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클래스
화요일 오후 5시 50분
TV
방영중

다시보기

탑클래스 - 치아에 철학을 심다 허영구 대표, 임플란트 기술의 혁신가

등록일 : 2025-07-30 16:01:30.0
조회수 : 173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어떻게, 휴가 계획 세우고 계십니까?
-휴가 계획은 아직 안 세우고 있는데 혹시 휴가 계획 세우셨나요, 혹시?
-저도 아직 좀 계획을 잘 세우지 못했어요. 저는 이게 휴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일하는 게 나아요.
-그렇죠? 그리고 더우니까.
-육아보다는 편합니다. 저 요즘 본업이 육아거든요.
-그래서 계속 회사...
-녹화하러 올 때 1박 2일로 녹화할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다 알더라고요.
-그래서 표정이 되게 좋으신 것 같아요.
-아닙니다.
-날도 더운데 표정이 제일 좋으셔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육아를 하고 있는 부모님, 다시 한번.
-파이팅.
-대단하시고 파이팅라고 좀 말씀 전해드리고 싶고. 누구나 살면서 선택의 시간들이 오잖아요.
-그럼요. 선택의 기로에.
-그렇죠? 많은 선택의 시간이 있었죠. 사실 이가연 아나운서도 아나운서가 된 것도 엄청난 선택이었던 거잖아요.
-그렇죠,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죠. 인생은 선택의.
-그렇죠? 미스코리아 출전할 때도 그때도 엄청난 선택을 한 거잖아요. 미인들이 너무 많으니까.
-안 그래요, 선배님. 미스코리아 말씀하시면 찾아보시잖아요, 많은 분이.
-찾아보시면 좋죠. 내가 될까 과연 이런 선택의 순간이.
-그렇죠.
-올 수도 있었을 것 아니에요.
-그렇죠. 눈을 한 번 더 깜박일까, 한 번 더 웃을까 이런 것도 있었고.
-그렇습니다. 그럴 때는 거의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그렇죠.
-뭐냐 하면 안전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한번 내가 이것을 도전해 보겠다라는.
-맞아요.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데. 어때요?
그럴 때 가연 씨는 보통 어떤 선택을 하세요?
안전한 쪽으로 가는 편이에요?
아니면 도전, 한번 가보자, 안 가본 길을 가보자 이런 선택을 하는 편이세요?
-사실 많은 분도 그렇고 저도 안전한 것을 더 추구하는 편인데.
-그래요?
-이렇게 작심을 하고 뭔가 확 한 번에 선택을 바꾸지 않으면 좀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예 새로운 것을 가기 힘들잖아요.
-맞아요.
-새로운 방향으로.
-리스크가 없는 도전은 도전이 아니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죠. 내 삶이 달라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요, 인생의 갈림길에서 안전 대신 도전을 그리고
익숙함 대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선택하신 분입니다.
네오바이오텍의 허영구 대표님 모시고 오늘 이야기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대표님 모셔봤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우리 탑클래스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말씀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치과의사이면서 임플란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이사 허영구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멋지십니다. 바이오라는 회사명이 들어가면 약간 좀 어려워져요.
저도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는 투자자 입장으로서 바이오 회사를 투자할 때 제일 어렵거든요.
이게 가늠이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글쎄, 바이오텍이라는 이름이 되게 어렵고요.
그래서 잘 기억을 못 합니다, 회사 이름은.
그런데 제가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생명공학이잖아요.
-제일 어려운 주제.
-그래서 그것을 제가 하고 싶어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또 치과의사이시기도 대표님이시잖아요.
그것만 딱 들어도 진짜 열심히 사셨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치과의사는 안정적인 직장이기도 하고.
-그렇죠.
-환자 보면 먹고는 살잖아요. 그런데 이제 기업을 하다 보니까 힘든 일이 굉장히 많네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 되게 잘하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 치과의사가 되기가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조금 했죠.
-조금이 아니고 많이 잘하셨을 것 같아요.
-거의 전교 1등 하시지 않았어요? 그렇죠?
-글쎄요. 하다 보니까 그래도 치과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서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피부과, 지금은 이제.
-맞아요.
-피부과, 성형외과를 많이 선택하시는데 이때 당시에 치과의사가 제일 점수가 높았어요. 그렇죠?
-우리 때는 안 그래요.
-그래요?
-우리 때는 치과의사가 그렇게 인기가 좋지는 않았다.
-그런가요? 또 저희 때랑 또 다르네요.
-조금 다르죠? 제가 연식이 좀 있어서. 그 당시에는 치과 그러면 하기 싫은 이런 것일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일반 의사보다는 조금 다르기는 했는데 그래도 의사라는 것 때문에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러셨군요.
-그런 것 있죠.
-어렸을 때부터 큰 도전을 계속 계획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이야기 좀 해볼게요. 다 우리 어렸을 때 넉넉하지 않았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셨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떠셨어요?
-원래 저희 부모님은 공무원이셨기 때문에 그래도 좀 부유한 가정이었기는 했는데.
-그러네요.
-그러다가 아버님께서 좀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
그러시면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보장된 길을 놔두시고.
-그리고 곧 망했죠.
-어떻게 해.
-그 이후로 저도 굉장히 힘들게 굉장히 어렵게 살면서 남보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도 어릴 때 했었고 글쎄요, 힘든 일이 많이
있으니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친구들처럼 그렇게 부유하고 행복하게 못 사나, 그런 생각도 하기는 했었어요.
-이게 성공하신 분들의 이야기 들으면 어렸을 때부터 순탄한 상황을.
-맞아요.
-절대 겪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 이겨내고 다들 그러신 것 같아요.
-고난과, 벽에 부딪히고 역경을 보내고 그것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도전 의식들이 자라나고 있는 그런 어린 시절들이 다들 있으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힘든 시간이 다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런데 대학 진학을 하셨을 때 꼭 치과로 정하신 그 이유가 있으세요, 혹시?
-제가 어린 시절에 그런 공연한 적이 있거든요.
연극을 제가 유치원 때 한 적 있는데 그때 제가 의사였어요.
-연극을 했는데.
-의사고 제가 주인공이었어요. 그러면 청진기를 이렇게 하고서 환자를 돌보던 그 기억이 어릴 때 나거든요.
그리고 세상이 전부 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없는 세상은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릴 때.
-자신감이 엄청나셨네요.
-그리고 의사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가 원래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6년을 우선 다녀야 하잖아요.
-(함께) 그렇죠.
-거의 10년을 공부를 해야 하니까.
-등록금도 만만치 않고요.
