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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100선 - 천년 세월의 빗장을 풀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록일 : 2025-01-20 14:52:43.0
조회수 : 621
-(해설) 참고 견디며 진심을 다해 기도하면 업을 멸하고 평안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되찾은 광명.
산청 덕산사에서 1000년 세월의 빗장을 풀고 묻혀 있던 역사와 가려져 있던 문화유산의 참모습을 찾아봅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고장, 경남 산청.
내원마을을 거쳐 반야교를 지난 뒤 물소리를 따라 숲길을 오르다 보면 아담한 사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덕산사입니다.
-(해설) 1360여 년이 지나도록 인내하며 기다린 덕분이었을까?
다행히도 제 이름을 되찾은 덕산사.
사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고찰답게 그 세월을 함께해 온 귀중한 문화유산이 있는데요.
중건 중인 대웅전 앞에 오롯이 서 있는 삼층석탑.
긴 세월에 파손되기도 하고 도굴꾼의 손을 타기도 했지만
이제는 통일신라 이후의 석탑 양식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1000년 세월을 견딘 보람. 귀중한 문화유산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덕산사 제일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것을 굽어살피고 있는 곳. 비로전입니다.
이곳에는 신라 혜공왕 2년, 766년에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로 모셔져 있습니다.
-(해설) 석남암사의 옛터에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게 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정수리에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있고
얼굴은 둥글어 부피감이 풍부하며 목에는 번뇌와 업, 고통을 상징하는 3도가 표현되어 있는데요.
이 불상의 무엇보다 큰 가치는 손 모양에 있습니다.
-저희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상은 대좌 중대석 원형공에서 발견된
영태 2년 병오 7월 2일의 조성 연기가 새겨진 사리함에 의해서
8세기 중엽 통일 신라 시대에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 처음으로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이고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1월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해설) 지권인을 한 가장 오래된 불상. 그리고 납석사리호가 발견된 불상.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 표면에는 136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승려 법승과 법연이 두온애랑을 위해 불상을 조성하며 글자를 새긴 것인데요.
그 마음이 납석사리호에 깃들어 있습니다.
영태 2년 병오 7월 2일에 법승, 법연 두 스님이 함께 뜻을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이 발원한
석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석남암사 관음암에 넣어 두었다.
불상을 지나가는 중생들이나 바람이 불어 스쳐 간 바람이 지나간 모든 곳의 일체중생이나
이런 일체 모두가 삼악도에 떨어지는 업이 멸하여서 비로자나로부터 곧 평등하게 깨닫고
세상을 떠나지기를 서원하나이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중생들에게 본래 청정한 법신이 모두에게 구족되어 있으므로
모든 중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제시하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덕산사는 비로자나불로서는 유일한 국보 부치님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가르치는 그 의미를 항상 되새겨 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해설) 고난의 세월을 견디고 역사의 주인으로 돌아온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그 빛나는 가치를 마음속에 새겨 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되찾은 광명.
산청 덕산사에서 1000년 세월의 빗장을 풀고 묻혀 있던 역사와 가려져 있던 문화유산의 참모습을 찾아봅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고장, 경남 산청.
내원마을을 거쳐 반야교를 지난 뒤 물소리를 따라 숲길을 오르다 보면 아담한 사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덕산사입니다.
-(해설) 1360여 년이 지나도록 인내하며 기다린 덕분이었을까?
다행히도 제 이름을 되찾은 덕산사.
사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고찰답게 그 세월을 함께해 온 귀중한 문화유산이 있는데요.
중건 중인 대웅전 앞에 오롯이 서 있는 삼층석탑.
긴 세월에 파손되기도 하고 도굴꾼의 손을 타기도 했지만
이제는 통일신라 이후의 석탑 양식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1000년 세월을 견딘 보람. 귀중한 문화유산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덕산사 제일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것을 굽어살피고 있는 곳. 비로전입니다.
이곳에는 신라 혜공왕 2년, 766년에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로 모셔져 있습니다.
-(해설) 석남암사의 옛터에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게 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정수리에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있고
얼굴은 둥글어 부피감이 풍부하며 목에는 번뇌와 업, 고통을 상징하는 3도가 표현되어 있는데요.
이 불상의 무엇보다 큰 가치는 손 모양에 있습니다.
-저희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상은 대좌 중대석 원형공에서 발견된
영태 2년 병오 7월 2일의 조성 연기가 새겨진 사리함에 의해서
8세기 중엽 통일 신라 시대에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 처음으로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이고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1월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해설) 지권인을 한 가장 오래된 불상. 그리고 납석사리호가 발견된 불상.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 표면에는 136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승려 법승과 법연이 두온애랑을 위해 불상을 조성하며 글자를 새긴 것인데요.
그 마음이 납석사리호에 깃들어 있습니다.
영태 2년 병오 7월 2일에 법승, 법연 두 스님이 함께 뜻을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이 발원한
석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석남암사 관음암에 넣어 두었다.
불상을 지나가는 중생들이나 바람이 불어 스쳐 간 바람이 지나간 모든 곳의 일체중생이나
이런 일체 모두가 삼악도에 떨어지는 업이 멸하여서 비로자나로부터 곧 평등하게 깨닫고
세상을 떠나지기를 서원하나이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중생들에게 본래 청정한 법신이 모두에게 구족되어 있으므로
모든 중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제시하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덕산사는 비로자나불로서는 유일한 국보 부치님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가르치는 그 의미를 항상 되새겨 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해설) 고난의 세월을 견디고 역사의 주인으로 돌아온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그 빛나는 가치를 마음속에 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