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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한라산 표고버섯

등록일 : 2026-03-10 14:12:13.0
조회수 : 88
-(해설) 첫눈이 깃든 11월의 한라산에 새벽빛이 번집니다.
이 계절이 오면 제주의 표고 농가는 다시 분주해집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농부의 손끝에 오르는 것은 표고 중의 표고라 불리는 화고.
버섯갓이 갈라지며 피어난 무늬가 마치 자연이 새긴 꽃의 문양 같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중에서도 아주 일부만 자연이 스스로 골라낸 듯 올라오는 백화고는 한라산이 품은 보석 중의 보석으로 불립니다.
버섯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식문화와 건강을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조력자였습니다.
그 가운데 표고버섯은 약용과 식용을 넘나들며 세대를 이어온 자연의 지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맑고 숲이 살아있는 제주에서 자란 표고는 이제 현대인의 건강을 책임질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진상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한라산 표고버섯의 위상은 어느 순간 빛이 발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난 1년의 기록을 통해 사라졌던 그 가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합니다.
한라산의 자연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제주 표고버섯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라산의 3월은 여전히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습니다.
그럼에도 봄은 얼어붙은 틈 사이로 기어이 스며듭니다.
고요하던 산자락이 문득 흔들립니다.
표고 재배에 쓰일 참나무 원목을 실은 덤프트럭이 계절의 문을 두드리며 한라산을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표고버섯은 참나무과 활엽수 원목에서 자랍니다.
죽은 나무에서 균사가 퍼지며 자라는 특성 때문에 표고는 인공 재배 기술이 발달하게 됐고 대중적인 식재료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벌목이 제한되자 지금의 제주 표고 농가들은
재배에 필요한 참나무 원목을 대부분 외지에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양질의 참나무는 늦가을인 11월부터 초겨울 12월 사이 벌목한 뒤 약 3개월 동안 천천히 수분을 덜어내며
건조 과정을 거친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 기본이 온전히 갖춰져야 비로소 한 해 표고 재배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이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위해 버섯이 어떤 생명이고 어떻게 자라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햇빛을 받아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내는 식물과 달리 버섯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지도 않고 꽃을 피우거나 씨를 맺지도 않습니다.
대신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포자를 만들어내는데요.
표고버섯의 경우 무려 5,000만 개에서 1억 개의 포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포자가 흙이나 나무 속에 내려앉으면서 새로운 생명은 시작됩니다.
흙을 헤치거나 나무껍질을 들춰보면 하얀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듯 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균사체. 우리가 알고 있는 버섯의 진짜 본체입니다.
균사체는 주변의 양분을 흡수하며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뻗어 나갑니다.
그리고 균사체가 충분히 힘을 기르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지면을 밀어 올리며 자실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식물에 비유하자면 균사체는 뿌리이자 줄기이며 자실체는 꽃이자 열매에 해당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 순환이 버섯 생태계의 본질이자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하고 신비로운 생명의 흐름입니다.
참나무를 들인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한라산은 이제 완연한 봄을 맞이합니다.
산자락마다 벚꽃이 터지고 벌과 나비들이 향긋한 봄꽃 향기에 흠뻑 취하는 계절.
표고 농가에는 한 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종균 접종 시기. 말하자면 농작물의 파종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주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아, 이제 한라산 표고밭에도 접종의 계절이 왔구나, 하고 말이죠.
접종을 하기 위해서는 잘 건조된 참나무 원목에 작은 구멍부터 뚫어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험과 감각이 필요한 까다로운 과정입니다.
구멍은 일정한 간격으로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합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죠?
표고의 균사체는 접종한 지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나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만약 구멍을 일직선으로만 뚫으면 균사가 닿지 못하는 빈 구간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하면 표고 균사가 원목 전체에 고르게 채워질 뿐만 아니라 다른 잡균이 침범할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준비된 구멍 하나하나에 표고 종균을 밀어 넣을 차례.
이게 바로 표고의 씨앗이라 불리는 종균입니다.
겉모습은 작은 코르크 같지만 그 안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실.
표고 균사가 촘촘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균을 심은 원목은 바로 세워두지 않고 며칠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눕혀둔다는데요.
그 이유가 또 재미있습니다.
종균도 사람처럼 멀미를 하기 때문에 쉴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데 박사님, 그게 맞나요?
오랜 세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표고 재배법.
숲을 읽고 계절을 읽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맞춰온 이 방식이야말로 긴 세월 동안 쌓인 경험의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지나가고 비 한줄기가 원목을 적시면 표고는 그 속에서 조용히 숨을 채우겠죠.
이제부터는 자연의 시간이자 한라산의 몫입니다.
세종실록에는 제주가 임금께 올리던 진상품 목록이 남아있습니다.
