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1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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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1교시 - 가장 위대한 영화 Sight & Sound ② (강유정 / 영화 평론가)

등록일 : 2023-06-05 22:37:14.0
조회수 : 610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에서 강연을 맡은 영화 평론가 강유정입니다.
지난 강연에서 사이트 앤 사운드가 선정하는 최고의 영화가 어떻게 선정되는지 그리고 무엇인지 1위를 차지하는 영화들은 각각 어떤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주제는 사이트 앤 사운드지의 선정 목록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영화의 진보 그리고 2022년 리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 양상들을 살펴보면서 영화가 어떻게 변할지 한번 짐작해 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영화사에서 중요한 기법적 전환을 선사해서 말하자면 영화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던 그런 영화들을 주목해 볼까 하는데요.
한편 2022년 목록에는 새롭게 추가된 작품들이 꽤 많이 있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영화가 변화해 나갈지 그 새로움을 예측해 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은 사이트 앤 사운드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1위를 차지했던 영화들 쭉 살펴봤는데요.
좀 연관해서 리스트에 올라와 있지만 제가 언급하지 못했던 관련 있는 영화 먼저 소개해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바로 잉마르 베리만 산딸기인데요.
잉마르 베리만은 스웨덴의 감독인데 영화계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산딸기라는 작품을 왜 골랐냐 하면요.
시티즌 케인처럼 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목숨을 잃기까지 그러니까 거의 전 생애를 돌아보는 이야기의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산딸기의 주인공인 아이작 역시도 굉장히 중요한 상을 받기 위해서 멀리 떠나가는 여정을 가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굉장히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의사가 주인공입니다.
성공한 삶이긴 한데 뭔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걸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마치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 같은 겁니다.
그게 바로 산딸기라는 이 상징에 압축되어 있는데요.
자신을 사랑했지만 놓쳤어야 하는 그런 첫사랑 여인에 대한 마음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을 유지하고 명예롭게 살기 위해서 포기했어야 했던 이 모든 것들이 산딸기라는 상징에 들어가 있습니다.
인생을 회고하는 영화로서 시민 케인이 보여주고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반성과 비판, 이런 태도와는 달리 산딸기는 결국은 여기 그림에 보여주고 있는 거울에서 들여다보는 나의 얼굴, 다시 말해서 거울 속에 들여다보는 나의 내면을 통해서 과거의 시간을 반추해
보는 그런 작품인데요.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두 번째 영화는 바로 Vertigo 히치콕의 현기증이라는 작품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욕망 그리고 정신 분석적인 갈망들을 잘 드러내고 분석해서 21세기 들어 주목받았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을 추천드립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탈리아 감독으로 굉장히 신비주의적이고 한편으로는 다양한 어떤 내면의 갈등들을 잘 표현해 내는 감독이기도 한데요.
이 감독의 8과 2분의 1은 자전적인 영화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좀 난봉꾼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여자관계 복잡한 이 자기를 닮은 인물을 통해서 내 인생의 결핍은 무엇이었길래 이렇게 헤매고 살았을까라는 낭만적인 어떤 과거 반추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영화는 한편으로 나인이라는 작품의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롭 마샬 감독은 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어 냈는데요.
8과 2분의 1이 쌓이지 않는 채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어떤 결핍의 2분의 1로 표기했다면 나인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8와 2분의 1의 조금 더 뒤 버전이라는 이야기로 아주 재치 있게 9라는 숫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핍 그리고 심리적인 갈등에 대해서 어린 시절로 회기해 가면서 보는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나 자신, 그리고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심리적인 갈등을 그려보고 만들어 보고 싶었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가 잔느 딜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또 하나의 여성주의 감독,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도 추천을 드립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1993년 피아노라는 이 작품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하고요.
그리고 에이다 역할을 맡았던 여배우는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받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요.
그런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말을 못 하는 한 여인이 결국은 피아노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그리고 그 피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과 이를테면 어떤 벽을 쌓고 살던 에이다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한 남자를 만나서 나도 역시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겠다고 만들어 가는 이 변증법적인 언어의 과정으로 보여준 작품은 여성주의 영화에 있어서 한 기원으로 삼기도 하는데요.