-등록금이 만만치 않아서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제가 공대를 갔어요.
-정말요?
-공대를 갔다가 있어 보니까 도저히 이게 내 인생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무슨 말씀인지, 공대 공부를 저도 조금 해봤는데 이것은 내 길 아니야, 이런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졸업하면 결국에는 회사에 가야 하고 취직해야 하고 그 어려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워낙 내성적이라서 견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의사가 되어야 하겠다 생각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었죠.
-대학을 먼저 들어가셨다가 그만두시고 다시 도전하신 거예요?
-그만두고 완전히 다시.
-공대남이셨다가 치대남으로 바뀌신 거네요?
-그렇죠.
-훨씬 많은 노력을 하셨어야 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다시 학교를 그만두시고 재입학을 하시려고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시고 노력을 하셨나요?
-1년 했죠.
-천재과 아니십니까?
-그러니까요.
-노력 안 하신 것 아니에요? 그냥 원래 똑똑하신 분 아니십니까?
-지금 보니까 그렇네요.
-진짜. 알고 보니 멘사 회원이시고 그러신 거.
-자신감이 느껴진다는 게.
-그러니까요.
-너무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많이 하셨어요, 등록금 내시려고?
-제가 사실 치과대학에 들어오려고, 합격을 하고 부모님께 갔는데 부모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도저히 너를 대학에 보낼 수가 없다.
-마음 아프다. 마음 아프네요.
-공대 다니다가 그만 두고 치대 간다고 하는데 내가 자신이 없다고 그러셔서.
제가 어머님, 아버님께 그러면 이번 한 번만 딱 등록금을 내주시면.
-입학금.
-입학금만 내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졸업하겠습니다.
-그렇죠, 뭐 장학 제도도 있고 막 그러니까요.
-어쨌든 그거는 모르겠고 어쨌든 무조건 들어가야 하니까.
그래서 그때 돈 1982년이니까는 그때 돈 70만 원 등록금이요. 어마어마한 돈인데.
-엄청 큰 돈이죠.
-그 돈을 어쨌든 제가 아버님한테 뜯어내서 입학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열정.
-의대에 가고 싶었던, 그게 치과대학이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등록금은 어떻게 충당하셨어요, 그 이후로?
-제가 벌어야 하니까요.
-아르바이트를 하셨나요?
-어떻게 버셨어요?
-첫 번째 장학금을 받아야죠.
-그렇죠, 장학금을 받아야죠.
-열심히 해야죠. 공부도 어쨌든 열심히. 왜냐하면 이게 생명 의학이다 보니까.
-그렇죠.
-인체도 공부하고 싶고 환자도 돌봐야 하니까 열심히 해야 하니까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장학금을 많이 받았어요.
-장학금을 많이 받으셨구나.
-역시.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부족했구나.
-70만 원씩을 매학기에 벌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반액 장학금 뭐 이렇게 나오잖아요. 전액을 다 주지는 않죠.
-전액이 아니구나.
-전액을 다 주지는 않아요. 그렇지는 않고 아르바이트도. 아르바이트를 주로 많이 해야죠.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셨어요?
-치대에 나오면 인기가 있어서.
-과외.
-과외도 좀 그런데 과외는 제가 잘 안 했어요.
-왜요?
-왜 안 했냐. 과외는 좀 재미가 없더라고요. 제가.
-호불호가 확실하시구나.
-옛날 공부하고 또 다시 가르치려고 하니까 꼴도 보기 싫거든요. 대학교 들어가고 나면.
-그런 것도 있고. 이 젊은 시절에 20대 때 내가 가장 어려운 일, 그러니까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극한의 어려움이 무엇일까.
-몸이 힘든 일.
-그런 거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게 많았어요.
-멋있으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셨죠?
-왜냐하면 학생의 신분이고.
-맞아요.
-내가 좀 뭘 그런 것을 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하기 시작했죠.
-무슨 일을.
-이것저것이 어떤.
-뭔데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예를 들어 제일 하기 쉬운 게 구두 나르는 거죠. 구두닦이한테 구두 나르는 게.
-정말요?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구두 날라줘야 하고.
-수거해서 나누어주고.
-그리고 닦기도 하고. 그다음에 신문 나르기. 사과 장사.
-신문 배달.
-신문 배달, 사과 장사 이런 거를 닥치는 대로.
-정말요?
-그런데 보통은 좋은 대학교 나오시면 과외 같은 거 하고.
-과외 하고.
-하실 것 같은데 오히려 이 나이대에 못했던 거를 해보자.
어려운 일도 한번 몸으로 부딪혀보자라는 생각을 하신 거네요.
-젊잖아요. 젊고 제 인생에 가장 황금기가 대학 시절인데 다행히 4년이 아니고 6년이지 않습니까?
치과대는 6년인데 이 6년을 어떻게 멋지게 보낼까.
연애도 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고 그런데 경험도 많이 해야 하거든요.
-그렇죠.
-왜냐하면 인생을 살면서 정말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죠.
-그거를 지금 경험 안 하면 내가 그거를 극복을 못 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그래서 방학 때 여름 방학, 겨울 방학 때 남들은 노는데 저는 열심히 그런 데 다니면서 했죠.
-사실 지금 제 나이에 이런 알바를 한다면 몸이 못 버팁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가능했던 게 젊고.
-그렇죠.
-젊죠.
-대학생이고 시간이 또 허락이 되고.
-그 나이에는.
-그 나이대는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힘들다고 피해가거든요.
-그렇죠. 어려운 일을 안 하려고 하죠.
-어려운 일을 안 하려고 하죠.
-쉽고 이렇게 항상 즐기고 그러고 싶죠.
그런데 저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를 그냥 재미 없게 살지는 않겠다, 그런 게 있었고.
그리고 더더욱이 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가 대학 시절이라고 생각했어요.
6년, 6년은 진짜 멋지게 살자. 그래서 그냥 열정적으로 산 거죠.
-그렇구나.
-그때 힘드셨어요? 아르바이트하시면서?
-그러니까 되게 힘들었죠. 되게 힘든 게.
-체력도 달리시고.
-재미있는 일이 여러 개 있는데.
-에피소드 좀 이야기해 주세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르바이트 한다고 학장님한테 어디 가야 됩니까 했더니 서울에 있는 어느 호텔을 소개하더라고요. 갔어요.
갔더니 거기에서 접시 닦기를 하래요. 그러니까 식당이에요, 식당.
-그렇죠.
-접시 닦기. 열심히 하루 종일 접시를 닦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 주겠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이상해서 일주일이 지나고서 물어봤죠.