그 안에는 제주 표고버섯도 등장합니다.
왕에게 올리기 위해 별도로 선별 관리했다는 기록.
이미 조선시대부터 제주 표고는 귀한 버섯이었습니다.
1905년 우리나라에서 참나무 원목 표고 재배가 처음 시작된 곳 역시 제주였습니다.
표고 재배의 자연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환경을 이용해 표고를 대규모로 재배했고 한라산 중턱을 따라
군사 물자와 표고버섯을 실어 나르기 위한 일명 하치마키 도로를 냈습니다.
이 길은 훗날 인도와 표고 재배지 작업로가 함께 이어져 오늘날 한라산 둘레길의 뼈대가 됩니다.
1970년,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공원 구역 내 표고 재배와 참나무 벌채가 모두 금지되었고 농가들은 중산간으로 내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제주 표고의 역사는 자연, 산업 그리고 제도 변화가 겹쳐 만든 굵직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목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기후 변화까지 예측하기 힘든 시대.
예전처럼 자연 원목만으로 표고를 키우는 일은 농가들에게 더 이상 쉽지 않은 과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농가들은 새로운 방식, 바로 배지 재배라는 또 다른 선택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참나무를 잘게 갈아 만든 톱밥으로 숲의 환경을 인공적으로 재현해 그 안에서 표고를 키우는 방법.
기술이 더해진 새로운 재배 시스템이죠.
배지 재배의 가장 큰 장점은 사계절 내내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온도와 습도만 정확히 맞춘다면 자연의 변덕을 타지 않죠.
2000년대 초, 톱밥 배지 방식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기후 변화와 표고 소비의 대중화가 맞물렸습니다.
지금은 배지 표고가 원목 표고 생산량을 앞지른 상황입니다.
참나무 원목 재배의 대안으로 떠오른 배지 재배.
그 생산 과정을 살펴보고자 국내 최대 표고 생산지인 전라남도 장흥을 찾아갔습니다.
이 농가는 직접 배지를 생산해 재배도 하고 다른 농가에 분양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재료인 참나무 톱밥을 배합기에 넣습니다.
여기에 영양원이 되는 소맥피를 섞어줍니다.
균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탄산칼슘 그리고 물을 더해 잘 섞어줍니다.
가장 좋은 수분의 양은 58퍼센트. 주먹을 쥐었을 때 살짝 배어 나오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배지의 기본 재료. 예전에는 다 손으로 직접 했던 작업이라고 하는데요.
요즘에는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비닐 재단부터 포장과 압축까지 모든 공정이 원스톱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농가가 1년 동안 만드는 배지의 수는 약 60만 개.
이중의 절반은 직접 재배하고 나머지 30만 개는 다른 농장에 분양하고 있습니다.
다 만들어진 배지는 고온 살균 과정을 거치는데요.
곰팡이나 세균 같은 잡균을 완전히 제거해 표고 균사만 잘 자랄 수 있도록 무균 환경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접종 후 넉 달 이상의 암배양과 명배양을 끝내야 비로소 농가에 도착하는 배지.
배지가 들어오면 농가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와 장맛비처럼 세찬 물과 바람.
계절이 바뀌는 신호들이 버섯을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자극을 기대할 수 없는 배지 재배에서는 이처럼 시원한 물을 흠뻑 주거나
온도를 갑자기 낮추는 등 계절이 바뀐 듯한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하는데요.
농부들이 인위적으로 신호를 주는 이 과정을 전처리라고 부릅니다.
제주에는 배지를 직접 생산하고 분양도 하는 농가가 딱 한 군데 있습니다.
농장주 권도균 씨가 제주로 내려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부산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그는 IMF 외환위기 때 실직을 겪으며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부부는 제주에서 배지 표고 농장을 하며 인생 2막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는데요.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서는 배지 재배가 거의 알려지지 않던 때였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책을 찾아 읽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고 필요하면 다른 지역까지 찾아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배지 농사를 시작한 이듬해 부부는 종균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농가에서 쓰는 배지를 보면 앞서 봤던 것과는 모양새가 조금 다릅니다.
길게 높여 만든 형태가 아니라 잘 말린 메주를 닮은 둥근 원통형 배지죠.
대만에서 들어온 방식으로 한 덩이 무게는 약 1.5kg.
그리고 상품성이 좋은 표고를 생산하기 위해 배지 하나에서 5송이 정도만 키워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반면, 길쭉한 봉 모양의 배지는 중국에서 들어온 방식으로 무게는 약 3kg입니다.
크기가 2배이다 보니 배지 하나에서 10송이 안팎을 키워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배지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표고가 자라는 과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권 대표 배지 농장에 표고 재배 농가들이 모였습니다.
