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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영상수필 온고지신, 종로에 핀 녹두꽃

등록일 : 2024-02-26 14:38:22.0
조회수 : 130
이분이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우기를.
-(해설) 백제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주입니다.
여기 이곳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녹음이 참 좋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우금티라는 고개인데요.
과거 이곳을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서 느릿느릿 걷는 이런 소를 끌고는 도무지
이 고개를 넘을 수 없다 해서 우금티라 이름이 붙여졌다 하죠.
130년 전, 녹두장군 전봉준이 앞장섰던 동학이, 이 가슴 아픈 마지막 전투.
이곳 우금티에서 벌어집니다.
-백성에겐 쌀을.
탐관오리에겐 죽음을.
-(함께) 백성에겐 쌀을!
탐관오리에겐 죽음을!
-(해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전북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역사 속 전설이 된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희망을 부르짖던 안으로부터의 움직임이었죠.
그렇게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았던 전진은 이곳 우금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 그러니까 연합군대에 맞서서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해설) 우금티의 지형은 이 소쿠리 모양처럼 움푹 패어 있습니다.
이미 고갯마루는 관군과 일본군이 점령한 상태였고요.
1km에 달하는 오르막길을 동학농민군은 맨몸으로 내달려야 했죠.
이미 전술상으로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백성은 하늘이다.
동학년 횃불 맨몸으로 일어선 오늘도 백성은 하늘이다.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이 드디어 오늘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습니다.
애국 애족 정신의 표상인 동학농민혁명의 법정기념일이 5월 11일로 공식 지정됐습니다.
-유네스코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4.19 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어찌 나를 이곳에서 죽이려 하는가.
나를 죽이려면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라.
-(해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해설) 옥천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이곳에서 열여섯 해를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정지용 시인의 고운 시어들이 만들어지고 자랐겠죠.
-(노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함께) 하늘빛이 그리워~ 그리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수십 년 전에 사비를 들여 속리산에서 이렇게 멋진 돌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반듯한 시비를 세운 이도 있고요.
또 지용제라는 문학제를 해마다 여는가 하면 옥천으로 이사 온 후 지용에 대한 연구로 작가가 되고 교수가 된 분도 있습니다.
또 지용밥상 같은 옥천 대표 먹거리를 개발한 분도 있는데요.
-울금향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 커튼 밑에서~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해설) 홍세기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리드 보컬을 하다 일본으로 가서 밴드 건반주자를 하셨다고 하네요.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신 분이랍니다.
-친구가 상해로. 상해로 가는구려~
-검은 버선은~ 흰 볼을 받아 신고~ 산과일처럼~
-낯을 비추우며~ 덜 틈에 이상하기~
하늘 같은 샘물을 기웃거리다~
-(해설) 시인의 시간은 시가 되고 시인의 기억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 귓가에 아련하게 남은 종소리.
어스름한 새벽을 힘차게 열면서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를 꼬박 일하는 이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고된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삶에 밀접하게 스며들던 종소리, 이 깊은 유대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해설) 카리용의 종소리는 반경 3km까지 퍼져 나간다고 합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도 잔잔한 기쁨을 안겨준 선율.
이렇듯 음악이 된 종소리는 아름다운 음색과 은은한 울림으로 마음을 치유합니다.
-(해설) 중세부터 지금껏 종소리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위해 울려왔습니다.
하지만 종소리가 세상에 남겨진 이들만을 위해 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 사라지는 존재를 위해 울리는 종소리는 더 먹먹한 울림을 남기기도 하죠.
워낭은 일을 하는 소나 말의 턱 밑에 매어 놓는 방울을 뜻하는데요.
2009년 온 국민의 가슴을 뒤흔든 소리로 울려났습니다.
-고생하고 애 먹었어요.
-좋은 데 가거라.
-(해설) 이곳에는 잊혀 가는 옛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데요.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외나무다리입니다.
예부터 이 마을 주민들은 시집올 때 가마 타고 한 번.
죽어서 상여 타고 한 번 이 다리를 건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 전통 상여 행렬을 축제를 통해 재현하고 있습니다.
-(함께) 어히야 디여차~
-친구 벗이 많다는~
-(해설) 종소리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초창기 교회 모습을 전통 그대로 간직한 금산교회입니다.
기역자형 한옥.
남녀가 구별되어야 한다는 유교식 전통을 살려내면서도 외래 종교인 기독교의
토착화를 이루어기 위한 선교사들의 고민과 열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농촌 교회의 새벽 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석유 램프 불을 켜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비출 때 살펴보면 마룻바닥에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고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긴 곳을 소위 명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해설) 떠난 이를 기억하고 뿌리를 찾아가는 모습.
그 강인한 생명력은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가족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해설) 1983년 당시 138일 동안 생방송으로 펼쳐졌던 이산가족 찾기입니다.
-파리 해방 직후에 38선이 막히는 바람에, 언니들이 나는 안 나온 줄 알고...
-삼촌 되는 저희 작은아버지 김광희 씨와 그리고 형 되는 김준철 씨를 찾고 있습니다.
-오빠...
-형아, 누이.
-누이.
-동생.
-누이는?
-아버지, 엄마 살아 있고.
-아버지, 엄마...
-만세!
아주 그냥 만세!
-만세!
-만세!
-어떻게 하냐, 내가 지금...
-김정애 씨가 나와 있는데요.
이 이름은 양녀로 들어간 후에 지은 이름이라고 그러네요.
-(해설) 허현철 씨도 그중 한 분입니다.
-저 어렸을 때 있잖아요, 이발소 집에 맡겨 놓고 갔었어요.
-맞아요.
-날씨가 흐리고요.
-맞아요.
-오빠.
오빠...
오빠...
-맞습니다...
네 이름이 현옥이라고.
-나 이름도 모르고 살았어.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김 씨가 아니야 허 씨란 말이야.
-오빠!
-알아야지, 이름은!
-(해설) 40년 세월, 희끗희끗한 허현철 씨 모습에도 세월이 내려앉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 모름.
오빠 철 자만 아는 거야.
-오빠!
오빠...
오빠...
그래, 오빠.
-이게 웬일이냐.
-내 동생 딱 봤는데 엄마 얼굴이 탁 떠오르는 거야.
-여보세요?
-응, 나다.
-오빠 어떻게, 건강하세요?
-나야 건강하지.
나야 건강해.
-식사는 하셨어요?
점심이나?
-응, 점심은 맛있게 잘 먹었어.
-오빠, 건강하시고 사랑하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오래오래 사세요, 아프지 마시고.
-너도, 미 투.
-미 투.
-(해설) 족보는 한 집안 인물들의 산 역사입니다.
변하지 않는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것처럼 그 뿌리가 든든한 근간이 돼 주겠죠.
과거를 알고 오늘의 나를 알게 하는 족보.
이 족보를 만드는 전국 유일의 인쇄 업체가 있습니다.
-참 오랜 세월을 지켜오고 있어요.
족보, 고서, 전문 인쇄소죠.
상당하네요.
-나가면서 이쪽에는 자기...
이쪽에는 한글이에요.
-이 족보는 책이 아니고 하나의 우리의 얼이고 뿌리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족보는 우리 대대로 누군가 계속해서 했으면 좋겠고 이것을
또 저희가 보관하고 있는 것을 영구 보존해서 뿌리 삼아 이렇게 보고 발전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위치에...
이분은 누구실까요?
김구예요, 김구.
김구 선생님의 족보가 쓰여 있어요.
채호.
-채호.
-채호 있죠?
그리고 옆에 보면 호가 안재라고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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