저는 아르바이트생인데 학생인데 치과 대학 학생인데 얼마 주실 거냐고
그랬더니 수습생인데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바라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일주일이나 했는데.
-열정 페이.
-갑자기 깜짝 놀라서 얼마 주실 거냐고 하니까 한 달에 3만 원인가 준대요.
제가 한 달에 30만 원 벌었어야 해요.
왜냐하면 두 달 해서 70만 원을 벌어야 하잖아요.
35만 원을 벌어야 하니까.
-(함께) 그렇죠.
-그러니까 아차 하더라고요. 열흘 딱 지나고 나서 받아 보니까 1만 얼마를 준 거예요.
제가 그거를 그 호텔 로비에 집어던지면서 거기를 나와서 야밤에 간 데가 있어요.
갔더니 거기는 그 당시에 80년대 유행했던 그게 뭐냐 하면 스탠드바.
-알죠.
-아세요?
-알죠, 알죠.
-스탠드바 알아요? 젊은 분이 어떻게 아세요?
-그게 있었어요. 한글로 스탠드바라고 적혀져 있던 게 기억이 나요.
-정말요?
-그렇죠.
-스탠드바여서 네온사인 엄청 화려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에서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죠.
-서빙하셨구나, 거기에서.
-서빙을 했죠, 서빙, 서빙. 그런데 그때 돈 1000원 주면 어마어마한.
-엄청 큰 돈이죠.
-큰 돈을 제가 받았고. 거기에서 비디오도 찍어주고 이렇게 하다가 새벽 4시에 끝나요.
그러면 청소를 하고서 잠을 어디에서 자냐 하면 바닥에서 잡니다.
-스탠드바 바닥에.
-거기 세면 바닥에서 잠을 자요. 자고 있는데 갑자기 뭐가 따끔해서 딱 보니까 쥐가 지나가는데 이렇게 싹 지나가면서.
-쥐가.
-여기를 꽉 물었어요.
-쥐가요?
-네, 그래서 자국 있죠. 없어요? 여기 아까 색칠해서 없는데. 여기 있어요.
-물린 자국이 아직도 있어요?
-있어요.
-진짜 쥐가 물어요?
-그런 적이 한 번 있었고. 뭐 좀 재미있고 힘든 일 없을까 생각했는데. 풀빵장사를 생각한 거예요.
-이거 보세요. 지금 약간 여기에서 잠깐만요. 발상부터 다르세요.
재미있고 즐거운 일 없을까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재미있고 힘든 일 없을까요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사서 고생이 이런 말이구나. 사서 고생하고 싶은.
-딱 맞아요. 사서 고생하는 거예요.
-사서 고생을 하고 싶으셔서 여러 가지 쥐한테도 물리시고.
-맞습니다.
-그러신 거죠.
-말을, 말씀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거는 그때 당시 할 수 있는 고생은 그때 해야 한다.
그거 그때 안 하면 나중에 할 거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젊을 때 해야지 나이 들어서 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남들이 안 해 본 거를 해야겠다. 풀빵장사가 생각 나요.
-풀빵장사요? 붕어빵이 아니라 풀빵?
-붕어빵이에요, 붕어빵.
-붕어빵이죠?
-붕어빵이에요, 붕어빵인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리어카가 있어요.
리어카를 하나 조그마한 거 사고 그다음에.
-사업을 하셨네.
-붕어빵 기계 사야 하잖아요. 그거 청계천에 가서 이만한 거 하나 사고. 그다음에 밑에 연탄불.
-불 때야죠.
-불 하고.
그다음에.
-그때 가스도 없었어요.
-몇 년도였어요?
-가스는 무슨 가스예요.
-연탄불하는 거였어요.
-연탄.
-몇 년도?
-82년, 83년.
-그러면 진짜...
-그런데.
-전혀 상상도 못한.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붕어빵을 구워야 하잖아요.
-레시피가.
-그러면 뭘 해야 해요, 우선.
-반죽해야죠, 반죽.
-기계, 반죽.
-한 번도 안 해 본 반죽.
-집에서요?
-공부만 하셨는데.
-그것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죠.
-또 있어요?
-앙금이 있어야죠.
-앙금. 그 안에 팥.
-팥.
-팥, 팥.
-앙금.
-앙금.
-그거는 우리 어머님이 팥을 삶아서 그거를 만드셨어요.
-어머님도 고생하셨네.
-어머님도 같이하셨네요.
-어머님은 내가 하니까.
-아들이 하니까.
-아들이 하니까 아들을 도와줘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들이 하는 거 해서.
-이전에 좀 만들어 보셨던 거예요? 아니면 그냥 갑자기 그냥.
-그건 한 번도 안 해봤죠.
-처음 만들어 보시는 거예요?
-한 번도 안 해봤죠.
-아니, 어디 배우신 거예요, 그러면?
-저는 안 해본 걸 주로 합니다. 한 번도 안 해본 거를 많이 하거든요.
-진짜 너무.
-못 할 거 없으니까.
-그냥 일단 해보자군요.
-그리고 제일 쉬운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게.
그러니까.
-그럴 수 있죠.
-그래서 그 반죽하고 여기다 팥을 하고서 한 2kg를 리어카를 끌고 시장으로 나옵니다.
시장 나와서 자리를 구하는데 자리가 없어요. 시장에 좋은 길목에 자리를.
-그렇죠.
-누가 안 주잖아요.
-그렇죠.
-그거 또 자리세 내라고 하잖아요,
그때는.
-텃세도 있었을 것 같은.
-그러니까 쫓겨나고 뭐 하고 밀리고 밀려서 저기 뒤에 길거리의 한구석에서 풀빵을 굽기 시작했죠.
좀 슬펐던 거는 이렇게 풀빵을 굽고 있으면 친구들이 지나가요, 이렇게.
팔짱 끼고 자기 애인 이렇게 팔짱 끼고.
-친구들이.
-친구.
-등하교.
-같은 학교 친구에게 지나가면서 이렇게 지나가며 사 주고 그랬을 때 약간 창피한 거?
-어린 나이에 그렇죠.
-그런 거를 경험한 거죠.
-그렇죠.
-그때 그거를.
-강인해지신 거네요.
-견뎌야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멘털이 굉장히 강하게.
-강하게 하려고.
-강하게 자라셨네요.
-강하게 하려고.
-고생하시는 거 약간 즐기시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좀 드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그렇죠.
-아니,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되면 돈도 잘 벌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도 저는 왠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니까 뭔가 하여튼 어려운 경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또 유학도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 당시 유학 가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일뿐더러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도 없는데 자꾸 어디를 가시고 뭘 하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도전 정신이.
