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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100선 - 참선에 들어 부처에게로 가다!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등록일 : 2024-12-30 15:25:11.0
조회수 : 728
-(해설) 지리산 칠선계곡.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계곡 가운데 벽송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벽송사에는 지리산 등성을 마주하고 서서 수백 년을 의지해 온
두 그루의 소나무와 애초에 정한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부처의 뜻을 전하고 있는 석탑 하나가 있습니다.
고요함에 절로 빠져드는 마음. 벽송사 석탑 앞에서 부처에게로 향하는 꿈을 꿉니다.
함양군 마천면 칠선계곡 초입.
가을 끝자락의 풍경을 감상하며 산길을 오르다 보면 푸른 소나무의 절, 벽송사를 만나게 됩니다.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된 후 중건을 거쳐 지금에 이릅니다.
-(해설) 일제기에 한국 선불교의 양대 산맥인 서산대사와 부휴대사가 수행하고
사명대사 등 108명의 선교 겸수 대종장이 배출된 벽송사.
수행 도량으로서 벽송사의 명성은 대웅전이 있어야 할 사찰 한가운데
선방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지금도 벽송사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전국에서 모인 스님들이 함께 공부하며 수행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의 화려한 명성 이면에는 아픔을 견뎌야 했던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불교 말살 정책으로 억압받고 6.25전쟁 당시에는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가 이어지면서
불에 타고 부서져 폐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역사의 굴곡을 견뎌내고 벽송사는 한국 선불교의 종가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사철 마당 한편에서 벽송사의 생채기와 꼭 닮아 있는 한 쌍의 목장승을 찾았습니다.
-(해설) 둥글고 큰 눈이 돌출된 장승은 불법을 지키는 신이라고 해서 호법대신.
머리의 일부가 훼손된 장승은 잡귀의 출입을 막는 금호장군인데요.
질박한 조각 수법이 뛰어난 작품으로 경상남도 민속 자료로 지정돼 있습니다.
지리산 칠선계곡 산등성에 반듯하게 앉은 벽송사.
앞마당을 돌아 뒤쪽 계단을 올라가면 벽송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소나무의 절이라는 이름처럼 두 그루의 소나무와 이 땅의 아픔을 함께해 온 석탑 하나.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입니다.
-(해설) 사찰이 폐허가 되면서 절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졌지만 석탑은 지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해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전형적인 신라의 탑.
이중으로 놓은 기단 위 몸돌에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했는데
바닥 돌과 아래층 기단 사이에 높직하게 돌을 끼워 놓은 것은 이 석탑의 특이한 점입니다.
얇게 이어지던 지붕돌의 추녀가 끝에 다달아 위로 살짝 치켜올린 모습 외에
이렇다 할 장식이나 특별한 조각은 없지만 쪽임새가 단단하고 반듯해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삼층석탑.
수백 년 세월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부처의 진리를 전하고 중생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기도처로
석탑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매 순간 이어진 고난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남아 하늘 끝에 가 닿을 듯 지리산 중에 우뚝 솟아 있고 석탑.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은 우리가 보듬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계곡 가운데 벽송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벽송사에는 지리산 등성을 마주하고 서서 수백 년을 의지해 온
두 그루의 소나무와 애초에 정한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부처의 뜻을 전하고 있는 석탑 하나가 있습니다.
고요함에 절로 빠져드는 마음. 벽송사 석탑 앞에서 부처에게로 향하는 꿈을 꿉니다.
함양군 마천면 칠선계곡 초입.
가을 끝자락의 풍경을 감상하며 산길을 오르다 보면 푸른 소나무의 절, 벽송사를 만나게 됩니다.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된 후 중건을 거쳐 지금에 이릅니다.
-(해설) 일제기에 한국 선불교의 양대 산맥인 서산대사와 부휴대사가 수행하고
사명대사 등 108명의 선교 겸수 대종장이 배출된 벽송사.
수행 도량으로서 벽송사의 명성은 대웅전이 있어야 할 사찰 한가운데
선방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지금도 벽송사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전국에서 모인 스님들이 함께 공부하며 수행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의 화려한 명성 이면에는 아픔을 견뎌야 했던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불교 말살 정책으로 억압받고 6.25전쟁 당시에는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가 이어지면서
불에 타고 부서져 폐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역사의 굴곡을 견뎌내고 벽송사는 한국 선불교의 종가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사철 마당 한편에서 벽송사의 생채기와 꼭 닮아 있는 한 쌍의 목장승을 찾았습니다.
-(해설) 둥글고 큰 눈이 돌출된 장승은 불법을 지키는 신이라고 해서 호법대신.
머리의 일부가 훼손된 장승은 잡귀의 출입을 막는 금호장군인데요.
질박한 조각 수법이 뛰어난 작품으로 경상남도 민속 자료로 지정돼 있습니다.
지리산 칠선계곡 산등성에 반듯하게 앉은 벽송사.
앞마당을 돌아 뒤쪽 계단을 올라가면 벽송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소나무의 절이라는 이름처럼 두 그루의 소나무와 이 땅의 아픔을 함께해 온 석탑 하나.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입니다.
-(해설) 사찰이 폐허가 되면서 절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졌지만 석탑은 지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해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전형적인 신라의 탑.
이중으로 놓은 기단 위 몸돌에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했는데
바닥 돌과 아래층 기단 사이에 높직하게 돌을 끼워 놓은 것은 이 석탑의 특이한 점입니다.
얇게 이어지던 지붕돌의 추녀가 끝에 다달아 위로 살짝 치켜올린 모습 외에
이렇다 할 장식이나 특별한 조각은 없지만 쪽임새가 단단하고 반듯해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삼층석탑.
수백 년 세월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부처의 진리를 전하고 중생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기도처로
석탑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매 순간 이어진 고난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남아 하늘 끝에 가 닿을 듯 지리산 중에 우뚝 솟아 있고 석탑.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은 우리가 보듬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