서 여기 오지 않았나. 난 너 보는 재미로, 너 자랑하는 재미로 산다.
나도 이런 말 좀 할 수 있게 여러분 열심히 뛰어서 나보다 더 멋있는, 멋진 기업가 나왔으면 좋겠다.
나의 꿈이고 바람이다, 그런 얘기합니다.
-그런데 대표님한테 오늘 정말 많이 배우는 것 같은데 보통은 좋은 인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거를 꺼려하잖아요.
근데 대표님은 오히려 나가서 좋은 회사를 만들어서 더 키워라라고 말씀을 해 주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회사 가라는 게 아니고.
그리고 옛날에는 처음에 30년 전에 그랬죠, 직원들한테.
직원들 열심히 일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15년 이상 일하면 내가 창업을 도와준다.
그래서 사업 시작할 때 5000만 원씩 지원해 주고 그러면서 지금 같이 사업하는 친구들 한 30명 됩니다.
-동종업계로요?
-네.
-같이 또 대리점도 하고.
-그거 정말 쉬운 일 아니거든요. 대단하십니다.
근데 아까 직원분에게 말도 사주고 스포츠카도 사주셨다고 그런데 저 좀 취직시켜 주시면 안 됩니까?
-배워가지고 사업을 하겠다면 와서 일해도 돼요.
-그렇습니까?
-여기서 월급 받으러 오면 그건 소용 없고.
-그렇죠, 배워서 나가서 더 좋은 회사를 키우면 오케이.
-그렇지, 그건 오케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요즘 또 아까 잠깐 이야기를 하시긴 했는데 가수 활동도 하신다고요?
음악을 만드시고 작사도 하시고 작곡도 하신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노래를, 효도잔치를 오래하다 보니까 노래 가수들 많이 불러서 하다 보니까 어느 고객분이 그런 거야.
사장도 노래 한번 해 봐, 그래서 무대에 가서 노래를 했어요.
-대표님한테?
-노래를 했더니 노래 잘하네 한 곡 더 해 봐.
그러면서 무대에서 노래하다 보니까 많은 가수들 데리고 20년 넘게 했으니까.
우리나라 웬만한 가수들 내가 다 많이 올려봤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하려면 노래를 많이, 연습 많이 해야 돼요.
출근할 때 퇴근할 때 맨날 그 노래 들어야 돼. 무대에 올라가서 하려면.
이렇게 연습할 바에는 내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내 노래를 2014년도에 제 노래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2014년도예요? 12년 전이네요.
-12년 전인데 내 노래 제목이 내가 옛날에 힘들었던 거 너무 힘들어서 진짜 그런데
요즘에는 한강에 가면 배도 몇 개 있고 이탈리아 브랜드도 인수해서 이탈리아 가도 큰소리 빵빵 치고 힘들어도 괜찮아,
제목이 바로 나오는 거예요.
-대표님의 긍정적인 생각과.
-그리고 제가 느낀 게 힘든 걸 극복하시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되게 에너지 원동력으로 삼으시는 것 같고.
-취미생활이 그런 노래하면서 결국에는 사실 지친 나를 일으켜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노래를 틈만 있으면 노래 가사가 써지는 거예요.
-진짜요?
-그래서 노래 가사말 쓴 게 지금 내가 작사한 게 그래도 한 30곡은 됩니다.
-30곡이요? 그럼 직접 활동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냥 취미생활 같이 하시는 겁니까?
-오늘이 금요일이죠. 모레 저 태국 갑니다, 노래하러.
-진짜요?
-진짜요.
-그러니까 거기 초청을 받으셔서 무대 위에 서시는 거예요?
-태국 가서 지난겨울에 태국 치앙마이 시장님하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무대가 옆에 노래하는 데 가서 나 저기 좀 한번 올려줘요 했더니 올라가서 내가 노래를 했는데
다른 사람 할 때는 조용했는데 내가 올라갔는데 굉장히 난리가 난 거야 막 춤추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거기서 3일을 노래했어요.
근데 3일을 했는데 내가 노래할 때 그 분위기가 사람들이 반응이 너무 좋다고 송크란축제.
-송크란 물 뿌려주는 축제.
-치앙마이 송크란에 가신 거예요?
-그 축제에 내가 노래하러 가는 거예요.
-그래요?
-송크란도 알아요?
-송크란축제 유명하죠.
-전 세계에서 몇 개 유명한 축제가 있잖아요.
-나 거기 노래하러 가는 거예요.
-그래요?
-그럼 물도 맞으시고 노래를.
-물 맞으면서 노래하시겠네요.