-유학은 어떻게 가셨어요?
-한 번도 제가 유학을 하지 않고 졸업을 극적으로 했습니다. 그게 굉장히 컸고 그 당시에.
-그렇죠, 얼마나.
-우리가 50명이 입학을 했다면 그중에 10명만 졸업했습니다. 다 탈락이에요, 탈락.
-공부도 잘하시고.
-제가 공부를 잘한 거죠.
-그러니까요. 공부도 잘하시고. 풀빵도 파시고.
-그렇네요.
-그리고 졸업을 했더니 그때부터 신분 상승이 되는 거예요.
-치과의사니까 이제.
-치과의사 딱 됐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대접. 선생님 오셨어요. 원장님, 선생님 바로 이렇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분 상승이라는 게 월급이 그냥 한 달에 150만 원인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에 월급이 얼마냐.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말요?
-네, 그런데.
-그런데 150을 버시고.
-그런데 처음에 딱 50을 준대요. 그러니까 이제.
-엄청 큰돈이에요. 지금 150만 원 받잖아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선배님. 아닙니다.
-40년 전에 받은 걸 지금 받고 계신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좀 더 받나요?
-당연하죠.
-최저임금보다는 더 받겠네. 미안합니다.
-그럼요. 강산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집안이 핀 거예요.
-폈죠.
-그렇죠, 그렇죠.
-펴서 그런데 그때는 돈이 없잖아요. 처음에.
-그렇죠.
-개업을 못 하잖아요.
-처음에는.
-그래서 페이 닥터로 가서 월급 의사로 갔는데. 오히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경남에 의령이라고 있습니다.
-의령.
-의령.
-혹시 아세요?
-알아요, 알아요, 알아요.
-아세요?
-의령 마늘이 유명하잖아요.
-의성이요, 의성. 150만 원 받는 이유가 있네.
-경남에서 가장 오지예요. 의령이라는 데가.
-맞아요.
-인구 5만밖에 안 되는데. 그런데 거기에 제가 갔어요.
그런데 한 번도 가보지도 않은 곳인데 제가 짐을 다 싸서 가족을 다 데리고 거기로 그냥 가더라고요.
의령에. 그래서 가서 거기에 하다가 3개월 만에 그 치과를 인수해서.
-인수를 또 하셨구나.
-인수를 하게 됐어요.
-장사가 잘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다음에 완전히 대박이 났어요.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었어요, 제가.
그냥 한국에서 거의 둘째가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벌더라고요.
-그래도.
-그때 당시만 해도 개업 의가 별로 없었잖아요.
-그리고 거기 의령에 딱 치과 하나밖에 없었거든.
-치과가 하나야.
-그러니까 하여튼 잘 됐어요. 그다음에 환자는 많고 돈은 버는데 제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병원을 접으신 거예요, 그러면?
-2년 정도 지나니까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공부를 해야겠다.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다른 거 도전하고 싶으셨던 거죠.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그게 뭔가 하는데 그때 임플란트가 딱 떠올랐어요. 그게 1990년.
-1990년대.
-제가 88년 졸업을 하고.
-88 올림픽.
-한 2년 개업을 하고 돈도 좀 벌고 가족을 살려놓고.
그런데 이게 치과의 미래가 뭔지 그쪽으로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임플란트가 딱 떠올랐. 이게 치과계의 미래다. 임플란트가.
그래서 이거를 공부하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그거 딱 그만, 다 접어놓고.
-다 접었어요?
-치과를.
-치과를 다 접었어요?
-접었어요. 가려면 준비를 해야 해요. 영어를 해야 해요, 영어.
-그렇죠, 영어.
-책은 읽을 줄 아는데 말을 못 하니까 영어로 안 돼.
-그렇죠, 그렇죠.
-의사라도 이게 말은 안 돼요.
-그럼요. 단어만 많이 아는 거죠.
-단어만 많이.
-치과의사 용어가 다 이제.
-의학용어만 아시고.
-의학용어가 있으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공부해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토플도 공부하고 GRE 이거 다 해야 하니까.
-입학에 필요한 것들.
-그거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가서 서울에서 또 영어 공부만 했죠.
-임플란트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신 거군요.
-그렇죠.
-1990년대에.
-90
-초에.
-3년에 갔습니다.
-93년. 서태지가 그때 처음 나왔을 때거든요. 난 알아요가 나왔을 때입니다. 1993년 아직도 기억합니다.
-93년.
-92년에 나와서 93년에 대박 나고.
-맞아요.
-진짜.
-그때 임플란트를 저는 진짜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어요.
-제도, 그렇죠.
-임플란트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는 없었어요.
-없었어요.
-그때 막.
-누가 알아요.
-태동을 했고 어디 가서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시다가.
-일본도 있고 미국도 있었어요. 일본은 쉽잖아요. 가는 게. 또 제가 도전 의식이.
-그러니까요.
-어려운 데 가야지.
-미국으로.
-약간.
-미국으로.
-일본은 가까우니까 왠지.
-그렇죠.
-덜 어려울 것 같고.
-그러면 영어를 해야 하니까.
-그렇죠, 그렇죠.
-영어도 할 겸.
-대단하시네.
-미국으로 가게 됐...
-가서 어떠셨어요? 뭔가 한국이랑 미국의 기술적인 차이도 있었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차이가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때 어딘가는 가야 하겠는데 여러 가지가 있죠. 가서 배울 것도 있을 거고.
그다음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도 있고 새로운 문화도 접해야 하고 그래서 뭘 배울지 모르지만 일단 가면 뭔가 하여튼.
-달라질 거다.
-달라질 거다. 이런 생각이.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그때 있었죠.
-아니, 그런데 이렇게 마음먹으시고 행동으로 옮기신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치과가 잘 되고 있었고 돈도 많이 벌고 계셨는데.
-그렇죠.
-임플란트라는 아예 생소한 무언가를 위해 이걸 접고 또다시 모험을 선택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큰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엄청나게 큰일입니다.
-맞아.
-제가 그 당시에는 그냥 당연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다 반대하죠.
-90년대니까 또.
-부모님 다 반대하고. 그다음에 친구들 다 반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 반대해. 야, 그렇게 잘 되는 치과를 놓아두고.
-안전한 치과를.
-왜, 왜.
-굳이, 굳이.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냐. 그래서 다 반대하는 거예요. 다 반대해요.
그러니까 형제도 반대하지 친척들 다 반대하지.
그런데 딱 한 사람이 찬성하더라고요.
-누가요?
-제 아내.
-아내가.
-제 아내.