표고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정작 제주에는 표고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연구할 전문가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제주농업마이스터 대학에 처음으로 표고버섯 전공이 개설됐습니다.
이 전공이 생기면서 비로소 외부 전문가들이 제주를 찾아와 농가들이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는 결국 아는 만큼 결실로 이어지는 일.
수십 년간 표고를 길러온 농가라 해도 배움과 도전은 언제나 필요하죠.
표고 전공이 생기며 첫걸음은 내디뎠지만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도 여전히 많습니다.
제주는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고 있지만 그 자연을 제대로 활용할 연구 기관과 농가들이
꾸준히 배울 수 있는 교육 체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주 표고의 잠재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현장과 학문이 함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주는 오래전부터 표고를 길러온 땅입니다.
기온도, 바람도, 습도도 표고가 자라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죠.
자연이 오랜 시간 만들어준 이 조건들은 어디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제주만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마이스터 교육은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진정한 배움의 장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지금 배양은 다 되어 있죠. 다 됐죠.
-(해설) 지식과 기술.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이 자리에서 제주 표고의 내일이 조금씩 단단한 뿌리를 내려갑니다.
마이스터 교육을 통해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서의 가능성과 현장 지식들이 하나둘 쌓여갑니다.
녹음은 이제 한여름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짙푸른 숲 위로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가 한라산을 뜨겁게 숨 쉬는 여름의 심장으로 만들어냅니다.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는 한라산의 노루 한 마리.
여린 풀잎을 느릿하게 뜯어 먹으며 한가로이 자기만의 시간을 이어갑니다.
이날 사려니숲길 인근에 한 원목 표고 농가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전국의 임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임업 소득 전문가 양성 교육이 이곳에서 진행된 건데요.
숲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만들 수 있는 전문 임업 경영인을 키우기 위한 교육 과정입니다.
재배 기술은 물론 산림 정책과 경영, 마케팅, 유통 전략까지 폭넓게 배우며 임업인들이 실제로 소득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임업 후계자들은 한라산의 숲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 귀한 생명과 풍부한 자연환경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한라산 표고밭에서 임업의 미래와 가능성을 직접 마주한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라산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웁니다. 잠시 후,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뜨겁게 달아올랐던 여름의 잔열을 식혀줍니다.
특이한 모양새의 야생 버섯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빗방울에 의지해서 포자를 퍼뜨리는 목도리방귀버섯입니다.
보통 버섯의 포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목도리방귀버섯은
포자 밀도가 워낙 높아 퍼져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잡힐 정도로 독특합니다.
포자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을 이렇게 직접 목격하는 건 정말 드문 경험입니다.
비가 스친 자리마다 새로운 숨결이 차오릅니다.
제주는 그야말로 버섯들의 천국입니다.
한라산을 품은 제주 전역에는 보고된 야생 버섯이 무려 1,100여 종에 이릅니다.
민달팽이 한 마리가 비 내린 숲의 정취를 만끽합니다.
수분이 많고 부드러운 버섯은 달팽이의 작은 치설로도 쉽게 갈아먹을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입니다.
집 달팽이 한 마리도 뒤질세라 버섯 진수성찬을 즐깁니다.
이 작은 순환 속에서 자연은 늘 새로움과 조화를 노래합니다.
아직 표고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무껍질 아래 균사체는 열심히 덩치를 키우고 있을 겁니다.
버섯으로 피어날 가을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맑은 공기와 습한 숲, 청정한 한라산의 품 안에서 버섯의 생명은 차분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배지 표고 농가를 다시 찾았습니다. 오늘은 수확이 한창이네요.
배지 표고는 온도와 습도만 잘 맞으면 사시사철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농가 입장에서는 수확의 즐거움도 보람도 큰 편이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이상 기온으로 여름 더위가 길어지면서 냉방 시설을 거의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합니다.
소규모 농가에 전기요금 부담은 상당한 걱정거리입니다.
때문에 일부 농가는 여름 재배를 아예 포기하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에만 재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을은 전국적으로 출하량이 가장 많은 시기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게다가 값싼 중국 표고가 유입되면서 제주 표고 산업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견디고 드디어 표고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가뭄도, 폭우도, 찬 바람도 한여름의 더위도 견뎌낸 기특한 표고.
농부는 오래 알고 지낸 생명을 다루듯 표고를 살포시 비틀어 따 올립니다.
이 순간이 농부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숲이 내어준 결실을 직접 마주하는 시간.
그 작은 버섯 하나에 한 해 동안의 걱정과 기대 그리고 감사가 모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죠. 갓 따낸 표고와 두툼한 삼겹살이 팬에 오릅니다.
