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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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100선 - 배흘림기둥에 새긴 호국정신, 고성 운흥사 대웅전

등록일 : 2025-03-31 14:51:57.0
조회수 : 647
-(해설) 간절하게 소원하는 마음이 향 연기로 피어올라 법당 안을 가득 채웁니다. 무엇이 이다지도 간절한 걸까요?
한때 이곳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전각마다 향 연기로 피어오르고 경내는 충의와 결의로 가득 찼습니다.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서 배흘림기둥에 새긴 호국정신. 고성 운흥사입니다.
용이 굽이쳐 놓은 곳이라 하여 와룡산이라 불리는 이곳에 고찰 운흥사가 있습니다.
한 발 한 발 마음을 비우며 천천히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성벽처럼 단단한 돌담 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누각을 만날 수 있는데요.
두루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의 보제루입니다. 산을 따라 놓인 계단과 성벽이 사찰을 호위하듯 자리한 운흥사.
가라막, 보제루를 필두로 대웅전과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운흥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합니다.
원래 사명은 와룡산 와룡사였습니다.
조선 인조 2년 1624년에 석주 스님이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폐허가 된
자리에 오셔서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고 사명을 운흥사라고 개명하셨습니다.
한때 번창한 시절에 운흥사에는 암자가 9개나 있었습니다.
대웅전 아래에 있는 보제루의 크기를 보면 옛날 운흥사의 사찰 규모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해설)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은 지난날의 영광.
크고 웅장한 보제루에 비해 운흥사 경내는 아담한 모습인데요. 이 사찰의 진명목은 따로 있습니다.
험난한 세월을 버틴 호국 사찰로 목숨을 건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운흥사 승병들의 호국정신입니다.
-(해설) 임진왜란에서 순국한 승병과 의병의 넋을 기리는 영산대재.
그 희생을 잊지 않고자 조선 숙종 때부터 시작돼 지난해 봄 294번째 영산대재가 봉행됐습니다.
호국사찰 운흥사의 빛나는 가치는 문화유산으로 이어집니다.
영산대재 시 경내에 걸리는 이 괘불탱은 국내 최대 크기이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승, 의겸 스님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운흥사를 빛내는 또 하나의 가치, 대웅전입니다.
-운흥사 대흥전은 화려한 팔작지붕이 아니라 맞배지붕이라서 단정한 느낌을 줍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은 전국에 다섯 동만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공포, 측면 공포가 형성되어 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또 특이한 점이 있는데 정면과 뒷면의 공포 형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대웅전의 수미단만 해도 수려한 색채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해설) 그동안 고성 운흥사 대웅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됐다가 1731년에
재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21년에 진행된 불단 조사를 통해 그보다
50년이나 이른 1683년 무렵에 재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기둥인데요.
기둥의 중심부가 더 굵고 위아래로 갈수록 점점 얇아지는 배흘림기둥으로
굵기나 곡선의 비율이 안정돼 있어 아름다워 보입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함까지 더해지는데 불단의 색채와 조각이 인상적입니다.
특이한 것은 높은 천정.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지도록 층을 두어 내부 공간이 넓게 느껴집니다.
운흥사 대웅전의 특별함은 불상 위 닫집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요.
닫집의 허주 끝에는 용머리와 연꽃이 장식돼 있고 기둥 장식 판에는 꽃과 거북,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수생동물로 장식돼 있는 닫집. 운흥사 대웅전의 귀한 볼거리이자 특별한 가치입니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고성 운흥사 대웅전.
가운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아미타여래가, 우측에는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과 유사한 시기에 조성된 목조삼세불좌상은 조형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각상들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승병의 본거지로, 조선 후기 불화의
산실로 운흥사의 역사는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1000년 세월 속에 호국정신을 새기며 문화유산을 꽃피운 고성 운흥사.
그 빛나는 가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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