-왜 그랬을까요?
-사랑하니까. 왜, 사랑은.
-보통 여자들 반대하죠.
-사랑하니까.
-그게...
-사랑하니까.
-너무 순수해서 참 즐겁네요. 사랑하니까.
-아니...
-사랑하니까 잠시 떨어져도 좋을 것 같은.
-그런데 보세요.
-너무 듣기만 해도 좋다, 사랑하니까.
-미국 가잖아요. 미국 가면 돈도 못 벌고. 환자를 못 보니까 돈을 못 벌잖아요.
-미국 제일 많이 반대하셨을 것 같은데.
-그다음에 학비를 내야 해요.
-그렇죠. 학비도 어마어마할 텐데.
-미국 학비도 어마어마해요.
-그렇죠.
-그렇죠.
-그 당시에 또.
-생활비.
-생활비 차이도 더 많이 나고.
-생활비. 뭐 해야 하지.
-환전 하고 또 이러고. 돈 없으면.
-제가 5년을 아무리 돈을 벌었어도 얼마나 많이 벌었겠어요.
그런데 그거를 다 정리하고 가는데 와이프가 좋아하겠습니까?
-사모님은 한국에 계시고. 대표님만 가신 거예요?
-제가 1년 동안 UCLA, LA에서 UCLA에 있으면서 보스턴대학에 어플라이를 했어요.
-또 그렇게 UCLA 가셨으니까 또 보스턴 또 넣으신 거예요?
-제가 UCLA에 있으면서 보스턴대학 치과대학을 어플라이해서.
-학교는 동부가 유명하니까.
-합격이 돼서 제가 한국에 와서 아이들하고 와이프 데리고 온 거죠.
-유학 생활 하실 때도 다 어린 친구들이랑 하셨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그렇죠. 제가 그때 간 나이가 서른다섯. 서른다섯에.
-젊은 나이는 아니셨네요.
-제가 지금 서른에 사실은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졸업했죠.
-군대 다녀오시고.
-군대도 다니고 이랬으니까 서른에 졸업하고 서른다섯에 갔죠. 5년 개업하고. 그러니까 서른다섯에 간 거예요.
-그때 당시 서른다섯이랑.
-맞아.
-지금 서른다섯은 또 다릅니다.
-달라요. 그렇죠, 다르죠.
-돌아온 건 5년 후니까 40살에 돌아왔죠. 그러니까 거기에 있을 때 학생들은 다 어린.
-그렇지.
-스물다섯, 여섯.
-맞아요, 맞아요.
-그 친구들이랑 경쟁했어야 했었잖아요.
-경쟁이 아니라 그냥 같이 친구로.
-같이 공부하고.
-그냥 같이 공부하고.
-쉽지 않으셨겠다, 그렇죠?
-그 생각, 그 확신은 어떻게 드셨는지 모르겠어요. 이거는 임플란트하면 된다.
임플란트 느낌 왔다고 생각하신 게 또 미국 가서 막상 또 공부해 보니까 미래다.
치아의 미래는 임플란트라고 딱 느낌이 오셨습니까?
-제가요. 확신이 가는 것은 경남에 있을 때 임플란트를 제가 심었어요. 환자한테.
-그때 당시에도요?
-심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알아요. 이게 된다. 임플란트는 되는 거다.
-반발도 좀 있지 않았어요?
-환자들은 좋아했는데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거 위험한 거 왜 하냐고.
-그러니까 이거 잇몸에 박아서 끼워 넣는 건데.
-그거 위험한데 그거 하면 큰일 난다.
-그렇죠. 그렇게 생각.
-그러니까 저는 임플란트를 배운 사람이 아닌데 그러면 제가 나중에 또 욕을 먹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결심에서 유학을 결정하셨구나.
-임플란트는 미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가게 됐죠.
-선견지명이 확실히 있으셨네요.
-제가 가서 정말 유학을 가면 많이 배우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결국은 내가 가서 얻어내는 거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맞습니다.
-이게 그렇죠? 누워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사과 떨어지는 거 아니잖아요.
-참 이 말씀은 저희 아버지도 참 많이 하시는 말씀이에요.
-사과.
-비싼 나이대 분들이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려봐라.
그게 사과가 입으로 떨어지나. 이 말 참 많이 하세요, 진짜.
그런데 저는 궁금한 게 여기서 끝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대표님의 생각 지금 잘 들어보면 유학을 가서 임플란트를 배워
오겠다고 해서 이제 여기서 거의 대부분의 생각은 임플란트를 우리나라로
와서 많은 환자분에게 시술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 이익도 볼 수 있겠다.
거기가 보통 종착역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끝내지 않고 이거를 사업으로 도전을 하신다는 말이죠.
이것도 쉬운 도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학을 5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때 IMF 터졌어요, 97년.
-97년.
-97년.
-97년 제가 9월에 왔는데 그때 터졌어요.
-그때 IMF.
-말에. 제가 예상을 했었어요. 5년 후에는 나는 거지가 되겠구나.
내가 유학 갈 때 이거 다 쓰고 그냥 거지가 돼서 돌아오겠구나 생각했죠.
집도 뭣도 아무것도 없고 딱 1억이 빚져 있더라고요. 그 당시에.
-진짜요? 그 당시에 1억이면 엄청난 건데.
-1억 빚이 있는 거예요.
-벌었던 돈을 다 쓰신 거예요.
-다 썼죠, 뭐. 돈이 많이 벌었다기보다는.
-마음이 아프셨겠다.
-그게 아니라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 거죠.
-그렇죠, 그렇죠.
-그런데 단 한 가지 배웠다는 것 때문에 제가 교수가 됐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 보는 것을 했죠.
그러면서 제가 임플란트를 가르쳐야겠다.
의사들한테. 그 생각을 하게 됐죠.
-전수를 해주신 거네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배우신 것을 그대로 학생분들한테 전수를 해주신.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죠, 열심히.
-그러니까요. 저였으면 독점했을 것 같거든요. 욕심을 하지만 힘들게 또 가신 만큼 전수를.
-그런데 저는 그래요. 임플란트가 대중화될 거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내가 대중화시켜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열심히 의사들을 계속 가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어떻게 사업으로 이어지신 겁니까?
-제가 전기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인데 고등학교 때 배운 전기의 그 정도 실력으로 뭔가의 디바이스를 만들었어요.
그 안에 회로를 다 만들고 해서 힘을 조절하는 거 1g, 2g, 3g 이런 식으로 10g까지 조절하는 이거를 제가 다 만들더라고요.
-공대 잠깐 다니셨던 게 도움이 되셨나 봐요.