-그래서 지난번에 겨울에 거기 가서 노래했을 때 외국인들 무대에 뛰어올라가서 춤추고 해서 굉장히 아주...
나보고 꼭 와서 그 분위기 살려달라고. 그 시장이 한국에도 왔었어요.
시장하고 시장 아들이 또 국회의원인데 와가지고 나보고 와서 도와달라고.
대신에 태국에 도와주면 자기도 거기에 여러 가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
한번 서로 협업하자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또 갑니다.
거기다 이제 한국관 만들어 달래. 태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화장품 종류, 건강식품,
우리 신발, 의류 이런 것도 좀 파는 건물 줄 테니까 한국관 만들어서 거기다 좀 해달라고 또 요청이 왔어요.
-대표님 말씀 들어보니까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해 나가시는 탁월한 능력이 좀 보여지는 것 같아요.
많은 청년들에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거든요.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대표님 어떻게 지금 방송을 보고 있을 청년들에게
이거 하나만은 좀 해봐라 해 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이거는 좀 해 봤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전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지금은 오늘 내가 안 됐지만 내가 왜 안 됐냐. 내가 뭔가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부족함을 채워온 걸 세상에 알면 고객은 굉장히 똑똑해요. 고객들은 굉장히 똑똑합니다.
어떻게 똑똑하냐. 고객들은 더 새로운 거 더 좋은 걸 찾고 있어. 더 좋은 거 더 새로운 거.
저기 가면 좋은 거 나왔어 나왔어. 결국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결국엔 정상에 올라간다.
-지속적인 노력. 끊임없이 포기하지 말고.
-옛날에 신발 회사들, 어떤 회사들 내가 들어가는 꿈도 못 꿨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와서 다 이겼잖아요.
-그러니까요. 예전에 신발을 만들고 싶다라고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던 어렸을 때의 기억도 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신발이 많이 팔리는 하나의 회사의 대표로서 계시니까
그런 지점들이 참 되새겨 보면 많은 생각들이 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고마운 세상이라는 또 노래도 만들었어요.
가사 내용이 어떤 식으로 했냐. 이런 메시지의 노래도 또 만들었습니다.
-딱 가사만 들어도 따뜻해요.
-노래라기보다 시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좀 들긴 하네요.
-또 구두 명장에서 또 사업가로 그리고 가수로도 활동하고 계신 우리 대표님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앞으로. 제가 이제 나이가 66이거든요. 66인데 내가 언제까지 살아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먼훗날, 먼훗날 내가 진짜 이 세상에 저 세상으로 넘어갈 때, 넘어갈 때 후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결국엔 후회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안 했을 때 후회하는 거거든요.
열심히 노력했는데 후회할 게 없는, 후회하지 않으면서
내가 산 세상, 고마운 세상 감사했습니다, 빠이빠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러면서 나중에 후손들이 저 할아버지 멋있는 할아버지였어.
후손들한테 박수 받을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 되는 게 꿈입니다,
-멋있는 할아버지 되는 게 꿈이라는 말씀 기억에 많이 남네요.
-너무 멋있으세요.
-마지막으로 좀 질문드릴 텐데 대표님에게 있어 구두란 무엇인지 한번 말씀해 주시죠.
-구두란? 저한테 구두란 김원길의 인생이다.
-인생이다.
-김원길의 인생이다.
-구두로 시작하셨고 구두로 힘들었었고 구두로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이루셨고.
-그래서 인생이란. 옛날에 인생이란 뭘까를 고민도 해봤어요.
19살 때 내가 먹고살 거 없어서 해결하고 나니까 인생이 뭘까, 인생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1년 동안 많은 질문을 했었어요.
그런데 인생이란 스무 살 때 정의를 썼습니다.
인생이란 내 앞에 놓여 있는 끝없는 삶의 계단이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계단. 올라가기 싫으면 안 올라가든 그런 계단이 있다. 딱 맞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이 삶의 계단, 구두의 계단이 가도 가도 끝이 없어요.
그런 계단이 있는 거. 그래서 구두란 김원길의 인생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구두로 걸어가고 있는 계단 같은 것이다라고 저희가 정리를 좀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어떠셨어요?
저는 대표님의 그 성공 스토리를 들은 게 아니라 대표님의 한 편의 좋은 철학 책을 한 권 읽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방송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오늘 김원길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까 그 말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좀 느낀 시간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이 편안하길 바라면서 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성을 담아서 만들어내시는 우리 대표님.
그리고 가는 걸음걸음이 다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시간과 철학 그리고 도전이 만들어낸 김원길 대표님의 걸음도 탑클래스가 같이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탑클래스가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