이를테면 뉴질랜드를 바탕으로 한 식민주의 역사관 그리고 언어 여러 가지의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지 소수자로서의 페미니즘과 여러 가지 언어를 배워야 하는 페미니즘의 언어 문제까지 다루고 있는 수작이라서 또 한 편 소개해 드립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이트 앤 사운드지에 들어간 영화 목록들을 쭉 살펴보면 새로운 흐름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흐름 그러니까 지금까지 없었던 영화적 기법을 만든다거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서사적인 구조를 만든다거나 내지는 촬영 기법 같은 것들도 그렇지만 어떤 점에서는 약간 상당히 엉뚱한 편집을 만든다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들 이런 것을 우리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는 작품들을 사이트 앤 사운드 리스트는 늘 주목해 왔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동아시아 영화의 약진입니다.
대한민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의 한쪽, 동아시아기도 하죠.
동아시아 영화들은 사실은 주목받은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 사이트 앤 사운드지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름도 있긴 한데요.
그 이름이 바로 오즈 야스지로입니다.
제가 어딘가 영화 강연이라든가 영화 수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해요.
선생님 오즈 야스지로는 뭐가 좋은 겁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물어보시거든요.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죠.
그런데 과연 어떤 점이 제일 좋을까요?
이 질문이 논쟁적인 이유는 가령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 아시죠?
우리나라에서 브로커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우성아, 태어나 줘서 고마워.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일본의 어떤 예술 영화,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탄탄하게 잇고 있는 감독인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을 오즈 야스지로와 비교하는 다양한 비평적 시선에 대해서 나 그거 거부하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비전문 배우를 기용한다거나 일상의 삶을 조용하게 보여준다거나 내지는 늘 북적거리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즈와 닮아 보이는데 말이죠.
그러면 일본 영화에 있어서 오즈 야스지로는 무엇이고 동아시아 영화에 있어서 오즈 야스지로는 또 누구이며 왜 서구인들은 오즈 야스지로에 열광하는 걸까요?
그 내면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오즈 야스지로 영화는 이를테면 아주 전통적으로 손꼽히는 동아시아 영화의 맹주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 영화라고 하면 우리가 왜 젠 스타일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일본 영화에서 연상이 되는 매우 정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바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오즈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라든가 비슷한 다른 연배의 감독들에 비해서 약간 늦게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이라든가 인간의 내면 같은 굵직한 그런 서사적 주제를 다뤘던 다른 감독들에 비해 오즈 야스지로는 매일매일 비슷한 이야기 그리고 늘 가족 이야기, 약간 작은 소풍 같은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소개되기 시작했던 1950년대 말, 60년대 초가 되면서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라는 건 전 세계의 명확한 현실이 되었죠.
전통적 가족이라는 것, 이를테면 게마인샤프트적인 사회가 어떤 것이라고 공통된 분모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이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그리고 흩어지고 무너지고 있는 과정에서 그것을 정적이지만 조용한 시선으로 따라가고 있던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통해서 이게 가족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됐다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이거는 동아시아 영화, 동아시아의 주제에 대해서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환상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 환상, 세대교체 그리고 여러 가지 어떤 가족의 문제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건 그래도 많은 선택권과 영화에 있어서 주도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던 서구 평론가나 영화 전문가들에게 매우 독특한 시선으로 보인 건 사실입니다.
오즈 야스지로는 이를테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미국 영화에 존 포드가 있고 프랑스 영화에 장 르누아르가 있다면 일본 영화에는 오즈 야스지로가 있다, 이런 말도 있고요.
언제나 홈 드라마 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는 점에서 조금 반복의 작가다, 반복의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꼼꼼했냐면요.
책상 위에 맥주병이 놓이면 센티미터를 재 가면서 미장센을 옮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변화에 굉장히 민감했던 감독이라고도 하고요.
-(일본어)
-저는 조금 재밌는 게 이거였어요.
오즈 야스지로는 결혼이나 가족, 이런 것들을 정말로 많이 그려 냈습니다.
