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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산아카이브 오래된 미래 - EP1. 부마 민주항쟁
등록일 : 2025-07-14 15:05:44.0
조회수 : 1
-어떤 남학생이 유인물을 프린트를 확 뿌리면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크게 외쳤어요.
울면서 막 뛰었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그러니까 막 눌려 있던 게 터지면서 아, 드디어 우리가 이제 목소리를 낼 때가 됐구나.
-학교를 잘리는 건 물론이고 감방 가고 그런 거 수난을 각오하고 한 행동이었고.
-1979년 10월 16일 화요일 맑음.
도서관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데모다. 도서관 앞 잔디에 벌써 많은 학생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점점 사람이 불어나 호응이 크게 된 것이다.
그때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거든요.
구 도서관이 있고 이렇게 내려가는 계단 처음에서 어떤 남학생이 유인물을 프린트를 확 뿌리면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크게 외쳤어요.
일어섭시다라는 말에 일제히 일어서서 서로 어깨에 손을 겯고 스크럼을 짜서 본관 뒷길로 하여 운동장으로 나가는 긴 대열을 만들었다.
모두가 줄을 잇기에 자신도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다 같이. 세이 예! 여러분!
-그야말로 유신 체제의 단말마적인 또는 거의 극한에 다다른 것 같은 젊은 청년 학생들은 이건 도저히 민주주의가 아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저희가 우암동 다락방에서 선언문을 최종적으로 깨끗한 상태로 볼 수 있는 건 한 200매인데 200매를 만들어서 16일
여기 와서 선언문을 뿌리면서 그렇게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장 전체가 새카맣게 학생들로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여기서 몇 바퀴 돌고 그다음에 정문 쪽으로 나갔죠.
나갔는데 이미 경찰이, 전투경찰이 출동해 있고 그거를 막아선 상태고 그러다가 10시 40분에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면서 학내 진입해 들어왔어요.
그러면서 무차별 그거를 난사하고 또 경찰은 곤봉으로 학생들을 이렇게 때리고.
결국 저를 철봉에 거꾸로 매달아 물고문을 시작했는데 저 고문하면서 물었던 게 제 당시 부친이 이북에서 피난
내려왔는데 너희 아버지 고정 간첩이지?
이러면서 고문하는데 정말 소름 끼치는 고문에 대한 트라우마, 공포 이거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이 되었고
동래경찰서 앞만 지나가도 그때 그것들이 생각이 나고.
-시청 앞에 버스를 타고 딱 내렸는데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 복장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치마에 구두 신고 얌전한 여학생 차림을 하고 있어서.
저 미팅하러 왔는데요. 이러니까 한참 이러더니 그냥 보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경찰하고 계속 숨바꼭질하면서 저도 중간에 뒤에 드드드 경찰 발자국 소리, 군홧발 소리 같은 게 들리면
무조건 아무 상가에 무조건 들어갔어요.
들어가면 상가 주인들이 다 대피를 시켜줬어요.
-같은 국민인데 이렇게 해서 안 된다. 내가 내려가서 나도 붙었지.
그래서 곤봉, 그 당시 막대기 같은 거 가지고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군홧발에 차이고 실신했어요. 깨어나 보니까 부산 중부경찰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일행들 누구냐 같이 온 사람 몇 명이냐 그래서 나는 아닙니다.
학생들 맞고 있어서 내가 말린다고 이렇게 갔는데 나도 붙잡혀 왔다고.
이틀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피는 흘러서 이도 깨지고 머리 터졌는데도 신문지 이렇게 비벼서 닦아주고
그러더라고요. 그 당시 아예 동네에서는 빨갱이라고 완전 간첩이라고 했거든요.
간첩이라는 말은 안 하고 빨갱이다, 빨갱이.
너도나도 못 산다 빨갱이 소리 들으면.
그리고 어머니가 넘어져서, 작은아버지 배에서 넘어져서 다쳐서 집에 내려온다고.
-경찰서장이 사제 총기를 가지고 폭도들이 사제 총기를 해서 사람을 살상하게 해서 이런 식으로 해서 신문에 크게 나왔대요.
그래서 내가 준 건데 어떻게 저렇게 들어갔지?
그때 다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저렇게 유신 하에서 그렇게 데모를 할 줄 알았는지 대학생들이 하니까 시민들이 호응해 주고 다 그렇게 된 거지.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계엄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이 군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데 우리가 아픈 경험이 있는 역사적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일어나서 안 되는 그런 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권력은 국민한테 못 이깁니다. 국민이 승리합니다.
-정치는 공기와 같다. 정치도 깨끗하지 않으면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누가 그렇게 해 주는 게 아니고 우리가 나서야지.
