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in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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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핸드메이드 in Asia 5부 - 모자이크 made in 마다바 요르단

등록일 : 2023-10-30 13:18:15.0
조회수 : 434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영원을 꿈꿉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죠.
비잔틴 시대와 로마 시대 사람들은 후대에 남기고 싶은 역사와 신화를 모자이크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모자이크를 영원불멸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해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위대한 두 문명 사이에서 번성한 나라, 요르단에 있습니다.
풍요를 누리던 요르단의 고대 도시는 거대한 지진과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지진에도 살아남은 선조들의 유산이 있는데요.
바로 모자이크입니다.
움 알라사스.
3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 오랜 번영을 누린 이곳에는 16곳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팻말만이 그 역사를 짐작하게 하고 있죠.
당시의 교회 바닥에는 모자이크가 많았습니다.
성 스테파노 교회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곳의 모자이크 바닥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데요.
비잔틴 시대.
팔레스테인과 요르단, 이집트의 지명이 그리스어로 조각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요르단 곳곳에는 이와 같은 모자이크 유적지가 산재해 있습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서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도시, 마다바.
인구 6만 명의 이 작은 도시에 들어서면 요르단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자이크가 사람들을 반기는데요.
가로 30m, 세로 6m의 이 커다란 모자이크는 약 200만 개의 돌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페트라, 제라시, 사해 등 요르단의 명소들이 묘사돼 있죠.
마다바는 모자이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도시입니다.
건물의 외벽, 도로 간판 등 눈길 닿는 곳 어디에나 모자이크가 있죠.
마다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스스로 모자이크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모자이크의 도시답게 마다바에는 수많은 모자이크 공예가가 있습니다.
사마히르 장인 역시 그중 한 명인데요.
올해로 23년째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자이크 공예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흰 천에 먹지를 올려 선을 긋고, 밑그림을 따라 돌 조각을 붙이는데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돌을 붙일 접착제를 만드는 건데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분 가루를 물에 녹이고 끓이면 끝입니다.
지금은 도시 어디를 가나 모자이크가 익숙하지만 마다바 사람들에게도 모자이크가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채로운 빛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르단의 계곡과 사막의 돌들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모자이크의 재료가 되어 왔죠.
-(해설) 이집트 출신의 와엘 압델 씨는 20년째 돌 가공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자이크에 사용할 돌을 만들 때는 정확한 두께로 돌을 잘라야 하는데요.
작품의 크기나 내용에 따라 필요한 돌의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공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장인들의 모자이크 실력은 더욱 섬세하고 정교해졌죠.
-(해설) 마다바가 모자이크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된 건 이곳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 교회 바닥에는 550년경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서 모자이크 지도인 마다바 지도가 있습니다.
현재는 원본의 4분의 1 정도만 남아 있는데요.
지도에는 약 1500년 전의 예루살렘과 사해, 요르단강 등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이 지도는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마다바로 이끌고 있죠.
마다바는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을 믿는 요르단에서 기독교가 가장 밀집한 곳입니다.
교회와 성당, 이슬람 사원이 어우러져 있죠.
이런 문화의 공존은 마다바가 모자이크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자이크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22년 경력의 살라 딘 씨 역시 집중의 시간을 중요히 여기죠.
-(해설) 5mm 남짓한 작은 돌들을 수백, 수천, 수만 번 자르고 붙이는 고된작업.
알맞은 색상의 돌을 고르고 자르면서 돌의 모양과 배치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요.
곡선 부분과 틈새의 처리. 조화로운 색깔 배치 등 만드는 이의 감각과 수련도가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합니다.
-돌조각들은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작가의 마음과 수천, 수만 번의 손길과 정성을 거쳐 의미 있게 연결될 때 비로소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이죠.
모자이크는 그런 예술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거죠.
-(해설) 이곳은 1992년에 설립된 중동 지역에서 유일한 모자이크학교입니다.
2007년 요르단 정부가 인수하면서 현재는 모자이크 공예와 유적 복원을 교육하는 연구소가 됐습니다.
-(해설) 유적 복원에 대한 수업이 한창입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6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고 2년 과정으로 모자이크에 대한 이론과 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24살의 아부티나 씨는 이곳에서 1년째 모자이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그녀는 모자이크를 배우기 위해 마다바에 왔죠.
-(해설) 아부티나 씨는 이곳을 졸업해 자신만의 공방을 차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그녀의 작품을 선보일 날을 꿈꾸고 있죠.
아직은 조금 서툰 손길이지만 이곳의 학생들은 마다바 모자이크의 역사를 이을 중요한 인재가 될 겁니다.
이번에는 마다바 인근의 유적들을 둘러볼까요?
마다바의 모자이크 유적들을 둘러본 관광객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투어리즘 스트리트입니다. 다양한 공예품을 판매하는 거리.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모자이크입니다.
적지 않은 가게들에서 직접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투어리즘 스트리트의 어느 작은 가게.
이곳은 알리 씨가 그의 형제들과 함께 운영하는 모자이크 공방 겸 판매점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이 지역에서 유명한 오렌지 나무 모자이크입니다.
만드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리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 돈으로 13만 원 정도라고 하네요.
알리 씨는 8년 전 투어리즘 스트리트에 공방을 차렸고 동생들에게도 함께하길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매우 만족하고 있죠.
-(해설) 알리 씨 형제뿐만 아니라 마다바의 지역 경제를 위해서도 모자이크는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사마히르 장인을 다시 찾았습니다.
돌조각 붙이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과정을 준비 중인데요.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반죽을 만듭니다.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나무 틀에 흠집을 내고 그 위에 반죽을 얹습니다.
-(해설) 틀에 얹은 모자이크를 골고루 두드립니다.
시멘트 반죽이 돌 틈 사이를 메웁니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적신 스펀지를 밑그림을 그렸던 천에 문지릅니다.
돌조각을 붙일 때 썼던 천연 접착제가 물에 녹으면 조심스럽게 천을 떼어냅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모자이크.
이제 시멘트가 굳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햇볕에 2, 3일 정도만 말리면 시멘트가 단단하게 굳어 돌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석류와 포도가 한 줄기에서 자라나는 신비로운 마다바나무 모자이크가 완성됐습니다.
비잔틴 신학에 나오는 이 나무는 모자이크를 통해 후세에도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있죠.
모자이크는 사마이르 장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녀는 요르단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고고학을 전공했고 자녀들 역시 모자이크를 배우기 시작했죠.
-요르단의 자연으로 요르단의 역사와 신화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다바의 모자이크입니다.
나는 바로 그 모자이크를 만드는 사람이지요.
작품을 만들면서 자연석들과 소통하고 조화를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보람 있는 일입니다.
나는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이어가고 싶어요.
요르단의 자랑이고 마다바 시민의 자부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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