그런데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결혼 문제를 다루기는 하는데 결혼식을 영화에서 그린 적은 없어요.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오즈 야스지로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결혼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자기의 가족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데 늘 가족 이야기, 늘 결혼 이야기를 했던 감독이기도 합니다.
조금 재미있는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겠죠.
오즈 야스지로 작품은 총 78편의 작품이 있는데요.
여기서 유실된 작품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어)
-가족의 문제를 늘 다뤘던 이 작품들은 약간은 저처럼 영화를 많이 보시는 분들은 이 작품이 그 작품이었나, 조금 헷갈릴 때도 있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아까 제가 서구인들을 유혹했던 동양의 정서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서구인들은 동양의 정서를 가장 먼저 일본을 통해서 많이 접촉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모노노아와레라는 감성입니다.
모노노,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는 의미인데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의 가장 깊숙한 원리 중 하나인, 그들이 벚꽃에 열광하는 이유도 피는 것보다 떨어지는 아름다움이 더 멋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게 바로 모노노아와레입니다.
이를테면 화려한 등장보다는 쓸쓸한 사라짐.
동경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도 이를테면 자기가 아들 내외들 혹은 자식들을 찾아갔지만 아무도 자기를 반기지 않는데 남편을 잃은 이를테면 법적 관계로서의 가족에 불과한 며느리만 이 노부부를 반겨줍니다.
쓸쓸한, 그러니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 그리고 너무 늙어버린 노부부가 동경에 와서 느끼는 어색함과 그리고 그 쓸쓸함, 이런 정서들이 바로 모노노아와레라고 표현되는, 특히 서구인들이 일본의 영화를 통해서 봤던 어떤 묘한 감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조금 짧게 말씀드리자면 인생의 덧없음과 그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정서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특히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는 이런 모노노아와레가 잘 표현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사실 이거는 헤이안 시대의 일본 고전 서사 문학의 정서에서 비롯된 말인데요.
원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답니다.
계절이 바뀌는 정서, 인생의 이별, 불우함, 자신의 처지, 어버이와 자식 간의 애정의 변화 같은 것들을 감정의 파고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라고 해서 일본 헤이안 시대의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정서라고 하는데요.
그 정서를 영화적으로 표현했고 그 영화적 표현이 매우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영국에서 활동 중인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는 글에서 인생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이 인생이라는 소설은 한편으로 모노노아와레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도 합니다.
일본 사람 특유의 일종의 상실감, 허무함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 거겠죠.
이걸 또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즈 야스지로 하면 누구나 다 들었던 말이 있어요.
다다미 쇼트, 다다미 숏이라 부르는 독특한 촬영의 눈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숏을 구분할 때 허리 정도까지 나오면 미디엄 숏이라고 부르고요.
전체 전신이 나오면 풀 숏이라고 보통 부릅니다.
세상에 다다미 숏이라는 거는 없거든요.
이게 뭐냐.
약간 아쉬운 점은 다다미 숏이라는 이 말은 좌식 생활을 하는 동양의 모두에게 사실 해당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좌식 생활은 다다미로 상징되기 때문에 그 이름이 다다미 숏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사람의 상체 높이는 대부분, 서구 생활은 입식 생활이고 그리고 거의 침대에 앉는다거나 의자에 앉기 때문에 낮게 시선이 갈 필요가 없죠.
사람 상체 높이에 카메라 높이가 대부분 맞춰져 있는데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사람들의 생활 풍경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바로 다다미 높이로 숏의 크기를 낮춘 겁니다.
그래서 일본인을 비롯한 동양인의 생활 정서에는 굉장히 잘 맞는 그런 숏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걸 찍기 위해서는 촬영감독이 엎드려서 영화를 촬영했어야 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다다미 숏 전용 삼각대가 있었다고 하고요.
하지만 오즈 말고는 이 숏을 별로 활용하지 않아서 삼각대는 사용감을 잃었다고 합니다.
