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나누니 기쁘지 아니한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를...♥

김현진
등록일 : 2022-11-23 21:15:55.0
조회수 : 211
저에게 외할머니는 아주 특별한 분이십니다. 친할머니친할아버지도 계시지만, 유독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외할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고, 추억도 많았습니다. 제 어린시절 앨범에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사진과 외할머니의 사진이 엄청 많습니다.
외할버지는 제가 9살이었을 때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꿈을 꾸고 일어나니 정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도 더 마음이 아프고 슬펐을 저희 외할머니는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실거야, 너에게만큼은 인사를 꼭 해주고 싶었나보다"라며 따뜻하게 어루어만져주시던 손이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고 와서 저 자신을 한탄하면 저희 외할머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거야,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절대 틀린 게 아니야"라는 말씀으로 저를 다독여주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제 기억 속의 저희 외할머니는 항상 따뜻하고 웃음이 많으시고, 긍정적인 분으로 자리잡았나 봅니다.
10살이던 저에게 막내 동생이 태어났는데 딸 둘이 있던 집안에 남자동생이 태어나니, 갑자기 인생 10살부터 차별받는 행동들을 경험하고 무척이나 마음이 약해져있을 때에도 외할머니는 남동생을 아픈 엄마 대신 돌봐주시면서도 항상 저의 안부와 저의 생각을 먼저 물어봐주시곤 했습니다. "밥은 먹었니?", "오늘 학교에서 아무일도 없었니?" , "현진이 네가 도와주니 너무 행복하다." 등으로 저를 챙겨주시고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주시곤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엔 노느라고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언제나 생일을 챙겨주고 전화주어 고맙구나."라고 말씀해주시곤 할 때엔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92세의 노인입니다.
약 5년전부터 기력이 약해지시고, 컨디션이나 건강이 안 좋아지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소녀스러운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그럴 때마다 "괜찮다, 괜찮아질거다."라는 말씀으로 저희들을 다독여주셨습니다.
그러다 점점 소리도 잘 안 들리시고, 다리도 아프시고, 더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모두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날에는 다리가 너무 저리고 힘이 빠져서 걸을 수도 없어서 누워만 계셔야 했고, 어떠한 날에는 소리가 안 들려서 전화가 울려도 못 받고, 문자가 와도 확인도 못하시고, 인터폰이 울려도 문을 열어주실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외할머니에게는 6남매가 있습니다. 아들 2과 딸 4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여섯째 막내 딸입니다.
저희 어머니댁이 외할머니댁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자주 저와 함께 방문을 하고 안부를 여쭙고는 하는데,
뵐 때마다 마음이 아픈 건 저뿐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외할머니댁에 다녀온 날이면 종종 저희 어머니의 눈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함께 할 수 있을지, 얼마나 같이 다닐 수 있을 지, 얼마나 곁에서 만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마음을 미리 다독여놔야겠다는 엄마의 말에 저 또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하였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요,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도 여전히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꽃단장을 하시고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하는 옥상에 올라가 텃밭을 가꾸십니다. 가지, 체리나무, 여주, 오이, 호박, 상추, 감나무 등등 다양한 식물들에게 인사하고 물을 주고 다듬어주고 내려오십니다.
그러고나면 다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대문 앞 마당에 있는 율마, 무궁화, 코스모스, 백합 등 다양한 꽃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기분이 좋다고 하시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소녀같으신 우리 외할머니에요, 그러한 외할머니의 소녀스럽고 따뜻한 모습을 계속 지켜드리고 싶은데요,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누워만 계시지 않고, 계속 움직여서 하루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시려는 외할머니에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젠 아예 귀가 들리지 않아서 다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엔 다른 사람은 웃는데, 할머니는 멍~하니 쳐다보고는 되물으십니다. 입모양을 보고나서야 어떠한 내용인지 알고 "하하하"라고 웃으십니다.

그 모습에 외삼촌도 이모들도 "보청기가 필요한데? 알아보러 갈까요?"라고 물으면 외할머니는 항상 "내 나이 사람들은 다 ~ 안 들리지, 안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괜찮아. 비싸다. 돈 아껴야지"라고 하면서도 "충분히 잘 들려서 괜찮다"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면 손녀인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너무 속상하기도 합니다. 딱! 보청기를 선물해드릴 수 있는 손녀였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얼마전 외할머니께서 교회에 목사님 말씀을 들으러 갔는데, 남들은 다 웃고 기뻐하는데 할머니는 도통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답답하고 울분이 터지셨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몸도 안 좋아지고, 귀까지 안 들리니 점점 우울감에 빠지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할머니와 함께 자주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봐줘"라고 하셨던 찰나에

출근시간에 종종 듣는 생생라디오에서 "보청기"가 필요한 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사연을 받는다는 말에 바로 "외할머니"가 떠올라서 문자를 치다가 인터넷으로 들어와 게시판에 사연을 남깁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넷째 외삼촌과 함께 살고 계시는데, 넷째 외삼촌에게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이혼을 하신 후 외삼촌과 사촌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사촌언니가 8살 때부터 함께 살면서 엄마의 역할과 친할머니의 역할을 함께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촌언니가 벌써 36살이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늘 "우리 희경이가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하는 모습까지 봐야하는데~"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사촌언니는 비혼주의자라며 외할머니의 가슴에 쇄기를 박곤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러한 사촌언니가 얼마전에 외할머니와 외삼촌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남자친구를 데려왔다지 뭡니까? 빠르면 내년 봄, 늦어도 가을 전에는 결혼을 할 것 같다고 합니다. 가장 아름다울 사촌언니의 결혼식에 외삼촌과 외할머니가 나란히 앉으시기로 했는데, 그러한 자리에서 저희 외할머니께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행진곡, 따뜻한 분위기 속의 환호, 신랑신부의 혼인서약서 등 다양한 소리들을 생동감이 있게 들으시고, 행복함을 잔뜩 느끼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다시 소리가 들린다면 딸처럼 손녀처럼 키운 사촌언니의 결혼식까지 더욱 건강관리하고 몸보신하시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저희와 함께 해주시지 않을까요?

소리가 안 들리면 우울증과 치매발생률이 높아지고, 인지장애, 낙상사고의 위험까지 동반된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 수록 소리가 안 들리면 살아가는데 힘듦이 더욱 많이 늘어진다고 하는데,

얼마나 저희와 함께 해 주실 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외할머니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소리들을 통해 남은 여생을 더욱더 따뜻하고 환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알려주는 소리보다 직접 듣는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요즘입니다 ♥
막내딸의 손녀인 제가 외할머니께 다시 행복한 웃음 짓고, 긍정의 기운을 줄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꼭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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