우리의 소원은 자유~
꿈에도 소원은 자유~
이 목숨 바쳐서 자유~
자유여 와라~
울면서 막 뛰었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그러니까 막 눌려 있던 게 터지면서 아, 드디어 우리가 이제 목소리를 낼 때가 됐구나.
-학교를 잘리는 건 물론이고 감방 가고 그런 거 수난을 각오하고 한 행동이었고.
-1979년 10월 16일 화요일 맑음.
도서관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데모다. 도서관 앞 잔디에 벌써 많은 학생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점점 사람이 불어나 호응이 크게 된 것이다.
그때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거든요.
구 도서관이 있고 이렇게 내려가는 계단 처음에서 어떤 남학생이 유인물을 프린트를 확 뿌리면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크게 외쳤어요.
일어섭시다라는 말에 일제히 일어서서 서로 어깨에 손을 겯고 스크럼을 짜서 본관 뒷길로 하여 운동장으로 나가는 긴 대열을 만들었다.
모두가 줄을 잇기에 자신도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다 같이. 세이 예! 여러분!
-그야말로 유신 체제의 단말마적인 또는 거의 극한에 다다른 것 같은 젊은 청년 학생들은 이건 도저히 민주주의가 아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저희가 우암동 다락방에서 선언문을 최종적으로 깨끗한 상태로 볼 수 있는 건 한 200매인데 200매를 만들어서 16일
여기 와서 선언문을 뿌리면서 그렇게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장 전체가 새카맣게 학생들로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여기서 몇 바퀴 돌고 그다음에 정문 쪽으로 나갔죠.
나갔는데 이미 경찰이, 전투경찰이 출동해 있고 그거를 막아선 상태고 그러다가 10시 40분에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면서 학내 진입해 들어왔어요.
그러면서 무차별 그거를 난사하고 또 경찰은 곤봉으로 학생들을 이렇게 때리고.
결국 저를 철봉에 거꾸로 매달아 물고문을 시작했는데 저 고문하면서 물었던 게 제 당시 부친이 이북에서 피난
내려왔는데 너희 아버지 고정 간첩이지?
이러면서 고문하는데 정말 소름 끼치는 고문에 대한 트라우마, 공포 이거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이 되었고
동래경찰서 앞만 지나가도 그때 그것들이 생각이 나고.
-시청 앞에 버스를 타고 딱 내렸는데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 복장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치마에 구두 신고 얌전한 여학생 차림을 하고 있어서.
저 미팅하러 왔는데요. 이러니까 한참 이러더니 그냥 보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경찰하고 계속 숨바꼭질하면서 저도 중간에 뒤에 드드드 경찰 발자국 소리, 군홧발 소리 같은 게 들리면
무조건 아무 상가에 무조건 들어갔어요.
들어가면 상가 주인들이 다 대피를 시켜줬어요.
-같은 국민인데 이렇게 해서 안 된다. 내가 내려가서 나도 붙었지.
그래서 곤봉, 그 당시 막대기 같은 거 가지고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군홧발에 차이고 실신했어요. 깨어나 보니까 부산 중부경찰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일행들 누구냐 같이 온 사람 몇 명이냐 그래서 나는 아닙니다.
학생들 맞고 있어서 내가 말린다고 이렇게 갔는데 나도 붙잡혀 왔다고.
이틀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피는 흘러서 이도 깨지고 머리 터졌는데도 신문지 이렇게 비벼서 닦아주고
그러더라고요. 그 당시 아예 동네에서는 빨갱이라고 완전 간첩이라고 했거든요.
간첩이라는 말은 안 하고 빨갱이다, 빨갱이.
너도나도 못 산다 빨갱이 소리 들으면.
그리고 어머니가 넘어져서, 작은아버지 배에서 넘어져서 다쳐서 집에 내려온다고.
-경찰서장이 사제 총기를 가지고 폭도들이 사제 총기를 해서 사람을 살상하게 해서 이런 식으로 해서 신문에 크게 나왔대요.
그래서 내가 준 건데 어떻게 저렇게 들어갔지?
그때 다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저렇게 유신 하에서 그렇게 데모를 할 줄 알았는지 대학생들이 하니까 시민들이 호응해 주고 다 그렇게 된 거지.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계엄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이 군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데 우리가 아픈 경험이 있는 역사적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일어나서 안 되는 그런 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권력은 국민한테 못 이깁니다. 국민이 승리합니다.
-정치는 공기와 같다. 정치도 깨끗하지 않으면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누가 그렇게 해 주는 게 아니고 우리가 나서야지.
우리의 소원은 자유~
꿈에도 소원은 자유~
이 목숨 바쳐서 자유~
자유여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