저는 굉장히 좋아하는 미장센이 있다면 바로 오즈 야스지로가 다다미 숏을 걸어 놓고 그 뒤쪽에 중문들이 열리면서 공간이 갑자기 입체감을 갖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마치 우리가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를 봤을 때 그 공간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하나씩 중문이 열리면서 깊이감이나 공간감이 달라지는 것처럼 오즈는 다다미 숏 안에서 중문을 통해서 깊이감 있는 연출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이걸 굳이 서구 영화로 따진다면 로우 앵글에 담는 인물 숏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즈는 이걸 자신의 영화에 내내 활용하고 그를 통해서 아까 말씀드린 일본만의 독특한 정서를 보여줬기 때문에 다다미 숏 하면 오즈 야스지로가 보여주는 동양의 정서를 바로 환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촬영 방법이 된 거죠.
오즈의 인물들은 전통적인 다다미방에서 먹고 마시고 차를 마시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깊이감이라는 거는 매우 2차원적인 공간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디포커싱이나 아까 우리가 이야기했던 줌 인 아웃 트랙 같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입체감을 구현하려고 했던 것과 정반대로 가는 게 더 재미있는 거고요.
또 하나 일본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환상 중 하나인 일종의 철학적 젠 스타일이 필로 숏이라는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필로 숏이라는 거는 필로 베개를 의미하는 거예요.
베개를 의미하는데.
시퀀스의 처음이나 끝에 아무 의미 없이 자연 풍경이나 혹은 여러 가지 건물 같은 것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숏으로 담기는 걸 의미합니다.
그 무심함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또 한편 오즈 야스지로의 별명 중 하나는 한 번도 비가 안 왔어요.
심지어 우산을 들고 다녀도 펼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백주의 작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어요.
언제나 환한 낮의 이야기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늘 비슷비슷하게 변주를 하다 보니 집도 비슷하지만 사실은 제일 재미있는 게 바로 배우가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온다라는 겁니다.
특히 하라 세츠코 같은 경우는 오즈 야스지로가 굉장히 깊이 사랑한 여배우였다고 하는데요.
-(일본어)
-안타깝게도 고백은 못 했다고 합니다.
첫 영화 만춘부터 시작해서 계속 노리코 시리즈 3부작에도 등장하고 있는 여배우라서 바로 오즈 야스지로의 히로인이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어)
-한편 류 치슈 같은 경우는 남성 페르소나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배우도 반복이 될 뿐만 아니라 주제도 반복이 되면서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있어서는 이 주제의 변주가 매우 흥미로운 그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주목하는 사이트 앤 사운드 2022년 목록의 가장 큰 변화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바로 5위로 등극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이게 놀랍냐면 왕가위 영화가 리스트에 들어온 지는 꽤 됐습니다.
그런데 왕가위 영화는 말 그대로 20세기 말의 분위기를 영화적인 표현으로 드러낸 대표적인 감각을 가진 그런 감독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광각렌즈라든가.
내지는 슬로 모션을 통해서 인생의 허무함이라든가 세기말적 불안을 보여주는 감독.
여러 가지 서사를 통해서 일종의 운문에 가까운 시적인 대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종의 객관적 전달력.
여러 가지가 왕가위 감독 영화를 매우 세련된 20세기 말의 상품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바로 이 점을 같이 주목했다라는 겁니다.
물론 왕가위 영화가 첫 리스트에 오른 것은 21년 전이었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명실상부한 새로운 클래식에 도전하고 그리고 새로운 클래식에 올랐다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주목하는 게 이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앞으로 10년 후에 다시 질문을 하면 그 순위가 더 올라갈 작품이 아닐까라고 짐작해서 그렇기도 합니다.
사이트 앤 사운드지에서 선정한 이유를 보자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억압된 욕망의 고통과 함께 두근거리는 불륜의 사랑에 대해서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 불륜이라는 소재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에서도 다루긴 했지만 정말 오래된 주제이기는 합니다만.
화양연화에서는 음악과 그리고 여배우 장만옥의 어떤 모습 그리고 푸른 담배 연기 여러 가지의 시각적인 장치와 함께 광학적 시도와
음악을 통해서 정말 다양하게 시도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 정서는 누가 봐도 이거는 왕가위 영화다라는 작가적 날인을 남기고 있기도 합니다.