-그러니까요. 고등학교 때 배우신 거를 그거를 또 그렇게 쓰고.
-하지만 그런 약간 탤런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제가 뭐를 개발하더라고요.
임플란트에 대해서. 임플란트에 그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
제가 보철과인데 이게 뭐냐 하면 치아 만드는 거예요, 이게.
심어놓으면 위에 이를 만드는 게 제 전공이에요.
그런데 이거 할 때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어요, 치과 의사들이.
굉장히 힘들어하는 게 있었어요.
크라운을 임플란트에 붙이는 게 시멘트 타입이라는 게 있고 시멘트로 붙이는 게 있고요.
스크루로 잠그는 게 있어요.
-맞아요, 맞아요.
-두 가지가 있어요.
-두 종류구나.
-스크루 홀이 있는 크라운이 있고 없는 게 있어요.
그리고 두 가지가 있었는데 둘 다 장단점이 있는 거예요.
제가 뭐를 만들었냐 하면 스크루의 장점과 시멘트의 장점을 합치고 단점을 제거한 스크루, 시멘트 보철 이거를 만들었어요.
-장점을 이렇게 딱 모아서.
-모아서.
-하나로 또 개발하신 거네요.
-그러니까 굉장히 쉽게 만들면서 애로를 보상하는 것을 만든 거예요, 제가. 그런데 그거를 특허를 냈어요. 너무 이게 대단한 거예요, 나한테는.
-엄청난 거네요.
-엄청난 것을 했어요. 그리고 그게 지금 와서 보면 20년 동안 한국의 모든 치과 의사들한테 가장 인기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제가 만든 게 20년 전에 만든 게.
그런데 그때 그거를 그걸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대표님들과 성공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획을 해서 그것대로 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더라고요. 뭔가 계획을 세워서.
-그렇죠.
-그 길로 가다 보면 다른 길이 생기고 또 그 다른 길에서 또 다른 길로 가다 보면
또 다른 목표를 세워서 다른 길로 가게 되고 결국에 지금의 종착역까지 도착하는
게 저희 탑클래스에 나오신 대표님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였거든요.
-저도 똑같죠.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게 어떤 하나의 방향이지 방향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는 거지.
-그렇죠.
-종착역 사실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것은 아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지금에서 내가 최선의 가고 싶은 방향이 있어요.
그러면 그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그렇죠.
-그러고는 그게 어느 순간 달성이 돼요.
그러면 달성이 된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그다음에 얘가 또다시 다른 길이 생겨요.
이 길로 이거를 버리고 그쪽으로 가요.
-그렇죠.
-여기서 또다시 이거 버리고 다른 길로 가고.
-맞아요.
-제가 치과를 버리고 미국에 갔고 여기 그렇게 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죠.
-그러면 회사 창업을 이렇게 하셨을 때 국내 임플란트 시장은 어땠어요?
-그 당시에 제가 미국에서 오고 나서부터 임플란트 한국의 시장이 막 들끓기 시작했어요.
그때 막 2000년대 초반하고 중반에 이렇게 막 그러면서 그때는 그러니까 수입산이, 수입산이.
-외제가.
-가장 좋은 임플란트고 그게 대세였어요.
-그렇죠. 외국에서 시작이 된 거다 보니.
-그러니까 우리 한국의 임플란트가 조금 생겼는데 그 외산을 카피하고 카피 수준을 만들고 있었죠.
-그러다가 개발하셔서 우리나라의 임플란트를 만드신 거죠?
-저는 하나씩, 하나씩 이보다 좀 더 좋은 게 뭐야?
그러면 거기서 이거를 개선해서 제가 환자를 보다 보면 이거는 너무 불편해.
환자가 너무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
이거를 어떻게 치료, 어떻게 하면 안 아프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거는 개선하는 거죠.
그러면 새로운 임플란트가 나오는 거죠.
그러면서 점점, 점점 이게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빠른 시간 내에 한국의 임플란트가 전 세계에 지금 톱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가요?
-저 이 이야기 들은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은 외산이 없어요.
-오히려 반대로 한국에 오셔서 이렇게 시술을 하고 가신다는 이야기를.
-맞아.
-제가 중국에서 살짝 들었던 것 같거든요. 제가 중국 유학을 했어서.
-요즘 국산 임플란트 더 비싸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래서 혹시 외산이 비싸게 받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한국의 임플란트가 최고긴 해요.
-지금 세계 여러 곳에 수출하고 계신 거죠?
-70개국에.
-70개국에요?
-대단하시네요. 70개국에 수출하고 계시네요. 계속 확장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계속 확장되죠.
-요즘 나라 새롭게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대표님이
그런 지금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임플란트만 팔면
되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임플란트도 계속.
-계속.
-진화되고 있는 단계 아닙니까?
-계속, 계속 진화죠. 진화죠.
-어느 단계까지 온 겁니까, 그러면?
-끝이 없죠.
-끝이 없어요?
-계속 진화되는 거죠. 그게 삶이 진화의 역사이기 때문에 계속 바뀌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임플란트가 더 이상 뭐 바뀔 게 뭐 있어 하지만.
-그러니까요.
-또다시 변하는 겁니다.
-더 좋은 기술로.
-그래서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되고 있고 임플란트 아니고도 지금.
-맞아요.
-지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까? AI 통해서 엄청난.
-그렇죠.
-그렇죠.
-엄청난 변화가 생겼잖아요. 그런데 임플란트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변할 겁니다.
-결국 마지막은 그거 아닙니까? 하나도 안 아픈 임플란트 아닙니까?
-결국 제가 추구하는 것도 그거입니다.
-아프지 않은.
-뭐냐 하면 그래서 환자가 원하는 게 뭐냐 제일 원하는 게.
그러면 안 아프게 잘 심어서 잘 심고 튼튼하게 잘 심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이거를 추구해 주면 되는 거예요.
-맞아요.
-임플란트가 이런 임플란트면 되는 거죠.
-그러면 대표님이 추구하는 목적은 결국 마지막에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건 안 아프게 하는 것.
-안 아프다.
안 아프고 환자가 힘들지 않게 임플란트를 심을 수 있고 그다음에 빠른 시간 내에 잘 씹을 수 있으면 되는 거죠.
-그러면 이런 것들을 위해서 특별히 주력하는 부분이 있으세요?
-그렇죠. 지금 또 재미있는 분야가 많이 아까 디지털, 디지털 덴티스트리.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아까 스캔하고 CT 찍고 스캔하고 이거를 가지고 컴퓨터에서 치아의 모양을 만듭니다.