한라산의 향이 그대로 배어 있는 표고의 풍미가 은근히 코 끝을 자극합니다.
한라산의 표고는 맛과 품질 모두 뛰어납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귀한 버섯을 더 큰 산업으로 확장하기에는 넘어야 할 한계들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버섯 산업을 키워온 곳 전남 장흥군으로 향합니다.
장흥군은 인구 3만 4천 명 남짓한 조용하고 작은 고장입니다.
산과 바다가 맞닿은 지형 덕분에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평균 기온도 13도 안팎으로 온화합니다.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은 농업, 임업, 수산업이지만 그중에서도 표고버섯만큼은 장흥을 대표하는 핵심 산업입니다.
전국 원목 표고 생산의 25퍼센트 이상.
전남 생산량의 75퍼센트 이상이 장흥에서 나옵니다.
장흥군에서도 원목 표고의 중심이라는 유치면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50년 가까이 원목 표고를 재배해 온 곽석주 대표를 따라 표고밭으로 향하는 길.
그런데 산길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비교적 완만했던 한라산과는 천양지차입니다.
트럭이 뒤집어지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사이 곽 대표의 표고밭에 도착했습니다.
장흥에서 원목 표고 농사 1세대로 불리는 곽석주 대표.
현재 재배 중인 원목은 약 5만 본이고, 가장 많았을 때는 10만 본까지 관리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 길을 걷게 된 데는 한라산에서 표고를 재배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곽 대표는 반세기 동안 표고버섯 한길만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그 성실함과 애정은 장흥 표고를 오늘의 대표 특산물로 자리 잡게 한 힘이었습니다.
왜 하필 장흥이었을까?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제주를 닮은 온화한 기후와 당시 비교적 낮았던 땅값입니다.
표고 농사하기 좋은 여건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이죠.
여기 장흥군의 지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초기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던 때 행정에서는 저금리 융자를 통해 숨통을 틔워주었고
또 원목 벌채 규제를 완화해 준 덕분에 그가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장흥군은 1992년 산림청으로부터 표고버섯 주산단지로 지정됐습니다.
2006년에는 장흥 표고가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됐죠.
지역 이름이 곧 품질을 보증하는 제도로 장흥에서 자란 표고만이 장흥 표고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장흥군은 버섯산업연구원을 설립했는데요.
품질 향상과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지자체가 직접 연구 기관을 운영하며 표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장흥군이 이 산업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장흥군 버섯 산업 연구원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일은 바로 토종 버섯 품종 개발입니다.
급변하는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 적응할 새로운 표고 품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자실체에서 포자를 모아 키운 뒤 이 포자에서 나온 균사체들을 서로 교잡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품종은 실제 원목에 접종해 시험 재배까지 거쳤는데요.
그 결과물이 바로 흥화 1호와 흥화 2호입니다. 새로운 장비도 개발 중입니다.
원목을 기계에 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종균을 접종해 주는 장치인데요.
이 장비가 상용화되면 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 한 대가 대신할 수 있겠죠.
이 역시도 지자체의 연구비 지원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표고버섯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 상품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음료부터 식품, 화장품 등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
1차 산업을 넘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가공 산업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장흥군은 올해 미래 산업을 준비하는 진균류 바이오, 헬스 소재 상용화 지원 센터를 세웠습니다.
버섯, 효모, 곰팡이 같은 진균류를 활용해 신약 개발과 건강기능식품까지 바라보는 바이오산업에 발을 디딘 겁니다.
이처럼 장흥은 단순한 표고 산업을 넘어서 지역의 미래 먹거리까지 준비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제주 임산물 홍보대전이 열렸습니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임산물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고 농가에 새로운 판로를 찾기 위해 마련된 제주 대표 임산물 박람회입니다.
올해 현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건 뜻밖에도 표고버섯으로 만든 햄버거였습니다.
고기처럼 쫄깃한 식감. 하지만 훨씬 가볍고 건강한 재료.
표고버섯 패티를 맛본 방문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표고버섯 패티를 개발한 제주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물에 불린 표고를 갈아서 여러 재료들과 섞은 뒤 이를 식물성 패티로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보여줬는데요.
제주의 표고버섯이 농산물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식품 가공 산업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1년의 시간을 한라산 표고버섯과 함께 지내왔습니다.
그 생태를 바라보고 그 속에 숨겨진 가치와 가능성을 차근히 살펴봤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제주를 대표했던 이름, 한라산 표고버섯.
이제 그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그 시작은 지금의 뿌리를 지키고 미래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준비하는 데 있습니다.
한라산 표고의 귀환은 단순히 한 작물이 돌아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과 제주 미래 100년의 먹거리를 향한 새로운 전환점이자 제주가 다시 내딛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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