이 작가적 날인은 이를테면 쓸쓸함과 고독함으로 대표되던 20세기 말 동아시아 영화의 약진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서 더 주목할 만하기도 합니다.
미드 센추리 시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해서 가장 풍요로웠지만 한편으로 가장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그려 내고 있고요.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다뤄야 할 것은 깊이 가라앉은 그래서 그 침전물을 휘저어서 만날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영화에 대한 고전적 낭만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죠.
이 세기말적 분위기와 퇴폐적 낭만성 그리고 빈티지 멜로 드라마의 품격을 한 층 높인 이 영화는 앞으로가 더 주목할 만한 황홀한 우울감 그리고 그 감각적 고뇌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또 주목했던 다른 리스트는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90위에 올랐다는 겁니다.
22년 리스트인데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게 21년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빠른 시간 안에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보여주는 기가 막힌 믿음의 벨트 신 기억나시나요?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 연결 이게 베스트인 거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
-음악 믿음의 벨트가 흐르면서 한편으로는 복숭아를 이용해서 이를테면 하나의 극을 만들어 가는 극중극 형태로 진행되는 이 우려한 시퀀스는 봉준호 감독이 왜 봉준호 장르라고 불리는구나를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적인 기법 측면을 넘어서서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전 세계적으로 앓고 있는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문제를 영화적 언어와 문법을 통해서 세계인에게 각성을 준 작품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리얼한 이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만들어 낸 이 솜씨.
그리고 스릴러라는 영화적 기법을 활용해서 디스토피아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이런 암울한 미래를 현재적 시점으로 보여줬다라는 게 바로 봉준호 감독이 가지고 있는 작가적 힘이자 저는 더 발견되어야 할 저력이라고 봅니다.
-(함께) 과 선배는 김진묵 그는 네 사촌~
-봉준호 감독이 주목한 양극화나 세계적
부의 불평등 같은 문제는 2022년 칸느 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슬픔의 삼각형이라든가 다른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계속 추구되고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봉준호 감독이 우리 시대의 비극, 한국의 비극을 통해서 세계 영화의 문법을 흔들어 가고 있는지를 좀 더 주목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어떤 장르의 기원이 된 작품들, 이 작품들을 감독은 매우 유심히 보고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중의 하나가 감독들이 뽑은 사이트 앤 사운드 1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작품입니다.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이고요. 1968년 작품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데 음악을 듣고 나면 아, 이 영화라는 생각이 드실 만한 그런 영화고요.
그리고 맨 앞에 나온 장면을 보여주면 아, 또 이 영화라고 하실 만한 그런 영화입니다.
아주 무심결에 여러 보셨을 바로 그 작품인데.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사실 이미 과거죠. 2001년이니까요.
벌써 우리한테 22년 전의 과거지만 1968년에 앞으로 약 30, 40년 후의 미래가 어떨지를 예상하고 만든 소위 말하는 사이언스 픽션, SF 영화의 거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범이 아닙니다.
전위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화면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를테면 유인원이 처음 등장해서 뭔가를 가지고 만듭니다.
그러니까 도구를 만지는 유인원을 보여줘요.
호모 사피엔스로 바뀌기 직전 이 뼛조각은 공중에 던져서 날아가게 되는데 그 뼈 모양과 똑같은 우주선이 떠 있는 게 다음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매치 컷이라고 부르는데요.
유사한 이미지를 다음 장면으로 연결해서 일종의 은유적 상징을 갖는 장면인데 말 한마디, 대사 한마디 없이 어쩌면 인류가 발견했던 불의 발견 그리고 인류가 처음 만들었던 그 도구가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소위 말하는 AI가 지배할 수도 있는 미래의 어떤 모습 그리고 스페이스 오디세이, 말 그대로 우주여행이 가능하게 될 우주선이 떠다닐 미래의 시작이라는 거를 스탠리 큐브릭이 아주 유려한 영상
미학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포스터에 보시다시피 무중력 상태에서 걸어가는 우주인의 모습을 정말 아름다운 시각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냈고요.