옛날에는 왁스로 했어요, 이렇게. 왁스로 막 치아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맞아요, 맞아요.
-왁스로.
-맞아요,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에서 3D로 쫙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요.
얼굴하고 딱 어울리게. 아주 하모니를 이루게.
그렇게 만드는 게 요즘에 치과의 기술이고요.
저는 이렇게 AI와 결합된 이제는 로봇도 나온다.
-그렇죠. 그런 것 같아요.
-치과 로봇.
-이제는 로봇이 시술하겠네요.
-치과 로봇이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치과 로봇이. 그러면 그 로봇을 조정하는 것도 배우실 생각이십니까, 혹시?
-조정할 필요가 없죠.
-알아서.
-말로만 하면 되는데. 말로 대화하면 되잖아요.
-그 단계까지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죠.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치과의 미스터리 있습니다.
제가 이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프면 말하세요라고 하고 아프다고 하면
네, 원래 좀 아파요라고 왜 그러시는 거예요, 도대체?
아프시면 손 드세요. 아파요. 네, 좀 아파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진짜.
-왜 이러는 걸까요?
-네, 좀 아파요, 원래.
-정말 죄송한데.
-이거는 AI가 나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파요, 네. 좀 아파요, 원래. 이렇게 하고 넘어가더라고요.
-맞아요.
-그래서...
-그렇지 않습니까?
-갑자기 말씀이 없어지셨어.
-보통 찌르면 아프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런데 안 아프게 조심스럽게 하고 그다음에 무통 주사 맞으면 낫고.
-조심스럽게.
-요즘 마취제도 진짜 좋아진 것 같아요.
-좋아지고 조심스럽게 하면 조금 덜 아프게 되고요. 요즘에 약간 따끔, 따끔 정도.
-어떠세요? 직접 시술 그러니까 임플란트를 직접 시술할 때가 더 행복하세요?
아니면 우리 회사의 임플란트가 많이 팔렸을 때가 더 행복해요?
그러니까 사업가로서 아니면 치과의사로서의 만족감 과연 어느 쪽을 더 만족하실지도 궁금해서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둘 다죠.
-둘 다. 그래도 더 좋은 쪽이 있습니까?
-환자를 볼 때 즐거움이 굉장히 크고요.
그런데 물론 힘들고 어렵고 그게 스트레스거든요, 의사들은.
이게 조그마한 입 속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정밀해야 해요.
-가장 중노동이에요. 치과의사가. 그래서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니에요.
-엄청난 노동이죠, 사실.
-엄청난 노동이에요. 그렇지만 하고 나면 보람이 있죠.
-그렇죠.
-환자가 너무 행복해 할 때.
-맞아요.
-잘 씹을 때 그때 그 행복이 원래 있기 때문에 계속 환자를 보는 것 같아요.
-궁금한 게 임플란트 시술받을 때 잘 살펴봐야 하는 점이 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임플란트 얘기 많이 하다 보니까요. 어떻습니까?
-그렇죠. 선천적으로 잇몸이 안 좋으신 분들 그다음에 이가 잘 썩는 분들이 계세요.
-그렇죠.
-그거는 어쩔 수 없이 치료받으셔야 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치과에 또 안 오세요.
-무서워서 안 가요.
-무서워.
-무서워서 안 와요.
-맞아요.
-그러면 치아가 계속 망가지죠.
-더 악화되는 거죠.
-그러면 나중에 보시면 임플란트해야죠. 관리를 잘하시고 치과에 가셔야 해요.
-맞아요. 6개월에 한 번은 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6개월에 한 번은 꼭 가야죠.
-그런데 또 임플란트 전문가시니까 임플란트 잘 아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미 시술을 하신 분들한테도 해 주실 말씀 꿀팁이 있으신가요?
-그렇죠. 있죠.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라든지.
-맞아, 그런 분들 계세요. 임플란트 이제 임플란트했으니까 마음껏 먹고.
-평생 간다고 생각하죠?
-평생 됐네. 이제 끝났네. 한 번 아팠으면 됐지. 그거 아니잖아요.
-신이 주신 치아도 망가지는데.
-그러니까요.
-인간이 만든 임플란트가 얼마나 완벽하겠습니까?
-임플란트도 썩습니까?
-임플란트가 썩지 않아도 임플란트 주변의 뼈가 이렇게 녹아요.
-뼈가 이렇게 또.
-뼈가.
-변형이 생기는군요.
-그러기도 하고 임플란트가 부러지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하고 너무 세게 씹으면 부러지기도 하고 그다음에 임플란트 주변에 뼈가 이렇게 없어져요.
그래서 수명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은 20년, 30년 쓰시는 분도 계시는데 보통 평균 잡아서 10년.
그런데 관리를 잘하면 또 오래 가고 뼈가 좋으면 좀 더 오래 가고 그래서 관리를 해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해요?
-꼭 치과에 가셔서 스케일링하듯이 하셔야 해요.
하셔야 하고 이렇게 닦을 때 피가 나면 첫 번째 문제인 거예요.
피가 나면 무조건 치과에 가야 해요.
-그래요?
-피곤해서 나는 거 아니에요?
-피곤하면 여기 잇몸에 제일 먼저 사인이 오죠.
-그렇죠.
-그런데 피곤하더라도 이가 건강하면 피 안 나요.
-그래요?
-좋은데 가끔 치실 할 때나 이럴 때 피나요.
-피나죠.
-그것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거는 염증이죠.
-그래요.
-염증이 있는 거죠.
-저 워터 프루저도 하거든요.
-그것도 해야 하고 치실도 해야 하고.
-그런데 워터 프루저할 때도 피날 때 있는데.
-그거는 더 세게 계속하세요.
-더 세게.
-피나는 데다가 더 세게 해요?
-계속.
-그렇게 하라고요?
-피나는 데도 계속.
-칫솔이나 이거 할 때 피나면 더 열심히.
-염증을 그게 더 나아주는 건가요?
-그러면 나아요. 그런데 치과에 가셔서 안에 치석이 들어 있어요, 잇몸 속에.
-그렇죠.
-그걸 잘 긁어내줘야 하거든요. 그러면 싹 가라앉죠.
제일 중요한 건 치석이 안 끼게 하는데 안 끼게 하는 방법은 칫솔질이에요.
칫솔질 잘 안되니까 자꾸 치석이 들어가는 거예요.
-치간 칫솔을 이용해야 하는군요.
-치간 칫솔, 그다음에 못 닦는 데 잘 닦아야 하는데 그런데 내가 잘 닦는지 안 닦는지도 한번 치과에 가서 검사받아요.
어디가 안 닦이냐. 보통 여기 앞니 앞쪽이 잘 안 닦여요.
-그렇겠다.
-안쪽에.
-여기, 여기. 잘 안 보이잖아요.
-그래요.
-치과에 가서 어디가 안 닦이는지 봐야 해요.
-어디 치석에 많이 껴 있는지.
-껴 있는지. 거기로 계속 들어가서 세균이 들어가서 안에 뼈를 녹이고.
-잇몸도 상하게 하고.
-그러면 피도 나고 흔들거리고 빠지는 거죠.
-염증이 생기고.
-그렇죠, 염증.
-그 염증은 또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또 뇌에도 안 좋은 영향, 치매랑도 연관이 있고 그러더라고요.
-이게 왜냐하면 거기 박테리아가 전신을 돌죠.
그게 뇌로 가고 그렇게 하면서 치매도 걸리고 여러 가지 전신적인 질환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굉장히 치아의 건강이 굉장히 중요하고 임플란트도 마찬가지.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그런 것도 있다면서요. 요즘은 치아 유산균이라고 해서 치아 내, 구강 내 미생물을 좋게 만들어주는 게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맞는 말입니까?
-제가 모르는 것까지 알고 계시네요.
-그래요? 모르시는 거군요.
-그런 이야기도 있고요.
그러니까 저도 모르는 게 많으니까 어쨌든 잇몸을 건강하게 하는 그런
유산균이라든지 그런 약품이라든지 비타민이라든지 이런 게 많이 있으니까.
-맞아요.
-비타민 C는 많이 드시고.
-맞아요. 저도 입안이 헐어서.
-그렇죠.
-그렇죠. 그런 건 주로 바이러스에 아프면 몸이 피곤하시면 너무 열심히 방송하시고 이러시면 생기거든요, 이런 게.
-너무 열정적으로.
-좀 쉬세요.
-그러니까요.
-좀 쉬세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다 들어봤는데 임플란트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신 것
같고 우리나라에서의 임플란트의 아버지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궁금한 게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꼭 드리고 싶더라고요.
대표님에게 임플란트란 무엇일지.
-질문.
-진짜 임플란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세요?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미국으로 가셨고.
-맞아요.
-이것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임플란트, 질문의 대답은 임플란트는 나의 인생이다.
-인생.
-왜냐하면 물론 제가 임플란트를 안 했으면 다른 걸로 성공했겠죠.
-그랬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임플란트 치과 의사가 됐고 거기에 임플란트라는 거에 도전했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 탑클래스에 올라와 있고 그런데 저의 인생이죠.
그러면 지금도 나이가 젊어 보이지만 조금 되거든요.
-아까 대학교 다닐 때 나이 다 공개하시고 스탠드바 82년도 이야기하시고 96년도 유학 가시고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임플란트 꿈을 꿉니다. 지금도 개발하고 있고.
-인생이다, 진짜.
-그러니까 개발할 때 그 기쁨이 저한테 가장 큰 것 같아요.
새로운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다.
그런데 임플란트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이걸 해결하고 있는 거고 그거를 계속 해결하는 과정이 곧 인생인 거고.
그러니까 임플란트는 나의 인생이죠.
-대단하십니다.
-진짜 너무 멋있어요. 진짜 너무 좋은 말씀 너무 많이 들어서 오늘.
-둘 중의 하나 고르라고 해보고 싶어요. 어떨까요.
치과의사, 임플란트 둘 중의 하나 고르라면 뭐 고르겠습니까?
치과의사, 임플란트 뭐가 더 좋아요?
-임플란트요.
-임플란트. 그렇군요. 치과의사가 없으면 임플란트가 없어질 텐데.
-그렇죠. 둘 다 좋죠.
-그렇군요.
-저는 대표님한테 오늘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배웠습니다.
-도전.
-도전. 머물러 있지 말라, 고여 있지 말아라.
-사서 고생해라.
-나가서 떠나라, 뭐라도 해라, 도전해라.
-버려라.
-부딪혀라, 버려라. 과거의 연구한 거 싹 다 버려라.
-버려라.
-새로운 걸 담아라.
-우리 사훈이 끊임없이 변화하라입니다. 사훈이 끊임없이 변화하라고.
그러니까 변화하려면 버려야 하잖아요.
-그렇죠.
-가진 걸 계속 가지고 가면 변화할 수 없죠.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훈은 끊임없이 변화하라고 그게 저희 철학이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제가 출연료를 받아 갈 게 아니라.
-맞아요.
-오늘은 학비를 내고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도 그 생각을 똑같이 했습니다.
-저한테 주신다는 거예요?
-마음이 이렇게.
-대표님. 물욕은 좀 버리세요.
-욕심쟁이.
-어쨌든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자주 나와
주셔서 젊은 친구들한테 이런 좋은 내용의 이야기들을 많이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전국에 다니면서 강의도 많이 하고 있어요.
-너무 좋네요.
-그런데 요즘에는 대학교 학생들한테 많이 이야기를 하죠.
Doctor history as a human and Dentists.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인간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치과의사로서의 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후배들한테 많이 들려줘야겠다.
-너무 좋습니다.
-너무 좋다.
-이렇게 힘든 세상에 살기 너무 어려운데 그러니까 너무 쉬운 것만 찾고 이렇게 하면요.
그다음에는 멘붕이 오고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는데 아까 저는 어릴 때부터 어려움을 한번 도전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려운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맞습니다.
-또는 이 문제를 싫어하지 말고 풀어볼 게 생기면 풀어보는 걸 좋은 걸로 생각해야 하는데 이거를 자꾸 싫어하거든요.
그러면 풀어봄이 있어야 답이 있는데 풀어보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문제를.
우리 젊은 세대에 AI가 모든 우리 가치를 흔들고 있는데 그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제가 볼 때는 그런 정신이 있으면.
-그렇죠,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표님으로부터 많은 시청자 여러분이 도전이라는 새로운 이런 기존에
있었던 단어지만 새롭게 적용시켜서 도전하는 재미에 한번 빠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탑클래스 오늘은 치과의사이자 임플란트 생산 기업의 대표이신 허영구 대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인생이란 선택 앞에서 늘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이야기들, 과연 여러분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가슴이 설렌다 그런 대화이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나도 해볼까 하는 이런 도전이 뭔가 나를 넘어서 모두를 위한 선택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혹시 인생의 갈림길에 서 계신다면 이런 선택 한 번쯤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함께해 주신 허영구 대표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요.
정상을 향해 달리는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도 인사드려야겠죠.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의 비결과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안녕.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