무엇보다 최근에 화제가 됐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AI 아닙니까?
GPT챗이라든가 챗GPT라든가 혹은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국을 벌인다든가 하는 AI 문제가 최근의 문제 같지만 이미 스탠리 큐브릭이 1968년에 할이라는 AI 모델을 통해서 이 문제를 벌써 질문을 던져 놨던 겁니다.
그러니까 영화적 기법에서의 어떤 새로움의 선취도 있지만 인류가 과학 문명을 통해서 만나게 될 미래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바로 스탠리 큐브릭이 이 영화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는 거죠,
매우 영화적인 방법으로.
그래서 감독들은 스탠리 큐브릭의 이 질문과 영화적 표현에 굉장한 환대를 보이는 겁니다.
샤이닝이라는 영화도 한번 볼까요?
샤이닝이라는 영화에는 스테디캠이라는 게 처음 제대로 쓰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스테디캠이 어디에 쓰였냐 하면 바로 아들이 아버지가 쫓아오는 것을 피해서 미로로 도망을 가는데요.
미로에 가서 발자국을 남기고 숨기는 그 과정에서 아주 유려하게 트레킹 없이 거의 카메라가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찍는 그 장면이 있거든요.
기념비적인 장면을 남기기도 합니다.
샤이닝에서는 한편으로는 로우 앵글로 찍어서 공포감을 만들어 내는 그러니까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평범한 장면을 공포로 만드는 그런 장면들도 만들어 내고요.
그리고 다이안 아버스의 비대칭 그림이 떠오르는.
-forever.
-묘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주는 공포감을 영화 속에서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and ever.
-얼마 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작품에서 샤이닝이라는 영화가 한번 오마주 돼서 나오기도 하는데요.
얼마나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친 영화인지 스탠리 큐브릭의 촬영 방법이라든가 주제 접근법이 얼마나 존경받을 만한 것인지 보여 줬던 사례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작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대부라는 작품인데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독이죠.
딸도 소피아 코폴라라고 감독을 하고 있잖아요.
대부라는 작품은.
-(영어)
-되게 멋진 말론 브란도의 연기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잔혹한 느와르, 이런 것들을 보여 줘서 주제적으로만 우리에게 기억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닙니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다양한 영화적 표현 기법과 그 주제를 톤과 매너를 맞춤으로 인해서 이것이야말로 어둠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 가장 큰 아이러니는 코를레오네라는 범죄 패밀리가 자기의 진짜 패밀리를 희생하면서 범죄 패밀리를 유지해 가는 그 아이러니를 굉장히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고요.
가족이라는 단어를 약탈해서 범죄를 통해 가족을 만들어 가는 이민자 집단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영어)
-그런데 말론 브란도 하면 딱 생각나는 것들이 있죠.
어떤 거냐 하면 가령 측면 조명을 통해서 브란도의 얼굴을 강조해서 그의 마음을 잘 모르게끔 만들어 낸다거나 아니면 윤곽을 통해서 그의 위상을 높이는 장면도 있었고요.
또 후면 조명을 통해서 얼굴의 눈빛을 다 가려 버림으로 인해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대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야망과 굶주림, 이런 것들을 바로 교차 편집이라든가 다양한 시퀀스 과정을 통해서 주제적인 면을 편집을 통해 전달하는 탁월한 영화적 표현 방식을 고안해 낸 거죠.
특히 제가 권하는 거는 아이의 세례식과 함께 피의 죽음이 연결되는, 세례식과 피의 죽음이라는 대조적인 장면을 교차 편집으로 이어 붙인 솜씨입니다.
한 번쯤 찾아보신다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주제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해 냈길래 이렇게 위대한 감독으로 이야기되는가를 또 한 번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말하자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지옥의 묵시록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서 편집과 신의 배치 그리고 소재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촬영 방식과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화면 안에 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우리가 참고할 만한 그런 답안지를 미리 제출했다고 할
수 있겠고요.
내면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 시각화해 내는 방법 자체를 여러 가지 대중적인 문법을 통해서 고안해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한번 볼까요?
싱잉 인 더 레인, 한 번쯤은 다 들어 보신 작품일 텐데 만약에 이 영화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라라랜드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세계 영화 시장에서 가장 탁월한 미국 영화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은 레미제라블이라든가 혹은 팬텀 오브 오페라처럼 영국 그리고 프랑스 뮤지컬이 굉장히 유명하지만 뮤지컬 영화 하면 여전히 미국이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그 기원으로 올라가 보자면 바로 이 사랑은 비를 타고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성 영화 시대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그 시점 생각해 보면 만약에 음성이라는 것들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면 사운드가 영화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뮤지컬 영화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겠죠.
바로 이 변화를 잘 활용해서 매체적으로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 바로 사랑은 비를 타고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특히 진 켈리와 같이 공동 안무를 맡은 스탠리 도넛의 결과물들 그리고 잘 기억하시다시피 비가 오는 그 장면에서 탭댄스를 추는데 발이 피투성이가 됐다는 그런 일화가 전해질 만큼 대단한 노력과 한편의 안무의 창의성이 덧붙여져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한국 영화에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은 대단히 성공한 뮤지컬 영화가 없다는 점이기도 한데요.
진 켈리의 사랑은 비를 타고가 없었다면 어쩌면 뮤지컬 영화가 우리에게 사랑받기도 전에 그냥 무대 예술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새로운 진입으로 우리를 놀래킨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작품인데요.
일단 시기가 2001년 작품이에요.
굉장히 최근의 작품이 올라왔다는 것도 놀랍지만 사실상 데이비드 린치는 트윈 픽스라는 TV 드라마를 만드는 그런 TV 연출 감독으로도 익숙해져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세계라든가 정신분석학적으로 괴이하고 기괴한 세계를 그린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소위 말하는 컬트 무비를 만드는, 대중적인 문법과도 거리가 멀고.
A급 작가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좀 오컬트적이고 B급의 문화가 너무 과하다는 점에서 키치스러운 문화로 알려졌던.
그래서 다 좋아하긴 하지만 왠지 좋은 영화 1위로 꼽기는 애매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이번에 당당하게 리스트에 진입했습니다.
이 린치는 어쩌면 2000년대 문화의 특징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인 어떤 발작적인 정신분석적 오류, 왜곡.
이게 바로 시대 정신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저도 과거에 트윈픽스라든가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보여주는 비논리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욕망.
그러면서도 섹슈얼리티가 아주 불가해야 하는 장면들 안에 담겨 있어서.
확실하게 해석되지는 않지만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요.
이 가치를 드디어 많은 영화 전문가가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결국 그 아이러니와 기이함, 매혹과 신비가 이제서야 다른 영화적인 접근으로 인정받은 예시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빠르게 새롭게 진입한 이름들을 한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눈에 띄는 목록 중 하나가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아주 최근 작품, 2019년 작품이 올라와 있다는 건데요.
이건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잔느 딜망처럼 페미니즘적인 접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수자 대상으로서의 퀴어 영화의 진일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성장 서사이기도 하며 꽉 막힌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걸 넘어서서 또 다른 출구를 열어주고 있는 예술의 장르를 통한, 미술 작품을 통한 또 다른 어떤 예술적 언급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기도 하고요.
초상화 그림이라는 것을 활용하고 있는 예시도 상당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들에게 자극이 됐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여성주의 약진이라는 게 여기에서도 또 한 번 드러나고 있는데요.
이 외에도 리스트에 많은 여성주의 영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령 클레르 드니는 굉장히 폭력적인 어떤 언어를 통해서 여성의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그러니까 여성이 여성 영화를 만드는 기본의 문법과는 다른.
이를테면 매우 비문명적이고 야성적인 문법으로 보여주는 감독인데요.
아프리카에서 주로 활동하고 살아왔던 클레르 드니의 자기 삶의 여정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직업에서 보여주는 이 세계도 여성 영화감독에 의해서 갖고 있었던 우리 기본적인 선입견과 다른 세계를 보여줘서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으로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만든 아그네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도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다양한 이런 여성 영화 감독들 그리고 여성 영화 감독들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여성 영화의 세계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자체가 매우 중요한 변화 양상입니다.
이게 단순히 2020년대 잠깐 10년 정도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흐름으로 여성주의 약진을 보여주게 될 것인지 한번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한다면 바로 유색인으로서의 흑인 영화 그리고 흑인 영화 감독, 흑인으로서 미국에 산다는 것이라는 미국 내부의 문제를 다루는 유색 인종의 시선을 담은 영화들이 부쩍 늘었다는 겁니다.
이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배리 젱킨스의 문라이트 같은 경우는 흑인 남성 그리고 거기에 성소수자이기도 한 이 인물을 통해서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큰 갈등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인종 문제를 다양한 시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고요.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조던 필 감독입니다.
겟 아웃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일종의 인종 차별적인 문제 내지는 여전히 흑인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그런 백인 사회 문제는 KKK단이 있던 옛날 한 50년 전 문제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그런 시선들을 아니다, 여전히 미국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고 언급하고 나타난 감독이 바로 조던 필 감독입니다.
코미디언 배우이기도 했는데요.
배우로서의 자기 연기 디렉팅 실력을 마음껏 뽐내면서 매번, 매해 굉장히 문제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겟 아웃 이후에 나왔던 어스라는 작품 역시도 인종적 갈등의 문제를 우화적으로 펼쳐낸 잔혹 동화 스타일로 만들어 내서 굉장한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 같은 경우는 뱀파이어리즘이라는 부르는 인종적 불쾌감을 날카롭게 가격하고 있고요.
한편으로는 위선으로 감춘 현대인의 인종 차별적인 시선을 보여주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영화적인 선언을 통해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현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작품입니다.
2022년 발표됐던 놉 역시도 다양한 미국 대중문화 속의 폭력성 그리고 그 폭력성을 내재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미국 대중문화 속의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갈등의 진앙에 무엇이 있는지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죠.
저는 조던 필 감독의 영화가 더 많이 이 리스트에 올라오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영화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특히 영원한 영화의 철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감독들의 이름을 몇 명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산딸기를 통해서 말씀드렸던 잉마르 베리만 같은 경우는 제7의 봉인이라든가 다양한 작품들, 페르소나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영화가 결국 철학을 넘어서는 어떤 사유의 궤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러시아 영화들이 강세였는데요.
이번에는 지가 베르토프 감독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이 작품 역시 러시아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이를테면 기본적인 문법으로서의 편집의 기법이라든가 카메라라는 것들에 대한 접근이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서 주목해 볼 만합니다.
이야기하면서 늘 언급했던 장뤽 고다르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 같은 프랑스의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들도 꾸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같은 이탈리아 감독의 어떤 흐름도 주목할 만하고요.
우리가 동아시아 영화를 다루면서 빼놓았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은 바로 증동의 서아시아 영화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영화적인 호흡 중 하나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같은 일본의 다른 영화감독들의 작품들도 또 한 번 주목해 볼 만하기도 합니다.
이런 영화들 외에도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는 정말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다 다루지는 못했지만 여러분이 이 리스트를 보고 한 번쯤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골라보신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듯합니다.
영화의 생명력은 전위적 선언에서 비롯됩니다.
시민 케인의 딥 포커스는 인물을 묘사하고 관계를 재연하는 장면 구성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눈앞에 보여줬습니다.
유인원이 허공에 던진 뼈가 우주선으로 바뀌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매치컷은 결국은 SF 장르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감각적으로 보여줘야 할지를 알려줬습니다.
대부의 교차 편집은 가족의 이름으로 무너지는 가족의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재연했고요.
그렇게 영화는 언제나 우리 문화의 가장 앞자리 프런티어에서 전위와 변화를 선사했습니다.
낯설게 현실을 바라보고 그리고 돌아보게 하는 힘.
그 선언을 통해서 우리는 흘러가는 삶을 잠깐 멈추고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낯설고 강력한 힘.
훌륭한 영화는 우리의 삶을 고양하는 선언이자 거울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 영화 평론가 강유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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